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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1일 수요일

출애굽기 40:1-38 임직과 시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임직과 시설
출애굽기 40:1-38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3또 증거궤를 들여 놓고 또 장으로 그 궤를 가리우고 4또 상을 들여 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대를 들여 놓고 불을 켜고 5또 금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문에 장을 달고 6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문 앞에 놓고 7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8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문에 장을 달고 9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10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11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2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13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14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15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16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17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18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그 기둥들을 세우고 19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0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21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 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2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으로 장 밖에 상을 놓고 23또 여호와 앞 그 상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4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25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6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27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8그가 또 성막문에 장을 달고 29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30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31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32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33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34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37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38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1. 성막을 세우고 그 안의 것들을 시설하라고 명하심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 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라고 하였습니다. 정월 초하루는 애굽에서 나온 지 2년째 되는 초하루입니다(17절). 즉 애굽에서 나온지 2년째 되는 해에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와 아말렉과의 전쟁 등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지만, 시내산에 와서 2년을 머물렀습니다. 애굽에서 시내산까지는 석 달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출31:18). 새해가 시작되는 첫 날에 하나님께서 성막을 세우게 하신 것은 시작부터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을 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모든 일을 시작할 때에나 마칠 때에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도 정월 초하루에 성전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부터 먼저 했습니다(대하 29:17).

지성소에 증거궤를 놓고, 성소에는 떡상과 등대와 향단을 놓음

본문 3-5절에 “또 증거궤를 들여 놓고 또 장으로 그 궤를 가리우고 또 상을 들여 놓고 불을 켜고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문에 장을 달고”라고 하였습니다. 성막 곧 초막을 세운 후에 증거궤를 지성소에 들여놓았습니다. 증거궤는 언약궤입니다. 즉 법궤입니다. 법
궤를 지성소에 두었습니다.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 십계명 돌판 두 개가 있고, 그 위에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죄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와 말씀과 속죄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휘장으로 막았는데, 휘장 밖은 성소이고 휘장 안은 지성소입니다. 성소에는 떡상과 등대와 향단을 놓았습니다.

성소에 등불을 켜 놓고 떡상에는 진설병을 항상 진설하게 한 것은 죄인이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가서 제사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떡상 위에 진설병을 진설한 신령한 뜻은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에 형식적으로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떡상에 떡을 진설하여야 합니다. 즉 진설병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고 나가야 할 것을 뜻합니다. 또 등잔에 등불을 켜듯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내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궤 속에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성막 뜰에는 물두멍과 번제단을 놓음

본문 6-8절에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장을 달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소 밖의 마당에는 물두멍과 번제단을 놓았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수족을 씻는 곳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성결하여야 함을 가리킵니다. 즉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려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2. 제사장들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케 하심

본문 9-12절에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너
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고 하였습니다.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관유는 붓거나 발라서 거룩하게 하는 기름입니다. 기름을 발라야 거룩해집니다. 기름은 성령을 가리킵니다(요일 2:27).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가 임하여야 거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임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다 잘 만들어 놓았어도 거룩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에 하나님의 은사가 임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여야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하여야 합니다. 즉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대로 하면 안됩니다.

본문 13절에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하는 방법은 물로 씻기고,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물로 씻는 것은 죄를 회개함으로 정결케 되는 것이고, 거룩한 옷을 입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이고, 기름을 붓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순종하므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4-16절에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에게만 기름을 부었으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입니다(벧전 2:9). 특수한 면을 보면 교역자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께서 교역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십니다.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역사적으로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직을 행할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예언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장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3.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그 안의 것들을 시설함

본문 17-21절에 “제 이 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 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정월 초일일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틀림없이 순종하였음을 말합니다. 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맞도록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설병상에 떡을 진설하고 등대에 불을 켜 놓음

본문 22-25절에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으로 장 밖에 상을 놓고 또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
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회막, 즉 성소에 들어가면 진설병 상과 등대와 향단이 있고, 등대에는 항상 불을 켜놓았습니다. 그리고 진설병 상에는 항상 떡을 진설해 놓았습니다. 진설병 상에 항상 떡이 있는 것의 신령한 뜻은 그리스도께서 진설병이 되어 하나님께 몸을 바친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쳐야 함을 말하며, 등대에 불을 켜 놓은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 영적 불이 항상 켜져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향단에 향을 피움

본문 26-27절에 “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금 향단을 성소 안에 놓고 항상 향을 피워야 하는데, 향은 성도의 기도를 뜻합니다(계 8:4). 또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는 성도
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향을 사르는 것입니다.

번제단에서 번제와 소제를 드림

본문 28-29절에 “그가 또 성막문에 장을 달고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막 문 앞에는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드렸는데, 번제는 예수님의 희생을 가리키는 것으
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우리 자신을 번제물로 바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30-33절에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들에 포장을 치고
뜰 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순종하여 성막을 그대로 만들었고, 실제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4. 성막에 구름이 덮임

본문 34-35절에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라고 하였는데,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성막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성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성막 위에 임재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충만했기 때문에 모세가 감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께서 거룩한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을 볼 때에 그 앞에 엎드러져서 죽은 자같이 되었습니다(계1:17).

5.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심

본문 36-38절에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이 떠올라서 앞으로 갈 때에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루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거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늘날 나그네로 사는 성도의 생활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언제 구름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떠날 준비를 하였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이며, 오늘날 나그네로 사는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가리킵니다. 즉 구름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상징합니다. 특별히 불 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렘 5:14 ; 신 33:2). 불이 어두움을 비추어 갈 길을 보여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어두움의 세상을 비추어 갈 길을 밝혀 주십니다(시 119:105). 또한 구름 기둥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8절에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 붙은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라고 하였는데, 흑운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구름 기둥이 올라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간 것처럼 성도의 모든 만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출애굽기 39:32-43 여호와의 명대로 모든 역사를 필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의 명대로 모든 역사를 필함
출애굽기 39:32-43

32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고 33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4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우는 장과 35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36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37정금 등대와 그 잔 곧 벌여 놓은 등잔과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38금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문장과 39놋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40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회막의 소용 곧 성막의 모든 기구와 41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라 4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43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1. 우리도 모든 것을 바쳐서 영적성전을 잘 건축해아 함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했습니다. 그리고 준공한 것을 모세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본문 3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고”라고 하였는데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회막을 준공을 했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성전입니다. 성전과 그 안에 모든 기구들과 아론의 옷과 아들들의 옷을 만들어서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건축 재료를 하나님께 바쳐서 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재료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하나님께 바쳐서 성전을 잘 건축 한 것입니다.
우리도 성전 건축하는 일, 곧 영적 성전 건축하는 일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바칠 것은 바쳐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성전을 건축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성경 말씀대로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33-34절에 “다 행하고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덮개와 가리우는 장과”라고 했는데 준공된 성막을 모세에게 가져왔습
니다. 그리고 성막을 세우고 뜰에 포장을 쳤습니다. 진설병, 등대, 향단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섬기게 했습니다. 가져온 것들이 여러 가지인데,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 등으로 성막 짓는 데에 쓰는 것입니다.

본문 35-36절에 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라고 했는데 진설병은 하나님 앞에 바치는 떡을 가리키고, 진설병 상은 떡을 올려놓는 상입니다. 증거궤는 하나님의 언약궤, 법궤를 말합니다. 증거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 돌 비석 두 개와 만나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속죄소는 하나님의 증거궤를 덮는 뚜껑으로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증거궤 위에 있는데 피를 뿌리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대로 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해 주실 것을 상징하는 곳이 속죄소입니다. 성소에 있는 속죄소는 거룩한 속죄소입니다. 증거궤 위에 있고 그 위에 스랍이 날개를 펴서 덮고 있습니다.

본문 37-39절에 “정금 등대와 그 잔 곧 벌여 놓은 등잔과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금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문장과 놋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라고 하였습니다. 정금 등대는 정금으로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늘 등불을 켜도
록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성전도 이렇게 항상 빛이 켜 있어야 하고, 생명의 역사가 늘 있어서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 나가야 합니다.
또 일곱 등잔에 불을 켜는데 이것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항상 일곱 등불이 되어서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고 감동을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모든 기구와 등유와 금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이라고 했는데, 향기로운 향으로 피우는 것입니다. “장막 문장과 놋단과”라고
하였는데, 놋단에는 속죄의 제물을 가져다가 불살라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물을 불로 살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속죄제물이 되실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우리도 제단에 우리 자신을 바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빋침과”라고 하였는데 물두멍은 무엇에 쓰는 것이라 했습니까? 제사장들의 수족을 씻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항상 씻어서 깨끗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항상 회개하고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생활을 해야 되
겠습니다. 늘 회개하고 깨끗하게 나오라는 것입니다.

본문 40절에 “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회막의 소용 곧 성막의 모든 기구와”라고 하였는데 뜰의 포장을 넓게 치라고 하셨습니다. 길이는 백규빗, 폭은 오십규빗의 포장들, 한쪽에 스무 개씩 앞쪽은 열 개씩의 기둥들로 기
둥 세우는 받침들, 뜰 문의 장과 그 줄들, 줄을 매는 말뚝들과 회막의 소용 곧 성막의 모든 기구 등을 다 만들어서 하나님께 가져가서 성막을 세웠습니다.

본문 41절에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의 옷과 그 아들들의 옷들인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가져왔습니다. 관도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2.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이름을 가슴에 품고 기억하심

대제사장인 아론은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옷을 직접 입으시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그 가슴에는 무엇이 있다 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흉배를 붙이셨는데, 그 안에 열두 보석을 넣었고, 그 보석에 이스라엘 열두 아들의 이름을 기록했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9장 9-14절에 “그것의 장이 한 뼘, 광이 한 뼘으로 네모 반듯하고 두 겹이며 그것에 네 줄 보석을 물렸으니 곧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 첫 줄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 다 금테에
물렸으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 둘이라 인을 새김 같이 그 열 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가슴에는 흉배가 있는데 거기에 열두 보석을 넣고 그 보석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름을 항상 가슴에 품으시고 기억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 교역자가 제사장이고 또 우리 모든 성도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서 제사장의 일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몸으로 산제사를 늘 드려야 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을 길러나가야 함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라"고 하였는데 아론의 옷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아들들의 옷도 만들었습니다. 아들들의 옷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아들들의 옷을 만든 것입니다. 아론이 대제사장 이었고, 다음엔 그 아들들이 대제사장이 됩니다. 그러니까 후계자인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사람들의 옷도 준비를 했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부교역자, 부목사들, 전도사들, 신학생들 다 아론의 아들들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앞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사람들입니다.

본문 27-29절에 “그들이 또 직조한 가는 베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짓고 세마포로 두건을 짓고 세마포로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실로 짜서 세마포 고의들을 만들고 가는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아 띠를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짓고“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의 옷을 만들고 그 아들들의 옷도 만든 것을 보면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할 사람들을 잘 길러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을 잘 길러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성경말씀대로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음

본문 4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라고 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대로 바로 했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
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짓는 것을 비롯해서 제사장 생활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소에 모든 번제단, 속죄소에서 제사드리는 것 등의 일들을 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로 해야 됩니다. 명령대로 바로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3절에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성전을 준공한 다음에 보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명
령대로 성전 짓는 것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구를 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속죄소, 번제단, 진설병 상 다 잘 되었습니다. 또 제사장의 옷, 그 아들들의 옷 다 잘 됐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축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날 우리들도 영적성전을 잘 건축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속죄소에서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에 들어가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성령의 등불이 늘 비추어
서 성령의 빛 가운데 다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믿음의 생활이 성경말씀 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언제나 진실하고 성경 말씀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안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을 양성하는 것, 곧 우리가 신학교를 하려는 것도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아들들의 옷 짓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앞으로 교역자를 잘 길러서 하나님 앞에서 영적성전을 잘 이루어 나가도록 하여야 되겠습니다. 이제 기도할 때 신학교 문제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출애굽기 39:1-26 제사장의 옷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제사장의 옷
출애굽기 39:1-26

1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2그가 또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 3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에 섞어 공교히 짜고 4에봇을 위하여 견대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서로 연하게 하고 5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6그들이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7에봇 견대에 달아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8그가 또 흉패를 공교히 짜되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하였으니 9그것의 장이 한 뼘, 광이 한 뼘으로 네모 반듯하고 두 겹이며 10그것에 네 줄 보석을 물렸으니 곧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 첫 줄이요 11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2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13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 다 금테에 물렸으니 14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인을 새김같이 그 열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으며 15그들이 또 정금으로 사슬을 노끈처럼 땋아 흉패에 붙이고 16또 금테 둘과 금고리 둘을 만들어 그 두 고리를 흉패 두 끝에 달고 17그 두 땋은 금사슬을 흉패 끝 두 고리에 꿰어 매었으며 18그 땋은 두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19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두 끝에 달았으니 곧 그 에봇에 대한 안쪽 가에 달았으며 20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에봇 띠 윗편에 달고 21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을 떠나지 않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22그가 에봇 받침 긴 옷을 전부 청색으로 짜서 만들되 23그 옷의 두 어깨 사이에 구멍을 내고 갑옷 깃같이 그 구멍 주위에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24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그 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 25정금으로 방울을 만들어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석류 사이사이에 달되 26방울과 석류를 서로 간격하여 공직하는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내용이 아주 어렵지만 뜻은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대제사장의 옷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옷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에봇과 에봇 전대와 띠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흉패를 만들어서 가슴에 붙이고, 보석을 새겨 이스라엘 자손 열두 아들의 이름을 기록해서 견대에 달라는 것입니다. 에봇 받침 긴 옷을 또 만들고, 석류를 그 옷 가장자리에 수놓고, 석류 사이사이에 금방울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론과 아들들을 위해서 거룩한 옷과 속옷을 짓고, 세마포로 수건을 만들어서 씌우고, 또 빛난 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패를 만들어서 인을 새김같이 ‘여호와의 성결’이라고 패에 다 새겨서 머리 관 전면에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옷을 만들 때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했습니다.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되었더라고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본문 5절 마지막에도 있고, 7절, 21절, 29절, 31절에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1. 제사장의 옷과 에봇과 견대를 만듦

