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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디도서 2:1-15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
디도서 2:1-15

1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2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3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6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7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9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10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5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말라

1. 늙은 남자에 대하여

본문 1절에,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 즉 성경에 합한 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바른말을 해야 됩니다. 진리에 어긋난 말, 육신에 속한 말, 죄짓는 말,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바른 말 하기를 언제나 힘씁시다.

본문 2절에,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남자는 몇 살부터라 하면 될까요? 60세나 65쯤 될 텐데, 그 나이 정도부터는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절제하라는 것은 끊을 것은 끊고, 안 할 것은 안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돈도 절제하고 시간도 절제해야 됩니다. ‘경건하며’라고 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근신하며’라고 했습니다. 삼가 조심하여 잘 이겨나가는 생활을 하며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인내, 곧, 신, 망, 애(信, 望, 愛)함에 온전케 하여야 합니다.

2. 늙은 여자에 대하여

본문 3절에,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여자도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늙은 여자도 65세 이상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늙은 여자는 첫째가 행실이 거룩해야 됩니다. 둘째는 ‘참소치 말라’ 는 것입니다. 다니면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늙은 여자들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남을 헐뜯어 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또 처음 교회 나오는 이를 잘 사랑해야 되는데 쓸데없는 말로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늙은 여자들은 가정에 시험든 사람이 있으면 잘 이기도록 잘 인도해야 되는데, 오히려 가서 더 책망하고 그 사람을 더 시험 들게 만들어서 교회 안 나오게 만드는 수가 있습니다. 늙은 여자들은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말을 많이 안해야 됩니다. 말에 덕이 있어야 됩니다.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될텐데 왜 자꾸 말을 해서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게 만들고, 교회에 쓸데없는 말이 돌아가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많은 술에 종이 되지 말며’라고 하였는데, 술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잔 먹어도 취하는 줄 알면 됩니다.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3. 젊은 여자에 대하여

본문 4-5절에,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를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를 잘 교훈해서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게 하고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남편에게 복종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훼방받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들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집안일을 잘 하며 남편을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이 놀러 다니다가 마귀한테 걸려서 망하는 집이 많습니다. 놀러 다니지 마십시오. 계 모임 간다, 어디 놀러 간다하며 하면서 잡아먹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러 다니다가 꾀임을 받아 한번 넘어 가면 그 사람의 종이 되서 다 내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집안이 다 망합니다. 나가 돌아다니지 말고 자녀를 잘 돌보고 남편을 순종하고 집안일을 잘 하십시오. 젊은 여자들은 아들, 딸을 다 잘 길러야 됩니다. 아들만 잘 기르면 안 됩니다. 요새 주일학교에는 남자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졸업생 중에 남자아이가 상당히 많습니다. 여자는 얼마 안 된답니다. 왜 여자가 적은지 알지요? 복중에 있을 때, 여자 남자를 감별해서 여자는 낙태를 합니다. 여자를 죽인 죄 값으로 지금 남자어린이가 많은 겁니다. 우리가 벌써 그 죄 값을 당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왜 여자아이를 낙태합니까? 그 죄 값을 하나님께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낳아야지, 남자는 낳고 여자는 낙태하면 안 됩니다. 살인죄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성경에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만 낳습니까? 그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까? 두 사람이 하나 낳으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 아이 하나 죽으면 또 끝장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으니까 많이 낳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많은 집은 부모님 세상 떠났을 때, 아들, 딸들이 상가(喪家)에 많이 와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집안일을 잘 돌봐야지 밖에 돌아다니면 바람이 들어 갑니다.

4. 젊은 남자에 대하여

본문 6절에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한문 고전에 젊은 사람은 정욕을 경계하고, 늙은 사람은 욕심을 경계하고, 청년들은 싸움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근신은 자유 방종하지 않고 삼가 조심하며 절제함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행실을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는 삼가 조심하여야 방탕하게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문 7-8절에,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가 모범된 생활을 해서 젊은 남자들에게 본을 잘 보여 충성된 사람은 신학교 보내서 교훈을 빛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성경 말씀대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언행심사를 삼가야만이 대적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교를 훼방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건생활을 함으로서 복음이 잘 전파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5. 종에 대하여

본문 9-10절에,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다 이 도를 지켜야 합니다.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상전에게 순종하고 윗사람에게 거스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떼어먹지 말고’라고 했는데 조금씩 떼어 먹는 모양입니다. 조금씩 떼어 먹는다고 해서 잘 살지 않습니다. 떼어 먹으면 죄만 짓고 나중에는 다 탄로가 납니다. 한 입도 떼어 먹지 말고 그대로 심부름해야 합니다. 종의 일을 잘 보면 하나님의 교훈이 빛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종의 일을 잘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훈이 빛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셉을 귀하게 여겨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6. 모든 사람에 대하여
 
