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언약궤를성전안으로메어들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언약궤를성전안으로메어들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역대하 5:1-14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메어 들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메어 들임
역대하 5:1-14

1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이에 그 부친 다윗이 드린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 2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니 3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왕에게로 모이고 4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 5궤와 회막과 장막 안에 모든 거룩한 기구를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6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7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8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9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오므로 그 끝이 내전 앞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궤가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10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1이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12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13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 성전의 기구 제작을 마치고 그것들을 성전 곳간에 둠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지은 다음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많이 드렸습니다. 여러 노래하는 사람들을 세워 나팔을 불며 찬송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 13절에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라고 노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할 때에 성전에 구름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그 구름으로 인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전에 영광이 충만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이에 그 부친 다윗이 드린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다 마쳤습니다. 성전을 다 지었습니다. 그리고 부친 다윗이 드린 은,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만들어서 성전에 바쳤는데, 그것을 성전 곳간에 다 두었습니다. 다윗이 바친 것을 이제 솔로몬이 그대로 가져다가 성전에 바친 것입니다.

2. 언약궤를 메어와 지성소에 안치함

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두 모이고 레위 사람이 언약궤를 멤

본문 2절에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즉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두목, 즉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 하였습니다. 장로들, 족장들, 곧 지파의 어른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에 “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왕에게로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고 하였습니다. 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왕에게로 모였습니다. 그때의 모든 절기는 칠 월에 있었기 때문에 칠 월 절기라고 하는 것입니
다. 칠 월 초하루는 나팔절, 칠 월 십 일은 속죄일, 십오 일은 초막절입니다. 이렇게 칠 월에 절기가 다 있어서 그 달이 상달인 것입니다.

본문의 칠 월을 한국의 음력으로 말하면 시월쯤 됩니다. 한국에서도 시월 상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시월이 상달이라고 해서 제사를 많이 지낸다고 합니다. 시월 달에 고사도 합니다. 유다 나라에서 칠 월은 모든 절기가 있는 중요한 달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 족장들이 다 모인 것입니다. “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사람이 궤를 메고 성전으로 올라가려고 한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궤와 회막과 장막 안에 모든 거룩한 기구를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라고 하였습니다. 회막 안에 있는 것, 장막 안에 있는 모든 거룩한 기구, 제사할 때 쓰는 금, 은으로 만든 것들을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메고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메고 올라가라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지금 메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소 수레에 싣고 올라가다가 소가 뛰므로 웃사가 붙잡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메고 가야 합니다.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메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힘을 기울이고 정력을 다 기울여서 어깨에 메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봉사하는 것도 어깨를 들이대며 메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다 어깨에 메고 가는 것입니다. 쉽게 가는 것
이 아닙니다. 피땀을 흘리며 해산하는 수고를 하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힘을 다 기울여서 어깨에 메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소 수레에 실으면 쉽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땀을 흘리고 일심정력을 다해서 어깨를 들이대어 메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언약궤 앞에서 셀 수도 없는 양과 소로 제사를 드림

본문 6절에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서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궤를 메고 올라가기 전에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소와 양을 잡아서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정신을 늘 가져야겠습니다. 양이나 소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구속의 피에 감사하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사함 없이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피 흘리신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서 소나 양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드렸다는 것은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감격이 넘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내전 지성소에 안치함

본문 7-9절에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오므로 그 끝이 내전 앞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궤가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룹은 천사입니다. 천사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룹은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열왕기상 6장 23-24절에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고가 각각 십 규빗이라 한 그룹의 이 날개는 다섯 규빗이요 저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 날개 끝으로부터 저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또 역대하 3장 10-11절에 “지성소 안에 두 그룹의 형상을 새겨 만들어 금으로 입혔으니 두 그룹의 날개 길이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좌편 그룹의 한 날개는 다섯 규빗이니 전 벽에 닿았고 그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우편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어 금으로 입혔다고 했습니다. 그룹은 감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감람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입힌 것입니다. 날개 한 쪽이 다섯 규빗으로, 양쪽 날개가 열 규빗입니다. 즉, 그룹이 둘인데 합해서 이십 규빗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룹을 감람나무로 만들어 금으로 입혔는데, 그 그룹 아래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언약궤에는 지성소, 속죄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는 날개로 덮었습니다. 

