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의 분깃
신명기 18:1-14
1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3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또 너의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너의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6이스라엘의 온 땅 어느 성읍에든지 거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 거한 곳을 떠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 이르면 7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그 사람의 응식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 상속 산업을 판 돈은 이외에 그에게 속할 것이니라 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12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14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신명기 18:1-14
1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3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또 너의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너의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6이스라엘의 온 땅 어느 성읍에든지 거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 거한 곳을 떠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 이르면 7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그 사람의 응식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 상속 산업을 판 돈은 이외에 그에게 속할 것이니라 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12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14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1. 레위인의 기업과 제사장의 분깃
본문 1-2절에 ‘레위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사람이나 레위사람 중 제사장들은 이 세상의 사업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만 전무하게 되어있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다 레위 사람이고 제사장은 아론자손 중에서 나옵니다. 아론자손도 레위지파입니다. 그 사람들은 세상에 기업도 없고 분깃도 받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들에게 받아서 생활하도록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제물을 바쳐서 그들의 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본문 3-4절에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또 너의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너의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
님을 전적으로 섬기게 하려고 세상 사업을 하지 않게 하고 생활비에 대해서는 백성들이 그를 공궤해서 생활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갈라디아서 6장 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였습니다. 물질 면에 있어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물질을 공궤하라는 뜻입니다. 물질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이 교역자들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김성숙 교수가 한 말인데 받는 버릇만 있어서 도무지 대접할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대접하는 것을 교역자들이 배워야 합니다. 하여간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가르치는 자에게 물질로 공궤하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9장 13절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사람이나 제사장들에게는 백성이 바치는 제물,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 두 볼, 위, 처음 난 곡식, 포도주, 기름을 바치라고 하였는데 레위기 7장 32-34절에는 화목제의 제물을 제사장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또 너희는 그 화목제 희생의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아론의 자손 중 화목제 희생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우편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교대해서 제사를 드리되 제사장이 많기 때문에 자기 당번이 돌아오면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가 제사 드리는 당번일 때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이 차지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 제사장에게는 교인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가지고 생활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사장은 자기 당번의 차례가 올 때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화목제 제사의 제물을 가졌습니다. 제물 가운데 앞 넓적다리, 볼, 위, 처음 드리는 곡식, 포도주, 기름, 처음 깎은 양털 등등 여러 가지를 다 주었습니다. 양털로 의복을 만들어서 입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2. 예정 예지의 교리 (전택설과 후택설)
본문 5절에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예지 예정”(예수 믿을 것을 내다보고 택함)와 “예정 예지”(택해 놓고 예수 믿을 것을 내다보심) 중에 어느 것이 맞습니까? “예정 예지”가 맞습니다. 감리교 교리는 “예지 예정”입니다. 장차 아무개가 태어나서 그 사람이 내다보니까
예수 믿겠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정 예지”입니다. 택해놓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지 예정” 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되었습니까? 예지는 언제나 예정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 믿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알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믿게
되어 있는 것이 알게 되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정 예지가 맞습니다.
선택설 가운데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실 때에 많은 사람이 타락되어서 내려가는 가운데서 사람을 건져내셨는데 그 가운데 일부만 하나님의 아들로 건져내고 일부는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것은 후택설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타락되어 내려 갔는데 그 가운데 일부만 택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당신의 아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몇 사람을 택하기로 예정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은 전택설이라고 합니다. 후택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기로 예정을 했고 창조한 사람이 타락되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되는 많은 사람 가운데 일부만 건져서 하나님의 아들을 삼으시고 일부는 내버려두어서 지옥갔다는 것입니다. 전택설은 그것이 아니고 타락된 가운데서 사람들을 일부만 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조건 당신의 아들이 필요해서 택자를 택해놓으시고 불택자도 필요하기 때문에 예정을 해 놓으시고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전택설이 맞습니다.
후택설의 모순- 왜 일부만 택해서 건졌나?
