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24
에베소서 6:10-24
10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2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6:10 마지막으로 너희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6:11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기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6:12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대적하고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6:14 그러므로 너희는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이고, 의의 가슴막이를 붙이고,
6: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로 신을 신고,
6:16 모든 것에 대하여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것으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을 능히 소멸시키며,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라.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성도를 위한 간구로 깨어 있어라.
6:19 또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내게 말씀을 주셔서 내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주시라고 하여라.
6:20 이를 위해 내가 사슬에 매인 대사가 된 것은 내가 이 일에 마땅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희가 알 수 있도록,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릴 것이다.
6:22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가 우리의 형편을 알고, 또한 그로 하여금 너희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는 것이다.
6:23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6:11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기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6:12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대적하고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6:14 그러므로 너희는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이고, 의의 가슴막이를 붙이고,
6: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로 신을 신고,
6:16 모든 것에 대하여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것으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을 능히 소멸시키며,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라.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성도를 위한 간구로 깨어 있어라.
6:19 또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내게 말씀을 주셔서 내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주시라고 하여라.
6:20 이를 위해 내가 사슬에 매인 대사가 된 것은 내가 이 일에 마땅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희가 알 수 있도록,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릴 것이다.
6:22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가 우리의 형편을 알고, 또한 그로 하여금 너희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는 것이다.
6:23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2:3절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정병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에는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 마귀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하고, 우리의 신앙으로 마귀를 이기면서 달음박질을 잘 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자신의 구원도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져 나갑니다. 마귀에게 지면 마귀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귀의 뜻만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되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수치를 당하는 자리에 있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고,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됩니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성도의 할 일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도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재능대로 종들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배나 남겨서 하나님 앞에 가야하겠습니다.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한 달란트를 가지고 간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이기면 달란트를 배나 남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신의 구원도 이루고, 할 일을 바로 하고 가지만, 마귀를 이기지 못하면 낭패와 실망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 강건하여 선한 싸움에 승리하라
본문 10-11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 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싸움에 실패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자가 되려면 첫째 강건해져야 합니다. 강건해야 나가서 선한 싸움에 이깁니다. 강건하지 못하면 선한 싸움에 이기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강건해지겠습니까? 자기가 연약해서 비실비실하고, 잘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은 선한 싸움을 잘 싸울 수 없습니다. 선한 싸움에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강건하여야 합니다. 마귀와 더불어 선한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첫째가 강건입니다.
주안에서 강건하라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심령이 강건해질 수 있습니까? 심령이 강건해지려면 주 안에 있어야 강건합니다. 즉 항상 영적 세계에서 살기를 힘을 써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 살려면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고, 주님을 늘 가까이 하고, 주의 은혜 가운데 항상 거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정병은 강건해야 합니다. 세상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군인도 강건하여야 나가서 전쟁할 수 있지, 강건하지 못하면 전쟁할 수 없습니다. 강건하여야 원수와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제일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강건해야 합니다. 항상 은혜 속에 있어야 강건해집니다.
디모데후서 2:1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속에 있어야 그 사람의 심령이 강건해집니다. 은혜 속에 있다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생활, 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는 생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는 생활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야 심령이 강건해집니다. 잠시라도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즉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또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야 합니다. 심령이 강건해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하라
그 다음에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하였는데,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강건해지라는 뜻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능력을 힘입어야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4-5절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산 돌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를 의뢰하면 산돌에서부터 능력이 계속 공급이 되고, 또 생명의 역사도 계속 공급됩니다. 그러므로 강해지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주신 능력을 써야 합니다. 능력을 써야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므로 강건하라
그 다음에는 그를 의뢰하고 계속적으로 그에게서 오는 능력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순종하므로 강건하라
그 다음에는 순종하므로 능력을 쓸 수 있습니다. 순종하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우리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능력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 하고 물맷돌을 던지니까 하나님의 만능이 역사하셔서 골리앗이 꺼꾸러졌습니다. 히브리서13:5-6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와주신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무서워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계속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씁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쓰면 강해집니다.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능력이 나옵니다. 강건해지면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2.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으라
본문 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궤계란 마귀의 속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나가야 합니다.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야 하고, 성경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모든 마귀의 궤계는 성경에 다 위반됩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언제나 굳건히 서야 하고, 말씀을 언제나 굳건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하며 양심을 써서 나가야 마귀의 궤계를 알고, 대적 할 수 있습니다. 또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마귀는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이용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님
본문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선한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싸움이 아닙니다.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은 마귀에게 실패합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였는데, 혈과 육으로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힙니다. 예수 믿는 자는 절대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안 됩니다.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그것은 백발백중 마귀에게 사로잡히고 실패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혈기를 부리면 안 됩니다.