본문 11-13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나서 우리를 양육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경건치 아니한 것.’ 곧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하나님 앞에 경건치 않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정욕’. 이 두 가지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신함과 경건함과 의로움으로 세상을 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 있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고 건져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업신여김을 받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고 말씀대로만 항상 나가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디도서 1:1-16 교회를 바로 세우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를 바로 세우라
디도서 1:1-16

1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10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12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니 13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14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 사도 임무와 축복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 이 세 가지를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도로 세웠다고 했습니다. 첫째, 택하신 자들의 믿음, 곧 택하신 자들에게 믿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로 세워졌고 둘째, 믿는 사람들의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 곧 하나님께 바로 사는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며 셋째, 영생의 소망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위하여 즉,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고, 또한 중생한 영혼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도 영생인데, 중생한 영을 날마다 살려 나가는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도로 세웠다고 했습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본문 3절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때는 예수의 초림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로서 나타내셨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바울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기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맡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맡겨졌습니다. 사도바울도 전도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본문 4절에,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디도는 믿음의 아들입니다. 디도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은혜의 결과가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면 항상 평강이 있습니다. 

2. 감독 자격
본문 5절에,“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고 하였습니다.

그레데라는 지방에 디도를 떨어뜨렸다고 했습니다. 그 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를 위하여 떨어뜨려두었다는 것입니다. 디도를 그레데 지방에 떨어뜨려서 교회를 돌보게 한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교회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는 일이 중요하고, 장로를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지상 교회는 언제나 완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항상 마귀가 부지런히 지상교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지상교회는 마귀가 계속 시험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계속 너는 부족한 것이 들어 올 때에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부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장로들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에 온전치 못한 것들이 항상 들어옵니다. 그래서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 교회의 증표가 세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둘째는 성례를 거행하고, 셋째는 권징을 부지런히 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라고 했습니다. 권징은 잘못된 것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마귀가 혼란스럽게 하려고 계속 부족한 것을 집어넣고, 마귀가 들어오고, 사
이비한 것이 들어오고, 여러 가지 불순분자도 들어오고, 비진리도 들어옵니다. 그것을 바로 세우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교회에 늘 온전치 못한 것들이 들어와 생기는데, 그것들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참 교회가 유지되지 못합니다. 온통 다 무너지고 맙니다. 언제나 마귀가 들어오고 시험하고 어지럽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교회를 바로 세우고, 계속해서 권징함으로서 마귀의 역사를 제거하고 성결을 보전해야 합니다. 성결을 보전하지 못하면 썩어지고 부패하고 맙니다. 각
성에 장로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장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교훈장로와 치리장로가 있습니다. 

교훈 장로는 교역자(목사)를 말합니다. 치리 장로는 목사를 보조해서 치리하는 것입니다. 참 종, 하나님 앞에 바로 된 종 교역자도 세우고, 하나님께 바로 된 장로를 세워야 됩니다. 충성된 종, 교회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교회를 잘 인도할 수 있는 그런 종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나 장로의 자격은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자라야 합니다.

본문 7절에,“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교역자입니다. 교역자도 장로이고, 치리 장로도 장로입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교역자가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됩니다. 장로들도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됩니다. 교역자나 장로가 급히 분내지 말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한다는 것은 술을 조금은 먹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성경말씀도 있는데, 술은 한 잔에도 취합니다. 한 잔에 안 취하면 백 잔도 안 취합니다. 백 잔도 한 잔부터 취하여 올라갔기 때문에 한잔부터라도 절대 술은 먹지 않아야 합니다. 술 먹는 장로, 술 먹는 목사, 이것은 다 치리감입니다. 징계해야 합니다. 목사나 장로가 술 마시면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구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때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거 괜찮을까요? 안 됩니다. 때리지 않아야 됩니다. 또 아내에게 매 맞는 목사도 있답니다. 아내에게 매 맞고 강단에 서면 사람 구실하겠습니까? 아내를 때리지도, 또 아내에게 매 맡지도 말아야 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맞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뚱뚱하고 힘이 센데, 남편 목사는 약해서 가끔 부인에게 매를 얻어맞곤 한답니다. 그래서는 사람 구실 못합니다. 맞지 않아야 됩니다. 맞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오십시오. 안 맞는 방법이 다 있습니다. 하루는 내가 가는 목욕탕에서 구두 닦는 영감이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욕을 하냐고 하니까 젊은 녀석이 자기를 보고 인사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인사 받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방법대로 해서 인사를 받아야지 욕한다고 인사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게 뭐냐고 하기에, 인사하게 하는 방법은 내가 먼저 인사를 자꾸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매일 해 보십시오. 그러면 상대방이 나중에는 먼저 인사 할 것이라고 했더니 좋은 것 배웠다고 하면서, 그저 인사 안 한다고만 욕했지, 인사 받는 방법을 미처 몰랐다고 합니다. 인사 안 하는 사람 있으면 먼저 하면 됩니다. 한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열 번, 스무 번 계속하면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나중에는 염치없어서라도 인사 못 받습니다.
먼저 인사하려고 결심하고 있다가 멀리서 상대방이 오는 것을 보면 먼저 인사 합니다. 난 인사 안하는 사람 있으면 그 방법으로 합니다. 그래서 인사 다 받습니다. 어디 가나 다 받습니다. 인사 안 한다고 섭섭할 게 뭡니까?

