레이블이 에베소서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에베소서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에베소서 6:10-24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24

10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2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6:10 마지막으로 너희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6:11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기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6:12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대적하고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6:14 그러므로 너희는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이고, 의의 가슴막이를 붙이고, 

6: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로 신을 신고, 

6:16 모든 것에 대하여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것으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을 능히 소멸시키며,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라.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성도를 위한 간구로 깨어 있어라. 

6:19 또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내게 말씀을 주셔서 내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주시라고 하여라. 

6:20 이를 위해 내가 사슬에 매인 대사가 된 것은 내가 이 일에 마땅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희가 알 수 있도록,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릴 것이다. 

6:22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가 우리의 형편을 알고, 또한 그로 하여금 너희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는 것이다. 

6:23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2:3절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정병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에는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 마귀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하고, 우리의 신앙으로 마귀를 이기면서 달음박질을 잘 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자신의 구원도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져 나갑니다. 마귀에게 지면 마귀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귀의 뜻만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되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수치를 당하는 자리에 있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고,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됩니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성도의 할 일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도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재능대로 종들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배나 남겨서 하나님 앞에 가야하겠습니다.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한 달란트를 가지고 간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이기면 달란트를 배나 남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신의 구원도 이루고, 할 일을 바로 하고 가지만, 마귀를 이기지 못하면 낭패와 실망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 강건하여 선한 싸움에 승리하라
본문 10-11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 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싸움에 실패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자가 되려면 첫째 강건해져야 합니다. 강건해야 나가서 선한 싸움에 이깁니다. 강건하지 못하면 선한 싸움에 이기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강건해지겠습니까? 자기가 연약해서 비실비실하고, 잘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은 선한 싸움을 잘 싸울 수 없습니다. 선한 싸움에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강건하여야 합니다. 마귀와 더불어 선한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첫째가 강건입니다.

주안에서 강건하라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심령이 강건해질 수 있습니까? 심령이 강건해지려면 주 안에 있어야 강건합니다. 즉 항상 영적 세계에서 살기를 힘을 써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 살려면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고, 주님을 늘 가까이 하고, 주의 은혜 가운데 항상 거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정병은 강건해야 합니다. 세상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군인도 강건하여야 나가서 전쟁할 수 있지, 강건하지 못하면 전쟁할 수 없습니다. 강건하여야 원수와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제일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강건해야 합니다. 항상 은혜 속에 있어야 강건해집니다.

디모데후서 2:1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속에 있어야 그 사람의 심령이 강건해집니다. 은혜 속에 있다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생활, 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는 생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는 생활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야 심령이 강건해집니다. 잠시라도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즉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또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야 합니다. 심령이 강건해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하라

그 다음에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하였는데,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강건해지라는 뜻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능력을 힘입어야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4-5절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산 돌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를 의뢰하면 산돌에서부터 능력이 계속 공급이 되고, 또 생명의 역사도 계속 공급됩니다. 그러므로 강해지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주신 능력을 써야 합니다. 능력을 써야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므로 강건하라

그 다음에는 그를 의뢰하고 계속적으로 그에게서 오는 능력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순종하므로 강건하라

그 다음에는 순종하므로 능력을 쓸 수 있습니다. 순종하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우리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능력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 하고 물맷돌을 던지니까 하나님의 만능이 역사하셔서 골리앗이 꺼꾸러졌습니다. 히브리서13:5-6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와주신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무서워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계속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씁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쓰면 강해집니다.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능력이 나옵니다. 강건해지면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2.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으라

본문 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궤계란 마귀의 속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나가야 합니다.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야 하고, 성경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모든 마귀의 궤계는 성경에 다 위반됩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언제나 굳건히 서야 하고, 말씀을 언제나 굳건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하며 양심을 써서 나가야 마귀의 궤계를 알고, 대적 할 수 있습니다. 또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마귀는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이용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님

본문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선한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싸움이 아닙니다.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은 마귀에게 실패합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였는데, 혈과 육으로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힙니다. 예수 믿는 자는 절대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안 됩니다.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그것은 백발백중 마귀에게 사로잡히고 실패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혈기를 부리면 안 됩니다.

혈기를 부리는 것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고,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말씀은 성도들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에 대한 영적교훈인데, 세상의 법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공평하게 재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대적이 침입을 하면 나가서 막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법과 교회의 신령한 법은 다릅니다. 세상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여야 악이 제재(制裁)가 되고, 세상이 질서를 유지해 나갑니다. 또 원수가 쳐들어 올 때에는 나가서 막아야 백성을 보호하고 악을 제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법, 즉 영적 법은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정사,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임

그러므로 우리가 혈과 육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하였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이것입니다. 즉 정사,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갈 때에 막는 정사가 많습니다. 정사는 일 처리를 말합니다. 국가의 정사를 비롯해서 어떤 단체의 정사, 어떤 기관의 정사 등과 직장의 정사, 가정의 정사 또 권세로 국가의 권세, 단체의 권세, 기관의 권세, 군대의 권세, 가정의 권세, 문중의 권세, 일가친척의 권세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반대하는 정사와 권세는 우리가 싸워야 이겨야 합니다. 싸울 때에 혈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은 분쟁을 하고, 언성을 높이고, 혈기를 부리고, 주먹이 날아가는 것 등이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우면 안 됩니다.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이기는 것임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갈 때에 막는 정사와 권세가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되는가?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싸우고 이기는 방법입니다. 막는 세력과 막는 정사와 싸우기는 싸우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끝까지 순종해 나가는 것이 정사와 권세와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만 지켜 나가는 것이고, 말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사와 권세가 신앙의 길을 막지만 최후에는 말씀만 순종하며 나간 사람이 이깁니다. 국가의 세력이 신앙의 길을 막을 때에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걸어나가는 것입니다. 막는다고 해서 안나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 붙들고 끝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성경대로 나가면 마지막에는 모든 국가의 세력들을 다 이깁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왜정말단에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 갇혔을 때에 국가에서 신사참배하라고 해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못하느냐?고 물으면 “성경말씀을 순종하느라고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이 “너는 국가에 대해 반대자”라고 하면 이기선 목사님은 “나는 국가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반대하려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순종하려고 나는 못한다”하며 나갔습니다. 그러면 또 “너는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냐?”하면 “국가에 반대는 아니다, 국가를 순종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오라고 하니까 여기에 왔고, 감옥에 들어가라고 하니까 감옥에 들어갔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국가에 순종하기 위해 우상이 있는 곳에 갔으나, 하나님을 순종하기 위해서 절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제국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8.15 해방 후에 일본은 망하였고, 이기선 목사님은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이기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옥에 가둔다고 하여도 순종하고, 죽인다고 하여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법입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세력과 맞대고 혈기부리며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어떤 분이 셋집에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새벽에 대문을 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하며 물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싸우지 말고 매일 새벽 대문을 열고 새벽기도 나오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열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길래 “열지 말라고 해도 열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남의 집인데 열고 나와도 될까요?” 합니다. 그래서 “집세를 주었느냐? 안주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세를 주었다고 합니다. “집세를 주었으면 사용하는 권세가 있지 않느냐? 집세를 줄 때에 그 집에 사는 권세뿐만 아니라 왔다, 갔다 하는 출입하는 권세까지 해서 집세를 주었지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기 위해서 집세를 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문을 열 권세가 있으니까 싸우지 말고, 열고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싸우지 말고 말씀대로 계속 나가면 그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직장이 떨어진다, 학교에 떨어진다”고 하여도 계속 말씀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면 “너를 보지 않겠다, 이제는 친척이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하여도 계속 교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이깁니다.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란 음모, 술수를 말합니다.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고 30일 금령을 내렸는데 그것이 음모입니다. 외부로는 번듯한 법을 냈지만 이면에는 다니엘을 죽이려고 음모한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란 악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 악령의 역사가 많이 있습니다. 즉 비 진리, 사이비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과 우리는 싸워서 나가야 합니다. 가정의 권세도 신앙의 길을 막는 때가 많습니다. 온 친척, 형제들이 다 들러붙어서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막으려고 합니다. 막는다고 해서 그것에 굴복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깁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예수를 믿었는데, 우리 가정에서 여러 친척이 다 모여서 제사한다는 것입니다. 제사 하는데 나도 제사상에 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제사 못한다”고 하니까 끝까지 절을 시키려고 사촌, 오촌 다 모여서 대문간을 못나가게 사방으로 지킵니다. 그러다가 강제로 절을 시킬 작정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문간 지킨다고 해서 내가 나가지 못하겠느냐? 하며 대문간 반대쪽 개구멍으로 달아났습니다. 제사는 무슨 제사입니까? 그러므로 모든 권세가 다 들러붙어서 신앙의 길을 막으려고 할 때에 혈기를 부리며 싸우지 말고, 말씀대로 끝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악한 영들에게 지면 안 됩니다. 마귀의 역사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귀가 와서 꿈꾸게 하는 것, 마귀가 환상 보이는 것, 마귀가 예언하게 하는 것 등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1992년 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 등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왜 마귀의 역사인가?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1992년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 몇 절에 있습니까? 계시 받았다는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계시 받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악령의 역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악한 날이 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함

본문 13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신갑주를 왜 입어야 하는가? 악한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악한 날이 오는데 그때에 전신갑주를 잘 입은 사람은 승리할 것이고, 전신갑주를 잘 입지 못한 사람은 악한 날에 실패합니다. 

악한 날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는 우상에게 절하라고 한 날입니다. 즉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넣는다고 한 날이 악한 날입니다. 다니엘에게는 30일간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는 날이 악한 날입니다.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것이 악한 날입니다. 또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악한 사람도 때때로 만납니다. 그것이 악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믿음 준비를 잘해 놓으면 악한 날을 승리적으로 통과할 수 있으나,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지 못하고 믿음 준비를 잘해 놓지 않으면 악한 날에 실패합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지만,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지 못하였으므로 악한 날에 악한 여자인 들릴라를 만나서 실패하였습니다. 요셉은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악한 날에 악한 여자인 보디발의 아내가 왔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하며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은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다녀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나가셨기 때문에 악한 날, 악한 사람인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지만 “친구여, 너 할 일을 하라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판 자는 화가 있으리니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느니라”하시며 승리하셨습니다. 또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에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었기 때문에, 돌로 스데반을 때려 죽일 때에 성령충만, 믿음충만, 예수충만, 소망충만, 사랑충만으로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3. 전신갑주
그러면 전신갑주가 무엇인가?

