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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데살로니가후서 3:1-18 확신과 소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확신과 소원
데살로니가후서 3:1-18

1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2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 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3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14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16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 지어다 17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1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 지어다

3:1 마지막으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속히 전파되어 영광스럽게 되고, 

3:2 또한 우리가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게 하소서." 하여라. 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3 그러나 주께서는 신실하시니, 너희를 굳세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실 것이다. 

3:4 너희에 대해서는 우리가 명령한 것들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것이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한다. 

3:5 주께서 너희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하시기를 바란다. 

3:6 형제들아,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하니, 너희는 무질서하게 행하며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형제를 피하여라. 

3:7 너희는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인지 스스로 알고 있으니, 우리는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않았고, 

3: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았으며, 도리어 너희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며 밤낮으로 일하였다. 

3:9 이는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령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마라." 라고 하였다. 

3:11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어떤 이들은 무질서하게 행하여 아무 일도 하지않고, 일만 만들고 있다고 한다. 

3:12 이런 이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령하고 또 권면하니, 조용히 일하여 자신의 양식을 먹도록 하여라. 

3:13 형제들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라. 

3:14 누구든지 이 편지에서 지시한 우리의 말에 순종하지 않거든, 그를 지목하여 그와 사귀지 말고 그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라. 

3:15 그러나 그를 원수같이 여기지 말고, 형제같이 권고하여라.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모든 일에 항상 평강을 주시기를 바란다.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원한다. 

3:17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한다. 이것이 모든 편지에 표가 되므로 내가 이렇게 쓴다. 

3: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1. 기도
주의 말씀이 퍼지기를 위해 기도함

종말로 권면하는 말씀인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는 사도바울 일행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주의 말씀이 너희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라고 했는데, 하나님 말씀이 달음질해서 계속 퍼져 나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 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엔 영광스럽게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은, 다른 곳에 가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서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곳에서만 영광스럽게 되는 것 보다 여러 곳에 개척교회를 세우게 해서 그곳에서도 영광스럽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사를 보내서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퍼지기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열매가 잘 맺힌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에게 믿음이 주어짐

모든 성도를 통해서 열매가 잘 맺혀서 영광스럽게 되고, 또 ‘무리하고 악한사람에게서 건지옵소서하라’고 했는데, 무리하고 악한 사람이 전도자를 핍박하는데 거기서 건져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하였는데’, 믿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만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만 믿음을 주셔서 예수 믿게 하시는데, 택한 백성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 곳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으니까 말씀을 널리 전해서, 택한 백성을 다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택한 백성에게만 있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주는 사람만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주느냐 하면, 택한 백성에게 줍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면 택한 백성이 나타나는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치면 좋은 성도가 되어서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확신과 소원

본문 3절에, “주는 미쁘사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미쁘사’의 뜻은 하나님은 신용 있다,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너희를 굳세게 하시고’, 즉 믿음을 굳세게 해 주실 것이고 또한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고 했습니다. 교역자인 사도바울 일행이 가르쳐준 말씀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로 확신한다고 합니다. 가르쳐준 말씀을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행하게 해 주실 줄로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너희가 들어가고 그리스도 인내 속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내는 참고 견디는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모든 환난 시험을 잘 참고 견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3. 규모를 지키라

본문 6절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모든 걸 규모 있게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7-9절에,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유전대로 너희가 행하여야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본 받아야 할 자를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본받아야 될 것을 모범으로 보였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는, ‘주야로 일하면서 애써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 3절에,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장막을 지어서 팔고 그 돈을 벌어서 자비량 하면서 일 했다는 것입니다. 장막 짓는 기술이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막은 요즘말로 하면 ‘천막’, ‘텐트’입니다. 천을 사다가 천막을 만들어 팔아서 그 이익금을 가지고 살면서 전도 했다는 것입니다. 장막 짓는 기술로 주야로 일하여 돈을 벌어서 자비량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4. 일하지 않는 자를 권함
6일간 열심히 일하고 안식일을 지킬 것

본문 10-11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은 사도바울이 늘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일해서 먹게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은 안식하셨습니다. 십계명 가운데서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안식일 계명이 무엇입니까? ‘주일날은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하고 제 칠일 째 되는 날은 쉬라는 것이 4계명입니다. 4계명은 칠일 째 쉬라는 것만이 아니고,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 제 칠일에 가서는 주일날은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 넷째 계명입니다. 

일해서 먹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임

하나님의 계명은 ‘일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는다고 하였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려야 됩니다. 또 여자들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잉태하는 고통은 해산하는 고통과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고통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준 것입니다. 해산하는 고통 안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거스르는 것입니다. 

공중에서 낮잠 자는 새를 보라고 했습니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목침 베고 드러누워 자는 새를 보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새가 목침 베고 드러누워서 낮잠 자는 것 보았습니까? 새는 낮잠 안 자고 날아다닙니다. 

날아다니면 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날아다니면 먹을 것이 있게 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도 날아만 다니면 먹을 것이 다 있습니다. 날아다니면 먹을 것을 만납니다. 새에게 누가 먹을 것 어디에 있다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날아다니면 먹을 것을 만납니다. 날아다니면 풀씨도 따 먹고, 겨울에 눈 올 때는 소나무에서 솔방울 씨도 따 먹고, 하여간 날아다니면 먹을 것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안 날아 다니는 새에겐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에게 날아다니라는 것입니다. 날아다니면 먹을 것 다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일할 것 없다고 하는데, 일할 것 누가 갖다 줍니까? 날아다니면 일 할 것이 생깁니다. 낮은 일, 높은 일 할 거 없습니다. 아무거나 해야 됩니다. 날아다니면서 아무거나 할 생각하면 다 일 할 것이 생깁니다. 

교역자들이 늙어서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는 나가서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하고, 그 사람들을 잘 가르쳐서 좋은 신자가 되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가서 열 사람만 전도해도 그 사람들을 잘 가르쳐 좋은 신자가 되게 하면 그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도 전도해서 30명만 인도해놓으면 전도부인으로 임명 해드립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할 수 없다는 생각 그만 두고 할 수 있다고 하십시오. 할 수 없다 하면 못합니다. 하나님이 길을 안 열어주십니다. 할 수 있다고 해야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할 수 있다. 전도 할 수 있다” 하며, 전심전력을 다해서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또 전도한 사람을 위해서 밤낮 기도해주고,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면 좋은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신자가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전에 백영희 목사는 할 것이 없으면 빗자루 들고 나가서 길바닥이라도 쓸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신촌 로타리에 가서 쓸고, 이대입구에 가서 쓸고, 돌아가면서 쓸라는 것입니다. 사방 돌아다니면서 쓸면 하나님께서 일감을 맡겨주십니다. 그런 사람을 쓰면 모든 일이 잘 될 테니까 말입니다. 

일 맡아 놓고 안하는 사람 못씁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일을 계속 해야 됩니다. 그런데 주일날은 하지 말고, 다른 날은 무조건 하라는 말입니다. 놀지 말고, 낮잠 자지 말고, 좋은 일 골라 할 생각 말고 낮은 일을 할 생각 하십시오. 고무줄 장사라도 하고, 길거리 꽃장사라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먹을 것을 줬습니다. 먹을 것을 준비 해 놓고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새도 만들고 짐승도 만들고 먹을 것을 다 준비 해놓고 내셨는데, 사람이 일해서 먹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하면 하나님께서 먹고 살게 만들어 놓았고, 먹고 살수 없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가만 앉아 있지 말고 청소도 하고 다 하십시오. 일 안하고 먹을 것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고 했습니다.

도무지 일은 안하고 돌아다니면서 사건만 일으키고 남에게 폐만 끼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폐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에,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과 낮으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됩니다. 정정당당하게 일해서 살아야지 남에게 얻어먹을 생각이나 하고 폐를 끼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 부인이 하나 있었는데, 장사 하는 성도 집에 가서 아이들 옷을 만지면서 “이 옷 우리 아이에게 입히면 잘 맞겠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장사하는 성도가 얼마나 딱합니까? 안 줄 수도 없고, 주려면 거저 주어야 되는데 장사는 안 되고... 그런 것은 폐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절대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정정당당하게 자기 밥 먹고 살아야 됩니다. 일하면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십니다. 아무리 낮은 일이라도 일해서 먹는 것이 귀합니다. 일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5. 선을 계속하라

본문 13-16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평강의 주님인데,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순종 안 하면 평강이 없습니다. 순종해서 나가서 일하는 사람, 규모 없게 하지 않고 규모 있게 하고, 또한 누를 끼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앞길을 열어 주시고 평강도 주십니다. 
 
