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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6일 월요일

민수기 36:1-13 슬로브핫 딸들의 출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슬로브핫 딸들의 출가
민수기 36:1-13

1요셉 자손의 가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 된 족장들 앞에 말하여 2가로되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기업의 땅을 제비뽑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으로 그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3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 남자들에게 시집가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감삭되고 그들의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 제비뽑은 기업에서 감삭될 것이요 4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감삭되리이다 5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가로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6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7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8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9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10슬르보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11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12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 13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

1. 레위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땅을 나눠줌

민수기 35장에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했는데, 제비 뽑아서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한 몫도 주지 않았는데, 각 지파가 자기의 받은 땅에서 레위 지파를 위해서 성읍과 땅을 주라고 했습니다. 한 지파에서 대략 네 성읍 씩을 주어야 되는데, 성읍을 줄 때 땅도 주라고 했습니다. 성읍 하나 주고 동쪽에 이천 규빗, 서쪽에 이천 규빗, 남쪽에 이천 규빗, 북쪽에 이천 규빗씩 땅도 주어서 레위 사람으로 하여금 거기에 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사람은 각 열두 지파에 퍼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실 때에 레위 지파 줄 것을 미리 떼어놓지 않고, 일단 다 열 두 지파로 분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분배해 주시고는 각 지파에게 너희가 받은 땅 가운데서 레위 지파에게 떼어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
니까 한 지파에서 약 네 성읍씩 떼어주는데, 성읍하고 성읍 사방 뜰 이천 규빗씩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얼마씩이나 주어야 됩니까? 가나안 땅이 길이가 256km, 폭이 80km인데, 그것을 계산하면 20,480㎢가 됩니다. 여기서 이제 이것을 열둘로 나누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레위 지파에게 48성읍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한 지파에서 대략 네 성읍씩 돌아가는 것입니다. 48성읍과 들을 레위 지파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한 성읍의 사방이 천 규빗씩이라고 하고, 또 성읍벽에서부터 동서로 각각 이천 규빗, 남북으로 이천 규빗의 땅을 함께 주라고 하셨으므로, 한 규빗을 오십 센티로 계산하면, 성을 포함한 땅의 넓이가 6.25㎢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읍이 48성읍이 있으므로 그 성들의 면적은 전체에 대해서 약 1.5%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받은 땅에서 1.5%씩을 내놓아서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집에서 만 평을 받았다고 하면 150평을 내놓아서 레위 지파에게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 평 받은 사람이 150평 내놓기 쉬웠겠습니까? 가령 우리 땅이 만 평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잘라서 150평을 내놓으라는 것이고, 돈 1억이 있다고 하면 150만원을 내놓아야 된다는 것이고, 10억이 있으면 1500만원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놓기가 쉬웠을 것 같습니까? 자기 재산을 가서 다 계산해 보시길 바랍니다. 액수가 적은 때는 내놓을 수 있지만 한 백억이 되면 일억 오천을 내놓아야 되는데 그것을 내놓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떼어놓고 주지 아니하고 다 주었다가, 거기에서 1.5%를 떼어 내놓으라고 하였는가 하면, ‘전체가 다 네 것이 아니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받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것인 줄을 알고 하나님께 바칠 줄을 알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무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레위 사람을 대접할 줄 알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레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지 않고 열두 지파에 갈라놓았는데, 매 지파에 한 400여 명씩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갈라 놓은 이유는 레위 지파를 통해서 각 지파에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배우고, 레위 지파를 통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다 주었다가 주었던 데에서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알게 해 주느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크기가 20,480㎢라고 하는데, 전라남북도가 20,130㎢이니까 이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가나안 땅이 굉장히 큰 땅입니다. 그 가운데서 이제 각 지파에서 48성읍을 하나님께 바쳐서 레위 사람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대대손손을 잘 지켜주셔서 그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민수기 36장은 자기 기업이 다른 지파에게 돌아가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2. 슬로브핫의 딸들의 출가에 대한 판결

