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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일 월요일

창세기 9.1-29 무지개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9:1-29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3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5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8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9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29향년이 구백오십세에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1. 구원 얻은 자의 복

본문 1절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였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사람들이 점점 번성해서 땅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영적구원운동도 점점 번성하여 땅에 충만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면 점점 창성하여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본문 2-6절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다음부터는 동물(고기)을 식물(음식)로 주셨습니다. 이전에는 채식을, 즉, 과일을 따먹고 살았고, 채소를 먹고 살았는데 이제 노아 홍수 다음부터는 동물을 너희에게 식물로 준다고 하셨습니다.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악해졌고 육체도 허약해졌으므로, 그때부터 사람의 수명이 짧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상태를 참작해서 하나님께서 짐승을 식물로 허락하셨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이후부터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 먹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상의 제물은 안 됩니다. 또 피를 먹으면 안 됩니다.

2. 피를 귀중히 여길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귀히 여길 것
그러나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시며 ‘피’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피를 흘린 자는 반드시 그 사람의 피를 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죽이는 자는 죽이라는 것입니다. 사형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됩니다.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 생명이 귀합니까? 본문 6절에서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기”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는 운동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사형제도 폐지하자는 것은 성경을 멀리 떠난 것이며, 도리어 사람을 더 많이 죽이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죽였는데 살려두면 어떻게 합니까?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깊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살인한 사람을 사형하느냐 안 하느냐,” “자기 부모 죽인 사람을 사형하느냐 안 하느냐”와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두고 보면 우리 한국이 성경대로 하는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로 걸어가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6절에서 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야 함

형상이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중생한 영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나갑니다. 많이 이룬 사람도 있고, 적게 이룬 사람도 있지만 하여간 예수 믿고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서로 물고 찢고, 성도가 성도를 미워하고, 성도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속에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고 죽이고,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또한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의 몸을 미워하는 자가 살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미워하는 자, 욕하는 자, 또 “라가”라 하는 자는 다 살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성도를 미워하거나 욕하거나 비방하거나 그 사람을 헐뜯어서 아주 매장하려고 하거나 하면 안 되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성도를 귀히 여기고 도와주어야 되겠습니다. 서로 맞지 않으면 갈라질수는 있지만,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 안 됩니다. 갈라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안 맞으면 자기 의견대로 나가는 것은 괜찮은데, 서로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고 미워하고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워하는 것과 살인하는 것은 똑같이 피 흘린 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특별히 교역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좀 더 많이 이뤄나가려고 힘쓰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일하는 것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이 쓰시는 것을 귀히 여겨서 서로 도와 나가야 됩니다.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자기대로 가면 됩니다. 거기서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고 형상대로 지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 언약을 세움

성경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본문 9-13절에“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지개가 이때부터 생긴 것이 아니고, 창세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 전부터 있던 무지개를 두고 그때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무슨 언약을 세웠습니까?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한다”는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한번 언약한 것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울 때 증거로 무엇을 세워놓았습니까? 무지개입니다. 그 이후로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아 때부터 지금까지 3000년 이상 되었는데 지금까지 언약대로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셨고, 이 언약대로 또 앞으로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세에 가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고 무엇으로 멸한다고 하셨습니까? 유황불입니다. 유황불로 이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반드시 유황불로 심판이 올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약속을 어길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4:3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났고 거기에 하나님이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무지개가 보좌에 둘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언약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어나가십니다. 언약대로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자라나게 해주십니다. 언약대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대로 하늘나라에 가지고 갑니다. 성도가 자라난 만큼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있습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역사하시고, 말씀대로 심판하십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안 될 것 같지만 반드시 말씀대로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창세기 21:1-2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에 어긋났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고, 말씀에 바로 섰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말씀대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복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바로 되었으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이고, 또 귀히 쓰실 것이고, 말씀대로 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귀히 쓰실 수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계약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재림도 계약이고, 하늘나라도 계약이고, 말씀대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도 계약이고, 또 심판하는 것도 계약입니다. 따라서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심판을 하고, 말씀에 맞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알고 말씀대로 이루어나가야겠습니다.

