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므낫세의회개와아몬의행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므낫세의회개와아몬의행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역대하 33:1-25 므낫세의 회개와 아몬의 행적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므낫세의 회개와 아몬의 행적
역대하 33:1-25

1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을 치리하며 2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3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4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5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6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7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찌라 8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한 일 곧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9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
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10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 11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간지라 12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13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14그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생선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장관을 두며 15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단을 다 성 밖에 던지고 16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17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18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 하나님께 기도한 말씀과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받들고 권한 말씀이 모두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에 기록되었고 19또 그 기도와 그 기도를 들으신 것과 그 모든 죄와 건과와 겸비하기 전에 산당을 세운 곳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세운 곳들이 다 호새의 사기에 기록되니라 20므낫세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궁에 장사하고 그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1아몬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을 치리하며 22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23이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24그 신복이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5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라

1. 므낫세 왕이 성전 안에 우상과 그 단을 쌓아 성전을 더럽힘

본문 1-5절에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 받아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되어 55년을 치리하였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악을 많이 행했습니다. 므낫세의 아버지는 히스기야 왕인데, 히스기야는 아주 선한 왕입니다. 이처럼 선한 아버지에게서 악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자에게서 선한 아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므낫세 왕이 부친 히스기야 왕이 철폐한 산당과 가증한 우상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한 것입니다. 좋은 전통을 귀히 여기지 아니라고 자기 주장대로 나가며 악을 행한 것입니다.

본문 6-9절에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찌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한 일 곧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여 죽게 만드는 우상 숭배의 의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악한 행동입니까? 그외에도 므낫세 왕이 점과 사술(邪術)과 요술(妖術)을 행하도록 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가까이 하였습니다. 박수는 점을 치는 남자 무당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이 므낫세 왕의 꾀임에 빠져 성전에서까지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더 심한 악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미혹을 받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미혹을 받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므낫세가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가 회개하여 귀국함

하나님께서는 겸비하여 회개하는 자를 권고해주심

본문 10-13절에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간지라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하였습니다. 

우리도 징계를 받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므낫세가 아세라 목상, 바알 신 등 모든 우상을 사방에 세우고 성전 마당에서는 일월 성신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는 아로새긴 목상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그가 여러 우상을 섬겼습니다.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는 자녀를 불사르는 우상을 섬겼고, 점치며 사술하며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 값으로 앗수르 군대에 사로잡혀 쇠사슬로 결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므낫세는 이런 징계를 받고 회개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크게 겸비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징계를 받을 때에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권고해주십니다. ‘크게 겸비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기가 과거에 가졌던 모든 교만을 다 내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을 가지고 그 마음을 전폭적으로 쏟아 부은 것입니다. 언제나 회개하는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을 권고해주시고 상한 심령을 가진 자를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야 하고 회개하며 자신을 부인하는 자리에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목이 곧아서 낮아지지 않고 자기 주장대로만 우기며 나가는 사람은 아주 멸망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회개하는 사람, 겸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 받을 때에 더욱 강퍅해지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사람임

그런데 환난을 받으면 더 강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개했나 보다’하고 보면 더 강퍅해지고 반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에 있는 어떤 교역자가 교회에서 시무하다가 그 교회에서 쫓겨나서 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때에 그 교역자가 회개했어야 하는데, 회개는 하지 않고 쫒아 내보낸 사람들만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은 깨닫지 않고 그 사람들이 아주 나쁘다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도 그렇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앞으로 문제입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낮아져서 통회해야겠는데,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여기고 여전히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자기 잘못을 깨닫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과(自過)는 부지(不知)’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의 허물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잘못한 것만 생각하며 우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사고가 납니다. 물론 자기도 잘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다 잘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가 잘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다른 면에서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잘한 것만 생각하고 우기며 나가다가는 싸우게 됩니다. 이렇게 다투고 깨져나가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데까지 이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도 드리지 않고 자기가 왕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7-8절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의기양양함으로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왕 노릇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잘되는 것 같지만 조금 있으면 다 망합니다. 

