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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디모데후서 1:1-18 디모데의 신앙.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디모데의 신앙
디모데후서 1:1-18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2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16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17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18(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된 바울은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 

1:3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항상 너를 기억하며, 깨끗한 양심으로 조상 때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1:4 내가 너의 눈물을 기억하며 너를 보기 원하는 것은 내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5 나는 네 안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하니, 이 믿음은 먼저 너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안에 있던 것인데, 네 안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한다. 

1:6 그러므로 내가 너로 생각하게 함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 

1:8 그러므로 너는 우리 주님의 증거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라. 

1: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를 따라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이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났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 보여 주셨다.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받았다. 

1:12 그러므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는 내가 믿는 분을 내가 잘 알고, 또 내게 맡겨진 것을 그분께서 그 날까지 능히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받아 지키고, 

1:14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힘입어 너에게 맡겨진 선한 것을 지켜라. 

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를 버린 것을 네가 알고 있으니, 그들 가운데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다. 

1:16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한다. 그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하였고, 또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1:17 로마에 있을 때에 더욱 열심히 나를 찾아 만났다. 

1:18 그 날에 주께서 그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한다. 너는 그가 에베소에서 얼마나 많이 봉사했는지 잘 알고 있다.


1. 문안축복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사도가 됨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했는데,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생명운동을 하기 위해서 바울을 사도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는데, 디모데는 신앙적으로 믿음의 아들입니다. 또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함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했는데, 바울이 구속의 은혜와 영적 평강이 언제나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2. 디모데의 신앙

본문 3-4절에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했는데, 바울이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늘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청결한 양심으로 언제나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 즉 양심을 언제나 똑바로 써서 신앙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

과거의 신앙

◉ 눈물을 흘리는 신앙

“네 눈물을 생각하여”라고 하였는데, 디모데는 눈물을 흘리는 신앙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신앙이 중요 합니다. 참된 눈물은 예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나옵니다. 즉 죄가 생각나서 죄를 회개하는 눈물,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이 예수님을 가까이 한 증거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며 눈물 흘리는 신앙을 디모데가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눈물 흘리는 신앙을 생각하여 바울이 디모데를 사랑하였고, 또 보기를 원했습니다.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 거짓이 없는 신앙

본문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란 디모데의 신앙은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디모데의 믿음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디모데의 신앙은,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서 믿음이 있는 체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디모데의 신앙은 외식하는 신앙이 아닌, 진실
하고 거짓이 없는 아주 귀한 신앙이었습니다.

◉ 전통적인 신앙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라고 하였는데, 디모데는 좋은 전통적인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외조모와 어머니가 바울에게 참 복음을 받고 그 진리대로 신앙생활을 하였고(행 16:1-3),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이 디모데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현재의 신앙

◉ 불 일듯 하는 신앙을 잃어버림

본문 6절에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불 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하였는데, 전에 받았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전에 목사 안수를 받을 때에 받았던 은사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불 일듯 하게 하라고 바울이 권면하는 것입니다. 전에 디모데가 눈물을 많이 흘린 신앙, 즉 주님을 가까이 해서 회개하고, 몸 바치기를 소원하는 눈물의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 불 일듯 하는 신앙을 잃어버린 이유

그러면 디모데가 왜 눈물 흘리는 신앙, 불붙는 신앙을 잃어버렸습니까?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당시에 환난이 많았는데, 디모데가 환난을 두려워하여 적극적으로 신앙생활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나갔기 때문에 불붙는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몸에 위병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5:23에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 위병이 있었는데, 그 위병으로 인하여 몸이 약해져서 기도도 전보다 많이 못하고, 믿음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기도도 하고, 성경 말씀도 잘 보는데, 병 때문에 전만큼 못하니까 불붙는 신앙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또 바울이 죄수로 감옥에 갇혀서 죄수로 취급받는 일과 자기도 멸시와 능욕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당시에 이단사상이 많이 횡행했는데, 그 이단사상의 영향으로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두려움 때문에 불붙는 신앙을 잃어 버렸습니다.