본문 8절에,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하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나그네 대접을 잘 해야 됩니다. 근신하는 것은 자기를 잘 이기는 생활입니다.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의로운 길을 날마다 걸어가야 됩니다.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성경말씀을 자기가 먼저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지키면서 가르쳐야 됩니다. 감독은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바른 교훈으로 잘 권면하여, 바로서지 못한 사람을 바로 세우고, 그 사람이 권면을 잘 받도록 해야 합니다. 거스려 말하는 사람을 책망해서 바른대로 인도하는 것이 감독의 책임입니다.

3. 교회 전복
교회를 전복하는 세력의 입을 막으라

본문 10절에,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할례당 가운데 이러한 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헛된 말, 성경에 없는 말을 하고, 속이는 자가 많이 교회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고 했는데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못된 것을 가르치는 사람,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열린 예배’를 가르치는 것과 같이 교회를 속화시키는 자들의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커뮤니티 처어치’의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이미 내려오던 전통적인 교회를 다 뒤집어엎겠다는 것이 Rick Warren의 주장입니다. 전통적인 교회를 그냥 두면 안 되고, 다 뒤집어엎어야 된다는 그런 사람의 입을 막아서 절대 강단에 세우면 안 되고 그런 사람이 가르치는데 따라 다니면 안 됩니다. 그들은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사람들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을 모아 ’아름다운 이들의 모임’ 이라는 감상적인 교회 이름을 붙여 놓고, 모여서 세상 음악가가 와서 공연하고, 세상 연극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구경꾼이 많이 모였지 그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교인이 좀 있겠지만, 가라지가 다 들어오면 곡식이 다 시들어지고 메말라서 곡식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또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저 교회에 사람만 많이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세상에 개방하여 세상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것을 교인이 들어오는 줄 아는 것입니다. 세상과 더불어 타협해서 세상이 들어오게 만들고,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게 만들고, 각종 세상의 노랫가락으로 만든 복음성가로 교회를 세상놀이터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요, 기도하는 집인데 세상 유행, 세상의 노랫소리들을 들여놓아 놀이터를 만들어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린 것이 아닙니까? 온통 무너졌습니다. 새로운 신조어들은 말은 그럴 듯 하면서도 그 말에 포함된 여러 가지 악사상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동체’란 말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다른 것이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들어오려니까 그냥 들어 올 수 없잖습니까? ‘공동체’라는 이름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도 나쁜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적이 무엇이냐가 문제입니다. 목적이 성경이면 괜찮은데,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고 겉으로 말하면서 사실은 성경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기성교회를 다 뒤집어 엎어놓고, 예배의식 다 뒤집어 엎어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통 다 집들을 엎드러뜨리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 계실 때에는 신사참배 선전하는 사람들이 합당치 않은 이익을 취하고 교회를 온통 엎드러뜨렸는데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신신학사상, 세상사상이 다 들어와서 집들을 온통 어지럽힌다는 말입니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저들의 입을 막아야 됩니다. 가만히 두면 교회가 다 온통 무너집니다. 전복됩니다. 집들을 온통 어지럽히는 자들의 입을 막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막으면 참 교회가 되고 이것을 막지 못하면 음란한 교회가 됩니다. 부족한 것을 바로잡고 좋은 교역자와 좋은 장로를 세워야 합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게 할 이런 장로, 교역자를 세우면 안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 진리에 서는 사람, 그런 사람을 교역자로 세우고 장로로 세워야 됩니다. 