6. 문안축복
 
본문 17-18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친필로 마지막에 문안 한다’는 것은, 사도바울이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편지 쓸 때는 대서(다른 사람에게 쓰게 함)를 시키고, 마지막에 자기 친필로 싸인 하는 형식으로 큰 글자로 문안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가운데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항상 살라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거저 주는 것인데 거저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속에 대한 모든 것, 구원해 준 것과,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감동, 그런 것 등이 다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세계, 사랑의 세계, 은혜 가운데 사는 것, 하나님이 늘 같이 해 주시는 것이 다 은혜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성도가 은혜를 떠나면 못삽니다. 항상 은혜를 떠나지 마십시오. 은혜 떠나면 고기가 물속에서 나온 것과 같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인도와 보호와 구속 가운데서 삽시다.

데살로니가후서 2:13-17 진리의 신앙을 가진 자가 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진리의 신앙을 가진 자가 되라
데살로니가후서 2:13-17

13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진리의 신앙을 가진 자가 되라

본문 13-15절에,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유전과 편지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킬 수가 있습니까? 첫째는 사랑해서 늘 사모하고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읽고 또 성경을 배우고 성령 안에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서 그 성경에서 생명을 얻고 힘을 얻고 점점 성경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믿어야 됩니다. 믿음으로 그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 말씀이 자기를 인도하는 말씀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그 말씀을 지켜서 그 말씀대로 자기가 인격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미혹을 받지도 않고 또 미혹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퇴보가 됩니다.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가 됩니다. 우리 신앙이 전진해야만 퇴보하지 않습니다. 퇴보하지 않으려고만 하면 그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 전진해야 퇴보가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계속 전진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5장 12절에 너희가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랜 사람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학교로 말하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이렇게 올라가야 되는데 밤낮 초등학교 1 학년짜리로 그냥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요새 성도들이 자라나지 못하고, 전진하지 못하는 성도가 대부분입니다. 또 졸며 잠자는 성도가 또 많습니다. 조는 성도, 또 잠자는 성도, 심령에 잠이 들어서 영적 감각을 다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도무지 힘이 없습니다. 도무지 분별력이 없고 깨닫지 못합니다. 심령이 잠자는 것입니다. 잠자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락을 좋아하는 이 향락주의는 살았으나 그 심령이 죽은 심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끊어졌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죽는 법이 없이 늘 살아 있지만 그 역사가 중단되고 끊어지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에 역사가 끊어지면 감각이 없고 분별력이 없고 아무 힘이 없습니다. 환난과 맞닥뜨리며 환난을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아예 뒤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산 신자, 생명 있는 성도는 환난을 마주하며 이기고 나갑니다. 

빌립보서 1장을 보면 바울은 환난을 맞서 가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또 빌립보 교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더욱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는데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 때 복음 전하면 십중팔구 모두 감옥에 갇히게 될 그런 상황인데도, “감옥에 갇혀도 좋다, 나가자, 나가자” 하면서 아주 힘 있게 나가서 전했습니다. 이것이 산 신자의 모습입니다. 죽은 신자는 환난이 들어오면 슬슬 도망치려고만 합니다. 일제시대 삼일만세운동 때에 기독교인들이 만세를 많이 불렀는데, 그 때문에 일본 경찰이 교회 집사들을 많이 잡아갔습니다. 오산교회의 어떤 집사 하나가 “아무개는 오늘부터 예수 안 믿는다”고 대문 앞에 써 붙였다고 합니다. 자기 잡으러 오는 것 같으니까 오늘부터 예수 안 믿는다고 광고 써 붙이고 그 다음에는 교회도 안 나간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담대히 나가는 신앙, 환난과 핍박이 들어왔을 때 담대히 나가는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담대히 나갈 수 있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의 장로 딸이 하나 있었는데, 피아노를 잘 쳤고 교회에서는 풍금을 연주했습니다.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장로 딸이어서 자랑스러워하고 우쭐거리곤 했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무슨 잔치 할 때 일본순사가 갑자기 와서 호루라기를 한 번 부니, 그 장로 딸이라는 사람이 옆에 난 문으로 냅다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순사가 오면 왔지, 평소에는 교회 봉사 잘 하는 것 같더니 장로 딸이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되는 장로도 가만 보니 똑 같다는 말씀입니다. 1948년 11월 3일 주일날 선거 할 때에, 임하균 목사,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우리는 주일날이라서 선거 못한다고 결정하고 교인들이 동참하려는데, 장로가 나서더니 일제시대 때에도 우리가 졌는데 우리가 한 번 더 집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3년째인데 장로가 믿음으로 이기자고 해도 부족할 판에, 교인들이 선거를 하도록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 바람에 많은 사람이 넘어 갔습니다. 

말세에 가서도 잠자지 말고, 또 세상에 속화되지 말고, 향락주의로 기울어지지 말고, 전진하는 신앙,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좀더 나아져야 됩니다. 날마다 나아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전진하는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영력이 점점 강해지고, 점점 새 생명의 역사가 커지고, 속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점점 커지고, 자기가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이 역사가 점점 커져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점점 많이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전에는 진리를 조금 알았
지만 좀 더 많이 배우고 성경을 많이 읽고, 또 많이 묵상하고, 점점 더 많이 성경을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믿고 그 다음에는 사랑하고 그대로 행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시간 늦지 말고, 성경 배우는 시간에 빠지지 마십시오. 성경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배우고, 그 말씀을 믿어서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서 무슨 소망을 가지라고 했습니까? 산 소망입니다. 

로마서 5장 2-3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했는데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될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데, 환난 가운데도 즐거워하는 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만 보고 즐거워합니다. “아, 참 영광이 크다, 하나님 영광이 얼마나 큰가” 하며 바라만 보고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구경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내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다 하는 소망을 또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서 연단 받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참는 중에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도달합니다. 소망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환난이 중요합니다. 환난이 없으면 연단이 못됩니다. 인내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환난이 있어야 연단이 되고 그 다음에 인내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는 거기 도달합니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푯대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표준에 도달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미혹 받는 세계에서 나와서, 좀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면 미혹하는 세력이 못 옵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못 옵니다. 찬송가도 있지 않습니까?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마귀의 역사가 못 옵니다. 미혹을 받는 사람들은 저 아래 흑암 속에서 헤매기 때문에 미혹을 받습니다. 그 속에서 올라오면 미혹을 안 받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세계, 빛 가운데 걸어가는 세계, 진리를 행하는 세계, 진리에 서 있는 세계. 이러한 세계에 서 있는 사람에게 미혹하는 세력은 저 아래서 아물아물하는 것들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아무리 시험이 되고 유혹할 만한 것들이 말을 해도, “저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그걸 예수 믿는 거라 하고 있나?” 하면서 “척 보면 척이다” 하는 식으로 아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데, 성경 위반하는 것인데 왜 미혹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아래 세계에 빠져서 감각 없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말씀 가지고 미혹하거나, 신비스런 것으로 미혹하면 정말 그런가보다 하며 귀가 나팔 같아지는 것입니다. 