많은 사람이 타락되어 내려가는데 일부만 당신의 아들로 택했다고 하면 타락되어 내려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 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신데 왜 다 택하지 않고 일부만 택했냐는 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아오게 됩
니다. 가령 10명이 빠져죽으려고 바다로 들어가는데 10명을 건질 능력이 있는데도 5명만 건져내고 5명은 빠지게 내버려 뒀다고 하면 이 다음에 재판 받을 때에 책임이 있지않습니까? 10명 다 건질 수 있는데 왜 5명만 건졌느냐에 대한 문책이 있을것이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후택설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물을 창조하기로 예정해 놓으셨고 둘째로 타락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타락된 사람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기로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독생자를 불러서 구속하기로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 예정, 타락 예정, 선택 예정, 구속 예정입니다.
그런데 전택설은 창조 예정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필요해서 아들을 택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본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계속 하나님에게서 나가므로 그 사랑을 누구에게든 주어야 되겠기에 첫째로 사랑의 대상자로 누구를 택해놓고 둘째로 그들을 창조하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세번째로 타락 예정이고 네번째가 구속 예정인 것입니다. 전택설은 처음에 하나님의 아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해 놓으시고 그 아들을 창조하기로 예정해 놓고 그 아들이 타락되기로 예정해 놓고 그 다음에 그 아들을 구속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후택설의 모순- 맹목적 창조
무엇을 만들기로 계획할 때에 먼저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가령 시계를 만들었다고 하면 시계를 만들기로 계획하기 전에 먼저 시간을 보아야 되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봐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계를 만들어야겠다고 하였으니 창조의 계획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시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시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계를 만들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시계가 고장이 나고 그 다음에는 시계를 고쳐야 맞는 것인데 후택설은 창조해야 되겠다는 것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목적이 없는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왜 만물을 창조해야 되고 왜 사람을 창조해야 되는가에 대한 목적도 없이 무엇 때문에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후택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기로 예정하고 그 사람이 타락이 되고 그 가운데서 아들을 선택해야 되겠다는 것으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세번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실 때, 아들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무조건 맹목적으로 사람을 내고는 타락이 되고 그 다음에 아들이 필요하여 선택하신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적이 없는 창조가 됩니다.
그런데 목적이 있는 창조는 선택 예정이 제일 먼저이고 둘째가 창조 예정이고 셋째가 타락 예정이고 그 다음에 구속 예정입니다. 이것이 전택설입니다. 전택설은 타락 전에 아들을 택하는 것이 먼저이고 후택설은 타락한 다음에 택했다는 것으로 타락까지는 맹목적으로 나
가다가 한참 생각해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필요해서 택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다 건져낸 것이 아니고 일부만 건져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택설을 취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왜 불택자를 내셨느냐 하는 데에 대해서 대답할 말이 좀 곤란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택한 백성을 계획하는 선택 예정을 하고 창조 예정을 하고 타락 예정을 하고 그 다음에 구속 예정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불택자도 하나님
께서 내시기로 예정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불택자를 내셨느냐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을 피하려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다 지옥에 가는데 일부만 건져냈고 나머지는 제 죄값으로 지옥가니까 하나님은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건지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왜 일부만 건지셨는가에 대한 책임은 회피할 수 없습니다. 책임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께서 내시기로 예정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불택자를 내셨느냐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을 피하려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다 지옥에 가는데 일부만 건져냈고 나머지는 제 죄값으로 지옥가니까 하나님은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건지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왜 일부만 건지셨는가에 대한 책임은 회피할 수 없습니다. 책임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의 뜻
에베소서 1장 4절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의 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창조 예정을 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만들기로 책임으로 지고 택했다는 뜻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전제로 하여
택했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인데 왕은 능력, 선지자는 지혜, 제사장은 도덕 면을 나타내는데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기로 예정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지혜와 도덕 면을 완전케 만들기로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서 구속을 전제로 하지 않고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는 것은 반드시 구속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는 구속을 전제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전택설의 난제- 왜 불택자를 내셨는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전택설이나 후택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창조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만능이 없는 가운데에서 있게 한다고 성경에 그랬기 때문에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을 냈는가가 난제입니다. 왜 불택자를 내셨습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낸 것입니다. 