본문 1절에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었
습니다. 또한 대제사장인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습니다. 대제사장인 아론을 위해서 무엇으로 거룩한 옷을 만들었다고 했습니까?
청색, 자색, 홍색실로 거룩한 옷을 만들어서 아론에게 입힌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거룩한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청색, 자색, 홍색실로 거룩한 옷을 만
들었는데, 청색은 생명빛, 자색은 존귀, 홍색은 영광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존귀와 영광이 충만한 생명빛이 있는 제사장이 거룩한 옷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옷을 입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에 “촛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따고”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우리의 제사장으로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는 동시에 우리 성도들도 제사장이 되는 것 입니다. 교역자도 제사장이고 그 다음에 성도 전체도 다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장의 옷을 공부할 때, 생명 빛이 충만한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합당하게 섬기고, 본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에봇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본문 2절에 “그가 또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에봇을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에봇이라는 것은 조끼처럼 어깨를 가늘게 하
여 걸쳐 입는 것으로 앞치마와 비슷한 것입니다. 에봇을 앞치마 비슷하게 걸쳐서 제사장이 입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볼 때도 그것을 입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 나가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에봇을 입은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받고 명령대로 섬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3절에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에 섞어 공교히 짜고”라고 하였습니다. 금실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금을 종잇장과 같이 얇게 쳐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금을 얇게 쳐서 이것을 조금씩 오리면 실이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청색, 자색, 홍색실과 섞어 짜서 에봇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금은 성경에 믿음을 가리킵니다. 청색, 자색, 홍색실에 금을 섞어 짜다는 것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견대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본문 4-5절에 “에봇을 위하여 견대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서로 연하게 하고 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고 하였는데 에봇을 매는 띠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에봇을 입으려면 띠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띠를 만들어서 에봇에 다는데, 무엇으로 만들라고 했습니까?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붙여서 짰는데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한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그들이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에봇 견대에 달아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호마노라는 보석을 깎아서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같이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보석에 새겨서 견대에 달았습니다. 보석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서 어깨에 달았는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어깨에 메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신 것처럼, 우리도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의 나라
가 이루어지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어깨에 메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2. 흉패를 만듦

본문 8-14절에 “그가 또 흉패를 공교히 짜되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하였으니 그것의 장이 한 뼘, 광이 한 뼘으로 네모 반듯하고 두 겹이며 그것에 네 줄 보석을 물렸으니 곧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 첫 줄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 다 금테에 물렸으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인을 새김같이 그 열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으며”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흉패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흉패는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흉패는 가슴에 붙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크게 만들라고 했습니까? 장이 한 뼘, 사방 한 뼘, 이렇게 한 뼘씩 해서 흉배에 붙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가슴에 붙입니다. 여기에 보석 열두 개를 물려야 되므로 보석 세 개씩 네 줄로 해서 그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보석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넣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슴에 품고 잊지 않으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심

그것은 예수님께서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두 지파 의 이름이 다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 이름을 예수님께서 항상 가슴에 품고 있으며 잠시라도 성도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늘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는 그 젖 먹는 자식을 한 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그 어머니가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손바닥에 이름을 새겨서 항상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름을 어디에 새기셨습니까? 손바닥에 새겨서 항상 눈앞에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은 가슴에 있는 보석에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놓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보배입니다. 존귀한 보배인데 그것을 언제나 예수님의 가슴에 늘 품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피로 값 주고 사셨으니까 우리를 보배롭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기도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입니다. 이것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게으르고 불순종하고 죄만 짓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기도해주셔도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또 죄만 짓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항상 회개하고, 바로 믿으려고 하고, 또 힘써 기도를 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하려고 하고 또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기도해주시는 것이 효과가 납니다.

바로 믿으려고 하는데 미련해서 모릅니다. 또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신 기도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바른 것을 깨닫게 하고, 바로 인도해주고, 망하는 길로 가도 가시로 막고 담으로 막아서 못 가게하십니다. 그리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사막에 샘이 솟고, 또 황무지에도 꽃이 피게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기도해주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가슴에 품고 기억하고 이름을 각자마다 다 아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에게 빌립보서 1장 7절 상반절에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마음에 언제나 품고 기도하는 것과 같이, 교역자와 모든 성도들도 교인들을 이렇게 늘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은 전에 우리에게 좀 배운 사람 같습니다. 이분이 다른 데로 가서 몇 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목사인 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해 주는 것도 몰랐고 보지도 못하고 몇 십 년 동안 안 만났는데 매일 기도해준다고 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늘 마음에 품고 기도해 주십니다. 열두 지파의 이름을 보배와 같이 여기듯이 우리 이름을 항상 기억하고 기도해주고 계십니다.

본문 14-21절에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인을 새김같이 그 열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으며 그들이 또 정금으로 사슬을 노끈처럼 땋아 흉패에 붙이고 또 금테 둘과 금 고리 둘을 만들어 그 두 고리를 흉패 두 끝에 달고 그 두 땋
은 금 사슬을 흉패 끝 두 고리에 꿰어 매었으며 그 땋은 두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두 끝에 달았으니 곧 그 에봇에 대한 안쪽 가에 달았으며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에봇 띠 윗편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을 떠나지 않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정금으로 사슬을 만들어 노끈처럼 땋아서 흉패에 붙이라는 것입니다. 정금으로 사슬을 만들어 노끈처럼 땋아서 가슴 흉패에 붙이고, 또 금테에 둘러 금 고리 둘을 만들어서 그 두 고리를 흉패 두 끝에 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금 리 둘을 또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금 고리를 둘씩 몇 번 만들었습니까? 본문 16절에 금 고리 둘, 또 19절에 금 고리 둘, 또 20절에 금 고리 둘씩을 만들어서 그 정금으로 사슬을 노끈 같이 땋은 것을 흉패에 붙이고 거기다 금 고리를 달아서 사슬을 흉패 두 끝에 꿰어 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20절에는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서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에봇 띠 윗편에 달고”라고 하였습니다. 어깨의 견대에다 금 고리 둘을 가지고 에봇 띠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 윗편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끼워 흉패와 에봇 그 고리에 끼워서 합하라는 말입니다.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을 떠나지 않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일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공교히 자를 것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잘 짜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대충하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한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금 고리도 명령대로 만들고 금 사슬도 명령대로 만들며, 땋아서
또 노끈처럼 하는 것도 명령대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강 하는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금 고리를 만들어라, 금실을 만들어라, 금 사슬을 만들어라, 노끈처럼 땋아라, 견대 위에 붙여라, 또 금 고리 둘을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일이 복잡하지
만 그대로 다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힘들어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 대로 믿는 일을 다 했습니다.

3. 에봇 받침에 석류를 수놓고 그 사이에 금방울을 달라고 함

본문 22-24절에 “그가 에봇 받침 긴 옷을 전부 청색으로 짜서 만들되 그 옷의 두 어깨 사이에 구멍을 내고 갑옷 깃 같이 그 구멍 주위에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그 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라고 하였습니다. 에봇 받침 긴 옷을 전부 청색으로 짜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에봇을 입는 것입니다. 에봇 받침은에봇 밑에 입는 긴 옷으로 발까지 거의 내려가는 긴옷입니다. 또 청색으로 만들었는데 청색은 생명빛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에봇 받침 긴 옷은 생명의 역사가 있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
기라는 것입니다.

그 옷 맨 아래 가장자리에다가 석류를 수놓으라고 했습니다. 석류를 옷 밑단 가장자리에 하나씩 수놓는데, 석류와 석류 사이에 금방울을 만들어서 달라고 했습니다. 에봇 받침은 청색 두루마기처럼 길어서 발에 거의 끌리도록 했는데, 그 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 석류사이에 무엇을 달라고 하였습니까? 금방울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걸어 다닐 때 무슨 소리가 나겠습니까? 금방울 소리가 납니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릴 때 밖에 있는 백성들이 그 금방울 소리를 듣고 경성하여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이고 제사하는 일에 협조를 하였습니다. 금방울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하는 것을 알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금방울을 달라는 것입니다.

석류는 진리를 가리킴

아가서에 보면 석류는 진리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겉이 단단합니다. 석류는 껍질은 단단하지만 그래도 속은 아주 답니다. 여러분들은 석류를 먹어 보았습니까? 미국에서 어느 곳을 가니까 석류를 사다 주었는데 그 크기가 아주 크고 주먹만 했습니다. 크기가 사과만
한데 겉이 단단해서 먹다가 이가 부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칼로 쪼개서 속의 것만 먹었는데 그 속이 아주 달았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는 겉은 단단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달다는 것입니다. 아가서에는 진리를 석류로 많이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도 아마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느라고 석류를 새긴 것 같습니다.

금방울은 아름다운 믿음의 행위를 가리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진리의 말씀이 있어야 되고, 그 말씀대로 섬겨야 됩니다. 그리고 석류 사이사이에 방울이 있지 않습니까?
방울에서는 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아마 행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행위 말입니다. 금방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니까 진리의 말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에 발에 그 석류가 걸리도록 한 것입니다. 에봇 받침은 길지만 땅에 끌리게는 안했을 것 같습니다.

요새 옷을 땅에 질질 끌리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것이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옷을 땅에 끌리게 입고 밖에 다니다가 집안에 그대로 들어갈 것 아닙니까? 그러면 밖이나 화장실에 갔던 것을 다 묻혀가지고 집 안에 들어가니 그 집안이 지저분하게 되지 않겠
습니까? 우리 기도원에서도 어떤 사람은 발에 끌리는 의복을 입고 다닙니다. 또 요새 사람들을 보면 남자도 그렇게 바지를 질질 끌리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 긴 바지를 자르면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래서 나는 양복 맞추는 곳에 가면 짧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의복을 짧게 입는다고 합니다. 짧게 입었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합니까? 길바닥 쓸고, 화장실도 다 쓸고 돌아 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무엇 하러 의복을 길게 입느냐는 것입니다. 길게 한다고 누가 알아줍니까?
제사장의 옷은 발잔등에 달락 말락 했을 것 같습니다. 발잔등에 닿으면 그것은 땅에 끌리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어갈 때에 석류도 보이고, 또 방울 소리도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석류에 비유하면, 말씀의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단 것이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행할 때에는 좋은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소식이 들립니다. 믿음의 성도의 발걸음에 아름다운 소식이 있어야 됩니다. 좋은 소리가 들려야 되는 것
입니다. 성도가 걸어갈 때에 좋은 소리가 들려야합니다. 성도는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좋은 소리가 들려와야 합니다. 성도의 하는 모든 일이 좋은 소식과 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걸어가는데, 좋은 소리가 나지 않고, 더러운 소리, 남에게 싫은 소리, 다른 사람에게 비방 받는 발걸음 소리가 나면 안 됩니다. 성도의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좋은 소식을 주고, 도와주고, 다른 사람이 듣기 좋게 되어야 합니다. 아가서에 성도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로 듣기가 좋다고 했습니다. 성도의 소리도 듣기가 좋고, 성도의 걸어가는 발걸음도 듣기가 좋아야 됩니다. 성도가 세상 떠났을 때 잘 죽었다, “못되게 굴더니 잘 죽었다”하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참 믿음 잘 지키다가 세상 떠났다”는 좋은 소리가 들려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긴다고 하였습니까?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요새는 소가죽으로 구두를 만든다고 하는데, 소가 얼마나 많으면 우리 사천만 국민이 대부분 소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다닙니까? 또 미국인들은 2억 명인데. 많은 사람들이 소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서 신고 다닙니다, 또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구두를 신고 다니는데 중국이 십삼 억, 인도가 십 일억,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몇 명입니까? 일억 육천 정도가 되고, 일본이 일억 이천 정도인데 그 사람들이 대부분 소가죽으로 신을 만들어
신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혁대를 소가죽으로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잠바도 소가죽으로 만든 것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보통 신발뿐만 아니라 무릎에 까지 긴 부 소가죽으로 만든다는데, 그러니 소가죽을 얼마나 많이 썼겠습니까? 그래도 소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것이, 좋은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좋은 이름을 남겨야 됩니다. “믿음을 잘 지키다가 세상을 떠났다, 참 귀한 성도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야 됩니다. 또한 성도가 한 번 갔다 오면 좋은 소리가 들려와야 됩니다. “그 성도가와서 우리가 이렇게 잘 됐고, 말씀을 잘 가르쳐주어서 모든 걸 바로 잘했다”하는 좋은 소리가 들려와야 됩니다.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실행하면 금방울 소리와 같이 좋은 소리가 들려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전할 수 있습니다. 좋은 소리를 전해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됩니다.

자기만 잘 했다고 하고, 남한테 가서 싫은 소리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욕먹고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의복도 점잖게 입고 다녀야 합니다. 어디서 이상한 것, 무슨 새빨간 마귀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 뒤에서 손가락질 합니다. 걸어가는 발자국 마다 남한테 욕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합니까? 보통으로 적당하고 단정한 것을 입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옷을 입지 말고 사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밍크 오바 하나에 얼마나 한다고 합니까? 요새 좋지 않은 것은 얼마 안 하지만 좋은 것은 몇 천 만원이나 한답니
다. 좋은 것 얼마나 합니까? 좋은 것은 수 천 만원 한답니다. 그런데 수 천 만원짜리 옷 입고 다니면 무엇 합니까? 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사람은 남이 잘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옷은 보통으로 입고 다녀야합니다. 의복은 다른 사람에 눈
에 띄지 않게 파묻혀야 됩니다. 그 시대에 파묻히는 의복이 돼야 됩니다. 옷을 두드러지게 입지 말고, 행동도 남에게 두드러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금방울 같이 걸을 때마다 아름답고 좋은 소리가 들려오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견대에 달아서 항상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십니다. 제사장이 견대에 매고 어깨에 호마노를 깎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매고 다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어깨에 메고 책임을 지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에봇 받침 긴 옷을 청색으로 만들어서 옷 끝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 석류 사이사이에 금방울을 달아서 좋은 소리가 나게 하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행함으로 아름답고 좋은 소리를 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출애굽기 38:21-31 성막 건축 책임자들과 건축 비용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막 건축 책임자들과 건축 비용
출애굽기 38:21-31

21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대로 계산하였으며 22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 23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은 그와 함께하였으니 오홀리압은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 놓은 자더라 24성소 건축 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이십 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25조사를 받은 회중의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달란트와 일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26조사를 받은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대로 매인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27은 일백 달란트로 성소의 판장 받침과 문장 기둥 받침 합 일백을 부어 만들었으니 매 받침에 한 달란트씩 합 일백 달란트요 28일천칠백칠십오 세겔로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를 싸고 기둥 가름대를 만들었으며 29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사백 세겔이라 30이것으로 회막문 기둥 받침과 놋 단과 놋 그물과 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31뜰 사면의 기둥 받침과 그 문장 기둥 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사면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더라

1. 성막 건축 책임자들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령대로 장부를 잘 기록함

본문 21절에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대로 계산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물목을 기록했다고 하였습니다. 성막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드린 재료가 있는데 그의 대한 물목을 자세히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인 이다말이 기록했는데, 모세의 명령대로 하였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회계장부와 같은 것입니다. 성막은 요새로 말하면 성전입니다.
즉 성전 건축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정성껏 받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또 레위 사람을 통해서 가져 왔습니다. 물목에 대해 아론의 아들이 다말이 모세의 명령대로 장부에 잘 기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은 장부에 잘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틀림없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잘 기록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로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유다 지파 훌의 손자인 브사렐이 모세가 명한 모든 것을 만듦

본문 22절에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라고 하였습니다. 브사렐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브사렐은 유다 지파 훌의 손자라고 하였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들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출 17:12). 그 훌의 손자가 이렇게 성막의 물건을 맡아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훌이 모세의 손을 받들어 줬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습니다. 손자까지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나가는 사람, 또 특별히 하나님의 종의 팔을 붙들어 준 사람은 복을 받아서 그 손자까지 이렇게 하나님의 성막 물건을 잘 만들게 되었습니다. 훌이 모세의 손을 직접 들어 준 것이 아니고 받들어 주는 것만 했습니다. 그래도 그 손자까지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성서의 모든 기구를 만드는 책임자가 됐습니다.

