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죄 많은 여자의 믿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죄 많은 여자의 믿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누가복음 7:36-50 죄 많은 여자의 믿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죄 많은 여자의 믿음
누가복음 7:36-50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1. 구속의 은혜에 눈물 흘리는 신앙

많은 여자는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본 받아야 되겠습니다. 죄 많은 여자의 신앙은 의식적으로 알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은 믿음이 많은 사람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음식을 대접 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그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그 때 그 동네에 죄 많은 한 여자가 값비싼 향유 담은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요한복음 12장 세 곳에 있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자의 사건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있는 여자는 마리아가 아니고 죄 많은 여자입니다. 향유를 가지고 감히 예수님 앞으로 오지 못
하고 예수님의 뒤로 갔습니다. 그리고 곁에 서서 많이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며,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죄 값으로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나 같은 자를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찾아오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고 감격에 넘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여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눈물을 예수님의 발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눈물을 흘리는 신앙, 이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에 디모데도 눈물을 흘리는 신앙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고린도전서 11:15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긴 머리는 영광인데 그 영광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발을 만질 수도 없는데 자기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구속을 생각하고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 발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는 신앙

그리고 향유를 갖다가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값비싼 향유로 삼백데나리온의 가치라고 하였는데, 그 정도라 하면 몇 백만원짜리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예수님께 바친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여자가 참으로 감격에 넘치는 눈물 흘리는 신앙을 가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자기 마음, 자기 몸,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께 헌신하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4.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

이 여자의 신앙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많이 사랑한 신앙입니다. 본문 29-30절에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천만원을 탕감 받은 사람과 오억원을 탕감을 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고맙게 생각하겠습니까? 오억원을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하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또 죄인을 용서해 주는 것에 있어서도 한달 감옥에 들어가서 한달 있다가 나올 사람을 석방해준 것과 일년 있다가 나올 사람을 석방 해준 것과 십년 있다가 나올 사람을 석방해준 것과 무기 징역 받은 사람을 석방해 준 것과 사형 받을 사람을 석방해 주었다면 이 가운데 누가 죄 사함을 많이 받은 것입니까? 사형 받을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다면 더 감격이 넘칠 것입니다. 한달 있다 나올 사람은 그다지 크게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감옥에 있다가 혹은 사형 받을 사람이 석방 받았다 하면 그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한량없는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이 여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구해 주셨으니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었을 때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물으셨을 때 시몬이 “많이 탕감을 받은 자가 더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네 판단이 옳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면 죄가
많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물론 외부적으로 죄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여자는 동네에서 죄 많은 여자라고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목하고, 다른 사람이 따돌리고, 다른 사람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생각하기를 ‘그런 여자를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해야 하겠는데 예수님은 왜 용납 하셨을까? 그 여자가 발에 입을 맞추는데 왜 가만 두는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를 구원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의인을 구원하려고 오신 것
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여 회개 시키려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며 가장 기쁜 일입니다. 또 그 여자를 사랑해서 예수님이 건져 주신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가사와 같이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몸과 생명과 물질을 다 바쳐 놓은 것입니다. 자기 명예, 영광, 자존심까지 다 바쳐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바치며 헌신하는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신앙을 알았습니다.

본문 44-47절에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은 사랑을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여자의 신앙은 더 사랑하는, 사랑이 많은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본 받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하였습니까? 죄 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많이 사함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 모두 다 많이 사함 받은 사람입니다. 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고, 다 지옥 갈 사람이고, 다 멸망 받을 사람들인데 그 모든 것을 사해 주셨으니 다 많이 사함 받지 않았습니까? 사함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다 지옥 갈 죄인이고, 멸망 받을 자이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벌써 죽었을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으니 우리들은 다 많이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여자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깨달았습니까? 이 여자는 다른 사람 보기에 죄를 많이 짓고 다닌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다닌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음행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겠다고 할 때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들어 치라”고 하였는데 그때 한 사람도 치지 못하고 다 달아났다고 하였습니다(요 8:9). 다 죄가 있는데 가리워져서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가리워진 것이 없습니다. 다 드러났으므로 자기가 많은 죄를 사함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그 여자와 같은 죄가 있는데 가리웠기 때문에 죄가 많은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어떠한 선행 같은 것, 무슨 의로운 길을 걸은 것, 다른사람 보기에 크게 잘못하지 않은 것 등으로 가리워져서 속에 있는 전적 부패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은 다 전적 부패하며, 선한 것이 하나도 없고,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건져 주지 않으셨다면 벌써 다 망했을 자들입니다.

필자도 6.25 사변 때 하나님이 건져 주지 않으셨다면 몇 번이나 죽었을 자입니다. 6.25때 죽었다면 죽은지 52년 됐을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사해 주시고, 건져 주셨습니다. 또 세상에 올 때에 빈손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모든 것을 다 주신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죽지 않은 것만 하여도 얼마나 감사하며, 망하지 않은 것만 하여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지옥가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다 지옥 갈 자요, 다 망할자요, 다 저주 받을 자인데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속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감사하여 항상 감격에 넘치는 신앙이어야 하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해야 됩니다.
이 여자는 감격에 넘치는 눈물을 많이 흘렸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많이 사랑했습니다. 이런 신앙은 예수님이 참으로 기뻐하는 신앙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마리아가 기름 부을 때에도 예수님이 만족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행위요, 예수님에게 바치는 행위요, 헌신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만족 하셨습니다.

본문 48-50절에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구원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6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란 처음 사랑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처음 사랑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낙원에 살게 하시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많이 사랑합니다, 적게 사랑합니다, 조금 사랑합니다 등, 그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서 받는 분복이 다 다릅니다.

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신앙행위가 다릅니다. 조금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하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는 다릅니다. 가령 향유를 준비한다 합시다. 조금 사랑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병에 값이 싼 향유로 조금 준비 할 것입니다.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은 향유를 좀 더 많이 준비 하고, 좀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좀더 많이 비싼 것으로 준비하여 예수님께 바칠 것입니다. 또 항상 예수님을 경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구원하려고 오셨으니 “감사
합니다” 하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언제나 섬기고,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 사랑의 세계에서 삽니다. 낙원에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는 낙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살면 항상 낙원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이 환난과 핍박과 죄가 많지만 그 사람 속에는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낙원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 실과를 먹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속에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 생명의 결과, 자라나는 역사 그것이 언제나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6:22).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려면 많이 사랑해야 됩니다. 낙원의 세계에 많이 살려면 많이 사랑해야 됩니다.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많이 사랑해야 됩니다. 생명이 많이 자라나려면 많이 사랑해야 됩니다. 많이 사랑하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깨달아야 되고, 깊이 깨달아야 됩니다. 한량없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것을 깨달아야 주님을 한량없이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무한히 사랑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죄에서 나오고, 죄에서 멀리 떠나게 되고, 생명의 세계에서 살게 되고, 생명이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겠습니다.
사랑하지 못한 죄가 큰 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여 낙원을 많이 소유하는 자, 생명을 많이 소유하는 자, 생명 나무열매가 많이 맺히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