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겸손
잠언 18:1-24
1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2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4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5악인을 두호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6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9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 하는 자의 형제니라 10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 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3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4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5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6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17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18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 19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 빗장 같으니라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22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잠언 18:1-24
1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2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4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5악인을 두호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6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9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 하는 자의 형제니라 10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 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3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4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5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6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17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18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 19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 빗장 같으니라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22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1.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는 참 지혜를 배척하게 됨
본문 1절에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란 공동생활에서 이탈하여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따라가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즉,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할
일에 협력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만 내세우며 나가는 자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데에 있어서도 협력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나가는 자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의 소욕을 버리고 자기가 좀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협력하여 전체의 일이 잘되도록 해야합니다. 전체의 일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고, 하나님의 일이 잘되도록 해야지, 자기의 안위를 위해서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일에 빠지는 것은 자기의 소욕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무리와 함께 봉사하고 수고하며 협력하여 받들어 나갈 때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나갑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참 지혜를 주시고, 쓸 만한 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또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공동으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나가는 일에 빠지지 말아야겠습니다.
또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사욕을 따라가는 것은 참 지혜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참 지혜는 욕심을 버려야 소유할 수 있습니다.욕심을 가지고 나가면 참 지혜를 소유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 2절에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입니다. 미련한 자는 바른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바로 서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의 의견만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남의 의사를 존중하며, 옳은 것은 취하고 잘못된 것은 버릴 줄 압니다. 그래서 점점 자기의 잘못된 것을 찾아서 고쳐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의사만 떠들썩하게 드러내는 자가 되지 말고, 남의 의사도 들어보고 거기서 옳은 것을 찾아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잘못된 것이 없나 찾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겠습니다.
본문 3절에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에는 멸시와 부끄러움과 능욕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멸시와 능욕을 안 받으려면, 악을 멀리 떠나고 부끄러운 것을 멀리 떠나야 합니다. 악을 가까이 하고, 부끄러운 일을 행하게 되면 멸시와 능욕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행하면,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얼마 안 가서 반드시 능욕과 멸시가 옵니다. 부끄러운 것이 옵니다.
본문 4절에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명철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믿는 사람의 말은 진리에서부터 그 말이 나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생수가 됩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에게서는 생명의 말씀이 나와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지혜의 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샘물과 같이 솟아나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쓰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본문 5 에 “악인을 두호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을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의인을 옳다고 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좇아난 것입니다(마5:37).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악인을 두호(斗護)하거나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판단을 하면 안 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해도 안 되고, 또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해도 안 됩니다. 이사야 5장 20절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말씀에 어긋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옳은 것은 옳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분명히 성경에 잘못되었는데도 옳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되고, 반드시 화를 받습니다.
2. 미련한 자는 입술로 매를 자청함
본문 6절에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자는 다른 사람을 이간 붙이고 격동시켜 다툼을 일으키며, 쓸 데 없는 말을 하여 화를 자청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를 격동시키기도 하고 격동을 멈추게도 할 수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같은 사건일지라도 전할 때에 그 사람을 격동시킬 수 있고, 격동을 안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전하면서 공연히 격동을 시켜서 다툼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심판 받을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여간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보태고 격동시키는 어조로 말해서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은 자기 입으로 매를 자청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을 해서 스스로 매를 자청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서 정당한 말만 해야 합니다. 합당치 않은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건설적인 말, 덕을 세우는 말, 유익이 되는 말만 하여야 합니다.
본문 6절에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자는 다른 사람을 이간 붙이고 격동시켜 다툼을 일으키며, 쓸 데 없는 말을 하여 화를 자청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를 격동시키기도 하고 격동을 멈추게도 할 수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같은 사건일지라도 전할 때에 그 사람을 격동시킬 수 있고, 격동을 안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전하면서 공연히 격동을 시켜서 다툼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심판 받을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여간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보태고 격동시키는 어조로 말해서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은 자기 입으로 매를 자청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을 해서 스스로 매를 자청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서 정당한 말만 해야 합니다. 합당치 않은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건설적인 말, 덕을 세우는 말, 유익이 되는 말만 하여야 합니다.
