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라디아서 5:16-26
갈라디아서 5:16-26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16 내가 또 말하는데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라. 그러면 결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될 것이다.
5:17 육체가 원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원하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른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하여, 너희가 바라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한다.
5: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으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
5:19 육체의 일들은 명백하니,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종과,
5: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당 짓는 것과 불화와 이단과,
5:21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과 또 이와 같은 것들이다. 전에 너희에게 경고한 것같이 지금도 경고하는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다.
5: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선함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이다. 이러한 것들을 반대할 법이 없다.
5: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자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하고,
5:26 헛된 영광을 추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질투하지 않도록 하자.
5:17 육체가 원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원하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른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하여, 너희가 바라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한다.
5: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으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
5:19 육체의 일들은 명백하니,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종과,
5: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당 짓는 것과 불화와 이단과,
5:21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과 또 이와 같은 것들이다. 전에 너희에게 경고한 것같이 지금도 경고하는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다.
5: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선함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이다. 이러한 것들을 반대할 법이 없다.
5: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자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하고,
5:26 헛된 영광을 추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질투하지 않도록 하자.
1. 성령을 좇아 행하라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음
본문 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하나님을 알고, 성령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1) 단회적으로 받았음 예수 믿을 때에 오순절 보혜사 성령을 단회적으로 받았습니다. 즉 한번에 받았습니다. 성령은 반복적으로 받는게 아닙니다. 성령은 받고 또 받는 게 아니고 단번에 단회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데, 성령을 “또 받아야 된다”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2)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증거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기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언제 받았
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성령이 와 계시고, 성령이 떠나지 않으십니다.
3) 성령은 떠나지 않으심 한 번 우리에게 오신 성령은 내내 내주해 계시며 감동을 시키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서 잠시라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성령이 우주에 충만하고 안 계신 곳이 없다고 했는데, 성령이 떠난다고 하면 성령이 안 계신 곳이 있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4) 우리가 받은 성령은 보혜사 성령임 우리가 받은 성령은 오순절 성령으로 강력한 보혜사 성령입니다. 보혜사는 대언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주는 성령이시다”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은 보혜사 성령으로 세상 끝날까지 내내 성도의 속에서 역사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구약시대에 역사하신 성령은 신약시대의 성령보다 약한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성령이 역사하셨는데 그것은 오순절 보혜사 성령보다 약합니다. 제일 강한 성령이 오순절에 임한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의 성령과 예수님 당시 때의 성령과 오순절에 임한 보혜사 성령이 왜 다릅니까?
5) 오순절 성령은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심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진리를 떠나서는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에 진리가 약하면 성령의 역사도 약합니다. 진리가 강하면 성령의 역사도 강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진리가 약하므로 그 시대에 성령의 역사도 약했습니다. 즉 구약시대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등을 증거했지만 그것이 의문과 제도 속에 쌓여서 희미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진리가 약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도 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후에는 예수님께서 진리를 많이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그만큼 성령의 역사가 강했습니다. 또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오신, 오순절 성령은 예수님이 승천하기전의 성령보다 강한 성령입니다. 더 강한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십자가에 대한 진리, 부활에 대한 진리, 승천에 대한 진리가 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만큼 진리가 약하기 때문에 성령이 약하게 역사했고, 오순절 성령은 십자가의 구속이 다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만큼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즉 십자가, 부활, 승천의 진리를 다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강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 일류 비행사가 옛날 비행기를 가지고 조종하면 빨리 못갑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빨리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신형 비행기를 조정하면 그 만큼 빠릅니다. 비행사는 같은 비행사인데 비행기가 구식이냐 신식이냐에 따라 가는 속도가 다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진리가 좋아야 성령도 그 능력을 다 발휘합니다. 진리가 좋다는 것은 진리가 다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다 나타나려면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 다 나타나야 됩니다. 그 전에는 십자가, 부활, 승천의 진리가 다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진리를 가지고 역사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은 제일 강한 성령입니다. 그 제일 강한 보혜사 성령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예수 믿을 때에 받았습니다. 단번에 받았습니다. 즉 일회적으로, 단회적으로 받았습니다. 이제 더 받을 게 남아 있습니까? 더 받을 게 없습니다.
