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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4일 월요일

미가 7:1-20 죄악을 사유하시고 사랑을 입혀주시는 하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죄악을 사유하시고 사랑을 입혀주시는 하나님
미가 7:1-20

1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2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4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찌어다 6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7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8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9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3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 14원컨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옵소서 15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 16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려서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오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1. 의인이 끊어지고 세상이 악해짐

이제 악한 세상이 되어 믿는 사람을 핍박하여 믿음을 지키기 힘든 때가 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데, 이 미가서는 그러한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실과를 딴 후에 먹을 것이 없고, 포도를 거둔 후에도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무화과가 없다는 것은 재앙이 임했기 때문에 실과나 포도나 무화과의 먹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와 같이 장차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없어져서 궁핍 당할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2절에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선한 사람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악한 세상이 되어 정직한 자가 없고, 서로 잡아 죽이려고 매복하며, 형제를 잡으려고 두 손으로 부지런히 악을 행합니다. 이렇게 험악한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해서 뇌물을 받는 데만 급급합니다. 뇌물을 주면 어떤 사람이라도 도와주고, 악한 자라도 의롭다 하며,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아무리 선한 자라도 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재판장들이 다 썩어서 뇌물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군장들, 정치가들도 다 뇌물을 구합니다.
대인은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 권세를 잡은 사람,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악한 사욕으로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뇌물을 받으려 하고, 자기의 유익만 구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선한 사람이라도 가시와 같아서 찌른다는 것입니다.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다고 하였습니다. 선한 자, 정직한 자라고 해도 꾹꾹 찌르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손해를 줍니다. 이렇게 악한 세대는 선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믿는 사람들에게 가시 울타리와 같이 신앙의 손해를 줍니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형벌의 날이 임할 때에는 험악한 세상이 됩니다. 악한 자가 권세를 잡고, 모든 사람이 악한 자에게 아부하며, 서로 잡아 죽이는 악한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벌의 날에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재앙이 옵니다.

지금 제주도에 태풍이 왔다고 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그리고 재앙이 임할 때에는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또 이 세대가 악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재앙이고, 악한 사람이 권세를 잡아서 세상의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악한 자가 권세를 잡으면 그것에 협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믿음을 지키기가 아주 힘듭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악해집니다.

본문 5절에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날에 이웃을 믿지 말고,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같이 사는 여자에게도 입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이웃에게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잡혀가는 일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친구라고 해서 그 친구를 의지하다가 벌을 받고, 여인에게 얘기한 말이 돌아서 형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세대는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고,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합니다. 사상이 달라지면 이렇게 식구끼리도 서로 대적하게 되는데, 한 사람은 공산주의가 좋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자유주의가 좋다고 하면 대적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이북에서 한 식구끼리 대적을 만들어서 잡아 죽인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믿지 않는 식구가 멸시를 하고 대적을 해서 미워하고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식구라도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38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
였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이렇게 원수가 되는데, 그럴 때에도 예수님만 사랑하고 따라가며 신앙을 양보하면 안 됩니다. 다른 교단 교회에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 남편이 우리 교회에 나가면 이혼을 하자고 했답니다. 다른 교회에 가면 자기도 교회에 나가고 창광 교회에 나가면 이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교회로 옮긴 집사가 있었는데, 본인의 생명이 없어지니까 남편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몇 주간 교회를 나가다가 남편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그 집사만 그 교회에 계속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한 사람에게 “신앙을 양보하면 죽는다. 양심을 버린 자는 믿음이 파선된다. 절대 양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혼하자고 하면 절대 하지 말고,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가야 한다고 해라”고 말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기시지, 마귀가 이기겠습니까? 결국 남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은 허락하였는데, 이번에는 연보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에는 남편이 번 돈으로 하지 말고, 자기에게 쓰라고 주는 돈을 가지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길러 주고, 살림을 해줬기 때문에 돈을 쓸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의 식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려고 할 때에 자기 집안의 식구까지, 친구까지 원수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양보하지 말고, 굳세게 서 나가야 합니다. 예배당에 가지 말고 주일에 놀러가자고 할 때에도 굳세게 서야 합니다. 만약 양보하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신앙 양심을 버리는 것인데,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지 않으십니다.

2. 환난 중에서도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는 소망이 있음

본문 7절에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구원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군장, 재판장, 대인, 세상의 정직한 자들이 다 끊어졌으니, 바라볼 것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웃, 친구, 가족도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구원만 믿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로 믿고 부르짖으며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본문 8절에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빛이 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곳에 있어도 하나님의 빛을 비춰주시며 엎드러져도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9절에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범죄로 인해서 주께서 노하시고 심판하시지만 신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원하시기까지의 한도가 있는데, 그 한도까지만 노와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도가 다 끝나면 주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범죄한 다음에는 주님의 진노와 징계가 오는데, 그 기간이 얼마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도까지입니다.
누구나 다 ‘까지’, 곧 한도가 있는데 죽을 것 같아도, 기한이 있습니다. 일이 다 틀어졌어도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한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광명으로 인도해 주시고, 의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는 ‘까지’의 한도가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욥도 죽을 것 같았지만 한도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복을 배나 더해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광명으로 비춰주시고, 의로 인도해주실 때에는 대적이 부끄러워합니다. 대적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며 핍박하던 자인데, 그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원수들이 핍박하고 대적하며, 흑암으로 몰아넣지만, 하나님의 한도까지가 되면 하나님께서 광명으로 비춰주시고 의를 입혀 주시며, 원수들로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또 거리의 진흙같이 밟힐 날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13절에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 질 것이라 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징계를 받아서 다 없어진 것 같지만, 성벽을 건축하는 날이 오고, 그 지경이 넓혀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이 바다에서 저 바다, 앗수르에서 애굽, 애굽에서 하수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고, 원수의 땅은 황폐해집니다.

3. 선민의 구원과 원수의 멸망

본문 14절에 “원컨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양떼를 먹여달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양 떼를 먹여주시고, 지팡이로 인도해주십니다.

본문 15절에 “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 바다를 가르신 기사를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려서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열방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그 손으로 입을 막고 귀는 막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 망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잘되니까 손으로 입을 막고 그 귀는 막히게 됩니다.

본문 17절에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벌레처럼 비천해지고, 좁은 구덩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벌벌 떤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15-17절에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입을 뱀처럼 땅에 대고, 벌레처럼 기며, 좁은 구멍에서 나오듯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4.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

본문 18절에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주님이 이와 같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죄를 사유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노를 품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광명으로 인도하시고, 의를 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지만 언제나 기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한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죄악을 사유해주시고, 남은 자의 허물을 넘겨주시며, 제거해주십니다.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본문 19절에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등 뒤에 던지신다고 하였는데, 이사야 38장 17절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물건을 등 뒤로 던지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죄를 등 뒤로 던지셨다는 것입니다. 또 죄를 발로 밟았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죄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우리의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죄를 깊은 바다에 던져 안 보이게 하시고, 발로 밟아 보이지 않게 하시며, 등 뒤에 던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고, 긍휼이 풍부하시며, 죄를 사유해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다시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0절에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의 족속, 유다 백성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인애를 더하십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믿음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것을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복으로 내려주십니다. 우리에게 성실을 베푸시고, 인애와 사랑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