1992년 10월에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많이 미혹시켰지만 우리 교인들 그곳에 한 사람도 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성경에 서지 못한 사람들, 잠자는 교인, 믿음을 쓰지 않는 교인들은 앞으로 또 다른데 미혹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서고, 진리에 서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행하면 아무데도 미혹 안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서지 못한 그 세계에서 쑥 빠져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진리의 세계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한 걸음 더 올라갑니다.
더 올라가서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세계, 좀 더 올라가는 그 세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야만 올라갑니다. 좀 더 한 계단 올라가서, 이젠 빛 가운데서 좀 더 빛 가운데로, 신령한 세계에서 좀 더 신령한 세계로, 진리의 가운데서 좀 더 심오한 진리로 좀 더 깊은 진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온산 정복을 향해서 올라가는 길인데, 이것은 힘을 써야 됩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언제나 끊어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올라가지, 아닌 걸 그대로 두고는 못 올라갑니다. 아닌 건 언제나 아니라고 끊어버리고, 옳은 건 옳다고 거기 서고, 또 아닌 건 끊어서 옳은 데 서면서 계속 이렇게 올라가는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소망은 무슨 소망입니까? 그렇습니다. 산 소망, 하나님을 닮아가는 소망, 자라나는 소망, 이 산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도달하려면 또 무엇이 있습니까? 환난, 인내, 연단으로 소망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데, 이룬다는 것은 점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소망을 가졌지요? 그 다음에 환난 가운데서, 인내로, 또 연단으로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말입니다. 많이 닮아가야 됩니다. 하나님 닮아가고 예수 닮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제 진리를 날마다 배우고 계속해서 그 진리로 자기를 만들고 닮아갑시다. 주일마다 생명 있는 진리를 먹어야 됩니다. 이전에 먹던 찬 밥술, 식은 밥 데워 먹는 것 가지고는 일이 안 됩니다. 옛날 배운 진리만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새 생명 있는 진리를 받아먹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주일날마다 새 생명이 있는 진리의 양식을 계속 먹고 그대로 살려고 힘을 쓰고, 새김질하면서 자기의 생명의 살과 뼈로 삼고, 계속해서 진리를 먹고 또 먹어 자기가 힘을 얻고, 자라나
점차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됩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젖으로 먹는 것 가지고는 자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서 점점 자라나는 그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2. 은혜와 축복

본문 16-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좋은 소망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소망입니다. 그 영광에 가서 참여하는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 소망을 점점 이루어 나가는 그 신앙, 그 자리에 서야 되고,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 심령 속에 넘쳐 흘러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위로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으로 화하고,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살면서, 모든 선한 일과 선한 말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선을 이루기 위해서 불렀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너희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게 선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선이고, 원수를 용서해 주는 것이 선이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선이고, 모든 사람 앞에 선을 베풀어야 되고, 선한 사람이 돼야 되고, 또 여러 선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1장에 보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서 선을 이루어 나가고, 진리를 분별해서 진리를 세워나가고, 복음을 전하는 것들이 모두 선입니다. 다른 사람 살리는 것이 선 아닙니까? 우리는 진리를 분별하는 그 선에 서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지극히 선한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고, 또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진리를 먹어서 내가 먼저 살고, 이 진리를 전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이것이 다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도와 나가고, 지극히 선한 것을 날마다 분별하고 그 선에 굳게 서고, 선한 사람이 되고, 선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저희가 되고, 진리를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참 교회를 세워나가고, 진리를 세워나가고, 이 진리를 전파하는 일, 이 일에 굳게 서서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17 신앙의 전통을 지키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앙의 전통을 지키라
데살로니가후서 2:13-17

13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바울의 감사
본문 13절에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하였는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창세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멸망하는 자리에 참여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또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처음부터 택해 주시고, 예수를 믿게 해주시고, 또 성령께서 거룩하게 해 주신 일에 대해서 늘 감사했습니다. 즉 창세전에 택해주시고, 예수를 믿게 해주시고, 성령께서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경건한 믿음의 길을 걷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본문 14절에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과 예수님의 재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제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의 형체와 같은 영광체로 변합니다. 즉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2. 신앙의 전통을 지킬 것

본문 15절에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전통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전통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바로 믿는 전통을 잘 지켜나가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변하는 게 아닙니다. 예레미야35:5-10에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대로 다 준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레갑 족속이 그 선조 요나답의 전통을 잘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레갑 족속의 전통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집도 짓지 말고 장막에 거하고, 파종도 하지 말고,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평생에 장막에 거하라는 것인데, 250년 동안 레갑 족속이 그 선조 요나답의 전통을 잘 지켰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전통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과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 교회 목사들은 사무실에 재떨이를 갖다 놓고 담배를 피우면서 무엇을 하고, 또 술도 마시는 목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전통은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또 개고기를 먹지 않는 전통도 내려왔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개고기를 먹으면 “개 예수다”라고 하였습니다. 목 매어 죽인 것은 먹지 말라는 말씀에 의해서 개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을 때에 그저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었고, “피우지 말라”고 해서 안 피웠는데 지금 상당히 건강에 유익을 봅니다. 술 마시는 사람은 술을 안 마시는 사람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3- 5배가 높다고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배를 피우면 암에 많이 걸립니다.

개고기는 몸에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새는 개를 목 매어 죽이지 않고 전기로 죽인다고 하는데, 전기로 죽인 개고기는 먹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전기로 죽였다고 해도 개고기를 안 먹습니다. 왜 안 먹었느냐 하면 어렸을 때부터 안 먹도록 배웠기 때문에 무조건 안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알고 보니까, 개고기가 안 맞는 체질은 개고기를 먹으면 나쁘다고 합니다. 나는 개고기가 안 맞는 체질이라고 합니다. 개고기를 먹었으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전통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잘 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건강에도 상당히 유익이 많습니다.
이만큼 건강한 것은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시므로 하나님이 건강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단의 제일 좋은 전통은 산기도 하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김현봉 목사님한테 받은 전통입니다. 물론 이북에서도 산에 가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대명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 꼭대기에까지 여러 집사들과 같이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또 밤에도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은 밤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내려오게 되었는데, 길이 꾸불꾸불한데다가 밤이라 길을 찾을수 없어서 곧장 내려오는데, 얼마나 산이 험한지, 내 앞에 가던 사람이 하얀 모자를 쓰고 갔는데, 그 모자가 쑥 내려가곤 합니다. 그 모자가 쑥 내려가는 것을 보아서 그만큼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비를 맞고 내려와서 최철구 목사님 댁에 가서 바지저고리를 얻어 입었습니다. 그래도 매일 아침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김현봉 목사님한테서 배운 것입니다. 이 전통은 좋은 전통입니다. 

매일 산에 가서 기도하는 이 좋은 전통을 지켜야 됩니다. 전에는 매일 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을 몰랐는데, 전칠홍 목사와 이학인 목사가 와서 나 보고, 서울에 있는 고려파 교회를 한번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교회 들르다가 아현교회를 갔습니다. 아현교회에 가니까 목사님은 안 계시고, 구석에 방석들을 쌓아놓고, 한쪽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디 가셨냐고 하니까 삼각산에 기도하러 가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무슨 날이기에 기도하러 가셨냐?”고 하니까 봉원동은 매일 기도하러 가시고, 삼각산은 자주 기도하러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산에 기도하러 가는 전통을 김현봉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그 다음에는 김현봉 목사님을 모셔다가 명륜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사경회를 했는데, 반대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김현봉 목사님을 모셔다가 여러 해 동안 사경회를 했습니다. 그 바람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차차 감동이 되어서 돌아섰습니다. 진리가 이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교단에 산에 가서 기도하는 좋은 전통이 내려온 것입니다. 특별히 금요일에 산에 가서 토요일까지 기도하는 것은 좋은 전통입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광주기도원에 목사들이 약 45명쯤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대전에서도 오고, 천안에서도 오고, 서울 여러 곳에서 와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기도하는 교단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단의 특별한 좋은 전통입니다.

그리고 복음성가 안하는 것도 좋은 전통입니다. 복음성가 안하는 교회가 쉽지 않습니다. 거의 예배 시간 반시간 전부터 복음성가부터 하느라고, 정신이 거기에 도취되어 절반 빠져 나갑니다. 복음성가에 도취되면 그 다음에 찬송가는 재미가 없고, 찬송을 부르면 졸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성가를 안하는 전통은 참 좋은 전통입니다. 앞으로도 복음성가를 안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성가는 왜 잘못 되었느냐? 하면 복음성가를 통해서 나쁜 곡조가 많이 들어옵니다. 즉 세상의 속된 곡조, 방탕하는 곡조, 무당 굿하는 곡조 등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를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뭐가 되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교회가 전부 타락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전통들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 산에 가서 교역자 수양회 하는 것, 또 사경회 하는 것 등 좋은 전통들을 지켜나가야겠습니다. 

또 주일 오전에 성경 공부하는 것, 좋은 전통입니다. 그 다음에 아이들에게 육신 중심으로 나가지 않고 성경을 많이 가르치는 것, 좋은 전통입니다. 요새 교회들이 아이들에게 성경중심으로 가르치지 않고 육신중심으로 나가는데, 그것은 아이들에게 믿음이 안 들어갑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교단은 아이들에게 성경만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 장년부도 성경을 오전 10시 10분부터 가르치는데, 그것을 계속해야 됩니다. 다른 교회들도 성경공부를 시키라고 내가 자꾸 권면합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교인들의 신앙이 말씀위에 굳게 섭니다. 말씀에 서야 믿음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유전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잘 지켜나가야 되겠습니다. 

