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17-20
누가복음 10:17-20
17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1.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됨
칠십 인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보고 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너희들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1에는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세를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문둥이를 깨끗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권능을 예수님이 주셨습니다. 그 권능을 가지고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귀신들도 항복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약한 사람이 강해지고, 죽을 영혼이 살아나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시 잠깐 후면 지나가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기쁨은 죄악의 낙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25에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은 상급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의 낙은 죄악의 낙으로 잠시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즐거움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 충성하면 영원한 영광의 즐거움이 오게 됩니다.
우리의 이름이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됨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됐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언제 기록되었는가? 시편 139:16에 “네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우리가 이 세상에 나기 전에 즉 창세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하나님이 기록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생명책이 있고 또 다른 책이 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구원을 받고 다른 책에 기록된 사람은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하고 믿는 것은 성령으로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1서 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는 뜻은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중생한 자이고, 또 하늘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기록된 것이 아니고, 창세전에 그 사람의 이름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을 불러서 믿음을 선물로 주어서 예수님을 믿게 한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뿌리가 창세 전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믿음의 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창세 전에 뿌리가 있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해 놓은 사람이 죄로 인하여 멸망을 받을까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대속해 주시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빌립보서 4:3에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와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나? 없나?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합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믿어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면 그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고, 안 믿어지면 기록된 사람으로 볼 수없습니다. 아직도 안 믿어지는 사람은 앞으로 믿어질지 모릅니다. 앞으로라도 믿어지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지운다는 뜻
요한계시록 3:5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였고, 출애굽기 32:33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지울 수 있는가? 회개하고 믿으면 생명책에 기록했다가, 죄 지으면 지워버렸다가, 또 회개하고 믿으면 생명책에 기록을 했다가,
또 죄 지으면 지워버렸다가 하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생명책에 한 번 기록해 놓았으면 절대 그 이름을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생명책에 이름 있는 사람을 반드시 하나님이 찾아서 예수를 믿게 하시고 또 그 사람에 대해서 성령께서 책임을 지고 믿는 일을 하게 하시고, 그 사람이 믿는 일을 안 하면 징계하셔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을 끝까지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그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말이 아니고 그 사람의 믿음 지킨 일.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한 일의 공로를 지워버린다는 말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은 그냥 있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한 것, 믿음 지킨 공로를 다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하고 하늘나라 가면 믿음 지킨 것이 다 없어집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그것은 남아 있고, 남아 있으면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 믿음을 지키다가 그 다음에 뒷걸음을 쳐서 믿음을 못 지키고 죄만 지으면 그 공적을 지워버립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15에 공력이 다 불타고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금, 은, 보석으로 지어서 영광스러운 구원에 들어가는데 이 사람은 공력이 다 불탔으므로 불붙은 집에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일생 동안 한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 하늘나라에는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음
마태복음 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 가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습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는 사람이 있고 크다 일컬음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겠습니까?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큰 자입니다. 성경 말씀 작은 것 하나라도 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 자는 하늘나라에 가면 작은 자입니다. 자라나지 못 한 것은 아직도 지혜도 어린아이고, 깨닫는 것도 어린아이고, 힘도 어린아이고, 아는 것도 어린아이고, 활동가는 것도 어린아이이므로 하늘나라에 가면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자란난 사람은 자라난 대로 가고, 자라나지 못 한 사람은 자라나지 못 한 사람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자이지만 범죄 했기 때문에 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징계를 내려서 다시 회개시켜서 왕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전에 했던 것은 다 무효입니다. 다윗이 재 출발해서 잘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가면 다윗이 영광스러운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아직도 너희가 어린아이다” 하는 데가 많습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너희가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젖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을 초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젖입니다. 교회에서 쉽게만 가르치면 안 됩니다. 좀 깊은 진리,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그 힘에 의지해서 믿는 일도 하고 자라날수 있습니다. 젖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 된다”하는 것만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됐