다른 지파로 시집 갈 경우 므낫세 지파에 손해가 남

본문 1-4절에 “요셉 자손의 가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 된 족장들 앞에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기업의 땅을 제비뽑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으로 그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 남자들에게 시집가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감삭되고 그들의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 제비뽑은 기업에서 감삭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감삭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습니다. 슬로브핫이 받았던 기업은 아들이 없으니까 딸들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딸들의 이름은 본문11-12절에 나옵니다.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슬로브핫이 제비뽑아서 기업을 받은 것이 있었는데, 아들이 없고 딸만 있어 물려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한테 말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아들이 없을 경우에는 그것을 딸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슬로브핫이 제비뽑아서 얻은 땅을 딸들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자손 중 므낫세 자손이 얼마 후에 모세에게 나와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면 그들 므낫세 자손이 받은 이 기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자기 지파가 받아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물려주었는데 딸들이 시집을 다른 지파로 가면 자기들이 제비뽑아서 받은 땅이 다른 지파로 가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지파에서 제비뽑은 것은 그만큼 손해를 보고 기업이 적어질 것이고, 다른 지파에서는 받은 땅이 그만큼 많아지게 될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지파 내에서 시집가서 기업에 손해가 없게 할 것

본문 5-7절에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가로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하나님의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마음대로 시집갈 수가 있
으나 자기 조상 지파인 므낫세 지파에게로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세 지파에 속한 남자, 곧 자기 지파 남자에게로 시집을 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슬로브핫의 딸들은 므낫세 지파의 오만 이천 칠백 명의 남자 가운데 마음대로 시집을 가고 다른 지파로는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므낫세 지파가 받은 기업이 내내 그 지파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면 그 땅을 가지고 갈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 땅이 다른 지파로 갈 것이고, 므낫세 지파는 땅이 적어지고 다른 지파는 기업으로 받는 땅이 많아지게 되므로, 그렇게 하면 바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시집감

본문 10-12절에 “슬르보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
에 여전히 있었더라”고 하였는데, 슬로브핫의 딸 다섯 명이 마음대로 시집을 갔지만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만 갔기 때문에 여전히 공정히 땅이 배분된 것입니다. 

3.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교훈

자기 지파의 기업을 떠나지 말라

여기서 얻을 교훈은 자기 지파의 기업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든지 환난이 오든지 전쟁이 나든지 간에 자기 지파 기업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기 지파 기업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의 신령한 뜻은 자기 지파에게 준 신령한 기업, 하나님의 말씀의
기업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 장로교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은 장로교를 떠나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장로교에 다니다가 감리교로 옮기거나 안식교로 옮기거나 아니면 천주교로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로교에서 믿었으니까 내내 장로교의 기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또 감리교나 다른 곳에 다니다가 장로교로 온 사람은 장로교가 옳다고 왔으니까, 옳다고 왔으면 그 기업에서 떠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장로교 가운데도 여러 교단이 있습니다. 합동측, 통합측, 고려파, 우리 계신측 등 여러 교단이 있는데, 각기 주신 기업이 다릅니다.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진리, 우리에게 주신 은사, 우리에게 주신 좋은 전통, 이것이 다릅니다. 또 다른 곳에는 그
들에게 주신 것이 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진리와 전통과 규례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리가 옳다고 배웠고 우리에게 주신 모든 예배모범 전통, 교회의 모든 풍속 습관을 옳은 것으로 배우고, 우리가 이 진리에 서 나가므로, 이 기업에서 떠나지 말고 죽어도 이 진리 안에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도 이 기업 안에서 시집을 가고, 이 기업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바른 신앙, 바른 진리, 신령한 진리,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데,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좋은 줄로 알고 지금까지 계속 따라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므로, 이 좋은 하나님의 기업을 떠나지 말고, 무엇을 하든지 이 지파의 기업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도 장가를 가도 이사를 가도 이 지파의 기업 안에서 하고, 사업을 해도 이전을 해도 이 지파의 기업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주신 이 기업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주셨으므로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 유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사 가는 것은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업 안에서 가야 합니다. 또 기업을 떠나지 말고 시집을 가야 합니다. 

