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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1일 목요일

말라기 4:4-6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심
말라기 4:4-6 

4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1.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심

본문 4-6절에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
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호렙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받고도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다시 기억 하게 하시고 회개시켜서 앞으로 올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23절에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진리를 힘써 배워서 지키고 믿음을 팔아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날을 가리키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모두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이 큰 능력 있는 선지자를 보내서 백성들을 회개시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말씀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0-12절에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는 말씀대로 엘리야가 먼저 온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엘리야가 안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답변하셨습니까?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이미 왔는데,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4절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였습니다.

2. 세례 요한이 엘리야임을 아는 방법

예수님께 물어보면 알 수 있음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옛날에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와서 그 길을 준비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아직 오직 않았으니, 그리스도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엘리야가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왜 몰랐습니까?

요한복음 1장 19-22절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냐고 물어 보았을 때, 세례 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으니 나는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이 자신이 엘리야라고 하면 알겠는데,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알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말라기 4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400년 전의 선지자인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분명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어봤을 때 세례 요한이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엘리야가 아직 안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언의 말씀은 알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모든 예언이 희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명백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림자로, 상징적으로, 비유로 되어 있어서 구약의 예언은 신약의 사람들이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예언한 말씀대로 됩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난당하시는 것도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기 힘듭니다. 선지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배워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나면 그 말씀이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임을 알게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린다는 것도 구약 스가랴에 있는데, 그것도 희미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스가랴 11장 12절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고 하였습니다. ‘고가(雇價)’는 일한 삯인데, 그리스도께서 은 삼십에 팔리신다는 것이 명백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스가랴 13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양이 흩어진다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희미하게 되어 있어서 이것만 보고는 그 뜻을 잘 모릅니다.

은 삼십에 대한 예언,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명확하게 밝힌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많이하면 압니까? 기도를 하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알려줍니까? 본인에게 물어보니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습니까? 예수님께 물어봐서 안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그리스도가 온다고 하였는데, 아직 엘리야가 안 왔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엘리야가 왔다.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고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물어
보면 압니다. 그전에는 모릅니다.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은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봐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시기 전에는 절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요새는 예수님께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니까, 구약 성경을 보고 잘 모르는 것은 신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신약 성경을 읽는 것이 예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명백하게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령 고가를 은 삼십으로 달라고 했다는 것도 신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전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진다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오늘 저녁에 내가 잡히면 양이 다 흩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예수님께 대한 말씀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사야서에 예언한 말씀도 신약 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하고, 신약을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은 구약이 밝혀주고, 또 구약은 신약이 밝혀줍니다. 그러므로 둘을 한꺼번에 알지 않으면 바로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새는 신약시대이니까 구약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신약을 바로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하고, 구약을 바로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3.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하는 일이 같음

세례 요한의 하는 일

그러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것은 무엇을 보고 압니까? 하는 일을 보고 압니다. 엘리야가 하는 일과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은 엘리야라고 하지 않았어도 엘리야가 하는 일과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이 같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엘리야인 줄을 어떻게 압니까? 먼저 예수님께 물어봐서 알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을 봐서 압니다. 그러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회개 운동, 바로 세우는 운동을 세례 요한이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하는 일을 했고, 엘리야의 심령과 재능으로 왔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길잡이가 된다고 하였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잡이가 된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요새도 말세에 엘리야가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6절에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두 선지자가 나왔는데, 한 사람은 물을 피가 되게 하고, 다른 사람은 예언의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에서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한 선지자는 모세입니다. 또 예언의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 선지자는 엘리야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예언했듯이 말세에 엘리야와 모세가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안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께 물어봐야 압니다. 성경의 한 구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경을 봐야 합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재능으로 왔으니 영적으로 보며 알고, 하는 일을 보고 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아니라도 엘리야의 심령과 재능을 가지고 와서 엘리야가 하는 일을 계속 하면 그는 엘리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길잡이, 회개 운동을 하는 것을 봐서 세례 요한이 분명 엘리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하는 일은 인륜 도덕의 회개 운동임

타락이 되고 죄만 지으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서로 떠나 있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있지 않고, 악하게 나가니까 아버지의 마음도 아들에게서 떠났습니다. 그것을 엘리야가 와서 회개시킨다는 것입니다. 인륜 도덕이 무너져서 부자(父子)간의 도, 부부(夫婦)간의 도, 군신(君臣)간의 도, 붕우(朋友)간의 도가 무너졌습니다. 도가 무너지니까 말세에 서로 미워하고 잡아먹으며 원수가 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것을 회개시켜서 원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은 인륜부터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 운동으로 사람들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부자지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친구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부부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형제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엘리야의 운동은 모든 인륜을 회개시키는 회복 운동,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덕을 회복시키는 것이 첫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개 운동, 구원 운동을 하심

그리고 한 단계 더 나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 운동은 사람에게 잘못한 것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성도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만들고, 사람에게로 하나님의 마음이 돌아가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도로 찾아오시는 운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 운동을 하였고, 예수님께
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죄를 생각나게 했는데, 특별히 사람 사이에 지은 죄를 많이 생각나게 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어볼 때에 뭐라고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3장 3-14절에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특별히 회개 운동을 일으켰는데, 주의 길을 예비하는 회개 운동을 하였습니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골짜기라는 것은 마음의 깊은 욕심과 같은 것이고, 산은 교만입니다. 작은 산과 높은 산이 낮아집니다. 굽은 것은 양심이 굽어진 것인데, 마음이 구부러진 것이 곧아진다는 것입니다. 험한 길이 평탄해진다는 것은 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회개하고 평탄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세례 요한은 특별히 사람의 인간적인 죄, 도덕적인 죄, 인륜적인 죄의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죄는 인간적인 죄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아비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아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킨다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과 원수진 것, 서로 막힌 것, 욕심, 교만, 정한 세 외에 더 받은 것, 참소한 것, 원망한 것을 회개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나님께 접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들을 찾아오시고, 대신 피 흘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포도나무에 접붙이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잘못을 회개해야 하지만, 사람에 대한 잘못도 회개해야 합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에 대해 양심을 바로 써야 하고, 모든 생활면에서 양심을 바로 써야 합니다. 바로 하지 못하면 죄입니다. 부모 공경을 바로 해야 하고, 자녀들에 대해서도 바로 해야 하는데, 먼저는 바로 하지 못한 것이 죄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 엘리야, 세례 요한이 와서 하는 일입니다. 인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접을 붙이고, 그 생명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생명의 세계로 들어감 