혈기를 부리는 것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고,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말씀은 성도들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에 대한 영적교훈인데, 세상의 법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공평하게 재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대적이 침입을 하면 나가서 막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법과 교회의 신령한 법은 다릅니다. 세상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여야 악이 제재(制裁)가 되고, 세상이 질서를 유지해 나갑니다. 또 원수가 쳐들어 올 때에는 나가서 막아야 백성을 보호하고 악을 제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법, 즉 영적 법은 혈과 육으로 대적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정사,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임
그러므로 우리가 혈과 육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하였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이것입니다. 즉 정사,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갈 때에 막는 정사가 많습니다. 정사는 일 처리를 말합니다. 국가의 정사를 비롯해서 어떤 단체의 정사, 어떤 기관의 정사 등과 직장의 정사, 가정의 정사 또 권세로 국가의 권세, 단체의 권세, 기관의 권세, 군대의 권세, 가정의 권세, 문중의 권세, 일가친척의 권세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반대하는 정사와 권세는 우리가 싸워야 이겨야 합니다. 싸울 때에 혈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은 분쟁을 하고, 언성을 높이고, 혈기를 부리고, 주먹이 날아가는 것 등이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우면 안 됩니다.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이기는 것임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갈 때에 막는 정사와 권세가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되는가?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싸우고 이기는 방법입니다. 막는 세력과 막는 정사와 싸우기는 싸우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끝까지 순종해 나가는 것이 정사와 권세와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만 지켜 나가는 것이고, 말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사와 권세가 신앙의 길을 막지만 최후에는 말씀만 순종하며 나간 사람이 이깁니다. 국가의 세력이 신앙의 길을 막을 때에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걸어나가는 것입니다. 막는다고 해서 안나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 붙들고 끝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성경대로 나가면 마지막에는 모든 국가의 세력들을 다 이깁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왜정말단에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 갇혔을 때에 국가에서 신사참배하라고 해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못하느냐?고 물으면 “성경말씀을 순종하느라고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이 “너는 국가에 대해 반대자”라고 하면 이기선 목사님은 “나는 국가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반대하려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순종하려고 나는 못한다”하며 나갔습니다. 그러면 또 “너는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냐?”하면 “국가에 반대는 아니다, 국가를 순종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오라고 하니까 여기에 왔고, 감옥에 들어가라고 하니까 감옥에 들어갔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국가에 순종하기 위해 우상이 있는 곳에 갔으나, 하나님을 순종하기 위해서 절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제국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8.15 해방 후에 일본은 망하였고, 이기선 목사님은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이기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옥에 가둔다고 하여도 순종하고, 죽인다고 하여도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법입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세력과 맞대고 혈기부리며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어떤 분이 셋집에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새벽에 대문을 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하며 물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싸우지 말고 매일 새벽 대문을 열고 새벽기도 나오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열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길래 “열지 말라고 해도 열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남의 집인데 열고 나와도 될까요?” 합니다. 그래서 “집세를 주었느냐? 안주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세를 주었다고 합니다. “집세를 주었으면 사용하는 권세가 있지 않느냐? 집세를 줄 때에 그 집에 사는 권세뿐만 아니라 왔다, 갔다 하는 출입하는 권세까지 해서 집세를 주었지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기 위해서 집세를 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문을 열 권세가 있으니까 싸우지 말고, 열고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싸우지 말고 말씀대로 계속 나가면 그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직장이 떨어진다, 학교에 떨어진다”고 하여도 계속 말씀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면 “너를 보지 않겠다, 이제는 친척이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하여도 계속 교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이깁니다.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란 음모, 술수를 말합니다.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고 30일 금령을 내렸는데 그것이 음모입니다. 외부로는 번듯한 법을 냈지만 이면에는 다니엘을 죽이려고 음모한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란 악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 악령의 역사가 많이 있습니다. 즉 비 진리, 사이비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과 우리는 싸워서 나가야 합니다. 가정의 권세도 신앙의 길을 막는 때가 많습니다. 온 친척, 형제들이 다 들러붙어서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막으려고 합니다. 막는다고 해서 그것에 굴복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깁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예수를 믿었는데, 우리 가정에서 여러 친척이 다 모여서 제사한다는 것입니다. 제사 하는데 나도 제사상에 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제사 못한다”고 하니까 끝까지 절을 시키려고 사촌, 오촌 다 모여서 대문간을 못나가게 사방으로 지킵니다. 그러다가 강제로 절을 시킬 작정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문간 지킨다고 해서 내가 나가지 못하겠느냐? 하며 대문간 반대쪽 개구멍으로 달아났습니다. 제사는 무슨 제사입니까? 그러므로 모든 권세가 다 들러붙어서 신앙의 길을 막으려고 할 때에 혈기를 부리며 싸우지 말고, 말씀대로 끝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악한 영들에게 지면 안 됩니다. 마귀의 역사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귀가 와서 꿈꾸게 하는 것, 마귀가 환상 보이는 것, 마귀가 예언하게 하는 것 등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1992년 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 등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왜 마귀의 역사인가?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1992년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 몇 절에 있습니까? 계시 받았다는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계시 받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악령의 역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악한 날이 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함
본문 13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신갑주를 왜 입어야 하는가? 악한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악한 날이 오는데 그때에 전신갑주를 잘 입은 사람은 승리할 것이고, 전신갑주를 잘 입지 못한 사람은 악한 날에 실패합니다.
