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에 속한 신자 이스마엘
창세기 16:12-16
창세기 16:12-16
12그가 사람 중에 들 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13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이었더라
1. 육신에 속한 신자 이스마엘
갈라디아서 4:22-26절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아들 이스마엘과, 자유하는 여자인 사래에게 난 아들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다고 했고 이삭은 약속으로 났다고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29-30절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도 육신에 속한 신자가 있고 영에 속한 신자가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에 속한 신자이고, 이삭은 성령에 속한 신자인 것처럼 교회에도 두 가지 부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절에는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신령한 신자가 못 되었고 육신에 속한 신자라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아이같이 대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는 육신의 속한 신자와 영에 속한 신자가 있는데, 육신에 속한 신자가 강하겠습니까? 영에 속한 신자가 강하겠습니까? 외부적으로 볼 때 육체적으로 누가 세력이 강할 것 같습니까? 육신에 속한 신자가 강합니다.
본문 12절에 “들나귀 같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친다”고 한 것으로 볼 때 육신에 속한 신자가 강합니다. 모든 사람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신자입니다. 육신에 속한 신자가 세력도 세고, 일도 잘하고, 숫자도 많이 모이고, 모든 것이 세상 면으로도 잘 됩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합니다. 교회도 종의 아들 이스마엘을 끌어들이면 그 사람들이 일을 잘합니다. 이스마엘들이 돈도 잘 벌고, 힘도 세고, 일도 잘하고, 그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면 뭐든지 잘 해 냅니다. 직분을 주면 그 직분에 힘을 많이 씁니다. 돈도 많이 내고, 그러나 이 이스마엘은 인본주의 써서 얻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경대로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4:4절에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했는데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여종을 취해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성경대
로 자기 몸에서 날 자를 후사로 삼으려고 인본주의를 써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요새도 인본주의를 써서 얻은 교인은 이스마엘 교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힘을 많이 씁니다. 일도 잘해서 교회는 잘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갈이 사래를 멸시했던 것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멸시하게 됩니다. 이스마엘 교인은 처음에는 복종하다가, 조금 지나면 불순종하고 멸시합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스마엘의 방법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른 교회로 갑니다. 이스마엘 교인을 간섭하면 다른 데로 가지만, 다른 데 가 봐야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경대로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4:4절에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했는데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여종을 취해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성경대
로 자기 몸에서 날 자를 후사로 삼으려고 인본주의를 써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요새도 인본주의를 써서 얻은 교인은 이스마엘 교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힘을 많이 씁니다. 일도 잘해서 교회는 잘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갈이 사래를 멸시했던 것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멸시하게 됩니다. 이스마엘 교인은 처음에는 복종하다가, 조금 지나면 불순종하고 멸시합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스마엘의 방법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른 교회로 갑니다. 이스마엘 교인을 간섭하면 다른 데로 가지만, 다른 데 가 봐야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2. 이스마엘의 특성
“창세기 16:6절에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갈이 잉태한 것을 알고 주인인 사래를 멸시하다가,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까 도망한 것처럼, 이스마엘들은 자기 방법을 쓰다가 안되면 보따리 싸고 도망합니다. 본문에서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내쫓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따리 싼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방법은 보따리 싸는 것입니다. 보따리 쌀 때에 “보따리 싸면 되겠는가? 보따리 싸지 말라”고 한번은 권면해야겠습니다. 그렇게 권면하고 그래도 보따리를 싸면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야 합니다.
벼룩이 뛰어야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하루 종일 뛰어도 1km도 못 뜁니다. 하루살이가 암만 날아가도 얼마 못 날아가는 것입니다. 가만 내버려두면 보따리 싸가지고 기껏해야 광야로 달아납니다. 다른 데 갈 데가 없습니다. 광야로 달아날 때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샘물 옆에 있는 하갈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람을 피하여 도망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돌아가서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사자가 말해 줍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로 하는 사람 같으면 돌아가라고 말해주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우리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졸업생의 매부도 목사입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졸업을 했는데 얼마 있다가 자기 생각과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교단을 나가서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그때 그의 매부인 목사가 “우물도 한 우물을 파야 된다”고 하며 배우던 곳에서 충성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 신학생이 그 말을 듣고 고민을 하며 망설였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방황하다가 요새는 어떤 이상한 교파에 간 모양입니다. 들려오는 말이 장로교도 아닌 다른 교회에 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목사도 아직 안 됐다고 합니다. 도망가야 광야생활입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자기가 자라나고, 오랫동안 길림을 받은 그곳이 낫습니다. 진리가 옳은 데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이삭의 동방에서 살도록 하심
이삭과 가까이 있는 것이 축복임
돌아가서 복종하라는 사자의 말을 듣고 하갈이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것은 참 잘한 것입니다. 하갈이 돌아와서 복종만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줘서 그 자손을 잘 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이스마엘이 들나귀와 같이 되어서 강하고 창성하고 번성해서 많은 백성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이삭의 동방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의 모든 형제라는 것은 이삭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마엘을 이삭의 동방에 살도록 하신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멀리 떠나 살도록 하지 않고 동방에서 살도록 한 것은 이삭의 영향력을 받아
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삭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그대로 하면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축복해주고, 이삭을 통해서 구원운동을 하실 것입니다. 이삭의 영향력을 받아 이스마엘도 그대로 해서 복을 받도록
축복한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 빛은 가까운 곳에서 부터 비춰 나갑니다.