진리의 허리 띠

본문 14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허리의 띠란 자기를 단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말씀에 붙들리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걸어나가는 사람이 진리의 허리띠를 띤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붙들리워서 말씀대로 걸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걸어가지 말고 말씀에 붙들리워서 말씀대로 걸어 나가고, 말씀이 자기 힘이 되고, 말씀이 생명이 되도록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띤 사람입니다.

의의 흉배

그 다음에 “의의 흉배를 붙이고”라고 하였는데, 의를 정면으로 내걸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삐뚤게 쓰며, 불의한 길로 걸어가면 실패합니다. 언제나 양심을 바로 쓰고, 옳은 길인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양심 안 쓰고 옳지 않은 길로 걸어가면 반드시 마귀에게 붙들리워서 마귀의 종이 됩니다.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의가 아니면 받지 말고,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해도 양심을 삐뚤게 쓰지 말아야 합니다. 손해를 보아도 신앙 양심을 바로 쓰고, 말씀대로 옳은 길을 걸어 나가면 죽지 않습니다. 반드시 삽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

본문 15절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하였습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란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세계에서 평안을 얻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영적 평안을 누리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을 신고”란 걸어가는 것 즉 행동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언제나 복음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방패

본문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화전을 가지고 쏠 때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막으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성도를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활을 쏩니다. 그 때에 사방으로 들어오는 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막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예를 보면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할 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만일 우리를 풀무 불 가운데 던지면 우리 하나님은 풀무 불에서도 건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건져내 주실 것이다”하며 믿음의 방패로 막아냈습니다. 또 “만일 하나님이 건져 주시지 않으므로 죽는다고 할지라도 절하지 않을 줄 아옵소서”라고 했는데, 이것도 믿음의 방패입니다.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것을 믿는다, 천당 갈 것을 믿는다, 또 하나님이 건져주실 능력이 있는 것을 믿는다”하며 믿음의 방패를 사방으로 해 놓았습니다. 살아도 이기는 것이고, 죽어도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처럼 양통(兩通)입니다. 죽으면 천당 가게되는 것이니까 더 좋습니다. 다니엘도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사자 굴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몇 개입니까? 성
경이 66권이므로 66개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66개가 있는데, 마귀들이 아무리 쳐들어와도 66개의 방패로 다 막을 수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고 남습니다. 이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

본문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투구”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는데,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시험을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귀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공격도 해야 합니다.
공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합니다. 예수님이 3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에 말씀으로 마귀를 공격해서 물리치셨습니다.

4. 무시로 깨어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하라

본문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8절에 기도하라는 말이 5번 있습니다. 즉 “기도와 간구, 성령 안에서 기도,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입니다. 

영이 깨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매일 기도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마귀를 이깁니다. 기도하지 않는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입니다. 

본문 19절에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또 자기도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으로 마귀의 시험을 쳐서 물리치고, 그 다음에는 기도와 말씀으로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계속 전진하여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택한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커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5. 두기고를 에베소에 파견함
바울에게 충성한 진실한 일군

본문 21절에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냈습니다.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라고 하였는데, 두기고는 진실한 일군입니다. 진실한 일군이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진실한 하나님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못씁니다. 첫째도 진실이고, 둘째도 진실이고, 셋
째도 진실입니다. 진실에 생명이 있습니다. 거짓말 한 번만 하면 천하에 있는 것을 다 준다고 해도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진실하면 천하에 있는 것이 다 없어져도 그 사람은 벌써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이 성공이고, 양심 쓰는 것이 성공입니다. 진실하다가 손해를 보아도 성공이며, 진실하다가 매를 맞아도 성공이며, 진실하다가 쫓겨나도 성공이며, 진실하다가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성공입니다. 하여간 진실만 하면 그것은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실하여야 합니다. 두기고는 진실한 일군이며, 또 바울을 잘 순종했습니다. 바울이 보내는 곳에 잘 가고, 무엇을 시키든지 모든 것을 진실하게 한 귀한 일군입니다. 

또 바울을 잘 순종하고 받들어 나간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좋은 보조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디모데후서 4:10-11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고, 디모데후서 4:16에는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또 빌립보서2:21-22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자기 일을 구하고”란 바울과 같이 일하던 일군들이었으나, 자기 이기주의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다 자기 일을 구하는 이기주의로 돌아섰지만 그래도 디모데가 아버지에게 하듯 바울에게 잘 충성했습니다. 또 두기고도 바울을 잘 도와서 충성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할 사람은 충성하고, 이기주의로 갈 사람은 이기주의로 갑니다.

두기고를 에베소에 파견한 목적

본문 22절에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낸 목적은 바울의 모든 사정을 알게 하고, 또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인이 교역자의 사정을 염려해 주고, 교역자가 교인을 위로해 주는 일을 본 받아야겠습니다.

6. 문안축복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축복함

본문 23절에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너희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은 참 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으면 큰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기를 축복함

본문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겠습니까?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다 말다 하지 말고 항상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 사람을 사랑할 때도, 변함없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아침에 사랑하다가 저녁에 미워하고,또 어저께 사랑하다가 오늘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저 변함없이 꾸준히 항상 사랑하여야 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잘해줄 때에나 못해줄 때에나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 또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시험거리 노릇을 해도 사랑해야 합니다. 왜 사랑 하여야 하는가?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면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도적질해가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소를 몰고 산을 넘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적떼가 나타나 소를 다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도적들이 한참을 가는데, “여보시오, 여보시오”하며 소 도둑 맞은 사람이 뒤에서 뛰어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들이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부르며 뛰어오는가?”며 의아해 하는데, 소 도둑 맞은 사람이 뛰어 와서는, “내가 뭐 하나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잘 못 걷는 소가 있는데 그 소는 채찍으로 때려야 가는데 채찍 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
다, 이 채찍을 받으세요”라며 채찍을 주는 것입니다. 도적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들은 소를 빼앗았는데, 이 사람은 채찍을 안주었다고 채찍을 주려고 소리치며 뛰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 잘못했다, 소들을 다시 돌려 세워라”고 하며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도적을 사랑하니까 도적도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고,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며느리를 사랑하고, 또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부인들은 “남편이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매일 얼굴 쳐다보며 “오늘은 나를 사랑 하는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남편이 하루 종일 사업하다가 피곤해서 들어오는데, 밤낮 친절한 얼굴을 하고 들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지 말고, 남편이 변함없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바가지 긁어도 나를 사랑해서 긁지 미워서 긁겠느냐? 하며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하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합니다. 또 교회에서 교역자가 교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하며, 교인들은 교역자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 잘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서 왜 안 나오셨냐고 물어 보았더니 “목사님 도와주려고 안나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할머니가 “내가 인사를 했더니 목사님이 나를 미워해서 인사를 안 받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안 나가야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설교도 잘 하시고, 교회도 잘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 안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인사할 때에 할머니가 나가셨기 때문에 내가 인사를 못한 것이지 내가 할머니한테 인사를 왜 안하겠습니까? 내가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이제는 할머니한테 인사 잘 할 테니, 인사 안 받으면 앞으로 돌아와서 인사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교회에 잘 나오셨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사람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교역자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교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서로 교통하는 사랑으로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에베소서 6:1-9 자녀와 부모의 도리, 종과 상전의 도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자녀와 부모의 도리,
종과 상전의 도리
에베소서 6:1-9

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6:1 자녀들아, 주님 안에서 너희의 부모에게 순종하여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계명이니, 

6: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는 것이다." 

6:4 또한 아비들아, 너희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라. 

6:5 종들아, 두려움과 떨림으로 육신의 주인들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여라. 

6:6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6:7 성실히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라. 

6:8 이는 각 사람이 어떤 선을 행하면, 종이든 자유인이든 주께로부터 그대로 되돌려 받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6:9 주인들아, 너희도 위협을 그만두고 그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여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주께서 하늘에 계시며, 그분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본문 1-2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에는 “주 안에서”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순종할 수 없고, 성경에 위
반되지 않는 것은 다 순종하여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
하라”고 하였는데, 공경하는 데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 공경하
여야 합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였는데, 부모에게 잘하는
사람은 임금에게도 잘하고, 선생에게도 잘합니다.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고, 5계명에서 10계명
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사람에 대한 계명 가운데 제일 첫째가
부모공경입니다. 부모공경을 잘 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순종은 성경
에 위반되지 않는 것은 다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경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
부모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었든, 못해주었든, 또
부모가 죄로 인해서 감옥에 갇혔을지라도 부모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자기에게 잘못한 것이 많아도 무조건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나님의 명
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는데, 부모를 공경
하고,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 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즉 부모공경을 잘하는 것은 의로
운 일이고, 부모공경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2. 부모공경 하는 법
그러면 부모공경을 잘하려면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예수를 믿게 함
첫째는 예수를 잘 믿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지옥에 가면 무슨 효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도록 부모를 교회로 인도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함
둘째는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마음에 근
심을 끼치지 않으려고 하여야 합니다. 부모를 “첫째 아들이 모셔야 한
다, 둘째 아들이 모셔야 한다, 셋째 아들이 모셔야 한다”고 하지 말고,
부모가 어느 아들의 집에 가는 것을 원하는가? 그것을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데 첫째 아들이 부모를 모셔야 체면이 선다고 하여 억지로 첫째 아들
이 모시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하여간 부모의 마음에 걱정 끼쳐 드
리지 말고, 평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돈을 드림
셋째는 매달 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용돈이 없으면 어디에
가서 사람 축에도 못 든다고 합니다. 또 예수 믿는 부모는 연보하여야
하고자 하는데, 용돈을 안 드리면 연보를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또 물
질로 믿는 일을 하여야겠는데, 용돈을 안 드리면 무엇으로 믿는 일을
하겠습니까? 부모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실 때
부모에게 용돈을 드려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다면 부모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또 하늘나라에도 상달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강
대상 하나 해놓고 싶다”고 하니까 자녀들이 강대상 하시라고 돈을 주
었다고 합니다. 연보도 부모가 성심껏 할 수 있도록 하여야 부모가 믿
는 일을 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보할 때에 연보하고 싶은데 못하면
부모의 성심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효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용돈을 매달 얼마씩 정해서 드려야 합니다. 아들이 셋이라고 하면 각각 오만 원씩만 드린다고 해도 십오만 원이 됩니다. 매달 용돈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효도입니다. 부모에게
용돈 드리지 않고 먹을 것만 사다 드리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부모가 무엇이 필요한가? 부모의 요구가 무엇인가? 그것을 들어 주어야 효도입니다.

의복을 따스하게 해드려야 함
넷째는 의복과 이부자리를 따스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노인이 되면
몸이 따스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좀 따스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늘
추워서 그러는데 먹을 것만 자꾸 사다주면 소화도 안 됩니다. 