6) 성령은 인격자이심 성령은 인격자이십니다. 인격자가 왔는데 뭘 “더 오십시오” 합니까? 아버지가 오셨는데 “아버지 더 오십시요”하면 아버지가 “얘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내가 여기 왔는데 뭘 더 오라고 하느냐”할 것 아닙니까? 성령이 한 번 오시면 된 것이지, 더 오시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
1) 죄를 회개 하여야 함
그러면 왜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약한가? 같은 성령을 단번에 다 받았는데 성령의 역사가 약한 사람도 있고,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그것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성령이므로 죄와 같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나가면 강한 성령이 오시긴 오셨으나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2) 자기가 죽어져야 함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됩니다. 자기가 죽어야 됩니다. 자기가 살았는데 어떻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죽어야 됩니다. 자기 고집, 자기 주장, 자기 뜻, 자기 욕심 등을 회개하고 자기가 죽은 만큼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하면 마귀가 옵니다. 죄가 가득한데 어떻게 성령이 오시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을 채워주시러 오시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을 채워 주는 것은 마귀 밖에 없으므로 마귀가 옵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으려고 하다가 마귀 받는 게 다 그래서 받는 겁니다.
본문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입니다. 육체도 못 박고 정과 욕심도 못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져야 합니다. 산 것은 못씁니다. 제단에 산 짐승 갖다 놓을 수 없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서 각을 떠서 제단에 놓는 것이지, 살아있는 소나 양을 제단에 갖다 올려 놓고 제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져야 됩니다.
자기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나는 죽은 자다, 나는 산 자가 아니다” 하여야 합니다. 자기는 죽은 사람으로 전적 무능하고 전적 무익한 자로, 전적으로 자기를 부인하여야 합니다. ‘자기’라는 것이 있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나를 없애야 됩니다. 처음에 “나, 나” 하다가 그 다음에는 “나, 예수”로 “나” 다음에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나”입니다. 예수를 앞세우고 다음에 “나”인데, 이것도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예수”로 무엇만 남아야 합니까? 예수만 남아야 합니다.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예수님만 남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3) 순종하여야 함
그 다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순종하여야 됩니다. 성령이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는데 나는 왼쪽으로 가니까 성령하고 반대 아닙니까? 성령과 반대인데 어떻게 성령의 감동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자기는 죽어져야 하며, 말씀을 순종해야 됩니다.
4) 사모하여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함
또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5) 힘을 써야 함
또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고 힘을 써야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의 힘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2.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림
성령의 힘과 중생한 영과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롬 5:5) 합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한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2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하였는데, 법은 권세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권세와 성령의 권세가 너를 인도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에서 벗어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성령의 소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7-18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대로 하려고 하고, 성령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 둘이 서로 대적을 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육체의 소욕도 절반, 성령의 소욕도 절반인 상태입니다. “동”으로 가자는 것이 절반, “서”로 가자는 것이 절반인데, 절반씩 하면 일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성령은 “서”로 가자고 하고, 육체의 소욕은 “동”으로 가자고 서로 그러는데 어떻게 갑니까? 가지 못합니다. 진보가 없습니다. 즉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예수를 여러 해 믿는다고 해도 내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개꼬리 삼년 묵어야 황모 못 된다”고 하였는데, 원래 개꼬리대로 돌아갑니다. 여기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개꼬리 신자가 많습니다. 왜 개꼬리 신자가 있습니까? 육체의 소욕 절반, 성령의 소욕 절반인 상태로 신앙생활 하므로 개꼬리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을 죽여야 됩니다.