마태복음 5:13-15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안사람은 가까운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빛은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비춰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자손을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이삭으로부터 빛이 비춰나가서 영향을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떠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당 가까이에 있는 것이 사실은 좋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는 것이 복 받는 것이고, 교회 사찰 직분 맡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 사찰도 몇 년 전에 사찰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만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문지기가 복이 있다 했는데, 교회에 있는 것이 그 얼마나 복이냐? 보이는 것이 예배당이고 성도들이니 이것이 큰 복인데 왜 이 복을 떠나려 하느냐?”고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 옆으로 이사 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옆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교회 옆에 있으니 새벽기도 오기 좋고, 또 늘 목사님 만날 수 있고, 교인들 만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또 교회가 바로 하면 다른 교회가 보고 배우니까 그 배운 교회도 복 받습니다. 직접 인도는 안 받아도 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따라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기도원 사경회와 교역자 수양회의 전통
기도원 집회 하는 것은 처음에는 우리 기도원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원이 삼각산에 하나 있었고, 경남에는 무척산에 기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운몽 목사님이 하는 기도원이 용문산에 있었고. 그 다음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도원 집회를 1953년인가 54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 모시고 집회를 일 년에 두 번씩 했는데 그땐 우리 밖에 하는 데가 없었습니다. 그땐 기도원이 많이 없었습니다. 여름에 목회자 수양회 하는 것도 우리밖에 모이는 데가 없었습니다. 우이동 가서 천막을 치고, 1955년인가 몇 년 후부터 매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배워갔습니다. 이제는 기도원을 각처에 세워놓고, 그곳에서 교역자 수양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것 보고 배
운 것입니다. 또 그때는 오후 2시에 예배 드리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김 목사님 계실 때 아현교회가 오후 2시에 예배 드렸습니다. 그것을 명륜교회가 배워서 2시에 예배 드렸는데 그 다음엔 각처에서 배워가서 지금은 오후 2시에 예배드리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합동 측에도 있고 다른 교회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 바로 서 나가는 교회가 있으면, 그 옆에 교회가 배우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형제의 동방에서 산다’는 것은, 이스마엘이 육에 속한 성도이지만 그래도 이삭 가까이에 있으면 보고 배워서 바로 하라고 옆에 두신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나가면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바른 인도를 받는 것이 좋고, 또 가까이 참여하는 것이 좋고, 바로 나가는 데서 배우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진리로 바로 나가는 교회와 목회자를 가까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사경회로 모였는데 모인 것이 복입니다. 모이니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그 얼마나 복입니까! 그리고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으니 복입니다. 여기 사경회에 오지 않으면 못 고칩니다. 지적을 받고 고칠 것을 고치면 상당히 큰 수확인 것입니다.
4.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함
이스마엘이 육에 속했으므로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함
영에 속한 신자보다 육신에 속한 신자가 세상적으로나 육체적인 면에서는 늘 앞섭니다. 육에 속한 신자가 앞서 있고 강해서 잘 되어 나갑니다. 그리고 앞으로 육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할 것입니다. 앞으로 신령한 신자를 핍박할 자는 속화된, 육에 속한 신자인 것입니다. 형제간이라도 육에 속했다고 하면 언젠가는 신령한 성도를 핍박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핍박한다고 했으니깐 핍박 받을 것을 미리 예산에다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가 같이 믿어도 교회에 직분이 있어도 육으로 믿는 사람이 영으로 믿는 사람을 핍박합니다.