어떤 여자는 시집을 가면 아주 딴 데로 갑니다. 현실교회, 인본주의교회, 신비주의 교회 같은 데로 가고, 한 번 가면 오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이 지파를 떠나서 시집 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집도 이 지파 안에서 가야 합니다. 또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예수 믿는 사람과 결
혼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데리고 오면 괜찮습니다. 어떤 여자는 시집을 가서 신랑을 이 지파로 데리고 와서 내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없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그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지파에 상관이 없게 됩니다. 슬로브핫
의 딸들은 자기 지파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단에 주신 좋은 전통

예레미야 35장 5-10절에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선조가 전해 준 전통과 교훈에서 떠나지 않는 레갑 족속에 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여자 목사 세우지 않는 것, 술 먹지 않고 포도주 먹지 않고, 여자 장로 세우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전해 준 좋은 전통적인 기업입니다. 또 교회가 인본주의 쓰지 아니하고 흥분시키지 아니하고 복음성가 부르면서 떠들지 아니하는 것은 다 우리의 전통입니다. 어저께 어떤 목사를 만났는데 우리 교회에서 악기를 쓰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아노만 쓴다고 하니까, 나팔 같은 것이나 여러 가지 악기를 쓰는지 물어보아서 우리는 그런 악기를 안 쓴다고 했습니다. 물어보는 사람이 무슨 뜻으로 물어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다른 교회 목
사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북 치고 나팔 불고 제금 치고 하는 여러가지 악기들을 안 씁니다. 그것도 우리의 기업입니다. 우리 교단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통적인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율동하는 교회도 있다고 하는데, 율동을 하면서 희한하게 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열린 교회는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나 와도 다 좋다’, ‘어중이떠중이 다 와도 좋다’, ‘안 믿는 사람이 와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깡패가 와도 좋다’고 하면서 오면 대접 잘해주고는 세상 음악가들이나 가수들을 데려다가 불신앙의 노래하는 것은 교회를 다 버리는 것이고 교인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또 많은 교회에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만 얘기해 주는데,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은 세상주의입니다. 예수 믿으면 세상의 복을 반드시 받는다고 가르쳐주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복 받는다는 것은 세상 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이 복을 말씀하는 것
이지 세상 복이 아닙니다. 세상 복을 따라가게 하는 것은 세상주의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자는 죄를 떠나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묵상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조건 ‘잘 된다’, ‘먹으면 좋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농사하는 법은 가르치
지 않고, 농사도 하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그저 먹으면 좋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떡 해먹으면 좋다’, ‘인절미 해먹으면 좋다’, ‘수수떡 해먹으면 좋다’ 이런 것만 자꾸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수수떡을 해 먹는가, 어떻게 인절미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으면 좋다, 잘 된다고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농사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 ‘김장할 때 배추가 좋다’, ‘무슨 김치가 좋다’ 이런 식으로만 자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밤낮 그것만 이야기하는데, 그 사람이 농사 안 하면서 먹을 것이 있겠습니까?

생명이 둘이 있는데, 육신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의 생명으로만 길러나가니까 영의 생명은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좋은 신앙의 전통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데, 이것을 다른 지파에게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 진리를 세워나가다가 죽고 이 진리를 지키다가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새 여자 목사를 세우고 여자 장로를 세우고 야단들이 났습니다. 또 교회에서 음악회하고 율동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놨는데, 그것은 우리 지파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은 것입니다. 또 술 먹고 포도주 먹어도 된다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무엇을 사먹지 않고 주일 지키는데, 이것도 우리 교단에게 주신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도예배 드리지 아니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아니하고,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자라나야 된다는 교리를 지켜나가야 되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이 유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바로 배웠으면 배운 그 지파의 제도 범위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지키고 아무 것이나 해도 된다는 곳으로 가면, 그것은 조상에게 주신 기업을 다 내버리고 다른 기업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를 벗어나는 것은 자기 지파의 기업을 다른 데로 넘겨주는 것입니다. 다른 지파에 가서 연구하고 다른 것을 하고 별 것을 다해도 그것은 이 지파에서 받은 것을 가져다가 다른 지파에게 넘겨주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마음대로 시집가지만 오직 조상의 지파에게만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에서 벗어나지 말고 그 안에서만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역자들 가운데서 우리 교단에서 좋은 진리와 모든 좋은 유전과 전통을 배워서 나가다가 얼마 지나서 우리 교단을 탈퇴하고 다른 교단으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지파에서 받았으면 이 지파에서 끝까지 하지, 무엇 때문에 다른 데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단 교인들도 우리 교단 교회와 다른 교회 양쪽에 왔다 갔다 하다가 다른 데로 간다고 합니다. 왜 가느냐고 물어보면 다른 데 가면 사람이 많으니까 사업이 잘 된다고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교인들이 많이 오는 데에 가서 사업을 해야 사람이 많이 와서 잘 되겠기에 그런다고 합니다. 한약방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교인들이 많이 안 간 것 같습니다. 얼마 있다가 순복음 교회로 갔다고 합니다. 왜 갔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전해 오는 말을 들으니 사람이 많으니까 거기 가서 하면 사람이 많이 와서 한약을 많이 팔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파를 옮긴 것입니다. 한약방 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 지파 안에서 해야지 어째서 다른 지파에 가서 하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신 기업을 지켜나가야 함

