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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7일 금요일

에스더 5:1-14 연회를 베푼 에스더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연회를 베푼 에스더
에스더 5:1-14

1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2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3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4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
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5왕이 가로되 에스더의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나아가니라 6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7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8내
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9이날에 하
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10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
여 11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12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13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14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이르되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하만이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명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1.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 청원함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으로 하여금 에스더에게 금홀을 내어 밀게 하심

본문 1-2절에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금식 기도를 할 때에 베옷을 입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세수도 하고 머리에 기름도 바르며 왕후의 의복을 입고 모든 것을 다 갖춘 후에 왕궁 안으로 들어갔을 것입
니다. 금식 기도할 때에는 베옷을 입고 하는 것이 좋지만, 왕 앞에 나타날 때에는 예복을 갖춰 입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왕 앞에 가려고 하니까 왕후의 예복을
입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매달릴 때에는 일심정력을 다해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머리는 한 광주리가 되고 세수할 새가 없이 의복도 남루하게 입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며 예복을 입어 단정하게 하고 모든 사람 앞에 정상적인 차림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아무것이나 걸치고 나가면 안 됩니다. 정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모든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만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으로 하여금 에스더가 심히 사랑스럽게 보여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왕이 금홀을 내밀었는데, 이때 금홀을 내밀지 않았다면 에스더는 죽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 앞으로 가서 금홀 끝을 만졌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겸손히 왕을 존경하는 태도를 갖춘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가서 금홀 끝을 만졌습니다. 

에스더가 근본 요구를 말하지 않고 왕을 잔치에 초대함

본문 3-4절에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에스더가 자신에게 나아올 때가 아닌데, 온 것을 보고 특별한 일이 생긴 줄로 알았습니다. 보통은 오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볼 때에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 생긴 줄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왕들이 무엇을
주겠다고 할 때에 특별히 하는 말입니다.
헤롯도 헤로디아의 딸이 와서 춤을 출 때에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최대한 네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
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즉, 에스더가 그 자리에서 원 요구를 말하지 않고 잔치에 와달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의 근본 요구는 유다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으니 그들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하지 않고 잔치에 와달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에 말을 하지 않고 두 번씩이나 잔치에 와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2. 에스더의 잔치에 임한 왕과 하만을 다시 잔치에 초청함

왕을 잔치에 두 번이나 초대한 까닭

본문 5-8절에 “왕이 가로되 에스더의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나아가니라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
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두 번째로 잔치에 나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자기의 소청이며 내일은 말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자신의 요청을 당장 말하지 않고 잔치를 베풀었으니 오시라고 하고, 왕이 잔치에 갔을 때에 내일 한 번 더 오시라고 한 것은 다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대접을 좀 더 많이 하면서 왕을 조금 더 깊이 사귀고 나서, 자신의 요청에 대한 허락을 잘 받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까딱하면 일이 틀어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왕에게 이번에 큰 것을 요청해야 하므로, 대접을 좀 더 잘하고 나서 그것을 요청하려 한 것입니다. 또 왕을 좀 더 깊이 사귀어서 좀 더 깊은 관심과 깊은 교제가 있은 다음에 요구를 말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대접하고 좀 더 깊이 사귀고 난 다음에 요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91편 14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
를 높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져내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에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 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깊은 교
제가 있은 다음에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건져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함께하여주시고 영화롭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깊이 사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대접하고 먼저 교제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심은 다음에 거두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깊이 심은 다음에 요구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
가 왕을 연회에 두 번 초청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위하고 좀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좀 더 하나님을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 그러한 사람을 높여주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같이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귀지 아니하고 그저 달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심어야 거두고 잘 대접을 해야 거기에서 좋은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좀 더 충성하고 하나님을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양도 잘 먹인 다음에 젖을 짜야 젖이 잘 나오고, 곡식도 많이 심어놓아야 다음에 거둘 것이 많습니다. 먹이지는 않고 젖만 짜겠다고 하면, 짤 것이 없습니다. 나무도 뿌리에다가 비료를 많이 치고 열매를 따려
고 해야,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대접하는 대로 대접을 받는 줄을 알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십니다.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먹겠다고만 하면 하나님께서 안 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며 하나님의 일을 도와나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에스더도 왕과 좀 더 깊이 사귀고 왕이 좀 더 도와줄 마음을 가질 때에 요청하기 위하여 왕을 두 번씩이나 잔치에 초대한 것입니다. 좀 더 좋은 기회를 봐서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 좀 더 충성한 다음에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심은 다음에 거두고 대접을 잘해놓고 대접을 받으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것은 하지 않고 받기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
은 못 받습니다. 받으면서도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사랑
을 베풀어야 사랑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받겠습니까? 사랑을 주고서야 사랑을 받고 사랑해야 사랑을 입고 하나님을 찾아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에스더도 좀 더 간절히 왕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대접을 좀 더 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을 한 다음에 자기의 요청(소원)을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무튼 왕은 에스더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하만과 같이 잔치에 참석하여 술을 마실 때에 에스더에게 다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허락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에스더가 두 번째로 말하
기를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라고 하
였습니다. 즉, 두 번째 잔치를 미리 베풀어놓고 들어가서 다시 잔치에 오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왕을 감동시키셔서 왕이 다시 잔치에 올 것을 믿고 한 행동과 말입니다. 그것을 믿고 에스더가
잔치를 차려놓았을 것입니다. 또 만약에 왕이 다시 안 오면 자기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을 바에야 잔치를 베풀어놓고 죽으나 안 베풀어놓고 죽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왕
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이 잔치에 온다고 하면, 잔치를 베풀어놓은 것이 큰 효과가 날 것입니다. 즉, 지금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왕을 잘 대접하고 좀 더 깊이 사귀며 왕의 환
심을 좀 더 많이 사고 난 다음에, 좋은 기회를 타서 말하려고 지금 이렇게 잔치를 베풀어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만을 잔치에 데리고 오라고 한 까닭

