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시편 20:1-9
1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4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5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6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7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시편 20:1-9
1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4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5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6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7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1.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환난날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본문 1-2절에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안할 때, 교만할 때보다 환난날에 부르짖으면 응답해주십니다. 환난날에는 보통 때보다 더 크게 부르짖게 되고 더 간절한 기도, 더 깊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고 건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고 의뢰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환난날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환난날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본문 1-2절에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안할 때, 교만할 때보다 환난날에 부르짖으면 응답해주십니다. 환난날에는 보통 때보다 더 크게 부르짖게 되고 더 간절한 기도, 더 깊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고 건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고 의뢰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환난날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환난이 없는 사람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환난이 오는데, 그 환난과 핍박 중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붙들어주시고 건져주십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도와주는 이가 없어야 걱정이지,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하여간 환난날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응답해주시고 건져주시므로 걱정이 없습니다. 환난날에 부르짖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다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높여주시는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너를 높이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시며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우리가 잘해서 높여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육신의 기회를 삼으라고 높여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전파되며, 진리가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나가기 위해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높여주시고 건져주시고 또 모든 것이 잘되도록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잘해서 잘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신명기 8장 17-18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기 때문에 재물 얻은 줄을 알아야지, 자기가 무엇을 잘해서 재물을 얻은 줄로 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재물을 가지고 믿는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며,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소에서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환난날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둘째로 성소에서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셋째는 시온에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성도가 어디에 가서 부르짖어야 합니까? 성소에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성소에 가야 합니다. 성소에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전쟁의 승패도 성소에서 해결이 되고, 사업의 성공과 실패도 성소에서 해결이 되며, 마귀와 싸우는 선한 싸움의 승패도 성소에서 해결이 됩니다. 만사가 성소에서 해결됩니다.
그러면 성도가 어디에 가서 부르짖어야 합니까? 성소에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성소에 가야 합니다. 성소에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전쟁의 승패도 성소에서 해결이 되고, 사업의 성공과 실패도 성소에서 해결이 되며, 마귀와 싸우는 선한 싸움의 승패도 성소에서 해결이 됩니다. 만사가 성소에서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성소에 가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늘 성소에 가야 합니다.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전에 하루 한번씩 가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참 좋습니다. 그날의 모든 승리를 성소에서부터 얻어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 나오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새벽 기도에 나와야 합니다. 다 집어치우고 나오십시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우리가 새벽 기도할 때에 벌써 나와 있고, 콩나물 장사, 신문 배달원, 우유 배달원, 채소 장사들도 벌써 나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들보다 못해서 새벽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고 매일 성소에 나가서 기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또 성소에 나가서도 영적 성소에 들어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보이는 성소에 나가서 영적 성소에 들어가는 기도를 해야만,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그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하였는데, 시온은 예루살렘 도시를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성 부근, 예루살렘 성이 시온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계신 거룩한 시온성에 사는 사람을 붙들어주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다 터지고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성을 떠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니다. 아무리 환난이 많아도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친 것을 기억하시고 갚아주심
본문 3절에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라고 하였습니다. 소제(素祭)는 헌물(獻物), ‘하나님께 바치는 것’의 뜻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을 기억해주십니다.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도 잊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헌물을 기억해주시고 잊지 않으시며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제가 보훈(報勳)의 날이었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공로 세운 사람을 국가에서 잊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헌물을 바쳐 도운 사람을 잊지 않으시고 늘 돌보아주십니다. 신학교 대지를 위해서 땅을 좀 바친 사람이 몇 있는데, 그들을 늘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실 것이고 나도 잊지 않습니다. 초월에 신학교 땅이 있는데, 앞으로 신학교 인가가 나오면 신학교를 지으려고 합니다. 어떤 교인이 몇 천 만 원짜리 땅 얼마를 바쳤고, 또 우리 교단도 아닌데 땅을 같이 사놓았다가 우리 신학교를 위해서 바치신 어떤 목사님도 있습니다. 내가 잊지 않고 있다가 만날 때마다 강해서가 나오는 대로 한 권씩 선물을 하고 있습니다. 늘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헌물한 것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해주십니다.
또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번제(燔祭)라는 것은 불에 다 태워서 바치는 것으로 온전히 주를 위해서 희생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셀라’는 쉬는 것, 휴지부(休止符)라고 하였습니다. 시편을 노래하다가 쉬는 것입니다.
2. 기름 부음 받은 왕의 구원을 확신함
예수님의 승리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확신함
본문 4-6절에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의 소원과 도모’는 구원 계획인데,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승리로 인하여 개가 부를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를 세우리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고 하나님께서 높아지시며 영광 받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하시는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 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그 예수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우리가 망하지 않고 오늘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소원하시는 구원 역사를 다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시고 그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놓으신 것입니다.
