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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4일 화요일

시편 119:1-32 모사(謀士)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사(謀士)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
시편 119:1-32

1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2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3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5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9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10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13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16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17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19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24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25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26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27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28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32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1. 복 받는 두 가지 길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라

시편 119편은 신,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깁니다. 그리고 각 단락의 첫 글자는 히브리 원문에 보면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법, 증거, 말씀, 주의 도, 계명, 율례, 규례, 훈계, 법도, 판단 등 10가지로 나타내었습니다.

본문 1절에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라고 하였습니다. ‘행위 완전하여’는 절대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법으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바로 믿으려 하며, 바로 살려고 하면서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복 받는 두 가지 길 중 
첫째는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입니다. 
두 번째 복 받는 길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복 받는 두 가지 길,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둘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고 찾고 찾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아서 가까이 하고 영접하고 연결하고 교통하며 여호와로 생명을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바로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다.

본문 3절에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전심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며 주의 말씀의 도에 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본문 4절에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의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법도를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좋은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근실하게 지키게 하시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 하십니다.

본문 5절에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가는 길을 굳게 정하셔서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율례를 지킬 때에만 생명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본문 6절에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언제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말씀에 주의하고 말씀대로 모든 것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언제나 떳떳합니다.

본문 7절에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판단’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율례를 지키고자 하오니 아주 버리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버려지는 법이 없습니다.

2. 복 있는 청년

복 받는 청년의 길

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야 함

본문 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청년들이 무엇으로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무엇으로 성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깨끗하고 실패가 없으며, 성공하는 길, 어떻게 해야 그런 길로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이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또 노인들도 젊은 청년의 신앙을 가지고 전심으로 이 말씀을 배워서 이 말씀대로 행할 때에 실족하지 않습니다. 성공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청년의 신앙을 가져야 하고, 젊은 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나가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야 합니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고 성공합니다.

2) 전심으로 주를 찾아야 함 본문 10절에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청년이 전심으로 주를 찾아야 합니다.
청년이 잘되려면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고 말씀대로 바로 걸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전심으로 주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사모하고 언제나 주를 찾아서 주의 계명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3) 범죄하지 않으려고 힘을 써야 함

본문 11절에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범죄하지 않으려고 언제나 힘을 써야 합니다. 청년의 때가 특별히 범죄하기 쉬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하지 않으려고 언제나 힘을 써서 주의 말씀에 마음을 두고 죄와 더불어 잘 싸워서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청년의 앞 길에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죄를 잘 이겨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함

본문 12절에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하나님 말씀 배우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율례를 좀 더 가르침 받고, 성경 말씀을 배우기를 힘쓰는 사람, 또 그대로 행하기를 힘쓰는 사람, 좀 더 배우기를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계속 말씀을 사모하고 좀 더 배우고 좀 더 깊은 도리를 배우려고 항상 힘을 써야 합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전도해야 함

본문 13절에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복 받는 청년이 되려면 주의 말씀을 배우고 실행하며 나가서 전파해야 합니다. ‘입술로 선포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전도하는 청년이 복을 받습니다.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자기도 은혜를 받게 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전도하는 것이 자기가 복을 받는 길입니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재물보다 더 귀히 여기고 즐거워해야 함

본문 14절에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로 ‘모든 재물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즐거워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즐거워하는 것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하고, 나아가 재물보다 좀 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욥은 재물을 분토와 같이 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즐거워했습니다. 은, 금보다 말씀을 더 중히 여기고 은, 금에다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해야 함

본문 15-16절에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일곱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잊지 않으며, 그 말씀 안에서 살려고 힘쓰는 청년이 복이 있습니다.
복 있는 청년이 되려면 몇 가지를 해야 합니까?
첫째, 말씀을 따라가고
둘째, 전심으로 주님을 찾고
셋째, 범죄치 않으려고 힘을 쓰고
넷째, 성경을 늘 배우려고 힘을 쓰고
다섯째, 말씀을 선포하고 전도하는 일에 힘을 쓰고
여섯째, 재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즐거워하며 더 귀히 여기고
일곱째,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잊지 않으려고 하고, 그 말씀으로 살려고 항상 힘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 받는 청년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모사(謀士)가 됨

자기 지혜로 나가면 실패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나, 말씀대로 나가면 반드시 잘됨

