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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1일 수요일

출애굽기 34:27-35 모세 얼굴의 광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 얼굴의 광채
출애굽기 34:27-35

2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28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29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33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34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1. 모세가 40일을 금식함

본문 2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는 말씀을 보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모든 계명, 율법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출애굽기 마지막에도 율법을 많이 기록했는데, 하나님께 제사하는 법, 절기 지키는 법, 하나님을 섬기는 법 등 하나님께서 율법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기록하라는 말입니다. 기록해서 후대에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금식 기도를 한 것입니다. 첫 번째도 40일 금식 기도를 하였고 이번에도 사십 일 사십 야를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에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40일 금식 기도 하는 사람 중에 물을 마시면서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물까지 안 마시는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금식 기도하면 웬만한 사람은 당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경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특별히 은사를 주신 것 같습니다. 떡과 물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해주신 것 같습니다. 물을 마시면서 40일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그래도 40일 금식 기도하다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육체가 먹어야 살게 되어 있는 데, 안 먹으면 몸이 감당하지 못해서 죽는 것입니다.

신일교회 장로 한 분이 있었는데, 삼각산에 가서 40일 금식 기도하다가 40일 다 마치고 내려가는 중이었답니다. 그때 황기정 목사 어머니 송 권사가 있었는데, 가서 금식 기도할 때에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세 가지라고 하더랍니다. 예배당 지을 때 빚진 것 갚아달라는
것과 자기 딸 바로 서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남북 통일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송 권사가 듣다가 하나도 쓸데 없으니 그만두고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가 마귀가 왔다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송 권사가 도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런
데 40일 다 끝마치고 내려왔는지 채 마치지 못하고 내려왔는지 잘 모르지만 내려와서 곧 세상 떠나면서 '송송송송...'하면서 떠났습니다. ‘송 권사 말을 듣지 않아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송 권사 말을 듣고 내려왔으면 안 죽었을 것인데, 40일 금식 기도하고 바로 죽었습니다. 또
27일간 금식 기도하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부산에서도, 경기도 광주에서도 주야 27일간 기도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또 경기도 광주에도 한 사람 금식 기도하다 죽었습니다. 허영심을 가지고 ‘무조건 금식 기도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다가는 중간에 가서 죽습니다. 또 40일 금식기도라는 것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고 또 모세가 한 것인데, 보통 사람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금식 기도를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40일 금식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나타나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40일 금식 기도하고 돌판 둘을 손에 들고 내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을 새긴 돌 판이 크고 무거웠을텐데 양손에 하나씩 들고 내
려왔고 또 내려와서도 하나님 말씀, 산에서 받은 것을 다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금식기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0일 금식 기도한 사람은 반드시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광고하고 다닙니다. ‘40일 금식 기도했다’ 하고 그것으로 한 몫 보려고 합니다. 40일 금식 기도한 사람 가운데 자랑하지 않은 사람은 열에 한명이나 있을까 말까 하고 대개는 열 사람 가운데 아홉 명은 자랑합니다. 자랑하는 자체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했지 어디 자기 금식 기도한 것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손해가 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금식 기도 안 한 것만 못합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그것 내세우고 한 몫 보려고 합니다.

금식 기도는 며칠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식 기도하는 목적이 자기 자랑하려는 것이라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무슨 큰 은혜 받아서 큰 일 하겠다는 것, 그것도 시험에 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일 하라고 하시면 작은 일 하고, 큰 일하라고 하시면 큰 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지 무슨 큰 은혜를 받아서 큰 일하겠다는 것은 허영심이고 교만입니다. 허영심은 가다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IMF를 맞게 된 요인 중에 하나는, 한국 사람들이 허영심입니다. 무엇을 크게 하겠다는 것, 많이 하겠다는 것, 자랑하는
것 등 말입니다. GNP 만 불( )일 때는 ‘조금 있으면 2만 불이 된다, 우리가 3만 불이 된다, 선진국에 들어간다’라고 하면서 자랑하고 돌아 다녔습니다. 대통령도 외국에 나가서 이렇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선진국이 되고, 다른 나라 도와준다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속은 텅텅 비어 IMF를 겪게 되었습니다.

자랑과 허영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 보이려고 옷도 외국제 사서 입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사실 실력이 없는데 괜히 단장하고 허영심으로 다니다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옷을 잘 차려 입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돈을 여간해
서는 안쓰는 구두쇠지만 대만이 외화보유량이 세계적으로 굉장하다고 합니다. 대만은 어디 가서 ‘선진국이다’ 하고, 잘 사는 것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금식 기도 조금하고는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 모세 얼굴의 광채
본문 29절에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
굴에 광채가 났는데 모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30절에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무서워했습니
다. 광채가 남으로 감히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본문 31-32절에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했는데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먼저 모세에게 왔습니다. 또 모세가 그들에게 말씀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했습니다.

