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됨
요한복음 1:1-51
요한복음 1:1-51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내셨느니라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25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찐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26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28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
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1. 태초 전부터 계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말씀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의 저자(著者)는 사도 요한이며, 기록한 때와 장소는 주후 50년경, 예루살렘입니다.
본문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로고스’인데,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볼 수 있는 바, 영원한 태초를 가리킵니다. 영원 전부터 말씀이 계셨고 하나님도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영원 전부터 성부께서 계셨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계셨고, 성령께서 계셨습니다. 성부는 모든 것을 계획하셨으며 성자는 성취하셨습니다.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것들을 모두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것들을 보존하시고 합당하게 적용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보존하시고 적용하시는 분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왜 말씀이라고 했습니까? 말씀은 의사 표시입니다. 즉, 이것은 아버지께서 의중(意中)에 품고 계신 그 일을 성자께서 모두 나타내 보여주시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성령께서는 성자께서 다 이루어놓으신 것들을 보존하시고 적용시키십니다. 본문 2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본문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만물을 다 그리스도께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셨고 그 계획해 놓으신 것을 그대로 만들어 놓으신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만물은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조자는 그리스도이시고 창조주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
본문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안’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인 동시에 빛이십니다. 본문 5-7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습니다. 캄캄한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이 어두운 세상에 비취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6절에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났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세례 요한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7절에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예수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게 하시어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계획하셨습니다.
본문 8-1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자신이 만든 땅에 하나님께서 친히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의, 자기 백성들이 영접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창조자이시고 빛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지으심을 받은 당신의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접하는 것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창조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는 생명이 되시므로 그리스도 영접은 곧 생명에 대한 영접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빛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가 영접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법은 ‘믿습니다’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습니다’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 속으로 쑥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로서 새로 난 자’,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통, 육정,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난 자들입니다. 중생한 영으로서 새로 난 자들입니다.
본문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것은 곧 ‘도성인신(道成人身)’을 의미합니다. 도(道)는 말씀, 성(成)은 이루다, 인신(人身)은 사람의 몸을 가리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가져오신 선물보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와 진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선물 몇 가지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속죄, 칭의(稱義), 새 생명,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그리고 하늘나라 시민증 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호적과 믿음, 이런 것들이 다 은혜입니다. 은혜의 보따리를 풀어보니 그 안에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그 안에 믿음, 속죄, 칭의, 새 생명,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명으로서 호적, 하늘나라의 시민증 등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죽었던 상태에서 살아나 죄 사함을 받고, 생명과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은혜를 많이 가졌습니까?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도 다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예수님께서 다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가정에서도 혹시 마귀의 역사가 있다고 해도, 구성원들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면 그 마귀들이 다 물러갑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틀렸다’고 하지 말고, 자기부터 먼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마귀가 다 물러갑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또 하나의 선물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영원불변의 이치, 영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영적인 진리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도성인신(道成人身)’입니다.
둘째는 ‘친히 말씀해 주신 모든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순종해서 이루어 놓으신 모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루어 놓으신 모든 것들이 다 진리인 것입니다.
넷째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이 넷째 경우는 죄인 된 우리가 당할 모든 일들을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여 주셨음을 가리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태복음 8:17에는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다 짊어져 주셨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이 네 가지 이외에 구속, 성취,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심판 등이 모두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진리를 가지고 이 세
상에 오신 것입니다.
상에 오신 것입니다.
선물 보따리의 첫 번째 ‘은혜’, 두 번째 ‘진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선물 보따리 둘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첫째가 은혜의 보따리입니다. 은혜의 보따리 안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믿음, 속죄, 칭의, 새 생명,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 천국 백성, 영생, 부활 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진리의 보따리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영원불변의 이치입니다. 이 진리의 보따리를 풀어보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먼저 ‘도성인신’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님으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진리입니다. 그 다음의 진리 보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삼십삽 년 동안 말씀해 주신 모든 것들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순종하여 이루어 놓으신 것,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져 주신 것, 구속 성취, 십자가 부활과 승천, 이러한 것들이 모두 진리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진리를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본문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왔습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정죄했습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으며,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됨
본문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볼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다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먼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하나님의 영(양자의 영)을 받아서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양자의 영)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6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자녀 된 성도들에게 아들의 영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아들의 영이 계십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호적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아들로서 하나님의 호적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들의 권세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는 자는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시고 창조자이시고 빛이시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또,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찾아오셨는데, 그분이 그리스도이시며 바로 그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십니다.