음식을 잘 대접하여야 함
다섯째는 음식을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영양가치가 있는 것
으로 해드려야 합니다. 노인이 되면 많이 못 잡수시므로 무엇을 잘 잡
수실 수 있는가? 그것을 알아서 잘 잡수실 수 있는 것을 해드리는 것
이 좋습니다. 부모가 세상 떠나기 전에 효도하여야지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효도를 하겠습니까?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늘 살아계셔
주시지 않습니다. 나무가 잔잔하고 싶어도 바람이 자지 아니하고, 부
모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가 늘 살아계셔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
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는데 무엇을 효도하겠습니까?

나는 부모에게 효도할 기회가 다 지나갔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얼
마나 효도를 했는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효도를 했는가? 생각해 봅니
다. 그리고 효도하고 싶지만 세상 다 떠나셨는데, 어떻게 효도를 하겠
습니까? 그래도 14살 정도 되었을 때에 내가 아버지께 효도를 좀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병이 나서 거동을 하시지 못할 때에 약 6개월
동안 대소변을 내가 받아냈습니다. 또 우리 아버지는 나만 찾으셨습니다. “변기 가져 오너라”고 하시면 기쁨으로 했습니다. 그 당시에 변변한 변기통도 없어서, 그저 바가지에 왕겨 넣은 것으로 변기통을 대신 하였는데, 거기에 변을 보시면 제가 갖다버리곤 했습니다. 한 6개월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효도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도 생각해 보면 효도 잘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로
효도 한 것이 생각이 안 납니다. 어머니가 힘든 일 하실 때에 도와 드
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막심합니다. 효도할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니
므로 부모가 살아계셨을 때에 효도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부모
를 도와 드려야 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월급을 괜찮
게 받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부모 도와 드리느냐?” 하고 물어 보
면 안 도와 드린다고 합니다. 참 한심합니다. “왜 안 도와 드리느냐?”
했더니 아파트를 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파트 값을 몇 년 갚아 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부모 대접을 하여야
겠는데, 아파트를 사느라고 부모 대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됩
니까? 효자는 자기 집이라도 팔아서 부모 대접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효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 부모공경은 “의(義)”이며, 땅에서 장수함
“이것이 옳다”고 했으므로 부모공경을 하면 그것이 “의”입니다. 그
러나 부모공경을 하지 않으면 “불의”한 일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주여, 주여”하며,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신명기 27:16에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
라...”고 하였고, 잠언 28:24에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
하는 사람은 선생도 잘 공경합니다. 또 어디를 가든지 그 사람은 윗사람을 잘 공경합니다. 부모, 선생, 윗사람, 임금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을 잘하는 사람이 쓸만한 사람입니다. 부모공경 잘못하는 사람은 쓸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본문 3절에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공경을 잘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모공경 잘하는 사람은 땅에서
장수하고, 잘 됩니다. 장수한다는 것은 가다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내내 실패하지 않고, 잘 되도록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땅에서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해나갈 수 있습니다. 더우기 부모가 예수
믿는 부모일 경우, 부모를 잘 순종하면 오랫동안 신앙의 경험으로 가
르치시기 때문에 잘 됩니다. 또 바로 인도하는 선생을 잘 순종하는 사
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됩니다. 가다가 실패가 없습니다.

두 집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집안은 잘되고, 한 집안은 잘 안 됩
니다. 그래서 잘 안 되는 집 사람이 잘되는 집을 찾아가서 “너는 어떻
게 이렇게 잘되느냐?”하며 그 비결을 물어 보았습니다. 잘되는 집 사
람이 “그러면 왜 그런지 한번 보겠느냐?”하면서, “야, 큰 아이야 나오
너라”고 하였더니 큰 아이가 나왔습니다. “너 낫을 가지고 가서 곡식
밭에 가서 곡식을 베어라”고 하였답니다. 그 때는 벼이삭 나올 때입니
다. 곡식을 벨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 하더니 곡식을 베어 묶어
세우더라는 것입니다. “됐다” 하고, 그 다음에는 “작은 아이야 나오너
라”고 하였답니다. 작은 아이에게 “너 도끼 가져다가 기둥을 찍어라”
고 하니까 “예”하고 도끼로 기둥을 내리치려고 하니까 “이젠 됐다”
하였답니다. 그 다음에는 “셋째야 나오너라”고 하니까 셋째가 나왔답
니다. “너는 소를 지붕으로 끌고 올라가라”고 하니까 셋째가 사닥다리
를 갖다 놓고 소를 끌고 올라가려고 하니까 소가 올라가겠습니까? 그
러니까 어머니가 나와서 소 뒤를 받치고 또 아들은 끌어당기는 것입
니다. 그 때 “됐다”하면서, “우리 집은 이래서 잘 된다”고 하니까 “그
것 누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 집에 가자”하고 잘 안되는 집에 갔습니다. 가서 “야, 큰 아이야 낫 가지고 나가서 곡식베어라”하니까 “아니, 때가 어느 때인데 곡식을 벱니까?” 합니다. 다음에는 작은 아이를 부르며 “작은 아이야 도끼 가지고 나와서 기둥 찍어
라”고 하니까 “기둥 찍으면 집 무너지지 않습니까? 아버지, 요새 왜
그러십니까?” 합니다. 다음에는 셋째를 부르며 “셋째야 나와서 소를
지붕으로 끌고 올라가라”하니까 “소가 어떻게 지붕으로 올라가겠습니
까?” 합니다. 또 자기부인한테 소가 지붕위에 올라가도록 밀어 주라고
하니까, 부인이 “영감이 요새 정신 나갔나보다, 소가 어떻게 지붕에
올라가겠는가?” 하며 다 돌아섭니다.

그러니까 잘되는 집안의 사람이 “이래서 당신네 집은 안 되고, 그래
서 우리 집은 잘 된다”고 하였답니다. 곡식 벤 집의 아들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곡식을 베어 희생하더라도 부모 공경이 크니까 아버지의 말
에 순종한 것입니다. 또 기둥 찍으라고 할 때에도 집 무너질 것을 모
르겠습니까? 아버지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찍으라고 했겠지, 무슨 생
각이 없이 찍으라고 했겠는가? 하며 아버지가 찍으라고 하였기 때문
에 찍으려고 한 것입니다. 소를 지붕위로 끌고 올라가는 것도 아버지
가 시켰으므로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의 부모 아
브라함을 잘 순종했기 때문에 얼마나 잘되었습니까? 어디까지 이삭이
순종했습니까? 결박을 당하고 죽는 자리까지 순종했습니다. 노아의 자
손들도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였을 때에 방주
를 잘 만들었습니다. 왠만한 아들 같으면 산 위에 배를 만드는 것, 순
종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라고 하였다”고 하니까, 부모를
순종해서 약 70년 동안 배를 지었습니다. 노아의 며느리들은 밥하여
배 짓는 일꾼들에게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노아의 가족이 잘
되었습니까? 잘 되었습니다. 자기만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잘 섬기는 사람은 잘 됩니다.

4.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본문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비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
지 말고 성경 말씀을 배워 주며, 성경 말씀대로 하라고 하며, 성경말
씀대로 잘 양육하여 나가야 합니다.

5.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본문 5-7절에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
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
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새는 종의 제도가 없지만 남의 수하에게
서 일하는 사람들은 윗사람에 대해서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공
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윗사람을 두려움으로 공경할 줄 알고, 성
실한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맡긴 일이므로,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한
다.”고 믿어야 합니다. 또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윗사람을
순종한다.”고 하여야 합니다. 아랫사람은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내
게 이 일을 맡겨서 내가 이 일을 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긴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일이 잘되고, 윗사람을 잘 섬기니까 그 종도 잘
됩니다. 앞길이 열립니다. 요셉이 종살이 했지만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했습
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6. 상전도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일을 이루어 나가라

본문 8-9절에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
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
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윗사람도 상전이 하늘에 계십니다. 즉 하나님이 상
전이시고, 주님이 상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도 하나님의 종의 위치
에 있는 자입니다. 종도 하나님께 순종 잘하면 상을 받고, 상전도 하나님께 순종 잘하면 상을 받습니다. 상전이 교만해서 종을 공갈하고, 때리고, 멸시하면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상전도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신 제도를 잘 순종하면 잘 됩니다. 즉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윗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순종하면 잘 됩니다. 나라도
잘 되고, 가정도 잘 되고, 교회도 잘 됩니다. 다 잘 됩니다. 그러나 진
리대로 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게 됩니다.

에베소서 5:22-33 부부에게 주신 교훈.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부부에게 주신 교훈
에베소서 5:22-33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5:22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여라. 

5:23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친히 몸의 구주이시다. 

5:24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모든 일에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복종하여라.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같이 하여라. 

5:26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5:27 교회를 자기 앞에 영광스럽게 나타내서 티나 주름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5:29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자신을 양육하고 보살피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하시듯이 한다. 

5:30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5:31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5:32 이 비밀이 크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고,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여라.


1. 아내에게 주신 교훈
남편은 아내의 머리임

본문 22-23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라고 하였는데, 머리에 대한 교훈으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였는데, 아내가 자기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에게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본문 24절에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복종하는 것은 그 명령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러 명령이 있겠지만 내게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그 명령부터 복종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머리를 복종하라는 그 명령을 복종하지 아니하고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헛된 말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복종하는 사람은 자기의 머리를 잘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결혼식 할 때에 “사랑하라, 복종하라”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이 희생해 주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을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가장 가까운 자기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한 머리를 잘 복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에 나가서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머리를 잘 받들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머리를 받들라고 했으므로 머리를 잘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이고, 잘되는 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종해야 되는가? 우러러 보면서 복종하여야 합니다. 우러러 보면서, 즉 존경하면서, 경외하면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면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복종이 아니며, 남편을 멸시하면서 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남편을 머리로 세워 놓았으므로, 머리를 경외하면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말에도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 받들라는 말은 성경에서 남편을 경외하면서 순종하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머리를 경외하면서 잘 순종해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가정에서도 복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도 복을 받습니다.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머리를 잘 경외하면서 순종하니까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또 교회에서도 머리를 경외하면서 잘 받들어 나가면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잘되게 해주십니다. 머리되는 윗사람은 아랫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잘 인도하여줄까?”하며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에 대해서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고, 비방이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성경 어디에 윗사람을 비방하라고 했습니까? 어떤 사람이든 윗사람을 비방하는 사람은 형통하지 못합니다. 어디에나 윗사람이 다 있는데, 머리되는 윗사람을 비방하고, 원망이나 하고 허물면, 윗사람이 잘 인도해 주려고 하겠습니까? 교인들도 교회에서 목사를 비방하고, 원망하고, 악평하면 목사가 그 사람을 좋은 교인으로 보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좋은 교인으로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교회가 잔잔하고, 서로 화평하고, 윗사람을 순종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허물이 있으면 덮어주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서로 허물을 드러내어 “무엇이 틀렸다”하며 나가는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시겠습니까? 비방 하려고 마음먹으면 다 비방할 거리가 되고, 또 좋게 보면 다 좋게 볼 수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길선주 목사를 보니까 길선주 목사의 눈이 천사의 눈과 같고, 예수의 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길선주 목사의 눈이 “왕눈이 똥 사발 같다”고 비방했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존경하라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경외하고, 우러러보라는 것입니다. 존경을 받을만한 행동을 못할지라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은 술 마시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남편도 있는데, 그런 남편일지라도 성경에 존경하라고 했으니까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존경하는게 아니라 성경에 존경하라고 했으니까 존경하자”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의 머리로 세워 놓았으므로 존경해야 됩니다. 아무리 십자가 노릇을 해도 성경에 존경하라고 했으니까 존경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할 성도로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가운데, 가장 가까운 남편을 복종하라는 말씀부터 순종하여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또 남편도 감동을 받아서, 회개할 날이 옵니다. 