구레네 시몬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나갔지만 그 시몬의 아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도 자녀가 복 받았습니다. 부인도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하였습니다. 루포는 시몬의 아들인데, 바울이 그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나갔어도 부인과 아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 하든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억지로 했어도 복을 받습니다.

훌의 손자가 복 받아서 하나님의 성막 만드는데 귀히 쓰인 것을 보면, 부모가 신앙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 나가면 그 자손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손이 일시적 탈선되는 수가 혹시 있습니다. 부모가 신앙을 잘 지켜도 일시적으로 탈선 되는 아들이 더러
있습니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래도 먼 장래를 보면 어거스틴도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탕자도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믿음을 잘 지키면 자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늘 기도해줬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기도를 많이 해 줬기 때문에 그 기도한 것이 하나님 앞에 쌓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그 자녀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 조각하며 수를 놓음

본문 23절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은 그와 함께하였으니 오홀리압은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 놓은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오홀리압이 있었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막에 무엇을 새기는 것이 많았는데, 그가 여러 가지 조각이나 새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물건 만들 때에 기술 있는 사람으로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를 잘 놓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내 주셔서 성막 만드는 일을 잘 하게 된 것입니다. 적재적소인 것입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쓴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썼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잘 해 나갔던 것입니다.

무능한 사람이나 무엇을 만들지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 놓으면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잘 만드는 사람, 또 조각을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궤를 싸고 서랍을 만들고, 금으로 여러가지를 만들어야 됩니다. 또 기둥 꼭대기에 머리를 만들고, 여러 가지를 조각을 해야 되는데, 기술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쓴 것입니다. 자기의 기술로 하나님께 봉사한 것입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로 봉사하고 또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맡는 것입니다. 여기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훌의 손자 브사렐입니다. 브사렐이 그 모든 것을 만드
는 책임자인 것입니다. 기술자는 누구였습니까? 오홀리압입니다.
우리도 자기의 모든 기술과 재능을 다 바쳐서 하나님 일에 충성해야 되겠습니다. 누구나 각각 재능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다 있는데, 자기의 재능을 다 바쳐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충성이 중요합니다. 충성된 사람이라야만 하나님께서 쓰십니
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충성된 사람이라서 하나님께서 쓰셨다고 하였습니다(느 7:2). 우리가 진실하고 충성되고 또 재능을 다 써서 자기의 모든 재능을 기울여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2. 건축비로 드린 금, 은, 놋의 중수

성소 건축 비용으로 금 29달란트와 730세겔을 바침

본문 24절에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이십 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소 건축에 든 비용이 금 이십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입니다. 한 달란트는 세겔로는 삼천 세겔이고, 데나리온으로는 육천 데나리온입니다. 금을 가져다가 성소를 짓는데 이십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요새 근 수로 말하면 한 달란트는 백 근 쯤 됩니다. 그러므로 이십 구 달란트라면 상당히 많은데, 지금 금이 이천구백 근 쯤 든 것입니다. 하나님께 많이 바쳤습니다. 이렇게 많은 금을 건축비용으로 바쳐서 하나님의 성소 모든 기구를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금을 놔두었다가 무엇에 쓰겠습니까? 이런 때 바치는 것입니다. 금을 집에 둬 봐야 아무쓸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하늘나라에 쌓는 것이고, 하늘나라에 보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바쳐서 성소의 일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회중이 은 100달란트와 1775세겔을 바치고

각 사람마다 반 세겔씩 바침

본문 25절에 “조사를 받은 회중의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달란트와 일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회중이 드린 은은 얼마입니까? 회중이 드린 은은 일백 달란트와 또 일천칠백칠십오 세겔이라고 하였습니다. 은도 많이 바쳤습니다. 한 달란트가 백 근쯤 되니까 일백 달란트면 약 만근쯤 됩니다. 이렇게 많은 은을 회중들이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일은 모든 회중, 즉 성도들이 바쳐서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지, 장사하고 사업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을 보면 연보하는 것이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연보하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도 짓고, 다른 모든 것도 하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이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위해서 연보하는 것은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달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쌓는 것이기 때문에 연보하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연보를 자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연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안하면 남아있겠습니까? 연보
안하는 사람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연보 한 사람은 그 연보한 것이 하늘나라에 다 남아 있습니다. 일백 달란트와 또 일천칠백칠십오 세겔을 연보를 해서 하나님의 성소 건축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26절에 “조사를 받은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대로 매인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사를 받은 사람이 이십 세 이상으로 603,550명인데, 한 사람이 얼마씩 바쳤다고 하였습니까? 은 반 세겔씩 바쳤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습니다. 부자라고 더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의 생명이나 가난한 사람의 생명이 같기 때문에 한 사람에 반 세겔씩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반 세겔씩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17:27). 반 세겔씩 바치는 것이 성전세입니다. 이것은 다
같습니다. 부자라고 더 내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다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위해서 반 세겔씩 바쳤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전에서 비용으로 쓴 것입니다.

본문 27절에 “은 일백 달란트로 성소의 판장 받침과 문장 기둥 받침 합 일백을 부어 만들었으니 매 받침에 한 달란트씩 합 일백 달란트요”라고 하였습니다. 은 일백 달란트로 성소의 판장과 문장 기둥을 위해서 받침을 만들었는데, 매 받침에 은 한 달란트씩 들였습니다. 하
나에 한 달란트씩이므로 일백 달란트를 들여서 받침 일백 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일천칠백칠십오 세겔로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를 싸고 기둥 가름대를 만들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은 1775세겔을 가지고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를 싸고 기둥 가름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다 기술자가 만드는 것입니다. 기술자가 누구입니까? 오홀리압입니다. 총 감독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브사렐입니다. 기술자가 있고 감독도 다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만들 수 있었습니다.

놋 70달란트와 2400세겔을 바침

본문 29-31절에 “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사백 세겔이라 이것으로 회막문 기둥 받침과 놋 단과 놋 그물과 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뜰 사면의 기둥 받침과 그 문장 기둥 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사면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놋을 바쳤습니다. 첫째는 금을 바쳤고, 그 다음에는 은을 받쳤고, 세번째는 놋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요새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다 성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제일 좋은 것이 금인데, 금을 제일 먼저 바쳤습니다. 그 다음에 은을 바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놋을 바쳤습니다. 놋은 72달란트와 2400세겔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놋을 가지고 성문 성막 문 기둥 받침과 또 놋 단과 놋 그물을 만들었습니다. 놋 그물은 번제단 중간에 불 피는 곳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또 모든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또 본문 31절에 “뜰 사면의 기둥 받침과 그 문장 기둥 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사면의 모든 말뚝
을 만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막에는 이렇게 많은 재료, 즉 금이나 은이나 놋으로 기둥이나 기둥 받침 등 모든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성막 치는 것은 세마포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서 성막을 짓고, 또 그 뜰 휘장도 이렇게 만들어서 쳤습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성막을 지어 모세가 그들을 축복함

출애굽기 39장 43절에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드는 일을 다 마치고 보니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
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된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잘 순종하여 성막을 잘 지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금과 은과 놋을 정성껏 자기 힘대로 바친 것입니다. 은 반 세겔 바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고, 그 이외에도 금과 은과 놋을 바친 것입니다. 정성껏 바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성막의 일이 잘 되었는데, 그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이것이 귀중합니다. 우리도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명령대로 성경에 맞춰 믿어야 되고, 성경대로 모든 것을 해야 되고, 성경에 맞는 모든 언행 심사와 성경에 맞는 행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을 하다가는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하는 사람의 편이십니다. 하나님께 자기편이 되게 해 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성경대로 안하면서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는 악한 생각입니다. 성경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하나님이고 그 사람 편이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또 모세의 손을 붙들어 준 훌의 손자가 하나님께 복 받았다는 것이 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잘 받들어 나가면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일시적으로 탈선이 되어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안에 다 있습니다. 그물에 쌓여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손이 일시적으로는 잘못되어도
자기만 하나님께 충성을 잘하면 그 후대가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 해 하나님께 바친 물목을 누가 기록하였습니까? 그 일에 아론의 아들들을 한 몫 쓰셨습니다. 물목 장부를 잘해서 틀림없이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경대로 되었다고 하였
습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야만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8:1-20 성막 기구들과 뜰을 만듦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막 기구들과 뜰을 만듦
출애굽기 38:1-20

1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오 규빗이요 광이 오 규빗이라 네모 반듯하고 고는 삼 규빗이며 2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단과 연하게 하고 단을 놋으로 쌌으며 3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4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두되 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5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6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7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었더라 8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9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편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10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1그 북편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
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2서편에 포장은 오십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3동으로 동편에도 오십 규빗이라 14문 이편의 포장이 십오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5문 저편도 그와 같으니 뜰문 이편, 저편의 포장이 십오 규빗씩이요 그 기둥이 셋씩, 받침이 셋씩이라 16뜰 사면의 포장은 세마포요 17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18뜰의 문장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짰으니 장은 이십 규빗이요 광 곧 고는 뜰의 포장과 같이 오 규빗이며 19그 기둥은 넷인데 그 받침 넷은 놋이요 그 갈고리는 은이요 그 머리 싸개와 가름대도 은이며 20성막 말뚝과 뜰의 사면 포장 말뚝은 다 놋이더라

1. 번제단과 단의 기구들을 만듦

성막 뜰의 모습

본문은 성막 뜰과 그 안에서 행하는 일에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성막 뜰 안에 성막이 있습니다. 성막 뜰은 성막보다 크게 담을 둘러 친 것인데, 길이가 백 규빗이고, 전면이 오십 규빗, 후면이 오십 규빗입니다. 한 규빗이 한자 반 씩이고, 약 이분의 일 미터정도 됩니다. 두 규빗을 일 미터로 하면 성막 뜰의 길이가 백 규빗이므로 약 50미터가 되는 것입니다. 동쪽면과 서쪽면은 길이가 오십 규빗이므로 25미터 정도 됩니다. 그러므로 동서로 길이가 50미터, 남북으로 25미터인 직사각형의 모양입니다. 그리고 방향은 동으로 향하였습니다.
즉 동쪽에 문이 있습니다. 문의 폭은 이십 규빗입니다. 그 성전 뜰 안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을 만듦

본문 1-2절에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오 규빗이요 광이 오 규빗이라 네모 반듯하고 고는 삼 규빗이며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단과 연하게 하고 단을 놋으로 쌌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와 비슷한 단단한 가시나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번제단과 기구를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는데 광이 오 규빗이라고 하였습니다. 오 규빗은 일곱 자 반이며, 장과 광이 같습니다. 네모 반듯하다는 것입니다. 고는 삼 규빗으로 네자 반입니다. 네 자 반이니까 일 미터 반 가까이 됩니다. 그리고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었습니다. 네 뿔을 단과 연하게 하고 단을 놋으로 쌌습니다. 뿔은 권세를 가리킵니다.

번제단은 하나님 앞에 번제 드릴 소나 양을 잡아서 단에다 태우는 곳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번제물을 잡아 번제를 드리는 일은 귀중한 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번제 드리는 정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제물은 구약 시대에는 소나 양으로 했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번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상징하는 제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번제물로 불 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희생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제사 드려지실 것을 가리키는 것 입니다.

단의 기구를 만듦

본문 3절에 “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물로 드리라고 하셨는데,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주신 것을 항상 감사해야겠습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제단 앞에 번제물로 바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제단에 번제를 드리는 기구들인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본문 4-5절에 “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두되 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단을 위하여 그물을 만들었습니다. 놋 그물을 만들어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두되 단 절반 에 오르게 하고, 절반 즈음에다가 놋 그물을 연결해서 불을 피우고, 그 위에다 번제물을 태우는 것입니다. 다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채를 꿰어 들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6-7절에 “채를 조각 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단의 속이 비게 만들고 다 놋으로 쌌습니다. 놋쇠는 견고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조각목은 가시나무로서 환난 받는 성도를 상징하고, 단단하고 견고한 것을 상징합니다.

2. 물두멍을 만듦

물두멍의 용도

본문 8절에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은 물통입니다. 물통을 만들었는데,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수족을 씻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30장 18-19절에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라고 하였습니다. 그 물로 아론과 아들들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수족을 씻고, 깨끗하게 하고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두멍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두멍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과 차이점

그런데 솔로몬 때의 물두멍은 또 다릅니다. 역대하 4장 6절에 “또 물두멍 열을 만들어 다섯은 우편에 두고 다섯은 좌편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의 씻기를 위한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물두멍 열 개를 만들었습니다.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서 다섯은 우편에 두고 다섯은 좌편에 두어서 번제에 속한 물건을 그 곳에서 씻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서 그 번제에 대한 모든 것을 씻게 만든 것입니다.

또 솔로몬 성전에는 놋 바다가 있었는데, 놋 바다는 상당히 큰 것입니다. 그 놋 바다의 물은 무엇에 썼다고 했습니까?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놋 바다의 둘레는 삼십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삼십 규빗이면 얼마나 큽니까? 둘레의 길이가 십 미터가 넘도록 놋 바다가 크고 물은 삼천 밧을 담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놋바다의 물은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서는 놋 바다의 물을 그릇으로 떠서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은 것 같습니다. 그대로 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놋 바다에 그대로 여러 사람이
씻으면 얼마나 더럽겠습니까? 놋 바다에 물을 많이 담아 놓고, 물을 떠서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고 제사 드린 것 같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은 번제물의 속한 모든 것을 씻은 것 같습니다.

모세시대 성막에서는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기 위한 물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물두멍과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은 용도가 다릅니다. 성막의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수족 씻는 곳이고,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은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을 씻는 곳이라는 것입
니다. 솔로몬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씻는 물을 담기 위해 놋 바다를 따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성막에는 놋 바다가 없었습니다. 다만 물두멍을 만들어서 제사장들이 제사드릴 때 수족을 씻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깨끗하게 씻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라는 것입니다.

