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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1일 월요일

누가복음 6:27-49 사랑의 법과 들보와 티, 이병규목상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랑의 법과 들보와 티
누가복음 6:27-49

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30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36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37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 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47네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 하였거니와 49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1. 사랑의 법

원수를 사랑하여 믿음을 빼앗기지 말라

본문 27-29절에,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선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운사람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는데, 미워하는 사람은 떡 하나 더 주면서라도 선대 하라는 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저주하는 자를 위해 잘 되기를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너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해주라는 말입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는 속옷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다른 것보다 믿음을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뜻인데, 이 뺨을 칠 때 같이 대항을 하면 불쾌한 마음이 생기고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는 것은 양쪽 뺨을 다 맞을 예상을 하고 마음에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한 뺨을 마주 치면서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대항하다 보면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마음의 성결을 빼앗깁니다. 다른 뺨하나 더 맞아도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을 향해서 교통하려는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자기 속에 있는 성결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성공입니다. 이것이 대승리이고 대성공입니다.
마찬가지로 겉옷을 빼앗고자 하는 자와 서로 싸우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 불쾌한 마음이 생기고 화평을 빼앗기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빼앗기고 성결을 빼앗기게 됩니다. 겉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빼앗기면서도 “내가 믿음을 빼앗기지 아니하여야겠다. 화평하는 마음, 하나님과 연락하는 마음, 성결을 내가 빼앗기지 아니하여야겠다” 하면서 화평을 안 빼앗기면 그것이 대성공입니다. 믿음을 안 빼앗겼으니까 다른 건 다 빼앗겼어도 대성공입니다. 인격모독을 좀 당했어도 믿음 안 빼앗겼으면 그건 대성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보하는 것은 강자의 도덕입니다. 약자의 도덕, 잃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도덕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것을 얻는 방법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인격적인 어떤 것이든지 손해를 보더라도 영적인 것, 지금 자신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화평한 마음을 안 빼앗긴다고 하면 대성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이기는 방법이고 강자의 도덕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본문 30-31절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사람, 남을 대접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지 말고, 도움을 받고자 하지 말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지 말고 사랑을 하는 사람, 대접하는 사람 되라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대접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대접 안 해준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대접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대접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대접하는 것이 돌아옵니다.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자기가 사랑을 먼저 하십시오. 그러면 사랑이 있는 사회가 되어지고 자기에게 그것이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잘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가 먼저 남에게 잘해주십시오. 다른 사람이 나를 좀 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 자기가 남을 위해주십시오. 그러면 그 상대도 반드시 나를 위해줄 날이 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본문 32-34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해야 됩니다. 또한 자기가 받기를 바라면서 사람에게
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하여 죄인에게 빌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받기를 바라고 빌리지 말고’라는 것은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주라는 말입니다.

본문 35절에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하셨는데,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 상이 크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인자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비판하지 말라

본문 37절에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비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않고 사람을 정죄하면 하나님의 정죄를 받게 됩니다.

용서하라

또 용서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주어라

본문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주기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저 혼자 먹는 것은 돼지와 같습니다.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주면 하나님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헤아리지 말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헤아린다는 것은 달아본다는 뜻으로 헤아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격과 심사를 달아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몇 푼짜리나 될까,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자기 생각대로 추측하고 달아보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달아보는 것은 다 잘못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올 것이고,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줄 것이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비판하시게 됩니다.

본문 39절에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구렁텅이를 보지 못하므로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 눈을 뜬 후에 다른 사람을 인도해야 합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가 바로 서는 것이, 자기가 눈을 뜨는 것이 첫째이고 그 후에 다른 사람을 인도해야 합니다.

본문 40절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선생과 같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선생이 누구입니까? 선생은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10:24-27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알세불이라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즉 가는 곳마다 귀신의 왕이라는 핍박과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핍박과 환난을 당하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2. 들보와 티

본문 41-42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고 하였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는 티가 있으나 자기의 눈 속에는 들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눈 속에 이렇게 큰 허물이 있는데 그
것은 속에 있는 부패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들보와 같이 큰 것이 자기 속에 다 있습니다. 즉 자기 속에 부패성이 있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란 형제의 외부적으로 나타난 죄를 말합니다. 형제가 지은 죄는 티라 하였고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은 들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들보와 같은 부패성이 다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만 나타납니다.
산중에 있는 도적보다, 속에 있는 도적을 잡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속에 있는 도적, 즉 속에 있는 부패성을 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걸 빼야 됩니다. 속에 있는 부패성을 먼저 빼고야 다른사람에게 있는 외부로 나타난 그 허물을 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이 문제입니다.