어느 곳에 어떤 나라 국기를 띄우면, 그 국기의 나라가 그 땅을 정복한 것이 되는 것처럼, ‘기를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거기에 임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해주시고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중생 파라고 워치만니 파와 같은 교파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을 이용해서 “예수여, 아멘”, “주 예수여, 아멘”이라고 하며 계속 떠들어댑니다. 말 한 마디만 하면 “예수여, 아멘”, “주 예수여, 아멘”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이면 그 말을 몇 백 번은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 예수, 아멘”이라고 하고 떠들어대며 손뼉을 치는 것 자체가 경건하지 못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면, 기도를 다 하고 마지막에 한 번만 그 말을 해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내 이름으로 가서 이런 말을 하고 오너라”하고 어떤 사람을 보내면, 그 사람이 가서 말을 다 전하고 “이것은 이병규 목사가 전달했습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말 한 마디마다 “이병규 목사”, “이병규 목사”하며 그 말을 이, 삼십 번 해 놓으면, 상대방이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왜 자꾸 그러느냐?”고 할 것 아닙니까? 앞에 예는 신비주의자들이 자꾸 “할렐루야, 아멘”을 반복함으로써 흥분을 시켜 육신의 감정의 만족을 채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속이 답답하던 사람이 상갓집에 가서 밤새도록 울고 오면 속이 시원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이 그것을 해소하러 산에 가서 한참 “야호”를 떠들다가 와도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그와 같이 박수를 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밤새 하는 사람과 “주 예수 아멘, 주 예수 아멘, 주 예수 아멘”을 하는 사람도 일시적으로 속이 다 시원해지게 되는데, 그들은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여, 주여, 주여, 주여”라고 하는데, 그들도 다 신비주의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그렇게 자꾸 큰 소리를 치게 하여 속이 시원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으로 감정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육신의 감정주의입니다. 진리에서 떠난 것이고 영에서도 떠난,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잘못된 줄을 알고 그런 데에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가면 육신의 감정으로 자꾸 치우쳐 진리가 다 없어지고 눈이 어두워져 미혹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흑암을 따라가게 됩니다. 거기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그리스도만 전적으로 의뢰하라 - 이단 구별법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 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를 부활로 구원해주시고 또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승리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없지만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뢰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해주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또 우리의 소원과 도모는 다 내버리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소원, 그리스도의 계획을 우리의 소원으로 만들고 그리스도만 의뢰하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실 때에 우리도 승리하고 그리스도의 도모가 이루어질 때에 우리의 도모도 이루어집니다. 또 그리스도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의 소원도 이루어집니다. 파리가 천 리를 갈 수 없지만 천 리를 가는 말에 붙으면 천 리를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승리할 수 없고 우리의 소원과 도모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 허망한 데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뢰하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하나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정통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다른 것을 하나 더 해야 한다고 하면, 전부 이단입니다. 볼 것도 없습니다. 옛날 할례파는 예수를 믿는 것과 거기에다 하나를 더하여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단입니다. 안식교는 예수를 믿어도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므로, 이단입니다. 그리고 전도관(傳道館)에서는 예수를 믿어도 감람나무한테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므로 이단입니다. 또 전권대사(全權大使) 파라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전권대사한테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므로 이단입니다. 인 뗀 사람은 또 인 뗀 사람한테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므로 이단입니다. 또 흰 돌 받은 사람은 자기한테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므로 이단입니다. 하여간 예수를 믿어도 무엇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하면 전부 이단입니다.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도 이단입니다.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갖다 붙이면 이단이 됩니다. 그러나 보통 침례교는 침례를 구원의 조건부로 갖다 붙이지 않습니다. ‘침례를 받는 것이 좋으니까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침례가 구원의 조건부가 된다. 예수 믿는 것 하나와 침례 받는 것 하나, 이 둘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면 이단입니다. 그래서 침례 파에도 이단 파가 있고 이단 파 아닌 것이 있습니다. 침례를 구원의 조건부로 안 갖다 붙였으면 괜찮고, 구원의 조건부로 갖다 붙였으면 이단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예수를 믿고도 방언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며 방언을 구원의 조건으로 갖다 붙였는데, 그들도 이단입니다. 또 왕중생 파는 예수를 믿고 침례까지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내용의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단입니다. 그들은 침례까지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전부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는 교단이 아니라고 하며, 목사와 장로는 성경에 선생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형제라고 하고, 목사와 장로를 다 없애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모이고 인도자가 있는데, 왜 교단이 아닙니까? 그리고 성경에 분명히 목사가 있는데, 왜 없다고 합니까? 성경을 부인하는 파입니다. 그러니까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 말[馬]을 의지하는 자는 엎드러지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일어섬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 싸우라
본문 7-8절에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병과 병거는 본문 당시의 무기로, 요즘의 비행기나 탱크, 원자탄이나 핵무기들과 같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무기나 병거 또 말 같은 세상 세력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 싸우라
본문 7-8절에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병과 병거는 본문 당시의 무기로, 요즘의 비행기나 탱크, 원자탄이나 핵무기들과 같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무기나 병거 또 말 같은 세상 세력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단창과 검으로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하고 나가서 물맷돌을 던지니 골리앗이 뒤로 나가 넘어지므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무기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의 무기인 돈과 세력을 의지하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노라’하고 하나님만 의뢰하면서 나가야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무기를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은 굽어 엎드러질 날이 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설 날이 옵니다. 무기를 의지하고 세력을 쓰는 사람은 맥을 못 춥니다. 누구든지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진리만 의지하고 나가면 반드시 그 사람이 일어섭니다. 그러나 완력으로 나가는 사람들, 무력으로 나가고 혈육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다 나가다가 꺼꾸러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정사, 마귀의 권세, 세상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영들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고 구원 역사를 이루어나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영원까지 이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서 여호와만 의뢰하고 여호와만 높이며, 그 나라를 위해서만 나가고 그만 자랑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반드시 일어서고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말과 병거를 의지하던 사람은 반드시 나가다가 엎드러집니다. 승리는 그리스도께 있고 진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만 자랑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예수님만 의뢰하고 여호와만 자랑하고 그를 힘입어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은 사람이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서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악한 세력은 하나님께서 다 제거시켜 주시고 잘되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를 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에 예수님께서는 응답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