평안북도 천태동 교회에 있는 김경숙 집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남편이 공산당입니다. 그런데 공산당회에서 그 남편에게 “너는 여편네가 예배당 가는데도 나가지 못하게 하지 못하니 무슨 공산당 자격이 있느냐?”하며 여편네를 때려서라도 교회에 못나가게 하라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자기 부인한테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김경숙 집사님은 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계속 핍박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갔다 오는데 남편이
대문에서부터 머리를 쥐어 잡고 다듬이 방망이로 때리면서, 안방까지 질질 끌고 가서 팔목만큼 굵은 다듬이 방망이로 때려서 거의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든지 말든지 하라”고 문 밖에 내버렸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김경숙 집사님이 새벽기도에 갔다 와서는 아침 조반을 잘 차려서 남편에게 “조반 잡수세요”라고 하며 상을 남편 앞에 놓았습니다. 그 남편이 ‘죽었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새벽기도까지 갔다 와서 이렇게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가? 또 남편 보고 싸우자고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좋은 마음으로, 또 좋은 얼굴과 좋은 말로 “조반 잡수세요”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참 놀라워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 예수가 진짜 살아있긴 살아 있구나, 공산당은 안 되겠다,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 예수를 안 믿다가는 큰일 나겠다”하며 공산당을 그만두고 예수를 믿었답니다. 김경숙 집사가 이렇게 남편을 잘 경외하고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매 맞아 터져 아픈 곳을 다 치료해주셨으며, 하나님이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셨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핍박하는 남편일지라도 사랑으로 존경하면서 잘 복종했을 때, 감동을 받아서 공산당이었던 남편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이기는 것입니다.

2. 남편에게 주신 교훈
아내를 사랑하라

본문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 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므로 자신을 주심같이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같이, 아내를 위해서 죽으라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신 그 사랑을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 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피 흘려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그 사랑에 항상 감격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내입니다. 또 혼자 사는 사람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됩니다. 그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리시기까지 희생해 주신 사랑에 감격해서, 항상 그 사랑 가운데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이것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것은 무슨 조건이 있기 때문에 피 흘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든, 사랑을 받지 못할만한 행동을 하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변함 없이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할만한 행동을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속 나누어 주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라

또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7에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머리인 남편이 몸 된 아내를 귀히 여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데 무슨 사랑을 하라고 하였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그 사랑을 제일 가까운 아내에게 먼저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못 되게 행하는 아내는 어떻게 할까요? 아내가 바가지나 긁고 못되게 행해도 귀히 여겨야 하며,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했으니
까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귀히 여기라고 했으니까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을 나누어 주라고 했으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계속 사랑하고, 계속 귀히 여기며, 계속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이 잘못하니까 “나도 이렇게 한다”고 하지 말고, 사랑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즉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먼저 자꾸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이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도 머리와 몸의 관계인데, 누가 머리가 되겠습니까? 시어머니가 머리가 되고 며느리는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잘 존경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시어머니께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
다. 머리를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나가는 게 복 받는 길입니다. 

어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었는데 늘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 손자가 자기 어머니한테 알려 주기를, 할머니에게 고구마를 사다가 매일 드리면 할머니가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는 고구마가 처음 나왔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고구마를 삶아 매일 드렸답니다. 시어머니가 먹어보니까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아, 이렇게 단것은 처음 먹어본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손자에게, “너도 먹어보라”고 하니까 며느리가 아들한테 “할머니 대접 하려고 사온 것인데 할머니 잡수셔야지”하며 “너는 먹으면 안 된다, 네가 먹으면 할머니는 뭘 잡수시겠냐?”고 하며 시어머니를 대접했습니다. 며느리가 아들에게 고구마를 왜 못 먹게 했습니까? 아들이 죽을까봐 못 먹게 한 것입니다. 시어머니만 죽어야지 아들이 죽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해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며느리는 한달 있으면 시어머니가 죽을 것이므로 어떻게 하든지 시어머니한테 잘해주고, 잘 받들어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내가 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하면서, 이제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 칭찬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며느리와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하며 다닙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데 내가 어떡해야만 며느리에게 이 고마움을 보답할까?”하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모든 정성을 다해서 잘 해주었습니다. 며느리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런 시어머니가 죽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불러다가 “야, 할머니 안 죽으면 좋겠다, 이런 할머니가 어디 있겠냐”고 하니까, 그제서야 아들이 그 고구마는 죽는 약이 아니고, 새로 나온 좋은 음식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드리면서, 사실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화목시키려고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온 가족이 다 화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기고, 아내는 남편을 복종하면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내가 됩니다. 또 좋은 머리가 되고, 좋은 몸이 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라

본문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물로 씻어”란 디도서 3:5에 중생의 “씻음”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씻어서 중생시키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점점 깨끗케 하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려고 하십니다. 부부간에도 상대방의 결점을 보충해 주고 흠이나 티를 서로 없애 주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의 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만들고, 남편은 아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인도하여서 거룩하게 하고 또 아내도 남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인도하여서 남편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즉 흠 없는 남편, 흠 없는 아내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부족이 있을 때에도 서로 희생하며 도와서 온전케 만들어 나가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

본문 28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 섬길 때 희생의 정신과 봉사의 정신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 부부간에 약속하기를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참을 “인(忍)”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기로 했다고 합니다. 화평이 잘 안 되던 가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속상하면 참을 “인”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고, 또 아내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참을 “인”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곤 했는데, 얼마 있다가 보니까 항아리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누가 더 많이 써서 항아리 속에 넣었을 것 같습니까? 아내가 더 많이 써 넣었을 것 같습니까? 남편이 더 많이 써 넣었을 것 같
습니까? 아무튼 서로 참고 나가다 보니까 서로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내내 싸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을 “인”자 하나 써서 항아리 속에 넣는 바람에 해결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술주정을 해도 참고 견디고, 핍박을 해도 참고 견디고, 때려도 참고 견디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바가지를 긁어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날이 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기려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결혼할 때에는 섬기려는 마음으로 결혼해야 합니다. 여자는 남편을 섬기려고 결혼하는 것입
니다. 즉 여종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 시집가느냐면 섬기려고 시집가는 것입니다. 즉 시집가는 날부터 섬기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왜 장가가느냐면 섬기려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날부터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섬기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반대입니다. 섬김은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무조건 아내를 섬기고, 아내는 남편을 무조건 섬겨야 합니다. 또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집니다. 섬기는 정신은 아주 좋습니다.

제 육체를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 같이 하라

본문 29절에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 같이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체를 잘 보호하여 좋은 육체가 되도록 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가 자기 몸이 되었으니까 아내를 사랑하여 몸을 잘 받들어 나가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 머리가 되었으니까 머리를 잘 받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본문 30-32절에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입니다. 남편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자기의 몸 되는 아내를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잘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을 잘 양육해서 좋은 교인들이 되게 하고, 또 교인들은 교역자를 잘 받들어서 좋은 교역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변변치 않아도 교인들이나 집사나 장로들이 잘 우러러 받들면 좋은 목사가 되고, 좋은 교회가 됩니다. 어떤 목사는 아주 똑똑합니다. 모든 것을 잘 하는데 가는 곳마다 대접을 못 받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그 교회 교인들이
그 목사님을 깎아 내리기 때문입니다. 깎아 내리는데 별 수 있나요? 

길선주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아버지와 같은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길선주 목사님을 눈이 크다고 “왕눈이 똥 사발 같은 게 뭘 하겠느냐?”하며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쫒아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과 같은 분을 쫒아 냈으니, 그 교회 그만하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머리를 경외하므로 잘 받들고, 순종해서 좋은 머리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자꾸 깎아내리면 결국은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3. 부부의 도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는데, 부부의 도리를 말한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또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듯 부부 관계가 잘 되어 나가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잘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처럼 아내는 남편을 우러러 공경하며 복종하여야 합니다(벧전 3:6). 이것이 머리를 받드는 법이고, 머리를 잘 받들면 몸이 잘됩니다.

에베소서 5:1-21 사랑과, 빛 가운데, 지혜로 행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랑과, 빛 가운데, 지혜로 행하라
에베소서 5:1-21

1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5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 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3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4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내어 주신 것처럼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여라.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일과 탐욕의 말은 너희 중에서 입 밖에도 내지 마라. 이것이 성도에게 합당한 일이다. 

5:4 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은 마땅하지 않으니, 오히려 감사의 말을 하여라. 

5:5 너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라.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일을 행하는 자나 탐심을 품은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얻을 수 없다.

5:6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여라.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 

5: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에게 동참하는 자들이 되지 마라.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이다. 빛의 자녀들 답게 행하여라. 

5:9 빛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5:10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여라.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책망하여라. 

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일들은 말하기 조차 부끄럽다.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들이 빛에 의해 드러난다. 

5:14 무엇이든지 드러나게 하는 것은 빛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주께서 너를 비추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 

5:15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행할지 주의 깊게 살펴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하지말고 지혜로운 자들과 같이하여라. 

5:16 세월을 아껴라.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5:17 그러므로 지각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여라. 

5:18 또 너희는 술에 취하지 마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도리어 너희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라. 

