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산(聖山)에 거할 자의 자격
시편 15:1-5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4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5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시편 15:1-5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4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5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1. 자기에 대하여 바로 할 것
본문 1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이나 성산은 다 같은 곳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산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고 주의 장막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에 거할 자, 하나님의 산에 거할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 2절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하나님의 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
욥은 언제나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가지지 않고 의를 위해서 살고 의를 위해서 죽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 하셨어도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사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공의를 일삼아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공의를 좋아하지만 말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지 않고 의로운 일이라면 그대로 실행하여 그대로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옳게 해나갈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을 늘 찾아서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하였는데, 첫째도 진실이고, 둘째도 진실이고, 셋째도 진실입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하지 못한 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진실해야 생명이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진실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를 무화과나무에서 불러주시고 오는 것을 알아주시고 영접해주셨습니다. 나다나엘이 진실하므로 ‘이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타인에 대하여 바로 할 것
본문 3절에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선입니다. 참소(讒訴)치 말라는 것은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서 말하는 사람은 허물만 있으면 들추고 혹은 보태서 말을 합니다. 사실 조금 있는데 조금 더 보태서 참소하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못씁니다. 우리는 참소치 않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 벗에게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벗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사람, 벗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 벗의 모든 허물을 들추어서 손해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이웃을 훼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헐뜯고 비방하며 훼방하는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면서 자기만 바로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주실 것을 믿고 자기만 바로 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3. 하나님께 대하여 바로 할 것
망령된 자, 즉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를 멸시하라
본문 4절에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선입니다. 망령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정신이나 말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람을 멸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람이므로, 존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악독한 이단은 멸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주고 없는 말을 지어 꾸미고 돌아가는 사람은 멸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조금 근거 있는 것에 자기의 추측을 보태서 훼방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근거 없는 말을 자기가 지어 냅니다. 또 전에 있던 얘기들, 몇 십 년 전에 있었던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용납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일에 손해를 주는 사람은 멸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전에 잘한 것이 있다고 해도 존경하면 안 됩니다. 망령된 자를 존중히 여기고 영접하면 벌써 얼마나 손해입니까?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자기 신앙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멸시해야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망령된 말을 하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면, 또 하고 또 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은 손해를 줍니다. 나아가 그 사람 자신도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망령된 자를 멸시하는 자가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라
그리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라고 하였는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서 섬기는 사람을 존대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존대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말라
또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한 번 약속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약속해놓고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합당치 않습니다. 한 번 약속을 하면 철저하게 지켜야 신임할만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서원은 했지만 그 서원한 것이 성경에 위반될 경우에는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지키면 안 됩니다. 전에는 모르고 서원을 했지만 알고 보니 성경에 위반된 것이면, 사과를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저번에는 모르고 서원(약속)을 했는데 그것이 성경에 위반되는
약속이었다. 그래서 지킬 수가 없으니 용서해달라”고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이었다. 그래서 지킬 수가 없으니 용서해달라”고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한 번 서원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자가 있는데, 바로 헤롯 왕입니다. 자신의 딸이 춤을 출 때에 헤롯이 “네가 원하는 것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가서 물어보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잘라 소반에 담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이 서원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그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일단 서원을 하였어도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어달라고 할 때에 “네가 그런 것을 요구할 줄 몰랐다. 세례 요한의 머리는 줄 수 없다. 내가 비록 서원하였어도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의 목을 벨 수 있겠느냐? 내가 전에 서원한 것은 실수한 것이니 그것은 줄 수 없다”고 하였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다고 그 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위에 대신들이 많이 있었어도 왕이 하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헤롯이 요한을 죽여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서원 외에 보통으로 서원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잘못해놓으면 많은 손해를 입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서원을 할 때에는 손해가 안 나도록 올바로 서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증을 서는 것도 일종의 서원과 같습니다. 법적으로 변경을 하려고 해도 변경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보증은 안 서야 합니다. 잠언 22장 26-28절에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증을 섰다가 재산이 몽땅 날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통 보증을 서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며칠 있으면 다 해결이 되니 잠깐만 좀 서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버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