본문 5절에는 예언적인 요소가 있는데,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세상 종말’을 가리키기도 있습니다. 말세에 가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엘리야와 같은,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서 회개 운동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 운동을 특별히 일으키시는 때가 있습니다. 전에도 큰 시험이 올 때마다 먼저 회개 운동을 일으키신 후에 시험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큰 전쟁이 나기 전에 먼저 회개 운동을 일으키시고 그 다음에 전쟁이 난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의 역사가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을 보내서 모든 성도에게 회개 운동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1절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발로 일어선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회개 운동을 일으키시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늘로 데리고 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고, 회개하면 그리스도께로 돌아갑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회개해서 하나님으로 사는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야겠습니다.

2017년 8월 30일 수요일

말라기 4:1-6 회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회복
말라기 4:1-6

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1. 여호와께서 교만한 자를 심판하심

본문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극렬히 타는 풀무와 같은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때에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초개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와 악한 자는 하나님께서 그 가지와 뿌리까지 불살라 멸망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잠언 28장 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편 4절에는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날아가며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고 심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죄를 떠나고 악을 떠나야 합니다.

교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실력을 배경으로 해서 옵니다. 지식이 남보다 낫든지, 기술이 있든지, 인물이 잘 생겼든지, 일을 잘하든지 하는 것을 배경으로 교만이 옵니다. 권력, 지위 등을 배경으로 교만이 생깁니다.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교만은 자기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교만입니다. 다니엘 4장 30절에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
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교만은 내가 했다, 내 것이다,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없애야 합니다. ‘나’라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내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교만이고, 자기 자존심 자체가 교만입니다. 그것을 없애야지, 그대로 두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음

본문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공경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지 않으며, 바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앞길을 열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어둡던 것이 밝아지고, 막혔던 길이 열리고, 상한 심령, 병난 부분이 다 치료되고 강건케 되는 것입니다. 태양이 떠올라 오는 것처럼 산 소망이 생기고, 앞길을 형통하도록 열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놀게 됩니다. 소를 가두어놓았던 외양간에서 내놓으면 기쁘고 즐거워서 뛰어노는데, 개도 그렇습니다. 목을 매어뒀다가 하루라도 풀어놓으면 굉장히 기뻐하며 뛰놉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산 소망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1장 78-79절에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돋는 해가 우리에게 비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죽은 심령을 살려주시고, 상한 심령을 싸매주시며, 병든 심령을 고쳐주심으로 새로운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을 가리키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경외하며 말씀대로 바로 섬기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임하여 치료하는 광선을 발해주십니다. 그래서 상한 심령을 싸매주고 고쳐주며, 산 소망을 주셔서 거기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송아지가 외양간에서 나온 것처럼 영적 생명의 해방을 얻어서 구원의 즐거움으로 생명의 역사가 뛰노는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성도에게 밟힐 날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심판하시기를 정한 날이 오는데, 일시적으로 악한 자의 세력이 세고 그들이 창성하며 잘 되어가는 것 같지만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발바닥에 재와 같이 멸망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3. 회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 지키라

본문 4절에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고 회개하며 그것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준 모세오경, 즉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성경대로 바로 서는 바른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잠언 23장23-24절에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찌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일심정력을 기울이고 피땀을 기울여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팔지 말라는 것은 신앙을 양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유익을 보기위해서라도 진리를 양보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에 대해 배웠는데, 이러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대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다시 팔지 말고,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말씀을 지키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심

본문 5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를 보낸다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1-1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을 보낼 것을 엘리야를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20절에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죽었던 엘리야가 살아온다고 믿었으므로 요한에게 죽었던 엘리야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요한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었던 엘리야가 살아오는 것이 아니고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와서 엘리야와 같이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회개를 부르짖고 회개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다 죄를 지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마음이 떠났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서로 이기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만 알고, 돈만 알고, 부모는 알지 못하고, 자녀도 알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와서 그것을 회개시켜 바로 세우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는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사람 앞에 바로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함

진정한 회개는 사람 사이에 원수된 것을 풀고, 부모 공경 안 하던 것을 회개하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바로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바로 안 하면 바로 선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자기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부모와 같이 생각해서 잘 순종해야 합니다.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를 잘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하는 것 같아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죄가 되지 않는 한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순종하지 말고, 위반되지 않는 것은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교회는 교역자를 순종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면 잘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우리도 자녀들은 부모에게로 마음을 돌이키고, 부모는 자녀에게로 마음을 돌이키며, 인륜 도덕의 타락된 것을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서 의로운 진리의 빛, 생접하여야겠습니다.
그래명의 빛을 받아 우리 영이 그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심령을 치료 받아 날마다 자유와 해방을 얻어서 소가 외양간에서 나온 것처럼 생명의 길로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말라기 3:8-18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말라기 3:8-18

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3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 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16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1. 십일조의 근본

십일조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임

십일조는 구약에서만 드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행하라’는 것은 의와 인과 신을 행하라는 것이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것은 십일조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근본이 되는 것

1) 선악과

십일조의 근본은 어떻게 됩니까? 십일조는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내시고,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하면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동산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동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것을 알고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은 바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선악과를 내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시고, 순종함으로 아담의 영혼을 길러나가시기 위함이 목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순종함으로 길러서 연단시키고 장성시켜서 그 영혼을 길러 나가시려고 선악과를 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과는 유익을 위해서 내신 것이고 복을 위해서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망하겠기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살게 하기 위해서 선악과를 내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다 돌아다니면서 나무 실과를 먹다가 선악과나무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동산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만 살 수 있다’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므로 그 영혼으로 하여금 자라나게 만드시려고, 연단시켜서 길러나가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함으로 하나님의 낙원이 늘 계속되게 만드시려고 선악과를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선악과가 십일조의 근본입니다.

