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심
말라기 4:4-6
말라기 4:4-6
4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1.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심
본문 4-6절에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
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호렙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받고도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다시 기억 하게 하시고 회개시켜서 앞으로 올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23절에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진리를 힘써 배워서 지키고 믿음을 팔아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날을 가리키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모두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이 큰 능력 있는 선지자를 보내서 백성들을 회개시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말씀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0-12절에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는 말씀대로 엘리야가 먼저 온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엘리야가 안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답변하셨습니까?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이미 왔는데,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4절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였습니다.
2. 세례 요한이 엘리야임을 아는 방법
예수님께 물어보면 알 수 있음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옛날에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와서 그 길을 준비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아직 오직 않았으니, 그리스도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엘리야가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왜 몰랐습니까?
요한복음 1장 19-22절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냐고 물어 보았을 때, 세례 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으니 나는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이 자신이 엘리야라고 하면 알겠는데,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알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말라기 4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400년 전의 선지자인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분명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어봤을 때 세례 요한이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엘리야가 아직 안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언의 말씀은 알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모든 예언이 희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명백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림자로, 상징적으로, 비유로 되어 있어서 구약의 예언은 신약의 사람들이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예언한 말씀대로 됩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난당하시는 것도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기 힘듭니다. 선지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배워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나면 그 말씀이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임을 알게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린다는 것도 구약 스가랴에 있는데, 그것도 희미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스가랴 11장 12절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고 하였습니다. ‘고가(雇價)’는 일한 삯인데, 그리스도께서 은 삼십에 팔리신다는 것이 명백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스가랴 13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양이 흩어진다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희미하게 되어 있어서 이것만 보고는 그 뜻을 잘 모릅니다.
은 삼십에 대한 예언,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명확하게 밝힌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많이하면 압니까? 기도를 하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알려줍니까? 본인에게 물어보니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습니까? 예수님께 물어봐서 안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그리스도가 온다고 하였는데, 아직 엘리야가 안 왔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엘리야가 왔다.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고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물어
보면 압니다. 그전에는 모릅니다.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은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봐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시기 전에는 절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요새는 예수님께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니까, 구약 성경을 보고 잘 모르는 것은 신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신약 성경을 읽는 것이 예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명백하게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령 고가를 은 삼십으로 달라고 했다는 것도 신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전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진다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오늘 저녁에 내가 잡히면 양이 다 흩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예수님께 대한 말씀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사야서에 예언한 말씀도 신약 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하고, 신약을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은 구약이 밝혀주고, 또 구약은 신약이 밝혀줍니다. 그러므로 둘을 한꺼번에 알지 않으면 바로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새는 신약시대이니까 구약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신약을 바로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하고, 구약을 바로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보면 압니다. 그전에는 모릅니다.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은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봐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알게 해주시기 전에는 절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요새는 예수님께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니까, 구약 성경을 보고 잘 모르는 것은 신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신약 성경을 읽는 것이 예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명백하게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령 고가를 은 삼십으로 달라고 했다는 것도 신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전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진다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오늘 저녁에 내가 잡히면 양이 다 흩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예수님께 대한 말씀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사야서에 예언한 말씀도 신약 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하고, 신약을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은 구약이 밝혀주고, 또 구약은 신약이 밝혀줍니다. 그러므로 둘을 한꺼번에 알지 않으면 바로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새는 신약시대이니까 구약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신약을 바로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하고, 구약을 바로 알려면 신약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3.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하는 일이 같음