왜 핍박을 합니까? 이스마엘이 육에 속해 있는 까닭에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신자는 육에 속한 자와 맞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노선이 다르니까 핍박을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시기심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맏아들인데 동생 이삭을 아버지가 축복을 해 주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복이 즉 하나님의 축복이 동생에게 다 갈 것 같기 때문에 핍박을 합니다. 자기에게는 보이는 것은 없고, 아버지가 자기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을 시기하고, 또 형이라는 권리문제, 또 이삭에게는 무엇이든(축복까지) 다 주지 않겠나 하는 이권문제에 때문에 핍박을 합니다. 이렇게 시기와 권리다툼과 이권문제 때문에 핍박을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자리에 서면 누구나 다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형인데 모든 것이 동생에게로 가는데 형인 이스마엘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당연히 핍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신자들이 이스마엘을 이기는 법
1) 영으로서 육의 욕심을 버릴 것
그러면 영에 속한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마엘은 계집종의 아들이 아닙니까? 계집종을 아예 용납하지 않아야 합니다. 잉태한 것을 깨닫고 주인을 멸시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으로써 육을 눌러야 합니다. 영으로써 육을 이겨야 영권이 앞섭니다. 영으로써 육을 제어해 나가야 된단 말입니다. 그래야 집안이 바로 되고, 교회도 바로 되고, 세상도 바로 되고, 자기 개인도 바로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써 육을 이길 때에 신자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육신의 것이 언제나 영보다 강하지만 육을 앞세우지 말고, 영으로써 육을 이기면 생명이 있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생명이 없습니다. 욕심을 이겨야 됩니다. 욕심을 제어하면 살고, 욕심을 제어하고 쳐서 복종 시키지 못하면 영이 죽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욕심 즉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죽이면 살고,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욕심을 언제나 제어해야 합니다.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목회자라고볼 수 없습니다. 성도는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욕심은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이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기는 데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고 욕심을 따라가면 망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욕심을 이겨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육신을 이겨야 됩니다. 마귀는 욕심을 충동시켜 타락시키고, 안일주일에 빠지게 하고, 향락주의에 빠지게 만들어서 범죄하게 만듭니다. 계속해서 욕심을 이겨나갈 때에, 영으로써 육(이스마엘)을 이길 때에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믿는 일을 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도 조금 할 수가 있습니다. 욕심 안 버리면 하나님의 일 못합니다. 욕심으로 하면 하나님 일 한다고
하다가도 마지막엔 자기 일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육신의 것이 언제나 영보다 강하지만 육을 앞세우지 말고, 영으로써 육을 이기면 생명이 있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생명이 없습니다. 욕심을 이겨야 됩니다. 욕심을 제어하면 살고, 욕심을 제어하고 쳐서 복종 시키지 못하면 영이 죽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욕심 즉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죽이면 살고,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욕심을 언제나 제어해야 합니다.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목회자라고볼 수 없습니다. 성도는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욕심은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이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기는 데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고 욕심을 따라가면 망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욕심을 이겨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육신을 이겨야 됩니다. 마귀는 욕심을 충동시켜 타락시키고, 안일주일에 빠지게 하고, 향락주의에 빠지게 만들어서 범죄하게 만듭니다. 계속해서 욕심을 이겨나갈 때에, 영으로써 육(이스마엘)을 이길 때에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믿는 일을 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도 조금 할 수가 있습니다. 욕심 안 버리면 하나님의 일 못합니다. 욕심으로 하면 하나님 일 한다고
하다가도 마지막엔 자기 일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2) 자족을 배울 것
욕심을 버리고 자족을 배워야 됩니다. 논어에서 曲肱之樂(곡굉지락) 즉 '팔 베개의 즐거움'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공자가 “飯疏食飮水(반소사음수)하고-나물 먹고 물 마시고, 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라도-팔 베개를 해도, 樂亦在其中(낙역재기중)이니-즐거움이
그 속에 있나니,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는-옳지 못한 부귀는, 於我如浮雲(어아여부운)-나에게는 뜬구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베개를 해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어서 옳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나물먹고 물 마시고 그릇이 없어 소쿠리에 밥 담아 먹고, 바가지에다 국 떠다 먹고, 베개가 없어서 팔꿈치 베고 자도,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도덕군자들도 욕심을 버리고 도를 닦아 나가면 이렇게 즐거워하면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욕심을 버리니까 불의한 부귀영화도 헛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욕심을 버리고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을 누리면 즐거움을 세상에서도 누릴 수 있지만 이것도 잠시의 즐거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하고 참된 기쁨과 평강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찾으면 걱정이 하나도 없고, 신령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령한 길을 걸어가면 교인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대접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시켜서 물어다 먹이시듯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근심하지 않아도 다 주십니다.