미래의 신앙

본문 7-8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라고 한 것을 보면 디모데가 두려워한 게 분명합니다. 환난을 두려워하면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또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가지 못가지면 믿음이 약해지고, 불붙는 신앙을 차차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니, 처음 가졌던 불붙는 신앙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즉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일으키라는 것입니다.

◉ 주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셨으므로, 그 마음을 가지고 주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감옥에 갇힐 각오를 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는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며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계 1:9),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벧전 4:12-14). 고난을 받을 때에 그저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능력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혼
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순종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삼상 17:45절에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서 나가므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왜 불 일듯 하는 신앙을 잃어버렸습니까? 요한계시록 2:4-5에 에베소 교회가 처음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서 떨어졌는가? 무엇을 하다 떨어졌는가? 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찾으라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어디에서 눈물 흘리는 신앙을 잃어 버렸습니까? 두려워 하다가 눈물 흘리는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눈물 흘리는 신앙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즉 처음 신앙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처음 신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죄에 대해서 회개가 나오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이 넘치고, 감사가 넘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옛날의 처음 신앙을 다시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 구원복음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음

본문 9-1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 사도,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사도란 예수님이 직접 보낸 자, 또는 보내심을 입은 자로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교사는 계시된 성경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반포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포자와 교사는 될 수 있지만 사도는 될 수 없습니다. 사도는 열두 사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전도와 가르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을 알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음

본문 12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성공하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을 하기 때문에 바울이 고난을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성공할 것을 알았는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라고 했는데, 바울이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복음이 반드시 성공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고난을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즉 복음을 전하다가 지금은 고난을 받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부끄러워하
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는데, 하나님이 당신을 의뢰하는 자를 내버리시겠습니까? 내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붙들어 주시고, 견고케 해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사명을 다하기까지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조금도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않고 나갔습니다. 내 생명을 주께 의탁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생명을 의탁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는데, 하나님이 맡으신 생명을 내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겨 놓으면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사람도 진실한 사람에게 무엇을 맡겨 놓으면 틀림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맡겨 놓은 것은 하나님이 맡으셨기 때문에 실패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인감도장을 좀 맡아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감도장을 목사에게 맡기면 틀림없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맡기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명까지 하나님께 맡겨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고 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놓고 나갔습니다. 생명도 하나님께 맡겨놓았습니다. 아무리 죽인다고 해도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가노라”하고 가면 일은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반드시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내버리시겠습니까? 사람도 사람을 의뢰하고 가면 웬만한 사람은 안 버립니다. 

6·25사변 때에 청천강을 건너오는데, 어떤 한 사람이 피난 보따리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강을 건너는데, 돌이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바람에 아이가 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를 건지고, 이제 우리를 붙잡고 오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선생님 살려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리시는 것이지 뭐 선생이 살리는 것이냐고 했는데, 그 때에 그 사람을 우리가 양쪽에서 붙들어 주며 강을 건넜습니다. 그 사람은 한 40대 정도 되었고, 우리는 20대였는데, 그 사람을 우리가 내버리고 왔으면 떠내려가 죽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 의탁해도 버리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의탁하고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의탁하고 나가면 태산을 넘고, 모든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깁니다. 또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는 자를 하나님이 절대 버리시지 않습니다. 

본문 13절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하였습니다.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란 바른 말은 바른 복음을 가리킵니다. 바른말을 듣기만 하지 말고 그대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4. 바울을 버린 자와 봉사자

본문 15절에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버렸는데,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아는 소아시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갈 때에 하나님만 의뢰하고 담대하셨습니다(요 16:32).

본문 16-17절에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부끄러워 아니하고, 음식과 의복으로 바울을 잘 돌보아 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자를 도와준 사람은 상급이 같습니다. 마태복음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갇히어 고난 당할 때에, 잘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바울과 같은 상을 받게 됩니다. 
 
또 마태복음 10:42에는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란 바울이 전에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복음운동을 할 때에 오네시보로가 바울과 교회를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또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울을 잘 공경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복음운동에 큰 도움을 준 오네시보로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복음운동을 잘 받들어 나간 오네시보로를 바울이 잊지 않고 축복했는데, 하나님께서도 기억하셨다가 그날에는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