세례 요한의 하는 일
그러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것은 무엇을 보고 압니까? 하는 일을 보고 압니다. 엘리야가 하는 일과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은 엘리야라고 하지 않았어도 엘리야가 하는 일과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이 같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엘리야인 줄을 어떻게 압니까? 먼저 예수님께 물어봐서 알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을 봐서 압니다. 그러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회개 운동, 바로 세우는 운동을 세례 요한이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하는 일을 했고, 엘리야의 심령과 재능으로 왔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길잡이가 된다고 하였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잡이가 된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요새도 말세에 엘리야가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6절에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두 선지자가 나왔는데, 한 사람은 물을 피가 되게 하고, 다른 사람은 예언의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에서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한 선지자는 모세입니다. 또 예언의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 선지자는 엘리야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예언했듯이 말세에 엘리야와 모세가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안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께 물어봐야 압니다. 성경의 한 구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경을 봐야 합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재능으로 왔으니 영적으로 보며 알고, 하는 일을 보고 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아니라도 엘리야의 심령과 재능을 가지고 와서 엘리야가 하는 일을 계속 하면 그는 엘리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길잡이, 회개 운동을 하는 것을 봐서 세례 요한이 분명 엘리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하는 일은 인륜 도덕의 회개 운동임
타락이 되고 죄만 지으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서로 떠나 있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있지 않고, 악하게 나가니까 아버지의 마음도 아들에게서 떠났습니다. 그것을 엘리야가 와서 회개시킨다는 것입니다. 인륜 도덕이 무너져서 부자(父子)간의 도, 부부(夫婦)간의 도, 군신(君臣)간의 도, 붕우(朋友)간의 도가 무너졌습니다. 도가 무너지니까 말세에 서로 미워하고 잡아먹으며 원수가 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것을 회개시켜서 원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은 인륜부터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 운동으로 사람들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부자지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친구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부부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형제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엘리야의 운동은 모든 인륜을 회개시키는 회복 운동,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덕을 회복시키는 것이 첫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개 운동, 구원 운동을 하심
그리고 한 단계 더 나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 운동은 사람에게 잘못한 것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성도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만들고, 사람에게로 하나님의 마음이 돌아가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도로 찾아오시는 운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 운동을 하였고, 예수님께
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죄를 생각나게 했는데, 특별히 사람 사이에 지은 죄를 많이 생각나게 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어볼 때에 뭐라고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3장 3-14절에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특별히 회개 운동을 일으켰는데, 주의 길을 예비하는 회개 운동을 하였습니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골짜기라는 것은 마음의 깊은 욕심과 같은 것이고, 산은 교만입니다. 작은 산과 높은 산이 낮아집니다. 굽은 것은 양심이 굽어진 것인데, 마음이 구부러진 것이 곧아진다는 것입니다. 험한 길이 평탄해진다는 것은 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회개하고 평탄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세례 요한은 특별히 사람의 인간적인 죄, 도덕적인 죄, 인륜적인 죄의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죄는 인간적인 죄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아비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아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킨다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과 원수진 것, 서로 막힌 것, 욕심, 교만, 정한 세 외에 더 받은 것, 참소한 것, 원망한 것을 회개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나님께 접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들을 찾아오시고, 대신 피 흘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포도나무에 접붙이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잘못을 회개해야 하지만, 사람에 대한 잘못도 회개해야 합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에 대해 양심을 바로 써야 하고, 모든 생활면에서 양심을 바로 써야 합니다. 바로 하지 못하면 죄입니다. 부모 공경을 바로 해야 하고, 자녀들에 대해서도 바로 해야 하는데, 먼저는 바로 하지 못한 것이 죄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 엘리야, 세례 요한이 와서 하는 일입니다. 인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접을 붙이고, 그 생명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생명의 세계로 들어감
본문 5절에는 예언적인 요소가 있는데,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세상 종말’을 가리키기도 있습니다. 말세에 가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엘리야와 같은,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서 회개 운동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 운동을 특별히 일으키시는 때가 있습니다. 전에도 큰 시험이 올 때마다 먼저 회개 운동을 일으키신 후에 시험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큰 전쟁이 나기 전에 먼저 회개 운동을 일으키시고 그 다음에 전쟁이 난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의 역사가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을 보내서 모든 성도에게 회개 운동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1절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발로 일어선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회개 운동을 일으키시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늘로 데리고 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고, 회개하면 그리스도께로 돌아갑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회개해서 하나님으로 사는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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