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에베소서 5:1-21 사랑과, 빛 가운데, 지혜로 행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랑과, 빛 가운데, 지혜로 행하라
에베소서 5:1-21

1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5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 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3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4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내어 주신 것처럼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여라.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일과 탐욕의 말은 너희 중에서 입 밖에도 내지 마라. 이것이 성도에게 합당한 일이다. 

5:4 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은 마땅하지 않으니, 오히려 감사의 말을 하여라. 

5:5 너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라.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일을 행하는 자나 탐심을 품은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얻을 수 없다.

5:6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여라.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 

5: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에게 동참하는 자들이 되지 마라.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이다. 빛의 자녀들 답게 행하여라. 

5:9 빛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5:10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여라.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책망하여라. 

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일들은 말하기 조차 부끄럽다.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들이 빛에 의해 드러난다. 

5:14 무엇이든지 드러나게 하는 것은 빛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주께서 너를 비추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 

5:15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행할지 주의 깊게 살펴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하지말고 지혜로운 자들과 같이하여라. 

5:16 세월을 아껴라.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5:17 그러므로 지각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여라. 

5:18 또 너희는 술에 취하지 마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도리어 너희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라. 

5:19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며, 

5:20 모든 일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5: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서로 복종하여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본받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하려 자신을 버리시고, 몸을 버려서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셔서 못에 박히시고 피를 흘리시고, 그 생명을 그 몸을 다 바침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너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노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려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피 흘려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을 버리사 자신을 제물로,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사랑, 항상 그 사랑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예수님께서 해주셨는데, 우리도 그 사랑에 감격해서 예수님의 사랑가운데서 살고, 또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자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나를 위해서 몸을 버려서 피 흘리셔서 당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그러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항상 사랑 가운데 거하여야만 되겠습니다. 

그 세계가 참으로 생명이 사는 세계입니다. 사랑가운데 사는 세계는 물고기가 물 가운데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이 살 곳이고, 생명의 세계이고, 거기서 사는 사람이 진짜로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가운데 들어가지 못하면 아직도 생명의 세계에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높은가, 얼마나 깊은가, 얼마나 넓은가, 얼마나 긴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높고 깊은 사랑인가, 얼마나 넓은 사랑인가, 얼마나 긴 사랑입니까? 자기 몸을 희생해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한 사랑이며, 말씀을 다 이룬 사랑입니다. 그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고, 사랑과 복종의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아까워서 안 주실 것이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이, 또한 몸 버려 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해주신 예수님이 다른 것 무엇이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은사로 주셨습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무얼 안 주시겠습니까? 

소를 돈 주고 사온 사람이 소에게 필요한 것을 아끼겠습니까? 소가 병이 들면 주인이 걱정합니다. 소가 먹을 것 없을 때에도 주인이 걱정합니다. 소가 약해지면 콩을 사다가 먹입니다. 또 겨울에 추우면 소잔 등에 덮을 것을 덮어줍니다. 어떤 집은 포대기를 갖다가 덮어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도 소를 사왔으면 소에 필요한 것을 아끼지 않고 줍니다. 소가 자려고 누우려고 하면 바닥에 물이 고여 젖어 있을까봐 바닥에다가 볏짚으로 만든 요를 깔아줍니다. 돈 주고 사온 소도 주인이 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주고, 매일 요를 깔아주고, 모깃불도 켜주고 합니다. 주인이 다 알아서 해줍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얼 아끼시겠습니까? 아끼지 않고 가장 귀한 것들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단 것이 필요하면 단 것을 주십니다. 쓴 것이 필요하면 쓴 것을 주십니다. 짠 것이 필요하면 짠 것을 주십니다. 매운 것이 필요하면 매운 것을 주십니다. 신 것이 필요하면 신 것을 주십니다. 채찍이 필요하면 채찍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전부 합동해서 유익이 되는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전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유익되지 않는 것은 주시지 않습니다. 전부 유익되는 것으로 주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고, 가장 필요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님은 몸 버려 피흘려주셨는데,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항상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거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면서 그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은 하늘만치 높은 사랑입니다. 우주만치 깊은 사랑, 넓이는 세계만치 넓은 사랑, 길이는 영원히 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빼앗는 것

우리는 사랑의 세계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사랑의 세계는 주님의 세계인데, 이것을 빼앗으려고 마귀는 와서 역사를 자꾸만 일으켜 놓습니다. 