교회를 전복하는 세력을 막으라

집들을 온통 엎드러친다고 했는데 집은 교회를 뜻합니다. 어느 시대나 마귀는 하나님의 교회를 온통 엎드러치는 역사를 계속합니다. 말세에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통 혼란스럽게 하고 전복시킵니다. 세상 국가도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이용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교회를 일본 정치의 이용물로 삼아서 교회로 하여금 신사참배하게 하고 교회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게 하였습니다. 교회의 종을 다 떼어가서 그것으로 전쟁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찬송가도 고쳐 부르게 하였는데,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라는 구절도 다 고쳐 부르게 했습니다. 성경은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이고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꾸며 쓴 것이라고 하면서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교회들을 온통 엎드러쳤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 목사들 가운데 하루에 백 원씩 일본정부로부터 받으면서 “신사참배를 해도 죄가 아니다, 괜찮다”고 돌아다니면서 강연하며 신사참배를 시키는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하루 백원이면 요새 월급으로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합니다. 학교 선생님이 그 당시에 약 이십 원 정도 받았습니다. 몇 달 월급에 해당하는 그 돈을 목사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받으면서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강연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선 목사님이 이 말씀을 적용해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들이 헛된 말로 속이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여 집들을 온통 더럽혔다는 것 입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고 파멸 시켰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해방 후에 이북에서 정권을 잡은 뒤 공산정치를 해서 온통 집(교회)들을 엎드러치게 했습니다. 김일성은 이북에서 1946년 자기의 외삼촌인 강량욱 목사를 통해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조직하여 위원장을 맡긴 후 북한의 교회들을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시켜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교회를 움직였습니다. 주일날인 1948년 8월15일에는 북한이 태극기를 사용하다가, 요새 사용하는 붉은 깃발로 고치고 그 경축대회를 하기로 하고, 주일에 모든 교회는 경축대회 할 장소로 모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이 교회들을 온통 다 엎드러치는 것입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이용하여 교회를 공산주의의 어용기관으로 다 만들어 놓고,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교회는 다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6.25사변이 발발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6.25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감옥에 갇히고 죽었을 것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마귀가 강제로는 교회를 엎드러치게 하지 못하겠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교회에 침투합니다. 세속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여러 가지 그릇된 사상, 열린 예배, 신신학 사상, 신비주의사상, 공동체 교회 등으로 위장하여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를 온통 엎드러치게 합니다. 신비주의 교회가 성령을 따라가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들이 꿈꾼 것과 계시 받았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것이 집 즉, 교회가 다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신신학자가 있
습니다.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신신학자, 내세를 부인하는 신신학자,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신신학자, 이 세상을 잘 만드는 것이 천국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사상, 가난한 사람, 억압 된 자들을 해방 시켜주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는 해방신학자 등이 교회를 온통 다 뒤집어엎어 놓았습니다. 신신학은 교회를 다 뒤집어 엎어놓는 신학사상입니다. 엎드러치게 만들어 놓는 사상입니다. 그릇된 신비주의 교회도 다 마귀가 엎드러친 교회입니다. 요즈음 여러 가지로 성경에 합당치않은 방법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 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인본주의 방법이 많이 들어옵니다. 교회가 부흥된다고만 하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하여 결국은 교회를 완전히 엎드러치게 하는 가운데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엎드러치는 것은 분별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정시대에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교회가 다 엎드러쳤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나가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교회가 다 온통 전복되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라고 했습니다. 행위가 성경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성례를 행하고, 권징을 부지런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권징을 부지런히 행한다’는 것은 부지런히 불순사상, 불순세력과 같은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불순사상, 불순세력과 같은 것들을 막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막지 못하면 참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에도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 일이 없습니까?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 왔습니다. ‘목적을 위한 삶’ 이라는 책이 인기가 있는데, 그것은 미국 LA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의 사상입니다. 자기가 목적을 하나 정해 놓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교인들 전체가 다 그것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늘 바뀔 수 있습니다. 성경이 목적이라면 성경을 위한 삶을 살기에 목적이 바뀌지 않아야 할텐데, 자기가 목적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목적이 우상입니다. 목적이 교회 부흥이라고 하면 전부 다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아도,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도, 목사, 장로도 그것을 위해 살고 설교도 그것을 위해서 하고 주일학교도 그것을 위해서 하게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적이 우상이 되는 것 아닙니까? 성경에서 탈선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 무슨 이익을 위해서 산다고 했습니까? 더러운 이익, 다른 번역에는 부당한 이익이라고 했는데 부당한 이익을 위해서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게 하는 것입니다. 벌써 목적을 위해서 살면 집이 다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하고, 또 성경을 바로 순종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목적에 순종을 하는 입니다. 그 교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목적에 맞춰서 설교하고 그 목적에 맞추려고 모든 것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조직이나 설교나 교훈이나 전부 그 목적을 위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집들이 온통 다 무너진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자기네 목적을 위한 집입니다. 이 시대에 엎드러치게 하는 걸 막아야 할 텐데 우리에게 막을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온통 다 무너집니다. 막는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또 Rick Warren이 말하는 ‘목적이 이끄는 교회’도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끄는 교회로 해야지
왜 목적이 이끄는 교회입니까? 또 ‘목장 운동’, ‘셀 운동’ 등은, 교인들이 목장이고 목장마다 목자가 하나씩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학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을 목자로 세워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합니다.
신학도 안 했는데 어떻게 바른 진리를 가르칩니까?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전도만 하면 자기가 목자가 되서 그 전도 받은 사람을 가르칩니다.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교회를 전복시키는 각종 역사가 교회 안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또 ‘성령운동’같은 것은 성령을 단 번에 받는 것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오순절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신비주의 운동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건전한 가르침들이 아닙니다. 

