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나단선지자의책망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나단선지자의책망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사무엘하 12:1-31 나단 선지자의 책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나단 선지자의 책망
사무엘하 12:1-31

1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2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5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
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15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19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21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3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24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26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27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28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9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30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31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1.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책망함

다윗이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함

본문 1-6절에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2편 3절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이렇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진액이 다 마르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내
리 누르고 뼈가 다 쇠하고 종일 신음하는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시편에 회개하는 시가 여러 군데에 있는데 그것을 보면 다윗이 죄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얼마나 신음하고 얼마나 괴로움을 당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 51장에 보면 흑암을 당하여 하나님이 멀어졌습니다. 주의 성령을 다 거두어 갔습니다. 시편 51편 9-11절에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라고 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시고 즐거움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시편 51편 7절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우슬초는 쓴 것이므로 많은 쓴 고난을 당한 것을 말합니다. 또 시편 51편 3절에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죄가 항상 그 앞에 있어서 죄 때문에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길 수 없음

시편 51편 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다음에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고 사람 앞에서는 범죄하지 않은 것처럼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라고 한 것을 보면 주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항상 주 앞에 나갈 때마다 죄로 인해 가책이 되고 또 주님이 멀어지고 성령의 감동이 없어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죄악이 주는 고통은 이와 같습니다. 다윗이 죄 값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이 성령을 거둬 가시고 죄가 항상 그 앞에 있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내리 누르고 종일 신음하게 되고 고통에 빠지고 진액이 다 마르고 뼈가 다 쇠하는 이런 죽을 지경을 당하는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나단 선지를 보내신 이유

하나님께서 왜 나단 선지를 보내셨겠습니까? 나단 선지는 전에도 늘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다윗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선지자였습니다. 또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도 성전을 짓지 말라고 나단 선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단선지는 다윗에게 가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고 또 다윗은 나단 선지가 전해주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늘 믿고 그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나단 선지는 다윗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선지자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것입니다. 나단 선지가 가니까 하나님의 귀한 종이 오는 줄로 알고 다윗이 영접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자이고 한 집은 가난한 집이었다, 그 부잣집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옆에 가난한 집에는 아무것도 없고 암양 새끼 한 마리만 기르고 있는데 그 암양 새끼는 주인과 같이 먹고 한 잔에서 같이 마시고 귀중히 아끼며 애착심을 두고 딸과 같이 기르는 양이다, 그런데 어떤 행인이 부자에게 왔는데 그 부자가 자기네 집의 많은 양과 소는 잡지 아니하고 그 옆에 가난한 집의 딸과 같이 기르는 양 새끼 하나를 끌어다가 잡아 나그네를 대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노를 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는데 사형선고를 내린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양은 사 배나 갚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대로 갚으라고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22장 1절에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고 하였으므로 법대로 양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노하여 이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그때에 나단 선
지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2. 다윗이 받을 징벌을 선고함

다윗의 범죄 사실을 알게 해 줌

본문 7-10절에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선고가 내려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한 마디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돌려서 얘기하면 안 되겠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양도 많고 소도 많았는데 남의 하나밖에 없는 것을 빼앗아다가 잡아서 손님을 대접한 부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명백하게 한 마디로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알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에는 설명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양을 먹이던 목장에서 너를 불러내어 네게 기름을 붓고 또 사울이 여러 번 너를 죽이려고 했지만 내가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라고 하였습니다. 간음 죄를 짓고 우리아를 죽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죄라는 것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에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업신여기고 간음을 했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우리아를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징벌 1.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할 것임

본문 9-10절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 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칼이 영영히 네 집에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인 죄 값으로 칼이 영영히 네 집에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죽이는 일, 서로 죽이는 일이 네 집에 계속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징벌 2. 다윗의 처를 취해 다른 사람이 동침할 것임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아를 죽인 죄 값으로 칼이 네 집을 떠나지 않고 서로 죽이는 일이 계속될 것이며 너는 은밀히 간음을 행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네 아내들과 동침할 터인데 백주에 동침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징벌 3. 아이가 죽고 원수에게 크게 훼방거리가 될 것임

본문 14-15절에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것을 회개함으로 사해주셨지만 범죄한 일 때문에 원수에게 훼방거리가 되게 되었습니
다. 원수가 범죄한 것을 모르지만 죄를 지으면 원수가 일어나서 훼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밧세바가 나은 아이가 다윗의 죄 값으로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다윗의 죄를 사하여 죽지 않게 하심