5:19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며, 

5:20 모든 일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5: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서로 복종하여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본받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하려 자신을 버리시고, 몸을 버려서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셔서 못에 박히시고 피를 흘리시고, 그 생명을 그 몸을 다 바침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너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노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려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피 흘려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을 버리사 자신을 제물로,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사랑, 항상 그 사랑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예수님께서 해주셨는데, 우리도 그 사랑에 감격해서 예수님의 사랑가운데서 살고, 또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자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나를 위해서 몸을 버려서 피 흘리셔서 당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그러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항상 사랑 가운데 거하여야만 되겠습니다. 

그 세계가 참으로 생명이 사는 세계입니다. 사랑가운데 사는 세계는 물고기가 물 가운데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이 살 곳이고, 생명의 세계이고, 거기서 사는 사람이 진짜로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가운데 들어가지 못하면 아직도 생명의 세계에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높은가, 얼마나 깊은가, 얼마나 넓은가, 얼마나 긴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높고 깊은 사랑인가, 얼마나 넓은 사랑인가, 얼마나 긴 사랑입니까? 자기 몸을 희생해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한 사랑이며, 말씀을 다 이룬 사랑입니다. 그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고, 사랑과 복종의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아까워서 안 주실 것이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이, 또한 몸 버려 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해주신 예수님이 다른 것 무엇이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은사로 주셨습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무얼 안 주시겠습니까? 

소를 돈 주고 사온 사람이 소에게 필요한 것을 아끼겠습니까? 소가 병이 들면 주인이 걱정합니다. 소가 먹을 것 없을 때에도 주인이 걱정합니다. 소가 약해지면 콩을 사다가 먹입니다. 또 겨울에 추우면 소잔 등에 덮을 것을 덮어줍니다. 어떤 집은 포대기를 갖다가 덮어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도 소를 사왔으면 소에 필요한 것을 아끼지 않고 줍니다. 소가 자려고 누우려고 하면 바닥에 물이 고여 젖어 있을까봐 바닥에다가 볏짚으로 만든 요를 깔아줍니다. 돈 주고 사온 소도 주인이 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주고, 매일 요를 깔아주고, 모깃불도 켜주고 합니다. 주인이 다 알아서 해줍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얼 아끼시겠습니까? 아끼지 않고 가장 귀한 것들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단 것이 필요하면 단 것을 주십니다. 쓴 것이 필요하면 쓴 것을 주십니다. 짠 것이 필요하면 짠 것을 주십니다. 매운 것이 필요하면 매운 것을 주십니다. 신 것이 필요하면 신 것을 주십니다. 채찍이 필요하면 채찍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전부 합동해서 유익이 되는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전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유익되지 않는 것은 주시지 않습니다. 전부 유익되는 것으로 주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고, 가장 필요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님은 몸 버려 피흘려주셨는데,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항상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거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면서 그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은 하늘만치 높은 사랑입니다. 우주만치 깊은 사랑, 넓이는 세계만치 넓은 사랑, 길이는 영원히 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빼앗는 것

우리는 사랑의 세계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사랑의 세계는 주님의 세계인데, 이것을 빼앗으려고 마귀는 와서 역사를 자꾸만 일으켜 놓습니다. 

본문 3-4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려면 어두움에서 나와야 행할 수 있습니다.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등을 버리는 것이 어두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붙잡혀 죄악을 끊지 못하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악 된 요소들을 다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빼앗으려고 음란한 마음을 넣어줍니다. 더러운 마음을 넣어줍니다. 이 더러운 마음은 성적인 더러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탐욕을 넣어줍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입니다. 욕심입니다. 우상을 섬기라고 우상섬기는 마음을 넣어줍니다. 이런 마귀에게 넘어가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마귀가 유혹을 하는데, 음행을 하라는 유혹, 성적 더러운 마음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탐욕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누추한 것과 더러운 것, 어리석은 말을 하게 만듭니다. 희롱의 말을 하게 만듭니다. 희롱의 말들, 농담하지 마십시오. 희롱의 말을 하다보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희롱의 말을 계속하면 인격이 그와 같이 됩니다. 실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것들이 합당치 않다 했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물질을 더 따라가므로 우상입니다. 또 음행하는 죄에 빠지지 말고, 더러운 가운데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즉 더러운 말, 악. 악독을 품은 생각 등을 버리고 어두움에서 쑥 빠져나와야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평생 예수를 믿어도, 평생 어두움에 잡혀있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

본문 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들입니까? 무슨 아들입니까? 불순종의 아들입니다. 이러한 죄를 지으니까 불순종의 아들 아니겠습니까? 아들은 아들인데, 우상숭배하고 음행하고,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다니고, 탐심을 가지고 다니고, 희롱의 말 어리석은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자들 입니다. 그런 자들은 아들은 아들인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은 안 갑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죄 짓고 나가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지옥은 안가지만, 아버지가 노하셔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만 주실 것을 주시지, 아버지를 노하게 하면 무얼 주시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무얼 받으려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려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것만 하고 돌아다니다가 아버지께 가서 뭘 좀 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주시겠습니까? “야, 보기 싫다. 가라”고 하실 겁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를 노하게 해 드리면 주실 것도 안 주십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얼 좀 받을 생각이 있으면 잘 해드려야 합니다. 아버지께 잘 해드리면 흐뭇하셔서 다 주십니다. 남편에게 잘 해드리면 남편이 기뻐서 잘 해줍니다. 안 준다고 바가지를 빡빡 긁으면 줄 것도 안 줍니다. 점점 더 안 주려고 할 것입니다. 

미련한 여자들은 남편에게 무얼 타보려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이것도 안 주고, 저것도 안주 고” 뭘 더 안 준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잘 해주면 남편은 아내에게 “무얼 더 해줄까?”하면서 줍니다. 아내가 잘 해줘서 남편이 잘 해주겠나? 남편이 잘 해줘야 아내가 잘 해주겠나? 무엇이 먼저인 것 같습니까?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게 잘 해주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겠습니다. 서로 먼저 잘 해주어야겠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바가지를 빡빡 긁으라고 했습니까?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면 대접이 옵니다. 안 준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대접해보십시오. 그럼 대접이 옵니다. 받고자 하는 생각이 있으면 누구든지 대접을 먼저 하십시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죄 값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냥 둬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징계가 옵니다. 죄를 짓도록 가만히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가 진노하시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야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복음의 문이 막히고, 자기와 하나님과의 사이가 막히고, 하나님께서 벌을 주십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거두어가십니다. 죄를 지으면 마귀가 속에 와서 역사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즉살(卽殺)’입니다. 즉살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다 죄만 지었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던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다 도적질하던 자들이고, 거짓말하던 자들이고, 분 내던 자들이고, 또 더러운 말하던 자들이고, 음행하던 자들이고, 더러운 자들이고, 탐욕을 내던 자들이고, 누추한
말을 하던 자들이고, 어리석은 말을 하던 자들이고, 희롱의 말이나 하던 자들이고, 우상이나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진노만 쌓고 다니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라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 진노가 내려오기 전에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우물우물하다가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빨리 모든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앞에 합당치 않던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우상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버리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을 버리고, 이제는 깨끗한 데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기뻐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하나님이 망하게 하려하시다가도, 즉시로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십니다. 용서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네가 회개하니 참 반갑다. 이제는 다시 그런 죄를 짓지 말거라”하고 용서해주십니다. “내가 너로 인해 영광을 받게 되었으니, 넌 이제 나에게 합한 사람이 되거라.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다. 회개했으니 네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말을 듣는 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들은 아들인데,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나 맞고 혼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믿었으면 하늘나라에 가기는 갑니다. 가지만,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고 나온 구원을 받아 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의의 옷을 입고 나가고, 세마포(細麻布) 옷을 잘 입고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진노를 쌓는 아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2. 빛 가운데 행하라

빛의 열매는 착함, 의로움, 진실함에 있음

본문 7-9절에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는데, 빛 가운데서 행하면 빛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빛 가운데서 믿음으로 살면 착한 마음이 생기고, 착한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의를 행할 마음이 생기고, 언제나 의로운 길에 섭니다.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진실합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외식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말 한마디가 진실해야 됩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다. 마귀는 본래부터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언제나 진실하고, 의롭고, 참되고,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이 빛 가운데에서 사는 성도입니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행하지 말고, 의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하면 살 길이 열려 있다고 해도 거짓말하고 사는 것은 실패입니다. 진실하게 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다 빼앗긴다고 해도 진실하면 그것이 승리이고, 거짓말해서 천하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그것은 완전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실과 의의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죄”에서 떠나고 “의”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즉 어두움을 떠나고 영적 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거짓에서 떠나고 진실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속에 있는 어두움의 요소를 모두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죄, 즉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 또 더러운 말, 어리석은 말, 누추함, 희롱의 말 등을 완전히 뿌리까지 뽑아 없애 치워야 거룩해집니다. 그러면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고, 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고, 선을 이루어 나갈 수 있고, 좋은 성도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어두움에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책망을 받는 사람이 빛 가운데 행함

본문 11-13절에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책망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빛 가운데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책망을 받아야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책망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을 받으면서 읽어야 됩니다. 죄를 발견하고, 회개할 바를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을 받지 못하면 그 심령이 어두워진 증거입니다. 바울은 항상 자기가 죄인 가운데 괴수인줄 알고, 언제나 책망을 받았습니다. 

1) 성경 읽을 때 책망 받아야 함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매일 성경을 읽어야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책망을 받아야 되고, 책망을 받고는 바로 서야 됩니다. 또 예배시간에도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등이 나왔는데 우리가 이것도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이 모든 죄를 주여 회개합니다, 다시 이런 죄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하며 책망을 받고 회개해야 됩니다.

2) 양심에 책망을 받아야 함
 
그 다음에는 자기 양심에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양심을 언제나 날카롭게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여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난다고 하였는데,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고 옳은 것에 표준을 두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옳게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하겠는가?”에 표준을 두어야 합니다. 자기가 손해를 보아도 어떻게 하든지 옳게만 하고, 낮아져도 옳게만 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낮아지지 않으려고 양심을 안 쓰고 어떻게 해야 이익이 날까? 어떻게 해야 내게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인격적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며 여기에 표준을 두면 벌써 죄 가운데 들어간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바로 하는 것일까? 하며 바로 하다가 손해를 보았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자이고, 바로 하다가 가난해졌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신령한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준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의에 두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됩니다. 육신의 평안함만 생각하는 것은 육신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바로 섬길까? 어떻게 해야 바른 진리의 말씀을 받을까? 어떻게 해야 영적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 있을까? 여기에 항상 표준을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 표준을 둔 사람은 예배시간에 늦지 않고 또 빠지지 않습니다. 믿는 일에 일심정력을 다 합니다. 다른 것은 실패하여도 믿음은 실패하지 아니하고, 성공이 되어 나갑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3) 윗사람에게 책망을 받을 줄 알아야 함
 
그 다음에는 윗사람에게 책망을 받을 줄 알아야 됩니다. 교회는 교역자에게 책망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집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책망을 받을 줄 알아야 되고,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의 책망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단 성경에 위반된 것은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모든 책망은 우리가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책망을 바로 받으면 빛 가운데로 쑥 들어갑니다. 어두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책망을 바로 받으면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쑥 들어가는데, 이것이 큰 유익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을 잘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안 받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책망을 안 받는 사람은 항상 어두움에 다니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망하고 맙니다. 책망을 받고, 회개하고 바로 서면, 살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책망을 받고, 성경의 책망을 받고, 성령의 책망을 받고, 윗사람의 책망을 잘 받아야겠습니다.

