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병 고치심과 종주각오 (從主覺悟)
마태복음 8:1-22
마태복음 8:1-22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2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14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E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 가기를 명하시니라 19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1. 문둥병을 고치심
본문 1-3절에,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고 했습니다. 팔복을 가르치시고 그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나의 문둥병을 깨끗케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시니까, 즉시 문둥병이 깨
끗해졌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만능입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문둥병, 모든 병이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구약 레위기 14장에 문둥병이 발하면 제사장에게 예물을 가지고 가서 드려서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려야 했는데 그대로 해야 했습니다. 문둥병이 나은 것을 기뻐하면서 문둥병 나은 것을 자랑하지 말고, 나았으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2. 백부장의 신앙
본문 5절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실 때에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면서 말했습니다.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하인이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백부장이 자기 마음으로 심히 괴로워하면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본문 7절에,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치시려는데 못 고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나님 말씀 한마디면 다 될 줄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사오니 이제는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백부장이기 때문에 자기도 천부장의 수하에 있다는 것이며, 또 백부장이므로 자기 아래 군사가 한 100명 될 것입니다. 백부장도 종을 부리므로, 종더러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그들이 오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또 주인이 종더러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이렇게 말하는 이것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상관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면 복종하는 것처럼’ 다 복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자기 하인에게 발한 중풍병도 주님 말씀 한마디에 다 순종 할 줄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 하시면 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 된다는 것입니다. 다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마치 군대의 상관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면 순종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만 하시면 다 되겠습니다. 수고스럽게 오시지 마시고 말씀만 해 주십시오 다 준비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병도 순종이고 중풍 병 걸린 모든 것도 순종이고, 또 어디가 사고가 나서 중풍 병에 걸렸으면 그것도 순종이고, 혈관이 막혔으면 그 혈관도 순종이고, 또 수족을 못 쓰면 그 수족도 순종이고, 못 쓰는 수족도 그 명령아래 말씀 한마디면 다 순종할 것을 믿었습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다 순종할 것을 믿었습니다.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 백부장이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될 것을 믿었습니다. 자기 하인의 병도 말씀 한마디면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절대 주재이시요, 모든 것을 다 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말씀만 하시면 다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주인 명령 한마디에 하인이 순종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주인인 것을 믿었습니다. 또 만왕의 왕인 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천지만물을 다 말씀으로 주장 하시는 것을 믿고, 다 그대로 될 것을 믿고, 모든 사람도 다 그대로 될 것을 믿
고, 병도 그대로 나을 것을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기시면서 좇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백부장의 믿음과 같은 것을 만나보지 못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백부장의 신앙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주님의 명령 한마디에 다 순종할 것을 믿는 신앙, 이 신앙을 예수님께서 만나보시지 못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다 순종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자기 집에 모시는 것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자기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자기는 감히 하나님을 집에 모시지 못하는 것을 알고, 죄인인 것을 알고, 명령 한마디면 다 될 것을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아무도 이만한 신앙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1-12절에,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나라의 본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유대 사람은 믿지 않았다가 이제는 쫓겨날 것이고, 이방사람은 많은 사람이 돌아와서 아브라함의 자리에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백부장도 이방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이방사람 되는 백부장도 믿음이 좋아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늘나라에 가서 앉을 것인데, 유대사람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쫓겨나서 바깥 어두운 가운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방사람들 중에,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보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만해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믿어야 되겠지만, 마음이 강퍅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본 자손이 먼저 믿어야 되겠고, 먼저 전도를 했어야 했지만 마음이 강퍅해져서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 자손들이 쫓겨난다고 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는데 가까운데 귀한 것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이 귀하신 것을 모르고, 그 말씀이 귀한 것을 모릅니다. 늘 전도했지만 듣고서도 모릅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래서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몰랐지만, 이방사람은 아주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말씀이면, 명령이면 다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참 위대한 신앙입니다.
본문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이 주의 말씀 한 마디면 다 나을 것을 믿었기 때문에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이 하인이 나았을 것이다” 라면서 그를 보냈습니다.
3. 능력을 나타내어 교훈하심
본문 14-16절에,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38-39에,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열병을 꾸짖으신대’라고 나와 있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신대’ 열병에게 나가라 하시니, 그 즉시 병자의 병이 나아서 예수께 수종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면 다 순종합니다.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령 한 마디면 다 되고, 하고자 하시면 다 됩니다.
그럼, 병이 낫지 않는 것은 왜 그렇겠습니까? 명령 한마디면 다 나을 수 있는데, 기도해도 안 낫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셔서 낫지 않는 것입니다. 명령을 안 해주셔서 입니다. ‘왜 명령을 안 해주실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데려갈 사람은 데려가시고, 또 연단시키고 더 좋은 것 주시고자 하심입니다.
기도함으로 주님의 명령이 임하는 사람은 다 나을 것입니다. 명령 안 해 주는 사람은 안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늘나라 데려갈 사람은 데려가십니다.
본문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에서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인데,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해주시고 병을 짊어져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당시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져 주시는 그리스도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그대로 되었습니다.