본문 13절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하고 다윗이 꺼꾸러졌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
이 참 믿음이 있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실수해서 죄를 지었지만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꺼꾸러져서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고 하였는데 보통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죄를 자복하는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죄를 자복했습니다. 왕의 위치에서 일개 선지자에게 내가 죄를 범했다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을 책망할 때에 보통 왕들은 다 그 선지자를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자기를 책망하는 선지자를 죽인 왕도 많고 감옥에 잡아 가둔 왕도 많았는데 다윗은 즉시 꺼꾸러져서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나단 선지를 존중히 여겨 긍휼히 여김을 받은 다윗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만일 다윗이 회개하지 않고 나단 선지를 보고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지 말라,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고 하면서 “잡아 가두라”고 하든지 “잡아 죽이라”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나단 선지는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깨끗해지지 않습니까? 그만한 권세가 다윗에게 있습니다. 말 한 마디면 얼마든지 감옥에 가둘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얼마든지 잘 해나갈 수 있는데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고 선지자 앞에 꺼꾸러져서 회개하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잠언 28장 13절에 “죄를 자복하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실수해서 죄를 범할 수 있지만 자복하고 회개하면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자복하지 않고 나단 선지를 감옥에 가두었든지 죽였든지 했으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죽이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십니다. 원수가 쳐들어오게 해서 죽이든지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해서 죽이든지 하여간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죽은 왕도 많고 또 원수가 쳐들어 와서 전쟁에 나가 죽은 왕도 많지 않습니까? 죽습니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나단 선지를 말 한 마디면 가두게 할 수 있고 죽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만 더 커집니다. 

일이 더 커지고 자기는 죽고 하나님의 저주와 앙화를 당장에 받아 즉살되고 그만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신다고 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긍휼히 여겨주실 것이고 또 나단 선지도 회개하니까 말을 좋게 해 주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라고 하였는데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다 사해주셨다, 그러므로 당신이 죽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번에 회개하지 않았으면 죄 사함도 못 받고 죽었을 것인데 회개했으므로 죄를 사함 받고 죽지 않게 되었다”라고 한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회개하면 다 사해주십니다. 피와 같이 붉은 죄라도 회개하면 눈과 같이 희게 해주시고 진홍과 같이 붉은 죄라도 회개하면 양털과 같이 희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
에서 잡힌 여자가 끌려왔는데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 여자를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때려죽이렵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모인 자들이 다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는데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고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하셨고 여인이 “주여 없나이다”하고 대답하니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자를 예수님께서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 다음 말이 중요한데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진짜 회개라는 것은 자기의 죄를 원통히 생각하고 ‘죽으면 죽었지 내가 왜 그런 죄를 지었을까? 생명과 바꾸어 놓고 다시는 죄를 범치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용서해주십니다. 다시 죄를 범치 않는 것이 중요합
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다 용서해주셔서 이제는 그 죄를 기억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사 43:25). 깨끗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다 사해주긴 하시지만 죄로 인해서 오는 벌은 받게 되어 있습니다.

3. 다윗의 아들이 병들어 죽음

다윗이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여 금식하고 하나님께 간구함

본문 15-18절에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 아이가 병이 들었습니다. 나단 선지가 그 아이가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그 아이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아버지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그 아들이 죽게 되었므로 기도하는 것인데 기도하는 것이 자기의 책임이고 사명이고 의무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당장 아이가 병이 나서 고통을 당하므로 부모의 입장에서 가만히 둘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은 당연하고 또 기도할 때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병이 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은 그 부모의 책임이고 또 가족의 책임입니다. 또 성도가 병이 났을 때 기도해주는 것이 성도 간의 책임입니
다. 또 기도할 때에 다윗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땅에 엎드려 금식을 하면서 밤이 맞도록 전심전력을 기울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그 책임을 다 감당하고 자식을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해준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죽기 전에 아무리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가서 다윗을 보고 일어나 잡수라고 하여도 일어나지 않고 먹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기도하는 데에 열중을 하고 일심정력을 하느라 밥을 먹지 않고 권면을 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신복들이 “그 죽은 사실을 다윗에게 고할 수가 없다, 살았을 때에도 저렇게 음식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엎드려서 이레 동안 있었는데 이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히 훼상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복들이 가만히 보니까 수군수군합니다. 이에 다윗이 아이가 죽지나 않았나 하고 물어보니까 죽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의 믿음