그런데 에스더가 하만은 무엇 때문에 데리고 오라고 하였겠습니까? 그 다음날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하만이 있을 때에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만이 유다 사람들을 죽이려는 장본인인데, 장
본인이 있을 때에 말해두어야만 그것을 변명하지 못하고 뒤집지 못하겠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만이 없을 때에 말하면, 그 다음에 왕이 하만을 또 언제 불러오겠습니까? 그리고 자꾸 시간이 가면 왕의 마음이 식을 것이고 하만을 불러다가 물어보면 그가 딴 소리를 할 수도 있으므로, 아예 그가 있을 때에 직접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소뿔을 단김에 빼려고 하만을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은 아주 좋아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왕과 자기 두 사람만 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잔치 자리에서 하만에게 대단히 잘해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하만에게 잘해준 이유는 하만으로 하여금 에스더의 숨은 뜻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또 왕이 하만의 말을 잘 듣고 있기 때문에 만약 하만이 눈치를 채서 어떤 계획을 꾸며 왕에게 시행하게 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즉, 하만이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고 에스더가 자기를 어떻게 하려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가 왕 앞에서 다른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장 내일 잔치에 오기 전에 하만이 왕 앞에 가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잘해주어서 눈치를 채지 않게 함으로, 하만으로 하여금 내일 다시 오게 하는 것이 에스더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만이 있을 때에 왕에게 말하려고 특별히 에스더가 하만에게 잘해준 모양입니다. 물론 에스더가
왕에게 첫째로 잘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만에게도 잘해주었습니다. 아마 선물을 두둑하게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만은 왕후가 자신을 이만큼이나 생각해주고 잔치에 오라고 한 것만 해도 고마운데, 가서는 대접을 너무나 잘 받음으로 말미암아 매우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하만이 왕후에게 많은 선물을 받고 접대도 잘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감개가 무량하여 대단히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 하만의 자랑과 불만

하만이 기뻐하며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부성한 영광을 자랑함

본문 9-12절에 “이 날에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
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마음이 대단히 기쁘고 즐거워서 대궐 문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속상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가 대궐 문을 나서는데,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다가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아니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벌레새끼처럼 몸을 거꾸러뜨리고 있었습니다. 금식하면서 베옷을 입고 있으므로 사람 같지 아니할 것입니다.
시꺼매가지고 짐승과 같이 있으므로 그것을 볼 때에 하만에게 심한 노가 올라왔습니다. 당장에 그를 칼로 찔러 죽이면 시원하겠는데, 그래도 참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하만의 속이 편안치 않았습니다. 속
상한 것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해가 지고 한 번 의논해보려고 했습니다. 속에 만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불만을 품은 하만

본문 13절에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하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주셨는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 21장 24절에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행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망령된 자)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불만을 품는 자는 언제나 불만거리가 있습니다. 늘 불만거리가 생깁니다. 불만거리가 안 생길 날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불만을 품는 사람은 불만거리가 또 생깁니다. 하만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감사할 줄을 모르고 불만을 품게 되면 불만거리가 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자족을 배우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것을 가지고 안 됩니다. 하만이 지금 얼마나 불만을 품었습니까? 그런데 그가 모르드개를 잡아
죽이면 또 다시 불만거리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불만거리가 내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을 잡아 죽여도 불만이 또 나옵니다. 계속 불만거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르드개를 죽이면 무슨 불
만이 나오겠습니까? 왕의 타는 말, 왕의 입는 의복, 왕의 면류관을 써볼 생각을 가졌는데, 그것을 못 해보는 것이 불만입니다.