한 10여 년 전에 우리 교회 집사님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나자고 하여 만났는데, 그 사람이 기업체의 사장이 됐다며 종이에 도장을 좀 찍어주면 그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취직시켜준다는 바람에 백지에 도장을 찍고 인감도 떼어줬는데, 며칠 뒤 도장까지 있어야 된다고 하여 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집사님의 집을 보증으로 세워 돈을 빌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못 갚게 되어 집사님의 집이 다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증을 섰다가 집 날아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할 때에는 잘 생각해서 할 만한 것만 서원해야 합니다. 정당한 약속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일단 약속을 한 다음에는 지키기 힘들어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약속해놓은 것을 안 지키고 거짓말을 하거나 시간을 안 지키는 것도 약속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예전에 결혼식 주례를 하는데 예식 시간이 되어도 신부가 안 왔다고 하길래 좀 지체하다가, 신랑, 신부 입장을 하라고 하였더니 신부가 그때까지도 안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안 오면 나는 간다고 하고서 왔습니다. 그때 갑자기 다른 사람이 주례를 하였다고 하는데, 하여간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결혼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가끔 그런 일이 있습니다. 신랑, 신부는 왔는데, 신부의 부모나 가족이 시골에서 오기 때문에 차가 밀려서 도착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있으면 오니까 다 온 다음에 하자고 하는데, 나는 시간 약속을 지켜야 된다고 결혼식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갈 때까지 신부 측 가족들이 안 왔습니다. 신부 부모님은 결혼식을 다 한 다음에 들어왔고 나는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부모라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한 번 서원한 것은 꼭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도 서원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변변치 않습니다. 조금 일찍 나와서 준비하고 예배를 드려야지, 왜 늦습니까? 또 ‘추워서 안 나온다. 뭐 해서 안 나온다’고 하면서 안나오는 사람들은 더 못 씁니다. 예배 시간에 늦어지는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 합당치 않은 제물들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부터 준비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하여간 한 번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며,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입니다. 손해가 나도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손해를 다 채워주십니다. 또 서원한 것을 변개하여 일시적으로 유익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유익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합니다. 자기 인격이 벌써 진실하지 못한데 앞으로 무엇이 잘되겠습니까? 손해가 나도 서원한 것은 그대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한 번 약속한 것은 틀림없이 지킨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새벽 기도를 나오기로 작정하고 안 나오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기 마음에 새벽 기도를 하기로 작정하였으면, 그것도 서원과 같습니다. 그런데 안 나오는 것입니다. 한 번 작정을 했으면 해야 합니다. 어제 신학교 졸업식 때 이야기를 하려다가 못했는데, 신학교 학생들이 새벽기도도 안 나옵니다. 졸업을 했는데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미디안 신학을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미디안신학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의 40년간의 학과로도 부족하여 또 다시 40년간 미디안 신학으로 깊은 기도를 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발견한 다음에야 자기의 신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신학생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무조건 새벽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새벽 기도를 안 하는 학생은 신학생 자격이 없습니다. 새벽 기도도 안 하는 졸업생이 무슨 졸업생입니까? 졸업생 자격이 없습니다. 앞으로 새벽 기도를 결심하고 참여하십시오. 마음에 결심도 하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육신 중심으로 방심 부주의하니까 못하지, 결심하면 왜 못하겠습니까? 결심하면 넉넉히 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합니다. 서원한 것을 지키고, 예배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새벽 기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전도하기로 결심한 것을 다 지켜야 합니다.
4. 재물에 대하여 바로 할 것
변리(邊利)로 대금치 말라
본문 5절에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변리로 대금치 않는다’는 것은 이자놀이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36절에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식을 받지 말라는 것은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18장 8절에 “변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또 신명기 23장 20절에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타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괜찮지만 믿는 사람에게서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이자를 안 받고 꿔주는 것이 정당하나, 은행 이자는 성경에서말하였으므로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은행 이자 이상으로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리대금을 하는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사회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도 고리대금하는 사람들을 빈대라고 하며 낮추어 봅니다. 그 사람들이 빈대처럼 남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또 곡식 이자 놀이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곡식으로도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쌀 한 가마니를 줬다가 가을에 한 가마니 반을 받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쌀이 남는 사람이 쌀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한 가마니를 꿔주고 나중에 한 가마니 반을 돌려받으면 빌어 갔던 그 그 사람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냥 한 가마니 꿔줬다가 한 가마니 받는 것이 좋습니다. 또 다른 데에서 싼 이자를 얻어다가 비싼 이자로 남기는 것도 악한 일입니다.
재물에 대하여 바로 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그리고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뇌물을 받는 것도 하나님 앞에 죄이기 때문에 절대 받으면 안 됩니다. 뇌물 연고로 무죄한 자를 해하는 사람은 가다가 반드시 함정에 빠지고 망합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에 대하여 바로 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 대하여 바로 하는 사람, 또 하나님께 바로 하는 사람, 물질에 대하여 바로 하는 사람은 영영히 요동치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참소하지 않고, 헐뜯지 않으며, 훼방하지 않는 사람은 영영히 요동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안 줬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여간 남에게 손해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망령된 자를 멸시해야 합니다. 망령된 자는 바른 대로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런 말들로 남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은 멸시해야 합니다. 거짓말, 반 거짓말, 추측, 또 몇 십 년 전에 있었던 것들을 들춰내서 남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은 망령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멸시해야지, 전에 괜찮았다고 받아들이면 결국은 자기도 손해를 보고 남도 손해를 보며 하나님의 일에도 손해가 납니다. 정당하지 않게 말하며 다니는 사람은 절대로 영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나가는 사람은 시대가 변하든 정치가 변하든, 어떤 시대, 어느 곳에 있든지, 영영히 요동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의 사람, 의의 사람이 되어서 영영히 요동치 않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괜히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다가 거꾸러지는 일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망령된 자를 멸시하지 않고 영접했다가는 그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보고 거꾸러질 날이 옵니다. 또 선한 것을 지키지
않다가는 함정에 빠질 날이 옵니다.
오늘 본문을 대지로 말하면, 네 가지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입니다. 이 네 가지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영히 요동치 않습니다. 자기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일삼으며, 마음에 진실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른사람에게는 참소치 말고, 벗에게 행악하지 말고, 또 이웃을 훼방치 않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개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에 대해서는 변리로 대금치 말고 뇌물을 받지 말며,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행하므로 시험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해나가므로 마귀가 들어오려고 해도 못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견고하게 영영히 요동치 않는 그 자리에 서서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