본문 3-4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려면 어두움에서 나와야 행할 수 있습니다.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등을 버리는 것이 어두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붙잡혀 죄악을 끊지 못하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악 된 요소들을 다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빼앗으려고 음란한 마음을 넣어줍니다. 더러운 마음을 넣어줍니다. 이 더러운 마음은 성적인 더러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탐욕을 넣어줍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입니다. 욕심입니다. 우상을 섬기라고 우상섬기는 마음을 넣어줍니다. 이런 마귀에게 넘어가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마귀가 유혹을 하는데, 음행을 하라는 유혹, 성적 더러운 마음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탐욕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누추한 것과 더러운 것, 어리석은 말을 하게 만듭니다. 희롱의 말을 하게 만듭니다. 희롱의 말들, 농담하지 마십시오. 희롱의 말을 하다보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희롱의 말을 계속하면 인격이 그와 같이 됩니다. 실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것들이 합당치 않다 했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물질을 더 따라가므로 우상입니다. 또 음행하는 죄에 빠지지 말고, 더러운 가운데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즉 더러운 말, 악. 악독을 품은 생각 등을 버리고 어두움에서 쑥 빠져나와야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평생 예수를 믿어도, 평생 어두움에 잡혀있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

본문 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들입니까? 무슨 아들입니까? 불순종의 아들입니다. 이러한 죄를 지으니까 불순종의 아들 아니겠습니까? 아들은 아들인데, 우상숭배하고 음행하고,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다니고, 탐심을 가지고 다니고, 희롱의 말 어리석은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자들 입니다. 그런 자들은 아들은 아들인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은 안 갑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죄 짓고 나가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지옥은 안가지만, 아버지가 노하셔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만 주실 것을 주시지, 아버지를 노하게 하면 무얼 주시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무얼 받으려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려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것만 하고 돌아다니다가 아버지께 가서 뭘 좀 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주시겠습니까? “야, 보기 싫다. 가라”고 하실 겁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를 노하게 해 드리면 주실 것도 안 주십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얼 좀 받을 생각이 있으면 잘 해드려야 합니다. 아버지께 잘 해드리면 흐뭇하셔서 다 주십니다. 남편에게 잘 해드리면 남편이 기뻐서 잘 해줍니다. 안 준다고 바가지를 빡빡 긁으면 줄 것도 안 줍니다. 점점 더 안 주려고 할 것입니다. 

미련한 여자들은 남편에게 무얼 타보려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이것도 안 주고, 저것도 안주 고” 뭘 더 안 준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잘 해주면 남편은 아내에게 “무얼 더 해줄까?”하면서 줍니다. 아내가 잘 해줘서 남편이 잘 해주겠나? 남편이 잘 해줘야 아내가 잘 해주겠나? 무엇이 먼저인 것 같습니까?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게 잘 해주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겠습니다. 서로 먼저 잘 해주어야겠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바가지를 빡빡 긁으라고 했습니까?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면 대접이 옵니다. 안 준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대접해보십시오. 그럼 대접이 옵니다. 받고자 하는 생각이 있으면 누구든지 대접을 먼저 하십시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죄 값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냥 둬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징계가 옵니다. 죄를 짓도록 가만히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가 진노하시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야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복음의 문이 막히고, 자기와 하나님과의 사이가 막히고, 하나님께서 벌을 주십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거두어가십니다. 죄를 지으면 마귀가 속에 와서 역사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즉살(卽殺)’입니다. 즉살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다 죄만 지었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던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다 도적질하던 자들이고, 거짓말하던 자들이고, 분 내던 자들이고, 또 더러운 말하던 자들이고, 음행하던 자들이고, 더러운 자들이고, 탐욕을 내던 자들이고, 누추한
말을 하던 자들이고, 어리석은 말을 하던 자들이고, 희롱의 말이나 하던 자들이고, 우상이나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진노만 쌓고 다니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라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 진노가 내려오기 전에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우물우물하다가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빨리 모든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앞에 합당치 않던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우상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버리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을 버리고, 이제는 깨끗한 데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기뻐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하나님이 망하게 하려하시다가도, 즉시로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십니다. 용서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네가 회개하니 참 반갑다. 이제는 다시 그런 죄를 짓지 말거라”하고 용서해주십니다. “내가 너로 인해 영광을 받게 되었으니, 넌 이제 나에게 합한 사람이 되거라.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다. 회개했으니 네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말을 듣는 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들은 아들인데,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나 맞고 혼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믿었으면 하늘나라에 가기는 갑니다. 가지만,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고 나온 구원을 받아 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의의 옷을 입고 나가고, 세마포(細麻布) 옷을 잘 입고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진노를 쌓는 아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2. 빛 가운데 행하라

