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탄식과 소망
욥기 7:1-21
1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2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3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6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7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 8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9구름이 사라져 없어짐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11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12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16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17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19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기 7:1-21
1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2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3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6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7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 8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9구름이 사라져 없어짐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11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12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16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17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19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1. 욥이 고난이 속히 지나가기를 원함
본문 1절에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인생은 언제나 전쟁 마당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늘 환난이 많고, 대적이 많고, 싸움이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과 더불어, 또 여러 가지 시험과 계속해서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라는 것은 품군의 날과 같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하루 동안 일하는 사람은 해가 가면 그 날의 품값을 받으므로 해가 저물기를 기다립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빨리 해가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저녁이 되면 자
신의 일당이 얼마씩이니 이제 얼마 벌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립니다. 또 일용으로 일하지 않아도 종은 하루 종일 일한 다음에 힘이 드니까 ‘빨리 낮이 다 가면 좋겠다. 밤에는 좀 쉬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이 많을 때에는 ‘빨리 고난이 지나가면 좋겠다. 쉬는 시간을 빨리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으로 해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 한 세상 가는 것이 전쟁 마당에 있는 것과 같고 품군의 날과 같다는 것은 잠시 그저 빨리 지나가는 날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라는 것은 품군이 일하면서 고생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달째 욥이 고난 가운데 빠졌습니다. 병이 여러 달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이 수고롭다는 것입니다. 하룻밤 지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고통이 너무나 심하므로, 자리에 누울 때에 언제나 밤이 가겠는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아프니까 새벽까지 이렇게 누웠다가 저렇게 누웠다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것입니다.
보통 잠이 잘 안 올 때에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합니다. 이렇게 누워서 잠이 안 오면 저렇게 누우면 잠이 올까 하며 눕고, 또 고통이 심한 사람도 이렇게 누웠다 저렇게 누웠다 합니다. 그러나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해도 밤이 안 갑니다. 하룻밤 지나가는 것이 천 년입니다. 이렇게 하룻밤 고통이 심합니다. 욥이 하룻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초저녁에 누울 때는 언제 밤이 다 가겠나 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새벽까지 고통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상처에 진물이 줄줄 흐르므로 파리들이 오고 구더기가 생겼습니다. 욥의 독창, 헌데가 난 곳에 구더기가 득실득실하다는 것입니다. 또 독창이 난 곳에 흙이 묻어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혀 있다고 했습니다. 살갗은 합창(合瘡)되었다가 터져서 물이 줄줄 나오는데, 너무 가려워 기왓장으로 긁고 있습니다. 파리는 ‘웽웽’합니다. 이렇게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욥이 지금 비참한 고통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2. 인생의 생명이 한 호흡과 같음
본문 6-7절에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라고 하며 시간이 빠르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는 뭐라고 하였습니까? 4절에서는 시간이 가지 않아 누울 때면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한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이 밤이 다 갈까 하면서 시간이 가지 않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6절에 와서는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다’, 즉 세월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자신이 아픈 것과 고통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하루가 천년처럼 여겨지면서 시간이 잘 가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조금 더 원대하게 생각해 볼 때에 인생은 너무 짧다는 뜻입니다.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것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시편 90편 9-10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지나갑니까?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한 평생이 잠깐입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수명이 조금 연장된 것처럼 보여도 나이 팔십이 되면 거의 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년수의 자랑, 즉 ‘오래 살았다’하는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살같이 빠른 세월이고, 날아가는 것과 같이 빠른 세월입니다. 베를 짤 때 북이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사는 것이 그만큼 빨리 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호흡이라는 것은 숨 한 번 쉬웠다가 내 쉬는 것, 숨 한번 들이 쉬었다 ‘후’하고 내쉬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그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이 코에 있어서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었다 하다가 그만 생명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생명이 아침의 안개와 같고 풀의 꽃과 같아서 그저 잠깐입니다. 옹기에 담아놓은 물과 같아서 그릇을 깨뜨리면 그 물이 쏟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질그릇에 담아서 움켜놓은 것과 같습니다. 툭 치면 깨져서 다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오늘 저녁이라도 툭 치면 다 깨집니다. 깨지면 다 없어지고 한 호흡에 불과합니다.