불택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세토록 나타내고 하나님의 진노를 세세토록 나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긍휼의 그릇으로 냈고, 어떤 사람은 진노의 그릇으로 냈느냐 왜 하나님께서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안 택하셨느냐,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아니시다, 왜 공평하지 않고 어째서 나쁘고 미워하는 것을 내시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에게 성경이 무엇이라고 답변합니까?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하나님을 힐문하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쓰는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쓰는 그릇을 만들 권이 없겠느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전택설이나 후택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창조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만능이 없는 가운데에서 있게 한다고 성경에 그랬기 때문에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을 냈는가가 난제입니다. 왜 불택자를 내셨습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낸 것입니다. 불택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세토록 나타내고 하나님의 진노를 세세토록 나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긍휼의 그릇으로 냈고, 어떤 사람은 진노의 그릇으로 냈느냐 왜 하나님께서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안 택하셨느냐,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아니시다, 왜 공평하지 않고 어째서 나쁘고 미워하는 것을 내시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에게 성경이 무엇이라고 답변합니까?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하나님을 힐문하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쓰는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쓰는 그릇을 만들 권이 없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왜 다 택하지 않으시고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안 택했습니까? 왜 공평하신 하나님이 누구는 천당에 데려다가 영원토록 영생을 얻게 하고 불택자는 지옥에 가서 세세토록 불 붙는 데에서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웨스트민스터 신학 대학 교수 가운데 한 사람
이 책을 냈다고 이상찬 박사가 책을 가지고 왔는데 그 교수가 그 책 속에서 지옥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인즉 “사람을 영원토록 불구렁텅이에서 타져도 죽지 않는 불 도마뱀으로 만들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도 이제는 다 기울어 졌습니다. 사람이 지옥가는 것을 불 도마뱀이라고 표현하고 지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웨스트민스터라고 하면 세계적인 보수 신학교에 들어갔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데 여기 한국에 유명한 신학 교수들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출신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지옥을 부인하는 데에 내려가고 신복음주의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안 택했는가에 대한 답변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9장 20-22절에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안 택했습니까 불공평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에게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22절에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은 불택자이고 23절에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은 택자입니다. 그릇이 둘입니다. 불택자는 진노의 그릇이고 택자는 영광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를 뚝 떼어서 사기그릇을 만드는 데 하나는 밥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요강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다가 “야, 이 사람 불공평하지 않느냐 다 밥 그릇을 만들지 하나는 밥도 못 먹게 요강을 만들어서 오줌을 싸게 만들었느냐, 야 이 불공평한 사람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 밥 그릇을 만들면 어디에 오줌을 누겠습니까? 또 사기로 변기를 만들었는데 밥 그릇을 변기로 사용하겠습니까? 그것은 만드는 주인의 필요에 따라서 만드는 것이지 거기다가 불공평, 공평이라는 말을 감히 갖다 붙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물건의 차이도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안 택했습니까 불공평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에게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22절에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은 불택자이고 23절에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은 택자입니다. 그릇이 둘입니다. 불택자는 진노의 그릇이고 택자는 영광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를 뚝 떼어서 사기그릇을 만드는 데 하나는 밥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요강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다가 “야, 이 사람 불공평하지 않느냐 다 밥 그릇을 만들지 하나는 밥도 못 먹게 요강을 만들어서 오줌을 싸게 만들었느냐, 야 이 불공평한 사람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 밥 그릇을 만들면 어디에 오줌을 누겠습니까? 또 사기로 변기를 만들었는데 밥 그릇을 변기로 사용하겠습니까? 그것은 만드는 주인의 필요에 따라서 만드는 것이지 거기다가 불공평, 공평이라는 말을 감히 갖다 붙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물건의 차이도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의 생일날에 물고기를 잡아다가 구워먹고 또 닭 한 마리를 잡아 먹었습니다. 자기 아들 생일이라고 좋아하는데 닭과 물고기는 그날 죽었습니다. 무자비입니까? 불공평입니까? 자기 아들이 아니고 남의 아들을 잡아먹었으면 불공평이고 무자비라고 할 수 있지만 닭 잡아 먹었는데 무슨 무자비입니까?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불공평, 무자비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너무 심하다. 사람이 걸어가다가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였는데 그것이 무자비입니까? 사람을 밟아 죽였으면 무자비하겠지만 개미를 죽인 것이 어떻게 무자비가 됩니까? 조물주와 인간 사이에도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불공평, 무자비라는 말을 감히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긍휼의 그릇도 필요하시니까 세상에 내었고 진노의 그릇도 필요하시니까 냈는데 거기다가 무엇이 불공평하다고 항변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가를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정 세계에서 택한 백성을 택하기로 예정하고 창조하기로 예정하고 타락하기로 예정하고 구속하기로 예정을 하신 것입니다. 후택설도 순서만 바뀐 것이지 마찬가지입니다. 창조하기로 먼저 예정하고 타락하기로 예정하고 선택하기로 예정하고 그 다음에 구속하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다 예정의 세계, 창조 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정과 타락에 대해서 이번 성경 학교 교안에 넣었는데 아이들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교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괜히 동화나 들려주면서 놀이나 하면 쓸데없습니다. 하여간 교리 공부를 시키면 다른 데에 안 갑니다. 교리 공부 안 시키면 거스림이 없는 민통 같아서 다른 데로