악한 날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는 우상에게 절하라고 한 날입니다. 즉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넣는다고 한 날이 악한 날입니다. 다니엘에게는 30일간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는 날이 악한 날입니다.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것이 악한 날입니다. 또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악한 사람도 때때로 만납니다. 그것이 악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믿음 준비를 잘해 놓으면 악한 날을 승리적으로 통과할 수 있으나,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지 못하고 믿음 준비를 잘해 놓지 않으면 악한 날에 실패합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지만,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지 못하였으므로 악한 날에 악한 여자인 들릴라를 만나서 실패하였습니다. 요셉은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악한 날에 악한 여자인 보디발의 아내가 왔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하며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은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다녀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고 나가셨기 때문에 악한 날, 악한 사람인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지만 “친구여, 너 할 일을 하라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판 자는 화가 있으리니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느니라”하시며 승리하셨습니다. 또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에 평소에 전신갑주를 잘 입었기 때문에, 돌로 스데반을 때려 죽일 때에 성령충만, 믿음충만, 예수충만, 소망충만, 사랑충만으로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3. 전신갑주
그러면 전신갑주가 무엇인가?
진리의 허리 띠
본문 14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허리의 띠란 자기를 단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말씀에 붙들리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걸어나가는 사람이 진리의 허리띠를 띤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붙들리워서 말씀대로 걸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걸어가지 말고 말씀에 붙들리워서 말씀대로 걸어 나가고, 말씀이 자기 힘이 되고, 말씀이 생명이 되도록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띤 사람입니다.
의의 흉배
그 다음에 “의의 흉배를 붙이고”라고 하였는데, 의를 정면으로 내걸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삐뚤게 쓰며, 불의한 길로 걸어가면 실패합니다. 언제나 양심을 바로 쓰고, 옳은 길인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양심 안 쓰고 옳지 않은 길로 걸어가면 반드시 마귀에게 붙들리워서 마귀의 종이 됩니다.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의가 아니면 받지 말고,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해도 양심을 삐뚤게 쓰지 말아야 합니다. 손해를 보아도 신앙 양심을 바로 쓰고, 말씀대로 옳은 길을 걸어 나가면 죽지 않습니다. 반드시 삽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
본문 15절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하였습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란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세계에서 평안을 얻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영적 평안을 누리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을 신고”란 걸어가는 것 즉 행동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언제나 복음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방패
본문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화전을 가지고 쏠 때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막으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성도를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활을 쏩니다. 그 때에 사방으로 들어오는 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막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예를 보면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할 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만일 우리를 풀무 불 가운데 던지면 우리 하나님은 풀무 불에서도 건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건져내 주실 것이다”하며 믿음의 방패로 막아냈습니다. 또 “만일 하나님이 건져 주시지 않으므로 죽는다고 할지라도 절하지 않을 줄 아옵소서”라고 했는데, 이것도 믿음의 방패입니다.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것을 믿는다, 천당 갈 것을 믿는다, 또 하나님이 건져주실 능력이 있는 것을 믿는다”하며 믿음의 방패를 사방으로 해 놓았습니다. 살아도 이기는 것이고, 죽어도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처럼 양통(兩通)입니다. 죽으면 천당 가게되는 것이니까 더 좋습니다. 다니엘도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사자 굴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몇 개입니까? 성
경이 66권이므로 66개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66개가 있는데, 마귀들이 아무리 쳐들어와도 66개의 방패로 다 막을 수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고 남습니다. 이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
본문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투구”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는데,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시험을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귀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공격도 해야 합니다.
공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합니다. 예수님이 3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에 말씀으로 마귀를 공격해서 물리치셨습니다.
공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합니다. 예수님이 3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에 말씀으로 마귀를 공격해서 물리치셨습니다.
4. 무시로 깨어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하라
본문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8절에 기도하라는 말이 5번 있습니다. 즉 “기도와 간구, 성령 안에서 기도,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입니다.
