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네 방과 성전의 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네 방과 성전의 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에스겔 42:1-20 네 방과 성전의 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네 방과 성전의 담
에스겔 42:1-20

1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2그 방들의 자리의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오십 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3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이십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일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 5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들을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 6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이 오십 척이니 8바깥뜰로 향한 방의 장이 오십 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일백 척이며 9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10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이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 13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15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16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7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8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9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오백 척이라 20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1. 제사장들이 지성물(至聖物)을 먹으며 옷을 갈아입는 네 방

본문 1-3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그 방들의 자리의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오십 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이십 척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방 네 개가 있는데, 북편 뜰에 두 방이 있고 남편 뜰에 두 방이 있습니다. 이 방들은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먹으며, 또 옷을 갈아 입는 방이라고 하였습니다. 북편 뜰의 두 방 중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다고 했습니다. 문이 북을 향하고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어 그곳에서 안도 바라보고 밖도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성도가 성전을 바라보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4절에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일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방과 방 사이에 서로 통하는 문이 있다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통해야 하는데, 서로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과 담을 막고 있으면 그것은 바로 된 신앙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서로 교통하는 생활,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해주는 생활, 용납하고 도와주는 생활, 사랑하며 서로 통하는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남의 잘못한 것만 보고 사이를 막아놓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은 용납해주고, 또 도와주며 사랑하는 생활로 서로 통해야 합니다. 자기만 잘하고, 다른 사람은 잘못 되었고 틀렸다고 하면서 용납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들을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올라갈수록 방이 좁아져서 상층의 방이 제일 좁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41장 7절에서는 올라갈수록 방이 넓어졌습니다. 에스겔 41장 7절에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웠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넓어졌다는 것은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이고, 좁아진다는 것은 좁은 길을 의미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길이 좁다는 것입니다. 높은 세계, 신령한 세계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려면 점점 좁은 길을 걷게 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몇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높은 길을 걸으려 하면 점점 좁아지는 것입니다. 산과 같습니다. 산이 높아질수록 점점 좁아지지 않습니까?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집니다. 신앙의 길은 높아질수록 점점 그 길이 좁아져서 좁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같이 하던 사람이 떨어져 나가고 배반합니다. 말씀만 지켜나가면 점점 좁아집니다. 타협하지 아니하고, 신앙양심을 쓰고 말씀대로만 바로 나가면, 사람들이 배척하게 되어서 그 길이 좁아집니다.

본문 6-7절에 “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이 오십 척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주 대한 담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방에 바깥담이 있고, 또 뜰에 가면 서로 마주 대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장이 오십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9절에 “바깥뜰로 향한 방의 장이 오십 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일백 척이며 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고 하였습니다. 동편에서부터 들어가는 통행구입니다. 성전이 동향입니다. 동향은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좋은 방향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향한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0-12절에 “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이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북편 뜰에 방이 두 개가 있었고, 맞은편 남편 건물에 또 두 개가 있습니다. 전부 네 개입니다. 그 방 사이에 길이 두 개 있는데, 북쪽에 있는 두 방과 남쪽에 있는 두 방이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남쪽에 있든지 북쪽에 있든지, 서로 교통하고 용납하며 도와주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방은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먹는 곳이고, 제물을 두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성물’은 거룩한 물건인데, 제물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제물들은 거룩한 물건들입니다. 제사장은 그 방에서 소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을 먹기도 하고, 그 제물을 거기다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가면 속되게 되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물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그것을 속되게 하면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룩한 방에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방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본문 14절에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 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한 옷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옷을 더럽히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방에 두었다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입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때는 거기다가 벗어놓고 다른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구별한 옷인 것입니다. 이 제사장의 옷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를 입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고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지 않고서는 못 들어갑니다. 또 나갈 때 벗어놓고 나가야 된다는 것은 나가서 더럽히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언제나 구별된 생활, 그리스도의 구속을 거룩히 여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성전의 담을 척량함

본문 15-19절에 “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오백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안에 있는 전 측량하기를 마치고 나가서 담을 측량하였습니다. 척량하는 장대로 측량하니, 동서남북이 각각 다 오백 척이었습니다. 담의 척수가 다 맞았습니다.

본문 20절에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안에 있는 것이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별하지 못하고 섞이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교회도 세상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세상 운동, 정치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나가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치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일제시대 때 교회에서 연보로 비행기를 헌납하고 전쟁 물자를 바치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평화 연보를 하면 어떻겠는가를 기도해봤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이 아닌 마당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행기를 헌납한 것도 전쟁에서 이기자고 한 것이고, 교회 종(鐘)이며 밥그릇을 가져다 바친 것도 이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도 정치의 일부분입니다.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연보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은 찬성이고, 나도 앞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이름으로 예배당에서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광고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가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는 것만 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좋습니다. 대통령이나 정부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치 운동이나 세상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을 막아놓은 것입니다. 담을 막아놓고, 담 안은 거룩하고 담 바깥은 속된 것입니다. 담 안에서 담 바깥의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담 안은 교회이고, 담 밖은 세상입니다. 담 안에서는 거룩한 일과 영적인 일을 하고, 담 밖에서는 세상 일과 속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별해서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