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에 의해 심판 받음
로마서 2:1-29
로마서 2:1-29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
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17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또는 능히 같지 아니한 점을 분별하라 19맹인의 길을 인도
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
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17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또는 능히 같지 아니한 점을 분별하라 19맹인의 길을 인도
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변명할 수 없음은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네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니, 이는 남을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2:2 이런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임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
2:3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2:4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냐?
2:5 다만 너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그 날에 너에게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니,
2:7 참고 선을 행하면서 영광과 존귀와 멸망하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실 것이나,
2:8 이기적이며 진리를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실 것이다.
2:9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의 혼에게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이고, 또한 헬라인에게이며,
2:10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이고, 또한 헬라인에게도 있을 것이다.
2: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2:12 율법 없이 죄를 범한 자는 모두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범한 자는 모두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것이다.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다.
2:14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들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
2:15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이 증언하여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하고 변명하기도 하여 자기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여 준다.
2:16 이런 일은 내가 전한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있을 것이다.
2:17 네가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고,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2:18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2:19 또한 너는 눈먼 자의 인도자이고, 어둠 속에 있는 자의 빛이며,
2:20 어리석은 자의 교사이고,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다. 이는 네가 지식과 진리의 구체적 표현을 율법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21 그런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너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2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혐오하는 네가 신전의 물건을 훔치느냐?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24 기록된 바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하였다.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네가 율법을 범한 자이면 너의 할례는 무할례가 된다.
2:26 그러므로 무할례자가 율법의 요구를 이행하면, 그의 무할례가 할례로 여김을 받지 않겠느냐?
2:27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킨다면, 의식법의 문자와 할례를 소유하고도 율법을 범한 너를 심판하지 않겠느냐?
2:28 표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표면적 육신의 할례도 참 할례가 아니다.
2:29 오직 내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의식법의 문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마음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2:2 이런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임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
2:3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2:4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냐?
2:5 다만 너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그 날에 너에게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니,
2:7 참고 선을 행하면서 영광과 존귀와 멸망하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실 것이나,
2:8 이기적이며 진리를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실 것이다.
2:9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의 혼에게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이고, 또한 헬라인에게이며,
2:10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이고, 또한 헬라인에게도 있을 것이다.
2: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2:12 율법 없이 죄를 범한 자는 모두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범한 자는 모두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것이다.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다.
2:14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들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
2:15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이 증언하여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하고 변명하기도 하여 자기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여 준다.
2:16 이런 일은 내가 전한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있을 것이다.
2:17 네가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고,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2:18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2:19 또한 너는 눈먼 자의 인도자이고, 어둠 속에 있는 자의 빛이며,
2:20 어리석은 자의 교사이고,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다. 이는 네가 지식과 진리의 구체적 표현을 율법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21 그런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너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2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혐오하는 네가 신전의 물건을 훔치느냐?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24 기록된 바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하였다.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네가 율법을 범한 자이면 너의 할례는 무할례가 된다.
2:26 그러므로 무할례자가 율법의 요구를 이행하면, 그의 무할례가 할례로 여김을 받지 않겠느냐?
2:27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킨다면, 의식법의 문자와 할례를 소유하고도 율법을 범한 너를 심판하지 않겠느냐?
2:28 표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표면적 육신의 할례도 참 할례가 아니다.
2:29 오직 내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의식법의 문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마음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1. 심판의 보편성
신자가 범죄 할 때에 현세에 심판하시는 하나님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자기가 판단한 것과 같은 일을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에, 진리에 어긋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면 공심판은 안 받겠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고 징계도 하시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면 하나님께서 쫄딱 망하게 만들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면 공심판은 안 받겠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고 징계도 하시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면 하나님께서 쫄딱 망하게 만들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런 자’라는 것은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 음행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탄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이건 교회에서 치리했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치리했는데 치리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멸하고’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징벌을 내려서 쫄딱 세상에서 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주예수의 날에 영혼만 겨우 구원 얻는다고 했습니다. 지옥은 안가지만 하나님의 징벌은 받게 되어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드러납니다. 우리가 다 심판대 앞에 반드시 드러나서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7절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행한 대로 갚아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범죄해도 지옥은 안갑니다. 그렇지만 그 죄값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에 노하셔서 채찍질을 하시고, 징벌하시고, 망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영혼은 회개시켜서 구원받게 하십니다. 범죄하면 하나님이 멀어지고, 내버려두시는 여러 가지 징벌이 옵니다.