2) 멜기세덱에게 바친 아브라함의 소유 십분지 일 

그 다음에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14장 18-19절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에서 십분지 일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십일조가 나타났습니다.

3) 모세의 명령 

그리고 모세 때에 와서 모세오경 여러 곳에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라는 명령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이 내내 십일조를 드리며 내려왔고, 예수님 때에도 바리새교인들이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인과 의와 신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인’은 사랑이고, ‘의’는 하나님 앞에 옳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신앙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시면서 인과 의와 신도 행하고, 십일조도 버리지 아니하고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십일조

십일조를 통해 복을 많이 받게 됨

본문 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바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죄가 됩니다.

본문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은 도적질입니다. 그런데 온 나라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창고에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는데,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 창고에 들이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꼭 됩니다.

어떤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신다고 하였는데, 나는 몇 십 년 십일조를 드렸는데, 왜 이렇게 못 삽니까? 왜 하나님께서 복을 안 주십니까?”라고 물어왔습니다. 몇 십 년 예수님을 믿으면서 십일조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이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보니 그것을 드리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

온전한 십일조

그러면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온전한 십일조는 어려운 문제인데, 첫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되,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쳐야 합니다. 소득의 십분지 일을 바치라고 하셨으면, 십분지 일을 바치는 것입니다. 또 십분지 이를 바치라고 하시면, 십분지 이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치는 것입니다. 십 분지 삼, 십 분지 사, 십 분지 오를 바치는 사람도있는데, 하여간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바치되, 자원해서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아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24편 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땅과 하늘의 충만한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여호와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우리 몸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는데, 우리 몸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놓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시므로, 자기 몸을 자기의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자기 몸은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목숨도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을 제가 끊으면 살인죄가 됩니다. 자살이 살인죄입니다. 왜 살인죄인가 하면 제 목숨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끊었으므로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여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몸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 전체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 것은 절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나는 임시로 청지기로서 맡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나 재산이나 자기 몸이나 자기 목숨, 그리고 천지에 있는 것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청지기로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니,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무엇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보답할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우선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다 하나님의 것인 줄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셨으니 하나님의 명령대로 십일조를 드립니다’라고 하며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려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안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때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치고 십 분지 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남은 십 분지 구도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합
니다. 단지 우리는 청지기로서 건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남은 것으로 자기의 생활비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주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신 목적을 김 목사님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먹고 살라고 주셨고, 둘째는 믿는 일을 하라고 주셨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딱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재산은 쌓아놓고 숨겨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아놓은 사람에게 화가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야고보서 5장 1절에 보면 부한 자들이 울고 통곡할 날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 하나님의 것인 줄 믿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또 십 분지 일 이외에도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것인 줄로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에는 ‘온전한’이라는 말을 빼버리고 그냥 십일조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가 맞습니다. 성경 번역을 잘못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온전한 십일조에서 ‘온전한’이라는 말을 빼버리고 그냥 십일조라고 하면 십 분지 일밖에 안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로 해야만 전체가 다 들어갑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릴 때에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신 줄로 믿고 감사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십 분지 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이렇게 맡겨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생활하고 자녀교육도 시키며 무엇을 하든지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분수에 넘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남은 것을 가지고 그것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을 위해서 감사하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사용하라고 하시면 여기 사용하는 것이고, 저기 사용하라고 하시면 저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드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서 그 사람을 찾아오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시며,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하려 하시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려 하시고, 그 사람과 같이 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려고 애를 쓰시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재물을 주면 그 사람도 바로 되고, 또 믿는 일도 바로 됩니다. 그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도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뻐하시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것을 잘라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떼어먹고 뻔뻔스럽게 앉아 있는 사람은 회개하여야 합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사오니 내게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하며 먼저 십일조를 감사함으로 드리고, 그 다음에 십 분지 구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명령대고 사용하고자 합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마음이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좀 더 바치자 하는 생각이 또 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어나가도록 사용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서 그 사람에게서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눈이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손이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천사를 보내서 두루 진치고 악한 자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온전한 십일조 드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그래서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잘되도록 해주십니다. 창성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결과