채를 꿰서 궤를 메었는데, 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내전 앞에서는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8장 8절에 “채가 긴 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내전 앞 성소이니까 외소에서도 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중간을 막았는데 그 막의 뒤가 내전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그 앞을 보통 성소라고 하며 외소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언약궤를 내전 지성소에 가져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소 앞에 성소가 있는데 그 성소에서 채가 보인 것 같습니다. 내전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채가 휘장 앞으로 조금 나온 것 같습니다. 본문 9절에도 ‘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오므로 그 끝이 내전 앞에서 보이나’라고 하였습니다. 내전 앞이니까 성소, 즉 외소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음

본문 10절에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께서 쓰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둘이 있습니다. 첫째 돌판은 1에서 4계명까지를 기록한 것이고, 둘째 돌판은 5에서 10계명까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은 시내 산인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곳을 호렙 산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언약궤는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쌌습니다. 메는 채도 금으로 싼 것입니다. 그리고 그룹은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감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그룹은 천사인데 사람 같고 날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감람나무로 만들어서 금으로 쌌습니다. 날개는 오 규빗, 즉 일곱 자 반인데, 2m가 넘습니다. 그러므로 둘을 합하니까 열 규빗입니다. 또 그룹이 둘이니까 전부 이십 규빗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고 일컫는데 그 지성소에는 금향로가 있고,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0절에 보면 궤 안에는 언약을 새긴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9장 1-4절에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언약의 비석들이 있었다는 것은 무슨 소리입니까?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출애굽기 16장 33절에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라고 했습니다. ‘궤 안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두어 너의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멜을 호멜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호멜과 오멜은 차이가 아주 많습니다. 한 오멜은 2.34리터이고 한 되가 좀 넘습니다. 그리고 한 호멜은 220리터라서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호멜은 오멜보다 약100배 더 많습니다. 

아무튼 여기에서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를 ‘여호와 앞에 두어’라고 하였고, 언약궤 안에 넣으라는 말이 없습니다. 민수기 17장 4-10절에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매 그 족장들이 각기 종족대로 지팡이 하나씩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 합이 열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취하여 내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취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절에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증거궤 앞에 두라는 것입니다. 지팡이 열둘을 처음에 증거궤 앞에 두었다가 그 이튿날 가보니까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맺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증거궤 앞에 두어서 대대로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택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증거로 지팡이에 싹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 지팡이를 대대로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지팡이는 언약궤 앞에 두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언약궤 안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어디에 두라고 했습니까? 출애굽기 16장 33절에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만 있는 것이 분명하고 아론의 지팡이는 그 앞에 둔 것이 분명합니다. 또 출애굽기 16장 34절에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도 여호와 앞에 두라는 것을 보면 언약궤 안에 넣으라는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궤 안에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증거궤 앞에 간수했는지, 증거궤 안에 간수했는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보면 ‘증거판’이라는 글자에서 ‘판’자가 작게 쓰여 있는데, 그것은 원문에 없는 내용입니다. 작은 글자는 원문에 없는 것입니다. 번역한 사람이 ‘증거’란 글자에 ‘판’이란 글자를 덧붙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나를 증거궤 앞에 두어라, 여호와 앞에 두어라’는 것은 증거궤 앞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증거궤 앞에 둔 것 같습니다. 결국 증거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만 있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16절에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찌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증거판은 십계명 판을 가리킵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를 궤 속에 넣으라는 것이 아니라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증거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만 있었다고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그 증거궤 앞에 있었고,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도 증거궤 앞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4절이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9장 4절에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두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해석의 차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처음에 모세 때에는 돌판 둘만 있었는데 후대에 싹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를 언약궤 앞에 놓았다가 궤 안으로 넣지 않았겠는가’하는 입장입니다. 또 ‘처음에는 언약궤 안에 돌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전부 있었는데 포로 생활을 하고 블레셋 나라에 법궤를 빼앗기는 동안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잃어버리고 돌판만 남았다’고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처음에 궤 안에는 돌판 둘만 있었고 다른 두 가지를 언약궤 앞에다 두면 잃어버릴 염려가 있으니까 후대에 가서 그 둘을 넣었다는 해석 하나와, 처음에는 세 가지 다 언약궤 안에 있었는데 여러 전쟁으로 언약궤를 블레셋 나라에 빼앗겨서 두 가지는 잃어버리고 언약의 돌판 둘만 남았다는 해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맞을 것 같습니까? 두 번째 해석이 맞는다고 하면 구약의 출애굽기나 민수기의 싹 난 지팡이는 증거궤 앞에 두라는 말씀과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또 만나도 언약궤 안에 넣으라는 말 없이, ‘증거궤 앞에 두라, 여호와 앞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다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언약궤 안에 돌 비석만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언약궤 앞에 두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했다가 후대에 가서 궤 안에 넣었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출애굽기, 민수기의 내용과 상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4절에는 언약궤 안에 돌판과 함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이 세 개가 다 있었다고 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해석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 되겠습니다. 또 처음부터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을 알면 되겠습니다. 특별히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증거궤 앞에 두라고 했지, 안에 넣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3. 봉헌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하심