사람은 욕구에 한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자족을 배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절대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주셨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것 하나 때문에 속상해하면,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람이 조금만 불면 또 속상한 것입니다. 불만을 품으려고 하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불만을 감사로 이기라

그러나 감사하려고 하면 전부 감사한 것뿐입니다. 나는 넥타이 하나를 멜 때마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께서 넥타이 멜 자격이 없는 나 같은 자에게 이런 넥타이를 주셨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감사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갔다가 선물로 넥타이를 사오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외국제 넥타이를 멜 만한 자격이 없는데, 이런 것을 하나 주다니 예수님 덕분에 이런 넥타이를 한 번 메어본다’
하는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로 통과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까?우리 어렸을 때에만 해도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밀감을 못 먹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밀감이 하나 생기면 한 쪽씩 나누어먹는
데, 그 한 쪽도 얻어먹을 수가 없어서 혹시 한 쪽을 얻어먹게 되면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휴지 같은 것도 우리 어렸을 때에는 못 썼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에 어떤 아이가 휴지를 몇 장 가지고 왔는데,
그때 휴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나도 한 장 달라고 하여 얇은 것을 한 장 얻어서 코를 푸니까 종이가 얇아서 다 째지고 코가 손에 다 묻었습니다. 그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여러 장은 생각도 못하는 것이고 얇은
것 한 장으로 코를 풀었으니 무엇이 되겠습니까? 손에 코가 다 묻어서도리어 안 푼 것보다 못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휴지가 어지간하면 화장실 가는 데마다 다 있습니다.
처음에 창광 교회에 휴지 시꺼먼 것을 가져다가 걸었는데, 요새 소련에 갔다 온 사람의 말을 들으면 소련도 시꺼먼 화장지를 가져다가 쓴다고 합니다. 또 비누도 냄새나는 것을 거저 쓴다고 합니다. 지금 소련
의 상황이 한국의 50년대 정도라고 하는데, 채소가 호텔에 가도 그렇게 없다고 합니다. 또 모스크바 거리는 차를 타고 30분이면 다 통과를 하는데, 규모가 서울의 오분지 일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괜히 모스크바라고 하면 환상적인 줄로 알지만, 실제로 가보면 작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닌의 묘가 있는데, 그 묘에는 불이 늘 우글우글 붙고 있답니다. 그곳에는 관광객이 일 년에 5백만 명이 드나드는데, 항상 몇 백 명이 쭉 레닌 묘를 둘러서서 구경하느라 나란히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얘기를 듣고 ‘영혼은 지옥에 가고 몸뚱이는 지금 세상 불에 내내 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24시간 레닌 묘에서 불길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자기네가 사실은 자랑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 불에 간 것을 가르쳐주느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련 사람들이 채소를 왜 안 먹는가 하면, 남쪽에 우크라이나 같은 데에는 채소가 잘되는 곳이 많은데 거기에서 실어오는 데에 여러 날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먹을 것들
을 금방 실어오지만 거기는 기차로 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다가는 세우고 오다가는 세우고 해서 여러 날을 오기 때문에 채소는 다 시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못 먹는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 사람들은 역에 있는 사람이나 비행장에 있는 사람이나 무슨 일을 빨리 처리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척 놔두고 한참 있다가 한 번씩 일하는데, 월급이 일하는 것과 관계없이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비행장에 자기 짐을 여러 개 붙여가지고 갔는데, 아무리 찾으려도 해도 안 나오더랍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가도 조금 더 기다 리라고만 해서 계속 쳐다보니까 자기가 볼 수 있는 곳에 짐들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저 짐들을 왜 안 주느냐고 하니까 가만히 기다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또 여러 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당들은 하루 나가서 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빨리 일을 처리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근무 시간에 천천히 일하면서 시간만 채우면 되는 것입니다. 일을 빨리 하나 천천히 하나 월급은 똑같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한 시간 걸리면 할 일을 댓 시간 걸려 하고, 하루면 다할 것을 한 닷새가 걸리게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하루가 걸리나 닷새가 걸리나 월급은 똑같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얼마나 많이 발전하였습니까? 