본문 33절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말할 때에는 가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는 것을 백성들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말을 다 하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광채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고 했습니다.

본문 34-35절에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말씀을 다 전한 다음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 광채가 났는데, 모세 얼굴의 그 광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보았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다 전한 다음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하나님께 들어갈 때에는 다시 벗었습니다.

3. 율법의 영광과 복음의 영광

고린도후서 3장 7-8절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의 직분’은 ‘복음’입니다. 그리고 ‘의문의 직분’은 ‘율법’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습니다. 의문은 율법입니다. 즉 이 말씀은 율법을 받아서도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인 이 복음의 직분이야말로 얼마나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9절에도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계명은 정죄의 직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의 직분은 복음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이다, 죄졌다’하면서 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셔서 죄를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전에는 탐심이 죄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탐심이 죄다’라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 줄 알게 되고 ‘우상 섬기는 것이 죄이다’, ‘부모 공경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이런 것들을 다 알게 해 주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또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못해도 용서해주고 오래 참으면서 성경 말씀대로 가르쳐 줘야합니다. ‘정죄의 직분’은 율법에 대한 직분, ‘영광의 직분’은 복음
의 직분입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것은 의의 직분인데, 더욱 영광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0-11절에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광되었던 것’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더 큰 영광을 인하여’에서 ‘더 큰 영
광’은 ‘복음’입니다. 구약시대에 영광되었던 율법, 모세의 율법이 ‘더 큰 영광’, 즉 ‘복음’을 인하여 영광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11절에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에서 ‘없어질 것’은 무엇입니까? 의문의 광채, ‘율법’입니다. 율법은 의문에 속한 것입니다. 의문의
영광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에서 ‘길이 있을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복음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없어질 것이 아닙니다.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4. 완고한 백성들을 위해 율법의 영광을 보존함
고린도후서 3장 12-15절에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왜 수건을 썼다고 했습니까?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답이 있습니다.

말씀을 다 전하고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쓰고 있다가 하나님께 들어갈 때는 수건을 벗었다 하였는데, 왜 수건을 쓰고 있었습니까? 얼굴에 광채가 나서 다른 사람들이 눈이 시려 얼굴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얼굴을 씌운 것이 아닙니다. 보통 그렇게 많이 압
니다.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라는 말을 듣고, ‘모세 얼굴에 광채가 너무 밝으니 눈이 시려서 얼굴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잘 보지 못할까 봐, 눈이 시릴까봐 얼굴을 가렸다’, 보통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말씀 전할 때는 수건 안 쓰고 다 전했습니다. 그런데 다 전한 다음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말입니다. 왜 가렸냐면, 모세 얼굴에 광채가 차차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차 없어지고 희미해지고 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모세 얼굴에서 광채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없어지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광채가 나는 그대로 말씀을 전해 놓고는 없어지게 되어 있으니 그것을 안보이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광채가 날 때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내가 이만큼 광채가 난다, 이렇게 전했다가 차차 없어지니 그것
을 못 보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광채가 날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다 보여주고 차차 없어질 때에는 안 보이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잘 되었습니까?
모세가 광채 나는 얼굴만 보이기 좋아하고 없어지는 것을 보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위신이 떨어지겠으니 그것을 안 보이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린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렇게 외식하고 좋은 것만 보이고 좋지 않은 것을 안 보이려고 했을리가 없습
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감추었겠습니까? 먼저는 모세가 율법을 받고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자신의 심령 속에 새김질하고 율법으로 즐거워했기 때문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즐거워하고 율법으로 광채가 나던 것은 차차 그 광채가 없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다 완성해 놓으십니다.

그러므로 의문에 속하던 것은 그리스도에게까지 가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지는 것을 안 보이게 하려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율법의 광채가 없어지는 것을 백성들이 보면 그 율법을 귀중히 여기겠습니까? ‘광채가 조금 가면 없어지겠다’, 없어질 것을 알면 백성들이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그대로 지키지 못할 염려가 있습니다. 율법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장차 없어질 것이 사실인데 백성들이 없어질 것을 미리 알면 그대로 순종하지 않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장차 없어질 것이지만, 그것을 안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은 광채가 나니 지금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없어질 것은 생각하지 말고 광채가 나는 율법을 받아서 이대로 잘 지켜 너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라, 없어질 것은 안 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광채 없어지는 것을 안 보였다는 말입니다. 보일 때가 옵니다. 수건을 벗을 때가 옵니다. 언제 벗는다고 했습니까?