또, 무엇을 가지고 오신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은혜와 진리’입니다. 우리는 은혜와 진리를 가지고 오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믿습니다’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쑥 들어오십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빛이시고 생명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또, 도성인신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까? 먼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그리스도, 창조자이신 그리스도, 빛이신 그리스도, 생명이신 그리스도,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함으로 아들의 권세를 받음
이렇게 믿으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께서 쑥 들어오셔서 우리는 변화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은 우리가 ‘믿습니다’할 때에 우리 속에 쑥 들어옵니다. 갈라디아서 4:6, 로마서 8:15에 양자의 영, 아들의 영이 우리 속에 쑥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를 우리가 ‘믿습니다’하고 받아들이면,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호적에 우리 이름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권세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믿습니다’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아들의 권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은 말로만 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아들로서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믿습니다’입니다. ‘믿습니다’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습니다’하면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쑥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아들의 영이 들어왔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하나님의 호적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모두는 호적등본을 떼어 보면 하나님의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들의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권세, 이 아들의 권세를 쓰고 나아가면 마귀가 꿈쩍을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왔으므로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호적에 우리 이름이 올라갔으므로 아들이 되었고, 아들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 귀신 들린 사람한테 가서 기도하면 귀신들이 벌벌 떱니다. 우리가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나아가기 때문에 귀신들이 꿈쩍 못합니다.
4. 예수님만 높인 세례 요한의 겸손
본문 20-23절에 나온 세례 요한의 겸손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했을 때에 요한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냐?”라고 했을 때에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선지자냐?”라고 했을 때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그럼 넌 누구냐?”라고 하니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없어지는 것이 소리입니다. “어!”라고 하는 것이 소리인데, “사랑한다”는 말씀 하나 해 놓으면 소리는 없어집니다. “어!”하는 것을 혀를 돌려 “사랑한다”고 해놓고 나면 소리는 없어지고,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까지나 남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은 말씀으로 자신은 소리로 여겼습니다. ‘말씀 하나 드러내놓고 나는 없어질 존재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바로 알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한 분만 나타내어 놓고 없어질 존재다’라고 하는 것이 참 겸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한 분만 나타내어 놓고 없어질 이 자리가 얼마나 좋은 자리입니까!
본문 27절에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지극히 낮추고 예수님은 지극히 높였습니다.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은혜 받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높여야 합니다.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감히, 신들메(신 끈)을 어떻게 풀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신 끈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하나님의 신 끈을 요한이 풀 수 없습
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높였습니다. 자기는 소리 한 번 외치고, 즉 말씀 하나 나타내어 놓고 없어질 소리로 여겼습니다. 요한은 언제나 그러한 자리에서 서서 나갔습니다.
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높였습니다. 자기는 소리 한 번 외치고, 즉 말씀 하나 나타내어 놓고 없어질 소리로 여겼습니다. 요한은 언제나 그러한 자리에서 서서 나갔습니다.
본문 32절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께 임했다’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제물입니다. 당시에 소나 양, 비둘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 비둘기같은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훗날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5.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와 보라
본문 35-39절에는 ‘와 보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와 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와 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와 봐야만 아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계신 데에 와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께서 계신 데를 가보면 분명히 알게 됩니다. 가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와 보라’고 하십니다. 와서 본 다음 그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영으로 알게 해주십니다. 즉, 영적으로 그리스도께 와 보면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 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 “와 보라”라는 말씀을 듣고 안드레와 빌립은 자기 형제와 친구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계신 데로 가 보는, 그러한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가보면 다 압니다. 가보면 훤하게 다 드러납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게 됩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는데,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하여간 가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보면 그리스도가 하나님
이시라는 것,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게 됩니다.
이시라는 것,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할 때에 예수님께 가봐야만 합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계신 데에 가봐야 합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봐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주님께로 가봐야 합니다.
가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이번에 우리가 다 한 번 가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으로 가보는 저희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6. 나다나엘을 아시는 예수님
나다나엘에게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이제 나다나엘이라는 자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본문 45-46절을 보면 여기도 ‘와 보라’는 메시지가 나타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말하기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이 말을 듣고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나사렛같이 천한 곳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나실 수 있을까, 라고 여긴 것입니다.