심방을 가서도 말을 함부로 해서 격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심방 가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괜히 남의 집에 가서 말을 잘못해서 그 집에 손해를 준다고 하면, 그 사람이 심방갈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귀를 기쁘게 하러 다니는 심방이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심방이 못됩니다. 괜히 남의 집에 가서 쓸 데 없는 말로 남에게 손해를 주면 심방 안 가는 것이 낫습니다. 심방을 갔으면 성경말씀이나 간단히 전하고 기도해주고 나와야 합니다. 괜히 앉아 남의 살림살이를 간섭하면서 “잘했다. 못했다”라고 하면 안됩니다.
본문 7절에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잘못 말한 한 마디의 말이 자기 영혼에 올무가 되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말을 함부로 해서 자기 스스로 그물에 걸리고 망하는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함부로 남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8절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말쟁이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까지 내려가서 자리를 잡습니다. 즉,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남에게 뱃속 깊은 데까지 상처를 주어 그만 그 사람을 큰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가 남 말하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남을 가르치기 전에 자기를 가르치고, 자기가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자는 자기도 벌을 받습니다.
3. 게으른 자는 패가(敗家)하고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안전함
본문 9절에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게으른 자는 못씁니다. 게으른 자는 개미한테 가서 배우라고 하였습니다(잠 6:6-8). 게으른 자는 썩은 나무와 같습니다. 썩은 나무는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지, 무엇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게으른 자는 아무 데에도 쓸 데 없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할 것이 없으면 나가서 길바닥이라도 쓸면 좋습니다. 하여간 게으르지 말고 일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부지런 해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게으른 자는 못씁니다. 게으른 자는 개미한테 가서 배우라고 하였습니다(잠 6:6-8). 게으른 자는 썩은 나무와 같습니다. 썩은 나무는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지, 무엇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게으른 자는 아무 데에도 쓸 데 없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할 것이 없으면 나가서 길바닥이라도 쓸면 좋습니다. 하여간 게으르지 말고 일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부지런 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은 견고한 망대와 같아서 든든한 피난처가 됩니다. 즉,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을 많이 닮아 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능력으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4. 재물을 의지함과 교만과 겸손
재물을 의지하면 패망함
본문 11절에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재물을 견고한 성과 높은 성벽같이 여기고, 그것을 의지하며 자랑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헛된 것을 의지하는 미련한 자입니다. 잠언 11장 28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합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라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의지하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쓸 때 쓰라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의지하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쌓아놓고 돈의 종살이나 하며 믿는 일에 힘을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물질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께서 다 불어 버리십니다.
재물을 의지하면 패망함
본문 11절에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재물을 견고한 성과 높은 성벽같이 여기고, 그것을 의지하며 자랑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헛된 것을 의지하는 미련한 자입니다. 잠언 11장 28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합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라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의지하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쓸 때 쓰라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의지하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쌓아놓고 돈의 종살이나 하며 믿는 일에 힘을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물질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께서 다 불어 버리십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임
본문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조금 있으면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대적하십니다(약 4:6; 벧전 5:5).
그러나 겸손한 자는 존귀해집니다. 잠언 22장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5장5 에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대적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데 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도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랫사람이 교만하면 윗사람이 그 사람을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직장이나 어디에서든지 교만하면 쫓겨납니다. 또 윗사람이 교만하면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라도 교만하고 이기주의로 나가면 망합니다. 교만하면 믿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도는 순종해야 되는 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이기주의로 나가는 자는 아무 데도 쓸 데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하만이 교만하였기 때문에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미워하며 분하게 여겨 죽이려 하다가 자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교만하면 언제나 평안치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낮아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과 존귀, 부귀를 다 내어놓으시고 지극히 겸손하게 낮아지셔서 죄인들의 종살이를 하셨습니다. 낮아지는 사람은 사실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이 복을 받고 존귀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과 존귀, 부귀를 다 내어놓으시고 지극히 겸손하게 낮아지셔서 죄인들의 종살이를 하셨습니다. 낮아지는 사람은 사실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이 복을 받고 존귀해집니다.
