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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3일 월요일

역대하 23:1-21 대제사장 여호야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대제사장 여호야다
역대하 23:1-21

1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세력을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2저희가 유다로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로서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 3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찌니 4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너희 제사장과 레위 사람 곧 안식일에 입번한 자의 삼분 일은 문을 지키고 5삼분 일은 왕궁에 있고 삼분 일은 기초문에 있고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뜰에 있을찌라 6제사장과 수종드는 레위 사람은 거룩한즉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려니와 그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지킬찌며 7레위사람은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 오거든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찌니라 8레위 사람과 유다 무리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한 바를 준행하여 각기 수하의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안식일에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있으니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출번하는 자를 보내지 아니함이더라 9제사장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전 안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고 10또 백성들로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게 하고 11무리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세워 왕을 삼을쌔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저에게 기름을 붓고 모두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12아달랴가 백성들이 분주하며 왕을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13보매 왕이 전 문 기둥 곁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국민들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불며 노래하는 자는 주악하며 찬송을 인도하는지라 이에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4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을 불러내어 명하여 가로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5이에 무리가 길을 열어 주고 저가
왕궁 마문 어귀에 이를 때에 거기서 죽였더라 16여호야다가 자기와 뭇 백성과 왕의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17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18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의 직원을 세워 제사장 레위 사람의 수하에 맡기니 이들은 다윗이 전에 그 반차를 나누어서 여호와의 전에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자기의 정한 규례대로 즐거이 부르고 노래하게 하였던 자더라 19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무릇 아무 일에든지 부정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0백부장들과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윗문으로 좇아 왕궁에 이르러 왕을 나라 보좌에 앉히매 21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칼로 죽였었더라

1.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옹위(擁衛)하여 왕이 되게 함

온 백성들과 레위 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 세우기를 작정함

본문 1절에 “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세력을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왕이 된지 칠 년째이며 여호아스가 7살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왕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백부장과 여러 장관들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로 하였고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로 작정하여 그 일을 치렀습니다. 

본문 2-4절에 “저희가 유다로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로서 레위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찌니 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너희 제사장과 레위 사람 곧 안식일에 입번한 자의 삼분 일은 문을 지키고”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다가 예루살렘으로 레위 사람들을 다 모아 다윗 자손을 왕으로 세우신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왕을 세워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원래 아달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이 된 것이 아니므로 왕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을 세워야만 하나님 앞에 합당한 나라가 되고 복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의 자손 가운데 왕이 나와야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제사장들을 다 모으고 “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너희 제사장과 레위 사람 곧 안식일에 입번한 자의 삼분 일은 문을 지키고 삼분 일은 왕궁에 있고 삼분 일은 기초 문에 있고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뜰에 있을지라”고 하였습니다. 정해진 직분의 제사장과 성문지기들을 왕궁과 성전 뜰에 있게 하여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자신의 직분을 잘 지키지 못하면 왕을 세운다고 해도 헛된 일입니다. 자신의 직분을 잘 지키면서 왕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본문 6절에 “제사장과 수종드는 레위 사람은 거룩한즉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려니와 그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지킬찌며”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합법적인 왕을 세우는데, 구별된 제사장과 레위 사람만 성전에 들어오게 하여 왕을 세웠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왕을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7절에 “레위 사람은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오거든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그 계통에서 왕을 세워나가므로 그때 왕을 세우는 것이 쉬웠습니다. 또 제사장이 왕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세 가지 명령

엘리야에게 내리신 세 가지 명령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방 나라 왕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으로 바로 세울 책임이 엘리야에게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타락된 교회에 대해 하신 명령으로 타락된 교회에도 세울 사람을 세워서 다스리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심부름을 바로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해서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신 명령으로 참 교회에 대해서 교역자를 바로 세워 후계자를 삼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사명이고 모든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방 나라의 왕을 세우는 데에도 심부름을 바로 해야 합니다. 이방 나라 왕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심부름만 바로 하면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타락된 교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데까지 가능한 한도 내에서 바른 말을 해주어,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바로 세워나갈 책임이 있는데 타협하면 다 실패하므로 타협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보고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하고 모든 관계를 바로 맺어나가는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참 교역자 엘리사를 세워서 바른 교회가 계속 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요새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이 일 역시 우리가 심부름을 잘하면 바로 됩니다.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찍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므로 그 뜻이 잘 이루어지도록 심부름만 바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표준으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여야 함

