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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일 화요일

창세기 26:12-25 이삭의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이삭의 신앙
창세기 26:12-25

12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18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이삭의 종
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25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1. 이삭의 신앙

하나님께 몸과 생명을 바치고 나가는 신앙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4대 족장입니다. 본장에는 이삭의 좋은 신앙이 나타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0절에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이삭의 신앙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삭의 신앙 가운데 첫 번째는 하나님께 몸 바치는 신앙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결박을 할 때에 이삭은 단 마음으로 결박을 당하였습니다(창 22:9). 이것을 보면 이삭은 하나님 앞에 몸 바쳐 놓고 나가는 신앙입니다. 찬송가에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고 하는 신앙과 같이 항상 자기 몸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나가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우리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시면 우리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각오로 몸과 생명을 주님 앞에 바쳐놓고 주님을 따라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둘째로 이삭의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창세기 31:42절에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 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 올 때에 야곱을 뒤쫓아 온 외삼촌 라반에게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라고 한 것을 보면 이삭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신앙,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이삭의 신앙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신앙

이삭의 신앙 가운데 셋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신앙입니다. 이삭은 싸울 만한 일이 생겨도 싸우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신앙이 잘 나옵니다.


2. 이삭의 창성

본문 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이삭은 농사를 하였습니다. 이삭이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농사도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됩니다. 아무리 잘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청도에 계셨던 김현봉 목사님 동창생이신 김춘중 목사님이 죽을까봐 두려워서 신사참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사참배를 하고 나서 너무 원통하여 철저하게 회개하고 깊은 산골 산간벽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해먹을 것이 없어 콩을 심었는데, 그 콩이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콩대가 부러질 정도로 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1년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사참배 한 것을 회개하고 다시는 신사참배 하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나가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콩대가 부러질 정도로 콩이 많이 열리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시면 잘 됩니다. 이삭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해에 농사해서 백 배나 얻었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비도 많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3. 우물 양보

본문 16-17절에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시기가 나서 “이 땅에서 떠나라”고 해서 이삭이 그곳을 순순히 떠났습니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우거 했습니다. 그랄 골짜기도 블레셋나라 지방입니다. 이삭이 싸우지 않고 순순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간 것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인도대로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우물 양보

본문 18절에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부친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 우물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렸던 것인데, 이삭이 그 우물을 다시 파고 부친이 부르던 대로 불렀습니다.

본문 19-20절에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고원지대에는 우물이 큰 재산입니다. 목축을 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므로 고원지대의 우물은 큰 보배입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으나 그랄 목자들이 와서 그 샘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삭의 목자와 다투며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 우물을 ‘에섹’이라고 부르고 그 우물을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에섹’은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우물 양보

본문 21절에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또 다른 우물을 팠으나 그랄 사람들이 또 따라와서 다투는 고로 이름을 ‘싯나’라고 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싯나’의 뜻은 ‘대적한다’는 뜻입니다. 우물을 양보하는 것은 그 당시에 큰 재산을 양보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우물을 팜

본문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다른 곳으로 가서 세 번째 우물을 팠
더니 그들이 이제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랄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불렀습니다. ‘르흐봇’의 뜻은‘장소가 넓다’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이 여러 번 다투며 우물을 빼앗을 때에 그들과 싸우지 않고 양보하며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번성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싸워서 번성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번성케 하시므로 번성케 된 것입니다. 싸우고 다툰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약 4:1-3). 하나님을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며 나
갈 때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서로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는 약육강식하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잘 되는 것입니다. 우물이 큰 재산이지만 이삭은 그것 때문에 싸우거나 다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이삭 자신이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고 계속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삭은 ‘하나님께서 넓은 장소를 주셔서 우리를 번성케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4. 하나님의 약속

본문 23-25절에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을 위하여 이삭에게 복을 주시고 이삭의 자손들을 번성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삭이 물질적인 것을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지 않게 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계셔서 범사에 창성케 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28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형통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