본문 8절에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으면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내세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믿었습니다. 내세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육신의 생명으로 볼 때에는 이렇게 잠시입니다. 없어지고 나면 다시 찾지 못하며 보이지 않지만, 내세에는 소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욥기 19장 26절에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에게 가죽이 썩은 후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내세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으로만 볼 때에는 이렇게 아무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생명이 떠나면 다시 보지 못하고 찾지도 못하는, 그런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음부라는 것은 무덤을 가리킵니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가리킵니다. 무덤과 죽음의 상태, 구약에서 ‘스올’이라고 하는 말은 음부로 번역합니다. 또 그 말에는 죽음의 상태, 무덤, 지옥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는 죽음의 상태나 무덤의 뜻으로 해석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무덤에 내려가면, 즉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자기 집도 그 사람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3. 욥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함
본문 11-14절에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원망하리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로 보면 수심, 근심, 애소(哀訴), 슬피 부르짖는다, 호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욥이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입술을 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애소하고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바다니이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다처럼 제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다를 육지에 가둬 놓았다, 제한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 육지로 둘러막혀 더 이상 못가고 갇혔습니다. 즉, ‘내가 바다니이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그 이상 나가지 못하도록 가두셨다는 것입니다. 또 ‘용이니이까’에서 용은 큰 고기, 악어처럼 큰 고기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큰 고기를 지키시고 용을 지키시듯이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그 이상 더 나가지 못하도록 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은 낮에 곤고하게 일하고 고생하다가 밤에 잘 때에 위로를 받으며 침상에서 근심을 푸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낮에 아무리 일을 피곤하게 하고 고단하게 해도 밤에 잘 때에는 그 피곤을 풀고 위로를 받으며 근심을 놓습니다. 보통 그렇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혜택도 못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밤에 잘 때에도 놀래고, 두려워하는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잘 때도 평안히 못 잡니다. 노동자들이 낮에 심하게 일하더라도 밤에 잘 때는 평안하게 자며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욥은 지금 얼마나 징계가 심한지 잘 때도 괴롭다는 것입니다. 꿈도 무서운 꿈만 꾸고, 괴로운 꿈만 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상으로 두렵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낮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이 밤에 꿈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에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면 밤에 꿈도 좋지 않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또 몸이 너무 괴로우면 꿈도 괴로운 꿈을 꿉니다. 지금 욥도 너무나 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데, 밤에 자면서 좋은 꿈을 꿀리가 없습니다. 욥이 꿈을 꿔도 고통스러운 꿈을 꾸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밤에 침상에서 잘 때에도 고통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욥이 잠도 편안히 못 잤습니다.
잠을 편안히 자는 것이 큰 복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곤란하고 세상에서 여러 가지 피곤한 일이 많아도 잠을 편안히 푹 자면 시원합니다. 그런데 잠을 잘 못 잘 때, 그때 큰 고통이 옵니다. 시편 127편 2절에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잠도 단계별 잠이 있다고 합니다. 1단계의 잠을 자는 사람은 잠자면서도 다 듣는다고 합니다. ‘누가 온다, 문소리가 난다’, 다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단계 잠을 잔 사람은 깬 다음에 한 잠도 못 잤다고 합니다. 잠을 자긴 잤는데, 무엇을 들으면서 잤으니까 자기는 잔 것 같지가 않습니다. 2단계의 잠을 잔 사람은 그것보다 좀 듣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잤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3단계 잠이나 4단계 잠에 들어야 누가 메어 가도 모르게 깊이 잠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잠을 자면 푹 쉬게 되고, 피곤이 다 풀립니다. 대개 아이들이 깊은 잠을 듭니다. 많은 아이들은 잘 때 누가 들어서 옮겨놓아도 모르고 잡니다. 어른들 같으면 들어 옮겨놓는다면 모르겠습니까? 노인들은 더욱 잘 깬다고 했습니다. 무슨 소리에 잘 깬다고 했습니까?전도서 12장 4절에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새소리만 나도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잠을 잘 때 몇 번이나 일어나면 자고나도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잠을 잘 자는 것이 큰 복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낮에 신경을 좀 쓰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긴장하면 저녁에 잠이 잘 안 옵니다. 또 그 다음날 무엇을 하려면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될 수 있는 대로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제일 좋은데, 그저 푹 자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욥은 너무 괴로워서 밤에도 잠을 잘 못자고 겨우 자더라도 나쁜 꿈만 꾸었습니다. 두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즉 죽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낫다는 말은 너무 빼빼 말라서 뼈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빼빼 마른 사람을 갈비라고 하지 않습니까? 욥이 지금 뼈에다가 가죽을 씌워 놓은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은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라는 뜻이지만, ‘죽여 달라’는 것은 아니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 고난이 너무 심하니까 살기를 원치 아니하고 빨리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에서 사는 데에 애착심을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은 고난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을 받아 놓으면 애착심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고난이 심하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편안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라는 것은 ‘나를 죽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헛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4. 욥이 징계 중에 탄식하며 하나님께 호소함
본문 17-18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린 자는 징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여기시는 자, 마음에 두신 자를 더욱 더 크게 여기시며,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다’라는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욥기 5장 17-18절에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히브리서 12장 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징계와 시험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사랑 하시는 증거입니다. 더 크게 여기시고, 그 사람에게 더 마음을 두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하시고 분, 초마다 시험을 하십니다. 그리고 아프게 하다가 싸매시고, 상하게 하다가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징계하시고, 일 분 일 초마다 쉬지 않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고통이 일 분 일 초도 그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욥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욥에게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징계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눈을 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침 삼킬 동안도 가만 놔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침 한번 삼키는 것도 고통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 징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징계 가운데서 놓아 주시겠습니까’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이 범죄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인데, 땅의 벌레와 같은 것이 범죄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믿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범죄함은 사람에게는 손해가 되지만, 하나님에게까지는 그 해가 미치지 못합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입니다. 또 과녁이라는 것은 활 쏘는 목표를 가리킵니다. 활을 쏠 때에 과녁판의 맨 가운데 동그란 목표를 향해서 쏘는데, 욥을 과녁으로 삼았다는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욥을 공격의 목표로 삼아 쏘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21절에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을 하나님께서 과녁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지금 계속해서
욥에게 공격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것은 허물을 제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는 내 죄악을 사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흙에 눕는다’는 것은 죽어서 장사 지낸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 얼마 안 가서 죽고 나면 장사 지내게 될 것이니, 그때에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이 세상에서 찾으셔도 자신은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죽어서 땅에 들어가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탄식입니다. 욥이 징계 중에 탄식하며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