왕을 세우는 일, 하나님의 그 심부름을 하는 표준은 성경입니다. 성경대로만 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열왕기상 19장 15-17절에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성경에 합당한가 하는 것을 이 말씀대로 판단하면 되겠습니다. 하사엘의 칼이란 악을 다스리는 칼로 원수를 막는 칼인데, 예후의 칼도 원수의 칼과 대적을 막고 악을 다스리는 칼입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왕 세우는 일을 할 때에 대적을 막고 악을 다스리는 것에 표준을 두고 심부름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자기 지방 사람, 친척,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 등을 우선하는 것은 원리 원칙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도 해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찍어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선거에서라도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봐주면 안 됩니다. 무엇이나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칼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외적을 잘 막고 내부에 있는 악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참된 교회와 교역자를 세워갈 때에도 성경을 표준으로 해야 함

참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에 있는 반 기독교, 사이비, 비 진리를 막고 안에 있는 악을 잘 다스려서 발전시켜 나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목표를 두고 나가면 아무 때라도 하나님의 뜻을 잘 찾을 수 있습니다. 비 진리를 지적하여 진리를 밝히고 안에 있는 죄악을 점점 제거시키면서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교회와 사람을 많이 세워야 합니다. 성도가 무슨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든지 여기에 표준을 두면 되겠습니다. 누구 누구 하는 것보다도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표준에 맞으면 하는 것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표준에 맞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 타락된 교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진리를 밝히고, 죄를 떠나서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은 안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비 진리에 맞서서 진리를 밝혀나가는 것입니다. 

예후가 하는 것보다는 엘리사가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후가 하는 것은 큰 것만 하지 작은 것은 못 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은 엘리사에게 와서 딱 걸립니다. 체로 비교하면 예후의 체는 구멍이 넓은 것이고, 엘리사의 체는 구멍이 작고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방 나라 아랍 왕은 더 큰 체로 밤알만한 것은 걸리고 도토리만한 것은 다 빠져나갑니다. 

즉, 엘리사에게 와야 진리와 비 진리가 바로 분별이 되어 일이 바로됩니다. 이렇게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후에게 가면 죄가 아니고 잘못된 것이 아닌데 엘리사에게 오면 걸릴 것이 많고, 예후 측에서 보면 괜찮게 생각되던 것이 엘리사에게 오면 안 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 뜻에 옳지 않고 잘못된 것들이 많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진짜 체의 역할을 하여 진짜만 골라 바로 하는 것, 그것이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심부름을 바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호야다도 하나님의 심부름을 바로 하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을 옹위해 나갔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을 세워야지, 인본주의로 사람을 세우면 손해를 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내거나 세력이 있다고, 그런 사람을 장로로 세우면 바른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장로도 진리에 바로 서고 믿음이 있는 사람, 비 진리를 밝힐 줄 알며 바른 진리를 세워나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참된 진리의 교회를 세우는 자를 교역자, 장로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야다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바로 세워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범사에 바로 하지 못하면 교회가 바로 되지 못합니다. 장로 등의 직분자도 바로 세우지 못하면 교회가 타락하게 됩니다. 교회를 망치게 됩니다. 장로가 왕 노릇을 하게 되면 목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거부
권을 쓰면서 안 된다고 하고 당회에서도 장로가 반대하면 목사와 교인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면서 장로가 목사를 주장하는 교회가 되면 교회는 망합니다. 