하나님께서 네게 분배해주신 기업을 내내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른데로 넘겨 보내지 말고 내내 그 기업을 지켜야 합니다. 시집을 가도 그 지파 안에서 가고, 한약방을 해도 그 지파 안에서 하고, 또 무엇을 해먹어도 그 지파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데로 가서 잘 된다고
해도 가면 안 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의 남자들이 잘 생기고 돈이 많다고 해서 거기 가면 되겠습니까? 자기 지파 사람들은 시시하고 다른 지파 사람들은 번쩍번쩍하다고 해도 거기 가면 안 되고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다른 지파에 아무리 훌륭
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거기 가면 안 됩니다.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그 지파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거기서 말씀과 신앙과 전통을 받았으면 이제는 안 떠나야 합니다. 그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하나님께서 자기 지파에게 주신 진리 안에서 그 지파의 기업 안에서 세워나가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 후대 자손들에게 자기 지파를 떠나지 않도록 가르치면서 내내 그 지파에서 충성하다가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내 이어져 내려갈 수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가 100년이고, 200년이고, 300년이고, 므낫세 지파로 내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자기 지파를 지키지 않고 다른 지파로 가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기업의 지파가 그만 점점 쇠퇴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데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 이사를 가면 우리 교단 교회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거의 다 우리 교단
으로 갑니다. 다른 데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예 이사 갈 때 거기에 우리 교단 교회가 있는가 물어보고 가시길 바랍니다. 어제 어떤 사람이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를 갔는데 가기 전에 캐나다에 우리 교단 교회가 있는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있다고 하니 주소와 전화번호 써 달라고 해서 다 써 주었습니다. 거기다가 전화 연락해서 아마 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지파를 내내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자자손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을 내내 세워나가게 해야 합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므낫세 지파에 딸이 있고, 에브라임 지파에 딸이 있고, 르우벤 지파에 딸이 있고, 단 지파에 딸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각 지파가 다르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이 다르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제일 좋은 줄을 알고 이 진리의 기업에 참여한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것을 믿거나 이단에 빠지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안상홍 파라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고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되고 침례를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잘못된 것은 안상홍이 성령이니까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고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된다고 합니다. 아예 그것은 이단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지, 성경에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성령은 우주에 충만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안상홍이 왜 성령입니까? 안상홍이 얼마 전에 죽었는데, 성령도 죽습니까?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 파는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안상홍이 성령이라고 하는 바람에 얼마 못 가서 다 파괴되고 관두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데 그것을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거기 다니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가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자기들은 크리스마스를 안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언제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들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 생일날을 모르면 그 날을 정해서 지키는 것이 옳으냐, 안 지키는 것이 옳으냐?”하고 물어봤습니다. “이 때가 아버지 생일일 것이다”하고 가장 가까운 날짜를 정해서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또 생일날을 모른다고 아버지의 생일을 무시하고 안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모르니까 예수님이 나셨다는 사실을 가지고 연구해서 한 날을 정하여 지키면 안 지키는 사람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또 침례를 받아야 된다고 하는데 성경에 침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침례라는 말이 아니고 세례라고 해야 됩니다”라고 하였더니, 원어 상에 침례로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침례의 원어가 무엇입니까?” 했더니 모른다고 합니다. 침례라는 말의 원어는 ‘밥티조’인데, 성경에서 ‘담근다, 적신다, 찍는다, 눈물을 흘려서 운다’라는 뜻이 ‘밥티조’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침례냐고 하였습니다. ‘밥티조’는 적신다는 뜻이고 찍는다는 뜻이입니다. 가룟 유다가 떡을 집어다 찍어서 준 것도 ‘밥티조’의 변형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세례라고 해야 옳고, 또 물을 뿌려서 하는 세례가 옳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민수기 27:1-14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 상속과 모세의 죽음 예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 상속과 모세의 죽음 예고
민수기 27:1-14