본문 13절에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잠언25장 11절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성급하게 자기의 생각대로, 또는 자기 추측으로 판단하여 대답하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그런 자는 욕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동쪽의 사정을 묻는데, 서쪽의 사정을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변할 때는 사연을 자세히 듣고 거기에 합당한 대답을 하여야 합니다. 동문서답(東問西答)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며,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또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남을 무시하
는 자이고, 자기 의견만 세우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영이 마음을 이용해서 사는 것이 심령인데, 사람이 심령으로 영적 생활을 하면 환난과 고난이 와도 강건한 신앙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과 육신의 질병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즉, 영으로 살 때에는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상하면 심령과 육신의 병에서 일으켜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심령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낙심하여 마음이 상하면 일어나지 못하고 거꾸러집니다. 시험과 환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본문 15절에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명철한 자와 지혜로운 자는 믿음을 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음을 쓰고,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은 점점 더 바른 지식을 얻게 됩니다. 또 계속해서 바른 지식을 구하려고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5. 선물, 송사(訟事), 화목, 혀
본문 16절에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물을 주는 것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표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주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선물을 줄 때에 상대방을 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선물은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기도 하고, 존귀한 자의 앞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주니까 길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선물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위해 주는 생활을 하면 자기가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주고, 존경하며, 남을 위해서 희생하면 그 사람이 존귀해지고 높아집니다. 또 앞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선물을 뇌물용으로 쓰는 것은 안 됩니다. 선물은 상대방을 존경하고 상대방을 위하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지만, 뇌물은 어떤 불의한 일을 좀 해달라는 속셈을 가지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뇌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에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물을 주는 것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표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주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선물을 줄 때에 상대방을 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선물은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기도 하고, 존귀한 자의 앞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주니까 길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선물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위해 주는 생활을 하면 자기가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주고, 존경하며, 남을 위해서 희생하면 그 사람이 존귀해지고 높아집니다. 또 앞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선물을 뇌물용으로 쓰는 것은 안 됩니다. 선물은 상대방을 존경하고 상대방을 위하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지만, 뇌물은 어떤 불의한 일을 좀 해달라는 속셈을 가지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뇌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7절에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편의 말만 듣고 송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항상 쌍방의 말을 다 들어본 후에야 누가 옳고 그른 것인지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말만 듣고 판단하면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쌍방의 말을 잘 듣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분쟁이 생겼을 때에나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할 때에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표준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과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19절에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사이에 한 번 노엽게 되고 다툼이 일어나면 화목하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입니다. 노함은 사람의 부패성에서 나오는데, 성도는 노함이 들어오려고 할 때에 빨리 화목하여야 합니다. 노여움이 쌓이면 화친하기가 힘듭니다. ‘화목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9). 어떤 사람과 화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든지 자신이 낮아져서 먼저 희생하며 화목하기를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과하여 노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노해놓으면 그것이 큰 산성 문빗장과 같아서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사 안 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가서 인사하고 사랑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화목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할 바이고, 또 상대방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말을 바로 하면 좋은 열매가 맺혀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혀를 잘못 쓰면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 써야 삽니다. 항상 성도는 말을 조심하고, 쓸 데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당한 말, 유익을 주는 말만 하여야 합니다(약 3:1-12).
6. 아내, 빈부(貧富), 친구
본문 22절에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아내’는 좋은 아내를 말합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같이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잠 21:9). 그런데 다투는 여자를 아내로 얻은 사람은 움막에 가서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다투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투지 않고 잘 살게 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양보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며, 어떻게 하든지 다투지 않고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또 아내뿐만 아니라 좋은 동업자, 좋은 친구, 좋은 윗사람, 좋은 아랫사람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께 받는 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이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아내’는 좋은 아내를 말합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같이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잠 21:9). 그런데 다투는 여자를 아내로 얻은 사람은 움막에 가서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다투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투지 않고 잘 살게 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양보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며, 어떻게 하든지 다투지 않고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또 아내뿐만 아니라 좋은 동업자, 좋은 친구, 좋은 윗사람, 좋은 아랫사람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께 받는 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이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23-24절에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는 비교적 겸손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가난한 자가 예수님을 잘 믿고, 부자는 예수님을 믿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부자일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5 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무분별하게 아무나 친구로 삼아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기 쉽니다. 친구를 사귈 때는 아무나 사귀지 말고 믿음의 친구,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하여야 합니다. 좋은 친구는 형제보다도 친밀합니다. 사실 많은 친구를 얻는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친밀하고 요긴한 친구로 그저 몇 사람 있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