또 요즘 ‘Community Church’(공동체교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열린 예배를 합니다. 열린 예배가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 전복시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온통 엎드러치고 있는 가운데 열린예배가 더욱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열린예배가 도입되지 않는 교회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교단 교회에도 들어오려고 합니다. 열린 예배는 예배당의 강단을 다 없애거나, 낮추어 무대처럼 넓게 만들어 춤추고 노래하는 공연을 합니다. 강단은 성경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사도요한이 구십 세가 넘어 부축을 받아 올라가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할 때에 온 교인이 은혜 받았다는 것을 보면 그 때에도 강단이 있었고, 강단에 올라서서 하나님 말씀 전한 것이 분명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강단에서 전한 것입니다. 사도요한 때로부터 후에 루터, 칼빈이 종교 개혁 할 때도 모두 강단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칼빈이 있었던 교회가 있답니다. 강단이 다 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도 처음부터 강단이 모두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와서 교회를 세우고 강단을 꾸며 놓고 강대상 위에서 가르쳤습니다. 그 때는 예배당을 ‘ㄱ’ 글자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ㄱ’자로 지어서 한 쪽에는 여자 성도들이 앉고, 다른 한쪽에는 남자 성도들이 앉아서 여자, 남자는 서로 볼 수 없고, 강단에 교역자만 남, 녀성도들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도요한 때부터 강단과 강대상이 있었는데 요새 와서 다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온통 집들을 엎드러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세워야 됩니다. 바로 세우지 못하면 참 교회가 다 없어집니다. 

에스겔 30-31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 성을 보호해 준다고 했습니다. 찾지 못하면 그 분노로 하나님이 그 행위대로 징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이 온통 다 무너졌는데 무너진 데 서서 막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막는 세력이 되어야 됩니다. 부족하지만 막는 세력 가운데 우리가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성 무너진 데를 막아야 합니다. 한국에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을 것입니다. 사방에서 성 무너진 데를 막아야 됩니다. 우리교단에서 물론 막아야 되고 우리교단이 아니라도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참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지금 성이 온통 다 무너졌습니다. 통합측, 합동측 온통 다 여기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고려파도 들어갔습니다. 부산 백영희 목사님이 살아 계셨으면 잘 막았을텐데 세상 떠난 다음에 그 후계자들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정신 못 차린 증거가 뭐냐 하면 백영희 목사의 비디오설교를 보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주일날도 예배 끝난 다음에 그렇게 하고 사경회 때에도 그것을 틀어 놓고 한답니다. 그분들도 5월 사경회를 우리 교단과 같이 하는데 물어 보면 비디오 틀어놓고 사경회 한다는 것입니다. 백영희 목사가 세상 떠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백 목사의 비디오를 보며 설교를 듣는다는 말입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어디가 무너지든 막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야 됩니다. 막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이 찾아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찾아보시다가 아! 여기 있다, 아! 저기 있다 하며 찾으시면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참 교회를 세워나가야 됩니다. 온통 무너져 들어오는데 열린 예배를 들여온 교회가 지금 절반이 넘습니다. 조금 있으면 자꾸 많아 질 것입니다. 그거 안하면 교인 다 빼앗기고 교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이익을 위해서 집들을 다 무너뜨린다고 안 그랬습니까? 이것을 막는 세력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왜정 시대 때는 일본이 교회를 어용기관으로 삼아 자기들의 이용물로 삼는 것을 막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또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일본 정치를 위해서 교회를 이용 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교당하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해방 이후에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을 막는 것이 무너진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김익두 목사도 넘어갔습니다. 김익두 목사가 얼마나 유명하신 분입니까? 김익두 목사가 정주읍 교회에서 설교할 때에, 조선기독교도연맹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설교하다가 교도연맹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그런 설교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김익두 목사까지 앞장서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미국의 신신학 사상이 들어왔습니다. 프리스턴에서 신학을 하고 온 목사들을 말하는데, 한경직 목사도 거기 감염되어 통합측 신신학 목사하고 손잡고 나가지 않았습니까? 또한 박형룡 목사를 신신학으로 넘어가게 하기 위해,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박형룡 목사를 유럽으로 여행을 보내주었답니다. 가서 유럽에 있는 교회들을 한번 보고 오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유럽교회들은 전부 좌경화되어 있었습니다. 박형룡 목사가 유럽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제네바에 가니까 칼빈이 세운교회가 있었는데 거기 신신학자가 강단에 선 것을 보고 아주 원통했다”는 말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이 사람은 머리가 돌 같은 사람이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박형룡 목사를 아예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통합측과 합동측이 갈라진 것입니다. 집들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목사들이 무너지지 않아야 됩니다. WCC와 KNCC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전부 집들을 무너뜨리는 신신학 운동입니다. 지금까지는 고려파가 조금 나았었는데, 근래에는 고려파에도 신신학 사상이 들어왔고 우리교단에도 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마귀인데 왜 안 들어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지런히 막는 것이 중요 합니다. 막으면 우리 백성도 살 것입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다 망하고 맙니다. 