다 달아납니다. 민통이라는 것은 발로 엮어서 물 내려오는 데에다 두는 것인데 고기가 그 속에 들어갑니다. 반대편에는 거스리는 것이 있어야 다른 데로 못 나가는데 아무리 많이 넣어도 거스리는 것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 공부가 있어야 됩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예지 예정” 같습니다. 그러나 미리 알았다는 말은 “예지했다”는 말이 아니고 “알아주었다”는 말입니다. “미리 알아주어서 택했다”는 뜻이고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미리 아신 자를 택했다는 말은 알아주었다는 말이요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아모스 3:2절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아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족속은 모르셨겠습니까? 그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알아주었다는 말이고 너희만 사랑했다는 말로 다른 백성을 모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아신 자를 택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택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예지 예정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3. 레위 인과 제사장의 특권
본문 6-8절에 “이스라엘의 온 땅 어느 성읍에든지 거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 거한 곳을 떠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사람의 응식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 상속 산업을 판 돈은 이외에 그에게 속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여러 성읍에 레위 사람들이 제비뽑은 대로 각각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각 지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또 신앙으로 인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도시, 각 성에 레위사람이 다 흩어져 있었고 제사장 아론 자손도 흩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방에 있던 레위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성전에서 봉사할 생각이 있다고 하면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간절히 사모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하는 것에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고 하면 받아주되 일반 다른 레위사람과 다른 제사장들과 같이 취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돌아갈 응식도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받는 보수도 다른 제사장들과 같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했던 곳의 집을 가지고 있다가 팔아가지고 온 돈은 개인 재산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대해서 이만큼 특권을 주었습니다.
4. 미신을 좇지 말라
본문 9-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몰록 우상에게 아들이나 딸을 바치는 사람들이 이같이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것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점하는 사람(복술), 길흉을 말하는 자(길한 일과 흉한 일을 예언하는 사람), 요술하는 사람, 무당, 진언하는 자(무당 푸념하도록 불러들이는 자), 신접한 자, 박수(남자 무당인데 여기서는 점하는 사람), 초혼자(세상 떠난 사람의 혼을 불러다가 물어보는 사람)와 같이 가증한 자들이 하는 이런 것들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9-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몰록 우상에게 아들이나 딸을 바치는 사람들이 이같이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것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점하는 사람(복술), 길흉을 말하는 자(길한 일과 흉한 일을 예언하는 사람), 요술하는 사람, 무당, 진언하는 자(무당 푸념하도록 불러들이는 자), 신접한 자, 박수(남자 무당인데 여기서는 점하는 사람), 초혼자(세상 떠난 사람의 혼을 불러다가 물어보는 사람)와 같이 가증한 자들이 하는 이런 것들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초혼을 믿지 말라
요새 세상 떠난 사람의 혼을 불러다가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배뱅이굿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사기꾼한테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 요새 기독교 안에 목사 가운데도 귀신을 불러다가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불신자가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하고 제 생명대로 다 살지 못하고 한이 맺혀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연한이 120년인데 그 전에 죽은 사람은 120년이 차도록까지 귀신 노릇하고 돌아가다가 120년이 차야 지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70세에 죽었으면 50년을 귀신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귀신을 부르면 오고 또물어보면 바로 맞힌다고 합니다. 내가 살았을 때에 어디에다가 무엇을 두었다고 해서 가보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에 안 맞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판단해야지 성경을 떠나면 전부 마귀 시험에 듭니다. 성경 창세기 6장에 나오는 것은 120년 동안 있다가 심판한다는 말이지 사람이 120년을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120년 있다가 홍수로 심판한다는 뜻인데 성경을 오해해서 사람 사는 수명이 120년이라고 갖다 붙였는데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 영혼이 떠나면 즉시로 천당으로 가고 즉시로 지옥으로 갑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 즉시 천당에 가고 부자는 즉시 지옥에 가지 않았습니까? 귀신 노릇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 왕 때에 신접한 여자가 사무엘을 불러올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사무엘이 올라온 것이 아니고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올라와서 사람을 속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이고 사무엘이 아닙니다. 마귀도 압니다. 사무엘은 천당에 갔기 때문에 올 수가 없습니다. 또 지옥에 간 사람도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접한 마귀 들린 사람과 마귀가 저희끼리 연계하여 너는 사무엘이라고 해라. 네가 앞으로 왕이라고 해라 라고 짠 다음에 사울 왕을 망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무엘이 나타났던 것이 아닙니다.
