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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3일 월요일

잠언 26:13-28 게으른 자, 남을 간섭하며 남의 말을 하는 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게으른 자, 남을 간섭하며 남의 말을 하는 자
잠언 26:13-28

1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15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17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3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4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25그 말이 좋을찌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26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찌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27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8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1. 게으른 자

본문 13절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2장 13절에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15장 19절에는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는 ‘게으른 자가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한다고 하였는데, 게으른 자가 과연 길에 사자가 있는 것을 알고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모르고 그랬겠습니까? 사자가 있는 것을 알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사자가 있는 것을 본 모양입니다. 또 사자가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았어도 말을 들은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말을 들었거나, 사자가 실제로 있는 것을 전에 봤거나, 또 자기 추측에 사자가 있는 것 같기에, 거리에 사자가 있고 나가면 찢기겠다고 하면서 길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자가 지금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있었다고, 지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없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게을러서 나가기가 싫으니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꼬투리로 잡아 안 나가는 경우이거나, 너무 기겁을 해서 나가면 큰 일이 날 것 같아 안 나가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가면 됩니다. 사자가 예전에 있었다고 해도, 그 사자를 누가 잡았을 수도 있고 지금은 죽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공연히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자가 있어도 나가면 하나님께서 사자는 다 물리치실 수 있습니다. 괜히 미리 기겁해서 ‘사자가 있어서 나가면 죽는다’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면 만약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해도 물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사자굴, 표범 산이라고 해도 다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물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못한다. 못한다”라고 하는 소리만 듣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면 어디를 가든지 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예전에 사자가 있었다고 해도, 오늘날 물리쳐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가야겠습니다.

본문 14절에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돌지 않습니까? 그런데 게으른 자도 침상에서 돌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 6장 10-11절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려고 깼다가 ‘좀더 자자. 좀더 눕자. 손을 모으고 좀더 자자’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아니하고 잠자기만 하는 사람은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일어나지 못하고 침상에서 돌돌 구르는 것입니다. 일어나야겠다고 했다가 한 바퀴 돌고, 또 자고 일어나려고 하다가 또 눕고, 일어나려고 하다가 또 엎드려 구르면서 침상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게을러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강도같이 궁핍이 임하게 됩니다. 영적 궁핍도 강도와 같이 임하게 됩니다.

본문 15절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는 무엇을 먹으려고 손을 그릇에 갔다가 넣고 이제는 손을 입으로 올려야 되겠는데, 그 올리는 것을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게으른가 보십시오. 손을 구부러뜨려서 입에 가져가 대면 먹겠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안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한 번만 나가서 손질을 했으면 되었을 텐데, 손질하지 않아서 그만 사고가 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심방하는 것도 한 번만 갔으면 교인을 안 잃어버렸을 텐데, 그 한 번 가는 것을 마다하여 잃어버리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다 해놓은 것을 한 번을 안 가서 일이 다 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자기가 궁핍을 당합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도 손에 쥐고 있으므로 한 번 펼치면 읽겠는데, 그것을 안 해서 심령이 굶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릇에 손을 넣고도 올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기도하면 될 것인데 기도를 안 합니다. 말씀을 받으면 될 것인데, 말씀을 안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릇에 손을 넣고도 올리기를 괴로워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16절에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은 게으른 자이고, 미련한 자입니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얼마나 지혜롭게 여깁니까? ‘일곱 사람보다 내가 더 지혜롭다. 일곱 명이 하는 것보다 내가 더 잘한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악한 것입니다.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자기의 무엇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자기의 잘못하는 것,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가 잘한 것이 몇 가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하며 가다가는 반드시 패망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친다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 잘 하는 것 때문에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반드시 가다가 패망할 날이 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서 자신이 못하는 것을 붙들고, 자기가 못하는 것을 자랑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고, 부지런한 자입니다.