선하시고 자비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를 찬양함

본문 11절에 “이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한 사람들이 자원해서 나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을 당번제로 하는 것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자원해서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기도원에 기도하러 나가는 것도 당번제로 하는 것이 있고, 당번이 아니라도 자원해서 기도하러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원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스스로 자신을 정결케 하고 나와서 애쓰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당번제로 하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당번제 보다는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의 일을 돕고자 하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좋겠습니까? 스스로 정결케 하고 자원해서 나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본문 12절에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라고 하였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세 사람이 나왔는데,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입니다. 헤만이라는 사람은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이 세 사람은 아들들도 노래를 잘하고 그 형제들도 잘합니다. 

노래하는 것도 내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잘하면 아들도 잘하고 형제들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못하면 아들도 못하고 형제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보면 아들이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음치라서 도무지 노래를 못하면 그 아들도 뻔합니다.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상철 집사가 노래 잘하는 것을 보니까 아버지도 노래를 잘할 것 같습니다. 형제들도 잘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채효성 씨가 찬송가 인도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찬송가를 참 잘합니다. 지금은 미국에 갔는데, 아버지도 잘하고 딸도 잘하고 형제들도 잘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아버지, 아들, 형제, 딸들 전부 잘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못해도 자녀가 잘하는 사람이 더러 나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처럼 대대손손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못해도 혹시 개천에서 용 나는 격으로 잘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내력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 노래 잘하는 사람이 세 사람인데,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입니다.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았습니다.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있다가 나팔을 불고 일시에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도 일시에 노래를 하면서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함

본문 13절에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일백이십 명이 일제히 나팔을 불었습니다. 헤만과 아삽과 여두둔, 그리고 여러 형제들, 자녀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들이 일시에 다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또 자비하시다는 것입니다. ‘선과 자비가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하시고 절대 선하십니다. 악이 털끝만큼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다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자비하심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하심이 영원하고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데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충만하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 때문에 제사장이 감히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감히 가까이 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재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언약궤를 메어 올리는 일, 제사 드리는 일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언약궤 메어 올릴 때에 제사 드림이 없이 메어 올리면 안 됩니다. 또 솔로몬이 소나 양을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메다가 지성소에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메어야 합니다. 어깨를 대고 몸을 바쳐서 메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은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그저 쉽게 수레에 싣고 뒤를 따라가는 것은 옳지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책임을 자기 어깨에 메고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