셋째 대지는 ‘주의 말씀은 모사이므로 멸시를 당치 않게 함’이라고 하였는데, 모사는 지혜 없는 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모사라 하면 모든 지혜로 좋은 방도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할지 모를 때에 모사가 와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가르쳐주곤 합니다.
그리고 좋은 모사의 의견대로 일을 진행하면 실패가 없고 성공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미련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미련한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하나님 앞에 다 미련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제 꾀에 자기가 넘어갑니다. 고린도전서 3장 18-20절에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세상 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 모사되시는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지혜입니다. 말씀이 모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대로만 나가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자기 지혜대로 나가는 사람은 가다가 실패하므로 부끄러움을 많이 당합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나가는 사람은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도록 만들어놓으셨겠습니까? 망하도록 만들어놓으셨겠습니까? 반드시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후대하실 때에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도록 힘써야 함

본문 17절에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살려달라고 합니까? 하나님께 주의 종을 후대하심으로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려고 살려달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려달라고 할 때에 무슨 목적이 있어야 살려줄 것이 아닙니까? ‘후대해서 좀 살려주시옵소서. 사망의 골짜기에서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면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다’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해주시면 무엇을 하겠다고 했습니까? 밧단아람의 그 위험한 곳에서 평안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무엇을 하겠다고 했습니까?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최의원 목사는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만 하면 자기한테 있는 조그마한 집 한 채를 팔아서 교회를 세우고 가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으면 그렇게 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데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작정한 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때가 지나가기 전에 해야 한다고 늘 말하지 않습니까? 때가 지나가면 못합니다. 늘 때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힘이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건강한 것도 아닙니다. 돈도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새 북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는데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라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말 가운데에는 ‘자기에게 명령한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키겠습니다’하는 뜻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 받은 사명, 즉 ‘너는 뭐 하고 오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다 마치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후대하셔서 살려주시면 내 사명을 다하고 가고자 합니다’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이루는 삶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명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죽습니다. 가축들이 모여서 주인의 생일이 며칠 후인데 그 집에서 과연 누구를 잡을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러자 소가 “나는 주인의 밭을 갈아주니 안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은 “나는 주인을 태우고 다니니 안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개는 “나는 집을 봐주니 안 잡아먹을 것이다”, 닭은 “나는 새벽 잠을 깨워주니 안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돼지가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랍니다. 그래서 돼지한테 물어보니 잡아 먹을 것은 자기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돼지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일이 생일날 누구를 잡아먹겠습니까? 돼지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잡아 먹어야지, 말 잡아먹으면 무엇을 타고 다니고 개 잡아먹으면 누가 집을 봐주겠습니까?
기도원에 개가 하나 있었는데, 잃어버렸습니다. 얼마 전에 도둑이 왔었는데, 개가 없어서 몰랐습니다. 그래서 박 교수가 이사갈 때에 자기네 집에 있던 개 한 마리를 기도원에 데려다놓았습니다. ‘기도원에 파숫꾼이 없어졌는데, 기도원에 파숫꾼이 있어야지 안 되겠다’고 해서 기도원에 가져다놓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기도원에 갔는데 개가 고맙다고 좋아합니다. 갈 데가 없어서 보신용으로 팔려갔을지도 모르는데, 사명을 줘서 여기에 온 것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도원 지켜라. 밤에 도둑 지켜라. 주일날 다 아래 예배당으로 내려가면 전부 비는데 그때 짖어줘야 한다. 기도원 지켜라’하는 그 사명 때문에 그것도 산 것입니다. 돼지와 같으면 안 가져갑니다. 하여간 사명이 있으면 다 죽게 된 지경이어도, 다시 살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후대해서 나를 살려주시면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라고 하는 것은 주께서 내게 명한 사명을 다 감당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얼마나 남기고 가야 합니까?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가야 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것을 남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사명이 얼마입니까? 한 달란트입니다. 그것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남기고 가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
‘살려주시면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주께서 내게 맡긴 바 이 사명을 죽도록 충성해서 다 감당하고자 애를 쓰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할 사명, 예배당 지을 사명, 개척 교회할 사명, 심방할 사명, 강해서를 할 사명, 선교사 파송할 사명 등 사명이 많지
않습니까? 기도원에 나가서 도와줄 사명도 있습니다. 기도원에서 밥해 줄 사람은 밥해줄 사명, 예배당 청소할 사람은 예배당 청소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명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명 없는 사람은 무엇과 같습니까? 돼지와 같습니다. 사명 없는 사람은 자신이 돼지와 같은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는 어떻게 합니까? 잡아먹습니다. 살려둘 필요가 없습니다. 살려두면 밥이나 축내지,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돼지는 아무리 해도 잡아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 없는 사람은 돼지입니다. 살려달라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살려줘도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용지물입니다. 쓸 데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이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못한다고, 다른 사람 시키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두실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사명을 다하고 가고자 한다는 결심, 그런 서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작정을 해야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살려줘서 뭐하겠습니까? 필요해야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기이한 하나님의 도,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깨달아서 그 말씀대로 행하며 그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신기한 그
말씀을 좀 더 깨달아서 자기가 그 말씀에서 살고, 나아가 그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나그네된 줄 아는 사람은 더욱 더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것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좀 더 신령한 말씀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려고 간절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나그네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잠시 있다가 가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했습니까? 호적을 찾아보면 호적에 다 나와 있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년수가 70이고 건강하면 80인데, 그것이 다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훌떡훌떡 넘어갑니다. 날아가는 것처럼 세월이 빨리 갑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몇 년 만에 만나보면 머리가 하얗게 세어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젊은 줄 알고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만나면 머리가 할머니가 돼서 오는 사람, 할아버지가 돼서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속히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나그네인 줄 알고, 본향인 하늘나라를 찾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본향에 가서 살아야겠다’라고 하며 매일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향에 갈 때에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본향 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모하는 본향을 갈 때에는 기쁨으로 갑니다. 하여간 자신이 나그네인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신령한 말씀을 더 찾으려고 힘을 씁니다.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씁니다. 우리는 나그네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규례를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좀 더 깊은 진리를 깨달으려고 늘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좀 더 신령한 진리를 깨닫고, 바른 진리를 찾으려고, 깊은 생명의 양식을 찾으려고, 늘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생명의 양식을 찾으면 즐거워 하고, 못 찾으면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찾으려고, 귀하고 신령한 도를 찾으려고, 항상 힘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교만을 꺾고 말씀대로 나가는 것이 사는 길임