심판의 원리를 살펴볼 때에 자기에게 해당하는 말씀으로 받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어느 성경을 보든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됩니다. 언제나 회개하면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나서도 자기가 그 같은 일을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일에 대해 틀렸다고 판단해놓고 자기가 그 같은 일을 하면,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진리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본문 2절에,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고 했습니다. 판단은 정죄 받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판단은 어떤 사람은 봐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하는 것이 없이 공의대로, 진리대로 됩니다. 유대 사람이라고 봐주는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이라고 안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대로 됩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자는 가차 없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어긋나지 않는 사람은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해놓고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입니다. 본문 3절에서는 남을 판단하고 자기도 같은 일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가령, 살인한 자를 판단해 놓고 자기가 살인한다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일날을 잘 못 지키는 자를 판단해놓고 자기도 주일을 잘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잘 못 지키는 자를 판단도 하고 정죄도 합니다. 그런 우리는 얼마나 주일을 잘 지켰느냐는 것입니다. 잘 지켰습니까? 100점 만점으로 잘 지켰습니까? 100점 맞도록 지킨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일 잘 지키려면 하루 종일 마음을 다 기울이고, 하나님으로 하루 종일 즐거워하고 세상생각이 안 들어와야 됩니다. 그렇게 지켰습니까? 남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자기가 졸았습니다. 물론 졸은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남을 판단한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같은 일을 행한 줄을 아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판단하시고 봐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과 정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가 회개하기 까지 참으시는 하나님
본문 4절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우리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은 성도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으로 길이 참아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옳아서 참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이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자기가 잘해서 가만히 두시는 줄로 알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참으십니까?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참으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바로서기를 바라시며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회개하겠나? 이 시간에 회개하겠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판단 받을 것이 많은데, 그것을 회개시키려고 길이 참으시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시적 용납해 주시느라고 가만히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느뇨?”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어 징계가 없는 줄 생각하고 괜찮은 줄 알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옳아서 참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이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자기가 잘해서 가만히 두시는 줄로 알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참으십니까?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참으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바로서기를 바라시며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회개하겠나? 이 시간에 회개하겠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판단 받을 것이 많은데, 그것을 회개시키려고 길이 참으시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시적 용납해 주시느라고 가만히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느뇨?”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어 징계가 없는 줄 생각하고 괜찮은 줄 알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것은 마지막 날의 진노를 쌓아놓는 것임
본문 5절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고집만 부리고 나가는데, 그건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날,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나타내실 진노를 쌓아놓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진노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남을 판단만 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진리대로 바로 서지 아니하면,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진노를 쏟아 내려부으실 날이 옵니다. 월남이나 캄보디아 나라에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있지만 하나님의 진리대로 바로서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쏟아 부으시고, 공산당에게 다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올 때는 사람이 감당치 못합니다. 아무리 견고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올 때는 감당치 못합니다. 미군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진노가 내려올 때, 하나님의 진노를 막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바로 서지 아니하고 어긋난 길로 걸어가면, 언제 미국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올지도 모릅니다.
진노가 점점 쌓아져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서 자기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날마다 회개하고 바로 세워나가고, 돌이키고 바로서 나가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 된 것을 가지고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옵니다.
우리 한국에도 진노가 쏟아질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올 때에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시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자기가 쌓고 있는 줄 알고 회개하는 사람이 복 받을 사람입니다. 자신이 진리대로 됐는가, 안됐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됩니다. 날마다 진리에서 잘못된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성경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하면서 그 말씀대로 되지 못한 면을 찾고, 성경에 비추어볼 때 자기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면을 날마다 회개하고 바로 서 나가야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를 점점 쌓는 것이고, 쌓여 올라가서 가득차면 쏟아져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풀어드리는 방법은 회개하고 진리대로 바로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진리대로 바로 서지 못하면 점점 그 죄악이 차서 진노가 쏟아져 내릴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개인에게도 오지만 국가 전체에도 쏟아져 옵니다. 현 이 시대에, 이 세대 사람에게 진노가 쏟아져 내려올 수 있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되었음을 깨닫고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고 바로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진리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책망 받을 것이 없이 모든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회개치 않는다고 하였습니까? “다만 네 고집”이라고 하였는데, 자기 고집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서 나가고 회개치 아니하고 표준을 자기 표준으로 하고 나간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표준은 자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인데 자기가 괜찮다고 고집 부리면서 나가는 사람들은 진노의 날에 즉,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날에 하나님께 진노를 쌓은 대로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현재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 괜찮은 줄 아는 것은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표준이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언제나 비판을 받아야 되고, 회개하는 마음을 날마다 가져야 됩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나가는 것입니다.