또 조금 있다가 망하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아예 망하기 전에 회개해야지, 다 망하고 죽게 되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하고 온유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각자가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겸손한가? 겸손하지 않은?’를 생각해 보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왕 노릇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겸손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살 길이 생길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정도(正道)를 통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이럴 때 들었으면 되는데 므낫세 왕이 안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비참한 가운데 빠지니까 비로소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징계 가운데 깨닫는 사람이 복을 받음

깨닫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고 은혜를 받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환난을 당할 때에 깨닫고 회개하며 겸비하는 사람,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기도만 하지 말고 겸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깨닫고 겸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낮아지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간구를 들으십니다.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겸비는 느부갓네살 왕의 기도에 나타납니다. 처음에 느부갓네살 왕은 ‘나’ 소리를 세 번 하며 교만하였습니다. ‘내가 했다, 내 것이다’라고 하며 자기를 위하였기 때문에 교만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왕궁에서 쫓아내셨는데 쫓겨난 후에는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은 들짐승에게 쫒기고 이슬에 젖었습니다. 또 머리털은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은 새의 발톱같이 되어서 짐승같은 생활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교만하면 이와 같이 짐승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삶이 거칠어집니다. 사람이 사는 안식 세계에서 살지 못합니다. 가려지는 것도 없고 쓸쓸하고 비참하게 됩니다. 또 자기를 단속하지 못합니다. 머리털과 손톱이 자라는 대로 놔두는 것인데, 그것은 자기 단속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살만한 곳에서 살지 못합니다. 언제나 부대끼고 괴로우며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또 먹을 것도 못 먹습니다. 신령한 양식을 못 먹는 것입니다. 풀이나 먹고 껍데기만 먹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느부갓네살이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4장 34-35절에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교만으로 짐승 생활을 하였지만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우러러 본 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라고 하였는데, 자기 자신부터 없앴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도 없는 것처럼 되어야 합니다. ‘무(無)’요 ‘공(空)’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개를 할수 있습니다.
셋째는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하나님이시지, 그 뜻을 조금도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뜻은 다 없어져야 합니다. 제 뜻, 제 생각은 다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부터 ‘무’요 ‘공’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해나가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주권을 깨달아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비참한 가운데 거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 하나님 뜻대로만 가야 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에 그의 총명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만 우러러보고 자기는 다 깨져 나가서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제 뜻대로 하려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참된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크게 겸비하였다는 것은 자기가 다 깨져나가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나가며 하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앙모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을 깨닫고 자기를 깨뜨리며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임

본문 13절에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세 왕이 회개하니까 다시 왕위에 올랐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왕위에 세워주실 것이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영영히 망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줄을 알았습니다.
므낫세의 지금 상황은 느브갓네살 왕이 회개한 다음에 하나님을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깨져 나가는 것이 회개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는 줄을 깨닫는 것이 회개입니다.

3. 므낫세가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며 제사를 드림

므낫세가 회개 후 실천한 일

본문 14절에 “그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생선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장관을 두며”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한 다음에는 실행을 하였습니다. 말로만 회개하고 그만 두면 안 되고, 일단 회개한 다음에는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행동으로 옮기고 잘못된 것을 고치며 일을 바로해야 합니다. 실천에 옮기는 것이 바로 된 회개의 열매입니다.

‘다윗 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생선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고’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오벨은 성을 높이 쌓았다는 것입니다. 오벨이라는 성을 높이 쌓은 모양입니다. 과거의 죄 때문에 다 무너졌는데 이제 회개한 다음에 복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힘닿는 데까지 복구를 하는 것입니다.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장관을 두며’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죄 때문에 군대가 전부 미약해졌는데, 이제는 회개하고 군대장관을 다시 두어 정비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죄 때문에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구축하고, 잃어버렸던 군대 장관을 다시 세우는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본문 15절에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단을 다 성 밖에 던지고”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보니 이방 신을 섬기려고 쌓은 단이 너무 부끄럽고 더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 있는 단이나 성전 밖 마당에 있는 것을 헐어서 밖에 내던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단을 중수했다는 것은 자기가 헐었던 것도 다시 쌓았다는 것입니다. 제단을 바로 수축한 것입니다. 또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 드렸는데, 하나님께 눈물로써 회개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린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는데, 이제는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전부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라고 공포하였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회개하므로 큰 열매가 맺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왕이 회개하면 더 큰 열매가 맺힙니다. 왕이 회개하고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또 므낫세가 그 성전과 예루살렘에 있는 우상 단을 훼파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7절에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그 하나님께 돌아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전에는 백성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본문 9절에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세가 범죄할 때에는 백성도 므낫세의 꾀임을 받아 다 범죄하고 우상만 섬겼는데, 므낫세 왕이 회개하고 바로 인도하니까 백성들도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지도자 므낫세의 회개가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침