놋 거울로 물두멍과 받침대를 만듦

또 물두멍과 그 받침대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거울을 놋으로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놋에 얼굴이 비치니까 놋으로 거울을 만들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거울로 물두멍을 만들었겠습니까? 보통 놋으로 만들어도 되는데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는 것은, 거울을 보고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는 깨끗하게 씻고 제사 드리라는 뜻으로 거울로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모든 더러운 것을 닦아내고 깨끗이 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는 수족을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한 몸과 마음과 수족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회개하며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상 제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3. 뜰을 만듦

본문 9-20절에 “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편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그 북편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
는 은이며 서편에 포장은 오십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동으로 동편에도 오십 규빗이라 문 이편의 포장이 십오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문 저편도 그와 같으니 뜰 문 이편, 저편의 포장이 십오 규빗 씩 이요 그 기둥과 받침이 셋씩이라 뜰 사면의 포장은 세마포요 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뜰의 문장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짰으니 장은 이십 규빗이요 광 곧 고는 뜰의 포장과 같이 오 규빗이며 그 기둥은 넷인데 그 받침 넷은 놋이요 그 갈고리는 은이요 그 머리 싸개와 가름대도 은이며 성막 말뚝과 뜰의 사면 포장 말뚝은 다 놋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뜰을 넓게 만들었습니다. 남편과 북편 면의 길이가 백 규빗으로 약 50미터씩이고, 동편과 서편에는 오십 규빗이 되게 옆으로 길게 만들었습니다. 성막은 그 안에 있는데 동향입니다. 뜰은 세마포 포장으로 빙 둘러쳤습니다. 위아래의 길이가 백 규빗인데, 기둥을 스무 개씩 세우
고 그 곳에다 다는 것입니다. 기둥의 받침도 이십 개입니다. 기둥 받침이 있어야 기둥이 넘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포장을 둘러치는 높이가 오 규빗이라고 했는데, 일곱 자 반, 즉 이 미터가 넘습니다. 이렇게 세마포 포장으로 빙 둘러쳐서 하나님의 성소를 보호해야 됩니다. 이 뜰에서 번제물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귀중한 뜰입니다.

성소와 뜰이 있고,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은 제사장이 뜰에서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둥과 그 받침은 놋이고,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뜰에 동편에 문이 있었는데 폭은 이십 규빗으로, 문장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만들었습니다. 문의 기둥이 넷이며 받침도 넷이고, 문에 거는 갈고리는 은이라고 했습니다. 머리 싸개와 문의 가름대도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성막 말뚝과 뜰의 사면 포장 말뚝과 기둥과 받침은 다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시 하신 식양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법대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출애굽기 36:1-38 헌신하여 성막을 지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헌신하여 성막을 지음
출애굽기 36:1-38

36:1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들,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성소의 섬기는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만들어야 한다." 

36: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 곧 여호와께서 그들의 마음에 지혜를 주셔서 그 일을 하려고 원하는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을 불렀으며, 

36:3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의 섬기는 일에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모든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백성들이 아침마다 계속 자원하는 예물을 모세에게 가져오므로, 

36:4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각자 하는 일을 멈추고 와서, 

36:5 모세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을 수행하는 데에 쓰고도 남을 만큼 백성들이 많이 가져왔습니다." 하였다. 

36:6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선포하기를 "남자든 여자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더 이상 만들지 마라." 하니, 백성들이 가져오기를 그쳤으며, 

36:7 가지고 있는 재료는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고 충분했다. 

36:8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이 모두 열 폭의 천으로 성막을 만들었는데, 곧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주색, 홍색 실로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 만들었다. 

36:9 한 폭의 길이는 이십팔 규빗이며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치수가 같게 하였다. 

36:10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였으며, 또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여, 

36:11 첫 번째 연결된 폭들의 끝에 있는 폭의 가장자리에 청색 고리들을 만들고, 두 번째 연결된 폭들의 끝 폭의 가장자리에도 그렇게 만들었다. 

36:12 그 연결된 한 폭에 고리 오십 개를 만들고 두 번째 연결된 한 폭의 가장자리에도 고리 오십 개를 만들어 그 고리들이 서로 마주 보게 하였고, 

36:13 금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어 그 갈고리들로 그 천의 폭들을 서로 연결시켜 한 성막이 되게 하였다. 

36:14 그 성막을 덮는 장막을 염소 털로 만들되, 그것을 열한 폭으로 만들었으며, 

36:15 각 폭의 길이는 삼십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열한 폭의 치수를 모두 같게 하여 

36:16 다섯 폭을 서로 연결시키고, 또 여섯 폭을 서로 연결시켰다. 

36:17 연결된 마지막 폭의 가장자리에 고리 오십 개를 만들고, 두 번째 연결된 마지막 폭의 가장자리에도 고리 오십 개를 만들었고, 

36:18 놋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어 이 두 쪽의 폭들을 연결하여 한 천막이 되게 했으며, 

36:19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천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었다. 

36:20 그가 아카시아 나무로 성막에 세울 널빤지들을 만들었는데, 

36:21 각 널빤지의 길이를 십 규빗, 너비를 일 규빗 반으로 하고, 

36:22 각 널빤지에 두 촉을 만들어 서로 잇대어지게 세웠으니, 이와 같이 성막의 모든 널빤지들을 만들었다. 

36:23 성막을 위해 널빤지들을 만들되 남으로는 남쪽을 위해 널빤지 이십 개를 만들고, 

36:24 그 널빤지 이십 개 밑에 은 받침 사십 개를 만들어서 한쪽 널빤지 밑에 두 개의 받침이 그 널빤지의 두 촉을 받치게 하고, 다른 한쪽 널빤지 밑에도 두 개의 받침이 그 널빤지의 두 촉을 받치게 했다. 

36:25 성막의 다른 쪽, 북쪽을 위해서도 널빤지 이십 개를 만들고, 

36:26 또 은 받침 사십 개를 만들어서 이 널빤지 밑에도 두 개의 받침이, 그리고 저 널빤지 밑에도 두 개의 받침이 받치게 했다. 

36:27 성막의 뒤쪽인 서쪽을 위하여 널빤지 여섯 개를 만들고 

36:28 성막 뒤쪽의 두 모퉁이를 위하여 널빤지 둘을 만들되, 

36:29 그것들이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겹으로 되어 윗고리에 연결되게 하였고, 그 두 모퉁이를 다 이와 같이 만들었다. 

36:30 널빤지 여덟 개에, 각 널빤지 아래마다 받침 두 개가 있어 그 받침이 모두 은받침 십육 개였다. 

36:31 그가 아카시아 나무로 성막의 한쪽 널빤지들을 위해 빗장 다섯 개를 만들고, 

36:32 성막의 다른 쪽 널빤지들을 위해서도 빗장 다섯 개를 만들었으며 성막의 뒤쪽인 서쪽 널빤지들을 위해서도 빗장 다섯 개를 만들고, 

36:33 널빤지들 가운데에 끼워질 그 중간 빗장을 만들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이어지도록 하였다. 

36:34 그 널빤지들을 금으로 입히고 그 빗장들을 끼울 고리들을 금으로 만들었으며 그 빗장들도 금으로 입혔다. 

36:35 그가 청색, 자주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휘장을 만들고, 정교하게 작업하여 그 위에 그룹들을 수놓았다. 

36:36 아카시아 나무로 네 기둥을 만들어 금으로 입히고 그 기둥들의 갈고리들을 금으로 만들었으며 그 기둥들의 네 받침도 은을 부어 만들고, 

36:37 청색, 자주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를 놓아 짜서 장막 출입구를 위해 막을 만들었다. 

36:38 또 기둥 다섯과 기둥들의 갈고리들을 만들고 그 기둥들의 머리와 가름대를 금으로 입혔으며 그 기둥의 다섯 받침은 놋으로 만들었다.


1. 하나님께 봉사하라

본문 1절에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명령대로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 명령대로 성소의 일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 쓰여져야 합니다. 성소에 사용되어야 될 텐데 성소의 일하는 데는 쓰지 않고 사사로운 개인적인 일에만 사용한다고 하면 그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못 받습니다.
군대에서 기술을 가르쳐준 것은 군대의 일을 잘하라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군대의 일은 잘하지 않고 그 기술을 가지고 살살 뒤에서 자기 일만 하고 돌아다닙니다. 그 사람은 군대 장관에게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주신 것은 성소와 하나님의 일을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이기주의로 사용하거나 세상 일에만 사용이 되어도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 일을 하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 일 잘 되게 하려고 세상 일 하는 것입니다. 돈 벌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일 잘 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돈 벌어서 세상 것 잘 쌓고 자손만대, 대대손손 돈으로 살 줄 아는 것은 곰이 땅에서 먹을 것이 나오는 줄 알고 늘 살다가 아주 허리 굽어 죽는 것과 같은 것으로 마지막에는 부질없는 것입니다. 돈은 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복받습니다. 하나님께 이용되는 것, 이것이 제일 아름다운 것입니다. 영적 성전 건축하는 데 사용하고, 복음 운동에 사용이 되면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대로 순종을 해서 하나님의 성소에 일이 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밥 잘할 줄 아는 사람은 그 기술을 하나님 일을 위해 써먹으라는 것입니다. 사경회 할 때 나와서 밥을 하고 기도원에 와서도 봉사하면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술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청소 잘하는 기술 주신 것은 하나님 일을 위해서 청소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용되는 사람이 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개인적인 사업에만 사용하면 안 됩니다. 기술자들은 그 기술을 가지고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하나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어렸을 때 교회 다닐 때 예배당 일을 우리가 다 맡아 했습니다. 전문 기술자는 못 되지만 그래도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그래서 예배당 고칠 것이 있으면 우리가 다 수리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교회에 늘 있어서 어디가 고쳐야 할 곳인지 목사님, 장로님들 보다 더 잘 알아서 다 고쳐놓았던 것입니다. 교회가 낡으면 새로 짓기도 했는데, 이렇게 재주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게 있으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이용을 당할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 일 하는 것이 복입니다. 또 그것만 하늘나라에 가면 남습니다. 자기를 위해 일한 것은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봉사한 그것만 남습니다. 예배당을 위해 일할 때 돈 받고 한 것이 아닙니다. 벽돌을 지고 나르며 예배당 짓는 몇 달 동안 일할 때도 아무 보수 없이 봉사합니다. 돈 한 푼 안 받고 일합니다. 몇 달 동안 무료로 벽돌을 지고, 목수일 할 줄 아는 사람은 목수 일 하고, 쌓을 줄 아는 사람은 쌓고, 다릴 줄 아는 사람은 다리면서 예배당을 완성했습니다. 그 기술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이용당했습니다.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술 있으면 기술,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십시오. 돈 받을 생각 하지 말고 무료로 하십시오. 봉사하십시오. 글 쓸 줄 아는 사람은 글을 쓰고, 편집할 줄 아는 사람은 편집하고 사진 찍을 줄 아는 사람은 사진 찍는 일 하면, 전문적으로 할 줄 몰라도 하나님을 위한 정성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옛날에 등사라고 하는 것을 제가 많이 해 보았는데 그것도 요령을 알아야 합니다. 잉크 넣는 법, 롤러에 묻히는 법, 미는데 압력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한 경험도 중요합니다. 봉사할 마음으로 하다 보니 등사 전문가가 된 것
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을 위해서 이용당해야 합니다. 또 수도 고치는 것, 떨어진 성경책 고치는 것 등도 썩 잘 했습니다. 남의 떨어진 성경 책을 우산살로 두드리면서 꿰어 고쳐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기술 사용한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써먹은 것입니다. 기술이 있는데 돈 버는 데만 사용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썩어진 기술입니다. 썩어지고 맙니다. 하나라도 똑바로 하면 하늘나라에 상달이 됩니다. 기술도 자꾸 발전합니다.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아서 먼저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합니다. 전기 기술 있는 사람은 예배당 와서 전기 다 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기 다루는 기술을 주셨는데 돈 벌려고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 전기 하나 고치지 못하면 썩어지는 기술입니다. 전기 기술
있는 사람은 교회 전기부터 잘 해 놓고 돈 받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음향 기술, 수도 놓는 기술 있는 사람은 그 기술대로 고쳐놓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무엇이나 기술 두었다가 죽으면 썩어질 것인데 세상 일만 하다가 가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가지고 돈 벌어서 하나님 일 위해서 좀 바치시길 바랍니다. 그것도 하나님 위해서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세탁 잘하는 사람은 방석을 빨기 바랍니다. 방석을 세탁해야 되는데 세탁할 줄 알면서도 안 빨아 오는 것은안 됩니다. 하여간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대로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학생들 중에서 책 좀 볼 줄 아는 사람, 문법을 아는 사람은 그런 지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밝히는데 이용당하기 바랍니다. 성경 주석 내는데 교정을 하거나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강해서 원고 교정하는 것도 다섯 번을 봐야 합니다. 그것도 한 사람만 교정보면 안 되고 여러 사람이 교정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지혜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운전할 줄 알고, 자동차 있는 사람들은 기도원 나와서 흙 나르는 일도 합니다. 사장이라도 나와서 해야 합니
다. 세상에서는 사장이지만 하나님 앞에는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 일 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일 하라고 주신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 백성들

본문 2-7절에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 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
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오는 고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물을 너무 많이 가져오기 때문에 여호와의 일 쓰기에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에 바치는 일에 전적으로 갖다 바쳤는데 자기 집보다 더 정성스럽게 바쳤습니다. 사실은 하나님 일 하는 데에 자기 집 일보다 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집에 대해 돈
쓰는 거, 자기를 위해 돈 쓰는 것보다는 하나님 일을 위하고 하나님집에 대해서 더 돈을 써야 합니다. 더 바쳐야 합니다. 아낌없이, 단 마음으로, 정성껏 바쳐야 합니다. 연보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늘같이 부활절 연보할 때에 자기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저도 기도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연보를 얼마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지를 말입니다. 양복은 얼마 주고 해 입었나를 생각합니다. 의복은 돈을 많이 들여 해 입으면서 하나님 위해서는 의복 한 벌 값도 못 바칠 만큼 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의복 한 벌값보다 좀 더 바쳐야만 하나님 앞에 옳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오늘 부활절 연보를 바쳤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쓰는 데는 아낌없이 씁니다. 자기를 위해 옷을 사 입고, 아이들 위해서 돈 쓰고, 아이들 옷 사다 입히고, 자기 집 장만하는 데는 아낌없이 하면서도 하나님 위해서 바치는 것은 자기 위한 것만 못합니다. 이는 양심을 쓰지 못한 것 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실 잘 연보할 줄 모릅니다. 어찌하여 연보하는 정신이 점점 줄어드는지 알 수 없어서 제가 속으로 걱정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해 쓰고 남을 수 있게 가져왔다는 것은 하나님 성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 일을 자기 일보
다 더 사랑하고 더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하나님 일이면 그저 생명까지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가령 무슨 일을 해야겠다 하면 다 같이 연보를 하다가 모자라면 자기가 나머지는 하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하면 하나님 일이 잘 되어 나갑니다. 자기의 집보다는 하나님 일이 더 잘 돼야 합니다. 하나님 일만 잘 되면 자기 집은 자동적으로 잘 되어 나갑니다. 하나님 일은 잘 못 되고 자기 일만 잘 되어야겠다고 하면 하나님 일 잘
못 되는데 자기 일 잘 되는 것이 며칠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떠납니다. 본문에는 모세 때 그 백성들이 쓰고 남음이 있을 정도로 너무 많이 가져와서 가져오지 않아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자꾸 가져오니까 사용할 수 없어서 모세가 더 가지고 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쯤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고 하나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위하고 더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성소 짓는 것을 자기 집 짓는 것보다 더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하려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초대교회가 자기 전장과 가옥,
토지를 다 팔아다 갖다 바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에게 아낌없이 다 줍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몇 십 만 원 몇 백만 원을 쉽게 쓰면서 왜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렇게 쓰지 못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진정으로 자기 생명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원하시면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하나님 일을 잘해나가려고 하는 충성된 마음과 그 정성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너무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있는 재료가 넉넉하여 남음이 있으니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3. 성막을 지음

본문 8-13절에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열폭 앙장으로 성막을 지었으니 곧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들을 무늬 놓아 짜서 지은 것이라 매폭의 장은 이십팔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여 그 다섯 폭을 서로 연하
며 또 그 다섯 폭을 서로 연하고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고를 만들되 그 연락할 한 폭에 고 오십을 달고 다른 연락할 한 폭의 가에도 고 오십을 달아 그 고들이 서로 대하게 하고 금 갈고리 오십을 만들어 그 갈고리로 두 앙장을 연하여
한 막을 이루었더라”라고 하였는데 천막으로 성전을 짓기 때문에 성막입니다.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수놓아 짰습니다.