2. 남을 간섭하거나 해하지 말 것

본문 17절에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자에게 간섭하여 그와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것은 개 귀를 잡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개의 귀를 잡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일단 개의 귀를 잡으면 더러워집니다. 개 귀가 깨끗하겠습니까? 개가 세수를 합니까? 목욕을 한 번 합니까?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 귀를 잡으면 더러워지고, 또 물릴 위험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에 간섭을 하면, 물리고 더러워지며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간섭하느라 자기 볼일 볼 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개 귀를 잡는 것’에는 3가지 손해가 있습니다. 더러워지고, 자기의 일을 보러 가야 하는데 간섭하느라 시간을 다 빼앗기고, 또 잘못하면 물릴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말려야 할 싸움은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려서 그만 둘 가능성이 있는 싸움은 말려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 들을 것은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 경우에는 공연히 마음만 상하고 시간만 없애는 것입니다. 괜히 개 귀를 잡는 것처럼 물릴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은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남의 일에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일만 하면 됩니다. 다툼이 아니더라도 남의 일은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일만 하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합니다. 괜히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간섭해서 거기에 한 몫 거들다가 그만 싸움에 휘말려 드는 것입니다. 이편에 들거나 저편에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못된 버릇입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일만 잘해나가면 다 바로 되겠는데, 자기는 바로 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남의 일을 간섭하다가 자기도 다 망치고 자기 일도 다 못하고 망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맡은 바 일만 하고 자기가 해야 할 것만 하면 됩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횃불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탈 것 아닙니까?
또 활을 쏘아서 사람을 죽인다고 하였는데, 그 사람은 미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자비하게 남을 공격하고 활로 쏴서 사람을 죽이고 횃불을 던져서 불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횃불을 던지는 것’은 분을 일으키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남을 공격해서 싸움이나 일으키고 남의 분이나 일으키는 자입니다. 남에게 분란만 일으키고 신경만 건드려서 신경질을 나게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상대방을 죽일 것처럼 훼방을 하는데, 그러한 사람은 미친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뜻은 남을 해하지 말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남을 죽이지 말고 살리는 사람이 되고, 남의 분을 일으키지 말고 분을 제어하는 사람, 분을 꺼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분을 꺼줍니까? 잠언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이 분을 쉬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유순하게 해야만 불이 꺼집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고 살리며, 건설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본문 19절에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 사람은 속인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남을 속이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그만한 것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라는 식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농담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을 속인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바른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속인 사건을 농담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짓말 한 마디 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보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을 속인 것을 그저 보통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그것 또한 정신 나간 사람의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남을 속여 그에게 손해를 주었으면 원통히 여기고, 그 손해를 갚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생각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나가면 안 됩니다. ‘보통이다. 농담의 일종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과 같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3. 남의 말을 하지 말 것

본문 20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장이는 다니며 다툼만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으면 다툼이 쉰다’고 하였는데,

본문 21절 말씀처럼 그 위로 횃불을 던지는 것도 말장이입니다. 말로 공격을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말장이가 문제입니다. 말장이는 말이 되게끔 만듭니다. 같은 말이라도 이상하게 돌려서 말이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이간 붙입니다. 또 거짓말을 좀 보태 가지고 격동을 시켜 다툼을 일으키는 말장이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을 만드는 사람과는 어지간하면 말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사나 하고 보통은 말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말장이는 가만히 있어도 자꾸 물어봅니다. “누가 뭐 어쩌지 않았느냐? 무엇을 해먹었느냐? 누가 뗐느냐? 누가 뭐라더냐?”라고 자꾸 질러댑니다. 말장이는 자꾸 꾹꾹 찔러서 속에 있는 것이 나오도록 말을 빙빙 돌려댑니다.
하여간 말장이에게는 말의 재료를 안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재료를 주면 자꾸 말을 돌려서 작은 일도 크게 만듭니다. 말을 돌려가면서 보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장이가 작은 것을 크게 만들어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장이가 없어져야 불이 꺼지고 다툼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장이를 없애야 합니다. 말장이를 없애는 방법은 일단 그 사람에게 재료를 주지 않아야 하고,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데 그 말장이가 그냥 가만히 있게 되면 그나마 괜찮은 것이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섭섭해 한다 해도 하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장이에게 재료를 안 주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손해를 안 봅니다. 말장이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손해 본 일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같고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과 같아서, 시비를 계속해서 일으킵니다. 그것이 바로 사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는 가까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22절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말을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별미, 별식이라면 좀 더 잘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보통 음식보다 훨씬 맛이 있으므로 그 사람 말에 쏙 빠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다 악한 일들입니다.
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믿음을 못 지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남의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까?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무엇 때문에 간섭하다가 믿음을 다 팔아 먹는 것입니까? 그리고 남에게 손해만 주고 말썽만 일으킵니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을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일만 충성되게 해나가는 그런 사람이 믿음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람이 순진하여야 합니다. 순수하게 자기 일만 하고, 남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23절에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고 하였습니다. 위에서 말장이처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속에 그 말이 쏙 들어가게 전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거짓말을 좀 보태서 그 사람 속에 쏙 들어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화가 나서 싸우게 만듭니다. 사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 쏙 들어 가서 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너보고 뭐라고 하더라”와 같은 말이 그것입니다.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고 하였는데, ‘낮은 은’이라는 것은 찌꺼기, 다시 말해 은 찌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외부는 은인데, 속은 토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툭 치면 깨집니다. 겉은 은으로 해서 번쩍하지만, 속은 토기인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명주 자루에 개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부로 보기에는 명주 자루인데, 속은 개똥이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입술’이라고 하였으니까 입술은 온유 합니다. 얌전합니다. 사람이 얌전합니다. 그런데 속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말도 얌전하고 태도도 얌전한데, 속이 악합니다. 악한 말까지 합니다. 속은 토기이고 외부만 은인 것입니다. 은도 좋은 은이 아니라, 낮은 은입니다.