고린도후서 3장 14절에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
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어지리라’, 여기 보십시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면 그 수건이 벗겨집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수건이
오히려 있습니다. 안 없어집니다. 수건이 그 얼굴에서 안 없어지고 오히려 벗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도 모세 얼굴에서 수건을 벗기지 않고 있다는 말은 율법만 귀중한 줄 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광채만 즐거워하고 율법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건이 오히려 아직 안 벗겨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율법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만 할 뿐, 결국 그리스도만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놓은 다음에 율법은 이제 없어지는 것입니다. 의문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광채, 복음의 광채, 율법의 직분의 영광, 복음의 직분의 영광’이라고 했는데, 모세가 왜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까? 율법을 받아서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새김질하며 감사하고 기뻐했기 때문에 광채가 난 것입니다. 모세가 그때에 율법을 받아서 얼마나 귀중히 여
기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을 때에 얼마나 즐거워했겠습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한 여호와라, 네가 이 말씀을 지키면 수천 대까지 복을 받는다’라고 하실 때에 얼마나 즐거워했겠습니까?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에 굉장히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십계명이 얼마나 좋고 유월절 지키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또 오순절 지키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장막절, 수장절 지키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또 범죄하면 소나 양을 잡아서 죄를 사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데, 그것이 또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모세가 그 율법이 너무 좋아서 율법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고 늘 생각하고 새김질하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귀중한 것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말씀으로 감사하고 늘 즐거워했기 때문에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말입니다.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면 얼굴에 빛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조금 있으면 없어집니다.

5.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가는 복음

그런데 이 복음의 직분의 광채는 영원히 안 없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서 즐거워하고 복음을 받아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복음을 받아서 묵상하는 이것들이 얼굴에 얼마나 광채가 나게 합니까? 또 복음을 전하는 직분은 광채가 얼마나 납니까? 이 복음 전하는 직분이 말
로 다 할 수 없는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창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해서 택해주셨다’는 말씀만으로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한 마디만으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또 ‘중생시켜 주셨다, 새 생명을 주셨다, 하늘에 올라가 앉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광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주신다’,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즐거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운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우리가 사랑 받을만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받을만합니까? 받을만하지 못합니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하고 악하고 가증하고 더럽고 미련한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참으로 돼먹지 못했습니다. 못돼 먹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만 생각하고 죄만 생각합니다. 이기주의자들이고 욕심쟁이들이고 혈기 부리다가 싸움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 하겠습니까? 참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남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우리의 자격을 볼 때에, 자신을 볼 때에 한심한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사랑하셨습니까? 창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해서 택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택해주시고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
나님께서 아들로 삼아 주셔서 우리가 아들입니다. 창세전부터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한심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심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한심한 것을 신부로 삼았어도 데리고 가십니다. 시골 구석의 시꺼멓고 게달의 장막 같이 볼품없고 한심한 것을 신부로 삼아 놓았습니다. 그래도 신부 삼아 놓았으니 주님이 이제 데려갈 것 아닙니까? 데려가십니다. 꾀죄죄하고 시골뜨기에 아무 보잘 것이 없어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로 삼아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삼아 놓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히 삼아 놓으셨습니다. 혼인 신고 해 놓았습니까? 혼인 신고 다 해놓았습니다. 그러니 데려갈 것은 정해놓은 것 아닙니까? 자기가 신부로 삼아 놓았는데 안 데려가겠습니까? 데려갈 때는 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내가 한심한 가운데 있지만 이제 시집간다, 누구에게 가느냐? 만왕의 왕한테 간다, 이제 우리 신랑 되는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러 오신다’, 그리고 이제 시집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복음의 직분, 복음에 참여한 것,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항상 즐겁다는 말입니다. 생각만 하면 항상 즐겁습니다. 모세 얼굴의 광채보다 우리 얼굴의 광채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없어집니다. 영원히 안 없어집니다. 복음 전하는 직분도 얼마나 좋습니까? 영광의 복음을 전해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고 다른 사람을 구원의 세계로 인도하니 이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생각해보십시오. 복음 전하는, 복음의 직분이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직분도 영광스러워서 얼굴이 환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율법을 가지고 생각하며 새김질하며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또 율법의 직분, 전하는 직분 이것을 더욱 영광스럽게 생각해서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율법이 차차 없어지겠으니 그것을 안 보이려고 가렸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직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세 얼굴의 율법의 영광은 없어졌습니다. 그 영광이 차차 없어졌지만 우리는 영광에서 더 큰 영광으로 올라갑니다. 어디 그랬습니까?

고린도후서 3장 17-18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영광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릅니다. 더 큰 영광으로 이르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영광은 점점 커집니다. 안 없어집니다. 수건으로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가 더 큰 영광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고 영광의 직분, 복음 전하는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잘 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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