본문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황충을 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토지 소산을 먹어치우러 오는 황충들을 하나님께서 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면 농사가 실패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가 없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중도에 실패가 없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나 죄만 짓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황충을 보내서 다 먹어치우게 만드십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포도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은 성공하려고 하다가 중간에 실패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공할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성공하겠는데, 그만 폭삭 다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입니다. 그것이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나 하다가 성공이 될 것 같은데, 그만 폭삭하고 주저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황충을 금하여 토지 소산을 먹지 않게 해주지 않으시면 그렇게 됩니다. 황충이 와서 곡식을 먹으면 당해내지 못합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 가운데 황충 재앙이 있지 않았습니까? 수백 만, 수천 만 마리의 떼로 날아와서 곡식을 먹어치우는데, 다 잡아 죽일 수도 없습니다. 수백 만 마리를 어떻게 다 죽입니까? 막 먹어치우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황충이 와서 먹어치운다는 것은 사업 하는 중간에 사람들이 속여 먹고 빼앗아 먹고 사기하러 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황충입니다. 부도가 나고 돈을 잘리는 것이 황충이 와서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막아주지 않으시면 다 먹히고 그만 두게 됩니다. 그런데 너희가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기만 하면 황충과 같이 네게 와서 먹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의 사는 땅을 아름답게 하심으로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열방이 그 땅을 복되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십니까? 황충을 금하여 그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계 열방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사람을 볼 때에 ‘우리도 저렇게 믿어야 되겠다’라고 하게 됩니다.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한다고 하였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
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창고에 양식이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기뻐하셔서 많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모든 면에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열방이 그 사람이 복을 받았다고 하며 다 우러러볼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3. 여호와를 대적하지 말라

본문 13-15절에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불신앙이며, 하나님께 심판 받을 죄를 짓는 것입니다.

4.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복을 받게 됨

본문 16-18절에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복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의 신앙 행위와 그 인격을 생명책에 기록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기념책’은 생명책과 같은 것입니다(계 20:12).

말라기 3:7-9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말라기 3:7-9

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본문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규례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를 가리키는데, 백성들이 열조의 날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아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규례 중에 지키지 아니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을 떠난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돌아가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말씀 하신 것은 마음을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돌아 오고 심령도 돌아와서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지 않는 것과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심판 받는 죄가 일곱 가지라고 하였는데, 그 일곱 가지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입니다. 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만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 제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는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여태껏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는 먼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 하지 않은 것,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한 것, 하나님을 힘입어 살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에는 ‘너희가 돌아오지 아니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항상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2. 십일조

본문 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기주의로 자기가 차지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십일조와 제물을 따로 바쳤습니다. 십일조는 레위 사람을 위해 사용되었고, 하나님께 바친 소나 양, 모든 감사 제물은 십일조 이외에 것으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모든 제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에 있는 것들은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24편 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땅과 사람이 전부 여호와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 또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고, 로마서 14장 7절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목숨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목숨을 끊으면 살인죄가 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바쳐놓고 남은 것은 다 자기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학개 1장 4절에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바치고도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그 다음에 자기의 집을 짓는 것은 괜찮습니다. 솔로몬도 성전을 지은 다음에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도 달랑 물질적으로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전부 바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해서 죽는 자도 없나니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주님의 뜻대로 이용당하는 믿음이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생활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늘 이렇게 기쁨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일조란 물질적으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놓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마음도 바쳐놓고 자기 목숨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입니다. 이제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합시다.

말라기 3:1-6 먼저 사자(使者)를 보내고 그리스도를 보내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먼저 사자(使者)를 보내고그리스도를 보내심
말라기 3:1-6

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2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4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1. 먼저 사자(使者)를 보내고 그리스도를 보내심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대로 성취하심

본문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사자를 앞서 보내서 그리스도가 올 길을 예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예수님보다 앞서 보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주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사자를 보내서 그 사자를 통해 그리스도가 온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사모하는 바이시고 언약을 성취하는 사자이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통해서 미리 전파해주시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와의 언약대로 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증거하시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시행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언제나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도를 연단시키심

본문 2절에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정결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택한 백성을 구원해주시고, 예수 믿는 사람을 연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해주시지만, 믿는 사람을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이, 또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이 연단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해주시는 역사는 이렇게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거저먹는 바였지만, 그 다음에는 반드시 믿는 사람을 연단시키시되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잿물로 천을 표백하는 것처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결케 해나가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본적인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으로 연단시켜나가십니다. 불로 금의 찌끼를 제거하고, 잿물로 천을 표백하는 것처럼 연단시켜서 점점 정결하고 깨끗한 성도로 만들어나가십니다. 우리가 여기에 잘 순종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참고 견디며 순종을 하면 연단이 됩니다. 불로 연단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연단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가지 시험이 올 때에 그 가운데에서 연단을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것이 올 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깨끗함을 받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의로운 제물

본문 3절에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라고 하였는데, ‘레위 자손’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지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모든 성도는 다 레위 자손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섬기는 사람을 깨끗케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이나 은과 같이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을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도가 믿음으로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저는 것, 병든 것, 토색한 것, 눈 먼 것, 흠 있는 것을 가지고 제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만 하겠습니다. 말라기 1장 8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병든 것, 저는 것, 토색한 것, 눈 먼 것, 흠
있는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것, 흠 있는 것, 눈 먼 것으로 드리는 제사는 오늘날로 보면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 힘을 다하지 않고 부득이하여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 전부터 미리 준비하고, 모든 것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성껏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연단시켜서 의로운 제사를 드리게 하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로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산 제사, 옹근 제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그것이 의로운 제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본문 4절에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옛날과 고대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아벨이나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이 성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쳐 제사를 드린 것처럼, 또 아벨의 제사와 노아의 제사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성도가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노아와 아벨과 같이 믿음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고대와 같이 하나님의 나
라인 영적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날에는 성도들이 영적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바르게 제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고대와 같이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자

본문 5절에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결케 해도 순종하지 않고 더러운 대로 계속 나가는 사람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어떤 자를 심판하십니까? 
첫째는 술수하는 자, 
둘째는 간음하는 자, 
셋째는 거짓맹세하는 자, 
넷째는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는 자, 
다섯째는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 
여섯째는 나그네를 억울케 하는 자,
일곱째는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술수’라는 것은 점하는 것, 사주팔자 보는 것 등을 말합니다. 손금 보는 것, 관상 보는 것이 다 술수입니다. 술수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고, 간음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고,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고,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고,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고, 나그네를 억울케 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에게 심판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약속대로 야곱의 자손을 소멸치 않으심 