본문 24절에 “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감정 있는 자’라는 것은 미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미워하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궤휼, 즉 거짓을 품는다고 하였습니다. 미워하는 말이 있으니, 입술로는 사랑하는 체하고 꾸며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에는 거짓입니다.

본문 25절에 “그 말이 좋을찌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와서 입으로 발라 맞추며 좋은 말을 많이 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고 하였는데, 속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입으로는 좋은 말을 꾸며 댈지라도 속에 일곱 가지 미워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칠 수는 만수입니다. 그러므로 속에 가증한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 감정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가증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품으면 여러 가지 가증한 것이 나옵니다. ‘며느리 발뒤축은 달걀 알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며느리 발뒤축이 달걀 알 같습니까? 자기 딸 발뒤축은 달걀 알 같지 않고, 며느리 발뒤축이 달걀 알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에 며느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여러가지 가증한 것이 속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기 싫은 사람은 일곱 가지가 보기 싫습니다. 코도 보기 싫고, 발도 보기 싫고, 이렇게 말해도 보기 싫고, 갖다 줘도 보기 싫고, 좋은 말을 해도 보기 싫고, 꼴도 보기 싫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다’는 것은 속에 감정을 품은 사람은 상대방의 보기 싫은 것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고 다 틀리는 것입니다. 속에 감정을 품으면 다 틀려 보입니다. 틀리지 않은 것은 자기 하나밖에 없습니다. 다 틀려 보입니다. 하여간 속에 감정을 품고 믿음을 쓰지 않으면 믿음이 떠난 증거입니다. 일곱 가지 가증한 것으로 인해서 전부 다 틀려 보이고 그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본문 26절에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찌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 나리라”고 하였습니다.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춘다고 할지라도 악은 마침내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속에 미워하는 마음, 악한 마음을 품지 않아야지, 아무리 궤휼을 써서 감추려고 할지라도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속에 있는 것이 다 나옵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4.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짐

본문 27절에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죽이려고 함정을 파는 사람은 자기가 거기에 빠지고, 돌을 굴려내서 남을 치게 하려는 자는 자기가 그것에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 자리가 제 자리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50규빗이나 되는 막대기를 세워 뒀다가, 그만 자기가 죽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함정을 파는 자는 제가 그 함정에 빠지고, 돌을 굴리는 자는 제가 그 돌에 치인다는 것입니다. 남의 자리가 제 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잡으려고 함정을 파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빠집니다. 남을 붙잡으려고 법을
만들어 놓으면, 제가 그 법에 걸린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남의 자리가 제 자리가 되고, 남을 붙잡으려고 하면 제가 잡히고, 남을 사로 잡으려고 하면 제가 사로잡힙니다. 우리가 언제나 그것을 알고, 남을 해하려는 생각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정을 파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라고 하였는데, 거짓말하는 자가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였는데, 거짓말로 발라 맞추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패망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