본문 20절에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입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난 뒤가 다른 사람과는 반대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죽기 전 병이 났을 때에 금식을 하며 기도하면서 먹지도 아니하고 엎드려가지고 있다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완전히 다 넘어가고 이제는 반죽음을 해서 뒤로 이불을 쓰고 누워 손목이 다 풀렸을 것 같은데, 다윗은 그것이 아닙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다 먹었습니다. 아이가 병이 나기 전과 같이 여전했습니다. 죽었지만 죽기 전과 같고 병이 나기 전과 같이 여전했습니다.
원상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복들이 너무 이상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본문 21-23절에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이 책망을 받고 회개한 증거입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일을 바로 세워보려고 혹시 하나님께서 살려주실까 금식하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죽었으니까 일이 다 끝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은 이제 잊어버리고 거기서 새 출발하는 것이 바
로 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죽었으니까 일단 끝이 났는데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는 사건을 괜히 자꾸 생각하고 울고 그것 때문에 계속 슬퍼하면 이것은 마귀나 기뻐할 것이고 자기에게 손해만 날 것입니다. 일이 절대 바로 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일이 바로 되겠습니까? 살려낼 수 없는 것을 괜히 자꾸 생각하는 것은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자기 정력만 소모하는 것입니다. 자기 할 일만 못하는 것이고 마귀가 모든 것을 빼앗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함

그러므로 일단 일이 하나 끝난 다음에는 다 잊어버리고 거기서부터 새 출발하여 “죽은 자는 죽은 자끼리 장사하게 내놓고 너는 나를 따라라, 너는 산길을 걸어가라, 죽은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산길을 걸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장사하고 가겠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사는 길이고 건설적인 것이고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줄로 알고 다시 고칠
수 없는 일이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산 일, 살아나 갈 일을 해나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잊어버리기를 잘해야 합니다. ‘다망(多忘)’, 많이 잊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서 달음박질하라고 빌립보서 3장에서 말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일단 끝난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괜히 끝난 것을 자꾸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이제부터 앞에 있는 푯대만 향해서 달음박질해야 사는 길로 걸어갈 수 있고 자기도 살리고 남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어버리기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잊어버려지지 않고 자꾸 생각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할머니 한 분의 아들이 죽었는데 죽은 그 아들이 생각나고 또 생각나고 또 생각나고 자꾸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죽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는데 죽은 아들 때문에 병이 나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병이 나서 죽게 되었는데 죽으면 또 뭘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거기다가 다 소모하고 시간을 거기다 다 소모해 놓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라고 산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산일은 하나도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 유형은 다 끝났고 다시 살릴 수가 없으니까 정신이 퍼뜩 들어서 ‘남편이 하던 일을 내가 해야 되겠다’고 하면서 아이들보고도 “이제는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우리가 하자, 일어서라”며 힘을 써서 기운을 차리고 나가서 일하고 아이들을 격려하는 유형의 아내입니다. 그 가정은 잘 되어 나갑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보다 더 잘 되고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래에 잘 됩니다. 또 자기도 구원을 잘 이루어나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유형은 맥이 탁 풀려서 ‘아이고 이제 다 끝났구나, 이제는 하늘이 다 무너지고 땅이 다 무너지고 다 끝장이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밤낮 울기만 하고 무덤만 찾아다니고 그저 맥이 탁 풀려가지고 아무것도 못하는 부인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도 일이 다 안되고 자기도 일이 안 되고 믿음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남편은 데려가실 때가 되어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열매가 익어서 하나님께서 따 가신 것입니다. 자기 열매를 익힐 생각을 해야지 자꾸 그 생각만 해서 자기 할 일을 다 못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성경대로 하려면 다윗과 같이 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하십시오.
일단 죽은 다음에는 ‘끝났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끝나게 하신 것이므로 이제는 다시 변경시킬 수 없다, 살릴 수 없다, 끝이 났으니까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내가 살아나가는 일, 영적 생명이 사는 일, 또 육신도 사는 일, 믿는 일,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겠다’
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고 뒤에 것은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 것만 바라보고 나가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새 출발하는 신앙을 가지라