2. 행위에 따라 심판 받음
참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심
본문 6-8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쫓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심판은 행위에 의해서 심판받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주시고, 당을 지어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으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준다고 했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는 ‘믿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주십니다. 영적 생명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는 무엇을 받는다고 하였습니까? 노와 분으로 그 사람에게 쏟아 부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말에서 “참고”가 먼저 들어갔는데, 이것은 선을 행하려면 참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쫒지 아니하고”라는 말에서 “오직 당을 지어”가 먼저 들어갔는데 이것은 진리를 쫒지 않는 자는 당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당 짓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심판은 행위에 의해서 심판받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주시고, 당을 지어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으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준다고 했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는 ‘믿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주십니다. 영적 생명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는 무엇을 받는다고 하였습니까? 노와 분으로 그 사람에게 쏟아 부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말에서 “참고”가 먼저 들어갔는데, 이것은 선을 행하려면 참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쫒지 아니하고”라는 말에서 “오직 당을 지어”가 먼저 들어갔는데 이것은 진리를 쫒지 않는 자는 당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당 짓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려면 참아야 하는데 “선(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선, 의식적인 선, 율법적인 선 등입니다. 그러나 참된 선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참된 선입니다. 젊은 부자가 와서 착한 선생이여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계명을 지키라”고 할 때에 젊은 부자가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켰다고 하니까 “네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선도 물론 다 선이지만 최고의 선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키려면 참는 것이 먼저 입니다. 첫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고, 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고, 셋째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참을 인(忍)’자를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으면 믿음을 지킬 수가 있고, 참지 못하면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참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하는 영생의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영생복락 면류관을 주시는데, 자기가 면류관을 얻을 만한 믿음을 지켰어야 면류관을 얻습니다. 참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인내를 우리가 이뤄가야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데 참으면 믿는 일을 할 수 있고, 못 참으면 믿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믿음과 인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인내를 이뤄야만 믿음이 연단을 받아서 자라납니다. 인내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참고 견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껍데기 밖에 없는 것입니다.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견디면서 성경말씀대로 순종해야 열매 맺히는 것이 있고 이뤄지는 것이 있습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실행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농사하려면 심어야 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거둘게 있습니다. 말로만 농사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실제로 해야 합니다. 믿는 일 하려면 참고 견뎌야 합니다. 순종하면서 해야 합니다. 인내가 아주 중요합니다.
영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장차 하늘나라 가서 사는 것도 영생이고, 자기 영이 날마다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도 영생입니다. 말씀 순종하기를 참고 견디면서 계속 해나가면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 주십니다. 새 생명으로 영이 날마다 살아나갑니다.
불의를 좇는 자들의 당파에 들지 말라
본문 8절에,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했는데,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을 쏟아 부으셔서 그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가고 믿는 사람은 쫄딱 망합니다.
불의를 좇아가는 자들은 당을 짓는 것이 특색입니다. 혼자 불의를 행하는 자도 있겠지만, 그것은 미약해서 당을 지어가지고 공론을 합니다. 자꾸 격동을 시킵니다. 비방하고 악행하면서 당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불의의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당파가 있기 쉽습니다. 서로 합심하여 격동시키고, 당파를 조직하고 합세를 하는 등, “결사적으로 나가자!”면서 불의를 행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개구리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의 ‘개구리’가 ‘당파’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개구리 귀신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당을 짓는 것입니다.
악에 악을 격동시키고, 결사적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혼자서 행하는 악은 그다지 크게 못합니다. 악에게 가담 안 하려면 그 당파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담하게 되면 당파적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보면, 못된 아이들과 당파를 지어 다니다가 못된 일을 하게 됩니다. 당파에 언제나 가담 안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데 가서 믿음에 손해가 날 것이 뻔하다면 들지 말아야 합니다. 가담하게 되면 그들이 망할 때에 같이 망하게 됩니다.