1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으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2그들이 회막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가로되 3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4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7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8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9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10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1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지니라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13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14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본문에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와서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달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고, 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이제 가나안 땅을 한 번 바라본 다음에 거기서 죽어서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 슬로브핫 딸들의 호소와 기업 상속법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 상속할 것을 호소함

본문 1-4절에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으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회막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가로
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세의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이라고 하는 사람의 딸들이 나아왔습니다. 아들은 없고 딸이 다섯인데, 딸의 이름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이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다음에 그의 딸들이 모세와 족장들과 회중 앞에 나와서,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고 아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는데,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겠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때는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때였습니다. 딸에게는 주지 않습니다. 아들이 없으니까 아버지의 기업이 다른 데로 가게 되자, 딸들이 기업을 상속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바로 기도해 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딸들에게 아비의 기업을 받게 하심

본문 5-7절에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을 그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딸들에게도 기업을 주는 법이 생긴 것입니다. 원래 아들에게만 기업을 주게 되어있고, 딸들은 기업을 못 받아도 시집을 가면 남편이 받은 기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딸들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특별한 일입니다. 아들이 없이 딸만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가나안 땅에서 분배를 받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기업을 이을 사람이 없어 그 아버지의 기업이 형제 중에서 다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딸들에게도 기업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딸도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도 참여할 수 있고,딸들도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는 좋은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좋은 하나님의 기업에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8-11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의 기업을 딸에게 주고, 딸도 없으면 그 기업을 형제에게 주며, 형제도 없거든 아비의 형제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또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그 사람의 기업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지니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판결의 율례란 것입니다. 앞으로 기업을 물려줄 때에는 이렇게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업이 귀중함

이것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아버지가 가졌던 하나님의 기업,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하나님의 기업, 자기의 아버지가 가졌던 하나님의 기업,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계통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 구원역사와 은사, 이것이 다 아버지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답에게 주신 기업이 그 가족에게 계승되어 내려갔습니다. 레갑 족속에게 주신 좋은 풍속이 계승되어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레갑 족속의 기업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35장 5-7절에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레갑 족속에게 좋은 유업을 주셨는데, 그것은 돈도 아니고 땅도 아니었습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의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레갑 때부터 예레미야 때까지 250년간 레갑 족속의 좋은 전통이 계승되어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유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받았다는 것, 좋은 진리를 받았다는 것이 다 유업입니다. 좋은 풍속, 율례, 이것들이 아버지의 유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유업을 아들도 물려받고, 딸도 물려받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유업이, 곧 기업이 자자손손에게
계승되어 내려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었지만 딸을 통해서 아버지의 기업이 계속 내려가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하나님을 섬기는 율례와 법도, 또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진리와 교리, 특별히 주일날 지키라는 진리도 유업입니다. 요즘 교인들은 주일날을 다 안 지키면서 믿습니다. 주일날을 지키는 것도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진리입니다. 이것도 유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진리가 유업입니다. 