본문 6절에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언약대로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야곱의 자손들, 즉 택한 백성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약속대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소멸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말라기 2:10-17 궤사(詭詐)를 행하지 말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궤사(詭詐)를 행하지 말라
말라기 2:10-17

10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13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15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16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17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1. 여호와께서 궤사 행하는 자를 책망하심

형제에게 궤사를 행함

본문 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불러서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한 아버지께서 창조하셔서 그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형제가 되었
는데, 서로 속이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며 집안이 잘되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서로 속이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조의 언약’이라는 것은 레위 언약을 말합니다. 말라기 2장 4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와 세운 언약은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이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언약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욕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함

본문 11절에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결’은 성전과 같은 말인데, 성전을 욕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종교에 빠진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방 신에 빠진 여자와 결혼하면 이방 신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여자를 첩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다가 결국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습니다. 이렇게 이방 신에게 빠진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나쁜 영향을 받아서 이방 신을 섬기게 되기 쉽습니다. 또 아내가 자녀들에게 이방 신을 섬기도록 가르칠 것이므로 온 집안이 마귀의 소굴이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4-5절에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자를 데려온 것이 화근이 되어 우상을 섬기는 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나뉘어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라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6장2-3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불신자인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120년 후에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됨

본문 12절에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 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깨는 자’는 능동적으로 죄를 짓는 자이고, ‘응답하는 자’는 피동적으로 죄를 짓는 자입니다. 능동적으로 죄를 짓는 자와 피동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다 끊어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방 신과 합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십니다.

말라기 2장 1-2절에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내와 이웃에게 궤사를 행치 말아야 함

본문 13-14절에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부간에 궤사를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맹약을 지키지 않고, 음란하고 방탕하며, 학대하고 이혼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입니다.

본문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능력이 많으실지라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시지만 일남 일녀를 지으셔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 경건한 자녀를 얻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6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결혼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갈라주시기도 전에 인간의 생각으로 이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 여호와를 괴롭게 하지 말라

본문 17절에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도리어 기쁨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자를 잘 봐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악행하는 자가 하나님께 기쁨이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분이 아니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을 괴로워하십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기 때문에 서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며 위로하고, 하나님의 집을 잘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말라기 2:1-9 레위인이 받은 제사의 언약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레위인이 받은 제사의 언약
말라기 2:1-9 

1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 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8너희는 정
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9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본문 1-2절에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
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묵상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요리 문답 제1문에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언행심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길을 간다든지 행동을 한다든지 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도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죄 짓는 일,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일, 싸우고 다투는 일이 없게 하고, 어떠한 희생이 와도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두고, 그 말씀대로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주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은 어떠한 희생이 와도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온전한 제물과 온전한 예배

본문 3절에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자’란 팔이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흠 있는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그 팔을 견책하고 그 희생의 똥을 얼굴에 발라서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1장 12-14절에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병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섬기는 일이 번폐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번폐스러운 것을 어떤 성경에서는 괴롭다고 번역하였는데, 하나님 섬기는 일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믿음이 타락한 것입니다.

믿음에 설 때에는 하나님 섬기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주일을 지키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주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타락하면 이기주의로 돌아가 하나님 섬기는 것이 번폐스럽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주일날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모릅니다. ‘주일날이 언제 올까?’하고 달력을 보면 하루가 지났고, 또 주일날이 너무 오지 않아서 얼마 있다가 보면 이틀이 지나 있습니다. 그렇게 한 주 지나는 것이 한 달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일이 닥치면 새벽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봉사하고, 그리고 예배 시간은 미리 준비 합니다. 요절도 다 외워가지고 갑니다. 처음 믿을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고, 주일날이 제일 즐거운 날입니다.
그런데 타락이 되면 ‘하나님 섬기는 것이 귀찮다, 괴롭다. 또 주일날이 왔다. 또 연보해야 한다. 또 무엇을 해야 한다’라고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믿음이 타락한 증거입니다. 또 ‘수요일 같은 날은 안 나가도 된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하면, 즐거움으로 자원하여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단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자기 힘대로 드려야 합니다. 조금 드려 놓고 다 가져왔다고 하지 말고, 힘대로 하여야 합니다. 고린도후서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색한 마음에 아까워하며 벌벌 떨면서 억지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흠 있는 제물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4절에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신명기 16장 17절에 보면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신명기 16장 10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네 힘대로 자원해서 즐거움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을 드리는 것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온전한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흠 있는 제사가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연보함을 돌리는데, 그 중에는 연보를 안 가지고 와서 손만 넣었다가 꺼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왜 상관합니까?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안 가지고 왔다고 할까봐 그러는 것인데, 사기꾼입니다. 여기 사기하여 드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하고,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온전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연보할 때 자기만 빠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연보할 때 왜 빠집니까? 연보할 때 빠지는 사람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번폐스럽게 생각하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멸히 여긴다고 하였는데, 하나님 섬기는 것을 경멸히 여기면 안 됩니다.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일찍 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예배 시간 얼마 전에 나왔습니까? 한 시간 전에 온 사람, 반 시간 전에 온 사람 등 여러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미리부터 나와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기도할 때, 예배 시간 참여할 때에 일찍 와야 합니다. 늦어지면 안 됩니다. 늦어지는 것은 옹근 제물이고, 옹근 제물이 되려면 늘 늦어지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미리부터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제사로, 자기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려야 합니다.

2. 레위와 세운 연약

레위 지파와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

본문 4-5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와 세우신 언약은 제사하는 언약입니다. 레위 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오고, 레위 지파가 제사를 드리는데 소나 양의 수컷이나 성한 것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 사함을 받는 속죄의 제사인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제사이며, 하나님을 찾고 교제하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과 평강을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언약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영적 생명이 살고 영적 평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육신의 생명도 살려주시고, 평강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사하는 언약은 생명과 평안을 주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레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에 정성이 없는 사람은 다른 것에도 정성이 없습니다.