백성들만 해서는 안 될 뻔 하였습니다. 왕이 회개하자 일이 다 된 것입니다. 윗사람이 하나 회개하면 큰 열매가 맺힙니다. 지도자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은 많은 백성들에게 유익이 됩니다. 또 교역자가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은 온 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 교역자 하나 바로 서는 것이 큰 것입니다. 자신이 바로 서는 것이 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바로 서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장소에서 회개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가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실천에 옮기십시오. 합당치 않은 것은 다 때려 부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고, 또 무너진 성벽을 다시 수축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역자 하나가 바로 선다는 것은 이렇게 큰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참 줏대가 없는 것입니다. 군중 심리라는 것이 사실 아무 줏대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되면 백성들이 잘못된 것을 따라가니 지도자 한 사람이 바로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백성이 다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니 지도자의 책임이 아주 중합니다. 백성은 그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른 교역자가 있는 교회는 바로 갑니다. 그러나 그 바른 교역자가 사면한 후에 잘못 인도하는 교역자가 오면 하루아침에 다 잘못나갑니다. 

청주에 어느 기도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교역자 수양회를 갔었습니다. 그 곳에 한 목사라고 있었는데, 그 기도원 원장이었습니다. 그 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청주 제일교회에서 십여 년 시무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평양 신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보수 신앙으로 목회를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 장로회와 보수 신앙계가 서로 나누어질 때에 자기는 왔다 갔다 하기 싫어서 기독교 장로회 측에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장로회 측에 있어도 자기는 평양 신학교에서 배운 정통보수 신앙 그대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나가는 기독교 장로회 소속으로 10여 년 동안 시무하면서 자기는 어렸을 때 배운 대로, 바른 신학대로 보수 신앙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3년 후, 그 목사가 늙어서 교회를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사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기도원 원장으로 옮겨가고, 후임 교역자로 기독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람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 신학을 공부한 그 목사가 오니까 하루아침에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다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새로 온 후임 목사가 교인들 추도 예배를 진행했는데, 죽은 교인들의 이름을 쭉 다 써붙여놓고 촛불을 하나씩 켜놓고 사진을 갖다 놓고는 그 날은 흰옷을 입고 오라고 하였답니다. 고인(故人)의 가족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서 예배당 안에서 연합 추도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당 안에 우상의 이름을 써 붙인 꼴인데 그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그것이 상당히 가슴 아팠지만 이제 은퇴한 목사로서 아무 권리가 없어서 어찌할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주의 신앙 노선을 가진 후임 목사는 지금 장님이 됐다고 합니다. 

