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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8일 토요일

사무엘상 14:1-7 하나님만 믿고 가 보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만 믿고 가 보라
사무엘상 14:1-7

1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2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1. 요나단이 블레셋 군을 침

본문 1-3절에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로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2절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삼천 명을 정규군으로 빼서 이천 명은 사울과 함께 있게 했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천 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한 요나단

사무엘상 13장에서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먼저 쳤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3절에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라고 하였는데 블레셋 수비대를 이스라엘 땅에 두고 블레셋 나라가 이스라엘을 관할하였는데 요나단이 먼저 블레셋 수비대를 쳤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나라 군대가 올라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사무엘상 13장 5절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자기 수비대를 쳤다는 말을 듣고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 숫자가 소수인데 블레셋 원수의 군대는 많이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위급함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서 굴과 수풀과 바위와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서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3장 17-18절에 “노략군들이 삼 대로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이르렀고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를 향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경 길로 향하였더라”고 하였는데 블레셋 군대는 세 떼로 모여 이스라엘 군대를 치려고 사방에 진을 쳤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9-22절에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병기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중에 사울과 요나단 두 사람에게만 창이나 칼이 있었고 군대에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싸우러 나왔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싸우러 나왔겠습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창이나 칼은 없지만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면 이길 것을 믿고 나왔습니다. 맨손으로 나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다윗과 같이 물맷돌을 가지고 나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소 채찍을 가지고 나온 사람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군은 칼과 창을 가지고 나오고 병거가 있고 마병도 있었으므로 무력으로 볼 때에는 십분지 일도 안 되고 백분지 일도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믿음으로 싸우려고 나온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

본문 6절에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
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이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하나님만 믿고 나왔습니다. 

또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여호와의 구원은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는 것이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
리 손에 붙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갔는데 이것이 다윗의 신앙입니다. 골리앗 대장은 창자루가 베틀 채와 같은 놋 단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다윗은 물맷돌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였습니다.

전도서 9장 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3편 16-17절에는 “많은 군대로 구원을 얻는 왕이 없으며 용사가 심히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이며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병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로 건너가자 고 말하고 그 아버지에게는 고하지 않고 건너갔습니다. 사울은 그때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었습니다. 제사장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거기 같이 있었고 하나님의 궤도 같이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4장 18절에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닌데 가지고 나갔습니다. 

본문 4-5절에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함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로 건너가려면 험한 바위가 두 개가 서 있었는데 그 사이로 건너가야 되었습니다. 하나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서 있고 또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북에 있고 하나는 남에 있어 아마 동서 바위 사이로 가게 되
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위 사이로 가지 않으면 갈 데가 없었습니다. 또 갔다가 돌아 올 때도 그 한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이 막히면 꼼짝 못하게 되지만 하나님만 믿고 올라갔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가 보라

본문 6-7절에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이 병기 든 소년에게 가보자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기는 상당히 많은 군대가 무기를 들고 와있고 요나단의 군대는 무기도 없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믿음입니다. 일단 건너가 보면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실지 누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가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미리 가기 전에 앉아서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가 보는 것입니다. 가보면 승산이 있습니까? 승산이 없어도 가보면 여호와께서 무슨 일을 해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가면 하나님께서 일을 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 보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미리 앉아서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해주시면 되는 것이고 또 일을 안 해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해 주실지 어떻게 알겠느냐 하면서 무턱대고 가 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에 갈 때에도 무턱대고 간 것입니다. 어떤 예상을 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무덤에 가면 예수님 시체를 볼 수 있을까, 무덤에 큰 돌을 굴려놓고 인봉해서 로마 군대가 수비하고 있는데 가 보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도 가 보자, 가면 여호와께서 무슨 일을 해 주실지 모른다’고 하면서 가보니까 여호와께서 일을 해 놓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돌을 굴려버리고 수비하던 사람들은 무서워서 다 도망치고 벌써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볼 수 있게 다 해놓으신 것입니다. 가 보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미리 앉아서 예상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면 될 것을 믿고 가 보는 것입니다. 요나단도 ‘가 보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실까 하노라’면서 가 본 것입니다. 가 보면 하나님께서 일 해 주시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 보는 것입니다. 미리 앉아서 ‘무엇 때문에 못한다, 무엇이 없어서 못한다, 누구 때문에 못한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가 보는 것입니다. 가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일을 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일을 안 해 주시면 가만 있는 것이고 일을 해 주시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 해 주실 것을 바라 보면서 가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전도하실 때도 제자들을 와 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고 하셨습니다. 와 보라 하셔서 제자들이 가 보니까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46절에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세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와 보라고 해서 가보니까 요한복음 1장 47-50절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와 보라고 해서 가 보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가 보니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나를 어떻게 아시나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에서 기도하실 때에 내가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다나엘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가 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가 보면 이렇게 발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4장 39절에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고 하였는데 와 보라고 해서 나가보니까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안 가볼 곳에는 가지 말라