3. 은혜와 축복
본문 16-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선한 일을 하고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또 선한 일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일 중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봉사하는 것이 선한 일 가운데에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 봉사도 선한 일이며, 교인들을 돌보는 일이 선한 일입니다. 또 교회 주차장 당번 하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일을 하는 것이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는 일은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자원해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사야 6:8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할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자원하여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하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일 해야지 놀고 있으면 뭐합니까?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극강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12 배도(背道).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배 도 (背 道)
데살로니가후서 2:1-12

1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7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8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임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감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이러므로 하나님의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일과 그분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니, 

2:2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주님의 날이 임박한 것처럼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2:3 아무도 너희를 어떤 식으로도 속이지 못하게 하여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날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4 그는 신이나 혹은 숭배의 대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것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2:6 너희가 아는 대로, 지금은 그를 막는 것이 있지만, 그는 자신의 때가 오면 나타나게 될 것이다.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가 물러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2:8 그때에 불법자가 자신을 나타낼 것인데, 주 예수께서 자신의 입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그를 멸하실 것이다. 

2:9 그 불법자가 나타나, 사탄의 역사를 따라 온갖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된 기적들과, 

2:10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멸망 받을 자들에게 이를 것이니, 이는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혹의 세력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이 거짓된 것을 믿게 하신다. 

2:12 이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심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 동심(動心)하지 말 것
말세에는 미혹하는 세력이 많음

앞에서 데살로니가후서 1장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혼을 먼저 창조했습니다. 그 후에 육신을 창조하시고 영혼과 육신을 합해서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창조한 에덴동산 낙원을 영생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그 에덴동산에 뱀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뱀 안에 마귀가 들어
가서 뱀을 통해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 결코 죽지 않는다고 미혹을 시켜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 먹고 다음에 아담이 따 먹으면서 범죄했습니다. 그 범죄함을 인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추방되고 이 세상은 쓸쓸하고 거친 저주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범죄하는 날, 영혼은 즉시 죽었고, 육신은 이 세상에 얼마동안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 값으로 이 세상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본래 죽는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범죄 하지 않았으면 사망이 세상에 안 들어 왔고 죽지 않았을 텐데,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에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었습니다. 또 그 영
혼은 죄 값으로 지옥가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어 모두 지옥에 가게 된 것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 죄 값으로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셔서,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구원의 도를 주셨습니다. 이미 구원의 도를 아담과 하와에게도 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한 것은 아담에게 주신 첫 복음입니다. 동시에 인류 전체에게 주신 첫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서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게 했고, 오신 다음에는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
상에 오신지가 금년을 기준으로 1990여 년 전인데,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정작 우리 죄 값으로 우리가 죽어야 될 것을 대신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전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 전에 구약시대의 성도는 예수님 오시기 전 모든 사람들은, 장차 오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고, 예수님 오신 이 후의 사람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아서 영생을 다 얻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의 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해 놓았습니다. 우리 죄 값을 예수님이 다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아 죽었기 때문에, 이제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는 구원의 도를 전 세계적으로 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장에 보면 예수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 세계 전체 땅 끝까지 복음을 가서 전하라고 예수님이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이 회개와 구원 운동이 유럽을 통해서 또 아메리카를 통해서 동양에 왔고 전 세계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말세에는 세상 마지막 끝이 온다고 했습니다. 말세에는 여러 가지 죄악이 이 세상에 관영하고 또 마귀의 미혹이 많다고 했습니다. 마귀의 미혹이 많이 오고 유혹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미혹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재림했다, 재림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말에 미혹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미혹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
음 24:4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미혹이 많이 있기 때문에 미혹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에서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에 대하여 영으로나, 혹 말로 미혹할 때에 미혹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에 안상홍은 자기가 재림주이고, 성령이라고 합니다. 또 여호와의 증인은 “1918년에 예수님이 재림해서 공중에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되었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미혹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평안북도 철산의 김성도라는 여자는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였습니다. 김성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성주교회를 세워놓고 김성도를 재림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김성도가 죽자 평양의 허호빈이라는 여자가 “김성도는 죽었지만, 즉 예수는 죽었지만 자기 뱃속에 예수가 왔다”고 하며 복중교(腹中敎)를 만들고 사람들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허호빈의 배를 보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공산당 정부에서 허호빈을 사기죄로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자 그
파가 다 헤어졌는데, 그 중 한 파가 남한에 와서 이단을 만들었는데, 문선명의 통일교입니다. 통일교를 남한에 와서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문선명이 자기가 예수라고 합니다. 문선명이 교리책을 내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1946년 이스라엘수도원이라는 곳을 만든 김백문라는 사람이 처음 낸 것을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문선명의 교리책은 김백문의 책입니다. 통일교의 원리강론인 창조원리, 타락론, 복귀원리, 재림론은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와 동일한 책입니다. 하여간 “내가 재림주이다, 예수님이 재림했다”고 하는 것에 동심하지 말고, 미혹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 13-14절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도 마귀도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가장한다는 것입니다. 광명한 천사로 마귀가 가장해서 많은 사람을 미혹시킬 것을 가르쳤습니다. 거짓 사도,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와서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고 나와서 사람을 미혹시킨다고 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다 속아 넘어갑니다. 이리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 속에 이리의 모양을 다 감추고 양의 우리에 들어 와서 같이 있다가 잡아먹습니다. 이것이 말세에 마귀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거기에 미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미혹을 시작하여 아담을 미혹했고, 또 예수님에게도 와서 시험을 했습니다. 큰 시험을 했는데, 첫째,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해서 먹어라, 둘째,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에서 뛰어 내려라 셋째, 천하만국과 영광을 다 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내가 다 주겠다고 예수님을 미혹했지만 예수님은 마귀를 다 이겼습니다.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말세에도 변함없이 마귀는 여전히 모든 성도와 교회들을 계속해서 미혹시키는 중에 있습니다. 잘못하면 미혹에 넘어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리가 이리의 모양으로 오면 양들이 분별 할 수 있는데 이리가 어떻게 온다고 했습니까? 양의 가죽을 쓰고 오기 때문에 같은 양으로 속는 것입니다. 양들은 가만히 그냥, 마음 놓고 있다가 불현듯 이리가 공격하여 물리면 찢기고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 거짓 사도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택한 백성을 어떻게 해서든지 미혹하는 것이 말세의 현상입니다. 그럼 어떻게 미혹을 합니까? 성경을 이용해서 미혹을 합니다. 또 영을 받았다느니, 무슨 계시를 받았다느니, 또 우리가 받았다는 편지, 곧 성경을 가지고 나와서 성경을 이용하여 사람을 미혹합니다. 해석이 다릅니다. 성경은 성경인데 해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과 때를 계시 받았다고 주장하며,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예수 재림하고 휴거가 일어난다고 떠들다가 그 시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귀에게 그렇게 속아서 형편없이 비참하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 상태가 비참하게 됐고, 마귀의 종노릇했고, 또 모든 재산 다 팔아다 바쳤으니까 세상적으로도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말세에 가서 미혹하는 세력이 많이 나오는데, 누가 어떻게 하든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미혹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 미혹이 많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어느 달, 어느 날 있다, 묵시 받았다, 계시 받았다고 해도 그런 데에 절대 동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가지고 또 예수님이 어느 달, 어느 날 재림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희가 미혹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2. 배도자 출현
말세에 배도가 많음

본문 3절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배도가 많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의 아들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함

본문 4절에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신학자들, 신비주의자들 등 배도하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교회에서 나와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들이 말세에는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라고 하였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앉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숭배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자기가 예수님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이것이 배도하는 것입니다. 마호메트가 어떻게 예수님보다 높습니까? 이슬람교 사람들은 마호메트를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는 실패했고, 마호메트는 성공했다고 하며,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만들어 성경보다 더 중요시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높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또 “자기가 예수이다, 자기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박태선씨는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예수님를 의미하는 데, 자기가 “감람나무이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지방교회의 이상수라는 사람은 자기가 사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교회는 그 사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요새 신천지라는 이단이 나왔는데, 그것도 신천지 교단에 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천지가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자기를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다 이런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보다 위에 올라 앉아 있는 사람들이고,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통해서 구
원받는다고 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세에는 이런 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자들이 많이 나와야 성경이 응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여기에 미혹 받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성도는 미혹시키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아 주심

본문 5-6절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희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란 바울이 전에도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나올 것을 말했는데,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저로 하여금 저희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란 말세에 미혹시키는 자가 많이 나와서 미혹을 시켜도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성도를 미혹시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막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미혹시키는 세력이 퍼져서 다 망할 것 같지만 막는 세력이 있습니다. 막는 세력은 하나님이시며, 또 바른 진리를 굳게 믿고, 바른 진리를 사랑하고 바른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이 막는 세력들입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를 전하면 막는 세력에 속합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적 그리스도를 예수님이 심판하여 다 죽이심

본문 7-8절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 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 하였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적 그리스도들을 예수님이 다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들을 예수님이 심판하여 다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자들입니까? 