그런데도 요새 우리 한국 백성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 층에서 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6.25 사변 때에 비하면 GNP가 10배나 올라갔습니다. 그때에는 비행기도 없었습니다. 한
번은 최희선 선교사가 6.25 사변이 끝나고 1953, 4 년쯤에 미국에 간다고 비행장에 나자가고 했습니다. 그때 최 선교사와 부산에 같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행기가 여의도에서 뜨고 내렸는데, 가까이에서 비행기
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일본까지 가는 한 4, 50 명이 타는 조그마한 비행기인데, 거기에서 미국 가는 것으로 바꾸어 탄다는 것입니다. 그때 한국에는 미국에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비행기가 굉장한 것 같아서 날개를 다 만져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행기가 다 무엇입니까? 이제는 한국에 대한항공 비행기가 많습니다. 돈을 얼마 안 주면 부산이고 제주도고 다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만족이 없고 불만이 더 많습니다.
또 우리의 신앙 생활을 볼 때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사랑으로 귀한 은혜와 다른 데에서는 알지 못하는 진리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모르드개가 없는 곳이 없거늘, 조그마한 모르드개가 있는 것을 가지고 속상해하며 못살겠다고 노하며 돌아갑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것 하나 가지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노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큰 것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조그마한 모르드개는 굴하지 않겠으면 말라고 그냥 둬두고, 큰 것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하며 늘 믿음으로 나가고 충성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모르드개 하나 있는 것을 죽여야만 속이 시원하겠다고 죽이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돌아가니, 어떻게 합니까? 모르드개는 일개 문지기에 지나지 않은 사람인데, 굴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불만을 품으려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한정이 없습니다. 또 불만거리가 내내 있습니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오고, 하나가 지나가면 또 오는 것입니다. 계속 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데모하는 것을 들어주면 괜찮을 것 같으나 들어주면 한정 없이 더 들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학생들이 어디까지 들어달라고 하는가 하면 대학교 총장 임명하는 권리를 달라고 합니다. 또 교수 임명도 학생이 학사의 행정에 참여해서 같이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어떻게 자기 선생 임명하는 데에 참여하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또 농사꾼들은 수리조합에서 물을 가져다가 농사를 하고는 수세(水稅)를 안 문다고 합니다. 또 고추를 많이 심어놓고 팔지 못하므로 정부를 상대로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추는 제가 많이 심어놓고 왜
정부를 상대로 싸우자고 합니까? 정부에서 많이 사주었는데 조금 남은 것을 마저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구를 들어주면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더욱 더 많아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들어
달라고 해서 한, 두 가지를 들어주면 거기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한, 두 가지를 들어주면 두, 세 가지, 또 서, 너 가지, 또 대,여섯 가지의 불만이 나옵니다. 계속 불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런데 다 들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에 비싼 것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좋으나 물어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욕심이 한정이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교마다 신문이 있는데, 그 신문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개 다 의식화된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선거를 하면, 그 사람들이 똘똘 뭉쳐가지고 돈을 쓰고 다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들이 당선이 된
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신문을 만들면서 현 정부를 반대하고 민중 민주주의를 찬동하는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 신문은 공산당 선전지 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이북에서 한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실은 신문도 있어 이북 신문과 비슷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일에 불만을 품으려면 한정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그 당시에 하만과 같이 높아진 사람이 없고 그만큼 부요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불만이 없는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를 죽여도 다른 불만이 또 있게 됩니다. 세상은 불만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성도도 불만이 그칠 날이 없으나 믿음을 써서 그 불만을 다 초월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감사로 통과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 것이지, 뭐 큰 일이 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가룟 유다를 내내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가 재정을 맡아서 내내 도둑질해가고 내내 불평하고 마지막에는 예수
님을 반역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가 보다 하시고 그도 데리고 다니시며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기뻐하시고 항상 감사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작은 불만거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불만거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만거리는 없을 수가 없고 계속해서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만을 품고 있자고 하면, 일 년 열 두 달 늙어 죽도록 불만을 품어야 합
니다. 그것이 없어질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기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불만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통과해
야만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만이 친구들과 자신의 아내를 모아다놓고 내일도 대궐에 나가게 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13절에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지금 하만은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높아져있는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만족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종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4.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높은 나무를 세움

하만이 불만을 없애려다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게 됨
본문 14절에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이르되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하만이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명
하여 나무를 세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이나 아내는 하만이 그렇게 불만을 품고 만족이 없으므로 같이 걱정을 하고 그 불만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방법은 오십 규빗이 되는 나무를 세워놓고
왕 앞에 가서 허락을 받아 내일 아침에 나무에 달고 그 다음에 왕후의 잔치에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언 26장 27절에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하
였습니다. 하만이 남을 죽이려고 지금 함정을 파지만 그 함정에 제가 빠지고, 남을 죽이려고 돌을 굴리지만 그 돌에 제가 치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십 규빗이 되는 막대기를 세울 때에는 누가 거기에 자기가 달릴 줄을 알았겠습니까? 지금 하만은 그 막대에 모르드개를 달아놓고 불만을 다 없이 한 다음에 즐겁고 평안한 마음으로 잔치에 가려는 것입니다. 한 규빗이 자 반씩이므로, 오십 규빗이면 칠십 오 척입니다. 전신주가 보통 삼십 삼 척(10m)입니다. 그러므로 전신주 두 개 반쯤 되는 높은 막대기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래놓고 오늘 저녁에 왕 앞에 가서 모르드개를 달기로 허락을 받아서 아침 일찍 그를 매달고 왕후의 잔치에는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아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하는데, 불만을 품고 노하며 그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함정에 제가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