오늘날 통합 측과 고려 파에도 장로 회의가 있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장로 회의는 노회나 총회에서 하는 것인데, 목사를 떼어놓고 장로들끼리만 회의를 하는 것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목사와 장로가 합해서 모이는 것이 장로 회의인데, 목사는 떼오놓고 장로 회의를 한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장로들끼리 왕 노릇을 하다가 교회도 목사도 장로가 주장하게 되면 목사는 목사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장로들은 목사의 인도를 받아 목사를 받드는 직분입니다. 구약시대에 왕이라도 선지자의 인도를 받았듯이, 지금도 선지자의 인도를 받아서 왕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 없이 자신들이 왕 노릇을 하면 나라가 부패해지고 선지자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서나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전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역자 세우는 일, 장로 세우는 일, 직분을 세우는 일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명을 내놓고 바로 세워가야 합니다.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움

본문 8절에 “레위 사람과 유다 무리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한 바를 준행하여 각기 수하의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안식일에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있으니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출번하는 자를 보내지 아니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취임시켰는데 출번할 자를 가리지 말고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다 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받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집에도 돌아가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 받들며 나가야 합니다. 특별할 때에는 철야도 하면서 밤에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전 안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고”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왕을 세우는 날이기 때문에 옛날 다윗 왕이 쓴 칼과 방패, 그리고 무기를 다 꺼내어 왕을 호위하게 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또 백성들로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게 하고 무리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세워 왕을 삼을쌔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저에게 기름을 붓고 모두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고 하였습니다. 7살인 요아스 왕자를 데려다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며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된 것은 첫째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 여호야다 제사장과 그 부인이 그를 6년 동안 숨겨 두며 생명을 내걸고 길러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달랴 왕에게 요아스가 발각 되면 죽임을 당하는 위태한 가운데에 있었지만 여호야다 부부가 생명을 내놓고 그를 지켜 왕으로 삼았습니다.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입니까? 여호야다는 생명을 내놓고 일을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을 세웠습니다. 

2. 아댤랴를 처형함

악한 자를 척결하는 것이 마땅함

본문 12-15절에 “아달랴가 백성들이 분주하며 왕을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보매 왕이 전 문 기둥 곁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국민들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불며 노래하는 자는 주악하며 찬송을 인도하는지라 이에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을 불러내어 명하여 가로되 반렬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이에 무리가 길을 열어 주고 저가 왕궁 마문 어귀에 이를 때에 거기서 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뒤늦게 알고 나와 보니 사람들이 왕을 모셔놓고 찬송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녀가 소리쳤고 여호야다는 성전 문을 열어 그녀를 성전에서 나오도록 몰아낸 후 처벌하였습니다. 

자신의 손자들을 다 죽이고 왕이 된, 이 악한 왕을 처단하는 것은 악한 자를 죽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의 계명대로 죽일 자를 죽이고 때릴 자는 때리고 금고할 자는 금고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바른 재판을 하지 못하고 벌을 바로 주지 못하면 모든 것을 바르게 유지하지 못합니다. 신명기 25장 1-3절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찌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바로 판단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판단을 바로 하지 못해서 의인을 악하다고 하며 광명을 어두움으로 삼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대로 바로 판단하고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라고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건을 바로 알고 그것에 관해 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멀리까지 바라보며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적당한 벌을 주되 어느 한도 이상으로 넘어가지 말라

그리고 판단한 다음에는 그에 대한 바른 처사가 있어야 합니다. 때릴 자는 때리되 40대까지만 때리고 그 이상을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벌이 지나치면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이 되므로 지나치게, 끝까지 하지 말고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벌을 주어도 어느 한도까지만 하고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뿌리를 뽑고 눈알을 뽑으며 다 밟아 치우려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죄에 대한 적당한 벌을 주되 어느 한도 이상 넘어가지 말라는것이 하나님이 뜻입니다. 벌 받는 자가 너무 천해지고 그 사람이 낙심하도록, 끝까지 때려 죽이는 데까지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잔인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40을 고난의 만수(滿數)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죄에 대한 만수로 그 이상은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지 않도록 해나가야 합니다. 