본문 12절에,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 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을 물 먹듯 하는 사람들인데,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양 잡으러 들어오는 악한 짐승같다는 말입니다.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 즉 자기 먹을 것만 아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4. 진리를 배반한 자
진리를 배반한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

본문 13-14절에,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왜 받아들이는지 아십니까?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속적으로 부흥시키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들을 엄히 꾸짖어서 믿음을 온전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게 한 자들을 엄히 꾸짖어서 교인들의 믿음을 온전케 하여야 합니다.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한자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교회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참 교회는 성경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성례를 거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권징을 부지런히 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교회에 잘못 된 것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마귀가 계속 불순분자들을 교회에 넣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부지런히 제거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교회 성결이 보장됩니다. 이런 것을 조금이라도 교회가 용납하면 온통 교회가 다 엎어집니다. 용납하지 말고 엄히 꾸짖어 바로 세워야 합니다. 바로 세워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는 것을 한국교회에 선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은 안 된다’고 선포해 나가면 잘못된 길로 넘어갔던 교회도 정신 차리고 돌아올지 모릅니다. 요즈음 많은 교회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열린 예배를 하면서 다 춤추고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에도 그렇답니다. 많은 중국교회도 혼란한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악기를 사 놓고 예배 시간에 춤추고 노래하는 혼란한 가운데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학교에서 배운 전도사들은 성경대로 그대로 한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미혹을 받아서 온통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가르치면 교회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교회를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지 인본주의로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는 곳이 교회란 말입니까? 성경을 가르쳐서 예수를 믿고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려는 욕심으로 더러운 이를 취하고 집들을 온통 무너뜨리는 이 시대가 되었는데, 잘 싸우고 엄히 꾸짖어 성결을 보존하고, 참 교회를 보존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저희 입을 막아라. 또 엄히 꾸짖으라. 이렇게 해야 교회가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려고 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다 있습니다. 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이걸 막아야지 막지 못하면 다 틀린 것입니다. 주일날을 철저하게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되고 성경대로 바로 세워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가 인본주의를 쓰면 무너집니다. 우리 신학교인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에 천만 원을 낼 테니 졸업장을 하나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천만원도 내라면 낼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인데, 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몇 억, 백 억을 줘도 우리는 못한다, 신학교를 다녀야 졸업장을 타지 안다녔는데 어떻게 졸업장을 주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도 마귀가 돈을 미끼로 삼아 살살 교회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단호하게 거부해 놓았습니다. 아마 그때 천만 원 받고 졸업장을 해줬으면 그런 사람 몇은 더 왔을 것입니다. 한 열 명만 오면 일 억원을 버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값을 또 올려 받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신학교를 못하면 못했지 그런 것은 안 한다, 바른신학을 하고자 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지, 우리 신학교는 그렇게 돈이나 받고 하는 학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 신학교에서 자격 없는 사람을 합격시켰다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원은 교육부 인가 받은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만 입학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간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것도 대학에서 공부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야간신학교 4년 공부하고 졸업한 사람은 대학졸업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간 신학교는 교육부인가를 받은 학교가 아니기에 정식 대학과정으로는 인정을 안 해 줍니다. 그래서 교육부 인가 받은 다른 대학교에 편입을 해서 졸업장을 받아오면 우리 대학원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야간 신학교점수를 인정해 주는 교육부 인가 받은 대학교가 있는데, 교육부 인가가 된 그 대학교에서 일 년이나, 이년간 공부해서 정식 졸업장을 가지고 오면 우리 신학대학원에서 받아줬습니다. 신학교 4년 졸업하고 다른 학교에 편입해서 졸업해서 받아 주었는데 비방이 들어 왔습니다.
어중이, 떠중이 다 합격시켜 주었다고 말입니다. 우리 야간 신학교 졸업한 사람이 어중이, 떠중이입니까? 자기도 우리 야간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가 된 사람인데, 그렇다면 자기도 어중이, 떠중이 아닙니까? 비방 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합니다. 걸고 넘어지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믿고 같이 넘어가는 사람도 같은 사람입니다. 마귀의 종이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투서도 하는데 그것을 믿고 의아해하는 것은 마귀가 속에 들어 간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아주 쏙 빼버려야 되는데 싹 빼 내지 못하고 의아해하면서 같이 어울려 돌아가면 같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바른 교회, 바른 신학교를 해야 합니다. 온통 엎드러치는 것을 막고 입을 막고 엄히 꾸짖어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중생한 영과 신앙 양심을 따라 사는 자는 깨끗한 자요 또 모든 면에 깨끗하지만, 더럽고 믿지 아니한 자들은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입니다. 행위로 어떻게 부인합니까? 열린 예배 등 각종 잘못된 것들이 들어와서 춤추고 돌아가니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까? 행위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버리고 자기 주장과 자기 목적을 달성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온통 다 무너집니다. 여기서 바른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잘못된 것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우리 교단에도 들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단히 경계를 서서 막아야 합니다. 막지 않으면 다 무너집니다. 다 무너지면 다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참 교회를 보고 그 민족을 지켜줍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됩니다. 금년에 대통령 선거하는 해인데 참 교회를 보고 하나님이 좋은 대통령을 세워주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치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하시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열 사람의 의인이 있으면 멸망치 않으시겠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좋은 대통령을 세워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서지 못하면 온통 다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뭘 도와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 모릅니다. 잘못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다 망하고 그르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교회,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교회를 세워 나가는 교회와 같은 이런 교회와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도 바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교회들이 온통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한심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로 서면 우리나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경건한 예배당을 놀이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집들을 무너뜨리는 역사, 신신학, 열린 예배, 신비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 이런 것들이 온통 집들을 엎드러치게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이것들을 막으면 우리 교회도 바로 되고 우리나라도 삽니다. 바로 해야 됩니다. 성경 복종치 않고 자기 목적을 따라 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살고 성경 따라 살아야지 목적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다 무슨 일인가 이 말입니다.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막으면 성공이고 막지 못하면 다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도 나라도 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잘 막아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9-22 바울의 말년의 상황.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말년의 상황
디모데후서 4:9-22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15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바울의 말년의 상황