본문 14-19절에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십 일 폭을 만들었으니 각 폭의 장은 삼십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십일 폭의 장단을 같게 하여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하고 앙장을 연락할 말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고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어 그 앙장을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 덮개를 만들었더라”고 라고 하였습니다. 앙장이라는 것은 천정 위에 치는 것인데 염소털로 천을 짜서 열한 폭으로 만들었습니다. 성막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짰고 천정의 앙장은 염소털로 짰고 그 위에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앙장은 양털로 다른 성소는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짰습니다.

본문 20-30절에 “그가 또 조각목으로 성막에 세울 널판들을 만들었으니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이며 각 판에 두 촉이 있어 서로 연하게 하였으니 성막의 모든 판이 그러하며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었으되 남으로는 남편에 널판이 이십이라 그 이십 널판
밑에 은받침 사십을 만들었으되 곧 이 널판 밑에도 두 받침이 그 두 촉을 받게 하였고 저 널판 밑에도 두 받침이 그 두 촉을 받게 하였으며 성막 다른 편 곧 북편을 위하여도 널판 이십을 만들고 또 은 받침 사십을 만들었으니 곧 이 판 밑에도 두 받침이요 저 판 밑에도 두 받침이며 장막 뒤 곧 서편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을 만들었고 장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둘을 만들되 아래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며 그 널판은 여덟이요 그 받침은 은받침 열 여섯이라 각 널판 밑에
둘씩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막에 널판을 대었는데 널판을 돌려 만든 다음 판자를 돌려 세웠습니다. 성막 안에다가 판자를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1-34절에 “그가 또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었으니 곧 성막 이 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뒤 곧 서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며 그 중간 띠를 만들되 널판 중간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였으며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에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도 금으로 쌌더라”고 하였습니다.
널판에 띠를 만들어서 띠를 세 줄로 둘렀는데 아래, 위, 가운데에 둘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에 띠를 둘려서 널판이 흔들리지 않도록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본문 35-38절에 “그가 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장을 짜고 그 위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 놓고 조각목으로 네 기둥을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그 갈고리는 금이며 기둥의 네 받침은 은으로 부어 만들었으며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장막 문을 위하여 장을 만들고 문장의 기둥 다섯과 그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와 그 가름대를 금으로 쌌으며 그 다섯 받침은 놋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장을 짜고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문 휘장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35:1-35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라고 명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라고 명함
출애굽기 35:1-35

35: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것들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말씀들이다. 

35:2 육일 동안은 일하되, 제칠일은 너희에게 거룩하고, 여호와께 완전히 쉬는 안식일이니, 이 날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여야 한다. 

35:3 안식일에는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불을 피우지 마라." 

35: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이다. 

35:5 자기의 소유 중에서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나 그것을 여호와의 예물로 드려라. 곧 금과 은과 놋과, 

35:6 청색, 자주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35:7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아카시아 나무와, 

35:8 등잔용 기름과 붓는 기름을 만들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료와, 

35:9 호마노와 에봇과 가슴패에 박을 보석들이다. 

35:10 너희 가운데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모두 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어라. 

35:11 성막과 그 장막과 덮개와 갈고리들과 널빤지들과 빗장들과 기둥들과 밑받침들과, 

35:12 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판과 가릴 막과, 

35:13 상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차려놓은 빵과, 

35:14 불 켜는 등잔대와 그 기구들과 등잔들과 등잔 기름과, 

35:15 분향단과 그 채들과 붓는 기름과 분향할 향과 성막 입구의 막과, 

35:16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채들과 모든 기구들과 물대야와 그 받침과, 

35:17 뜰의 포장과 그 기둥들과 밑받침들과 뜰 정문의 막과, 

35:18 성막의 말뚝들과 뜰의 말뚝들과 그것들의 줄과, 

35:19 성소에서 섬기기 위해 짜서 만든 옷, 곧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일을 할 때에 입는 옷이다." 

35:2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 나갔고, 

35:21 마음이 감동된 모든 사람들과 심령으로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와서, 회막의 일과 그곳의 섬기는 일을 위해 사용할 것과 거룩한 옷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왔다. 

35:22 마음에 스스로 원하는 남녀 모두가 팔찌와 귀고리와 반지와 목걸이와 모든 종류의 금 패물을 가져오고 사람들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바쳤으며, 

35:23 청색, 자주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것들을 가져왔고, 

35:24 은과 놋을 예물로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여호와께 그 예물들을 드렸고, 섬기는 일에 쓰일 아카시아 나무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그것들을 가져왔다. 

35:25 마음이 지혜로운 여자들은 모두 손수 실을 자아내어 청색, 자주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고, 

35:26 마음에 감동을 받은 지혜로운 모든 여자는 염소 털로 실을 자아내었으며, 

35:27 지도자들은 호마노와 에봇과 가슴패에 박을 보석들과, 

35:28 등잔과 바르는 기름과 분향할 향에 사용할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다. 

35:29 마음에 스스로 바치고 싶어 하는 이스라엘 자손 모든 남녀가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통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왔다. 

35: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5:31 그에게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시어,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능으로, 

35:32 정교한 일들을 고안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고, 

35: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조각하여 여러 가지 정교한 것을 만들게 하셨다. 

35:34 또한 여호와께서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켜 가르치게 하시며, 

35:35 그들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충만하게 하시어 조각하는 일과 정교하게 만드는 일과 청색, 자주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다.


1.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

본문 1-2절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6장 21-29절, 20장 8-11절, 31장 12-17절, 34장 21절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또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는 말도 여러 번 나옵니다(출 31:14;민 15:32-35). 다른 계명을 지키라는 말은 이만큼 자주 나오지 않았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제일 중요한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제 4계명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출애굽기34장 21에는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라고 하였습니다.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는 제일 분주할 때입니다. 분주하다고 해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분주해도 주일은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 결혼식을 하거나,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른 계명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안식일이 다른 계명보다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고, 또 특별한 안식을 누리셨으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영적 안식을 주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 안식일에 안식을 주십니다.
이것은 또한 영원한 안식을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안식일에 안식을 받고 그 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날은 육신은 일을 하지 않아야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고, 영은 일을 하는 것이 안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주일에는 육신의 모든 일은 그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함으로써 영적 안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고, 선한 일을 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입니다. 영은 이와 같이 영의 일을 하여야만 쉬는 것입니다. 즉 예배를 드려야 영이 쉬는 것이고 또 말씀을 받아먹어야 영이 쉬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아야 영이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섬겨야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이 영적 일을 하지 않으면 심령이 곤고하고 피곤합니다. 영의 일을 잘한 날은 영이 안식을 얻고, 새 힘을 얻어서 점점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는 주일로 변경됨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이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주일이 안식일입니다. 히브리서 7장 18절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10장 1절에는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하였습니다. 또 골로새서 2장 16-17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모든 계명은 그림자이고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전날 못 박혀 죽으셨다가 안식 후 첫날 즉 이레 중 첫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에 제자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문을 닫고 밖에도 못나가고 있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을 주셨습니다(요 20:19). 그 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안식을 받아서 그 마음속에 평안이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도마가 있을 때 또 나타나시어 안식을 주셨습니다(요 20:26).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는 날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는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가 합해서 안식을 주신 날입니다. 사도들도 주일을 지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지 않고 일하면 하나님의 복이 떠납니다. 구약에는 주일에 일하면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출 31:14 ; 민 15:32-35). 하여간 주일에 일하는 자는 심령이 살지 못합니다. 주일에는 절대 일하지 말고 생명을 내어 놓고 주일을 지켜야 됩니다. 이 날에 일하게 되면 영적 안식을 잃어버리고 심령이 곤고한 자리에 빠집니다.

본문 3절에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불도 피우지 말라는 것은 안 피워도 될 불, 피우지 않아도 될 불은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직업적으로 불을 피우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해먹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은 주
일에 해도 괜찮습니다.

3. 너희 소유 중에서 여호와께 드리라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

본문 4-9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소유 중에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치도록 하실 때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 바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너희에게 주신 소유 중에서 바치도록 하십니다(고후 8:12).

그러므로 이 다음에 소유가 많이 생긴 다음에 바치겠다고 하지 말고 현재에 가진 소유 중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원하는 자가 바치는 것을
달게 받으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11절에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9장 7절에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원함이 없이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은 열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을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즐겨 내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바칠 때에 아까워서 굳은 마음으로 벌벌 떨면서 바치면 안 됩니다. 원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또 바칠 때에 법대로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바칠 마음이 없어도 바쳐야만 됩니다. 그러나 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면 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해서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지키는 것도 원해서 지키는 것이 원칙이
지만, 원하는 마음이 없어도 지켜야 합니다. 부모 공경하는 것도 원하는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하는 마음 없어도 부모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원하는 마음이 없다고 해서 안하면 안 됩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자기 교회에 나가는 곳에 내야 합니다. 다른 곳에 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친 것을 받아서 일하십니다.

네게 있는 그것을 바치라

그러면 무엇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까?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약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약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 때에는 성소를 천막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을 성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다 성막을 만드는데 사용할 재료들입니다. 있는 것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을 바칠 때에 그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일 때에도 “너희에게 있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바치니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마 14:15-21). 하나님의 뜻은 돈을 벌어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게 있는 “그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돈을 벌어서 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교회도 교회 돈으로 무엇을 사놓았다가 그것으로 이익을 남겨서 무엇을 해야겠다고 하면 그것은 전부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금 내게 있는 것을 기쁨 마음으로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4.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라고 명함

본문 10-19절에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곧 성막과 그 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장과 상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불 켜는 등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분향단과 그 채와 관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문의 장과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 문의 장과 장막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과 그 줄과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공교히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바친 예물을 가지고, 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재능과 기술과 지혜를 가지고 성막과 제단과 제사에 필요한 모든 기구와 제사장 옷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몸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은 다 와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소를 지을 때에는, 돈 받을 목적으로 짓지 말고 봉사하는
정신으로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재능과 기술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단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5. 성막 짓기 위하여 예물을 바침

자원하는 마음

본문 20-21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막을 짓고, 그 속에서 쓸 물건을 만들고,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예물은 마음에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드렸습니다. 감동을 늘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원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또 하
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받으셔서 그 성막과 성막의 모든 기구와 제사장의 의복과 모든 것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 일이 잘 되었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감동을 늘 받고 있는 생활은 아주 귀한 생활이며, 하나님을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친 것은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늘 영감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하고, 자원하는 심정으로 주를 위해서 바치는 생활, 하나님의 모든 성막을 위하여 바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복 받는 생활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 복을 못 받습니다. 늘 감동받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 복 받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바칠 마음이 생기고, 또 실제로 하나님께 바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받는 생활입니다. 바칠 마음이 생긴 것도 하나님 앞에 복입니다. 하나님께 바칠 마음이 없고, 자기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주셨던 것도 다 빼앗아 가십
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려고 하고, 바치려고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사는 생활,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바칠까’하면서 바치는 것은 하늘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남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이 자라 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지을 때에 능력과 이적으로 다 만드실 수 있지만 성도들로 하여금 ‘바쳐서 성막을 지어라’ 한 것을 보
면 성도들에게 은혜 주시려고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 영혼이 만들어지고,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예물을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이루어 나가십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바칠 수 있음

본문 22절에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걸이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라
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다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5절에 한 번 있고, 21절, 22절, 25절, 29절에 나와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갖다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본문 21절에도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여호와께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서는 마음에 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무엇을 드렸습니까? 가슴의 핀, 귀걸이, 금가락지, 목걸이 다 금으로 드린 것입니다.
여러 가지 금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슴의 핀도 금으로 만들었던 모양이고, 귀걸이, 가락지도 다 금으로 만들고, 목걸이, 여러 가지를 다 금으로 만들었는데 하나님께 마음의 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갖다 바친 것입니다. 자기의 가락지 하나 바치는 것은 아주 귀한 신앙입니다. 웬만해서는 내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음에 원한 것입니다. 자원해서 자기 가락지를 다 내놓은 것입니다. 금가락지, 금귀걸이, 가슴의 핀, 목걸이도 다 내놓은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내놓았습니다. 또 그냥 두면 뭐하겠습니까?
죽을 때 다 두고 갑니다. 또 끼고 다니면 무엇합니까? 금목걸이 걸고 다닌다고 해서 누가 더 잘 알아줍니까? 또 금반지 끼고 다니면 무엇합니까? 어떤 사람이 버스에 금반지를 끼고 탔는데 소매치기가 손가락을 비틀어 빼가지고 달아났답니다. 끼고 다니다가 봉변만 당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장롱 안에다 넣어 놓고, 다른 건 다 내놔도 이것은 못 내 놓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서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믿음을 쓰지 않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다 내놓고, 생명도 내 놓아야 하는데 그까짓 것이 다 뭐라고
안 내놓습니까?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쳐서 하나님의 일만 잘 된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입니다.