본문 21절에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주의 계명을 떠나는 자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의 꾸지람을 받고 저주를 받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교만한 사람은 주의 계명을 떠나게 되고, 주님에게 꾸지람과 저주를 받습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히 주의 명령 안에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귀로 슬슬 넘어가고 무슨 말씀인지 깨달아지지도 않습니다. 교만한 자는 성경을 보아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저주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주의 말씀에 은혜가 안 되면 자기가 교만해진 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에 은혜가 안 되면 교만해진 줄 아십시오. 성경을 볼 때 은혜가 안 되면 ‘내가 교만해졌다. 이것을 쳐서 복종시켜야겠다’라고 해야 합니다. 또 교회에 나와서 강도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은혜가 안 되면
‘내가 교만해졌다. 이 교만을 죽여야겠다. 말씀을 들을 때 은혜가 안되면 교만해진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교만해졌으니 이제 올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저주와 책망밖에 올 것이 없다’라고 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는 언제나 ‘나’라는 교만이 막습니다. 교만을 꺾어 죽이고 자기를 부인하며 겸손한 자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 가운데에 다시 들어가야 자기 생명이 삽니다.

본문 22절에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증거의 말씀을 지키면 훼방과 멸시가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사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하면 멸시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하면 반
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방백들이 앉아서 훼방하고 핍박하고 비방하나 나는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방백들을 이기는 방법은 말씀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모사이기 때문에 말씀에 서면 방백들을 이기고 그들의 훼방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 훼방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말씀은 영혼을 소생케 함

본문 25절에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한 것은 심히 낮은 자리에 처했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티끌 가운데 처한 것과 같고 무덤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이 비천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케 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26-27절에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면 귀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8절에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라고 하였는데, 지금 심히 낮아지고 억압 받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9-32절에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좁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못갑니다. 마음을 넓혀야 주의 계명대로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어야지, 마음이 좁으면 자꾸 걸려서 못 갑니다. 마음이 좁으면 이 사람에게 걸리고 저 사람에게 걸리고, 이 사건에 걸리고 저 사건에 걸립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대로 가려고 해도 못 갑니다.

자기를 다 죽이고 자기를 부인해야 마음이 넓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만 즐겁고, 하나님의 말씀만 생명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그 말씀대로 걸리는 것 없이 훨훨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마음이 좁으면 걸려서 못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넓혀야 걸리는 것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말씀을 받아서 생명의 길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