4. 종주각오 (從主覺悟)
본문 18-19절에,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종주각오’는 예수님을 따를 바른 각오를 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셨습니다. 그 때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하기를, “선생님 어디를 가시든지 저는 쫓아가겠습니다”라고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머리 둘 곳이 없으신 예수님인 줄 알고 따를 것
본문 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다는 말은, 누가복음 13:32에 보면 헤롯왕을 여우라고 했는데, 여우와 같이 간교한 헤롯왕이나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에 거처가 있다는 말입니다. 공중의 새와 같은 마귀의 종들도 다 거처가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머리를 삼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으로 머리를 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안식처를 삼고 하나님 안에서 살고, 세상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서 머리를 어디에다 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안에 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안에서 쉬시는 예수님이시지만, 세상 육신의 머리 둘 곳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은 쉴 곳이 없다, 편안히 쉴 곳이 없다, 안식처가 없다, 휴식처가 없다, 늘 고난의 길을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머리 둘 곳이 없는 예수님으로 항상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고난을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따라왔습니까? 이 사람은 못 따라왔습니다. 왜 못 따라왔습니까? 예수님 따라가면 잘 살 줄 알고 편안할 줄 알고 따라가려 했는데,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니까 머리 둘 곳이 없는 예수님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나 싶어서 그만 둔 것입니다. 가다가 어려운 일 당하게 되고 고난이 많게 될 것 같으니까 아예 그만 둔 것입니다.
중단 없이 예수님을 좇을 것
본문 21-22절에,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제자 중 또 하나가 말했습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부친이 죽은 것이 아니라 부친을 모시고 있다가 죽은 다음에 장사하고, 그 다음에 와서 예수님을 좇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부친이 앞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안 믿는 부친은 ‘죽은 자’입니다. 안 믿으면 영혼이 죽은 영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영이 죽은 영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끼리 장사하게 하고 너는 이 생명의 길을 발견했으니까 너는 나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부친 때문에 예수님을 좇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 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따라가는 것이 첫째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야 되겠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 따라갈 생각은 있지만, 그 부친 때문에 못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또 한 사람이 “가서 가족과 작별하고 좇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쟁기를 잡고 뒤들 돌아다보면 합당치 않다”라고 하십니다. 그도 가족이 예수님보다 앞선 것입니다. 가족과 작별하는 것은 인사하고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따르는 것을 중지하고 가족에게 가서 작별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것인데,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가족작별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가서 가족에게 입 맞추고 온다는 것은 인사하고 온다는 것이라서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먼저 가서 예수님을 따라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가족을 작별하려고 하니까, 예수님을 따라 가다가 가족에게로 향하여 뒤로 돌아다 본 것입니다. 즉, 가족이 예수님보다 앞선 것입니다. 가족을 예수님보다 앞세운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가족을 앞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만 따라가야 되고 예수님만 따라가면서 인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는데 못하게 되면 못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이 먼저가 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따르는 것을 먼저 해야지 부친이 먼저 되면 안 됩니다. 부친 장사하는 것이 먼저 되면 안 됩니다. 효도하는 것도 좋지만 예수님을 부모보다 앞세우고 먼저 따라가고, 예수님 따라가는 것을 중지하고 효도하는 것은 부모가 우상 되는 것이고 아버지가 우상이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 따라가는 것을 ‘중지’하고 가족을 작별한다고 했는데, 그건 가족작별 하는 것이 예수님보다 먼저니까 그것이 뒤를 돌아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가족 작별이 먼저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합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앞세우는 것은 다 안 됩니다. 먼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효도하는 것도 좋지만 예수님보다 먼저 되면 안 됩니다. 앞세우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다 따라가서 대접하고, 그 다음에 부모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돌보는 것이 좋지만 예수님 따르는 것에 지장을 주고 중지하고, 이렇게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가족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먼저 따라가며, 가족보다 먼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다 뒤에다 세워놓고, 주님을 먼저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 따라가면서 가족 못 돌보면 못 돌보는 것입니다. 돌보게 되면 돌보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돌볼 수 없으면 못 돌보는 것입니다. 가족 다 내 놓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감옥 갈 때 가족다 내 놀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가족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돌보아야 하겠지만, 또 부모에게 효도도 해야겠지만, 예수님 따라가려니 까 그것을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게 되면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따라가는 것을 전문적 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 돌보는 거기서 장애를 받으면 안 됩 니다. 지금 생명 길로 걸어가는데, 쟁기를 잡고, 가족을 돌보려고 뒤 를 돌아다보면 되겠습니까? 앞을 바라보며 나가면서 가족에게 할 수는 있지만, 나가다가 가족 때문에 따라가는 일을 일시라도 중지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중지하면 안 됩니다. 어떤 일에도 예수님 따라가는 것을 중지하면 안 됩니다. 뒤를 돌아다보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 따라가는 것이 첫째이고 그것이 전부인 것입니다.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고 하게 되는 것은 하는 것이고, 예수님 따라가는 것만 해야 됩니다. 다 버리고 따라가야 됩니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줄 알고 따라가야 하고, 다 버리고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가면서 그 부모에게 효도하거나 가족을 돌보거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 따라가느라 할 수 없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첫째입니다. 예수님 따라 가는 것이 첫째이고, 다른 것들은 둘째이고, 셋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를 하고 따라가야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