문제는 자기의 믿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믿는 일 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뭐 금반지, 목걸이, 귀걸이, 가슴의 핀 같은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사치하는 정신을 버려야 바칠 수 있음

가슴의 핀은 요즘의 브로치 같은 것인가 봅니다. 요즘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걱정이 생깁니다. 그 커다랗고 둥그런 것을 귀에 걸고 다니다가 못에라도 걸리면 귀가 찢어질텐데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 가서 걸리지 않을까?’ 아주 걱정이 드는데 자기
들은 걱정이 없는 모양입니다. 위험해도 멋만 부릴 수 있다면 괜찮은 모양입니다. 반지 끼고 다니는 사람들은 반지 사이에 때가 많이 낄텐데 손을 아무리 깨끗이 닦는다 해도 반지 낀 손으로 채소 무치고, 밥 차리고 하면 위생적으로 어떨까 하는 생각에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또 멋을 부리느라고 손톱을 길러 치장한 사람들은 그 긴 손톱속이 얼마나 더러울까요. 머리 한번 긁으면 머리때가 다 들어가 낄텐데 그 손으로 밥을 하고 채소를 무치는 것입니다.
그저 사치하는 정신은 다 내 버리고 깨끗하고 간단하게 다녀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무엇이라도 다 바쳐서 하나님의 일이 잘 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백만 원짜리를 누가 했다는데 그 사람도 위험합니다. 누가 뺏
어갈 지 모릅니다. 해외 나가면 금붙이를 많이 하고 다니는 한국 여행객들이 표적이 된다고 합니다. 무엇하러 백만 원짜리를 하고 다닙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바쳤으면 요긴하게 잘 쓰실 텐데 그렇게 하고 다니느냐는 말입니다. 또 집에 두면 무얼 하겠습니까? 집에 놔 두면 도적이 들어와 언젠가는 잃어버릴 날이 올지 모릅니다. 안 오게 되더라도 죽을 때 두고 가는 것 아닙니까? 다 썩어지고 맙니다. 요즘 도둑이 얼마나 지능적인지 제일 깊숙이 숨겨 놓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정확하게 털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자마자 거기부터 뒤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멘트 벽을 깨뜨려서 그 안에다 넣고 다시 바른답니다. 그렇게 둘 바에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수를 의지하고 사모하면서 살아야지 바람벽에 넣어 두면 언젠가는 도둑맞을 날이 올 것입니다. 자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모든 귀한 것, 귀걸이, 목걸이, 가락지, 갖
은 핀, 금품을 잘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간 것처럼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기쁘게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맡은바 자기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섬김

본문 23-24절에 “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자는 가져왔으며”라고 하였습니
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필요한 것은 다 가져 왔습니다. 조각목이 필요하면 자기 집에 있는 조각목을 가져갔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무가 필요하다고 하시면 자기 집에 있는 나무를 가져왔습니다. 염소털이 필요하면 자기 집에 있는 염소털을 가져 왔습니다. 홍색, 청색, 자색실을 가져오고, 양가죽 등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데로 자기 집에 있는 것을 갖다가 예물로 바쳐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게 했습니다.

본문 25절에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은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낳았습니다. 마음이 슬기로운 여자는 감동을 받아서 지혜로운 자입니다. 실을 낳는다는 것은 정성이 참 많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 하나님의 성막을 지어 나가는 데 모든 정성을 다 바쳐서 하는 것입니다. 금과 은과 보석 등 물건을 갖다 바치기도 하지만 자기의 손으로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실을 낳아 하나님의 성막을 짓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정성이 들어가야 됩니다. 노력이 들어가야 됩니다. 피땀이 들어가야 됩니다. 자기의 모든 정성이 다 들어가야만 하나님 일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정성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정성껏 실을 낳아서 무엇이든지 공력을 들여, 시간과 정력을 다 들여 가지고 하나님의 성막을 위해서 충성을 다 하는 것입니다.

본문 27-28절에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족장들이 호마노, 또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과 등불, 관유, 기름과 향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석은 하나님 앞에 귀한 것입니다. 족장들은 보석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정도가 되는 모양입니다. 생활 정도가 그렇게 못되는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들을 가져와서 하나님 일에 지장이 없이 해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가 하나님 앞에 가져다가 바쳤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없으면 못 바칩니까? 마음에 원하는 자가 많으면 많이 바치는 것입니다.

6.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하여 시킴

본문 30-32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브살렐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6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지명하여 불러 하나님의 신을 주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 또 여러 가지 재주를 주어서 그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본문 33-35절에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은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6절까지는 앞으로 이 사람을 불러 시킨다는 것을 알려주셨고, 35장에는 그대로 순종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브살렐은 훌의 손자입니다. 훌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손을 잘 받들어 준 사람이었는데 손자인 브살렐이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성전의 모든 일을 이렇게 전적으로 맡아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받들어 주는 것은 그 사람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
손도 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계손이 이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것도 조부가 효도하면 부친이 효도하고, 손자도 효도를 하게 됩니다. 또한 음악을 잘하는 것도, 선조가 음악을 잘하면 그 후손들도 잘합니다. 최권능 목사님도 음악을 잘 했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음악을
잘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음악을 잘하는 소질도 내내 내려가는 것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할아버지가 믿음이 좋으면 아들도 믿음이 좋기 쉽습니다. 예외도 더러 있지만 보통은 그 신앙을 본받습니다. 또 손자가 본받습니다. 내내 내려갑니다. 훌의 신앙이 그 아들에서 손자까지 내려가서 하나님의 복이 임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간 것입니다.

각자에게 정해주시고 맡기신 재능이 있음

하나님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특별히 불러다 쓰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 사람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지혜와 총명을 줬습니다. 그 사람 통해서 성막 짓는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 하게 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그릇이 다릅니다. 누구나 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을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주셔서 그들을 시켜 하나님이 일을 하게 만듭니다. 그릇이 다 다른데 여기에 쓸 그릇이 있고, 저기에 쓸 그릇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일을 해야 될 만한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좋은 일을 해야 될 만한 사람은 좋은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지식을 주셨는데 그것을 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저 아무데서 돈이나 벌고, 세상에서 출세나 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재능과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 짓는데다가 이용하라는 말입
니다. 여기에 이용당하여 주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릇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금 그릇으로 만든 사람이 있고, 은그릇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사람,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으로 낸 사람이 다 따로 있습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이 있고,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각각 그 재능과 지혜와 총명을 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잘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안하니까 나도 그만 하련다’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에게 그만한 기능과 은사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출애굽기 34:27-35 모세 얼굴의 광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 얼굴의 광채
출애굽기 34:27-35

2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28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29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33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34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1. 모세가 40일을 금식함

본문 2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는 말씀을 보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모든 계명, 율법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출애굽기 마지막에도 율법을 많이 기록했는데, 하나님께 제사하는 법, 절기 지키는 법, 하나님을 섬기는 법 등 하나님께서 율법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기록하라는 말입니다. 기록해서 후대에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금식 기도를 한 것입니다. 첫 번째도 40일 금식 기도를 하였고 이번에도 사십 일 사십 야를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에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40일 금식 기도 하는 사람 중에 물을 마시면서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물까지 안 마시는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금식 기도하면 웬만한 사람은 당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경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특별히 은사를 주신 것 같습니다. 떡과 물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해주신 것 같습니다. 물을 마시면서 40일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그래도 40일 금식 기도하다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육체가 먹어야 살게 되어 있는 데, 안 먹으면 몸이 감당하지 못해서 죽는 것입니다.

신일교회 장로 한 분이 있었는데, 삼각산에 가서 40일 금식 기도하다가 40일 다 마치고 내려가는 중이었답니다. 그때 황기정 목사 어머니 송 권사가 있었는데, 가서 금식 기도할 때에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세 가지라고 하더랍니다. 예배당 지을 때 빚진 것 갚아달라는
것과 자기 딸 바로 서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남북 통일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송 권사가 듣다가 하나도 쓸데 없으니 그만두고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가 마귀가 왔다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송 권사가 도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런
데 40일 다 끝마치고 내려왔는지 채 마치지 못하고 내려왔는지 잘 모르지만 내려와서 곧 세상 떠나면서 '송송송송...'하면서 떠났습니다. ‘송 권사 말을 듣지 않아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송 권사 말을 듣고 내려왔으면 안 죽었을 것인데, 40일 금식 기도하고 바로 죽었습니다. 또
27일간 금식 기도하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부산에서도, 경기도 광주에서도 주야 27일간 기도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또 경기도 광주에도 한 사람 금식 기도하다 죽었습니다. 허영심을 가지고 ‘무조건 금식 기도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다가는 중간에 가서 죽습니다. 또 40일 금식기도라는 것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고 또 모세가 한 것인데, 보통 사람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금식 기도를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40일 금식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나타나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40일 금식 기도하고 돌판 둘을 손에 들고 내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을 새긴 돌 판이 크고 무거웠을텐데 양손에 하나씩 들고 내
려왔고 또 내려와서도 하나님 말씀, 산에서 받은 것을 다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금식기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0일 금식 기도한 사람은 반드시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광고하고 다닙니다. ‘40일 금식 기도했다’ 하고 그것으로 한 몫 보려고 합니다. 40일 금식 기도한 사람 가운데 자랑하지 않은 사람은 열에 한명이나 있을까 말까 하고 대개는 열 사람 가운데 아홉 명은 자랑합니다. 자랑하는 자체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했지 어디 자기 금식 기도한 것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손해가 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금식 기도 안 한 것만 못합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그것 내세우고 한 몫 보려고 합니다.

금식 기도는 며칠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식 기도하는 목적이 자기 자랑하려는 것이라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무슨 큰 은혜 받아서 큰 일 하겠다는 것, 그것도 시험에 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일 하라고 하시면 작은 일 하고, 큰 일하라고 하시면 큰 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지 무슨 큰 은혜를 받아서 큰 일하겠다는 것은 허영심이고 교만입니다. 허영심은 가다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IMF를 맞게 된 요인 중에 하나는, 한국 사람들이 허영심입니다. 무엇을 크게 하겠다는 것, 많이 하겠다는 것, 자랑하는
것 등 말입니다. GNP 만 불( )일 때는 ‘조금 있으면 2만 불이 된다, 우리가 3만 불이 된다, 선진국에 들어간다’라고 하면서 자랑하고 돌아 다녔습니다. 대통령도 외국에 나가서 이렇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선진국이 되고, 다른 나라 도와준다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속은 텅텅 비어 IMF를 겪게 되었습니다.

자랑과 허영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 보이려고 옷도 외국제 사서 입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사실 실력이 없는데 괜히 단장하고 허영심으로 다니다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옷을 잘 차려 입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돈을 여간해
서는 안쓰는 구두쇠지만 대만이 외화보유량이 세계적으로 굉장하다고 합니다. 대만은 어디 가서 ‘선진국이다’ 하고, 잘 사는 것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금식 기도 조금하고는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 모세 얼굴의 광채
본문 29절에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
굴에 광채가 났는데 모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30절에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무서워했습니
다. 광채가 남으로 감히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본문 31-32절에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했는데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먼저 모세에게 왔습니다. 또 모세가 그들에게 말씀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했습니다.

본문 33절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말할 때에는 가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는 것을 백성들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말을 다 하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광채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고 했습니다.

본문 34-35절에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말씀을 다 전한 다음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 광채가 났는데, 모세 얼굴의 그 광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보았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다 전한 다음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하나님께 들어갈 때에는 다시 벗었습니다.

3. 율법의 영광과 복음의 영광

고린도후서 3장 7-8절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의 직분’은 ‘복음’입니다. 그리고 ‘의문의 직분’은 ‘율법’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습니다. 의문은 율법입니다. 즉 이 말씀은 율법을 받아서도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인 이 복음의 직분이야말로 얼마나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9절에도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계명은 정죄의 직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의 직분은 복음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이다, 죄졌다’하면서 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셔서 죄를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전에는 탐심이 죄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탐심이 죄다’라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 줄 알게 되고 ‘우상 섬기는 것이 죄이다’, ‘부모 공경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이런 것들을 다 알게 해 주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또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못해도 용서해주고 오래 참으면서 성경 말씀대로 가르쳐 줘야합니다. ‘정죄의 직분’은 율법에 대한 직분, ‘영광의 직분’은 복음
의 직분입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것은 의의 직분인데, 더욱 영광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0-11절에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광되었던 것’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더 큰 영광을 인하여’에서 ‘더 큰 영
광’은 ‘복음’입니다. 구약시대에 영광되었던 율법, 모세의 율법이 ‘더 큰 영광’, 즉 ‘복음’을 인하여 영광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11절에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에서 ‘없어질 것’은 무엇입니까? 의문의 광채, ‘율법’입니다. 율법은 의문에 속한 것입니다. 의문의
영광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에서 ‘길이 있을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복음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없어질 것이 아닙니다.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4. 완고한 백성들을 위해 율법의 영광을 보존함
고린도후서 3장 12-15절에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왜 수건을 썼다고 했습니까?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답이 있습니다.

말씀을 다 전하고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쓰고 있다가 하나님께 들어갈 때는 수건을 벗었다 하였는데, 왜 수건을 쓰고 있었습니까? 얼굴에 광채가 나서 다른 사람들이 눈이 시려 얼굴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얼굴을 씌운 것이 아닙니다. 보통 그렇게 많이 압
니다.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라는 말을 듣고, ‘모세 얼굴에 광채가 너무 밝으니 눈이 시려서 얼굴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잘 보지 못할까 봐, 눈이 시릴까봐 얼굴을 가렸다’, 보통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말씀 전할 때는 수건 안 쓰고 다 전했습니다. 그런데 다 전한 다음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말입니다. 왜 가렸냐면, 모세 얼굴에 광채가 차차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차 없어지고 희미해지고 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모세 얼굴에서 광채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없어지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광채가 나는 그대로 말씀을 전해 놓고는 없어지게 되어 있으니 그것을 안보이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광채가 날 때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내가 이만큼 광채가 난다, 이렇게 전했다가 차차 없어지니 그것
을 못 보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광채가 날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다 보여주고 차차 없어질 때에는 안 보이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잘 되었습니까?
모세가 광채 나는 얼굴만 보이기 좋아하고 없어지는 것을 보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위신이 떨어지겠으니 그것을 안 보이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린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렇게 외식하고 좋은 것만 보이고 좋지 않은 것을 안 보이려고 했을리가 없습
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감추었겠습니까? 먼저는 모세가 율법을 받고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자신의 심령 속에 새김질하고 율법으로 즐거워했기 때문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즐거워하고 율법으로 광채가 나던 것은 차차 그 광채가 없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다 완성해 놓으십니다.