본문 9:13절에“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지개를 두고 하나님과 우리와 언약한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언약을 기억하라!’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세운 언약을 늘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의 사람들과 짐승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언약대로 행하십니다. 심판도 언약대로 하시고, 또 물 심판 안하는 것도 언약대로 안하시고, 구원하는 것도 언약대로 구원하시고, 영생의 세계를 인도하는 것도 언약대로 인도하시고, 성도에게 복을 주는 것도 언약대로 행하면 복을 주시고, 언약대로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복이 떠납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바로 서면 복을 받을 것이고, 말씀대로 바로 서지 못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언약의 하나님을 언제나 믿고 ‘그 말씀이 무엇인가? 언약이 무엇인가?’를 잘 찾아서 우리가 말씀대로 바로 서서 복 받는 길로 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약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언약을 이행하도록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순종을 시켜서 언약대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언약을 믿고 방주를 잘 짓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14-17절에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언약의 증거는 무지개입니다. 찬송가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증거는 예수의 피입니다. 이다음에 천당 갈 때에 천사들이 문을 안 열어주고 못 들어오게 하면, “내게는 예수의 피가 있다” 하면 됩니다. 그러면 천사가 벌벌 떨면서 빨리 들어가라고 문을 열어 줍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예수의 피가 있는 것이 증거입니다.
또한 받는 자 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하였는데, 방주를 지어나가는 사람에게는 방주 짓는 증거가 있습니다. 연단 받은 증거,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증거, 도와주시는 증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 징계하시는 증거, 깨닫게 하시는 증거, 연단을 받아서 인내를 이루어나가는 증거와 같은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주 지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증거가 없으나, 방주를 짓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방주 짓는 사람은 힘써 방주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느라고 힘써 진리 붙들고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를 가져다가 힘써 이 방주를 지을 때에 하나님께서 증거를 착착 나타내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물을 깊은 데에 던지라고 하셨을 때, 순종하여 그물을 던지게 되면 고기를 많이 잡으니까 증거가 확실하게 생긴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것은 그물 던져본 사람만 아는 것입니다. 또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떠다 항아리에 붓고 그 다음에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하실 때, 하인들이 순종하여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왔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확실한 증거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방주를 짓는 자에게 정확한 증거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야 이 증거를 가지고 우리가 확신에 서서 점점 방주를 지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올 모든 것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말고 증거를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만 믿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4. 저주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

노아가 취함으로 실수함

본문 18-19절에“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방주에 서 나온 세 아들을 기록했는데, 함은‘가나안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이 언제나 아버지 함의 이름 앞에 기록된 것을 보면 비록 노아가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지만, 함의 아들 가나안은 아마 상당히 출중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보다 썩 나았던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 다니면서 아버지의 모든 일을 하고, “저 사람은 누구냐?”할 때 "가나안이다"라고 했고, “함은 누구냐?”하면 “가나안의 아비다”라고 할 만큼 가나안은 아주 훌륭하고 유력한 함의 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세 아들을 통해서 온 백성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본문 20-21절에“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했습니다. 홍수 후에 여러 해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 해가 되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나무를 심어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실수한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은, 자기 몸을 관리 못하고 수치를 드러낸 것으로 노아가 실수한 것입니다. 포도주를 너무 많이 먹어서 취했던 것 같고, 취중에 이렇게 벌거벗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익을 주는 자는 복을, 손해를 주는 자는 저주를 받음

본문 22-23절에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함은 들어가서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나가서 두 형제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셈과 야벳은 그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지 않으려고,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덮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그대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벌거벗었기 때문에 벌거벗었다고 사실대로 나와서 말했으므로 조금도 가감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허물이 없는데 허물 있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잘못하지 않은 것을 잘못했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노아가 실수했고, 노아가 수치를 드러내었기 때문에 함은 사실대로 나와서 말했을 뿐입니다. 조금도 가감한 것이 아닙니다. 양심 똑바로 쓰고 진실한 마음으로 털끝만치도 가감한 것 없이 그 사실대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사실대로 나와서 말했는데 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까?
사실대로 했으면 칭찬을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거짓말로 무슨 안한 것을 했다든지, 허물을 또 뒤집어 씌웠다든지, 그런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벌거벗었기 때문에 벌거벗었다고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노아는 선지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선지자로서 노아를 통해서 그 당시 구원운동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허물을 드러내면 구원운동에 막대한 손해가 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 못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구원운동에 손해 주는 것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구원운동은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조금이라도 유익을 주면 축복해주십니다. 이런 원리를 우리가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소자 한 사람이라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함이 사실대로 말했지만, 그 당시 선지자인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해나갔기 때문에 구원운동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수치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으니까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많은 손해가 났습니다. 여러 사람이 실족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양심대로 사실대로 아버지의 실수를 말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준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고 사실 그대로 말했다고 해도, 구원운동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었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것은 교인들도 교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에게 실수가 조금 있을 때 사실대로 나가서 그 말을 돌리면 안 됩니다. 사실대로 말한 것 때문에 구원운동에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몇 사람이 실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의 실수를 사방으로 드러내다가 저주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누가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까? 본문 25절에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실수를 안 셈과 야벳은 어떻게 했습니까?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덮어주고 또 얼굴을 돌이키고 아버지 하체를 보지않고 돌이키고 나왔습니다. 왜 뒷걸음쳐서 덮고, 또 나올 때는 다른 곳을 보고 얼굴을 돌이켜서 아버지를 보지 않고 나왔습니까? 만일 보았으면 노아를 통해서 은혜 받는데에 지장이 있습니다.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시대에 전파되고, 구원운동이 노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보면 은혜 받는데 지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보면 말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아예 안 보는 것이 상책이고, 덮어 주는 것이 상책이고,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익이 되고, 자기가 은혜 받는데 유익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이다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보지 않고 얼굴을 돌이키고, 또 뒤돌아가고 덮어주는 것은 아버지를 도와 준 것도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 되도록 도와 준 것입니다.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노아를 통해서 은혜를 받겠습니까? 은혜 못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가 막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일시적으로 실수했지만 빨리 들어가서 아버지를 덮어 주고, 보지 않고 얼굴을 돌이키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면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하고, 아예 뒷걸음쳐서 들어가고 나올 때도 얼굴을 돌이키고 나왔던 것입니다.