3. 사단이 미혹시키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

본문 9-10절에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이적을 행하고 능력이 상당히 크며, 기사가 나타납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얼마나 마귀의 역사가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마귀에게 미혹된 사람들, 신비주의자들은 밤새도록 열광적으로 떠들어댑니다. 영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영적 운동이 아니고, 육신의 감정운동이고, 최면술 운동이고, 기합술 운동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제 정신없게 만들고, 자기 능력 이상의 힘이 나게 만들고, 이적과 기적이 일어나게 만드는 이런 역사가 마귀로부터 나오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을 가지고 미혹시킵니다. 성경에도 이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 와서도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미혹시키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 시험에서도 성전에서 뛰어 내리면 구약성경 시편 91편 12절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말씀, 즉, 천사를 보내서 발을 받들어서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쓰여 있지 않느냐? 이렇게 되는지 한 번 해봐라 하면서 성경을 가지고 나와서 미혹을 시킨 것입니다. 성경의 해석이 이처럼 다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다가는 멸망에 들어간다고 베드로후서 2장 1절에서 말했습니다. 성경해석 잘못했다가는 멸망에 들어갑니다. 누구나 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단들이 성경을 가지고 나옵니다. 성경을 오용하고, 성경을 삐뚤게 해석하고, 성경을 잘못 인용하여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고 바른 진리에 굳게 선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성경 가르쳐 준다고 무턱대고 다 배워서는 안 됩니다. 또한 무슨 계시 받았다는 것으로도 미혹을 시킵니다. 예전에 다미선교회 사람들이 10월 28일 예수가 재림한다는 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난리를 치다가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안 믿는 대학교수가 그것 어떻게 된 것이냐고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성경에 정말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는 물음에, 성경에는 이 세상 말세가 있다, 마지막 끝이 된다고 쓰여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말세에는 여러 가지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 마지막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타고 재림하고 성도는 들려 올라간다고 했더니 아, 성경에 그런 말 있느냐 하면서 그러면 예주 재림한다고 떠든 그 사람들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들의 잘못된 것은, 그 날과 그 시는 하늘의 천사들도, 예수님도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는데(마태복음 24:36), 예수님 재림하는 날짜며 시간을 자기들이 안다고, 계시 받았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위반된 것은 마귀 역사지, 그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건 기독교가 아니고 이단입니다. 성경을 떠난 것이 이단이고 성경을 떠난 것이 마귀역사입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그 사람들이 성경에서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이단이나 잘못된 것. 모든 마귀 역사는 전부 성경을 떠난 것입니다. 성경을 떠나면 그건 마귀역사이고 성령은 성경대로만 역사합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경 떠난 것은 전부 마귀 역사입니다.
예수님 재림한다는 것과, 성도가 휴거된다는 말이 비록 성경에 있더라도 그것을 마귀가 이용하고 오용을 했다는 말입니다. 좋은 것을 가지고 나쁜 데 사용을 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음식에 독약을 타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지 음식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한다는 것, 휴거 된다는 것이 다 맞는 말이고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날짜, 시간, 계시 등 이러한 독약을 탄 것이란 말입니다. 독약을 타서 먹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또 망하고 마귀 종이 되고 전도의 문을 막고, 하나님 영광이 가려지게 하고, 자기 영적상태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약을 탄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어긋나게 해도 이단이고 그것은 남을 망하게 만들고 자기도 망하게 하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바로 선 사람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혹을 받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미혹을 받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사람들,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 심지어 목사들도 미혹을 받습니다. 목사가 미혹 받으면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거짓 사도 노릇을 합니다. 미혹 받지 않는 방법과 또 미혹을 왜 받았는가 하는 이유도 여기 같이 나옵니다.

본문 10절에,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첫째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미혹을 받은 것입니다. 진리를 참으로 사랑했다면 그러한 미혹을 안 받을 것인데진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까? 진리에서 떠난 것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굳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해서 물리칠 수 있는데 진리를 떠났기 때문에 마귀가 미혹합니다. 진리를 떠나면 바로 죽음입니다. 즉살(卽殺)입니다. 마태복음 24:24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이적과 기사, 희한한 능력을 나타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데,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즉 택한 백성도 미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마지막에 하나님이 건져 내어 주십니다.
즉 택한 백성은 미혹 받았을지라도 회개하고 나올 날이 옵니다.

마태복음 24:11-12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병 고치는 것으로, 희한한 이적과 기사로 많은 사람을 미혹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혹시킨다고 했습니까?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라고 하였는데,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를 미혹합니다. 즉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미혹을 받습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나오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미혹 받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미혹 받도록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진리를 믿지 않는 자

본문 11-12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미혹되는 종류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10절), 
둘째는 진리를 믿지 않는 자(12절)입니다. 아무리 미혹 시키는 세력이 많아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믿는 사람은 미혹을 못합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그저 이적이나 보려고 다니고, 큰 일이나 하려고 하고, 병이나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마귀가 미혹 합니다. 박태선 운동이 처음
나왔을 때에 한강변에 천막을 치고 집회를 하였는데, 그 때에 목사들이 많이 따라 다녔습니다. 

또 명륜교회의 한충화라는 이대교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통일교 문선명씨를 따라 다녔습니다. 한충화 교수는 자기 아들이 반 벙어리였는데, 아들 병 고치려고 따라 갔습니다. 내가 가도 병을 못 고치자, 가지 말라고 만류했으나 듣지 않고, 가서 다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이적과 기사나 좋아하고, 병 고치는 것이나 좋아하며 따라 다니는 사람은 앞으로 또 미혹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왜 미혹을 받지 않는가 하면, 가보니까 진리가 아닙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괜히 외부적으로 떠들썩하고, 병이나 고치고, 크고 희한한 능력을 나타내나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따라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진리를 믿는 것이 중요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믿노라” 하며 다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려고 그런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들을 내보낸 것입니다. 즉 진리를 믿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려고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들을 내보셨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이적과 기사나 좋아하는 자들은 쭉정이들인데, 이런 쭉정이들을 골라내시려고 유혹하는 세력들을 내보내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내보내야 진리를 믿는 사람들과 진리를 믿지않는 사람들이 갈라질게 아닙니까? 진리를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 거짓 선지자들이 나오면 좇아갑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믿는 자들은 안 좇아갑니다. 진리를 좇아가는 사람들은 들어 보면 다 알게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다, 비성경적이다, 성경을 어기는 것이다”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안 좇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가서 아무리 미혹하는 세력이 많더라도 거기에 미혹 받지 않으려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믿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가 아니면 안 따라 갑니다. 진리에 서지 못하고, 말씀에 서지 못하고, 무슨 이적과 기사나 좋아하고, 큰 일이나 좋아하고, 병 낳는 것이나 좋아하는 사람은 거기에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잘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에 굳게 서 있는 신앙이 아주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나가는 신앙은 아무리 미혹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도 거기에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는데, 진리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는 영원불변이요, 우리 생명의 양식인줄 믿고 진리에 굳게 서면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지켜야 됩니다. 

“자기가 예수다, 자기가 재림주다, 자기가 만왕의 왕이다, 자기가 감람나무다, 자기가 어린 종이다, 자기를 통하여 구원 받는다”는 것 등은 전부 진리에 맞지 않습니다. 또 신비주의자들의 “예언한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꿈을 꾸고 알았다”는 것 등도 진리에 맞지 않습니다. 꿈 꾼 것을 따라 가는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요새 우리가 꾸는 꿈들은 제 꿈 아니면, 개꿈인 줄 알아야 합니다. 꿈을 꾸었다고 하여 큰 일이 난 줄 알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꿈을 따라 가지 말고, 말씀을 따라 가야 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박고,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나가는 사람은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5-12 환난으로 만들어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환난으로 만들어지라
데살로니가후서 1:5-12

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6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5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며, 너희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니, 이를 위하여 너희가 고난을 당하고있다. 