아무 교단에 속해 있어도 나는 나대로 한다는 교역자가 있습니다. 아무 교단에 가입해도 나는 보수 신학을 배운 그대로만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하다가 13년을 하든지 23년을 하든지 33년을 하든지 그만둘 날이 올 것 아닙니까? 병이 나거나 늙어서 그만두게 되든지 어쨌든 언젠가는 강단에 서지 못 할 날이 옵니다. 그만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만 둔 다음에 누가 오느냐가 문제입니다. 자기 교단에 속해 있는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그 강단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은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기독교 장로교에 속해 있었어도 한 목사대로 바른 진리를 가르쳤으니까 괜찮았겠지만, 다른 교역자가 오면 하루아침에 다 뒤집어놓는 것입니다. 그런 목회자가 많고 그런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몇 십 년 동안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것
을 수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몇 십 년 뭐했냐는 것입니다.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몇 십 년 동안 집을 지었는데 집이 다 무너졌으면 해놓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그 강단에서 언젠가는 물러나게 될텐데 신학이 맞는 교단 안에 있어야 그 신학교 졸업생이 와서 자기 후계자가 되고 그 신학을 내내 계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교단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교단이 다 부패하고 신학교도 잘못되었지만, 자기가 소속된 그 교단과는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꿩이 머리만 꽉 틀어막고 숨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임마누엘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다가 꿩을 한 마리 잡아먹었습니다. 동행한 목사랑 같이 잡아먹었는데 얼마 전에 그 목사를 한번 만났습니다. 만나서 얘기하다가 예전에 임마누엘 기도원에 가서 꿩 잡아먹었던 생각나느냐고 했더니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 아들이 커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옆에서 어떻게 잡아먹었습니까? 하고 물어보더랍니다. 그때는 비닐하우스도 없었을 때입니다. 요즘에 우리가 산 기도하는 식으로 산에 올라가서 잔뜩 뒤집어쓰고 앉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전 중에 그렇게 있다가 잠시 점심 먹고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기 저기 앉아 있었는데 그때가 한 오전 열 시쯤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꿩 하나가 ‘꿔꿔’하면서 날아오더니 우리 앞에 나무 단을 쌓아놓은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 머리만 꾹 틀어막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몸통은 이쪽에 다 보이게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앞에 꾹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너무 손
쉽게 잡아서 먹었습니다. 머리를 틀어막았으니까 뒤에서 잡아도 모릅니다. 보여야 알지 않겠습니까? 잡아서 저녁에 요리해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느라 수고한다고 꿩 잡아먹으라고 보냈다고 하면서 먹었습니다. 그때는 잘 먹지도 못할 때였습니다. 처음에 개척들 하느라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고생할 때인데 잘 먹지 못하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꿩이나 먹여야겠다 하시고 그 꿩으로 눈 앞에서 머리 꾹 틀어막고 있게 하신 것 같습니다. 날아다니는 꿩도 잡아먹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꿩은 자기는 자기대로 숨느라고 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고 나 잡아다가 드시오 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백성들은 지도자가 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바로 할 때는 바로 하다가도 지도자가 비뚤게 하면 다 비뚤게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양떼입니다. 그래서 교역자가 중요합니다. 자기가 바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다음 시대에 또 바른 지도자를 세워서 바르게 계승되어 나가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바로 했어도 다음 시대에 바른 인도자를 세우지 못하면 전부 뒤집어놓는 것입니다. 집 짓다가 다 무너지면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바른 신학교를 세워야 하고, 바른 신학생을 길러내야 합니다. 바른 신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고, 바른 교단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교단에서 진리를 바로 세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백성들은 지도자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백성들은 바른 지도자 한 명을 만나면 복을 받을 수 있고, 만나지 못하면 화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지도자 때문에 백성들은 망하기도 하고 잘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산당에서 쉽게 제사 드리려는 정신을 버리고 산당을 없애야 함

므낫세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자고 하니까 백성들이 다 따라갔습니다. 마지막에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고 했는데, 이 산당은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입니다. 산당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상을 섬기는 산당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입니다. 지금 제사를 드린 이 산당은 하나님만 섬기는 산당입니다. 백성들이 성전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산당에서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산당이라면 다 없애야 하는데 왜 없애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동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한 번 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까? 예수님 부친은 예루살렘에 갈 때 사흘 길을 갔다고 했습니다. 한 번 제사하러 가려면 며칠씩 가야 하기 때문에 자기 동네에 가까운 산당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쉽게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가까운 교회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사 가서 가까운 교회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사를 가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떻게 나오려느냐고 하니까 거기에 개척교회 하나를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교회를 따라와야지, 교회가 성도를 따라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정신은 좋으나 쉽게 섬기려고 산당을 폐하지 않은 것은 안 됩니다. 좀 멀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섬기려고 해야 합니다. 바로 믿고 바로 세우고 바른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쉽게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는 하고 성경대로 하려고도 했지만 쉽게 하겠다고 산당을 그냥 놔둔 것입니다. 

산당을 없애야 합니다. 요새도 쉽게 믿고, 쉽게 신앙 생활하겠다는 정신을 없애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일심정력하고 십자가를 지고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바로 됩니다.

어제 저녁에 신학생들과 조사들이 여기 모여서 하루 저녁 기도를 하기로 했는데, 오지 않은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하루 더 해야 되겠습니다. 어떤 신학생이나 조사는 여기 나와서 열두시까지 기도했습니다. 광고를 철저히 하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습니
다. 오늘 저녁에는 확실하게 다시 하겠습니다. 열두 시까지 하고 가서 자는 것입니다. 열두 시까지 하고 가서 자도 4시간은 잘 수 있지 않습니까? 신비주의자, 성령 은사주의자들은 며칠 동안 자지도 않고 기도합니다. 밤새도록 안 자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이틀, 저녁 열두 시까지도 못해서 뭘 하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는 안 하고 열두 시까지 자기들끼리 나가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너무 부족합니다. 기도하러 간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도를 못합니다. 산에 가서도 기도를 못하고 있으니까 이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요새 고등학생들은 3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잔 사람은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것을 ‘삼당오락’이라고 한답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세 시간씩 자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간다고 합니다. 지금 고 3이 되면 일 년 내내 서너 시간 자고 나가는데, 우리는 너무 안일주의입니다. 그러니까 힘써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안일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도를 좀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산당에 제사하는 정신은 쉽게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정신입니다. 그 정신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멀고 사흘 길을 가더라도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하는 정신이 성경대로 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곳에 모여서 제사하라고 하셨지, 어디 산당에서 하라고 하셨습니까?