목회자들은 밥그릇 없으면 소쿠리에다, 국은 바가지에다 떠 먹고, 나물먹고 물 마시고 베개 없으면 팔꿈치 베고 자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고생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각오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지고 가겠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 것이나 베고 자도 괜찮습니다. 지난 여름에 용인에천막치고 기도할 때 베개를 안 가져갔습니다. 공기 불어넣는 베개가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안 가져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 동안 손
그 속에 있나니,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는-옳지 못한 부귀는, 於我如浮雲(어아여부운)-나에게는 뜬구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베개를 해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어서 옳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나물먹고 물 마시고 그릇이 없어 소쿠리에 밥 담아 먹고, 바가지에다 국 떠다 먹고, 베개가 없어서 팔꿈치 베고 자도,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도덕군자들도 욕심을 버리고 도를 닦아 나가면 이렇게 즐거워하면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욕심을 버리니까 불의한 부귀영화도 헛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욕심을 버리고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을 누리면 즐거움을 세상에서도 누릴 수 있지만 이것도 잠시의 즐거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하고 참된 기쁨과 평강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찾으면 걱정이 하나도 없고, 신령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령한 길을 걸어가면 교인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대접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시켜서 물어다 먹이시듯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근심하지 않아도 다 주십니다.
목회자들은 밥그릇 없으면 소쿠리에다, 국은 바가지에다 떠 먹고, 나물먹고 물 마시고 베개 없으면 팔꿈치 베고 자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고생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각오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지고 가겠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 것이나 베고 자도 괜찮습니다. 지난 여름에 용인에천막치고 기도할 때 베개를 안 가져갔습니다. 공기 불어넣는 베개가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안 가져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 동안 손
전등을 베고 잤습니다. 손전등은 베개하기 아주 좋았습니다. 아무 베개라도 베고 자면 되지 꼭 좋은 베개를 베고 자야 좋겠습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 이렇게 “3자”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굶어 죽을 각오. 또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매 맞든지 총 맞든지 맞아 죽을 각오. 아예 굶어 죽을 각오로 나가면 쌀 한 말 가지고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또 목회자들 중 어떤 목회자는 저녁에 용산 시장을 가곤 한답니다. 가난한 목회자인데 왜 거기에 가냐고 물어보니까 저녁에 가면 천원만 가져가도 한 광주리씩 채소를 가져온답니다. 몇 백 원을 가져가도 한 광주리 가져온답니다. 저녁에 팔다 남아서 버리려던 것인데 한 이백 원만 줘도 한 광주리나 줍니다. 떡잎사귀들, 시퍼런 것들 그것이 영양이 더 많습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우거지 국 한 바가지 해 먹으면 고혈압에 안 걸립니다. 변비도 안걸리고 아주 건강합니다. 우거지 국이 좋은 것입니다. 보통은 한 달에 쌀 한 말은 구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교회 일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쌀 한 말 안 주시겠습니까? 또 용산 시장 가서 몇 백 원만 가져가면 채소 한 광주리 가져 올 거니까 소금 쳐서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생활의 염려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여 살리십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 이렇게 “3자”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굶어 죽을 각오. 또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매 맞든지 총 맞든지 맞아 죽을 각오. 아예 굶어 죽을 각오로 나가면 쌀 한 말 가지고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또 목회자들 중 어떤 목회자는 저녁에 용산 시장을 가곤 한답니다. 가난한 목회자인데 왜 거기에 가냐고 물어보니까 저녁에 가면 천원만 가져가도 한 광주리씩 채소를 가져온답니다. 몇 백 원을 가져가도 한 광주리 가져온답니다. 저녁에 팔다 남아서 버리려던 것인데 한 이백 원만 줘도 한 광주리나 줍니다. 떡잎사귀들, 시퍼런 것들 그것이 영양이 더 많습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우거지 국 한 바가지 해 먹으면 고혈압에 안 걸립니다. 변비도 안걸리고 아주 건강합니다. 우거지 국이 좋은 것입니다. 보통은 한 달에 쌀 한 말은 구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교회 일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쌀 한 말 안 주시겠습니까? 또 용산 시장 가서 몇 백 원만 가져가면 채소 한 광주리 가져 올 거니까 소금 쳐서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생활의 염려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여 살리십니다.