1:6 하나님의 공의는 너희에게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1:7 환난을 당하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자신의 능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1: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불꽃 가운데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1:9 그들은 주님의 얼굴과 그분의 능력의 영광에서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1:10 그 날에 주께서 오셔서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도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기 때문이다. 

1:11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


1.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
환난 받는 자에게 안식과 위로로 갚아주심

본문 5절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고,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일, 그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것입니다. 

본문 6-9절에,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고 하였습니다. 고난 받는 것은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환난 받게 하는 저희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십니다.
환난 받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안식과 위로를 주십니다. 환난을 믿음으로 이기면 하나님이 안식을 주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받은 것을 채워 주시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위로와 안식입니다. 위로와 안식을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나가신다고 했는데 환난과 핍박을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잘 만들어집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첫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고, 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고, 셋째도 참고 견디는 거라고 했습니다. 잘 참고 견디십시오. 왼뺨 치면 오른 뺨 돌려대십시오. 오른뺨 맞을 예산하고 나가십시오. 아파도 참는 것입니다. 참으면 뭐가 생깁니까? 참으면 하나님이 안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주십니다. 안 맞으면 뭐하겠습니까? 안 맞으면 안식 못 받고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자가 못됩니다. 

환난 받는 것이 큰 복임

예수님이 재림할 때 상급으로 갚아주시는데, 로마서 5장 3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환난 중에 슬퍼하고 낙심하지 않고,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왜 즐거워 한다 하였습니까?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내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자격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받는 것이 큰 복입니다. 환난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고, 안식과 위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님 재림할 때에 상급으로 주십니다. 환난 안 받는 사람은 이런 것이 없습니다. 환난 안 받는 사람은 인내도 없고, 연단도 없고, 소망 이루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환난 받는 사람에게 인내가 생기고, 연단이 생기고, 소망이 이루어지는데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환난 안 받는 사람은 그 복이 없습니다. 

다니엘이 환난 받아서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습니까?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겠다고 하다가 환난 받았습니다. 또 사자 굴에 들어가는 환난을 받았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 가운데 들어가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풀무 가운데 던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인내가 만들어지고, 소망이 이루어지고, 연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많은 환난 받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환난 받은 자가 쓸 만한 사람입니다. 미국에 어떤 교회에서 교역자를 초청하는데, 한국에서 환난을 많이 받은 교역자를 초청 한다고 했답니다. 미국에 살면서 환난 받지 못한 교역자보다는 한국에서 공산당 환난, 일본 제국주의 시대 환난, 신사참배 환난, 주일환난 등 여러 가지 환난 겪은 교역자를 초청하겠답니다.

환난 받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고, 연단을 받고, 인내가 생기고, 소망이 이루어져서 믿는 일이 되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들이 요새 환난 없이 평안히 사는데, 여기서도 믿음 지키려고 하면 환난 받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바로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으려고 결심하고 적극적으로 따라가면 고난이 옵니다. 

무슨 고난이 오는가 하면, 전도하는데도 고난이 오고, 주차장 당번을 해도 고난당하고, 교회에서 봉사해도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밥하는 것, 기도원에 가서 봉사하는 것이 다 고난당하는 것 아닙니까? 고난 중에 인내가 생기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2. 환난을 자청함
환난을 만들어 받은 사도바울

김현봉 목사님은 환난이 없는 사람은 환난을 만들어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환난이 안 옵니다. 만들어 받아야 됩니다. 환난을 만들어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바울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33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 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까? 성벽을 지키고 잡으려 할때 광주리를 타고 도망치느라고 많은 환난 당했습니다. 매를 몇 번 맞았습니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태장은 세 번, 돌로 한번 맞았고, 또 세 번이나 배를 타고 가다가 파선 됐습니다. 전도하러 가다가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그 다음엔 강도의 위험, 강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가만히 있었으면 그
환난을 받았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바울보고 뭐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이 평안히 공부만 하던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환난은 하나도 안 받고 평안히 잘 살다가 평안히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난을 만들어 받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잡혔습니다. 환난이 그냥 오는 것도 있고, 자기가 만들어 받는 환난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음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따랐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배와 그물이 재산입니다. 그러나 배와 그물, 부친을 다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혈혈단신이라는 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하니까 예수님이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아버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버리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좀 평안하게 사는데 자기가 만들어 받아야 됩니다. 만들어 받으면 얻을 게 많습니다. 만들어 받지 않으면 거저 오는 것이나 받아야 되는데, 거저 오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주일날 시험 치는 것에 대한 환난이 오겠는데, 장년들은 그것도 오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 받아야 됩니다. 만들어 환난을 받을 때 제자들과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주가 인도하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봉사 많이 하고, 연보 많이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연보도 안하고, 봉사도 안하고 평안히 거저 하겠다는 것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건 상급이 없습니다.

3. 환난은 인내와 소망과 위로의 상급이 됨
환난이 있는 곳에서 만들어질 것

바울이 당한 고난은 만들어서 당한 고난인데, 선교하느라고 당하는 고난도 우리가 만들어서 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몸 바쳐서 선교하는 것이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없는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는 환난이 많은 교회에 나가야 일할 게 많습니다. 요새 교인들이 다 부자들이 되어서 게으르고 나태하여 조그만 개척 교회는 안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는 안 나가고 크게 지어놓은 교회에 앉았다가만 오는 그런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그건 믿는 게 뭔지도 모르고, 믿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자기가 져야 하고, 또 자기가 만들어 고난 받아야 되는데, 고난 받는 것이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예수님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환난을 받아야 제대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신학생들이 봉사를 하는데 그렇게 봉사하는 데서 만들어집니다. 환난을 안 받으려면 신학교 그만두면 됩니다. 봉사 할 때 땡땡이 부리는 신학생도 있는데, 환난 받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안 받고 어떻게 만들어지겠습니까? 일을 안하면서 일하는 척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사람 구실 못합니다. 제대로 힘을 쓰고 달라붙어서 일해야 앞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봉사 안하고 땡땡이 부리는 사람
은 앞으로 희망 없습니다. 교역자 되어도 희망 없는 사람입니다.
환난 없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환난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고, 예수님 재림 할 때에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새벽기도하기가 힘들어도 겪어 나가는 것입니다. 금년에 기도하기를 힘쓰라는 말입니다. 전도하기를 힘쓰고, 연단과 환난 많이 받으십시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 이북에는 ‘젊어서 고생은 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생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고생 안하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환난 받은 성도에게 재림하실 때 갚아주심

우리 성도들도 고난을 많이 당해야 예수님 재림할 때 그 사람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본문 7-8절에,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의 천사와 함께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는데 심판주로 나타나십니다. 심판주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 형벌을 주시고,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준다는 것입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시고, 또 환난 받게 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은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가운데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재림할 때는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온다고 했습니다.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셔서 심판하십니다. 심판하기 위해서 능력의 천사와 함께 오시고 불꽃 가운데 나타 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심판하기 위해서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 하실 때 성도에게는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순종치 않은 자에게는 능력의 천사와 함께 불꽃 가운데로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불꽃가운데 나타나신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불신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는 예수를 믿는 자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 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복음을 듣고도 복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능력의 천사와 같이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 받을 종류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형벌 받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 즉 듣고도 복종치 않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자 같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도 복종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형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善惡)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 앞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행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면 상급을 받고 영광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복음에 합당치 아니하면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도 심판대 앞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믿었느냐 성경대로 믿지 않았느냐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상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종치 않는 자는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대로 복종치 않는다고 해도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옥에는 안 가도 형벌을 받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안 하고 믿음대로 안 하면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의 일인데, 어떤 부부가 차를 타고 가면서 말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차가 뒤에서 와서 부딪쳤답니다. 그래서 그 부부가 바로 회개했다고 합니다. 말다툼 하는 것에 대해 ‘이것 봐라 하나님이 당장에 징계하신다’하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말다툼은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소리가 나는 것은 둘이 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손도 부딪쳐야 소리가 납니다.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말다툼하는 자체가 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하면 왜 소리가 나겠습니까. 가만히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으시면 안 죽는 거지, 뭐 사람이 죽인다고 해서 죽겠나’하고 서로 부딪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형벌을 주시는데, 차 사고의 형벌도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기도 하고 고통이 오기도 하고 징계가 오고 가시가 오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징계가 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안 지키면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믿음 안 지키고 세상으로 나가고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그렇게 믿음 안 지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형벌을 주십니다. 요즘은 노아시대 같아서 아주 ‘자유방종(自由放縱)’하는 시대입니다. 방탕하는 시대입니다. 노아시대에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방탕하지 않았습니까? 음란방탕하면 하나님께서 형벌을 주십니다. 당장에 징계가 오는 수도 있고 후에 어떤 형벌이든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징계하시기도 합니다. 또 몸의 병으로 징계가 오기도 하는데, 가시가 생기는 것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시를 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믿음 안 지키고 신앙 안 지키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이 옵니다. 