우리 지교회가 있는 건물에 다른 교회가 하나 새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4층에 있고 새로운 교회는 지하실에 들어왔습니다. 교인이 한 스물 댓 명 된다고 합니다. 주일 저녁에 끝나고 가다가 보니까, 목사님은 가고 전도사 하나와 집사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사가 자신은 4층에 사는 목사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예전에 지하실에는 술집이어서 담배냄새가 계속 올라오고 술 먹는 사람만 왔다갔다 했는데, 이제는 교회가 들어와서 잘 됐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전도사가 쑥 나갑니다. 그래서 ‘손님이 왔나? 왜 갑자기 쑥 나가나’ 했더니, 조금 있다가 쥬스 같은 것 두통을 사왔습니다. 잡수라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까 그것은 주일날 사온 것입니다. 밖에 나가면 가게들 많은데, 목사님이 왔다니까 얼른 나가서 사온 것입니다. 그래서 안 먹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주일날 음식을 사다가 손님대접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늘 하던 일입니다. 자기들도 나가서 사먹고, 찬양대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짓게 합니다. 단골 음식점도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요즘은 주일날 사먹으면서 하는 교회가 대부분인 줄 알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날 지키는 좋은 유업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받지 못한 것을 받지 않았습니까? 아주 좋은 기업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졌던 기업을 아들이나 딸이 그대로 물려받아서 그 기업을 유지하려고 하는 그 신앙이 참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귀한 줄 알고 다른 데로 빼앗기지 말고 잘 계승해 내려가므로 복을 받는 그 자리에 언제나 서야 되겠습니다.

2.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심

모세가 아바림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기만 하고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임

본문 12-1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한번 쳐다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형 아론과 같이 모세도 이제 죽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론은 호르산에서 돌아갔습니다. 민수기 20장 23-24절에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가라사대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
고니라”고 하였습니다. 호르산은 가나안땅에서 먼 곳인데, 아론이 왜 가나안땅 못 들어가고 거기서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하였습니까?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연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모세는 지금 무슨 산에서 조상에게 돌아간다고 하였습니까? 아바림산입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가면 여리고이고 가나안 땅인데, 모세는 그 땅을 바라만 보고 거기서 조상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거역하였기 때문임