본문 18-19절에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 하나님께 기도한 말씀과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받들고 권한 말씀이 모두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에 기록되었고 또 그 기도와 그 기도를 들으신 것과 그 모든 죄와 건과와 겸비하기 전에 산당을 세운 곳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세운 곳들이 다 호새의 사기에 기록되니라”고 하였습니다.
‘호새의 사기에 기록되니라’고 하였는데, 이 호새의 사기라는 것은 므낫세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호새는 그 사기를 기록한 사람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사기를 이사야가 기록한 것처럼, 므낫세 왕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호새라는 사람이 사기에다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4. 아몬이 왕이 되어 우상 숭배와 악행을 하다가 피살됨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며 악을 행함

본문 20절에 “므낫세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궁에 장사하고 그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므낫세가 세상 떠난 다음에 그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본문 21-23절에 “아몬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을 치리하며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이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아몬이 이십 이세 때 왕이 되었는데, 아버지의 좋은 점은 본받지 않고 나쁜 점만 본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 다음에 회개하고 바로 하였는데, 처음에 행했던 나쁜 점들만 본받아서 우상을 많이 섬기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부친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라고 하였는데, 므낫세가 버린 우상을 도로 갖다놓았습니다. 므낫세가 우상을 제하여 버릴 때에 다 파괴해서 깨뜨리고 가루로 만들어버렸어야 되는데, 그냥 떼어서 외딴 곳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아들이 도로 갖다 세운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때에 한 것이 좋게 보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므낫세는 회개했지만 그의 아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의 잔상은 아예 제거시켜야 함

히스기야 왕은 우상을 어떻게 했습니까? 다 부숴버렸습니다. 므낫세도 아예 부숴버렸다면 아들이 못 가지고 갔을 텐데, 구석에 갖다 두었던 모양입니다. 버릴 것은 아예 부숴버려야 합니다. 부숴서 쓰지 못하게 해야지, 그것을 구석에 갖다 두면 다른 사람이 와서 또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아예 부숴버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이 죄가 잘못된 줄 알고 완전히 부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부숴버리고 회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는 짓지 않아도 구석에 갖다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때려 부수는 회개를 하지 못하고, 그저 어느 정도만 제거하는 회개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에는 구석 모퉁이에 내버리는 회개를 하지 말고 아예 깨뜨리고 부숴버리며 가루를 만들어서 근거도 없이 만들어야 합니다. 근거를 놔두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근거를 없애 버리라는 것입니다. 

모세 때에 히스기야가 놋뱀을 가루로 만들어서 아예 부쉈습니다. 떼어다가 어느 골방 구석에 갖다 두면 다음에 누가 와서 또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에 가서 세우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아예 잘못된 것으로 알고 때려 부수며 쓰지 못하는 것으로 가르쳐놓으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다시 와서 그것을 가져간다 해도 손도 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멸망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므낫세 왕이 다 때려 부셨으면 아들이 그것을 못 꺼냈을 텐데, 아마 아까워서 부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당시에 아로 새긴 우상을 성전에 세울 때 얼마나 잘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국가의 비용을 들였기 때문에 굉장히 잘했을 것 같습니다. 국보로도 삼았을 수도 있습니
다. 요새도 논산에 은진미륵같은 국보가 있는데, 제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그것을 전부 가루로 만들어서 없애버렸을 것입니다.

