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에베소서 5:22-33 부부에게 주신 교훈.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부부에게 주신 교훈
에베소서 5:22-33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5:22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여라. 

5:23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친히 몸의 구주이시다. 

5:24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모든 일에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복종하여라.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같이 하여라. 

5:26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5:27 교회를 자기 앞에 영광스럽게 나타내서 티나 주름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5:29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자신을 양육하고 보살피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하시듯이 한다. 

5:30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5:31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5:32 이 비밀이 크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고,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여라.


1. 아내에게 주신 교훈
남편은 아내의 머리임

본문 22-23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라고 하였는데, 머리에 대한 교훈으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였는데, 아내가 자기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에게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본문 24절에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복종하는 것은 그 명령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러 명령이 있겠지만 내게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그 명령부터 복종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머리를 복종하라는 그 명령을 복종하지 아니하고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헛된 말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복종하는 사람은 자기의 머리를 잘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결혼식 할 때에 “사랑하라, 복종하라”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이 희생해 주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을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가장 가까운 자기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한 머리를 잘 복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에 나가서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머리를 잘 받들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머리를 받들라고 했으므로 머리를 잘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이고, 잘되는 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종해야 되는가? 우러러 보면서 복종하여야 합니다. 우러러 보면서, 즉 존경하면서, 경외하면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면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복종이 아니며, 남편을 멸시하면서 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남편을 머리로 세워 놓았으므로, 머리를 경외하면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말에도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 받들라는 말은 성경에서 남편을 경외하면서 순종하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머리를 경외하면서 잘 순종해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가정에서도 복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도 복을 받습니다.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머리를 잘 경외하면서 순종하니까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또 교회에서도 머리를 경외하면서 잘 받들어 나가면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잘되게 해주십니다. 머리되는 윗사람은 아랫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잘 인도하여줄까?”하며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에 대해서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고, 비방이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성경 어디에 윗사람을 비방하라고 했습니까? 어떤 사람이든 윗사람을 비방하는 사람은 형통하지 못합니다. 어디에나 윗사람이 다 있는데, 머리되는 윗사람을 비방하고, 원망이나 하고 허물면, 윗사람이 잘 인도해 주려고 하겠습니까? 교인들도 교회에서 목사를 비방하고, 원망하고, 악평하면 목사가 그 사람을 좋은 교인으로 보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좋은 교인으로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교회가 잔잔하고, 서로 화평하고, 윗사람을 순종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허물이 있으면 덮어주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서로 허물을 드러내어 “무엇이 틀렸다”하며 나가는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시겠습니까? 비방 하려고 마음먹으면 다 비방할 거리가 되고, 또 좋게 보면 다 좋게 볼 수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길선주 목사를 보니까 길선주 목사의 눈이 천사의 눈과 같고, 예수의 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길선주 목사의 눈이 “왕눈이 똥 사발 같다”고 비방했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존경하라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경외하고, 우러러보라는 것입니다. 존경을 받을만한 행동을 못할지라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은 술 마시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남편도 있는데, 그런 남편일지라도 성경에 존경하라고 했으니까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존경하는게 아니라 성경에 존경하라고 했으니까 존경하자”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의 머리로 세워 놓았으므로 존경해야 됩니다. 아무리 십자가 노릇을 해도 성경에 존경하라고 했으니까 존경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할 성도로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가운데, 가장 가까운 남편을 복종하라는 말씀부터 순종하여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또 남편도 감동을 받아서, 회개할 날이 옵니다. 

평안북도 천태동 교회에 있는 김경숙 집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남편이 공산당입니다. 그런데 공산당회에서 그 남편에게 “너는 여편네가 예배당 가는데도 나가지 못하게 하지 못하니 무슨 공산당 자격이 있느냐?”하며 여편네를 때려서라도 교회에 못나가게 하라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자기 부인한테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김경숙 집사님은 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계속 핍박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갔다 오는데 남편이
대문에서부터 머리를 쥐어 잡고 다듬이 방망이로 때리면서, 안방까지 질질 끌고 가서 팔목만큼 굵은 다듬이 방망이로 때려서 거의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든지 말든지 하라”고 문 밖에 내버렸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김경숙 집사님이 새벽기도에 갔다 와서는 아침 조반을 잘 차려서 남편에게 “조반 잡수세요”라고 하며 상을 남편 앞에 놓았습니다. 그 남편이 ‘죽었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새벽기도까지 갔다 와서 이렇게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가? 또 남편 보고 싸우자고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좋은 마음으로, 또 좋은 얼굴과 좋은 말로 “조반 잡수세요”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참 놀라워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 예수가 진짜 살아있긴 살아 있구나, 공산당은 안 되겠다,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 예수를 안 믿다가는 큰일 나겠다”하며 공산당을 그만두고 예수를 믿었답니다. 김경숙 집사가 이렇게 남편을 잘 경외하고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매 맞아 터져 아픈 곳을 다 치료해주셨으며, 하나님이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셨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핍박하는 남편일지라도 사랑으로 존경하면서 잘 복종했을 때, 감동을 받아서 공산당이었던 남편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이기는 것입니다.