육체의 부패성은 마음에 있음
육체의 소욕은 육체의 욕심이라고도 하고, 죄성이라고도 합니다. 즉 육체의 부패성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우리의 영혼에 있는 게 아니라 육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부패성은 영의 것이 아니고 육체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부패성, 즉 육체의 소욕은 육체에 있습니다. 육체에 있다는 것은 살과 피와 뼈에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살이 많은 사람은 죄가 더 많고, 빼빼 마른 사람은 죄가 더 없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육체의 부패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에 부패성이 있다고 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 육체의 부패성, 육체의 일, 육체의 정욕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마음과 육체가 합하여 죄를 짓고 나가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와서 마음을 충동하면 마귀의 충동을 받은 마음이 육체를 지배하여 죄를 짓게 합니다. 또 한 쪽은 성령의 소욕이 마음을 주장하여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고, 육체를 거룩하게 만들어 나갑니다. 이것이 옛사람과 새사람의 싸움입니다. 옛사람은 부패한 마음과 육체, 또 마귀가 합하여 옛사람의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성령의 역사와 중생한 영이 합하여 새사람의 행동이 되는 것으로, 중생한 영은 마음과 몸을 이용하여 거룩한 마음, 거룩한 몸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몸을 누가 인도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마음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이
되고, 몸도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인도를 받으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악한 마음이 됩니다.
마음은 육체에 속함
그러면 마음은 영에 속한 것인가? 육에 속한 것인가? 마음이 어디에 속했습니까? 마음은 육체에 속했습니다. 중생한 영에 속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에 있는 부패성을 가리켜서 “육체의 정욕, 육체의 소욕”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전적 부패하였으므로 마음이 영에 속했다고 하면 중생한 자들이 전적부패한 자들이 됩니다. 마음만 부패한 것이지 중생한 자의 영혼은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3. 육체의 소욕을 좇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
본문 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15가지로 첫째, 둘째, 셋째가 성적 범죄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다 성적 범죄로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성 범죄가 제일 강한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우상 숭배와 술수, 원수를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내는 것,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하는 것, 방탕 등이 육체의 부패성에 속한 겁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술 취하는 것도 부패성에 속한 겁니다. 그러므로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하늘나라의 영광과 존귀와 상급을 받지 못함
본문 21절에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말한 15가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예수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는가? 지옥은 안 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천당을 다 받아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갈래도 못갑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천당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소욕대로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은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존귀와 상급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2:7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육신의 소욕을 좇는 자는 영이 사는 일, 영이 자라나는 일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자리, 하나님 나라의 존귀를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해 받는 구원을 얻음
고린도전서 3:15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는데,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불 가운데서 나온 것처럼 해 받는 구원 밖에는 받지 못합니다. 영광의 자리에 못 들어갑니다. 면류관 받는 자리에 못들어갑니다. 존귀한 자리에 못 들어갑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 많이 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얼마나 존귀한 자리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만 짓다가 죽을 때 회개하고 죽은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은 그런 영광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징계로 지옥 고통을 당함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다른 뜻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징계로 지옥 고통을 당하다가 불 가운데서 얻은 것과 같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고, 세상에 있는 동안 천국입니다. 항상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소욕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해서 근심, 걱정, 환난, 고통, 괴로운 자리에 빠집니다.
4. 성령의 열매
본문 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항상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습니까? 사랑이 넘쳐흐르고, 희락이 넘쳐흐르고, 화평이 넘쳐흐릅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희락은 무슨 희락입니까? 근심, 고통만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이 옵니다. 제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이 와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도를 받아서 즐거워했다고 했는데, 성령이 주신 기쁨을 가지고 항상 즐거워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즐거워했습니다. 성령이 주신 기쁨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 받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다 이기고,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할수 있고, 또 화평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원수도 사랑합니다. 사랑으로 원수를 다 이기고 나갑니다. 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오래 참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참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참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비, 사랑,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있고, 온유할 수 있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24-26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정과 욕심까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다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다 죽어지고 없습니다.
그런데 왜 격동이 됩니까? 자기가 살았으므로 격동이 나오는 겁니다. 왜 분한 마음이 나옵니까? 자기가 살았으므로 분한 마음이 나오는 겁니다. 죽은 사람이 분한 마음이 나옵니까? 자기 육체도 십자가에 못 박고 정과 욕심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다 죽어졌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또 시기하는 것 없습니다. 다 죽어졌습니다. 격동하는 것, 분내는 것, 투기하는 것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무슨 투기를 하겠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죽은 사람의 위치에서, 자기는 죽은 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즉 자기를 죽이고 예수님만 살아야 됩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항상 성령의 열매를 맺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