요새는 없는 것도 개발해서 무형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무당을 문화재로 하는 것은 정신 나간 것이고 망하는 문화입니다. 성경대로라면 무당은 죽여서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회개하면 살려주고 회개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되어 있다’라고 하여 무당들이 정신을 번뜩 차리고 회개하게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우상의 잔상도 아예 제거시켜야 함

오늘날 교회의 못된 풍습과 잘못된 습관도 이렇게 때려 부숴야 합니다. 구석에 놔두는 정도로 ‘그저 안 하는 것이 좋으니 안 하도록 합시다’라고 하지 말고 아예 때려 부숴버리십시오. 엘리 제사장은 “얘들아,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라. 들려오는 말이 좋지 않으니 그렇게 하지 말아라”고 하였습니다. 때려 부수지는 못하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죄를 짓는다는 말이 들려올 때 제사장 직을 아예 파멸시키고 막대기로 때렸어야 합니다. 나이가 좀 많아도 맞아야지 별 수 있습니까? 

목사들도 맞을 사람은 좀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정신이 번쩍들 것 같습니다. 잘못된 것은 구석에 놓아두면 다시 꺼낼 염려가 있으니 아예 못 쓰도록 가루를 만들어 놓아야 다음에 못합니다. 부수지 않으면 살아 있을 때에야 “얘들아, 하지 말아라”고 하면 하지 않겠지만,
죽은 다음에는 다시 꺼냅니다.

담뱃대도 다 꺾어 내버려야 합니다.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담뱃대를 구석에 틀어박아두면 이 다음에 다시 꺼내게 됩니다. 아예 다 꺾어 내버리고 망치로 부숴버리면 이 다음에 피울 수 없지 않습니까? 아예 꺼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잘못된 모든 풍습
과 습관, 제도도 다 가루로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아예 청산해서 치워야 합니다. 상관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나지도 말고, 부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 안에도 합당치 않은 것은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말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저 떼어다가 지하실에 갖다 두는 정도로 끝내지 말고 아예 가루로 만들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떠난 다음에라도 쓰지 않도록 만들어놔야 합니다.

아몬이 범죄함으로 백성들에게 피살됨

1) 아몬이 겸비치 아니하므로 죽임을 당함

본문 23절에 “이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몬이 나중에 므낫세가 겸비했던 것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겸비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버지의 잘못된 것을 본받았으면 또 회개도 본받아야 했는데, 그것은 본받지 못하였습니다. 본문 24-25절 상반절에 “그 신복이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아몬은 겸비치 않고 잘못 나가다가 아랫사람한테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못나가는 것을 즉시로 고쳐야 합니다. 교역자들도 잘못된 것을 즉시 고쳐야지, 그냥 나가다가는 교인들한테 쫓겨납니다. 아랫사람한테 죽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리를 지켜주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지켜줘야 합니다. 하나님과 말씀이 지켜주는 것이지, 왕의 권세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나가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이 보호해주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고 잘못 나가면 아랫사람한테 죽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에게 부탁하는데 그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보호하고 기업이 있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바로 서야지, 자기가 지금 권세가 있다고 해서 밀고 나가다가는 아랫사람한테 죽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고 겸비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25절에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복이 왕을 죽이고,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국민이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몬 왕이 이렇게 악한 일을 행했기 때문에 그 신복들이 죽인 것입니다. 그러면 신복이 아몬 왕을 죽인 것은 잘한 것입니까? 아몬 왕이 물론 우상을 섬기고 회개치 아니하며 악하게 나가니까 그 신복들이 자기 상관인 왕을 죽이는 데에 이른 것입니다. 왕은 자기의 죄 값으로 아랫사람한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잘못해서 죽였지만 그래도 아랫사람이 자기 윗사람을 죽인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죽이지 않고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인 사울을 자신이 감히 손 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자기를 그렇게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많이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굴 속 깊은 곳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 사울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다윗이 쿡 찌르기만 하면 죽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복들도 죽이겠다고 하였는데,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라. 죄가 없다고 하겠느냐. 가만 놔두어라. 하나님께서 심판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옷자락만 잘랐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윗사람이 잘못할 때에라도 아랫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심판 해주시는 것을 믿고 자기는 손을 대지 않은 다윗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온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죽여서 자기도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윗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를 알 수 있습니다.