모세가 육신적으로는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14절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20장 8-12절에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물을 낼 때, 반석에서 두 번 물을 냈는데, 첫 번째는 르비딤에서 물을 냈고(출 17:1-7), 39년 후에는 가데스에서 물을 냈습니다(민 20:1-13). 두 번 다 이름을 ‘므리바’라고 했는데, ‘므리바’는 ‘다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물을 낸 장소는 ‘르비딤’이지만 다퉜기 때문에 ‘므리바’라고 했고, 가데스에서 두 번째 물을 냈는데 여기서도 다퉜기 때문에 ‘므리바’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므리바에서 모세와 아론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믿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지팡이로 두 번 쳤습니다. 왜 두 번 쳤겠습니까? 전에 르비딤에서 막대기로 반석을 쳐서 물을 냈던 경험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쳐서 물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두 번 쳤겠습니까? 한 번 치면 잘 안날 것 같으
니까 한 번 더 친 것입니다. 물을 내라고 명하면 날 것 같지 않으니까 쳤고, 한 번 치면 잘 안날 것 같으니까 두 번 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분명합니다. 또 믿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민수기 20장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모세와 아론이 거역했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20장 24절에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역했다’, ‘믿지 않았다’, 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아니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이끌어서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와 아론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하였습니다(20:10). 그런데 누가 물 내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내시는 것인데, 자기들이 낸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시는 것을 자기가 낸다고 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태내지 못하는 것
이고 망령된 일입니다. 시편 106편 32-34절에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자기의 신앙양심을 거역하여 망령되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 망령되이 했다는 것은 당치 않은 말, 적당하지 않은 말, 엉뚱한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 정신대로 한 말이 아니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자기가 했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제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고 나가야 되겠는데, ‘우리가 하자’, ‘내가 하자’,
‘내가 해야 되겠다’, ‘우리가 하겠다’고 하는 것이 망령되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말입니다. 누가 합니까?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누가 해줬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현재 이루어 나가는 것도 누가 이루어나갑니까? 하나님께서 해나가십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없습니까? 이것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으로 믿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되겠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려고 하고, 자기가 한 줄 알고, 자기 자랑하고, 자기가 계획하는 것은 다 망령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믿지 않고 거역했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거역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명하라고 했으니 명해야 되는데, 명하지 않고 쳤으니까 거역한 것입니다. 왜 명하지 않고 쳤다고 하였습니까? 명해서는 물이 날 것 같지 않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딱딱한 돌이 어떻게 물을 내겠는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지팡이로 친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쳐서 안 날 것 같아서 두 번 친 것입니다.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 같고, 또 돌을 친 경험도 있으니까 지팡이로 두 번 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안 될 것 같아도 되는데, 이것을 못 믿어서 ‘어떻게 할까? 치자. 지팡이 어디 갔나? 지팡이로 쳐야 되겠다. 한 번 치고, 또 한 번 더 치자’라고 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제가 하려고 하고 자기 방법을 쓴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어서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참 너무 억울하고 너무 섭섭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냈습니까? 또 얼마나 죽을 뻔 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다 당하면서 인도해 냈는데, 가나안땅에 들어가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39년 전 르비딤에서 첫 번
째 물 낼 때에는 합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치라고 하셔서쳤더니 물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낙제가 되었습니다. 명해서 물을 내라고 할 때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지팡이로 두 번치고, “우리가 물을 내랴”고 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자’, ‘우리가 했다’, ‘내가 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하려고 했던 것’ 그것이 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라고 했습니다.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우리는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종만 하면 됩니다. 순종만 하면, 일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그러니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함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만능으로 행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능으로 행하실 것을 믿고, 반석에게 가서 “반석아 물을 내라”고 하면 물이 납니다. 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우리도 성경말씀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이 많이 있는데, 그때 믿으십시오. 될 줄로 믿으십시오.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해주실 줄 믿으십시오. ‘우리가 하겠다’, ‘내가 하겠다’ 이런 것은 다 집어 치워야 합니다. 내 뜻 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고생을 많이하고 핍박과 환난을 많이 받았지만, 그만 낙제가 되어 못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일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 믿지 못한 일, 그래서 인본주의 쓴 일, 내 방법대로 해보겠다고 한 일, 자기의 방법을 쓴 일 등을 다 회개해야 합니다. 지팡이로 친것 때문에 가나안 복지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우리가 철저하게 믿음에 서고, 말씀이 만능인 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이 다 죽어야 합니다. ‘나’라는 것을 다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또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것이 하나님인 줄 믿고, 또 앞으로 인도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신 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
실 것을 믿고, 주가 인도하시는 대로만 따라가는 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셨다고 하십시오. 내가 했다고 하는 것은 집어 치우십시오. ‘내가 어떻게 했다’, ‘내가 장사했더니 돈이 남았다’, ‘내가 무엇을 도와주니까 잘됐다’, ‘내가 말해줬더니 그 사람들이 결혼했다’, ‘내가 얼마나 수고 많이 한 줄 아느냐’ 하고 생색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했지, ‘내가’가 뭡니까?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된 줄을 알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서 해주셨다고 하십시오. ‘내가 해줬다’는 것은 다 집어 치우십시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교회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
님께서 하셨고, 주일학교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셨고, 기도원도 하나님께서 하셨고, 신학교도 하나님께서 하셨고, 우리나라도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화재나지 않은 것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 식목일에 기도원에서 화재가 났는데, 바람이 조금만 올려 불었으면 기도원이 다 탈 뻔 했습니다. 뒷산에 불이 붙었는데, 기도실이 다 없어질 뻔했습니다. 나무를 심다가 여럿이 가서 불을 껐습니다. 하나님께서 올라오지 않게 해주셔서 불이 올라오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 줄압니까? 하나님께서 바람을 돌려서 내려 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불끄기가 쉬웠습니다. 바람이 올려 불었으면 더운 기운이 확 올라오는데 가까이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불을 끄지 못합니다. 우리 기도원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는 기도원인 줄 확실히 알았습니다. 화재를 누가 안 나게 해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안 나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으로 이제 믿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자기는 다 없어지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만 있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오라고 하시면 오고,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우리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은 나타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복지를 빼앗아 가십니다. 가나안복지를 소유할 수 없게 됩니다. 이제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보이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만 가지고 살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