레위의 법

본문 6절에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의 법 첫째는 레위와 세운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셋째는 진리의 법이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그 입술에 불의가 없으며, 다섯째는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살고, 여섯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일곱째는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레위의 법으로, 과거에 이렇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레위의 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것을 지키고,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다른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는 데에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도 9월부터 전도 시작인데, 많은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레위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레위의 언약을 지키지 않은 제사장은 멸시와 천대를 당함

본문 7-8절에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율법의 전문가인데, 그의 입술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그 입술에서 율법을 구하므로, 제사장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되어서 백성들에게 진리와
율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법대로 잘 섬기지 못하고 그 언약을 파하였습니다. 제사 드리는 데에 정성이 없습니다. 번폐스럽게 생각하고 저는 것, 병든 것을 갖다 드립니다.

본문 9절에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또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바로 하지 못하고 편벽되이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레위의 언약인 이 제사 드리는 언약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2017년 8월 29일 화요일

말라기 1:11-14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말라기 1:11-14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4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 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이방이 주께 돌아옴

본문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해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하나님의 이름이 커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세계 만방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많아질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깨끗한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깨끗한 제물로 드리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경멸하고 번폐스럽게 여기는 자들

본문 12절에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상을 더럽힌다는 것입니다. 또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경멸히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경멸히 여긴다는 것은 되는 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중히 여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벌벌 떨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되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되는 대로 하고, 바치는 것도 되는 대로 바쳐서 정성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성껏 하나님께 바쳐야 하겠는데, 되는 대로, 쓰고 남은 것이 있으면 바칩니다. 그리고 연보를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것도 여호와의 상과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을 경멸히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번폐스럽게 여깁니다. 번폐스럽다는 것은 귀찮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감사하게 여기지 않고 귀찮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번폐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봉사를 하라고 하면 단 마음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번폐스럽게 생각하여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여러 가지를 시켜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번폐스럽다는 생각을 하면, 일이 괴롭고 힘듭니다. 그리고 ‘안 했으면 좋겠는데’라고 하며 억지로 일하게 됩니다. 그것이 번폐스러운 것입니다.

연보에 대해서도 ‘지금 몇 가지 연보를 하고 있는데, 또 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며 번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연보를 몇 가지나 하고 있습니까? 십일조, 주일 연보, 선교 연보, 신학교 건축 연보, 후원 연보, 절기 연보 등 6가지입니다. 게다가 집사회 회비, 기도원 작정 연보를 합하면 모두 8가지입니다. 감사 연보도 있지만 감사연보는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연보를 여러 번에 걸쳐서 여러 가지를 하기 때문에 ‘번폐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옳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연보를 여러 번, 여러 가지로 하는 것을 모르고 연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연보를 하라고 하면 정성껏 다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여러 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달에 얼마씩 연보를 해도 합하면 조금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일 년에 얼마를 연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보를 일 년에 얼마 한다고 하는데, 왜 일 년 치를 갖다가 붙입니까? 지금 하는 것을 갖다가 붙여야 합니다. 밥 먹을 때도 “일 년에 몇 가마니 먹는다”라고 하면서 먹습니까? “물은 일 년에 몇 통을 마신다”라고 하면서 마십니까? 목이 마르면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이고 밥을 먹을 때도 끼니마다 먹는 것입니다. 일 년에 쌀 몇 말을 먹는지, 그것을 세고 밥을 먹습니까? 한 번 계산해봅시다. 일 년에 쌀 몇 말을 먹습니까? 아니, 쌀 한 말을 가지고 몇 끼나 먹습니까? 한 말을 가지고 한 달을 못 먹습니다. 한 달에 아무리 조금 먹어도 아마 소두 두 말이나 서 말은 가져야 먹을 것입니다. 그러면 일 년에 24말을 먹는데, 24말이면 2가마 반입니다. 그러면 밥 한 끼 먹을 때마다 ‘ 년에 두 가마니 반 먹는데, 이것은 그 중에 한 부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밥을 먹습니까? 마찬가지로 여러 번 연보하면 왜 합계를 내서 ‘전부 얼마를 낸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다른 것은 합계를 안 내는데, 왜 연보 낼 때만 합계를 냅니까? 그런 것이 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번폐스럽게 생각하고 경멸히 여기는 것입니다.

또 흠 있는 것, 병든 것, 눈 먼 것, 저는 것들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1장 8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눈 먼 것, 병들고 저는 것을 하나님께 가져다 바친다는 말은 요새 성도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어떻게 해당이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십일조가 조금일 때에는 다 바치지만, 십일조가 많아질 때에는 다 못 바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많으면 그것에서 한 절반만 바치고, 또 삼 분지 이만 바치는데, 그것이 병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주일날도 24시간을 온전히 바치지 못하고, 일부는 하나님께 바치고 일부는 자기 볼 일을 보는 데 씁니다. 그것도 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병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온전한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보통 연보할 때에도 인색한 마음으로 하거나 부득이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법

그러면 연보는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즐겨 내는 자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억지로 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은 병신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억지로 내는 것, 아까운 마음으로 발발 떨면서 하라고 하니까 부득이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병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연보는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자원해서 해야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상을 더럽히는 것이고, 병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형제와 화목하지 못하고 제물을 바치면 그것도 안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24-25절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하였습니다.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화목하지 않고 드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안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고, 저는 것을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이사야 1장에 보면 많은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오지만 하나님께서 안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제물이 합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1-17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시대 사람들이 제물을 많이 바쳤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안 받으셨습니까?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고 악한 사업과 악행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씻고 스스로 깨끗케 하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고 과부를 위해서 변호하라는 것입니다 악행을 그치라고 하였는데, 악행을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안 받으십니다. 흠 있는 제사, 더러운 것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기해서 돈을 벌어 하나님께 연보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 연보를 받지 않으십니다. 사기해서 바치는 것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서원을 사기하여 드리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음