변화산에 나타났던 모세와 엘리야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신구약 전체를 다 총괄해서 모세는 율법의 대표로,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로 예수님의 구속을 예언했는데 예언한 그리스도가 와서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어 놓는다는 것에 대한 특별계시의 방법으로 모세와
엘리야를 보냈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이외에는 안 보내시고 또 보내실 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은 계시를 본 것이고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새 입신하는 것과 바울의 삼층천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요새 입신하는 것은 자기가 원해서 하려고 애를 써서 되는 것이고 바울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셔서 간 것으로 주격이 서로 다릅니다. 바울의 삼층천은 하나님이 주격이고 요새 입신한다는 것은 주격이 자기입니다. 또 요새 입신은 자기가 노력을 해서, 제가 한 것이고 바울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를 보냈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이외에는 안 보내시고 또 보내실 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은 계시를 본 것이고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새 입신하는 것과 바울의 삼층천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요새 입신하는 것은 자기가 원해서 하려고 애를 써서 되는 것이고 바울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셔서 간 것으로 주격이 서로 다릅니다. 바울의 삼층천은 하나님이 주격이고 요새 입신한다는 것은 주격이 자기입니다. 또 요새 입신은 자기가 노력을 해서, 제가 한 것이고 바울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요새 입신하는 사람들은 꿈꾸는 식으로 의식의 주체가 없고 바울은 입신할 때에 내가 몸 밖에 있나 몸 안에 있나 알아보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의식 주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신이 있는 것이고 입신은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입신은 정신이 나가게 하여 어지러뜨
려서 꿈꾸는 것처럼 ‘꿈꿈’하다가 깨는 것이고 바울의 삼층천 사건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고, 자기 정신이 똑똑했고, 몸 밖에 있는지 몸 안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자기 주체가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다릅니다. 인위적인 조작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언을 믿지 말고 성경을 믿으라
또 요새 예언하는 것이 딱 맞다 하면서 따라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한다는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맞는 것은 성경을 믿으면 되는 것이고 성경에 안 맞는 것은 전부 마귀역사인줄 알아야 됩니다. 예언하는 것이 다 맞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남의 것을 꼭꼭
맞춰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어쩌다 그렇게 보이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 맞는다는 사람이 거짓말쟁이인 줄로 알면 됩니다. 절대 다 안 맞습니다. 저기 기도원이 하나 있는데 기도원에 오는 목사들을 어떤 교인이 잘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대해서 예언 기도를 해주었답니다. 그 집 아들이 금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해서 더욱 더 대접을 잘 했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짓말한 것이 되었습니다. 또 망원동에 이명옥이라는 전도부인이 예언을 하는데 아주 딱 들어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가서 물어보니까 시험 치면 붙는다고 해서 너무 감사해서 돈을 좀 주었답니다. 그런데 떨어졌답니다. 예언한다는 것이 다 이런 종류들입니다. 허튼소리입니다. 또 맞아도 문제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1500년경에 살던 불란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언해 놓은 것이 요새 다 맞았답니다. 여러 가지가 맞았는데 공해와 농약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 또 태평양 바다에서 핵 실험을 하면 지각이 얇아서 터져 세상이