안 믿는 사람하고 둘이 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형벌은 누가 받습니까? 믿는 사람이 먼저 받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괜찮습니다. 왜 괜찮은지 아십니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왜 믿는 사람에게 징벌이 먼저 옵니까? 고린도전서 11장 32절에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믿는 사람들을 먼저 징계하십니다.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 보내면 공의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사람은 지옥에 안 보낼 것 아닙니까? 그래서 먼저 세상에 있는 동안 다 징계하여 회개시키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사탄에게 내 준다’고 했습니다. 육신은 다 망하고 영혼만 구원 얻게 하려고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으로 오는 것입니다. 불신자(不信者), 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는 형벌을 주십니다. 
또 복음을 듣고도 순종치 않는 자, 즉 믿노라 하면서 성경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9절에,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주의 얼굴과 그 힘의 영광을 떠나서 형벌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실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날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이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기이히 여기겠습니까? 부활체로, 신령한 몸으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는데, 예수님만 쳐다봐도 참 기이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생기셨구나, 예수님의 영광이 저렇게 크구나, 저렇게 아름다운 예수님이시구나’ 이렇게 기이히 여기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중국에 가서 말씀 인도했을 때 교회 나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에 와서 나를 계속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끄럽게 왜 계속 쳐다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 전에 말만 들었는데 오늘 바라보게 되니까 어떻게 생겼나하고 기이히 여기며 쳐다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이히 여기게 생긴 게 아닙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얼마나 기이하겠습니까? 한 번 바라만 봐도 눈이 다른 데를 볼 여지가 없고 또 너무 좋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영광이 충만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의 기도
11절에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해달라’,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항상 기도했는데,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함

첫째는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는데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부르신 목적이 있을 것 아닙니까? 왜 부르셨는가?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 하나님의 뜻에 딱 맞는 자,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방탕하며 세상에 나가 놀고 자유방종 하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는데, 거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딱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대로 행하고 성경대로 말하고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인격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새 국회의원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인데, 국회의원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국회의원 되기에 합당한 자가 나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되지 못한 사람이 명예 영광심으로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안 써줘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면 참 좋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딱 들어맞는 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딱 맞는 사람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합당하게 쓰시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쓰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거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선한 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함

그 다음은 ‘선한 일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악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선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선으로 해결하고 선으로 취급하고 선으로 생각하고 선으로 해석하고 선으로 보아야 합니다. 악으로 보면 안 됩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악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선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 선한데, 마귀는 전부 악하게 보는 겁니다.
선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선으로 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고 악으로 모든 것을 하면 형벌을 받습니다. 악으로 하지 마십시오. 악으로 생각하지 말고 선으로 생각하십시오. 악으로 해석하지 말고 선으로 해석하십시오. 매를 맞아도 악으로 맞지 말고 선으로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이렇게 바로 세우시려고 징계하신다, 이렇게 매를 맞는 것이 마땅하다’하며, 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악으로 ‘왜 때리십니까, 내가 뭘 잘못 했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갖다 붙이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안 주시는 하나님, 복이 아니면 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부 다 은혜와 복으로 주신 줄 알고 선으로 해석하고 선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악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원망 불평하면 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선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악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인도하셨나, 우리를 죽이려고 인도하셨다, 라고 여기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올라가라 했는데 안 올라 가다가 다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선으로 해석하십시오. ‘나를 만드시려고 이런 환경을 주셨다, 가시를 주신 것도 나를 교만하지 않게 하고 바로 세우시려고 주셨다’라고 생각하십시오.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세워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만드시려고 주셨다’ 하며 달게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다 잘 되게 하려고 했지 죽이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죽이려고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도 만나만 먹고 고기 못 먹는다고 원망했습니다. 만나 속에는 고기와 채소 성분이 다 들어가 있어서 그것만 먹어도 사십년간 살게 되어 있는데도, 고기 못 먹고 채소만 먹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능력으로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함

선으로 범사를 해석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선을 기뻐함과 또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다가 막힐 때가 많습니다. 그때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도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믿음을 지켜 나가다가 능력으로 이루어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나가는 일, 믿음으로 시작한 일, 우리가 믿음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가 그것들이 다 능력으로 좋은 열매가 맺히도록,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함

12절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얻으시면 너희도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2절에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를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면 하나님도 너희에게 영광을 주시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또 우리에게 영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된 길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실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영광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되는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되는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주일 잘 지키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날을 지키지 아니하고 놀러가고 방탕하고 자유방종하는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됩니다. 주일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또 십일조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안 드리는 것은 영광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 할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영광이 안 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말, 강퍅한 말은 영광이 안 됩니다. 우리는 영광되는 말만 해야 합니다. 또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된
다고 하면 손해되는 길도 걸어가야 합니다. 핍박 받는 길과 매 맞는길이라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죽을 일이 생겨도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된 죽음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크게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됐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되는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도 예수님께서 달게 지고 나가신 것입니다. 죽어도 영광 돌리는 죽음이 큰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죄를 안 짓고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길입니다. 세상에 빠지는 것은 영광된 길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된 일입니다.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죄를 이겨야 합니다. 경건한 생활,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 영광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책임지십니다.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만 하시기 바랍니다.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매를 맞고 굶어도 하나님께 영광 되게 굶고 죽어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영광되지 않은
길은 걸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 되게 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욕심 부리는 것, 즉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등은 다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 가리우는 것들을 싹 끊어 버려야 합니다. 영광되는 일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얻습니다. 마치 에녹과 같이 ‘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다’라고 보이게 됩니다. 술 먹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술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담배 피는 사람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피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영광이 안 되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이 되겠나, 안 되겠나’ 생각해야 합
니다. 어디를 갈 때도 이 길이 하나님께 영광 된 길이겠나, 아니겠나 생각해 보고 갈 것은 가고 안 갈 것은 안 가야 합니다. 영광되지 않은 것은 생명을 내 놓고 싹 끊어야 합니다. 영광 될 것은 어떠한 희생이 와도 그 길, 즉 하나님께 영광되는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영광을 얻는 길은 세상에서 공부 많이 하고 명예를 얻고 출세하고 무슨 학위를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영광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된 길을 걸어가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조사 일을 보았는데, 조사 일보는 것은 그만 두고 다른 곳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학위를 괜찮은데 가서 받으면 되겠는데, 시원치 않은 곳에 가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영광이 되겠습니까? 교회 일 보는 것이 영광이지, 그 일 그만 두는 것이 무슨 영광이 되겠습니까? 박사 학위 받으면 뭐하겠습니까? 누가 알아줍니까?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된 길만 걸어가십시오. 이사 가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 같으면 가고 안 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될 것 같으면 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 되느냐’ 거기다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영광 된 길을 걸어가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고 다니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땅에 떨어뜨리십니다. 자기가 잘 되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면 자기도 땅에 떨어질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4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바울의 감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바울의 감사
데살로니가후서 1:1-4

1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4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1. 바울의 축복인사
본문 1-2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라고 했는데, 바울이 전도할 때 디모데를 언제나 데리고 다녔고, 또 실루아노란 사람이 같이 있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온 것이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다 주셨습니다. 은혜는 거저 주신 것인데 무엇을 거저 주셨느냐 하면, 구원의 도리에 대한 모든 것을 거저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도리에 대한 전체가 은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시고, 독생자 보내주시고 대속해 주시고, 죄를 속해 주시고 부활하여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우리와 같이 해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구속의 은혜와 영적 평강이 항상 저희에게 있기를 축원 했습니다. 