누가만 바울과 함께 있음

본문 9-11절에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하였습니다. 왜 오라고 하였는가? 하면, 바울을 도우며 바울과 함께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버리고 다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까?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진리를 많이 배워도 진리의 신앙에 이르지 못하고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갑니다. 하여간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도 갈라디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바울을 다 떠나가고 누가만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했고,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또 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일시라도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음

본문 16절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바울과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바울을 버리고 다 갔습니다. 또 빌립보서 2:21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바울과 같이 복음을 변명했지만,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바울을 버리고 다 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말년에 바울과 같이 일하던 동역자들이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다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일을 구하다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간 것 같습니다. 바울이 좁은 길을 걸어 갈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같이 나가다가 바울이 끝까지 좁은 길을 걸어가니까, 다 떠난 것 같습니다. 바울은 비진리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 떠난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2:5에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비진리는 일시라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일시라도 비진리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좁은 길을 끝까지 간 것 같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6:12-14에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세상을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바울을 못쓰겠다고 못 박아 놓았고, 바울은 세상을 못쓰겠다고 못 박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신앙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세워나간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즉 바울의 신앙의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인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좀 넓게 나가자, 할 때에 바울이 넓히지 않으니까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좀더 용납하고 나가자”고 할 때에 바울은 일시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같이 나갔던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마지막에 바울과 같이 있었습니다. 즉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누가만 같이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에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 하는데 유익하니라”고 하였는데, 마가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1차 전도 여행 할 때에 고생이 심하니까 밤빌리아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손해를 많이 준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안 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갔다가 어려움이 오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돌아간 것은 배신자와 같습니다. 그 다음에 2차 전도 때에는 바울이 마가를 안 데리고 갔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으나 바울은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해서, 마가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어 갈라졌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대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문제 때문에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가는 배신자이고, 사고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년에 가서는 그 형편없는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형편없는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을 보면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만 바울과 같이 있고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오라고 한 것입니다.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는데, 형편없는 ‘마가’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니까 바울이 마가를 쓰려고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함