다 망한다는 것, 콩고드 500대가 뜨면 이 세상이 비행기 공해 때문에 다 망한다는 것 등입니다. 또 케네디가 텍사스에서 암살당할 것을 말했는데 그것도 맞았다고 합니다. 요새 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하길래 성경에 신명기 13:1-3절에 예언하는 것이 다 맞아도 믿지 말라고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맞아도 그것을 믿으면 안 되고 성경을 믿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살던 문예부흥 때가 500여 년 전쯤이었는데 그때 그 말이 지금 맞는다고 하면 사실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도 맞으면 맞았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망한다는 것, 콩고드 500대가 뜨면 이 세상이 비행기 공해 때문에 다 망한다는 것 등입니다. 또 케네디가 텍사스에서 암살당할 것을 말했는데 그것도 맞았다고 합니다. 요새 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하길래 성경에 신명기 13:1-3절에 예언하는 것이 다 맞아도 믿지 말라고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맞아도 그것을 믿으면 안 되고 성경을 믿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살던 문예부흥 때가 500여 년 전쯤이었는데 그때 그 말이 지금 맞는다고 하면 사실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도 맞으면 맞았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명기 13장 1-5절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예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하는 사람의 말이 그대로 꼭 맞았어도 너는 그 말을 믿지 말고 성경만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는지 알아보려고 그런 사람들을 내어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이 맞아도 믿으면 안 됩니다. 또 꿈꾸는 사람들도 믿으면 안 됩니다. 또 무당이 하는 식으로, 가서 기도해보고 와서 가르쳐준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물어보러 가서 돈을 좀 주면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 좀 해보고 나와서 잘 된다 못 된다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당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그런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축복 기도는 강도질임
또 자기가 축복해주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별미 축복’이라고 하는데 이삭이 사냥해온 고기를 먹고 축복해 준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처음에는 음식을 얻어먹고 해주었는데 요새는 돈을 가지고 와야 축복을 해준다고 합니다. 돈도 조금 가지고 오면 안 해주고 몇 십 만원씩 받아야 축복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속이 시꺼멓습니다. 도둑놈이 속에 들어가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도요 강도입니다. 교인들 돈을 강도질 해 먹느라고 그런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별미 축복이 악한 일입니다. 불쌍한 교인들을 도와줄 생각을 해야 되겠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축복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런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 복술, 무당 식으로 하는 종류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용납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가정이 있는데 그 시어머니가 독산동에 있는 신신학 교회에 나갑니다. 지금도 거기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가 심방 와서 축복을 해줬는데 한정 없는 축복을 해주었답니다. 별의 별 축복을 다 가져다가 해 준 것입니다. 새복을 받고 만복을 받고 아들도 복을 받고 사업도 복을 받으라고 한참 해주니까 그 할머니가 너무 너무 기뻐서 ‘이런 복을 어떻게 받을까’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권찰이 그 목사를 보니까 무당 푸념하듯이 해 놓고 돈 좀 받아먹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답니다. 이런식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인데 속는 사람이 있으니까 속이는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려고 하면 한 배에 타는 것입니다.
목회 연구회라는 곳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기만 하면 성경을 가르쳐주고 밥도 12000원짜리 공짜로 주기 때문에 많은 목사가 간다고 합니다. 또 설교할 꺼리를 제공 받고 오기 때문에 간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잘한다는 것을 그대로 가르쳐주니까 그대로 하면 목사가 유식하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그 돈이 문선명한테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문선명한테 다 걸려들어간 것입니다. 요새 기독교가 샤머니즘으로 기울어졌는데 여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축복해주면 다 복을 받는다고 하니 쉽습니다. 축복하는 단어 100가지만 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까짓 것 조금만 노력하면 다 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부터 할머니, 아들, 며느리, 사업하는 데 돈, 사람 축복, 소 축복, 양 축복 등등 최고의 축복을 다 가져다가 써서 외워가지고 처음부터 쭉 주기도문 외우듯이 외우면 그 집에서 그렇게 기뻐하고 대접을 잘해주지만 그것은 모두 사기입니다.