노아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대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게 되면 가나안이 저주받은 것과 같이 됩니다. 오늘날 그 저주가 사실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가나안의 후손인 흑인종이 저주를 받아 종의 종이 된 것이 사실 아닙니까? 흑인종은 늘 종살이 하였습니다. 과거에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이 다 흑인종입니다. 미국에 흑인종이 많은데 다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도 영국 사람들에게 내내 종살이하지 않았습니까? 백인종의 종살이였던 것입니다.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백인들에게 종살이 하다가 투표해서 흑인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래도 종살이합니다. 모든 상권이 백인들에게 있는데 대통령이나 정부관리가 되었다고 해서 자기네들이 종살이 안하겠습니까?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독립은 했지만 경제적 노예, 경제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내내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흑인 국가 가운데 세계열강에 올라 가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세계열강에 올라가지 못한 채, 후진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본문 26-27절에“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시며, 셈은 황인종의 조상으로 하나님은 황인종의 하나님이시며, 맏아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셈의 자손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유다 사람이 셈의 자손이지 않습니까?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는 것은 앞으로 그리스도가 셈의 후손에서 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도 셈의 자손이고 다윗도 셈의 자손이고 그리스도도 셈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성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백인종을 창성케 해서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했다는 성경대로 백인종이 창성케 되었습니다. 백인들이 요새도 미국이나 백인들이 다 창성하지 않습니까?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동양에 와서 거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그대로 딱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손들만 맞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누구에게나 적용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종에 대해서 허물을 나가서 드러내면, 거짓말 하지 않고 사실대로 했어도,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었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그렇게 저주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쓰는 종을 비방하고 잘못되었다고 전하다가 죽은 사람도 많고, 저주 받은 사람 많습니다.
어떤 교역자가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어떤 집사들이 그것을 봤다고 합시다. 두 집사가 봤는데 어떻게 적용해야겠습니까? 나가서 말하면 저주받고, 말 안하고 셈과 야벳같이 가리워 주면 복 받습니다. 상부에 보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부에 그런 것을 보고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일시적으로 실수했는데 그 다음에 바로서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목사가 제대로 목사 구실을 못하고 교인들이 모두 혹은 대부분이 그 목사에게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 가만히 있으면 교회가 안 되겠으니까 대책을 세워야 됩니다. 그때 보고를 한다고 해도 보고만 듣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 집사들이 그 교회 사정을 보고 하면 그 목사를 불러다가 물어봅니다. 보고만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여부를 먼저 물어봅니다. 물어보고 사실이면 사실대로 다스리고, 사실이 아니면 없는 것으로 합니다. 그러면 사실을 보고 하는 집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방하려고 했으면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모두 은혜를 못 받아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도와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상부에 보고를 했다면 괜찮습니다. 그것은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역자가 실수 할 때마다 보고하고 나가서 폭로했다면 저주받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자가 없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노아도 실수했습니다. 술 먹고 벌거벗은 것은 분명히 실수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실수하고서 둘째 아들이 보고 나가서 말했다고 저주 하는 것은 옳은 것입니까? 그러나 여기서 저주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역자가 어떤 실수했을 때 나가서 폭로시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교역자가 저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