본문 43-44절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면 좋은 나무이고, 못된 열매를 맺으면 못된 나무라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못된 열매 맺지 못하고,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 나무대로 열매가 맺힙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습니다.
또 찔레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되어야 포도를 따고 무화과나무가 되어야 무화과를 따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자기 속이 만들어져야 됩니다. 자기가 좋은 나무로 만들어져야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본문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냅니다.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이 나옵니다. 마음에 있는 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속에 선이 가득한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졌으면 선이 나오고 악한 사람으로 만들어졌으면 그 만들어진 대로 악이 나옵니다. 만들어 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반석위에 지은 집

본문 46절에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21-23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들어갑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40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였는데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즉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믿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늘나라에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못 갑니다.

본문 47-49절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땅을 깊
이 파고 그 주초를 반석 위에 두고 집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비가 오고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힐 때에 반석위에 지은 사람은 그 집이 무너지지 않으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주초가 없기 때문에 무너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는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도 기초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무너질 날이 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십자가의 구속을 믿지 않고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언젠가 환난이 올 때 반드시 무너질 날이 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십자가의 구속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집을 반석위에 지은 것과 같아 아무리 큰 환난과 핍박이 와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으므로 무너지지 않고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이 말씀과 고린도전서 3:12의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집과는 그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본문의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은 것이고 고린도전서의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했고, 자기 명예 영광을 위해서 했으므로 자기 속사람이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성전을 지을 때에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사람이 있고 또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사람은 마지막에 불타서 없어지고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사람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남아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사람과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금, 은, 보석으로 지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간 사람입니다. 즉 말씀대로 영혼이 자라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자기 자신을 말씀대로 잘 만들어나간 사람이 금.은. 보석으로 만든 사람이고, 자기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간 사람입니다.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긴 믿는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말씀대로 만들어 나가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오긴 나오고, 예수님을 믿긴 믿었는데 “그저 예수를 믿으면 된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당에는 간다 하는 여기까지만 있고 신령한 양식을 날마다 먹어서 자라나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고, 양식이 되고, 그 말씀대로 자기가 자라나고, 날마다 새 생명을 얻어 나가는 것이 금. 은. 보석으로 지은 것입니다.

주기도에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영의 양식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그 영혼이 새 힘을 얻어서 자라나고 새생명의 역사가 계속 있습니다. 날마다 영의 양식을 새로이 먹지 못하면 그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전에 배운 것을 가지고 나는 산다”고 하는데 날마다 새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하면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없습니다. 다른 교회 나가면서 이전에 창광교회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산다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몇 년 전에 먹은 영의 양식으로 지금 살 수 없습니다. 또 몇 달 전에 먹은 양식을 가지고 지금 살 수 없습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였는데 날마다, 주일마다 자기 생명이 되는 말씀을 받아야 영이 날마다 살아나고, 영의 역사가 있고, 새 힘을 얻어서 달음박질할 수 있습니다. 한 주일이라도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면 그 영혼이 달음박질을 못합니다. 힘이 있어야지요? 오늘에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자기가 달음박질하고 새 힘을 얻고,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자라납니다. 오늘에 일용할 양식 먹지 못하고 이전에 먹은 것을 가지고 살려고 하면 그것은 안됩니다. 힘이 없습니다. 옛날 노트 펴놓고 살고, 옛날 녹음 테이프 틀어 놓고 살고, 옛날 것 가지고 살려는 것은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그 말씀에서 새 힘을 얻고, 생명의 역사가 있고 자라나야 금, 은, 보석으로 지은 것입니다.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은 자라나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의 일만 한 것입니다. 전도 하고, 교회 봉사하고, 예배당도 짓고, 기독교 사업 하고, 열심히 교회 출석 하고, 직분도 받았지만 그것은 불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영혼이 자라난 것만 불타지 않고, 영이 자라나지 못한 것은 다 타서 없어집니다. 영이 자라나지 못한 것은 아무리 무엇을 많이 했어도
쓸데 없습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영적 생명이 자라나는 그 자리에 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