3. 깨어나라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자는 자는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하였는데, 잠자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있는 것입니다. 즉 신앙이 죽었습니다. 신앙이 잠자는 사람은 생명의 역사가 중단이 된 것입니다. 깨어있는 성도가 있고, 잠자는 성도가 있습니다.
잠자는 성도는 어떤 성도인가? 또 깨어있는 성도는 어떤 성도인가? 깨어있는 성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잠자는 성도는 육신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육신에 속하여 육신중심으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전부 잠자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짝하는 육신중심이고, 자기중심이므로 욕심을 따라 행하고, 믿는 일에 힘쓰지 아니합니다. 이것이 다 잠자는 신자들입니다.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하였는데, 깨어서 일어나라는 말은 육신중심의 세계에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안일주의, 방탕, 향락주의, 세상주의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신앙이 잠자는 사람들로, 거기에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세상주의요, 육신주의요, 안일주의요, 물질주의요, 욕심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육신중심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지금 육신중심에서 나와서 영적 세계로 들어가라, 즉 빛 가운데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리에 있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리로 들어가, 영적 생명으로 사는 자리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깨어서 일어나면 죽은 게 아니고 산 것입니다. 그러나 잠자는 자리에 있으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죽었으므로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신앙이 잠이 들었나? 신앙이 깨어있나? 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잠자는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은 얼마나 신앙이 좋았습니까? 그래도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서 잠들어,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9:1-8). 요나같은 사람도 신앙이 잠들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쳤고, 또 박 넝쿨 아래에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하였습니다(욘 4:8).
또 다윗이 신앙에 잠들어서 충신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와 그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1:1-27). 그러므로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잠들 수가 있는데, 신앙에 잠들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에 잠든 다음에는 영적 세계에 대해서 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은 육이고, 세상이고, 물질이고, 자기이고, 자기중심이고, 자기 명예영광입니다. 신앙에 잠이 들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자는 깨어 일어나고, 다시 잠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늘 깨어서 믿음을 쓰며, 성령의 세계에서 살며, 항상 하나님께 붙들리어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4. 지혜로 행하라
세월을 아끼라

본문 15-16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월을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껴서 허비하지 말고, 믿는 일에 잘 이용해야 되겠습니다. 즉 효과적으로 이용해야겠습니다. 세월을 허비하면 완전 실패입니다. 세월을 붙잡아서 믿는 일에 사용하면 영원한 성공입니다. 지나간 것은 후회해도 쓸데없습니다. 이제 금년도 거의 다 가고 12월 한 달 쯤 남았는데, 남은 12월을 믿는 일에 잘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시간을 기도 하는 데에 사용하고, 성경 보는 데에 사용하고, 양심을 쓰는 데에 사용하고, 옳게 하는데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사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고, 전도하는 데에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세월을,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선교하는 데에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에 사용하고, 구원운동에 사용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세월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100년을 살아도 아무 쓸데없습니다. 다 썩어진 생활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33년을 살았어도 그 세월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완성시켜 놓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성공입니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어도 세월을 잘 이용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세월을 아껴서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할까? 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요새 사람들 만나면 인사가 “건강하십니까? 또는 장수하십시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남은 세월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고 하나님께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를 잘 이용하고, 한 달을 살면 한 달을 잘 이용하여 세월을 믿는 일에 잘 사용하여야 합니다. 즉 남은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일 년을 살면 일년을 잘 이용하고, 삼 년을 살면 삼 년을 잘 이용하고, 십 년을 살면 십 년을 잘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입니다. 믿는 일 하려는 생각은 안하고 그저 세월만 보내며 “아, 벌써 한 주일 또 갔구나, 또 벌써 한달 갔구나, 또 벌써 일년 갔구나”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월을 붙잡아서 믿는 일에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지나간 일에 실패한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이 시간부터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살같이 빠른 세월입니다. 훌떡훌떡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서 주의 뜻을 잘 이루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하였는데, 지혜 있는 자가 되라는 것은 마귀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지혜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로 즉 영적 지혜로 모든 것을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10절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안
되어도 좋습니다”하며 나가야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하려면 안 됩니다. 내가 계획하던 모든 것을 다 내어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하며 나가야 됩니다. 아버지의 뜻이면 소돔 고모라나 십자가나 아골 골짜기나 어디든지 가고자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주의 뜻을 찾는 정신입니다. 

욕심을 품고서 자기 계획대로 되게 해달라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욕심쟁이한테 이용당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리 해도 하나님이 안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나가십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고, 또 기도하는 가운데서 찾고, 신앙양심에서 찾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문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다 끊어야 합니다. 한두 잔은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한잔에 안 취하면 백 잔에도 안 취해야 됩니다. 백 잔에 취한다면 한잔에서부터 취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술은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6:13에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말씀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피차 복종하라
 
본문 19-21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성도 간에 피차 복종하며 남을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20:28절에, 예수님은 남을 섬기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에베소서 4:13-32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법.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법
에베소서 4:13-32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으므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13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4:14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를 위한 술책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4:15 오히려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 모든 일에 그분에게까지 자라나야 한다. 그분은머리시니, 곧그리스도이시다. 

4:16 온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 함께 연결되고 결합된다. 각 지체가 자기의 분량대로 역사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자신을 세워 간다. 

4:17 그러므로 내가 주님 안에서 이것을 말하며 당부한다. 너희는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함 가운데 행하는 것처럼 더 이상 그렇게 행하지 마라. 

4:18 그들의 지각은 어두워져 있으며, 그들속에 있는 무지와 완고함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4:19 그들은 감각 없는 자들이 되어 자신들을 방탕에 내어 줌으로 정욕 가운데서 온갖 더러운 일을 행한다. 

4:20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배우지 않았다. 

4:21 너희는 참으로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같이 그분에 대해 듣고 또한 그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니, 

4:22 너희가 거짓된 욕망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라 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4:23 너희 마음에 영으로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 

4:25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각자 자기의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여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4:26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마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라. 

4:28 도둑질하는 자는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고, 도리어 빈곤한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자신의 손으로 선한 일을 하여 수고하도록 하여라. 

4:29 더러운 말은 어떤 것도 너희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필요한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여라. 

4:30 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지 마라. 너희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으니 

4:31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고함치는 것과 욕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려라. 

4:32 서로 친절하고 인자하게 대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여라.


1. 사람의 궤술에 빠져 요동하지 말라

어린아이와 같이 거짓 유혹에 요동하지 말라

본문 13-14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요동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14절에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라고 하였는데, 요동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거기에 요동하고, 또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거기에 요동하고, 거짓말에 요동하고, 또 추측으로 한 말에 요동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믿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남이 거짓말로, 간사하게 말을 전할 때에 요동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이 너를 미워한다, 너를 지목해서 설교했다, 너를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켰다, 너 그런 죄 안 지었는데 왜 목사가 자꾸 너 왜 그런 죄 지었다고 하느냐”는 말로 교인들은 교인들끼리 요동시킵니다. 은혜 못 받게 하려고 요동시킵니다. ‘너보고 지적 설교했다’고 하는데, 한 사람 보고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단에서 성경 원리 원칙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지, 왜 한 사람 보고 지적하여 설교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런 간사한 유혹에 요동되지 말고, 돌아가는 말에 요동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동되면 안 됩니다. ‘그 목사가 무엇이 틀렸다, 무엇이 틀렸다’ 해놓으면 알아보지도 않고 목사가 틀렸다고 같이 요동된다는 말입니다. 요동되면 안 됩니다. 사실인가 아닌가 알아봐야 됩니다. 사실이 아니면 마귀에게 속은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이라 하면 목사가 잘못한 것을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고치면 되는 것이고, 사실이 아닌 돌아가는 말에 요동이 되어 목사 틀렸다고 비방하면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그건 자기도 손해고, 하나님의 일도 손해입니다. 

우리는 무엇 하는 것이 원 목적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원래 목적입니다. 여러 직분이 합하여 서로 봉사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이단의 유혹에 요동되지 말라

여기의 에베소 교회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본문 14절 읽어보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는 이것입니다. 너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아야 되겠는데 요동하는 걸 보니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뭘 보니까 어린아이입니까?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을 보니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이단에 요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가 박태선파가 나와서 한마디 하니까 요동되고, 구원파가 한 마디 하니까 거기에 또 요동되고, 또 10월29일 시한부 종말론자가 나오니까 거기에 또 요동됩니다. 또한 목사들도 요동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락방 운동이 나오니까 요동되고, 하여간 뭘 하나 나오면 요동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박태선 운동 처음 일어날 때에 어떤 교회는 절반 이상이 거기에 갔습니까. 아예 박태선 파로 가기도 했고, 목사들도 수십 명 박태선 주석단에 올라가서 박수치며 열광했는데, 요새는 또 빈야드 운동이 나오자 또 요동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목사들이 빈야드 운동에 많이 가담했다고 하는데, 빈야드 운동은 마귀역사입니다. 마귀역사도 분별 못하고 거기에 많이 요동됐습니다. 또 사흘 동안에 사람을 뒤집어 놓는다는 뜨레디아스(Tres Dias) 운동이 있는데, 그것은 스페인 말인데, 사흘 동안에 해결 보는 것입니다. 사흘만 거기 갔다 오면 뒤집어지고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흘이면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는데 그것 할 만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더러 이 목사님도 거기 가서 배우라는데, 이게 뭐 철이 없기에 한정이 없지, 아니 어떻게 영적운동이 사흘 만에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사흘에 무슨 영이 자라나겠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어떻게 일시적으로 그 의식을 돌려서 어떻게 좀 새로운 길을 걷게 할지는 몰라도, 그건 영적운동은 아닙니다. 영적운동이 무슨 사흘에 되겠습니까? 이것은 레마 선교회의 이명범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되어서, 미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오고, 이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요되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도 거기 갔다 온 사람 혹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려면 가라고 예수님이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가려면 가는데, 몰래 가지 말고 아예 솔직하게 “나는 뜨레디아스 갑니다”라고 선언하고 가십시오.