본문 14절에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 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떼 가운데 수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안 드리고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드리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기해서 드리는 것을 받으시겠습니까? 또 레위기에 보면 음행해서 번 돈을 하나님께서 안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음란한 여자들이 음행해서 번 돈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안 받으십니다. 신명기 23장 18절에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일본에 한국 교회들이 있는데, 그 교인 중에 술집에 취직한 한국 여자들이 꽤 된다고 합니다. 술집에 가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게 돈을 벌면서 교회에 나와 연보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보하는 것을 좋아하는 목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면 교인도 많이 모이고 연보도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노 목사는 그런 여자들이 오면 “창기 노릇을 해서 번 돈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고 하면서 거기서 나오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술집에 있지 말고 나오라고 하면 나오는 여자가 혹시 있겠지만, 거의 대개는 다른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술집에 취직한 사람에게 거기에서 나오라고 한다고 나오는 것이 쉽겠습니까? 혹시 나오는 사람이 하나씩 있긴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을 용납하는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 앞에 흠 있는 것으로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또 돈을 정당하게 벌지 않고 사기해서 벌어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있는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임금이시므로, 하나님께 그런 것을 바치면 안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2017년 8월 28일 월요일

말라기 1:1-12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라
말라기 1:1-12

1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
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4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9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야곱과 에서의 비유를 통해 증명하심

말라기 선지자는 맨 마지막 선지자이며, 주전 440년에서 410년까지 사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400년간 선지자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경고인데, 경고와 경책이 비슷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하면서 반문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실 때에 무슨 사랑을 하셨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에서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아주 귀한 것을 알고 그것에 참여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고, 결국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고,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축복을 팔아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반문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데 왜 그 사랑을 모릅니까? 무엇을 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택하셨고 에서는 택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나를 택해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신 것만 해도 그분의 사랑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를 택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그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만 해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없었을 뿐더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 또한 없었습니다. 그는 다 황폐해졌고 그래서 다시 쌓았지만 하나님께서 또 헐어버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게 해주신 것,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해주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에서의 땅, 곧 에돔 땅과 같이 되지 않게 해주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에돔 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황무해지고 헐렸으며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었습니다. 돌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봐주지 않으시는 곳은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돌봐주시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된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같은 곳은 비가 안 와서 매년 흉년이 듭니다. 여러 해 동안 흉년만 듭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다른 나라를 통해 구제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흉년이 안 듭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이북에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목사들이 서로 싸웠는데, 총회나 노회를 할 때마다 이남파, 이북파 하면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3·8선으로 갈라놓으신 것 같습니다. 노회나 총회로 모여서 목사들이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릅니다. 얼마나 황무해졌습니까? 얼마나 비참해졌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해마다 흉년이 들지 않고 풍년이 들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아마 금년에도 풍년이 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을 알고 사랑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 가운데서 연단시키시고, 그 외에 여러 가지로 연단시켜나가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에서는 불택자인데, 에서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새벽 거리에 나가보면 청년들이 비틀비틀하면서 다닙니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방탕하고 술을 먹다가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자들입니까? 그들과 같이 되지 않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주시고 경멸하는 자를 경멸하심

장자의 명분이 아주 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복이고, 장차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이삭의 자손을 통해서 보내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하늘나라의 신령한 복과 구원의 복이 장자의 몫인데,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 먹는 것이 좋고, 물질이 제일이고, 배로 하나님을 삼아 먹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누구든지 경홀히 여기는 사람은 못 받습니다.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기시고, 경홀히 여기는 자는 결국 다 빼앗기고 맙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고, 경멸히 여기는 자를 경멸히 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사람은 경멸히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겨주시고 존귀한 사람이 되지만,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경멸히 여기시고 경멸히 여김을 받을만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귀히 여기지 않고 세상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멸시를 받도록 만드십니다. 또 사람 앞에서 경멸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존경하며 항상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절대 무시하지 못합니다. 자녀들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않고 경외하지 않으며 경멸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경멸히 여기십니다.
물론 인격 자체가 경멸히 여길만한 인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른사람들도 경멸히 여깁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해야 경멸히 여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시를 받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기를 멸시하고 자기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경외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면, 절대 사람이 무시하지 못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늘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누구도 이삭을 경멸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도 우리 아버지가 경외하는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그 또한 경멸히 여김을 받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면, 그 자녀도 멸시를 받지 않습니다. 자녀들도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부모를 존중하게 되며 존경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하나님을 시원찮게 섬기면 하나님께서도 시원찮게 여기셔서, 자녀들도 부모를 시원찮게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도 시원찮게 생각하게 됩니다. 에서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긴 것이 분명하니까 하나님께서 에서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경멸히 여김을 받도록 만드셨습니다.

에서와 같은 자를 영영한 진노에 처하게 하시므로 세상이 하나님의 위엄을 알게 됨

본문 4절에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에돔(에서 족속)이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황폐한 곳을 우리가 다시 쌓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이렇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존중히 여기며, 경외해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쌓으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헌다고 하셨습니다. 쌓으면 헐고, 또 쌓으면 다시 헐어버리십니다. 반복해서 쌓아도 하나님께서 계속 헐어버리시기 때문에 안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자기가 쌓으려고 해서 쌓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5절에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에돔의 심판 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크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멸시함

본문 6절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시하시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멸시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나를 멸시하고, 알아주지 않으며, 존경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덜 되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도 그를 존중히 여기지 않고, 존중 받지 못하는 인격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멸시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절대로 멸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데, 그 누가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존중 받지 못한 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아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잘됩니다.