그런데 안 가볼 곳을 가 보면 안 됩니다. 아무데나 다 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안 가볼 곳을 가 보면 미혹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4장23-27절에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
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가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있다 광야에 있다 해도,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가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벌써 성경에 잘못된 데는 안 가야 합니다. 성경에 잘못 되었는데도 가 보면 거기는 미혹하는 영이 있기 때
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혹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잘못된데는 절대로 안 가야 하는데 가 보면 마귀의 미혹을 받습니다. 가 봐서 미혹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전에 저보다 신학교 한 학년 윗반이었던 분이 계셨는데 믿음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부인도 신학생으로 부부가 신학교 졸업생인데 저보다 나이도 조금 많았습니다. 이 분이 얼마 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부산에 있는 산성 기도원으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여자를 하나님으로 모시러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신학을 배운 사람이 여자에게 하나님이라고 하니 말이 됩니까? 거기에 가면 좋다는 것입니다. 다 거저 먹여 주고 다 무료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여러 해 후에 버스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어디 갔었냐고 하니까 여러 해 동안 그 여자를 하나님으로 모시다가 도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상당히 똑똑해서 공부도 잘하던 사람이고 그 부인도 그랬는데 가서 미혹을 받아 여러 해 동안 형편없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또 나보다 윗 반이었던 정 아무개 목사는 안식교에 갔다고 합니다. 안식교는 토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교입니다. 안식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당에 가지 않고 영혼이 무덤에 가서 육체와 같이 잔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부활할 때에 부활해서 천당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요일을 주일로 지켜야 천당 간다는 율법주의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거기에 가 있었습니다. 안식교가 얼마나 이단인데 거기에 가 있느냐 거기서 속히 나오라고 아주 잘못되었다고 했더니 안식교도 꼭 같다고 했습니다. 가 보면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속게 됩니다. 아주 다르면 안 속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조금 다른 곳은 안 가야 합니다. 한 번 가면 마귀가 여러 가지로 미혹을 시켜서 그럴 듯하게 만들어 살짝 혼미케 됩니다. 안 가야 합니다. 가면 벌써 미혹됩니다. 진리가 조금 다른데 간다는 것은 벌써 진리를 믿지 않는 증거가 아닙니까? 믿지 않는 사람의 속에는 미혹의 영이 들어갑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가는 것 입니다. 믿으면 왜 가겠습니까? 가면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가서 혼미케하는 것입니다. 가면 안 됩니다.

1992년 10월 28일 0시에 예수님께서 재림한다는 것이 얼마나 성경에 잘못되었습니까? 아들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아버지만 안다고 하셨는데 벌써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 자체가 성경에 위반입니다. 그래도 가 보자, 하는 사람은 성경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갑니다. 가는 것 자체가 믿지 않는 것이지 믿으면 무엇 때문에 가겠습니까? 벌써 가서 알아보겠다는 것도 믿지 않아서인데 그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혼미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명한 사람이 많이 미혹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단에 장로한 사람이 고천 기도원도 많이 오고 많이 배운 사람인데 거기에 넘어갔습니다. 우리 교단 교회의 장로가 다 넘어간 것입니다. 성경을 배운 것이 다 어디 갔습니까? 벌써 가는 것 자체가 성경을 믿지 않으므로 마귀의 영이 들어가 혼미케 해서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 가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는 비디오테이프와 책은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에 우편으로 책과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 왔는데 마귀가 미혹을 시켜 보려고 보냈나 하고 당장에 책과 테이프를 버렸습니다. 테이프를 들어 보는 사람은 잘못입니다. 들어 보면 안 됩니다. 들어 보면 믿지 않는 신이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책을 보는 것도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에 보는 것입니다. 와 보라는 것인데 뭘 가 봅니까? 마귀한테 가 보지 말라고 했는데 가 보는 것이 말이 됩니까? 가 보지 않아야 할 데는 안 가야 합니다. 가 보면 미혹 받습니다. 괜찮은 사람도 미혹 받습니다.
또 우리 신학교에 송 목사라고 있었는데 그 사모님이 여호와의 증인에 미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혼을 했습니다. 자기 남편 송 목사가 아주 훌륭한 목사인데 왜 여호와의 증인에 가서 엎드렸느냐 말입니다. 그것도 처음에 한 번 가보다가 미혹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화섭 목사라고 나보다 한 반 아랫반에 있었는데, 이 사람 사모는 문선명파에 갔습니다. 경기노회 소속이었는데 가서 조사단을 뽑아 부인을 권면해서 데려오라고 보냈는데 저도 갔습니다. 가서 우화섭 목사 이름을 부르면서 있냐고 하니까 있다고 해서 좀 보자고 하니까 나왔습니다. 당신이 우화섭 목사의 부인 아무개입니까? 물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 노회에서 데리러 왔는데 갑시다, 하니까 뭘 하러 왔느냐고 아무리 권면해도 안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안 살겠느냐고 하니까 안 살겠답니다. 장로교는 잘못되었고 통일교가 옳기 때문에 자기는 거기 있고 이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사해가지고 와서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노회에서 그 사람은 이단으로 넘어가서 아무리 교회에서 권면해도 안 되므로 이혼하라고 해서 이혼했습니다. 