진리를 좇지 아니하는 사람은 무엇이 앞섭니까? 당파가 앞서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까운 사람끼리 당파를 짓습니다. 자기 지방, 학력, 혈연 등 여러 가지 당파를 짓고 돌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노와 분으로 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노와 분이 쏟아져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당파를 짓는 것은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악행 하는 자의 영은 환란과 곤고를 당함
본문 9-10절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고 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겠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평강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고, 헬라인에게 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습니다. 불신자가 악을 행하는 경우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저주가 있겠으며, 환난과 곤고가 많겠습니까? 불신자는 더욱 진노를 쌓게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경우에는 그 심령이 아주 캄캄해지고, 흑암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이 멀어지고 답답함을 당하게 됩니다. 다윗이 범죄한 다음에 하나님의 손이 그를 주야로 누르고, 그만큼 다윗에게 곤고와 환난이 있었습니다. 중생한 영이 육신의 범죄 한 것에 책임지고 회개하는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환난과 곤고가 다 옵니다. 죄를 지으면 심령이 편치 못하고 괴롭습니다. 신자들에겐 주야로 하나님의 손이 누르게 됩니다. 시편 32장 3절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범죄할 때에 회개
치 아니하니까 이렇게 고통이 심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됐습니다.
1) 알고 지은 죄 값이 더 크다
유대인에게 있고, 다음에게는 헬라인에게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유대인은 알고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조상 때부터 성경을 배웠기 때문에 알면서 죄를 지으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반면 헬라인은 모르고 범죄 했습니다. 알고 죄를 범한 것이 더 괴롭습니다. 유대인에게 먼저 환난과 곤고가 있는 이유는 조상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줬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몰라도 풍습과
생활자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있습니다. 헬라인은 성경을 몰라도 환난과 곤고가 오는데 작게 옵니다. 알고 범한 자는 매를 더 맞고, 모르고 범한 자는 적게 맞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7-28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생활자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있습니다. 헬라인은 성경을 몰라도 환난과 곤고가 오는데 작게 옵니다. 알고 범한 자는 매를 더 맞고, 모르고 범한 자는 적게 맞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7-28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 진리를 알고 행한 축복이 더 크다
10절에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온다’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는 사람이 받을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원이 다릅니다. 불신자의 것은 세상의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오게 됩니다. 선을 행할 때에 맘이 평안합니다. 남을 때린 사람은 발을 오그리고 자고, 매 맞은 사람은 발을 펴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더 시원하게 펴고 잡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 영적인 영광이 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오게 됩니다. 선을 행할 때에 맘이 평안합니다. 남을 때린 사람은 발을 오그리고 자고, 매 맞은 사람은 발을 펴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더 시원하게 펴고 잡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 영적인 영광이 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입니다. 유대인에게 선을 먼저 갚아주십니다. 진리를 알고 행했으니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빨리옵니다. 더 많이 옵니다. 알고 있어야 그대로 행할 수 있고, 행하면 진리에 대한 것을 빨리 다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누릴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유대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사용하고 적용시켜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사용할 줄 모르니까 자라날수 없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기술을 배워가지고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늦어지는 것입니다.
복 받는 것도 유대인이 먼저 받고, 벌 받는 것도 유대인이 먼저 벌을 받습니다. 아는 사람이 책임이 큽니다. 동시에 진리를 아는 사람이 더 큰 복을 받습니다.