2) 왕을 세우고 징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자르고도 마음이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윗사람을 찔러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왕이 잘못은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믿고 맡긴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심판하셨습니다. 만약 다윗이 찔러 죽였으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찌르는 것은 도리어 자기가 죽임을 당하는 것임을 알고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싫으면 슬그머니 그만 두는 것입니다. 자기가 윗사람이나 교단이 싫으면 슬그머니 다른 교회에 가면 되지, 그 교회에서 목사를 쫓아내고 죽여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교인들이 벌을 받습니다. 목사가 물론 잘못했어도 대항해서 끝까지 싸우면 그 사람은 벌을 받습니다. 목사가 잘못하고 있고 그 목사에게 은혜를 못 받으면 다른 곳에 가면 그만인데, 거기서 끝까지 목사를 대적하고 사사건건 물고 뜯고 배척하며 내쫓으려고 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교역자를 헐뜯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의 부부 집사는 목사를 내쫒는데 주동을 해서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윗사람을 이렇게 죽이려고 하고 물고 찢으면 비참하게 됩니다. 교회가 많은데 본인이 다른 곳에 가면 좋지 않습니까? 윗사람도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셨는데, 왜 교회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찢으며 죽이려고 합니까? 이것은 아주 악한 일입니다. 또 목사를 배척하는 사람, 물고 뜯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맞지 않으면 다른 교회를 가십시오.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도 맞지 않으면 슬그머니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서 싸워 끝까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 교단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 교단이 맞지 않으면 물고 뜯지 말고 슬그머니 나가는 편이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그저 조용히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도적질은 하지 말고 가십시오. 교회에서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싫으면 슬그머니 나가서 다른 곳을 개척하면 됩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나가서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와양떼를 다 빼앗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복
을 못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교회 하나를 빼앗아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나가서도 악평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다른데 가서도 교회를 못하면서 왜 남의 교회를 빼앗아서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가고 싶으면 자기 혼자 슬그머니 가면 되지 않습니까? 이리에서 어떤 목사가 교회를 크게 짓는 것을 보고 한 젊은 목사가 공산당의 자금을 받아서 지었다고 악평을 하고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젊은 목사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물고 뜯으니까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설마 교회를 공산당 자금으로 지었겠습니까?

므낫세 왕은 젊을 때 외부의 침략을 받았고 아몬 왕은 내부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죄에 대한 경중(輕重)의 차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침략을 받아서 징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침략으로 징계하실 것이고, 아랫사람에게 당해서 벌을 받을 사람은 또 그렇
게 하실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 교회를 배척하다가 아주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자기는 비참하게 죽고 아들은 정신병에 걸렸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뿌리가 아예 다 빠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역자를 배척하면 심판을 당하며 복을 못 받는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배척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교에서 자기가 배워놓고 나와서는 물고 뜯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역자를 배척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반드시 그 사람의 장래가 비참하게 됩니다. 왜 자기에게 가르침을 준 선생님을 물어뜯습니까? 싫으면 슬그머니 다른 곳에 가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물고 뜯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3) 오늘날 교역자들의 바른 처신 또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이제 교회에 돌아가서 ‘교역자를 배척하면 망합니라’라고 자꾸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시험이 들어오려고 할 때에 ‘교역자를 배척하다가는 벌을 받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면 목사를 좋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회개할 것 같지만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강퍅하게 바뀝니다. 오히려 목사가 나를 저주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반격을 가하는 격이 되고 더 큰 우환이 생깁니다.
교회에 시험이 들어올 때에는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고 자기가 잘못된 것을 찾아 회개하면서 아예 시험과 상관없는 것처럼 강도해야 합니다. 강도할 때에도 시험에 대한 설교를 직접적으로 하지 말고 아예 상관없는 것을 강도해야 감정이 안 생깁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감동을 주셔서 바로 세워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었는데 자꾸 긁어놓으면 더욱 더 시험에 듭니다. 상처가 난 곳에 자꾸 긁어서 피가 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되고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었을 때에는 시험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말고 그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설교를 하십시오. ‘예수가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너라. 자기를 부인하라’ 등 시험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설교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시험에 든 사람이 ‘이 설교 말씀은 나보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사사건건 살피고, 조금만 비슷하면 나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하고 전혀 관계없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걸릴 것이 하나 없게 되고 회개할 사람은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교역자를 반대하다가 저주를 받았다’는 말은 아주 평안할 때, 아무 시험 없을 때에만 한 마디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시험에 들어 있을 때에 이런 말을 하면 오히려 깊은 시험에 드는 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좀 시험에 들면 그 사건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교인들이 점점 더 악화되고 상처가 더 커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런 일을 삼가 조심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