목사 부인이 이단한테 갈 수가 있습니까? 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가는 자체가 벌써 잘못되었기 때문에 가서 미혹을 받습니다. 암만 훌륭해도 가면 안 됩니다. 신학교 졸업 한 사람이 산성 기도원에 가서 여자보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가면 미혹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지 믿지 아니하면 마귀가 와서 혼미탕을 먹여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분별을 못해서 따라가게 됩니다. 비디오테이프와 책을 보내 주면 보면 안 됩니다. 또 집에 있으면 쓰레기통에 갖다 넣으십시오. 집에 두면 마귀를 둔 것으로 마귀가 어떻게 하든지 미혹시키려고 하는 것이므로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신비주의, 종말론 테이프, 이상하게 병 고치는 테이프가 있는 사람은 다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두는 사람은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이고 진리를 믿지 않으니까 혼미한 마귀의 영이 들어와서 미혹을 시키는 것입니다. 벌써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철원 대한 수도원에 전진 권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까지 같이 합니다. 그 사람은 때려서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기도하면서 무조건 찰싹 찰싹 때려서 고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귀가 달아난다는 것입니다. 영등포에 김양순 목사님이
계셨는데 거기 가서 얼마나 매를 얻어 맞았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간경화에 걸렸는데 그 여자한테 매를 너무 맞아서 죽었습니다. 목사도 어리석습니다. 때려서 병을 고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뭘 하러 가서 매를 맞습니까?
요새 할렐루야 기도원은 손톱으로 할퀴어가지고 피를 내고 상처에서 고름이 나야 마귀가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성경 위반입니다. 우리 창광 교인 중에 할렐루야 기도원 갔다가 죽은 사람이 여럿이었습니다. 염리동에도 하나 있고 신촌역전에 몇 년 전에 세상 떠난 조돈
숙 권찰도 믿음이 상당히 좋았는데 암 걸려서 기도원에 다니다가 죽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한 여남은 명이 됩니다. 거기 간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창광 교인은 한 사람도 못 살고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도 낫는 사람이 혹시 있습니다. 그 사람은 거기 안 가도 낫습니다. 자기가 기도해도 낫습니다. 창광 교인, 명륜 교인 거기 가서 죽은 사람이 열 명이 넘습니다. 그렇게 다 낫는데 왜 다 죽습니까? 그러니까 괜히 거기를 가서 손톱으로 상처를 내서 거기 피가 나고 고름이 나오면 그 다음에는 거기에다 무엇을 바르고 돌아다니는데 얼마나 미
련합니까? 성경에 어디 그런 것이 있습니까? 신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훼손하면 안 됩니다. 성경 위반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생긴다,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일백이십 세까지 귀신이 되어서 돌아다니면서 사람 속에 들어와서 병을 앓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만 내쫓으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경 위반입니다. 성경에 모든 병이
다 귀신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죄 때문에 생긴 병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생긴 병(나면서 소경 된 것)도 있고 부상 당해서 생긴 병도 있고 병균이 생겨서 생긴 병도 있습니다.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여서 피가 빨리 못 돌아가 생긴 병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부 귀신 때문입니까? 콜레스테롤도 귀신입니까? 전부 다 귀신 때문에 생긴다는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도 혹시 있지만 모든 병을 다 귀신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가면 또 미혹 받습니다. 귀신의 영이 있습니다. 미혹의 영이 있어서 가면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아서 미혹을 시킵니다.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초석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사도라고 합니다. 모든 교역자는 다 틀렸고 자기가 사도고 또 교회에서 십일조 낸 것을 제직회에서 결의해서 쓰는 것은 잘못되었다, 직접 목사가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성경에는 일곱 집사를 택해서 구제하는 것을 그쪽에
맡기고 교역자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한다고 하였는데 거기서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연보하는 것은 자기 호주머니에 다 들어가고 결산보고도 안 하고 자기가 사도라고 하는데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밖에 없습니다. 또 병도 많이 고치는 모양입니다. 병 고치는 것으로 미혹시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벌써 그 사람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거기 미혹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 예수님을 직접 보고 믿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거짓말입니다. 직접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그 다음에 직접 나타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봤다는 것은 전부 다 환상을 본 것입니다. 환상 본 것을 가지고 예수라고 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사도 바울에게 맨 나중에 보였지 그 다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또 보이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마지막에 가서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재림하실 때 보는 것이지 그전에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분명히 위반인데 성경 위반하는 사람이 병 고치는 것이 더러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병을 고치려고 하면 마귀의 미혹을 받습니다. 문선명이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도 병 고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단들도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고 하고 또 조금만 다른데 마지막에는 아주 마귀 역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과 조금만 다르면 그것이 이단입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달라도 이단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에 바로 서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이단입니다.

