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날, 다윗이 시편에서 선택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감사 찬송함
역대상 16:1-8
1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2다윗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3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 4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5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6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7그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8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
역대상 16:1-8
1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2다윗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3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 4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5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6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7그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8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
1. 다윗이 법궤를 성막에 안치한 후 백성들을 축복함
본문 1-3절에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다윗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하였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성막 안으로 옮겨놓고 감사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것은 하나님을 모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모신 다음에는 몸을 바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하는 생활이 중요하므로 이런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다윗이 제사 드리기를 마치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선지자의 자격으로 백성에게 축복해주고 모인 모든 백성에게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영적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았고 또 육신적으로도 시장하지 않도록 먹을 것을 받아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것을 나누어주십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다윗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하였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성막 안으로 옮겨놓고 감사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것은 하나님을 모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모신 다음에는 몸을 바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하는 생활이 중요하므로 이런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다윗이 제사 드리기를 마치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선지자의 자격으로 백성에게 축복해주고 모인 모든 백성에게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영적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았고 또 육신적으로도 시장하지 않도록 먹을 것을 받아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것을 나누어주십니다.
2. 법궤 앞에서 항상 섬기는 사람들
본문 4-6절에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항상 섬기도록 하였는데, 몇 사람은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또 어떤 사람은 여러 악기들로 항상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3. 다윗이 시편에서 말씀들을 뽑아 하나님께 감사 찬송함
레위 인을 통하여 여호와께 감사 찬송함
본문 7-8절에 “그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36절까지는 언약궤를 무사히 안치한 다윗이 그날의 감격과 환희를 모든 백성들 앞에서 레위 인을 통하여 여호와께 감사 찬송케 한 내용입니다.
그 노래입니다. 여기 기록된 찬송은 다윗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시편에서 뽑아온 것으로 이후 8-23절까지는 시편 105장 1-15절을, 그 다음 23-34절까지는 시편 96장 전 편을, 그리고 마지막 35-36절 두 절은 시편 106장 47-48절을 뽑아서 노래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필요할 때에 성경을 여러 곳에서 합당하게 뽑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합당한 성경말씀을 취하여 그대로 순종해야 함
이것은 우리도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적합하게 취해서 그대로 순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 필요한 말씀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자기에게 적당한 말씀, 그 사건에 적당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마 전 우리 교단에 어떤 일이 있어 도무지 해결이 안 되던 중,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역대상 14장 14-15절에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주 나가지 말고 뒤로 돌아서 엄습하여 나가서 싸우라고 하셨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셔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안 된다고 해도 이 뽕나무 수풀 뒤로 가서 갑자기 엄습하면 된다고 하셨으니, 하여간 갑자기 가보자 하고, 일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 되게 만들어 주셔서 기쁘고 즐겁게 돌아왔습니다. 성경말씀에 마주 나가라고 할 때에는 마주 나가야 되고 뒤로 돌아가서 갑자기 엄습하라고 할 때에는 그렇게 하여야 됩니다. 그러므로 각 사건에 적당하게 해당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서 그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주십니다. 자기가 지금 어떤 말씀을 순종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거꾸로 순종하면 안 됩니다. 남이 할 것과 자기가 할 것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냥하러 다니면서 성경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다면서 도와달라고 한답니다. 그는 말씀을 거꾸로 인용한 사람이므로 평생 거지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주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 얻어가는 사람에게 합당한 말씀이 아닙니다. 동냥 받는 사람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거꾸로 이용하면 안 됩니다.