외부적인 것을 보시지 않는 하나님
본문 11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십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라고 봐주고, 헬라인이라고 안 봐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모로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봐주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로 보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믿은 사람이 처음 믿은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바로 됐는지 안됐는지가 중요합니다. 외모를 보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민족차별, 선후배차별, 직분차별을 하시면서 봐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믿은 사람이 처음 믿은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바로 됐는지 안됐는지가 중요합니다. 외모를 보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민족차별, 선후배차별, 직분차별을 하시면서 봐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심판의 규범
율법
본문 12절에,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있다고 해서 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없다고 해서 안 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를 했는가 안 했는가가 문제입니다.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했는데,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고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행할 때 먼저 마음으로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도 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옳게 여겨, 자기 마음 가운데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대로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말씀대로 하려고 결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행함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몸으로도 나가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행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참으로 깨닫고 행해졌다면, 몸도 행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없는 행동은 나올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외식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합니다. 삭개오가 마음에서부터 행해졌으니까 예수님을 뽕나무에서 영접할 행동이 나오게 되고, 자기 집으로 영접할 마음이 나오게 되고, 토색한 것을 4배나 갚을 생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마음의 결심이 행동보다 앞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감흥이 없이 듣기만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적으로, 피상적으로 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본문 13-15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고, 행하는 자가 의인이 됩니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이방 사람이라고 해서 물리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사람, 이방사람,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사람들 등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봐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죄를 떠나서 믿음에 섰는가? 안 섰는가?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행하지 못하면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양심
율법을 몰라도 율법대로 행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대로 행할까? 모르는 사람도 어느 정도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양심으로 어느 정도 하나님의 율법을 알게 만들었고, 본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범죄해서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그 본성이 다 어두워 졌습니다. 그래서 본성으로 율법을 다 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다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양심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데, 이 다음 심판 날에 심판대 앞에 서서 양심이 송사하고 변명해서 잘못된 것을 드러냅니다. “양심이 증거가 되어”란 이 다음에 양심이 심판대 앞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했다고 하면 양심이 나와서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하며 양심이 그 사람에게 율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인류의 구원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며 양심을 지켜서 구원 받는 양심 시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양심을 지켜서 구원 받은 사람은 없으며, 어느 시대에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 16절에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 하시는 그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은밀한 것을 심판 하시는 그날”이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은밀히 지은 죄가 다 드러납니다. 마음으로 지은 죄도 다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그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4. 유대인의 죄
본문 17절에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면서 자기들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대 사람의 죄이고 또 동시에 이방 사람들, 의식주의 신자들, 육에 속한 신자들의 죄입니다.
본문 18-20절에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식주의 신자들도 지극히 선한 것을 좋아 합니다. “내가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란 의식주의 신자들도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어리석은 자를 어느 정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깨우쳐 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도적질 말라고 가르치며 도적질 함
본문 21절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타훈기암(他訓己暗)”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사람은 가르치고, 자기는 어둡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란 남은 잘 가르치지만 자기는 못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도적질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도적질 하고, “간음하지 말라” 하면서 자기는 간음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도 자기는 우상의 물건을 도적질합니다. 의식주의 신자, 육에 속한 신자, 신령한 세계에서 살지 못하는 신자,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자는 다 이렇게 됩니다.
도적질이란, 실제로 도적하는 것도 도적질이고, 하나님의 것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적질 한 것이 많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도 도적질 한 사람이 많습니다.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까? 양심대로 다 했는가? 물질문제에 대해서 결백하게 했는가? 한 점이라도 거리낄만한 것이 없는가? 십일조 안 드린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지 않았는가? 말라기 3:8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 안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아이들한테는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쳐 놓고는 자기는 십일조를 뚝 잘라 먹습니다. 물질문제에 대해서 깨끗하지 못하고, 분명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자기의 날이 아닙니다. 주일을 범하는 것은 주님의 날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물질문제에 대해서 깨끗하지 못하고, 분명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지 않았는가? 또 남의 것을 도적질 하지 않았는가? 이것을 다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성경만 말해야지 성경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씀에 조금이라도 가하면 도적질이고, 감해도 도적질입니다. “도적질 말라” 하면서 자기는 도적질 해 먹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정당하게 하지 않고, 속여서 하는 것은 다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도적질해서 갖다 놓은 것이 너희 집에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간음함