새를 잡아먹어도 어미 새와 새끼 새를 같이 잡아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것이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새끼든 어미든 한 쪽은 놔주라는 것으로 뿌리를 뽑기까지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교회에서 배척을 받을 때, 끝까지 싸우는 목사가 있습니다. 뿌리를 뽑고 눈알을 뽑으며 배를 째면서 교회를 없애도 싸우겠다고 하는 목사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복을 받지 못하고 가다가 반드시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됩니다. 어느 정도 하다가 안 될 것 같으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다 안 되면 사면하면 됩니다. 싸우는 것도 한도가 있지, 교회가 망할 정도로 싸우면 안 됩니다. 어느 정도 하다가 아무래도 사표를 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다른 데에도 갈 때가 또 있는데, 굳이 끝까지 결단을 내면서 나갈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끝까지 뿌리가 뽑히도록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싸워대는 것을 그만 두고 모든 것을 다 바로 배워야 합니다. 끝을 봐야겠다는 말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끝장이라고 하지만 끝장은 내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하다가 그만 두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일을 해주십니다.
끝장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어느 한도까지만 해야 하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잘되게 해주십니다. 새를 잡아서 새끼와 알을 다 잡아먹으면 이 다음에는 무엇을 먹겠습니까? 꿩을 먹고 알을 놓아두든지 알을 먹고 꿩을 놓아두든지 해야 이 다음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다시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조금도 용납이 없이 끝장을 보는 성격입니다. 머리가 깨지고 눈알이 뽑히고 뿌리를 뽑아야 풀리는 이런 성격은 잔인한 것으로, 이를 고쳐야 합니다. 반대도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그만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캐나다가 독립 국가인데 영국 연방에 속해있어 캐나다 관공서에 영국 왕 엘리자벳 사진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한국이라면 연방은 물론, 사진도 다 치울 것입니다. 캐나다가 대통령을 낼수 있는데도 수상으로 하고 영국 왕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캐나다 민족이 얼마나 여유가 많습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예전에 식민지로 있다 독립이 될 때에 영국을 연방으로 하라고 하면 연방이라는 단어까지 뿌리째 뽑으려고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때려 부수고 없애 치우며 자신이 왕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람의 단점입니다. 성격이 아주 잔인한 것입니다. 야당과 여당이 선거 때 싸움을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환영하고 축하해주어야 합니다. 야당도 여당이 제의한 것을
잘 협력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됩니다. 미국은 야당 국회의원이 많더라도 여당 대통령이 제의를 하면 잘 협력해줍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협조하는 정신이 없고 사사건건 이유를 잡아서 여당을 죽이려고 하니 한국이 일본이나 선진 국가 같은 국민 정신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대결하다가 안 되면 협조하면서 나가야 잘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상당히 염려가 됩니다. 선거하다가 누군가가 당선되면 패배한 사람은 축하를 해주고 정치를 할 때에도 협력해 주어야 민주주의가 잘 되는데, 한국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진 다음에는 협력하지 않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외무장관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한국 백성들 성격은 너무 잔인하고 끝까지 뿌리를 뽑겠다는 정신이 가득합니다. 한 사람이 당선이 되면 떨어진 사람들이 극도로 반대를 하며 극한투쟁을 합니다. 자기만 할 뿐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충동을 시켜서 어지럽게 만들고 누가 지든지 이기든지 승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 사람은 끝까지 반대하고 충동시키며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것이 한국 사람의 정신입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 때에는 정부의 힘이 강해서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민주주의라고 반대해도 가만히 있으니 얼마든지 뿌리를 뽑자는 심사인데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던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만 하다가 그만 두어야 합니다. 40까지는 때리되 그 이상은 때리지 못하듯이, 어느 정도만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건설적으로 세워나가는 것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3. 여호야다가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우상을 깨뜨림

본문 16-17절에 “여호야다가 자기와 뭇 백성과 왕의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다음 반역을 제지하고 희생을 줄이려고 아달랴의 백성에서 요아스의 백성으로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안에서 화합할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달랴가 섬기던 바알 당을 훼파하고 우상을 깨뜨리며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숙청하였습니다. 

4.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회복함

본문 18-21절에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의 직원을 세워 제사장 레위 사람의 수하에 맡기니 이들은 다윗이 전에 그 반차를 나누어서 여호와의 전에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자기의 정한 규례대로 즐거이 부르고 노래하게 하였던 자더라 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무릇 아무 일에든지 부정한 자는 들어 오지 못하게 하고 백부장들과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윗문으로 좇아 왕궁에 이르러 왕을 나라 보좌에 앉히매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칼로 죽였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보좌에 앉히고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왕이었을 때에는 우상만 섬기고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평안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가 왕이 되자 나라가 평안해지고 성중이 즐거워하였습니다. 나라가 견고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