다윗의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죽었으므로 끝났고 이제는 새 출발이다’라고 하면서 목욕을 하고 의복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고 무엇을 해도 오늘부터 하자고 하면서 나가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또 사람 죽은 것뿐만 아니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사업이니까 끝이다’라고 하면서 빚잔치할 것은 아예 빚잔치하고 끝맺으라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 출발이라고 하면서 새 출발을 해나가야 합니다. 안 될 것을 괜히 붙잡아서 함정에 점점 빠져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다가 안 될 것 같으면 정리해야 합니다. 정리해서 ‘이제는 끝이다’하고 반값을 받든지 삼분의 일을 받든지 다 끝내야 합니다. 끝내고 이제부터는 나가서 다른 일을 찾아해야 합니다. 할 것이 없으면 노동이라도 하고 파출부라도 하고 아무 일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 출발을 하면 살 길이 생깁니다.
또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앞길이 열립니다. 실패는 성공의 기초인데 앞으로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공연히 실패한 것에 미련을 두면 안 됩니다. 아예 미련을 딱 끊어버리고 ‘이제부터 나간다,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새 출발해서 나간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하겠습니다. 

4. 솔로몬을 낳음

솔로몬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심

본문 24-25절에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이 회개했습니다. 또 범죄한 벌로 아들이 죽은 후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싹 다 끊어버리고 새 출발하므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주셨는데 더 좋은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나단 선지가 와서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하였습니다. 여디디야는 ‘여호와께 사랑을 입
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아이는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아이이고 먼저 아들이 하나님께 징계 받아서 죽었지만 네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끊어버리고 새 출발하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왕이 되고 장차 그리스도가 여기서 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라는 말에는 ‘평화’라는 뜻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살 길임

범죄했어도 회개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물론 범죄한 영향력은 많이 옵니다. 원수가 훼방하고 아들이 죽고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 아내들이 간음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새 출발하니까 다시 희망이 생겼고 서광이 비춰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
고 앞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윗의 왕통을 계승할 사람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살 길입니다. 또 지나간 것은 다 끊어버리는 것이 사는 길이고 새 출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5. 다윗이 암몬의 수도를 쳐서 취함

군대장관 요압의 지혜

본문 26-31절에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상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고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랍바는 아주 물들이 많은 성으로 여러 성에서 이 성에서 흐르는 물을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 중요한 성을 요압이 거의 다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아주 잘했습니다. 자기가 전쟁을 하여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놓고 왕이 이 성을 취했다고 하기 위해서 왕을 오라고 한 것입니다. 군대장관으로서 자기의 이름이 너무 높아지고 자기가 무엇을 했다는 공력을 세우는 것보다 왕이 점령했다고 되어야만 온 이스
라엘 백성이 왕을 더욱 존경하게 될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또 이방나라 사람들도 다윗 왕을 더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가 더 잘 될 것으로 여겨 이렇게 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왕을 우러러보고 왕을 존경하고 왕의 명령을 잘 듣게 해야 온 이스라엘이 잘 될 것이 아닙니까? 요압이 취하는 것보다 왕이 취하는 것이 몇 백 배 효과가 있습니다. 왕이 취하면 이스라엘 전체가 발전되고 부흥되며 이스라엘 전체가 잘 되어 나가고 이방 사람들에게 대해서 권위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높아지므로 큰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거의 다 이기게 되었을 때 군사를 모아서 움직여 쉽게 랍바 성을 취했습니다. 

금 면류관을 머리에 쓴 다윗

그리고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서 그 도성을 취하고 왕의 면류관을 빼앗은 것까지는 잘 했는데, 그것을 자기가 쓰지 않고 전에 하던 대로 여호와께 드렸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
다(삼하 8:11-12). 전에는 이렇게 여호와께 잘 드리던 사람이 오늘은 자기가 썼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회개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전만 못합니다. 그까짓 것을 쓰면 무엇하겠습니까? 아무리 금 면류관이 좋다고 해도 몇 년이나 쓰겠습니까? 몇 년 있다가 다 내놓고 갈 것 아닙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으면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남아있을 것인데 시시하게 남이 쓰던 것을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보면 다윗이 금 면류관을 아마 한 번 써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나도 금 면류관을 한 번 써보면 좋겠다’라고 늘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마침 그것이 생기므로 머리에 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면류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만 둬야합니다. ‘금반지 나도 끼면 좋겠다’고 하다가 “금반지가 어디 하나 있다”고 하면 “나 달라”고 해서 갖다 낍니다. 그런데 금반지를 끼면 무엇을 합니까? 금반지를 끼면 손가락이 시원합니까? 금반지를 끼면 평안합니까?
그 다음에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 오고 마지막 절에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다 승리하고 다윗이 면류관을 받아쓰고 돌아왔습니다. 