그러므로 의문에 속하던 것은 그리스도에게까지 가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지는 것을 안 보이게 하려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율법의 광채가 없어지는 것을 백성들이 보면 그 율법을 귀중히 여기겠습니까? ‘광채가 조금 가면 없어지겠다’, 없어질 것을 알면 백성들이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그대로 지키지 못할 염려가 있습니다. 율법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장차 없어질 것이 사실인데 백성들이 없어질 것을 미리 알면 그대로 순종하지 않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장차 없어질 것이지만, 그것을 안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은 광채가 나니 지금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없어질 것은 생각하지 말고 광채가 나는 율법을 받아서 이대로 잘 지켜 너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라, 없어질 것은 안 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광채 없어지는 것을 안 보였다는 말입니다. 보일 때가 옵니다. 수건을 벗을 때가 옵니다. 언제 벗는다고 했습니까?

고린도후서 3장 14절에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
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어지리라’, 여기 보십시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면 그 수건이 벗겨집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수건이
오히려 있습니다. 안 없어집니다. 수건이 그 얼굴에서 안 없어지고 오히려 벗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도 모세 얼굴에서 수건을 벗기지 않고 있다는 말은 율법만 귀중한 줄 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광채만 즐거워하고 율법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건이 오히려 아직 안 벗겨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율법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만 할 뿐, 결국 그리스도만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놓은 다음에 율법은 이제 없어지는 것입니다. 의문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광채, 복음의 광채, 율법의 직분의 영광, 복음의 직분의 영광’이라고 했는데, 모세가 왜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까? 율법을 받아서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새김질하며 감사하고 기뻐했기 때문에 광채가 난 것입니다. 모세가 그때에 율법을 받아서 얼마나 귀중히 여
기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을 때에 얼마나 즐거워했겠습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한 여호와라, 네가 이 말씀을 지키면 수천 대까지 복을 받는다’라고 하실 때에 얼마나 즐거워했겠습니까?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에 굉장히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십계명이 얼마나 좋고 유월절 지키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또 오순절 지키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장막절, 수장절 지키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또 범죄하면 소나 양을 잡아서 죄를 사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데, 그것이 또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모세가 그 율법이 너무 좋아서 율법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고 늘 생각하고 새김질하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귀중한 것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말씀으로 감사하고 늘 즐거워했기 때문에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말입니다.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면 얼굴에 빛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조금 있으면 없어집니다.

5.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가는 복음

그런데 이 복음의 직분의 광채는 영원히 안 없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서 즐거워하고 복음을 받아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복음을 받아서 묵상하는 이것들이 얼굴에 얼마나 광채가 나게 합니까? 또 복음을 전하는 직분은 광채가 얼마나 납니까? 이 복음 전하는 직분이 말
로 다 할 수 없는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창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해서 택해주셨다’는 말씀만으로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한 마디만으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또 ‘중생시켜 주셨다, 새 생명을 주셨다, 하늘에 올라가 앉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광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주신다’,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즐거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운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우리가 사랑 받을만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받을만합니까? 받을만하지 못합니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하고 악하고 가증하고 더럽고 미련한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참으로 돼먹지 못했습니다. 못돼 먹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만 생각하고 죄만 생각합니다. 이기주의자들이고 욕심쟁이들이고 혈기 부리다가 싸움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 하겠습니까? 참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남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우리의 자격을 볼 때에, 자신을 볼 때에 한심한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사랑하셨습니까? 창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해서 택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택해주시고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
나님께서 아들로 삼아 주셔서 우리가 아들입니다. 창세전부터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한심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심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한심한 것을 신부로 삼았어도 데리고 가십니다. 시골 구석의 시꺼멓고 게달의 장막 같이 볼품없고 한심한 것을 신부로 삼아 놓았습니다. 그래도 신부 삼아 놓았으니 주님이 이제 데려갈 것 아닙니까? 데려가십니다. 꾀죄죄하고 시골뜨기에 아무 보잘 것이 없어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로 삼아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삼아 놓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히 삼아 놓으셨습니다. 혼인 신고 해 놓았습니까? 혼인 신고 다 해놓았습니다. 그러니 데려갈 것은 정해놓은 것 아닙니까? 자기가 신부로 삼아 놓았는데 안 데려가겠습니까? 데려갈 때는 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내가 한심한 가운데 있지만 이제 시집간다, 누구에게 가느냐? 만왕의 왕한테 간다, 이제 우리 신랑 되는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러 오신다’, 그리고 이제 시집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복음의 직분, 복음에 참여한 것,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항상 즐겁다는 말입니다. 생각만 하면 항상 즐겁습니다. 모세 얼굴의 광채보다 우리 얼굴의 광채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없어집니다. 영원히 안 없어집니다. 복음 전하는 직분도 얼마나 좋습니까? 영광의 복음을 전해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고 다른 사람을 구원의 세계로 인도하니 이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생각해보십시오. 복음 전하는, 복음의 직분이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직분도 영광스러워서 얼굴이 환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율법을 가지고 생각하며 새김질하며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또 율법의 직분, 전하는 직분 이것을 더욱 영광스럽게 생각해서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율법이 차차 없어지겠으니 그것을 안 보이려고 가렸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직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세 얼굴의 율법의 영광은 없어졌습니다. 그 영광이 차차 없어졌지만 우리는 영광에서 더 큰 영광으로 올라갑니다. 어디 그랬습니까?

고린도후서 3장 17-18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영광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릅니다. 더 큰 영광으로 이르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영광은 점점 커집니다. 안 없어집니다. 수건으로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가 더 큰 영광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고 영광의 직분, 복음 전하는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잘 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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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4: 1-28 하나님의 명령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명령
출애굽기 34: 1-28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라. 네가 깨뜨린 처음 돌판들 위에 있던 말씀들을 내가 그 돌판들 위에 기록할 것이다. 

34:2 아침 전에 준비해 두었다가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여라. 

34:3 어떤 사람도 너와 함께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산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게 하며, 양과 소도 그 산 앞에서 풀을 뜯어 먹지 못하게 하여라. 

34:4 모세가 두 돌판을 처음 것들과 같이 깎은 후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34: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셔서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셨다.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을 지나가시며 선포하셨다. "여호와이다, 여호와이다. 긍휼히 여기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애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며, 

34:7 수천 대까지 인애를 베풀고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만 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버지의 죄를 자손 삼사 대까지 벌하는 하나님이다." 

34: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34:9 말하기를 "주님, 제가 주께 은총을 받았으면, 원컨대 주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곧은 백성이지만, 저희의 악과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주님의 유업으로 삼아 주소서." 하니, 

34:10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언약을 세우고자 한다. 내가 온 땅 어느 민족에게도 행하지 않은 이적을 네 모든 백성들 앞에서 행할 것이니, 내가 너에게 행할 그 놀라운 여호와의 일을 너와 함께 사는 모든 백성이 보게 될 것이다. 

34: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지켜라. 보아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겠다. 

34:12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맺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것이 너희 가운데 올무가 될까 염려된다. 

34:13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기둥 우상들을 깨뜨리며, 그들의 아세라 상들을 찍어라. 

34:14 나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다른 신에게는 절대로 절하지 마라. 

34:15 삼가 그 땅의 거민들과 언약을 맺지 마라. 그들이 그들의 신들을 따라 간음을 하며 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다가 너를 초청하면, 네가 그들의 제물을 먹을까 염려된다. 

34:16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취하면,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너의 아들들도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도록 만들 것이다. 

34:17 너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마라. 

34:18 무교절을 지켜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라. 아빕월에 네가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34:19 태를 처음 열고 나온 것은 모두 내 것이며, 너의 모든 가축 가운데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도 내 것이다. 

34: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을 대신 바쳐 대속하게 하고, 그렇게 대속하지 않으려거든 그것의 목을 꺾어라. 네 아들들 가운데 장자는 다 대속해야 하며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아와서는 안 된다. 

34:21 육일 동안 일하고 제칠일에는 쉬며, 밭 갈 때에나 추수할 때에도 쉬어라. 

34:22 밀을 처음 거두어들일 때에 칠칠절을 지키고, 한 해가 끝날 때에는 수장절을 지켜라. 

34:23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34:24 내가 이방 민족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영토를 넓혀 주겠다.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뵈려고 올라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게 하겠다. 

34:25 내 제물의 피를 누룩 넣은 빵과 함께 바치지 말고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마라. 

34:26 네 땅의 첫 열매들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여호와 너의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오고,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마라." 

3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말들을 따라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으니, 이 말들을 기록하여라." 하셨다. 

34:28 모세가 거기서 여호와와 함께 밤낮 사십 일을 머물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으며 여호와께서 판들 위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기록하셨다. 

34:29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자기 손에 증거 돌판 두 개를 들고 내려 오는데, 모세가 여호와와 말했으므로 얼굴 살결에 광채가 났으나, 그 자신은 알지 못했다. 

34:30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보니, 보아라, 그의 얼굴 살결에 광채가 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다. 

34:31 모세가 그들을 불러 아론과 회중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에게 돌아오니, 모세가 그들과 말하였다. 

34:32 그 후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자,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4:33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서는, 모세가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34:34 모세가 여호와와 말하기 위해 여호와 앞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는 그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 그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때에는 

34: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말하러 들어갈 때까지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다시 가렸다.

1. 모세가 두 돌판을 깎아 만듦

본문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사십일 사십 야를 금식기도하고 하나님께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 둘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기자 모세가 그 돌판을 던져서 금송아지를 깨뜨리는 바람에 돌판도 깨졌습니다.

두 돌판은 아주 귀중한 것입니다. 두 돌판 중 한 개는 일계명에서 사계명까지 기록했고 다른 한 개는 오계명에서 십계명까지 기록했습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은 잘했지만 노해서 돌판을 깨뜨린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은혜를 다 쏟아버렸습니다. 죄를 미워하다가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와 진리까지 다 쏟아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쓴 돌판은 세계보다 귀한 것이고 생명보다 귀한 것인데 그것을 잘 보존하면서 금송아지를 멸했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귀중한 것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거저 주셨지만 이번에는 네가 돌판을 다듬어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돌판 둘을 만들었습니다.

본문 4-5절에,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쌔”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만든 것을 잘 보존했으면 될텐데 죄와 더불어 싸우다가 하나님께서 쓰신 은혜의 돌판을 깨뜨려 버렸기에 이번에는 모세에게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처음 은혜는 하나님이 그냥 주시지만 처음 은혜를 다 쏟아버린 다음에는 이제 네가 만들어서 가지고 와야만 은혜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노력하지 않고 거저 주셨는데 이번에는 노력하고 전과 같은 돌판을 만들어가지고 와야만 말씀을 새겨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음 은혜 받을 때에는 그저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처음에 받은 은혜를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조심하지 않고 돌을 귀한지 알지 못하고 조심하지 않다가 깨뜨렸습니다. 대부분 처음 은혜를 다 잃어버립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주시니까 귀한 줄을 잘 알지 못하다가 잃어버린 후 다시 그 은혜를 받으려고 많은 노력과 많은 수고를 한 다음에야 되찾게 됩니다. 받은 것을 귀한 줄 알고 그 말씀을 잘 순종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함과 모세의 기도

본문 6-7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행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고 했습니다.
반포하신 하나님은 ‘여호와로라’했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은 그 계약대로 구원하시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진실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사랑이 많은 하나님께서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천대까지 그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니 믿음 잘 지키면 자손도 복을 받습니다. 천대면 얼마나 될까요? 아담의 십대손은 노아이고, 노아의 십대손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는 42대이니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62대입니다. 사천년간에 62대가 내려왔는데 처음에는 오래 살았었다 해도 예수님 이후로 지금까지 한 100대정도 내려왔다고 한다면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육천년간에 162대쯤 내려온 것입니다. 아직 200대도 못 내려왔습니다. 200대도 못 내
려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천대 까지 복 준다고 하셨으니 아마도 세상 끝까지 내려갈 것 같습니다. 믿음 잘 지키면 그 자손이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자기만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손도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유대인들인데 이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복이 계속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현재 세계에서 아주 우수한 백성이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유합니다.

부모가 믿음 잘 지키면 자식은 반드시 잘 될 것을 확신합니다. 만약 자식 가운데 믿음을 안 지키는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해주면 하나님이 들어준다고 했으므로 기도하는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때가 올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기도해주는 자녀는 소망이 있습니다. 부모가 믿음을 잘 지키면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말씀대로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 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십니다. 이것은 불택자를 가르키는 것 같습니다.

본문 8-9절에,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했습니다. 이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니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을 삼아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3. 언약을 지키고 이방과 타협하지 말라

본문 10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것이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주의 기업으로 삼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아무 백성에게도 행하지 않은 이적을 너의 전 백성에게 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1-12절에 “너는 내가 오늘 내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
가 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게 하겠다는 것은 가나안 칠 족속을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 이 가나안 칠 족속을 쫓아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이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나안 칠 족속을 쫓아내주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너희들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너희가 들어가는 가나안 땅 거민과 언약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거민과 언약을 하게 되면 붙잡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가나안 사람들과 언약하게 되면 거기에 얽매여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할 것이므로 언약을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라는 것입니다. 붙잡히지않도록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은 것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이 아세라 상을 찍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도리어 돌이요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들의 단을 헐라는 말입니다. 주상을 깨뜨리라는 말입니다. 주상이라는 것은 기둥으로 세운 신입니다. 우상.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14-17절에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찌니 이는 그들의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
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다른 것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됩니다. 하나님과 다른 것을 바꾸어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심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하며 말씀대로만 계속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언약 세우면 쌍방이 다 책임을 가지고 서로 이행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안 믿는 사람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과 언약을 세우면 믿음을 못 지킬 날이 오게 됩니다. 어떤 언약을 세워서 자기 의견만 세우지 말고 서로 절반씩 양보하고 서로 화목하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절반씩 양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절반 양보하면 일이 되겠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나갈 수 없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가면 신앙 위반 하는 사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언약 세우지 말라는 것은 그저 그날 그날 하나님께서 인도한 대로만 나가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면 안 하면 됩니다. 그러나 언약을 세우고 잡히면 그냥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약을 안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오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늘을 순종하다가 한날 저무르면 그날을 족한 줄 아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부부간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내 말 들어주면 당신 말 들어준다.”고 하면서 언약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이번 주에 부인 교회에 오면 다음 주에는 남편 교회에 가자고 하면 이런 경우 언약을 세우는 것입니다. 남편이 신신학 교회에 가는지 무슨 이단 교회에 가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따라갑니까? 그렇기 때문에 언약을 세워 놓으면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 합니다.