본문 12-13절에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의 형편이 말년에 가서 비참한 것 같습니다. 유력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은 다 떠났고, 마가 같은 사람이라도 데려다가 좀 쓰려고 데려오라고 하였고, 의복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누구 하나 옷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겨울이 점점 다가오므로 겨울에 입을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년에 겉옷을 지어다주는 사람도 없이 옥중에서 육신적으로 쓸쓸하고 외롭게 보낸 것 같습니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가죽 종이에 쓴 원본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계속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고난 가운데 빠졌지만, 그래도 바울은 항상 자족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자족을 배웠습니다. 궁핍에 처할 때에, 배고플 때에, 비천해졌을 때, 외로워졌을 때 등 항상 자족을 배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능력 주시기 때문에, 그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자족을 배우는 바울 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또 항상 좁은 길을 걷는 바울의 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말씀만 있으면 대성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도 성공이고, 외로워져도 성공입니다. 또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도, 도와줄 사람이 나옵니다. 마가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으나 회개하고 바로 서니까, 다시 바울에게 쓰임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마가가 전에는 사고나 치며, 배신한 배신자였지만, 이제 회개하고 바로 서니까 하나님이 쓰시고, 또 바울도 씁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이 쓰십니다.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는데, 회개하고 바로 선 마가는 하나님의 일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겨울이 오기 때문이고, 바울에게 지금 쓸 만한 사람이 없는데, 디모데가 와야 하나님의 일에 좀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할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바울은 육신적으로 로마 옥중에서 겉옷하나 공궤해 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독하게 지낸 것 같습니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것은 원본 성경인 것 같습니다. 
성경은 원본에 맞는 성경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성경 원본은 없고 사본만 있는데, 그 사본을 보고 우리가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속한 한국성경공회에서는 “바른 성경을 번역하자”고 결의하고, “바른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한지가 약 9년이 되었는데, 9년 동안 여러 교단과 여러 신학교 교수들이 매주 토요일에 20-30 명가량 모여서 토론하고, 번역하여 이제는 거의 다 마쳤습니다. 금년 8월 달에 바른 성경이 나올 예정입니다. 하여간, 바울이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이 원본을 보고서 성경을 연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로 번역된 “바른 성경”이 나오면 그것을 보고, 성경을 바로 연구하여야 됩니다.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신구약 성경을 다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려면 한 구루마는 싣고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바른 성경을 사모하였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이 좁은 길을 걸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좁은 길을 걸으니까 다 달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2:21에는 처음에는 바울의 협력자로 나섰지만 다 자기 일을 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과 같이 일 하다가 좀 어려워지니까 다 달아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보고 목사님이 살았을 때는 우리 교단이나 진리가 살아가지만, 목사님만 세상 떠나면 이제 다 자기 볼장 보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답변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서 있기 때문에, 아무리 떨어져 나가도 견고한 터는 안 떨어져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견고한 터는 그냥 서 나갈 것이니까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이 있지, 다 자기 볼장 보려고 떼어 먹겠습니까? 교회를 떼어 먹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받습니다. 
하여간 바울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자족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족을 배웠기 때문에 처음에 복음에 협력하며 같이 나가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어도 항상 만족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은 나와 같이 하신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살다가 진리를 위해서 죽는다”하며 혼자 나가도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끝까지 전하며 바로 나갔습니다. 이런 신앙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2. 바울을 강건케 하시고 건져내신 하나님

본문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바울을 강건케 하신 목적은 이방인에게 전도하게 하시려고입니다. 하나님이 강건케 해주시는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를 강건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복음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하여야겠습니다. 즉 전도하기에 힘을 쓰고, 또 선교와 교회 세우는 일에 협조하여야겠습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는데,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과 같은 위험한 곳에서 바울을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건져 주셨습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 바울을 강건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겠으니까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강건케 해주어야 전도가 되겠으므로 강건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강건함을 가지고 육신의 기회를 삼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됩니다. 즉 기도하는데에 기회로 삼고, 말씀 연구하는데에 기회로 삼고, 또 신학생들을 기르는데에 기회로 삼고, 교회를 세우는데에 기회로 삼고, 선교사를 보내는데에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기회를 삼으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강건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우리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 주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6.25때에 다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건져주셔서 오늘날까지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하라고 건져 주신 것이며,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건져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강건케 해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강건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강건함을 육신의 기회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좀더 힘쓰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8절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셨다고 했습니다. 즉 사자의 입에서도 건져내셨고, 모든 악한 일에서도 건져내셨습니다. 또 악한 질병에서도 건져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께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것을 송축했습니다.

3. 문안축복

본문 19-21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는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을 잘 도와준 부부입니다.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하였는데, 드로비모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시에 함께한 자로서 드로아, 밀레도, 수리아, 예루살렘까지 함께 하였습니다(행 20:4, 21:29). 바울이 전에 드로비모가 병들었으므로 밀레도에 두고 전도 일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군대가 진군하다가 병든 자가 있으면 머물게 하고, 군대는 다시 진군하는 것과 같습니다. 드로비모가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고 갔습니다. 이렇게 군대가 진군하다가 또 병든 사람이 있으면 거기다 두고, 계속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 때문에 복음 전파가 중단되면 안 됩니다. 신앙의 달음박질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방으로 복음이 계속 전파되게 됩니다.

바울의 신앙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아무리 고립되고, 지금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계속 전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또 강건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달음박질 하고, 전진합니다.
 
본문 21절에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겨울 전에 오라는 것은 겨울 전에 와야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시기를 넘기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에 모든 것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심령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입니다. 즉 영의 역사가 있는 마음입니다. 은혜는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 전체가 다 은혜입니다. 성도가 은혜 속에서 살 때에 강건하고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