요동하는 자와 같이 의심하지 말라

믿음에 굳게 서서 별소리 다 들려도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또 충성되이 받들어 나가고 진리를 세워나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얼마 안가면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며 흔들리니까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의심하는 자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아무것도 못 얻는다’고 했습니다. 동요가 되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안 됩니다. 게다가 남에게 손해만 주는 것입니다. 

왜 손해를 줍니까?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왜 손해를 줍니까? 자기가 싫으면 자기 혼자 그만두면 될 것을 남에게 왜 손해를 주느냐는 말입니다. 구원운동에 손해주면 저주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자 하나를 범죄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했고, 노아의 작은 아들 함이 아버지가 술 먹고 벌거벗고 누운 것 폭로해서 저주 받지 않았습니까? 왜 저주 받을 줄 모르고 남을 요동시켜서 구원 운동에 손해 줍니까? 구원 운동에 손해 주는 자는 반
드시 저주가 옵니다. 성경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틀림없지 않습니까? 풍조에 요동되지 않는 자,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요동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자라날 수 있습니다.

2.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습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점점 자라나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 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라나야 됩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야 됩니다. 자라나지 아니하고 그냥 어린아이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나서 한 살짜리가 두 살 되고 세 살, 네 살 이렇게 나이 먹음에 따라서 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그 다음에 일어서다가 또 발자국을 떼다가, 그 다음에 천천히 걸어가다가 그 다음에 뛰어가고, 힘도 점점 세져야 되고, 자라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우리 영의 사람들도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라나는 도를 깨달으라

교인들에게 자라나는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자라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예수만 믿으면 된다”며 예수 믿고 천당 가는데 까지만 가르치고, 그 이상 자라나는 것을 안 가르칩니다.
자라나는 도리를 배운 사람도 자라나야 되는데, 자라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로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네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될 터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그랬습니다. 믿는 때가 오래고, 진리를 배운 때가 오래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장성한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단단한 식물로 먹지 못하고 너희는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성도에게 하는 것 같이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육에 속한 자요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시기와 분쟁하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그 다음에 또 어떻게 해야 자라납니까? 본문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참된 것을 해야 자라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만 자라난다고 했습니다. ‘사랑 안’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 믿음 안을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에서 참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말씀대로 하면 자라납니다. 입술로만 한다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을 해야만 자라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역사를 고쳐야만 자라납니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야 자나랍니다.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누가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는 자라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것을 행하여 자라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하고 선한 것을 하여 많이 자라라나
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내다가 막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뭘 해야 자라납니까? 사랑 안에서 믿음 안에서 영적 신앙으로 참된 것을 해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또, 참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참된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자라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못 자라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리이까?”하고 물으니까 모든 사람 앞에서 세례요한이 뭐라 그랬습니까?
누가복음 3장 10-14절에,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안에서 참된 것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는 것이고,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않는 것이며,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지 못하던 사람은 족한 줄로 아는 것이 참된 것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것, 즉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했는데, 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야만 자라납니다. 다른 것은 잘하지만 그 십일조에서 막히면, 그 막힌 것 때문에 못 자라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예배에 안 오고 놀러 가는데, 주일 잘 못 지키면 못 자라납니다. 아침에 예배 한 시간 보고는 놀러 가는 것과 같은 신앙으로는 못 자라납니다. 남을 비방하고 원망하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 해야 참된 것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만날 비방하고 원망만 하
다가는 마귀 종노릇이나 하고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망하고 그만 두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비방하고 원망하는 것입니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 자라나는 것입니다. 연보해서 하나님 일하라 하실때, 연보해야 합니다. 연보 안하는 것은 참된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을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 하실 때에는 물질을 아낌없이 바치고 힘써 연보해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해나가는 것이 참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라납니다. 교인들이 예배당 짓기 위해 연보하고 힘쓰면 자라납니다. 우리가 기도원 짓기 위해 연보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많이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라납니다. 안하면 안 자라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라

본문 16절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것이 원 목적입니다. 여러 직분들의 목적도 그리스도의 몸 세워나가려고 있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세워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조금이라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개척교회가 합해져서 교단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좀 더 크게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세워나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직분은 명예 영광 직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직분이 아닙니다. 봉사의 직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일에 다 희생하고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허망한 우상을 버리라

본문 17-18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자라납니다. 옛사람은 ‘그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마음의 허망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상입니다.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까? 우상을 버려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상이 있으면 못 자라납니다. 우상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우상을 섬기는데 어떻게 하나님과 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지배받는 것,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것,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히 여기고 따라가고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 사랑하면 사람이 우상입니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돈을 의지하고 살려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돈을 따라가면 돈이 우상입니다. 또 세상 명예 영광 따라가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 지배보다 더 지배받는 것이 우상입니다. 말씀보다 더 지배받고 따라가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시무하는 교회가 우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경보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목숨이 우상 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목
숨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습니다. 죽인다고 하면 뭐든지 다 합니다. 자기 자신이 우상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척교회 하는 것이 우상 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개척교회 하는 걸 더 크게 여깁니다. 그런 게 우상입니다. 

말씀대로 하려면 안 가야 하는 곳에 자기 욕심대로 가서 그것이 우상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 생각, 제 뜻, 제 주장이 우상 된 사람도 있습니다. 옛날을 보면 우상이 가득해 있었는데, 요새도 보면 우상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 속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우상 때문에 일이 안 됩니다. 우상을 버려야 믿음이 자라납니다.

온유하라

본문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는데, 마음이 굳어지면 생명에서 떠납니다. “굳어짐”이라고 있는데, 간경화 같이 굳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낫지를 못합니다. 온유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완고하고 고집 부리는 굳어진 자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못합니다. 언제나 자기가 깨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온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온유하고 겸손할 때에 생명이 그 속에 있습니다. 감동이 됩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방탕하지 말라

본문 19절에,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방탕하는 생활을 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오늘날은 향락주의의 시대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방탕하는 것을 더 사랑하며, 이 시대가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되었습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교역자 수양회를 한다고 임마누엘 기도원을 왔는데, 올 때에 장기판 40개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한 주간 모여서 장기만 두다가 오려는 모양입니다. 교회에다가는 수양회 간다고 돈 받아다가 와서는 노는 것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교역자 수양회 한다고 개를 몇 마리 아예 잡아 간다고 합니다. 개고기를 나누어 먹고 오나봅니다. 목매어 죽인 것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보통 개를 목매어 죽이지 않습니까? 어떤 곳에서는 교역자 수양회 한다고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하고, 설악산 호텔에 묵었다가 오기도 하는데, 그렇게 가면 놀다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방탕입니다. 호텔에 가서 무슨 교역자수양회가 되겠습니까? 교인들에게는 기도하러 간다고 해놓고는 모여서 기도 안하고 놀고 방탕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연보한 것을 그렇게 쓰면 속이 편안한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자유방종, 방탕하면 못 자라납니다. 못 자라나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모시라

그리고 욕심이 있으면 못 자라납니다. 욕심은 마귀에게 속한 것인데, 마귀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 둘째는 거짓, 셋째는 욕심입니다. 마귀는 교만, 거짓, 욕심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하면 벌써 마귀에게 붙잡힌 자이고, 거짓말하고 거짓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마귀의 종이고, 욕심을 품고 나가면 마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자라나지 못합니다. 욕심을 빼버려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욕심 차리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예수 믿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치라는 말은, 욕심 채우려고 욕심대로 다니는 것을 먼저 고치라는 말입니다. 

욕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욕심을 다 빼버려야 빈 마음이 됩니다. 빈마음이 되어야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계십니다. 욕심과 예수님하고 같이 계실 수가 없습니다. 욕심은 마귀의 것인데, 마귀의 것과 예수님과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귀에게 속한 욕심을 빼버려야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같이 계십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모시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욕심하나 있고, 예수님 모시려는 욕심이 또 있는 것입니다. 욕심을 마음에 두고는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오시옵소서”하면 예수님이 들어오십니까? 욕심을 그대로 두고 예수님을 자꾸 오시라고 하면 오시겠습니까? 예수님 대신에 마귀가 쏙 들어옵니다. 마귀 하나가 더 옵니다. 자꾸 오라하면 마귀가 더 들어와서 결국 일곱 마귀가 됩니다. 

욕심 안 버리고 예수님을 오시라하면 예수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욕심가지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는 안 들어주십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도 안 주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나 구하는 것은 좋은데, 욕심으로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안 주십니다.
예배당도 욕심으로 지으려 말고 하나님께서 짓게 해주시는 대로 지어야 합니다. 교회일도 욕심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저 길 열어 주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욕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욕심으로 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겠습니까? 진리대로 원리원칙대로,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하게, 의롭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욕심으로 하는 것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성령의 감동이 오게 되고, 예수님이 임하시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고, 자라나게 됩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본문 20-22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것, 썩어져가는 것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을 다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고 했습니다. 음행이 옛사람의 썩어져가는 것입니다. 온갖 더러운 행동, 말이 썩어져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리지 않으면 못 자라납니다. 탐욕도 옛사람인데 이것을 버리지 않으면 못 자라납니다. 썩어져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생활을 좇는 생활, 구습을 좇는 생활을 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사는 생활은 일시적으로는 좋은 것 같아도 조금 있으면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망합니다.