어떤 집에서는 부부싸움을 하면서 남편은 “성경에 아내가 순종하라고 하였는데 왜 순종을 안 하느냐”라고 하고, 아내는 “성경에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였는데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둘 다 말씀을 들어서 싸움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거꾸로 맞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평생 싸움이나 하게 됩니다. 그 집은 싸움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은 땅보다 두껍다고 하였으므로,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즉, 순종을 받아도 만족이 없고 사랑을 받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아예 안 받으려고 해야 속이 편안합니다. 이 집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만 하겠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돌려받을 생각을 안 하면 잘됩니다. 그리고 아내도 남편을 순종하기만 하고 돌려받을 생각을 그만 두면 편안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고 더 잘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정이 생길 때에 해당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올바로 취하여 그대로 순종만 하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기도원에 계시던 박 사찰이 고 목사님이 계신 교회(가락동부 교회)로 발령을 받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기도원에는 다른 사찰이 오셨는데, 그 분이 “고 목사님이 기도원에 올 때 박 사찰이 운전하여 같이 오시니 박 사찰에게 기도원 일을 좀 돕게 하라”고 발령 낼 때 고 목사님께 말하였습니다. 지난 수요일, 식당에 둔 이불과 요 전부 백여 개를 여자기숙사로 옮기는 많은 일을 하려는데 새로운 사찰은 어디에 갖다 쌓아 놓아야 하는지 몰라 그저 눈이 둥그레 돌아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있던 박 사찰이 좀 와서 하라고 하였더니, 하필 제일 분주한 날 고 목사님이 박 사찰을 돌려보내고 저녁에 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고 목사님께 “왜 보냈느냐”고 “아니, 여기 일 좀 시키려고 했는데 어째서 홀딱 보냈느냐”고 야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들 모두가 기도실에서 내려와 이불을 날랐는데 박 사찰이 없으니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습기가 없는 첫째 방에 두어야 하는데 가운데 방에 넣은 것입니다. 또 고 목사님 보고 제가 야단을 하니 “청소하는 일이 있어서 보냈다”고 하시는데, 제가 “청소는 다른 날 해도 되지, 꼭 오늘 해야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 목사님이 “이 다음에는 잘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하면 일단 사람을 보냈으면 그 사람에게 도움 받을 생각을 말았어야 되는데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가 안 왔다고 고 목사께 책망했으니 내가 잘못한 것입니다. ‘해주면 좋고 안 해줘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야 속이 편안하지, 그것 한 번 안 해줬다고 속이 달아서 돌아가면 무엇이 되겠느냐’고 생각하였습니다. ‘고목사는 박 사찰로 하여금 기도원에 와서 일을 돕게 하려는 것이 바로 된 것이고, 나는 일을 안 시키려고 해야 바로 되는 생각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에 박 사찰이 지난 토요일에도 오고 어제도 왔지만 일을 안 시키려는 생각이므로 ‘가겠으면 가고 오겠으면 오겠거니’ 하고 마음을 먹으니 속이 편안합니다. 고 목사가 일을 돕게 할 생각이면 보내줄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안 해도 괜찮게끔 내 맘을 작정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바로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내 속에서 큰 소리가 나온 것은 내가 새겨야 할 말씀을 바로 가지지 못하고 그만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속에서 불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바꾸어놓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예 대접 받을 생각을 그만두고 자기가 할 일만 할 생각을 가지면 됩니다. 언제든지 ‘내가 해야
되겠다’라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40일 금식 동안에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 성경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시장하실 때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는, 그 상황에 알맞은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할 때에는 ‘또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고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절하라고 할 때에는 ‘주 너희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그 시험에 맞는, 해당되는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바꿔놓으면 그것은 안 됩니다. 바꿔놓으면 마귀가 역사하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시험에 들고 속만 타게 됩니다. 바꿔놓지 말아야 합니다.
교역자와 성도들의 관계가 좋지 않은 어떤 교회가 있었는데, 교역자는 “교인들이 대접을 잘 안 해준다”고 하면서 불평을 하고, 또 집사는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달라고 하느냐?”라고 하므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것도 바꾸어놓아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하는 것입니까? 교역자는 아예 대접 받지 않을 생각을 가지면 편안합니다. 그저 ‘하루에 밥 세끼만 먹으면 된다. 밥 못 먹으면 국수 먹으면 된다. 라면 삶아 먹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좀 편안해야 합니다.
한순철 목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옆 교회의 조영태 목사와 얘기 하다가 한 목사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길래 내가 조 목사 계셨던 교회로 가보았습니다. 가보니 위에다가 천막을 납작하게 쳐놓고 의자를 몇 개 갖다 놓은 조그마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한 목사가 어디에 앉았다가 어떻게 떠났는지에 대해서 한참 동안 얘기를 하는데, 조 목사의 사모님이 나오시더니 자기는 개척교회하느라고 삼 년 동안 라면만 먹고 살았답니다. 지금도 보니 형편이 없습니다. 의자가 몇 개 안 되는 것을 보니 교인이 한 일, 이십 명 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삼 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라며 그래도 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목사는 양복을 입고 바깥에 나오면 그런 사정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화하다 보니 예전에 창광 교회로 날 찾아오신 기억이 떠올랐는데 검은 양복에 국회의원 마크를 하나 달고 있어서 난 어디서 국회의원이 왔나 하였고 나보다 썩 낫고 얼굴도 환하게 잘생겼다고 여긴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대접을 안 받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라면을 삼 년 먹어도 마음이 편안하여 얼굴이 환하고 신상이 환하니, 라면 먹고 나온 목사인지 갈비 먹고 나온 목사인지 모릅니다. 대접을 안 한다고 밤낮 속이 상해서 돌아가면 얼굴이 시꺼멓게 되었을 것이고 얼굴이 환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 사모님하고 라면만 먹었어도 화평하고 가정도 화평합니다.
한편 교인들 편에서 가져야 할 말씀은 교역자를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는 갈라디아서 6장 6절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거꾸로 만들어놓아 교역자는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교인은 대접을 안 하려고 함으로 싸움이 밤낮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귀가 거기에서 역사하여 은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대접 받을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고 라면이면 라면, 삼 년이면 삼 년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해주시면 건강합니다. 우유 한 컵 안 먹고 라면만 먹었어도 임춘애가 대회 나가서 일등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에게 해당하는 성경말씀을 가지면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고 어떠한 환난이 와도 구원이 잘 이루어져 나가는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못 바꾸어 가지면 밤낮 마음속에 평안이 없고 마귀 역사만 일어나고 자기 구원을 이루어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고통이 계속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법궤를 안치한 후 그 기쁨과 감사함을 찬송할 때 시편에서 합당한 말씀으로 골라서 한 것처럼, 우리도 언제나 자신에게 합당한 말씀으로 골라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