이삭이 장자의 축복을 해 줄 때 야곱에게 해준 축복을 똑같이 에서에게 해줄 수 있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축복이 진짜이므로 그렇게 못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저 사람에게 준 것을 이 사람에게 또 주겠습니까? 그
러나 가짜는 조금 더 붙여가지고 야곱에게 해준 축복을 에서에게 더 잘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짜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각각에게 맞는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제일 사랑하는 베냐민에게는 물어뜯는 이리새끼라고 하였습니다. 말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 사람에게 해당하는 축복을 해주었는데 이것이 진짜인 것입니다. 무당 푸념하듯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복을 퍼부으며 준다는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벌써 하나님께서는 안 속으십니다. 사람은 속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네 이놈, 어디라고 내 이름을 가지고 그런 가짜 노릇을 하고 돌아다니느냐”하고 책망하시고 점점 그 사람에게서 영권을 거둬 가시고 하나님께서 점점 은혜를 거둬가십니다. 속여 먹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절대로 그런 데에 빠지면 안 됩니다. 백성들은 따라가나 하나님께는 아시고 책망을 하시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러나 가짜는 조금 더 붙여가지고 야곱에게 해준 축복을 에서에게 더 잘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짜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각각에게 맞는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제일 사랑하는 베냐민에게는 물어뜯는 이리새끼라고 하였습니다. 말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 사람에게 해당하는 축복을 해주었는데 이것이 진짜인 것입니다. 무당 푸념하듯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복을 퍼부으며 준다는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벌써 하나님께서는 안 속으십니다. 사람은 속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네 이놈, 어디라고 내 이름을 가지고 그런 가짜 노릇을 하고 돌아다니느냐”하고 책망하시고 점점 그 사람에게서 영권을 거둬 가시고 하나님께서 점점 은혜를 거둬가십니다. 속여 먹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절대로 그런 데에 빠지면 안 됩니다. 백성들은 따라가나 하나님께는 아시고 책망을 하시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세족식의 폐해- 교회가 의식주의로 기움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세족식이라고 있는데 중고등학교의 학생을 다 모아다 놓고 학생들의 발을 씻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비롯하여 요즘에는 교회에도 들어왔습니다. 또 천주교에서도 교인 대표 12명의 발을 씻어준다고 합
니다. 그러면 그것이 옳은 것입니까? 우리가 천주교에서 하는 것을 다 개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천주교에서 하는 것을 따라가야 되겠습니까? 성경에 맞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누군가가 성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고 했으니까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의 모양은 다 따라 해도 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채찍 하나 예배당에 갖다 두었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상을 때려부수고 또 아나니아와 같이 못 되게 돌아가는 사람은 죽여야 되고 마른 무화과 나무는 저주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그대로 반복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 중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과 같은 것은 예수님의 구속운동을 상징적으로 한 번 해 놓고 영원토록 그 성경 말씀을 읽고 그 속에서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지 그것을 다시 반복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로 포도주 만든 것을 다시 반복하고 성전 정결하게 하신 것을 다시 반복하고 마리아가 기름 부은 것을 다시 반복하면 교회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교회가 못 됩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예배, 진리적인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지 의식주의로 나가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그런 세족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새 더러 천주교를 본받아서 그런 의식을 하는 교회가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안 해야 됩니다. 그것을 하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좀 똑똑한 사람은 목사가 유치하다면서 반드시 달아납니다. 어리숙한 사람만 거기에 남아 좋다고 앉아 있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 같으면 누가 거기서 발을 씻고 앉아 있겠습니까? 목사가 틀렸다고 판단을 할 것입니다. 내가 교인이라고해도 발을 씻겠다면 나는 그 교회에서 나오고 말겠습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예배드리는 곳이지 육신의 냄새나는 발을 씻으라고 어디에 그랬는가 말입니다. 또 목사가 여자들의 발도 씻어줍니까? 목사님이 그 교회 교인들의 발을 다 씻는다고 하면 교인이 많은 교회는 하루 종일 씻어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똑똑한 사람은 반드시 거기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리숙한 사람들만 다 붙어 있는 것입니다.