영이 깨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매일 기도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마귀를 이깁니다. 기도하지 않는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입니다.
본문 19절에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또 자기도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으로 마귀의 시험을 쳐서 물리치고, 그 다음에는 기도와 말씀으로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계속 전진하여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택한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커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5. 두기고를 에베소에 파견함
바울에게 충성한 진실한 일군
바울에게 충성한 진실한 일군
본문 21절에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냈습니다.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라고 하였는데, 두기고는 진실한 일군입니다. 진실한 일군이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진실한 하나님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못씁니다. 첫째도 진실이고, 둘째도 진실이고, 셋
째도 진실입니다. 진실에 생명이 있습니다. 거짓말 한 번만 하면 천하에 있는 것을 다 준다고 해도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진실하면 천하에 있는 것이 다 없어져도 그 사람은 벌써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이 성공이고, 양심 쓰는 것이 성공입니다. 진실하다가 손해를 보아도 성공이며, 진실하다가 매를 맞아도 성공이며, 진실하다가 쫓겨나도 성공이며, 진실하다가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성공입니다. 하여간 진실만 하면 그것은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실하여야 합니다. 두기고는 진실한 일군이며, 또 바울을 잘 순종했습니다. 바울이 보내는 곳에 잘 가고, 무엇을 시키든지 모든 것을 진실하게 한 귀한 일군입니다.
또 바울을 잘 순종하고 받들어 나간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좋은 보조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디모데후서 4:10-11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고, 디모데후서 4:16에는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또 빌립보서2:21-22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자기 일을 구하고”란 바울과 같이 일하던 일군들이었으나, 자기 이기주의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다 자기 일을 구하는 이기주의로 돌아섰지만 그래도 디모데가 아버지에게 하듯 바울에게 잘 충성했습니다. 또 두기고도 바울을 잘 도와서 충성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할 사람은 충성하고, 이기주의로 갈 사람은 이기주의로 갑니다.
두기고를 에베소에 파견한 목적
본문 22절에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낸 목적은 바울의 모든 사정을 알게 하고, 또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인이 교역자의 사정을 염려해 주고, 교역자가 교인을 위로해 주는 일을 본 받아야겠습니다.
6. 문안축복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축복함
본문 23절에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너희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은 참 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영적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으면 큰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기를 축복함
본문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겠습니까?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다 말다 하지 말고 항상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 사람을 사랑할 때도, 변함없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아침에 사랑하다가 저녁에 미워하고,또 어저께 사랑하다가 오늘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저 변함없이 꾸준히 항상 사랑하여야 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잘해줄 때에나 못해줄 때에나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 또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시험거리 노릇을 해도 사랑해야 합니다. 왜 사랑 하여야 하는가?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면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도적질해가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소를 몰고 산을 넘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적떼가 나타나 소를 다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도적들이 한참을 가는데, “여보시오, 여보시오”하며 소 도둑 맞은 사람이 뒤에서 뛰어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들이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부르며 뛰어오는가?”며 의아해 하는데, 소 도둑 맞은 사람이 뛰어 와서는, “내가 뭐 하나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잘 못 걷는 소가 있는데 그 소는 채찍으로 때려야 가는데 채찍 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
다, 이 채찍을 받으세요”라며 채찍을 주는 것입니다. 도적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들은 소를 빼앗았는데, 이 사람은 채찍을 안주었다고 채찍을 주려고 소리치며 뛰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 잘못했다, 소들을 다시 돌려 세워라”고 하며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도적을 사랑하니까 도적도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고,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며느리를 사랑하고, 또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부인들은 “남편이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매일 얼굴 쳐다보며 “오늘은 나를 사랑 하는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남편이 하루 종일 사업하다가 피곤해서 들어오는데, 밤낮 친절한 얼굴을 하고 들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지 말고, 남편이 변함없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바가지 긁어도 나를 사랑해서 긁지 미워서 긁겠느냐? 하며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하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합니다. 또 교회에서 교역자가 교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하며, 교인들은 교역자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 잘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서 왜 안 나오셨냐고 물어 보았더니 “목사님 도와주려고 안나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할머니가 “내가 인사를 했더니 목사님이 나를 미워해서 인사를 안 받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안 나가야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설교도 잘 하시고, 교회도 잘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 안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인사할 때에 할머니가 나가셨기 때문에 내가 인사를 못한 것이지 내가 할머니한테 인사를 왜 안하겠습니까? 내가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이제는 할머니한테 인사 잘 할 테니, 인사 안 받으면 앞으로 돌아와서 인사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교회에 잘 나오셨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사람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교역자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교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서로 교통하는 사랑으로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