2. 남편에게 주신 교훈
아내를 사랑하라

본문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 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므로 자신을 주심같이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같이, 아내를 위해서 죽으라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신 그 사랑을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 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피 흘려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그 사랑에 항상 감격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내입니다. 또 혼자 사는 사람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됩니다. 그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리시기까지 희생해 주신 사랑에 감격해서, 항상 그 사랑 가운데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이것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것은 무슨 조건이 있기 때문에 피 흘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든, 사랑을 받지 못할만한 행동을 하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변함 없이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할만한 행동을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속 나누어 주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라

또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7에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머리인 남편이 몸 된 아내를 귀히 여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데 무슨 사랑을 하라고 하였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그 사랑을 제일 가까운 아내에게 먼저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못 되게 행하는 아내는 어떻게 할까요? 아내가 바가지나 긁고 못되게 행해도 귀히 여겨야 하며,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했으니
까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귀히 여기라고 했으니까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을 나누어 주라고 했으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계속 사랑하고, 계속 귀히 여기며, 계속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이 잘못하니까 “나도 이렇게 한다”고 하지 말고, 사랑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즉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먼저 자꾸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이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도 머리와 몸의 관계인데, 누가 머리가 되겠습니까? 시어머니가 머리가 되고 며느리는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잘 존경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시어머니께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
다. 머리를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나가는 게 복 받는 길입니다. 

어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었는데 늘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 손자가 자기 어머니한테 알려 주기를, 할머니에게 고구마를 사다가 매일 드리면 할머니가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는 고구마가 처음 나왔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고구마를 삶아 매일 드렸답니다. 시어머니가 먹어보니까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아, 이렇게 단것은 처음 먹어본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손자에게, “너도 먹어보라”고 하니까 며느리가 아들한테 “할머니 대접 하려고 사온 것인데 할머니 잡수셔야지”하며 “너는 먹으면 안 된다, 네가 먹으면 할머니는 뭘 잡수시겠냐?”고 하며 시어머니를 대접했습니다. 며느리가 아들에게 고구마를 왜 못 먹게 했습니까? 아들이 죽을까봐 못 먹게 한 것입니다. 시어머니만 죽어야지 아들이 죽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해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며느리는 한달 있으면 시어머니가 죽을 것이므로 어떻게 하든지 시어머니한테 잘해주고, 잘 받들어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내가 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하면서, 이제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 칭찬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며느리와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하며 다닙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데 내가 어떡해야만 며느리에게 이 고마움을 보답할까?”하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모든 정성을 다해서 잘 해주었습니다. 며느리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런 시어머니가 죽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불러다가 “야, 할머니 안 죽으면 좋겠다, 이런 할머니가 어디 있겠냐”고 하니까, 그제서야 아들이 그 고구마는 죽는 약이 아니고, 새로 나온 좋은 음식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드리면서, 사실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화목시키려고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온 가족이 다 화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기고, 아내는 남편을 복종하면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내가 됩니다. 또 좋은 머리가 되고, 좋은 몸이 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라

본문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물로 씻어”란 디도서 3:5에 중생의 “씻음”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씻어서 중생시키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점점 깨끗케 하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려고 하십니다. 부부간에도 상대방의 결점을 보충해 주고 흠이나 티를 서로 없애 주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의 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만들고, 남편은 아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인도하여서 거룩하게 하고 또 아내도 남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인도하여서 남편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즉 흠 없는 남편, 흠 없는 아내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부족이 있을 때에도 서로 희생하며 도와서 온전케 만들어 나가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

본문 28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 섬길 때 희생의 정신과 봉사의 정신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 부부간에 약속하기를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참을 “인(忍)”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기로 했다고 합니다. 화평이 잘 안 되던 가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속상하면 참을 “인”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고, 또 아내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참을 “인”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곤 했는데, 얼마 있다가 보니까 항아리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누가 더 많이 써서 항아리 속에 넣었을 것 같습니까? 아내가 더 많이 써 넣었을 것 같습니까? 남편이 더 많이 써 넣었을 것 같
습니까? 아무튼 서로 참고 나가다 보니까 서로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내내 싸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을 “인”자 하나 써서 항아리 속에 넣는 바람에 해결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술주정을 해도 참고 견디고, 핍박을 해도 참고 견디고, 때려도 참고 견디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바가지를 긁어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날이 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기려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결혼할 때에는 섬기려는 마음으로 결혼해야 합니다. 여자는 남편을 섬기려고 결혼하는 것입
니다. 즉 여종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 시집가느냐면 섬기려고 시집가는 것입니다. 즉 시집가는 날부터 섬기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왜 장가가느냐면 섬기려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날부터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섬기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반대입니다. 섬김은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무조건 아내를 섬기고, 아내는 남편을 무조건 섬겨야 합니다. 또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집니다. 섬기는 정신은 아주 좋습니다.

제 육체를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 같이 하라

본문 29절에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 같이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체를 잘 보호하여 좋은 육체가 되도록 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가 자기 몸이 되었으니까 아내를 사랑하여 몸을 잘 받들어 나가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 머리가 되었으니까 머리를 잘 받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본문 30-32절에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입니다. 남편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자기의 몸 되는 아내를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잘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을 잘 양육해서 좋은 교인들이 되게 하고, 또 교인들은 교역자를 잘 받들어서 좋은 교역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변변치 않아도 교인들이나 집사나 장로들이 잘 우러러 받들면 좋은 목사가 되고, 좋은 교회가 됩니다. 어떤 목사는 아주 똑똑합니다. 모든 것을 잘 하는데 가는 곳마다 대접을 못 받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그 교회 교인들이
그 목사님을 깎아 내리기 때문입니다. 깎아 내리는데 별 수 있나요? 

길선주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아버지와 같은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길선주 목사님을 눈이 크다고 “왕눈이 똥 사발 같은 게 뭘 하겠느냐?”하며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쫒아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과 같은 분을 쫒아 냈으니, 그 교회 그만하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머리를 경외하므로 잘 받들고, 순종해서 좋은 머리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자꾸 깎아내리면 결국은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3. 부부의 도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는데, 부부의 도리를 말한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또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듯 부부 관계가 잘 되어 나가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잘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처럼 아내는 남편을 우러러 공경하며 복종하여야 합니다(벧전 3:6). 이것이 머리를 받드는 법이고, 머리를 잘 받들면 몸이 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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