2. 데살로니가를 향한 바울의 세 가지 감사

본문 3-4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하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항상 감사하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것 세 가지 있는데, 

첫째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난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난 것에 대한 감사이고, 
둘째는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한 것입니다. 사랑이 풍성한 것에 감사와, 
셋째는 4절에 보면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함이라’, 환난과 핍박 중에서 인내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세 가지 감사입니다. 첫째가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난 것, 교인들의 믿음이 점점 자라난 것이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 점점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역시 교회가 감사한 일입니다. 세 번째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와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너희의 참는 모든 환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과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남을 감사

첫째가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났단 말입니다. 자라난 것에 대한 감사, 전에 보다 나졌습니다. 전에는 믿음이 없었는데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점점 자라났단 말입니다. 믿음이 자라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랫동안 믿었어도 자라나지 못한 신자가 있는데, 예수 믿은 지가 오래 되었는데 자라나지 못하고 아직 어린아이로 있는 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라나겠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자라나는 게 아닙니다. 곡식이나 나무가 자라나려면 뿌리에서 양분을 받아서 올려 보내야 하고, 잎사귀에서 받은 것을 내려 보내야 합니다. 올려 보내고 내려 보내는 것을 계속 해야 자라납니다. 

사람은 뿌리가 어딥니까? 식물은 뿌리가 다 밑에 있습니다. 밑에서 부터 가지가 올라오고 잎사귀가 나오고 밑에서 양분을 빨아올리고, 태양이나 공기에서 받은 것을 내려 보내고 이렇게 해서 되는 것입니다. 우린 뿌리가 어디 있습니까? 위에 있습니다. 사람은 뿌리가 위입니다. 뿌리가 위에 있고 가지는 아래로 내려 있습니다. 손을 내리고 다니지 들고 다닙니까? 다리도 아래로 하고, 사람은 육체를 봐도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지은 것이 분명합니다. 뿌리가 위에 있어서 위에서부터 진액(양분)을 받아서 자라납니다. 

나무와 식물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들은 뿌리가 땅에 있기에 올려 보내야 합니다. 짐승들은 뿌리가 어디 있습니까? 짐승들은 옆으로 기어 다니고, 사람을 향해서 머리를 두고 다니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사람이 가자하면 가는 것이고, 와 하면 서야 하고, 짐승들은 사람을 믿고 사는 겁니다. 그래서 머리가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처럼 두발로 걸어 다니는 짐승 있습니까? 고릴라가 두발로 다닙니까? 펭귄이 두발로 다니지만 사람에 비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몸을 뒤뚱 뒤뚱 하며 다니는데, 그것도 내내 두발로 다니는 것 아닙니다. 사람은 어렸을 때는 기어 다니지만 좀 크면 걸어 다니는데 늙어 죽도록 까지 걸어 다닙니다. 힘들어서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하여간 사람은 걸어 다니게 되어있습니다. 

자라나려면 뿌리에서 양분을 받아야 합니다. 위에서부터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아서 그다음에 세상에서 소화를 시켜야합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은혜를 받아서 세상에서 소화를 시켜야 자라납니다. 자라나려면 힘써야 자라납니다. 힘 안 쓰는 건 못 자라납니다. 예수 믿어도 힘쓰지 않고 자라나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십년을 믿어도 못 자라납니다. 자라나려고 힘써야 됩니다.
힘을 쓰려면 뿌리에서부터 양분을 받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에게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와 진리를 받아야 됩니다. 매일 받아서 그다음에는 세상에서 그 말씀대로 적용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자라나려고 힘써야 됩니다. 힘 안 쓰면 일년이 가도 이년이 가도 맨날 그대로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나아져야 되겠습니다. 나아져야 되겠다고 하고, 고쳐야 되겠다 하고, 좀 이겨야 되겠다 하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거해야 되겠다 하고 그 은혜로 세상을 이겨야 되겠다 하고, 자신을 이겨야 되겠다 하며 힘을 쓰는 사람이 자라납니다. 모든 게 나아져야 됩니다. 생각하는 게 나아져야 되고, 말하는 게 나아져야 되고, 행동하는 게 나아져야 되고,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나아져야 됩니다.
과거에는 죄악 된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죄악 된 생각을 다 버려야 됩니다. 세상 생각만 했는데 세상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진리의 세계를 생각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고, 하여간 모든 면에서 나아져야 됩니다. 불평불만하며 싸우고 다투고 원망하던 자에서 다 나아져야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어야 됩니다. 무엇이 나아져야 됩니까? 언행심사가 나아져야 됩니다. 말하는 것이 나아져야 되고, 생각 하는 것이 나아져야 되고, 행동 하는 것이 나아져야 되고, 싸우고 다투던 것이 다 나아져야 됩니다. 인사 안하는 것도 나아져야 되고, 자리 때문에 싸워서 내쫒고 하던 것도 나아져야 합니다.
교회 와서 자리 싸우는 게 말이 됩니까? 새로 나오는 사람 하나 인도하려면 얼마나 힘든데, 한사람 인도해서 데려다 놨는데 자기자리 내놓으라고 해서 뒤로 가서 앉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자기 자리니까 내 놓으라고 하는 바람에 “이놈의 교회는 나오지 못할 교회”라고 아주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인도는 못하면서 온 것을 내쫒는 건 무엇입니까? 나아져야 됩니다. 

교회생활이 나아져야 되고, 교역자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나아져야 되고, 다 나아져야 됩니다. 우리교회 부교역자였던 정 진록 목사가 다른 교회로 이동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합니까?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시원하게 잘 갔다는 사람도 있겠는데, 그것은 마귀의 마음입니다. 목사님 가시는 게 얼마나 섭섭한 일인데 시원하게 잘 갔다는 게 뭐입니까? 그런 사람은 회개하십시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 받습니다. 

또 저에게 대해서도 사랑으로 기도해주는 사람도 있고,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죽기를 바라도 제가 안 죽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라 해도 오래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예정한 대로 살 것입니다.
언행심사 간에 나아지려고 힘써야 됩니다. 나아지려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받아야 되고, 세상에서도 말씀대로 적용시켜서 세상을 이겨야 되고, 자기를 이겨야 되고, 점점 믿음이 나지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사랑이 풍성해짐을 감사

그다음에 둘째는 뭘 감사합니까? 사랑이 풍성하다고 했는데 사랑이 풍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풍성합니까? 사랑을 써먹어야 풍성해집니다. 사랑을 가만두면 풍성해지는 게 아니고 써먹어야 됩니다. 사랑을 쓰십시오. 사랑해야 되겠다,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을 해도 용서를 해야 됩니다. 사랑해야 되겠다, 사랑으로 인사를 해야 되겠다, 사랑으로 교인들을 영접해야 되겠다 하고 사랑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랑을 써야 사랑이 많아집니다. 오른팔이 왼팔보다 센 것은 오른팔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셉니다. 왼팔을 쓰면 왼팔이 세집니다. 써야 세집니다. 쓰지 않으면 점점 더 약해집니다. 사랑을 써먹어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쓸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까?’ 하면서 사랑을 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해야하고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써야 할 때에 쓰는 건 참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라나게 해줍니다. 써야 할 때에 안 쓰면 못 자라납니다. 사랑을 써야 합니다. 교인들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잘 못해주는 사람을 사랑해야하고, 인사 안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인사 안하는 사람에게 인사 받는 방법을 늘 내가 얘기 했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먼저 인사하면 됩니다. 먼저 인사하면 그 사람이 인사 하게 되어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어 주라고 했는데 나누어주면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자꾸 주면 더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 교인이 쌀 한말 씩 가져오면 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풍성해 질 것입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이 풍성해 집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은 사랑이 풍성했습니다. 믿음이 자라나고 사랑이 풍성해졌습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함을 감사
 
세 번째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믿음,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워야 됩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라도 참고 견디는 걸 배워야 됩니다. 잘 참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 참았거든 나도 참자. 내 꼴은 그 꼴보다 더할 텐데 나도 참자”하면서 잘 참는 걸 배워야 되고, 환난과 핍박 속에서라도 잘 참아야 합니다. 잘 참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믿음도 더 주시고, 하늘나라의 것으로 채워 줍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의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자랑함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