과거의 것을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는 생활이 중요함

이제부터 다윗의 역사는 고통의 역사입니다.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지만 사무엘하 13장에는 암논이 다말을 강간합니다. 15장에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일이 나옵니다. 오점에서 오점으로 역사가 내려가게 됩니다. 범죄를 한 번 하게 되면 이렇게 계속 창성
하고 번성하던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점점 쇠퇴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 죄입니다. 죄가 무서운 것이지 도적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산중에 있는 도적보다 심중에 있는 도적이 더 무섭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도적, 옛사람,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것을 잘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고 또 외부적으로 잘 될 것입니다. 내내 잘 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더불어 싸우지 못하고 죄에게 져서 죄를 범하면 그만 큰 손해를 봅니다. 그래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는 해 주십니다. 용서는 해 주시지만 그 영향력이 굉장히 큽니다. 원수가 비방하고 아이가 죽고 아내들을 다른 사람이 동침하며 칼이 떠나지 아니하는 손해가 내내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사랑은 하십니다. 또 좋은 아들도 주십니다. 아들이 앓을 때에는 금식하며 울며 기도하는 것이 좋고 죽은 다음에는 거기서부터 다 끝내야 합니다. 다 잊어버리고 새 출발해야 합니다. 죽은 아이는 살아나지 않습니다. 자꾸 죽은 아이 생각이나면 생각이 안 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이 안날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생각나면 생각이 안 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진도 없애고 죽은 사람이 쓰고 살던 것도 다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보면 또 생각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생각날 만한 것이 있으면 다 집에서 정리하고 또 생각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믿으려고 바짝 힘을 쓰면 생각이 안 날 것입니다. 그리고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건설적으로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음박질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분투, 노력하면 새로운 은혜를 받고 새 출발을 하고 새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여기 더 좋은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앞 길을 열어주셔서 사랑도 받게 되고 화평도 오게 되고 그 솔로몬을 통해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가 건설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도 이루어 나갈 수 있고 모든 것을 잘 이루어 나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잘 배워서 믿음으로 나가야겠습니다. 또 사람 죽은 것뿐 아니라 모든 일도 한 번 지나간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끝난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회복할 수 없는데 끝난 것을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제부터 바로 할 생각, 살아나갈 궁리, 앞에 있는 소망만 생각하고 나가야 합니다. 

많이 잊어버리는 것이 건강법입니다. ‘다망’, 많이 잊어버려야 합니다.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에 이 궁리 저 궁리 한 광주리 이고 돌아가면 밤잠도 자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도로 쌓여서 병이 납니다. ‘일소오다(一小五多)’라는 건강법이 있습니다. 한 가지를 작게 하고 다섯 가지를 많이 하는 것인데, 작게 먹는 것 하나와 다섯 가지 많이 하는 것 중 첫째가 ‘다망’입니다. 머릿속에 들어오면 그저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많이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꽁’해가지고 한 가지를 가지고 일 년 내내 두면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납니다. 그 다음에는 ‘다솔’입니다. 속에 분비물을 많이 내보내는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대소변 을 잘 보고 땀을 흘려서 일하고 속에 있는 것을 다 내보내야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다동다휴’인데 많이 움직여야 됩니다. 일을 많이 하고 걸음을 많이 걷는 것이 좋은데 전도부인들이 걸음을 많이 걷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권찰들도 심방하면서 자꾸 다니며 많이 걸으십시오. 그리고 쉴 수 있는 때에는 많이 쉬라는 것입니다. 많이 움직이고 많이 쉬고 또 한 가지는 ‘다접’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꽁’하고 앉아있지 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하라는 것입니다. ‘일소오다’가 건강법입니다. 작게 먹고 많이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이외에는 다 잊어버리십시오.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잊어버리고 빈 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오면 좋지 마음이 복잡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믿는 일도 잘 하고 몸도 건강하고 모든 것이 다 잘되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