다 그러므로 아무 할 것도 없고 다 된 것이라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라나지 않으면 이는 젖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단한 식물을 먹는 말씀의 해석은 “하늘나라에 가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 자라나는 자가 있고 못 자라나는 자가 있다, 상급을 받는 자도 있고 못 받는 자가 있다, 또 믿음 지키는 공로가 생명책에 같이 기록이 된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바치고, 다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이 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있다”하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이 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 간다”이것만 하면 할 것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여기에 대해서 단단한 식물도 있고 젖으로 먹는 식물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말씀을 지키느라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예수님을 어디든지 좇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때 에누리 하지 말고 다 지켜야합니다. 사울왕은 에누리 했다가 왕권을 빼앗겼습니다. 아말렉 사람을 다 죽이라 했는데 아말렉 왕을 안 죽였습니다. 아말렉 사람 몇 십만 명 다 죽이다가 아말렉 왕 하나 안 죽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지켰사옵나이다”할 때 사무엘은 “네가 지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 지켰다”하고, 사무엘은 “네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순종하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다 죽이라고 하였는데 하나 안 죽였으므로 불합격입니다. 다 지켜야 됩니다. 다 지키다가 한 구석이라도 남기면 다 지킨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모여서 집안에서 놀다가 집안에 똥을 쌌다고 합시다. 주인이 와서 종에게 다 치우라고 했습니다. 다 치우다가 구석에 있는 것은 안 치웠습니다. 안방, 건너 방, 마루 방 등은 다 치웠는데 한 구석에 있는 것은 안 치웠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다 치웠느냐?고 물어 볼 때 종이 다 치웠다고 하였습니다. 다 치웠는데 냄새가 왜 나느냐? 저 구석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어 볼 때 답변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소나 양을 다 죽이라 하였는데 살찌고 어린양은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가지고 왔단 말입니다. 하나님께 제사 하려고 가지고 온 것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실은 자기가 먹으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제사 하려고 가져왔다는 말은 대의명분 세우려고 하는 말입니다. 속에 들어가 보면 자기가 먹으려는 이기주의입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지키고 불리한 것은 안 지킵니다. 성경말씀이 자기에게 유리하면 지키고 불리하면 지키지 않는 것은 사울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울을 버렸습니다.
회개하라고 사무엘이 몇 번을 말했지만 사울이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높여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아각 왕을 찍어 쪼갰습니다. 사무엘이 사랑이 많고, 긍휼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말씀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끝까지 찍어 쪼개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땅 끝까지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하나님이 귀하게 쓰셨습니다. 말씀 지키는 일에 에누리 하는 것은 못씁니다.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다 지킨 사람은 있는가? 말씀을 다 지킨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키려고 하다가 실수해서 못 지킨 것은 회개하면 됩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하다가 실수해서 못 지킨 것은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의식적으로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가 됩니다. 그것은 영광을 못 받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아각 왕을 죽이기 전에 회개하였으면 됩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아각 왕을 죽인 다음에는 회개할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죽였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보고 죽이라고 하였을 때 안 죽였으므로 이젠 죽일 수가 없습니다. 회개도 기회가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됩니다.
다윗왕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첫째 하나님 명령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다가 실수하면 회개하고 또 실수하면 회개할지언정 의식적으로,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말로 남을 속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보시기에 양심을 똑바로 써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다윗도 한 번 실수했기 때문에 전에 한 것은 다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재출발 했습니다. 어떻게 회개를 했습니까? 침상이 뜨도록, 요가 썩도록 회개 하였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급이 “값없이 주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상이 “달려갈 길을 가고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싸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면류관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에게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라도 네 영혼을 찾은즉 네 예비한 것은 뉘것이 되겠느냐?”고 하였는데 자기를 위해서 쌓아두고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치 못 한 자는 다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서 쓰라는 것입니다.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있을 것이며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있는 것을 팔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하늘에 보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이 되었는데 우리 이름에 달린 것이 많아야 합니다. 그 아래에 붙은 것이 많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희생한 것, 주를 위해서 바친 것, 주를 위해서 충성한 것, 주를 위해서 말씀 지킨 것 등은 우리의 이름 아래 다 달아 놓습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안 지키면 반드시 생명책에서 도말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키면 생명책에 그대로 올라갑니다. 얼마나 주를 위해서 내가 수고했냐? 주를 위해서 내가 얼마나 봉사했느냐? 주를 위해서 얼마나 바쳤느냐? 주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느냐? 주를 위해서 믿음 지키느라고 얼마나 십자가를 졌느냐? 얼마나 고난을 받았느냐? 얼마나 희생하였느냐? 주를 위한 희생이 없이는 생명책에 기록이 못 됩니다. 주를 위해 희생하고 나간 것만 생명책에 기록이 됩니다.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였는데 주를 위해 희생하고 나간 것만 생명책에 기록이 되고 기록된 대로 상급을 받습니다. 신앙을 가지도록 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