본문 47절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다나엘이 ‘진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참 이스라엘 사람이였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참 신자, 진짜 신자, 참 성도, 진짜 성도, 참 목사, 진짜 목사, 참 집사, 진짜 집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참 성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참 이스라엘 사람이였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참 신자, 진짜 신자, 참 성도, 진짜 성도, 참 목사, 진짜 목사, 참 집사, 진짜 집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참 성도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는데, 간사함이 없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다나엘이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진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지 못하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마귀는 다 거짓되어 속이지만,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진실’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충성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들이 이기선 목사님께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진실”이라고 대답하셨답니다. 그래서 “둘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둘째도 “진실”이라고 대답하셨답니다. 이에 “셋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셋째도 “진실”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 예로 드신 것 가운데 제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 집에서 며느리를 데려옵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진실하면 다 맡긴답니다. 맡겨도 틀림이 없으니 골방열쇠, 쌀독열쇠, 금고열쇠 다 맡긴다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며느리에게는 맡길 수가 없습니다. 맡겨놓으면 쌀 다 퍼서 팔아먹습니다. 또, 다른 것들도 어떻게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안 맡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진실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것을 맡겨 주십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하면 맡기시지 않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자에게 하나님의 것을 어떻게 맡기시겠습니까? 다 팔아먹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진실하지 못한 자에게 양을 맡기실까요? 맡겼다가 몇 마리 팔아먹거나 잡아먹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진실하지 못하면 애초부터, 아예 못 쓰는 것입니다. 안 쓰시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언제나 양심을 똑바로 쓰라고 했습니다. 양심을 쓰지 않는 것은 마치 깨진 그릇과 같아서 써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파손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양심을 쓰지 않으면 그것은 깨진 그릇과 같아서 내어다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고려파 중앙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했습니다. 사과혹, 현오탁 장로 두 분 다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사과혹 장로는 고등부 반사였습니다. 그리고 현오탁 장로는 산업은행에서 대리인가를 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전칠홍 목사, 이학인 목사가 있었는데, 김현봉 목사님께서 축사하고 권면하라고 잠깐 틈을 내어준 모양입니다. 이분들이 축사하러 나와서는 양심을 똑바로 쓰라, 고 했답니다. 그 한 마디 말한 것이 백 마디 말한 것보다 낫습니다. ‘양심을 쓰라’, 장로들은 양심을 쓰면 됩니다. 목사도 양심 쓰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양심 안 쓰는 것은 깨진 그릇이 되어서 써 먹지 못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두고 보았을 때, 스스로 보기에도 진실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진실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서 아무리 진실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보고 ‘네가 무엇이 진실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 께서 보시고 ‘너는 진실하지 않다’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자기 양심에 진실하고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진실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진실한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맡겨도 괜찮습니다. 금고열쇠, 쌀독열쇠, 골방열쇠 다 맡겨도 틀림이 없습니다. 또, 양떼를 전부 맡겨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대로 해서 매를 맞더라도 진실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익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거짓말을 해서 어려운 일을 면해 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어 버리십니다. 언제나 진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자리에 있는 우리를 보아주시고 아시는 예수님
본문 48절에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 15; 21절에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다음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무화과나무 잎을 치마로 삼아 입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아래로 찾아오셔서 장차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뜻입니다.
나다나엘은 ‘아담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스도를 언제 보내주시겠습니까?’라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신 것은 그러한 상황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네가 기도하는 장소에 있을 때에 너를 보았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가서에는 ‘바위틈 낭떠러지에 있는 비둘기를 내가 보았노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위틈 낭떠러지에서 기도하는 성도를 예수님께서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의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보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도의 장소에 있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보아주시고 알아주시고 기억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열릴 것이다
본문 48절에 보면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본문 50, 51절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이라는 것은 하늘이 열리는 상황을 뜻합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늘이 열리고 올라가는 사자와 내려오는 사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장차 그러한 장면을 나다나엘, 네가 볼 것인데,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봤다는 것은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하늘이 열린다’는 말씀,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오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는 것을 네가 볼 것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전 휘장이 찢어져 지성소, 즉 하나님께서 계신 곳과 인간이 출입하는 성소 사이가 터졌습니다. 가운데 막혔던 담이 다 터져서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모두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하늘이 열린다’,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오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는 것을 네가 볼 것이다’라는 말씀은 이러한 상황을 뜻하는 것입니다. 막힌 것이 이제 곧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계시의 위대성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던 모든 것을 다 터트려 놓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너, 나다나엘에게 직접 내려올 수 있으며 너 또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1에 보면, 천국은 침노를 당하는데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들어가고자 하면 문이 다 열렸으니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사를 너, 나다나엘이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것을 하나님께 올려 보낼 수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 또한 다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네 것이 다 올라간다는 것’은 모든 염려, 근심, 질병, 연약한 것을 하나님 맡기면 하늘로 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늘로 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받아주십니다.
내려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와 진리입니다. 이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내리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올려 보낼 것은 무엇입니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것이 마지막 으로 하나님께 올려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을 단단히 생각하고 계십시오. 그리고 보통의 것은 매일 올려 보내십시오. 이제 하늘이 다 열려있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두 올라갑니다. 자기의 여러 사정들, 연약한 것, 병든 것 다 올려 보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전부 받아주십니다. 또, 하늘이 열려있으니 하나님의 것이 다 내려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은혜와 진리가, 그리고 모든 것이 다 내려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마지막으로 올려 보낼 것이 무엇입니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것이 마지막에 올려 보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것이 우리에게 다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이것이 큰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 계시의 세대에 살면서 이와 같이 올려 보낼 것을 올려 보내고 내려오는 것을 받는, 그러한 생활을 계속해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