로마서 13:13에는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하는 것,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이 옛사람입니다. 이것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방탕하는 마음이나 술 취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으니까 술 마시면 안 됩니다. 또 음란과 호색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음란하지 말고 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호색은 이성을 탐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후서 12:20에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중상 모략하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 등 이런 죄가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다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옛사람으로, 이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또 어지러움과 음란과 호색함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썩어져 가는 옛사람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로마서 13:12에는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새사람을 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는데,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성도가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의에 서야 합니다. 또 성도 간에도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진실하여야 합니다. 한번 말한 것은 변치 않아야 합니다. 또 거룩한 곳으로 날마다 나가야 합니다.
거룩은 죄를 날마다 떠나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 떠나고, 진실해지고, 의로와지는 것이 새 사람입니다.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로마서 13:12-14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란 죄악의 일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으려면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 갑옷이라고 하였는데, 갑옷은 싸울 때에 입고 나가는 옷입니다. 이것은 싸우는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려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려고 싸우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옛 사람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 싸우고,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언제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 방탕, 술 취함, 쟁투, 시기 등을 싸워서 내버려야 합니다. 그
리고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신(迎新)입니다. 즉 새로운 것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면 순종했을 것이다, 예수님이면 절대 복종했을 것이다”하며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야 합니다. 마귀를 닮아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예수님과 같은 말을 하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행하신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있어서 의를 닮아가고, 진실을 닮아가고, 거룩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전보다 예수님을 좀더 닮아가야 합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닮아간 것보다 앞으로 예수님을 더 많이 닮아가야 합니다. 결국, ‘얼마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을 많이 닮아갔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 썩어져가는 옛 사람을 얼마나 벗어 버렸나?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옛 사람을 벗어 버리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또 예수님을 닮아가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닮아가려고 결심해야 합니다. 갑옷을 입으라고 했는데, 싸우는 군대의 정신을 가지고 나가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서 마귀를 이기고, 옛 사람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이겨야 합니다. 아는 것이 진짜가 아니고 벗어 버리는 것이 진짜입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종살이 하시다가,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세월이 다 가기 전에 옛 사람을 다 내어 버려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그냥 두면 썩어지므로, 썩어져 가는 것을 다 베어 내버려야 합니다. 한 쪽에 썩어져 가는 것을 그냥 두면 다 썩어지고 맙니다. 그것을 잘라 내버려야 합니다. 암 걸린 사람도 그 부분을 잘라 내버리지 않습니까? 옛 사람은 썩어져 가는 것이므로 잘라 내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의, 진리, 거룩, 빛의 갑옷을 입어 나가야 합니다. 싸우면서 입어
나가야 합니다. 의를 입어 나가려고 싸우면서 의를 입어 나가고, 진실을 입어 나가려고 싸우면서 진실을 입어 나가고, 거룩을 입어 나가려고 싸우면서 거룩을 입어 나가야 합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싸우면서 입어 나가야 합니다. 즉 싸우면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희생 하는 것, 양보하는 것, 낮아지는 것, 봉사하는 것 등을 배워 나가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않으면 여러 해 신앙 생활하여도 진보가 없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신앙이어야 진보가 있습니다. 즉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아, 저 사람이 예수인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잡혀 가게 되었으므로 신하가 왕에게 자기의 옷과 바꿔 입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신하의 옷을 입고, 신하는 왕의 옷을 입고 나갔다가 왕의 옷을 입은 신하가 적에게 잡혀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인줄 알고 나갑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생겼는가 보다, 예수 믿는 것이 좋긴 좋다, 나도 예수 믿어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가면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다 입었습니까? 

오늘부터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완전히 다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어 나가야 합니다. 의를 이루지 못할 때에 의를 이루고, 진실을 이루지 못할 때에 진실을 이루고, 거룩을 이루지 못할 때에 거룩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참으로 송구영신한 사람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예수님의 옷을 입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

본문 23절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했는데,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영적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이고, 중생한 영이 마음을 이용하여 새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발견하고, 중생한 영이 일어나 새 힘을 얻고,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마음과 몸으로 순종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면 그 속에서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세계가 새로워집니다. 자기 심령이 새로워지니까 다 귀하고 아름답고 감사하게 됩니다. 심령이 새로워져서 새로운 심령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살지 말고, 옛사람으로 살지 말고, 영적 세계에서 영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새롭게 되어야만 자라납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자라납니다. 새사람은, 의의 사람, 진리의 사람, 거룩의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모든 것을 의롭게 해야 합니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주어도 안 바꿔야 하고, 의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3:15절에, “우리가 이와 같이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도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70인이 사방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하면서 아주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요새 중국 선교보고를 들으면 이 ‘70인 보고’와 비슷합니다. 가서 몇 주간 가르치고 오면 큰 역사가 나타났다고 보고합니다. 다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하루 9시간 10시간씩 가르치는데,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는지 모른답니다. 중국선교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이익 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느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에 1억을 내고 예배당을 사려고 하는데, 1억 연보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게 차려놓고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모스크바교회는 한 달에 얼마씩 계속 돈이 들어갑니다. 통역비, 목사 생활비, 건물비, 여러가지 비용으로 한국 돈 한 달에 백오십 만원씩 들어갑니다. 그것도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마타에 교회를 지으려고 하는데, 십만불을 연보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십만 불이면 요즘 한국 돈으로 팔천만 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지 우리의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돈을 이렇게 쓰면 참으로 가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 기도원 짓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새사람입니다. 

진리는 진실인데, 진실한 사람이어야만 자라납니다. 거룩은 구별된 것인데, 구별된 생활을 해야만 자라납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에는 지식에까지 자라나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말씀을 많이 배워서 지식에까지 자라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3. 덕을 세우라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라

본문 25절에,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했는데,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말 한번 하면 이익이 많이 온다고 해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진실하게 하면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거짓말 한마디 하면 한 1억을 받는다고 합시다. 거짓말 안하고 진실하면 한 10만원 받을 수 있다고 합시다. 한 마디만 하면 1억인데, 거짓말 한마디 하고 1억 버는 게 괜찮습니까? 괜찮긴 괜찮은데 마귀가 괜찮은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해준 것입니다. 1억하고 하나님 하고 바꾼 것입니다. 진실하게 했으면 괜찮았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일을 하면 하나님이 1억만 주시겠습니까? 필요하다면 몇 백억도 더 주실 텐데, 거짓말해서 1억 받아봤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닙니다. 마귀만 좋아합니다.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 어기면서 아무리 유익이 많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어기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진실, 말의 진실, 행위의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의 편입니다. 성경 지키는 자의 편입니다. 손해를 봐도 성경 지키십시오.

분내지 말고, 분을 품지 말라

본문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분을 안 내야 합니다. 분을 안 내야 하지만, 사람이 실수해서 분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분을 냈다 해도 죄를 짓는 데 까지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김에 무얼 하면 안 됩니다. 분이 나서 무얼 하면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분김에 가정 깨뜨리는 사람도 있고, 분김에 바람피우는 사람도 있고, 분김에 사람 죽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는 데 까지는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입니다. 분이 나왔다고 해도, 그날 해지기 전에 다 풀고 회개하고 밤을 맞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일 아침에는 새 사람이 됩니다. 분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분을 품지 않아야 하고, 분을 내어도 해가 지기 전에 그 분을 다 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분을 내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원망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요셉이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형들이 팔아먹고, 보디발의 아내가 음행하자고 해 놓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고, 술 관원이 약속대로 돌봐주지 않았을 때에 얼마든지 분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분 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팔아먹은 형에게 “내가 이곳에 오게 하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곳에 오게 하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형들에 대해 앙심을 품고 만나면 복수하려고 했다면, 요셉이 총리가 못됩니다. 꿈도 해석 못합니다. 그저 감옥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분을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일이 되고, 허락 안하시면 일이 안 되는데, 안 되는 것에 대하여 분할 것이 없습니다. 겉옷을 빼앗겠다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새로이 의복 줄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오른 뺨을 맞아 분하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맞아야 할 줄을 아시고 맞게 하셨다고 알고, 거기서 왼뺨까지 맞아도 ‘내가 믿음만 지키면 된다.’ 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나가야 합니다. 

성결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만 잘 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이상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용서해주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고, 분을품지 말고 나가야만 자기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기 믿음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함께 계셔 주십니다. 

분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려 하면 기도도 안 됩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떠난 것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라 하십니다. 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집니다. 분이 처음에는 콩알만 합니다. 그런데 하룻밤 지나면 도토리 알 만해집니다. 또 하룻밤 지나면 밤알 만해집니다. 또 하룻밤 자면 사과 알 만해집니다. 또 하룻밤 자면 호박 만해집니다. 그 다음에 얼마 지나면 큰 항아리 만해집니다. 나중에는 큰 독 만해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가 거기에 쏙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쏙 빠져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것을 풀지 못하고 나가면, 분에서 분, 분에서 분, 이렇게 머리끝까지 분을 품고 나가다가 살인도 하고 못할 짓이 없습니다. 여자들이 남편 잡아 죽이는 일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분을 풀지 못하고 나가다가 그러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한눈 파는 남편 바로 잡아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이기지 마귀가 이기겠느냐!” 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하고 잘 해주면 그 다음에는 돌아올 날이 옵니다. 본처가 잘해주겠는가, 첩이 잘해주겠는가 왔다 갔다 하다가, 남자들이 아이 같아서 잘 해주는 대로 옵니다. 그러니까 분을 품지 마십시오.

자기에게 없어진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없어진 줄로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분을 품지 말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가십시오.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러면 자기가 살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집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본문 28절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는데, 에베소 교인들이 도적질 많이 해먹은 모양입니다. 교인들이 무슨 도적질을 해먹었을까? 십일조 도적질을 할 가능성이 있는데, 말라기에 보면 십일조 안 드리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해먹은 거라고 했습니다. 도적질 하는 사람은 다시 도적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 도적’이 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인데,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은 주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자기 볼 장 보러 다니고, 결혼식 보러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서 살겠습니까?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못살겠는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도적질하는 것을 다 회개해야 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적질인데, 남의 물건을 얻어오고 안 돌려준 것은 도적질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땅히 남에게 줄 것을 안 주는 것도 도적질입니다. 십일조 이외에도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 안한 것도 도적질입니다. 김현봉 목사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준 목적은, 첫째는 우리가 먹고 살라고 주신 것과, 둘째는 그것 가지고 믿는 일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라고 주신 것이지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쌓아놓는 것은 하나님
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

본문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악담이나 음담패설 같은 말을 하면 자신이 더러워지고 교회의 덕을 해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농담하지 말며 진실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합니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말을 옮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도가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본문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기록된 죄, 즉 거짓말 하는 것, 분내는 것, 도적질 하는 것, 더러운 말 하는 것 등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손해가 날뿐 아니라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날까지’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즉, 천국 가는 날까지라는 뜻입니다. ‘인치심’은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기 때문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중심은 십자가 구속)을 믿게 한 것이 인친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인같이 박혀 지워지거나 도말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육신의 목숨을 죽여도 이 인 박힌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불멸의 인을 쳐 놓고, 구속의 날까지 구원을 이루어 나가며 완성시키고자 역사하십니다.

악의를 버리라

본문 31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 속에 악독이 있습니다. 그 악독이 노함으로 노함은 분내는 것으로 분내는 것은 떠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훼방하는 것은 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악의’는 인간의 악한 의지로서, 앞에 말한 모든 악이 악의에서 나옵니다. 악의는 남을 해하려 하는 마음입니다. 성도가 믿는 일을 하려면 이 악의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용서하라

본문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인자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친절과 호의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며”는 성도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손해를 주는 악한 사람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터이니 얼마나 불쌍한 자들입니까?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