빛의 열매는 착함, 의로움, 진실함에 있음

본문 7-9절에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는데, 빛 가운데서 행하면 빛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빛 가운데서 믿음으로 살면 착한 마음이 생기고, 착한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의를 행할 마음이 생기고, 언제나 의로운 길에 섭니다.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진실합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외식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말 한마디가 진실해야 됩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다. 마귀는 본래부터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언제나 진실하고, 의롭고, 참되고,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이 빛 가운데에서 사는 성도입니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행하지 말고, 의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하면 살 길이 열려 있다고 해도 거짓말하고 사는 것은 실패입니다. 진실하게 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다 빼앗긴다고 해도 진실하면 그것이 승리이고, 거짓말해서 천하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그것은 완전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실과 의의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죄”에서 떠나고 “의”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즉 어두움을 떠나고 영적 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거짓에서 떠나고 진실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속에 있는 어두움의 요소를 모두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죄, 즉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 또 더러운 말, 어리석은 말, 누추함, 희롱의 말 등을 완전히 뿌리까지 뽑아 없애 치워야 거룩해집니다. 그러면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고, 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고, 선을 이루어 나갈 수 있고, 좋은 성도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어두움에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책망을 받는 사람이 빛 가운데 행함

본문 11-13절에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책망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빛 가운데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책망을 받아야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책망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을 받으면서 읽어야 됩니다. 죄를 발견하고, 회개할 바를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을 받지 못하면 그 심령이 어두워진 증거입니다. 바울은 항상 자기가 죄인 가운데 괴수인줄 알고, 언제나 책망을 받았습니다. 

1) 성경 읽을 때 책망 받아야 함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매일 성경을 읽어야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책망을 받아야 되고, 책망을 받고는 바로 서야 됩니다. 또 예배시간에도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등이 나왔는데 우리가 이것도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이 모든 죄를 주여 회개합니다, 다시 이런 죄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하며 책망을 받고 회개해야 됩니다.

2) 양심에 책망을 받아야 함
 
그 다음에는 자기 양심에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양심을 언제나 날카롭게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여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난다고 하였는데,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고 옳은 것에 표준을 두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옳게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하겠는가?”에 표준을 두어야 합니다. 자기가 손해를 보아도 어떻게 하든지 옳게만 하고, 낮아져도 옳게만 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낮아지지 않으려고 양심을 안 쓰고 어떻게 해야 이익이 날까? 어떻게 해야 내게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인격적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며 여기에 표준을 두면 벌써 죄 가운데 들어간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바로 하는 것일까? 하며 바로 하다가 손해를 보았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자이고, 바로 하다가 가난해졌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신령한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준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의에 두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됩니다. 육신의 평안함만 생각하는 것은 육신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바로 섬길까? 어떻게 해야 바른 진리의 말씀을 받을까? 어떻게 해야 영적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 있을까? 여기에 항상 표준을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 표준을 둔 사람은 예배시간에 늦지 않고 또 빠지지 않습니다. 믿는 일에 일심정력을 다 합니다. 다른 것은 실패하여도 믿음은 실패하지 아니하고, 성공이 되어 나갑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3) 윗사람에게 책망을 받을 줄 알아야 함
 
그 다음에는 윗사람에게 책망을 받을 줄 알아야 됩니다. 교회는 교역자에게 책망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집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책망을 받을 줄 알아야 되고,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의 책망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단 성경에 위반된 것은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모든 책망은 우리가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책망을 바로 받으면 빛 가운데로 쑥 들어갑니다. 어두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책망을 바로 받으면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쑥 들어가는데, 이것이 큰 유익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을 잘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안 받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책망을 안 받는 사람은 항상 어두움에 다니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망하고 맙니다. 책망을 받고, 회개하고 바로 서면, 살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책망을 받고, 성경의 책망을 받고, 성령의 책망을 받고, 윗사람의 책망을 잘 받아야겠습니다.