본문 22절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간음합니다. 이것이 의식주의 신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지 못한 신자들이 육신 중심이므로 간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 죄가 믿는 사람들에게도 많습니다. 요즘 남녀가 정조를 지키지 않습니다. 강남에서는 애인 없는 여자는 바보라고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래서 어떤 장로가 직접 가보았다고 합니다. 가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모였는데, 어떤 여자가 그 장로에게 가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나는 장로라고 하였더니 그 여자는 나는 찬양대 지휘자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찬양대 지휘자인데 장로보고 못된 짓하자고 가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쯤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간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간음 죄에 빠지지 않아야 됩니다. 간음죄에 빠지는 것은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2:14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노를 당하는 자가 간음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간음죄에 빠지면 망합니다. 외딴데 가서 간음죄 짓고 오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쏟아져 내려옵니다. 육신으로 간음한 죄를 회개해야 되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것도 간음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야고보서 4:4에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였으므로 세상과 벗된 것도 간음한 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함
또 우상을 가증히 여기고, 우상을 싫어하고, 반대하면서 자기는 신사물건을 도적질 합니다. 신사는 우상을 섬기는 집입니다. 우상을 섬기면서 우상의 집에서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신사물건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취한 물건은 신사의 물건을 도적질한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6:1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육신의 욕심대로 취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육신의 욕심대로 취한 아내, 물건, 직장,돈 등은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취한 것이 없나? 믿음을 지키지 않고 취한 것이 없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취한 것이 없나? 잘 살펴보고 만약 있다면 그것은 다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이므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정욕대로 취한 것은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믿음을 안 지켰다면 그 목숨도 우상의 제물이며, 신사물건을 도적질 한 것과 같습니다. 하여간 너희 집에 신사물건을 도적질 한 것이 없는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왜 신사물건을 도적질 하느냐?는 것입니다. 의를 어기고 취한 것, 믿음을 지키지 않고 취한 것은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인(仁)과 의(義)와 신(信)을 버리고 욕심으로 취한 모든 것은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며칠 전 기독교 신문을 보니 한국 기독교 연합회 지도자들이 불교 석가탄생을 축하한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목사들이 축하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우상 만들어 놓고, 밤낮 우상만 섬기는 이종교입니다. 이것은 마귀를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만큼 부패 했습니다. 또 신앙은 다 집어 치우고 기독교, 불교, 유교 등의 대표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이것도 마귀 역사입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요새 추도예배 하는 것도 방식만 다르지 제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성경에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고 하였고, 성경에 추도예배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다음에 이삭이 그 이듬해에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죽은 다음에 야곱의 열두 아들도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또 베드로가 죽은 다음에 제자들이 추도예배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죽은 다음에 추도예배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방식만 다르지 제사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함
본문 23-24절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불경건으로 모독을 받는 일이 없는가? 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예수믿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너희로 인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란 믿음을 써서 착한 행실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착한 행실이 나타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돈 몇 푼 때문에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면서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을 돌아가게 하는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전기세 몇 백 원 덜 내겠다고 싸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이런 것이 예수 믿는 것이냐? 그런 하나님이라면 난 예수 안 믿겠다”하는 욕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안 돌아가면 자신에게 몇 백 배의 좋은 것이 옵니다. 그러나 내가 좀 유익을 보자고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면 몇 백 배의 손해가 납니다. 하나님의 복이 떠나고 복음의 문이 막힙니다.
과거, 현재의 행동에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던 일이 있었다면 다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에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못된 성질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재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없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없나? 일 처리를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없나? 살펴보아야합니다. 또 몸단장에 있어서 사치하여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없나? 여러 면으로 살펴보면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식구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없나? 또 돈을 쓰는 데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욕이 돌아가게 한 것이 없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 나아가면 하나님께로 욕이 돌아갑니다. 내가 욕 먹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어야만 모든 사람이 복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리 떠나고 하나님의 복이 떠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바로 배우고 보수라고 하면서도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당파를 묻고, 비방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저것도 예수 믿는 것이냐”하며 조롱 합니다. 또 어떻게 진리의 빛을 비춰 내보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안돌아가도록 모든 면에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가 말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갈까 봐 말 안 해야 되고, 우리가 손해를 좀 보아도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안 돌아가도록 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안돌아가도록 해야 그 사람이 복을 받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또 그 사회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5. 할례와 무할례
본문 25-27절에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는 종교적 의식에 참여한 것입니다. 종교적 의식에 네가 잘 참여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면 의식에 참여한 것이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적 의식에 참여 안 했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그것은 의식에 참여한 자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의문과 제도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례를 받았다, 보수다, 바로 된 교파다, 잘 믿는 교파다, 히브리 사람이다, 세례를 받았다, 직분을 맡았다”는 등의 종교적 의문과 제도가 아니고 성경대로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행하지 아니하고 외부적인 면만 번듯하게 한다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적인 면이 없다고 해도, 즉 직분이 없다고 해도, 성경대로 행하면 직분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직분을 맡았다고 해도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직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큰 교단이다, 보수교단이다” 하지만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보수교단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보수교단이 아니라도 성경대로 행하면 그것이 보수교단입니다.