꺼꾸러지는 역사를 귀히 여기지 말라

원산에 유명화라는 여자에게 훌륭한 목사이면서 부흥사인 이용도 목사가 갔다고 합니다. 유명화가 앉아 있다가 “용도야 네가 이제 오느냐, 네가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고 어디 가서 누구 만나고 이제야 온다”고 하니까 이용도 목사가 “주여”하고 꺼꾸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잘못된 여자였습니다. 이용도 목사가 훌륭한 목사이지만 유명화한테 꺼꾸러졌기 때문에 실수하여 그만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꺼꾸러지는 역사를 귀중히 여기면 안 됩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바람의 역사가 꺼꾸러지는 역사입니다. 지진의 역사, 불의 역사 큰 세력이 다 꺼꾸러지고 바위가 쪼개져 나가고 완고한 세력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무당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꺼꾸러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조금이라도 잘못되었으면 그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결국 꺼꾸러 뜨려서 마귀가 전부 끌고 가 마귀의 밥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전부 옳아야지 열 가지 가운데 아홉 가지가 옳고 한 가지가 잘못되면 거기서 망치고 관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이단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도 할례까지 받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요란케 하고 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단에 대해서 성경에 탈선된 사람들에게 대해서 확실히 하여 성경에 탈선되었으면 이것은 아니다 하고 끊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 보면 안 됩니다. 전부 진리에 옳으냐를 봐야 합니다. 한 가지만 잘못되었어도 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한 가지만 잘못되었어도 이는 이단이다, 하고 가면 안 됩니다. 가 보지도 말고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을 사다 보아도 안 됩니다. 
 
그리고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곳은 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진리에 서서 하나님의 바른 뜻을 이루어나가는 데에는 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잘못되면 가지 않아야 하고 진리에 바로 선 데에는 가 보는 정신을 가지고 가 봐야 합니다. 전도하러 가 보면 전도할 사람을 만납니다. 또 개척교회를 하기 위해서 가보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소련 노대영 목사가 하는 교회도 처음에 갈 때에는 교회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 보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가 보니까 예배당도 얻도록 만들어 주셨고 지금 교인이 백 명 모인다고 합니다. 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나 해봐야 하고 미리 앉아서 예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산 다 집어치우고 성경 말씀대로 가 보자, 해야 합니다. 가 보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해주실지 모르니까 가 보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가 보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해 주십니다. 난 그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난 가보는 것을 잘 합니다. 가 봐야 될 데는 가 보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원 문제 때문에 가 보는 것을 요새 많이 했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가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요나단이 지금 전혀 불가능한 데를 가보는 것입니다. 원수는 군대가 많고 무기도 많은데 둘이서 지금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우리도 믿음으로 나가 봐야겠습니다. 미리 앉아서 없다, 못한다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아무리 힘
이 없고 약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가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 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