3. 깨어나라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자는 자는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하였는데, 잠자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있는 것입니다. 즉 신앙이 죽었습니다. 신앙이 잠자는 사람은 생명의 역사가 중단이 된 것입니다. 깨어있는 성도가 있고, 잠자는 성도가 있습니다.
잠자는 성도는 어떤 성도인가? 또 깨어있는 성도는 어떤 성도인가? 깨어있는 성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잠자는 성도는 육신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육신에 속하여 육신중심으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전부 잠자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짝하는 육신중심이고, 자기중심이므로 욕심을 따라 행하고, 믿는 일에 힘쓰지 아니합니다. 이것이 다 잠자는 신자들입니다.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하였는데, 깨어서 일어나라는 말은 육신중심의 세계에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안일주의, 방탕, 향락주의, 세상주의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신앙이 잠자는 사람들로, 거기에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세상주의요, 육신주의요, 안일주의요, 물질주의요, 욕심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육신중심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지금 육신중심에서 나와서 영적 세계로 들어가라, 즉 빛 가운데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리에 있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리로 들어가, 영적 생명으로 사는 자리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깨어서 일어나면 죽은 게 아니고 산 것입니다. 그러나 잠자는 자리에 있으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죽었으므로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신앙이 잠이 들었나? 신앙이 깨어있나? 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잠자는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은 얼마나 신앙이 좋았습니까? 그래도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서 잠들어,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9:1-8). 요나같은 사람도 신앙이 잠들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쳤고, 또 박 넝쿨 아래에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하였습니다(욘 4:8).
또 다윗이 신앙에 잠들어서 충신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와 그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1:1-27). 그러므로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잠들 수가 있는데, 신앙에 잠들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에 잠든 다음에는 영적 세계에 대해서 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은 육이고, 세상이고, 물질이고, 자기이고, 자기중심이고, 자기 명예영광입니다. 신앙에 잠이 들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자는 깨어 일어나고, 다시 잠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늘 깨어서 믿음을 쓰며, 성령의 세계에서 살며, 항상 하나님께 붙들리어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4. 지혜로 행하라
세월을 아끼라

본문 15-16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월을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껴서 허비하지 말고, 믿는 일에 잘 이용해야 되겠습니다. 즉 효과적으로 이용해야겠습니다. 세월을 허비하면 완전 실패입니다. 세월을 붙잡아서 믿는 일에 사용하면 영원한 성공입니다. 지나간 것은 후회해도 쓸데없습니다. 이제 금년도 거의 다 가고 12월 한 달 쯤 남았는데, 남은 12월을 믿는 일에 잘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시간을 기도 하는 데에 사용하고, 성경 보는 데에 사용하고, 양심을 쓰는 데에 사용하고, 옳게 하는데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사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고, 전도하는 데에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세월을,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선교하는 데에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에 사용하고, 구원운동에 사용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세월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100년을 살아도 아무 쓸데없습니다. 다 썩어진 생활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33년을 살았어도 그 세월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완성시켜 놓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성공입니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어도 세월을 잘 이용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세월을 아껴서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할까? 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요새 사람들 만나면 인사가 “건강하십니까? 또는 장수하십시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남은 세월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고 하나님께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를 잘 이용하고, 한 달을 살면 한 달을 잘 이용하여 세월을 믿는 일에 잘 사용하여야 합니다. 즉 남은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일 년을 살면 일년을 잘 이용하고, 삼 년을 살면 삼 년을 잘 이용하고, 십 년을 살면 십 년을 잘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입니다. 믿는 일 하려는 생각은 안하고 그저 세월만 보내며 “아, 벌써 한 주일 또 갔구나, 또 벌써 한달 갔구나, 또 벌써 일년 갔구나”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월을 붙잡아서 믿는 일에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지나간 일에 실패한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이 시간부터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살같이 빠른 세월입니다. 훌떡훌떡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서 주의 뜻을 잘 이루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하였는데, 지혜 있는 자가 되라는 것은 마귀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지혜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로 즉 영적 지혜로 모든 것을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10절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안
되어도 좋습니다”하며 나가야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하려면 안 됩니다. 내가 계획하던 모든 것을 다 내어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하며 나가야 됩니다. 아버지의 뜻이면 소돔 고모라나 십자가나 아골 골짜기나 어디든지 가고자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주의 뜻을 찾는 정신입니다. 

욕심을 품고서 자기 계획대로 되게 해달라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욕심쟁이한테 이용당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리 해도 하나님이 안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나가십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고, 또 기도하는 가운데서 찾고, 신앙양심에서 찾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문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다 끊어야 합니다. 한두 잔은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한잔에 안 취하면 백 잔에도 안 취해야 됩니다. 백 잔에 취한다면 한잔에서부터 취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술은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6:13에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말씀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피차 복종하라
 
본문 19-21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성도 간에 피차 복종하며 남을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20:28절에, 예수님은 남을 섬기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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