“좋은 신학대를 나왔다, 큰 신학대를 나왔다, 인가 있는 신학대를 나왔다, 인가 없는 신학대를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성경대로 행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행하면 인가 없는 신학대를 나왔어도 실력이 있는 것이고,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면 인가 있는 신학대를 나왔어도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 정부에 가서 인가를 받아 교회를 세우고, 전도했습니까? 또 교역자를 양성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바른 일꾼을 길러 내는 것이 목적이지 인가가 무슨 큰 것입니까? 세상 종교에서 참된 교역자인가? 참된 교역자가 아닌가?를 인가해줍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인가해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정부에서 인가를 내야만 신학교를 할 수 있고, 인가가 없으면 못한다고 하므로 할수 없이 부득불 신학교 인가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가를 얻는 것이 큰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참된 교역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실제로 성경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속부터 말씀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외부적인 훌륭한 의식보다 낫습니다.
찬양대에 대해서도 찬송을 하면 되는 것이지 찬양대가 있어야 하고,가운을 입어야 하나님이 그것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찬송을 하면 그것이 다 찬양대입니다. 우리 교회가 왜 찬양대가 없습니까?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다 찬양대입니다. 우리는 찬양대가 없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찬송은 누가 잘 부르는 것입니까? 영으로 부르는 사람이 잘 부르는 것입니다. 즉 신령한 노래로 부르는 자가 잘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노래로 부르지 않고, 꾀꼬리와 같은 소리로 부른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새 노래, 즉 신령한 노래로 부르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찬양이 진정한 찬양입니다. 의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쥐를 잡는 것이 고양이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에 서서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단에 속하고, 또 훌륭한 의문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성경대로 행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한테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대로 행하는 사람이 볼 때에 “성경대로 하지 못하면서 너희들은 뭘 가지고 옳다고 하느냐?”고 그럴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경대로 행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6.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본문 28-29절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고 하였습니다. 표면적이라는 것은 껍데기, 외면, 외부를 말합니다. 즉 외부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내부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부적 신자가 신자가 아니라, 이면적 신자가 신자라는 뜻입니다. 즉 껍데기만 신자라는 간판을 갖다 붙이고 다닌다고 해서 신자가 아니고, 속이 신자가 되어야만 신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속이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란 외부적인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는 말로, 종교의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속으로 할례를 받아야만, 즉 의식에 속하지 않고, 참으로 예배에 참여해야만 그것이 참된 할례가 된다는 것입니다.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이 중요한 것입니다. 병에 코카콜라 상표를 붙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에 코카콜라 내용물이 있나? 없나?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속에 코카콜라 내용물이 아니고, 다른 것을 넣고 껍데기만 코카콜라 간판이면 그것이 무슨 코카콜라입니까? 그러므로 속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속이 할례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표면적 목사의 직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속의 이면적으로 목사의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껍데기로 집사의 직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으로 집사의 일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도 외부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적 세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외부적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으로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속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참된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례도 외부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적 세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외부적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으로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속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참된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참된 할례
할례는 표면적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면적 할례가 중요한 것입니다. 즉 영적 할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 할례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첫째, 마음의 정욕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된 표입니다.
즉 이면적 할례는 육적 몸을 벗는 것입니다. 정욕을 벗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4에 “유대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생식기를 베어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음 정욕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정욕을 제거하는 이것이 진짜 할례입니다. 즉 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 참된 할례입니다.
빌립보서 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하나님께 속하고, 정욕을 제거하고, 말씀대로 나가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며,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할례는 영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와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칭찬을 하셔야 합니다.
속이 할례를 받으려면, 마음의 정욕을 제거하고,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마음에서 정욕을 제거하고, 신령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참된 할례입니다.
의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 “네가 옳다, 됐다, 너는 그만하면 바르다, 너는 참으로 하나님께 바로 한 신령한 영적 신앙에 섰다, 너는 마음으로 벌써 말씀대로 바로 한 것이다”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로 서고, 영적 신앙에 서고, 말씀대로 바로 순종했다고 하면 그것이 참된 할례입니다.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의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 있는 것이고, 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껍데기만 자랑하지 말고 우리의 영이 바로 서야 됩니다. 영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늘 가도록, 마음으로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야 합니다. 도적질한 것, 간음한 것, 신사물건을 도적질 한 것을 다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바로서서 우리가 영에 속한 신자, 양심을 바로 쓰는 신자, 말씀대로 행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