3) 죽을지언정 대접받지 않을 각오를 가지고 나갈 것
영으로써 육을 이기고, 욕심을 이기는 데에 생명이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을 배우고 대접은 죽을지언정 안 받으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바울도 죽을지언정 대접을 안 받을 각오를 가졌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5절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고 한 것은 ‘죽을지언정 교인들에게 대접을 안 받겠다는 결심하고 욕심을 버리고 자족을 배우고 한 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한 줄 아는 생활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생활입니다.
그리고 목회자 부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금 있으면 조금만 가지고 맞춰 살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많이 가진 대로 하나님께 바로 해야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맞춰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조금 주시면 첫째, 쌀부터 사 놓으면 됩니다. 쌀하고 연탄부터 사 놓으면 됩니다. 쌀하고 연탄하고 소금 한 말 사두면 다른 건 다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쌀 가지고 연탄에다 밥해 먹고, 소금을 반찬 삼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채소 도매상에 저녁 때에 가서 싸게 파는 채소 사다가 먹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최대한 낮아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왜 못 하겠습니까? 할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의복이 없으면 의복 싸게 파는 곳에 가면 싼 옷이 많습니다. 아주 싸게 덤핑하는 데서 사면되는데 그것도 살 만한 돈이 없으면 조금 있는 목회자들이 자기가 안 입는 의복 하나, 둘씩 모아서 줘도 됩니다. 목회자들은 정 없으면 신청을 하십시오. 내 것이라도 하나 줄 테니까. 그런데 내 것을 주면 좋겠는데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두 사람만 옷 몇 개를 줬습니다. 내 구두 맞는 사람 있으면 하나 주려고 합니다. 누구든 저에게 오십시오!
하여튼 믿음으로 나가십시오. 욕심을 이기고,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고 나가십시오.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아야 상급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사람에게 방패가 되십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 것을 제 것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상급도, 방패도 안 되어 주십니다. 제 것으로 삼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 것으로 삼아놓고, 다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만 하나님께서 상급이 되어주시고, 그 사람 편이 되어주십니다. 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목회자 부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금 있으면 조금만 가지고 맞춰 살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많이 가진 대로 하나님께 바로 해야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맞춰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조금 주시면 첫째, 쌀부터 사 놓으면 됩니다. 쌀하고 연탄부터 사 놓으면 됩니다. 쌀하고 연탄하고 소금 한 말 사두면 다른 건 다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쌀 가지고 연탄에다 밥해 먹고, 소금을 반찬 삼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채소 도매상에 저녁 때에 가서 싸게 파는 채소 사다가 먹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최대한 낮아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왜 못 하겠습니까? 할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의복이 없으면 의복 싸게 파는 곳에 가면 싼 옷이 많습니다. 아주 싸게 덤핑하는 데서 사면되는데 그것도 살 만한 돈이 없으면 조금 있는 목회자들이 자기가 안 입는 의복 하나, 둘씩 모아서 줘도 됩니다. 목회자들은 정 없으면 신청을 하십시오. 내 것이라도 하나 줄 테니까. 그런데 내 것을 주면 좋겠는데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두 사람만 옷 몇 개를 줬습니다. 내 구두 맞는 사람 있으면 하나 주려고 합니다. 누구든 저에게 오십시오!
하여튼 믿음으로 나가십시오. 욕심을 이기고,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고 나가십시오.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아야 상급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사람에게 방패가 되십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 것을 제 것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상급도, 방패도 안 되어 주십니다. 제 것으로 삼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 것으로 삼아놓고, 다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만 하나님께서 상급이 되어주시고, 그 사람 편이 되어주십니다. 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5. 육에 속한 이스마엘 신자도 감찰해 주시는 하나님
본문 13절에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갈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육에 속한 신자도 하나님께서 감찰해주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감찰해 주시지만 영에 속한 신자와는 종류가 다릅니다. 하지만 육에 속한 이스마엘도 하나님의 감찰해
주시고 또 창성케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모시고 산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감찰하신다. 우리도 창성한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영에 속한 것도 약속의 것도 말씀에 선 것도 아닙니다. 종류가 다른 것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도 예수를 구주를 믿었으면 구원 받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육에 속했지만은 예수를 믿었으니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해 받는 구원입니다. 해 받는 구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쫓겨나서 광야에서 죽게 된 비참함 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불러서 “돌아가 상전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부르짖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종하게 만들어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한 것입니다. 너의 고통을 하나님이 들어 서 네 앞 길을 열어준 것을 생각해서 하나님의 인도대로 계속해서 동방에서 살며, 잘 순종해서 창성하라고 이런 이름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는 아브라함이 86세였습니다. 아브람이 86세 될 때에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