본문 16-17절에,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을 우상 섬기는 사람과 결혼시키면 네 아들도 우상을 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신상을 부어 만들지도 말고 나무를 깍아서 만들지도 말고 돌로 쪼아서 만들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속은 다 비었고 불에 녹여서 부어 만든 것이 무슨 생명이고 무슨 복을 주겠습니까? 또 돌을 쪼아서 만든 것이 무슨 복을 주겠습니까? 아무 생명도 없는데 거기에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은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4. 삼대 절기를 지키라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본문 18-22절에 “너는 무교절을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윌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무릇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다 그러하며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세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데, 첫째는 무교절, 둘째는 맥추절, 셋째는 수장절입니다. 이 세 절기를 잘 지키면 누구라도 네 땅을 탐하여 엿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절기를 잘 지키면 원수가 와서 침범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가 와서 손도 대지 못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 절기의 첫째는 유월절로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양으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시고, 그 피를 믿게 해 주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오늘날의 성탄절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언제나 힘입고,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하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을 늘 생각하고 의지하며 그로 말미암아 사는 신앙을 늘 가져야겠습니다. 그러면 원수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날마다 지고 이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힘입어 사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둘째는 맥추절인데 이는 유월절 다음날부터 49일째 되는, 유월절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 날은 보리를 심어서 제일 처음으로 곡식을 걷어서 드리는 첫 인사입니다. 첫 열매 바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여기 신령한 뜻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언제나 영접하고 나가는 신앙, 또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는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살고, 성령을 힘입어서 사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와서 침범하지 못합니다.

셋째는 수장절, 곧 추수감사절인데, 일년 농사 다 해서 곡식 거둬서 들인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 성도들이 다 구원 받아서 천국 갈 그런 뜻이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성도를 다 데리고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것을 가르쳐주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재림을 고대하고 재림하는 주님을 바라보고 또 그를 영접할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은 원수가 와서 침범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빈 손으로 오지 말라

본문 23-26절에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하여 엿보지 못하리라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며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빈 손으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6장 17절에는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얼마나 주셨는지 자기 총 재산이 얼마인지 비추어보고 각자의 힘대로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께서 원수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자비하지 말라

그리고 염소 새끼를 삶아먹을 때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염소새끼를 잡아먹어도 무자비하게 어미의 젖으로 삶는 잔인한 생활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새끼를 잡아먹을 때는 어미를 풀어 주어서 그 씨족을 다 말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꿩 먹고
알 먹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꿩 잡아먹었으면 알은 놔두라는 말입니다. 새끼를 까서 다시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혹은 알을 먹었으면 꿩을 풀어주어 번식할 수 있게, 잡아먹어도 좀 긍휼을 베풀면서 잡아먹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워도 끝까지 싸우면 안 됩니다.
머리가 열 쪽이 나도 싸우는 사람은 결국 싸우다가 머리가 열 쪽이 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조금 싸우다가 그만 두는 것입니다. 싸움도 좀 싸우다 그만 두어야지 끝까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할 때에도 원수가 피할 길을 내주고 싸운답니다. 전쟁할 때에도 다 피할 길을 두고 전쟁한답니다. 그 이유는 다 같이 하다가 말살 시키지 않기 위함입니다. 대동아 전쟁 때도 일본 군대가 어느 태평양 섬에 갔는데 일본이 가서 함포 사격을 하면서 그 섬 점령할 때 도망칠
길을 열어두고 앞에서만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도망칠 수 있는 뒷길을 열어 놓고 쏘는 것입니다. 뒷길 막아놓고 공격하면 다 말살되므로 그렇게 말살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또 항복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항복하니까 연합군이 용서해 주었습니다. 요즘 정치적 거물급들이 체포되었는데 여당과 야당이 싸울때도 끝까지 물어뜯다가는 다 함께 망하는 줄 알고 싸우다가 적당할 때 져 주어야 합니다. 둘 다 칼끝으로 맞서면 둘 다 망합니다. 미국은 여당과 야당이 싸워도 얼마 싸우다 그만 두고 협력할 때는 합심한다고 합니다. 여유입니다.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지 끝까지 칼날에 올라 앉아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가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언제나 여유가 있고 한 구석쯤 남겨두는 긍휼을 갖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용납해주고 사랑하고, 잡아먹을 땐 잡아먹어도 조금 여유를 두라는 말입니다.

어미 잡아먹으면 새끼는 풀어주고, 새끼를 잡아먹으면 어미는 놔주고, 염소새끼를 자기 어미의 젖으로 삶는 인정머리 없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납해 주고, 너그럽게 하고, 또 연합해주고, 싸우다가 도 그만 둘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휴전이란 것이 있습니다. 싸우다가 그만 두는 것이 있어야지 끝까지 싸우면 피차가 다 망합니다. 휴전 했으니까 둘 다 사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도 1953년도에 휴전했습니다. 53년도에 휴전해서 벌써 오십년 가까이 됐습니다. 휴전 안하고 끝까지 싸웠으면 둘 다 망할 뻔 했습니다. 또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에 일본이 복 받았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저 만큼 된 것도, 항복했기 때문에 저렇게 잘 살게 된 것입니다. 항복 안 했다면 계속 버티다가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다 말살 당할 뻔 했는데 항복하고 나서 다시 재기하지 않았습니까?

싸워도 좀 싸우다가 그만 두는 사람, 화목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씨족을 다 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 같은 경우, 큰 고기는 잡아먹어도 작은 고기는 못 잡게 합니다. 그것이 다 여기서 나온 것 같습니다. 또 전복도 큰 건 잡아먹어
도 작은 것은 못 잡아먹게 하는 것입니다. 새끼는 놓아주고 어미는 잡아먹습니다. 미국 법이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큰 거 잡아먹고 새끼 잡아먹고 또 알은 잡아서 젓갈 담아 먹습니다. 새끼 잡아먹어서 씨족을 다 말리면 그 다음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큰 것만 잡아 먹고 어린 것들은 풀어 주는 그런 여유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5. 돌 판을 깨뜨리지 말라

본문 27-28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이번에도 사십 일 사십 야는 보냈습니다. 처음에 사십 일 사십 야를 금식기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돌 판에다 십계명을 기록해주셨는데 모세가 백성들이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보고 돌 판을 내던져서 다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돌 판을 모세에게 만들어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다 해 주셨는데 이번에는 네가 만들어가지고 올라오면 하나님께서 써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보고 돌 판을 깎아 만들어가지고 올라오라고 하신 것 이었습니다.

처음의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돌판에 친히 기록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보고 화가 난 모세가 던져서 깨뜨려버렸습니다. 깨뜨려버린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금송아지 우상 섬기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좋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세긴 돌을 왜 던져서 깨
트리느냐 말입니다. 우상 섬기는 죄를 미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죄를 미워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깨뜨려버렸습니다. 얼마나 잘못한 것입니까. 죄를 미워한 것은 잘했으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을 언제나 간직하고, 믿음을 지키면서 우상을 멸해야 되겠는데 자기 믿음을 다 팔아먹으면서 죄와 더불어 싸웠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자기 믿음 팔아먹으면서 싸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도 자기 믿음 팔아먹으면서 싸웁니다. 죄를 미워하면서 죄와 더불어 싸우면서도 자기 믿음 팔아먹으면서 혈기 부리면서 싸웁니다. 혈기 부리면서 악감을 가지면서 남 미워하면서 이렇게 싸웁니다. 그것은 죄를 미워하다가 하나님 말씀 다 깨뜨려 내버린 것입니다. 믿음 다 떨어진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다가 믿음 떨어졌습니다. 믿음 안 떨어지게 하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악한 자가 와서 네 겉옷을 취하고자 할 때 속옷까지 금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악한 자가 겉옷 뺏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 됐다고 그 사람하고 싸우다가 믿음을 팔아먹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속옷까지 줄 작정을 하고 믿음을 팔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겉옷 달라고 하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불의한 자가 와서 불의한 요구를 하지만 그래도 네 믿음 안 떨어지게 속옷까지 그에게 주고서라도 언제나 주님과 연락하는 것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싸우느라고 믿음 다 팔아버리고 혈기 부리고 격동이 되며 분을 품고 악으로 악을 대적하다 보면 자기 믿음을 다 팔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믿음 다 팔아먹었는데 겉옷 뺏기지 않으면 뭐가 좋고, 속옷 안 빼기면 또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 팔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의분이 생긴다 할지라도 대적해서 싸우기 시작하면 속이 상해 혈기가 나오고 속에 악덕이 생기고 밤잠도 못 자고 기도가 막혀 버리면 그것은 마귀한테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연락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화평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빼앗겨도 마음의 화평은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의와 진리와 거룩, 그거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양심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 손해를 봐도, 물질적 손해를 봐도 믿음 빼앗기지 않는 것이 낫고 하나님의 의와 성결과 거룩과 진리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성공하
는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싸우다가 혈기 부리고 분이 나오고 격동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가 막히면 중요한 것을 다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의 것,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빼앗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자비한 돌 판을 깨뜨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금
송아지 같은 우상을 미워하는 것은 좋습니다. 우상을 깨뜨려 내버리겠다고 하는 생각도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 새긴 돌 판을 깨뜨렸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돼지밥통 뒤집어 엎듯이 다 엉망으로 망그러뜨리고 자기 속에 믿음 다 뒤집어 엎고, 양심 다 뒤집어 엎고 얼굴 시뻘개 져가지고 화가 잔뜩 나고, 격동되어서 헐떡헐떡 하고, 밤잠이 안 오고 기도가 막히고 이 사람은 돌판 깨뜨린 것입니다. 깨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돌 판을 깨뜨리면 안 됩니다.

최권능 목사가 새벽기도 하고 가다 보니까 어떤 집에서 색시가 조반하려고 쌀을 일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문간에 들어서 "예수 천당”하고 말하니, 그 색시가 깜짝 놀라 쌀 바가지를 다 뒤집어 엎은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쌀 바구니는 뒤집어 엎어도 예수 바구니는 뒤집어 엎지 말라 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쌀 바가지 뒤집어 엎어도 예수 바가지 뒤집어 엎지 말아라 하는 말의 뜻을 잘 생각해보니 자기가 예수 믿다 그만 둔 사람이더랍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바가지 뒤집어 엎었구나. 오늘 쌀 바구니 뒤집어 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 바가지 뒤집어 엎은 게 더 큰 거다. 하고 회개하고 교회에 다시 나갔가고 합니다. 교회에서 어느날 사경회가 열렸는데 예배 끝난 다음에 어떤 색시 하나가 와서 '목사님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더랍니다. '난 누군지 모르겠다' 하니, 내가 저번에 쌀 바가지 뒤집어 엎은 색시
라고 헀답니다. 목사님께서 내게 쌀 바구니는 뒤집어 엎어도 예수 바가지는 엎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었기 때문에 자기가 회개하고 이제 예수 믿는다고 하더랍니다. 자기가 사실 예수 바가지 뒤집어 엎어뜨렸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 바가지 뒤집어 엎었던 것인데 다시 예수 믿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다른 데 손해를 봐도, 믿음에는 손해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간직하고 말씀으로 사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거 다 손해를 봐도 믿음은 손해 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른 뺨을 치면 왼뺨 맞을 예상을 하고 믿음 빼
앗기지 말라는 것이고,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해도 십 리를 함께 가 줄 예상을 하고 믿음 빼앗기지 말고 평온한 마음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마음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연락하는 마음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희생이 되도 그것만 안 빼앗기면 성공한 것입니다. 성공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 다 안 빼앗기고 바로 하려고 하고, 죄를 미워하고 바로 하려고 하다가, 이 돌 판 깨뜨려 엎었으니까 이거 얼마나 실패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소탐대실(小貪大失)하면 안 됩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큰 것은 믿는 것, 하나님 말씀, 내 영이 사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그만 한 것, 세세한 것들 가지고 싸우는 것, 격동 시키는 것, 시험 들어가는 것, 싸우다가
다 뒤집어 엎어 버리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것이고 큰 것은 믿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이것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서 직접 기록해 주신 돌판 둘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보고 너무 격분해서 그만 다 깨뜨려 버렸습니다.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 번째는 네가 만들어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거들어 주셨지만 이번에는 네가 돌 판을 깎아서 만들어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준 은혜가 큰 은혜입니다.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은혜, 첫음 하나님 만났을 때, 예수님 만났을 때 그 감사하는 믿음, 그 처음 것이 큰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 받았을 때가 큰 것입니다. 밤새도록 성경을 봐도 은혜가 되고 성경 말씀이 제일 귀하고 제일 귀중한 것이었던 때, 그 첫 번째 은혜가 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만 간직하지 못하고 모세와 같이, 그 소소한 것들 때문에 이 은혜를 깨뜨려 버렸다는 말입니다. 격동시키는마귀 시험, 우상 섬기는 것 때문에 그 은혜를 깨뜨려 버렸다는 말입니다. 처음 믿음, 처음 은혜, 처음 사랑, 처음 감격, 처음에 말씀이 생명이 되던 것들이 대개 다 깨뜨려 내버려집니다. 처음 것을 유지하는 사람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참 좋은 신자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대개 다 깨뜨려 내버리고, 거저 받았으니까 귀한 줄을 모릅니다. 부잣집 아들이 돈 귀한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피 땀을 흘려서 벌어서 가져야 하는데 자기 아버지가 물려 준 것이라 귀한 줄도 모르고 그냥 쓰면 되는가 보다 하고 헤프게 써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사기당하고, 쫄딱 망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제는 내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제는 자기가 힘써서 거기 도달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힘써서 네가 할 바를 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노력할 바를 노력하고 네가 일심 정력을 들여서 할 바를 해야만 하나님께서 다시 그 말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그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네가 할 바를 네가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공로 없이 그냥 얻었지만 이제는 자기 할 바, 힘써서 기도해야 하고 힘써서 회개해야 하고 성경 말씀을 보려고 애를 써야 하고, 예수를 바라보려고 애를 써야 하고 성경 말씀 지키려고 애를 써야 되고, 믿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힘을 써야 그 다음에 하나님이 다시 거기다가 말씀을 새겨 주시는 것처럼 처음 은혜, 처음 말씀, 처음 받은 생명의 말씀을 다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것을 종종 잃어버리지만 다시 힘써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다시 처음 것이 회복됩니다. 그러나 둘째 번에 받은 것이 사실 처음 것보다 낫습니다. 그것은 자기 실력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공짜로 받은 것은 자기 스스로 간직하기 힘듭니다. 자기 실력으로 힘쓰고 애를 써서 은혜 받으려고 하고 애를 쓰고 산으로 들로 다니고 새벽에 기도하려고 애를 쓰고, 성경 말씀 배우려고 애를 쓰고 이처럼 일심정력을 다해 어떨 때는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면서 기도하려고 애를 쓸 때 그 은혜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새겼던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께 다시 새겨준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말씀 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판을 가지고 다시 사 십일 사십 야를 산에 올라가서 금식 기도했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신 말씀을 다시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감사히 받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내려가서 많은 사람에게 전파했습니다. 오늘날 십계명이 우리에게까지 전파됐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