3. 병든 제물을 드리지 말라

하나님께서 병든 제물은 받지 않으심

본문 7-9절에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눈먼 것, 병든 것, 저는 것, 더러운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 그런 것을 드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더럽지 않고 깨끗한 것으로 드려야 하는데, 왜 더러운 것을 갖다 드렸겠습니까? 또 양이 많아 괜찮은 것으로 드릴 수 있었는데, 왜 이런 것을 골라 드렸겠습니까? 하여간 그들이 눈 멀고, 절고, 병든 양을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너희 총독에게 그것을 갖다 드려보아라. 관리들에게 저는 것, 병든 것, 눈먼 것을 갖다 드리면 관리가 받겠느냐? 총독도 안 받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것을 받으시겠느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자신들은 좋은 것을 먹고 지내면서 왜 이런 행동을 했겠습니까? 아마도 병든 것은 팔아도 돈 몇 푼을 못 받으니까 좋은 것은 팔아서 돈을 벌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자고 한 것 같습니다. 결국 무엇이 목적이었습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 사랑입니다. 좋은 것을 가져다 팔아야 제 값을 받을 수있으니, 몇 푼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아마 돈을 받아서 무엇을 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돈이 첫째였고, 하나님 섬기는 것은 둘째 혹은 셋째였습니다. 돈이 먼저였고, 하나님 섬기는 것은 그 다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 바로 목적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자신들을 위해서 팔고, 병이 나고 절며 더러운 것은 하나님께 가져다 바쳤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과수원을 했는데, 목사님을 대접한다면서 과수원에서 썩은 사과를 가져온 적이 있었습니다. 벌레 먹고 썩어진 것만 있었는데, 잘한 것 같습니까? 그 사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수원 일을 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을 텐데, 좋은 것을 팔아서 비료 값도 물어주고 인건비도 물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좋지 않은 것은 팔아봐야 몇 푼 안 되니까 썩은 사과를 이곳, 저곳으로 선물한 모양입니다. 사방에 선물을 하면서 목사님도 좀 갖다 주라고 한 모양입니다. 사정을 아니까 나는 감사하게 먹었습니다. 맛도 있었습니다. 벌레 먹은 것이 더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바로 되었습니까? 몇 년 안 되어서 그 사람이 과수원을 다 팔아치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과는 없습니다.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기 돈 버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둘째, 셋째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것뿐입니까? 우리도 좋은 것을 자신을 위해 먼저 사용하고, 좋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도 첫 시간은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느라 새벽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쓸데 없는 일에 이것 저것 다 써버리고 마지막에 가서 남은 찌꺼기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정성을 드리지 않는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처음부터 정성을 다해 첫 번째, 첫 열매, 첫 시간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병든 것, 눈먼 것, 절름발이는 온전한 것이 아닌, 병든 제사를 말합니다. 희생으로 드린다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물이 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됩니다. 그런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고 신령이 빠져나간 제사, 또 진리가 빠져나간 제사는 병든 제사, 절름발이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는 신령과 진정을 합해야 합니다. 그렇게해야 두 눈이 다 있는 것입니다. 신령이 없는 제사, 진리가 없는 제사는 병들고 눈먼 것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절름발이 제물인데, 절름발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신령과 진정, 이 둘이 다 있어야 합니다. 하나가 없으면 절름발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미리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오전에는 나왔다가 오후에는 빠지고, 삼 일 예배에 빠지는 사람은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빠지지 말고 온전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서 온전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자신이 흠 없는 제물이 되고, 정성을 다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함

본문 7절에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상을 경멸히, 가볍게, 시원찮게, 하찮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상을 첫째로 생각하고 존중히 여겨야지, 왜 경멸히 여깁니까? 주의 상을 존중히 여겨야 할 것 아닙니까? 자기를 존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을 경멸히 여긴다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통째로 드려야 합니다. 좋은 것은 자기가 다 먹고 찌꺼기와 병든 것으로만 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연보도 다 쓰고 남는 것으로 가져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쓰기 전에 하나님께 바칠 것을 먼저 준비해놓아야 합니다. 남은 것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성경에 남는 것으로 연보하라고 하였습니까? 무엇이나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제사도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자신이 흠 없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첫째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는데, 그렇게 열심히 믿을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일생동안 믿을 텐데, 그렇게까지 하나님께 다 바칠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경멸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없어질 것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존귀히 여기며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이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자기도 존귀해지는 것이며, 복 받는 길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바치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병든 것, 절름발이, 눈 먼 것으로 가져다 바치는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온전한 제물로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온전한 제물, 산 제물로 바쳐져야 하겠습니다.

4. 이방이 주께 돌아옴

본문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세계 각처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깨끗한 제물을 드리고 분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깨끗하지 못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제거시키십니다.

5.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본문 12절에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섬기기를 경멸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을 지키지 않고, 경건하게 드리지 않으며, 인본주의와 인간의 감정주의로 손뼉을 치면서 하나님의 단을 더럽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요새 인간의 감정을 만족시키려고 음악가에게 돈을 주면서 음악을 하게 하고, 또 춤추게 하는 교회가 많다고 하는데, 얼마나 한심합니까? 믿지 않는 사람을 데려다가 강단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성경말씀보다 세상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병든 것으로 강단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단을 더럽히고 경멸히 여기는 행동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경멸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경멸히 여기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도 경멸히 여김을 받게 되고 더러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지극히 높여서 ‘나를 사랑하는 자가 여기 있다’고 해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