고신측 장로교회에서도 씻어준다고 하는데 마귀는 어디든 들어갑니다. 의식주의가 들어가는 것인데 의식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고후 3:6절) 했고 새 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의식주의가 낡은 가죽 부대이고 새 술은 새 생명운동입니다. 그런데 새 생명운동이라는 새 술을 왜 낡은 의식주의에 가져다가 넣으려고 하는가는 것입니다. 잘 될 것 같아도 그렇게 되면 부대도 터지고 술도 버리고 둘 다 버립니다. 부대를 집어치워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겠습니다. 신령과 진정이 떠났기 때문에 이제는 껍데기로 붙잡으려고 무슨식, 무슨 식이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전에 애찬식을 초대교회에서 하다가 카르타고 회의에서 그것을 폐지하지 않았습니까? 폐지한 것을 또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주후 220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애찬식을 폐지했는데 그것을 다시 갖다 들여오는 것은 교회가 뒤로 물러가 타락 되는 것이고 잘못 된 것을 고쳐놓았지만 다시 잘못된 데로 뒷걸음질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별 게 다 들어올 것입니다. 영적면이 떨어졌으므로 영권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의식으로 붙잡으려고 예배당 뒤에다가 십자가, 사진 등 별 것을 다 가져다가 붙여놓고 이제 별의 별 것을 다 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 영권이 없으니까 의식주의로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로교도 지금 영권이 떨어지니까 의식으로 붙잡으려고 하는데 점점 천주교화해 가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장로교회화 되어 갑니다. 천주교는 장로교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심방도 다니고 찬송도 부릅니다. 이전에 안 하던 것들입니다. 장로교는 천주교를 슬슬 따라갑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다 유브라데강이 말라가는 증거입니다.
5.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본문 12-14절에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는 민족을 쫓아냈는데 네가 만약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너도 쫓아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는 말은 그런 것을 다 없애고 불완전한 것을 점점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것입니다.
사찰의 중들 중에 다른 사람보고 너는 일찍 죽겠다 사업이 실패하겠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다 면서 말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보고 너는 장차 어떻게 되겠다라고 말해줄 때에 ‘내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네가 장차 잘 되겠다라든지 못 되겠다라든지 코가 잘 생겼다든지 귀가 잘 생겼다든지 그런 말을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다 마귀의 말입니다. 누가 우리보고 좋은 말로 장차 어떻게 되겠다라는 말을 해주거나 또 나쁜 말이라도 해주면 그런 말은
염두에 두면 안 됩니다. 완전히 제해 버리고 없는 것처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하는 것들은 전부 다 마귀역사인 줄로 알면 됩니다. 이북에서 내가 어렸을 때 교회에 김미옥 집사라고 있었는데 그 분이 하는 말 중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자기 생년월일을 가지고 잠언을 찾아보면 자기 팔자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자기 생일, 몇 월 몇 일 날을 가지고 몇 장 몇 절을 찾아보니까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냐”라고 써있기에 자기는 그 성구가 자기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그 말이 옳을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아, 그것이 마귀의 말이구나”라고 요새 와서 깨달았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들은 그것을 일평생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요새 와서 마귀의 말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여간 성경에 없는 말을 하거든 마귀의 말인 줄로 알면 되고 성경에 옳지 않은 것을 다 고쳐나가야 됩니다. “완전하라”는 말은 성경에 합당치 않은 것을 고쳐나가라는 말이 아닙니까? 합당치 않은 것을 그냥 두면 그것은 완전이 아닙니다. 합당치 않은 것을 고쳐나가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염두에 두면 안 됩니다. 완전히 제해 버리고 없는 것처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하는 것들은 전부 다 마귀역사인 줄로 알면 됩니다. 이북에서 내가 어렸을 때 교회에 김미옥 집사라고 있었는데 그 분이 하는 말 중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자기 생년월일을 가지고 잠언을 찾아보면 자기 팔자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자기 생일, 몇 월 몇 일 날을 가지고 몇 장 몇 절을 찾아보니까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냐”라고 써있기에 자기는 그 성구가 자기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그 말이 옳을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아, 그것이 마귀의 말이구나”라고 요새 와서 깨달았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들은 그것을 일평생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요새 와서 마귀의 말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여간 성경에 없는 말을 하거든 마귀의 말인 줄로 알면 되고 성경에 옳지 않은 것을 다 고쳐나가야 됩니다. “완전하라”는 말은 성경에 합당치 않은 것을 고쳐나가라는 말이 아닙니까? 합당치 않은 것을 그냥 두면 그것은 완전이 아닙니다. 합당치 않은 것을 고쳐나가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