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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4일 수요일

창세기 40:1-23 옥중 생활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옥중 생활
창세기 40:1-23

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4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수일이라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6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7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8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9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14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15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16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먹으리이다 하더니 20제 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21바로의 술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1. 바로의 두 관원장이 옥에 들어옴

본문 1-3절에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시위 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란 요셉이 감옥에 갇힌 후를 말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이 범사에 요셉을 형통케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감옥에서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순종하였고, 윗사람을 존경하며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진실하게, 양심대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충성하며 고난을 잘 참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에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이 갇힌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본문 4절에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지 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관원장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시위 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시위 대장이 요셉에 대한 노가 풀린 것 같습니
다. 시위 대장이 요셉의 신앙 인격을 알고 자기 아내와 요셉과의 사건을 많이 생각해 보고, 아내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은 것 같습니다.


2.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함

관원장의 근심 빛을 본 요셉

본문 5-8절에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아침에 두 관원장에게 수종들러 들어가 보니까 얼굴에 근심 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하며 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이 관원장들에게 수종 들 때에도 그저 아무 생각없이 수종든 것이 아니고, 그들을 좀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어떻게 하면 좀더 잘 도와 드릴까?”하며 수종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요셉은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일을 이와 같이 최선
을 다해 충성하였습니다. 관원장들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어떻게압니까? 요셉은 늘 그들을 평안하도록 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얼굴에 있는 근심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늘 잘해 드리려는 생각이 요셉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자세히 살피고, 좀 더 잘 해드리고, 평안하게 해드리려는 신앙이 요셉에게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이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 즉 아버지 집에 있든지, 종살이 할 때든지, 감옥에 있든지 요셉은 자기에게 맡긴 일은 충성을 다해서 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긴 일을 어디에 있든지 최선을 다하고 또 상대방을 평안하게 도와주려는 신앙을 늘 가져야겠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하면 “이 분들에게 좀 유익을 주고 평안을 줄 수가 있을까?”를 늘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요새 파출소에 가보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써 붙여 놓았습니다. 도와드리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해주고, 유익되게 해주고, 안정되게 해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조금이라도 남을 평안하게 해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신앙을 요셉에게서 배워야 되겠습니다. 

요셉이 꿈 해석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전도함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꾸었는데 이를 해석할 자가 없다고 할 때,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면서 그들이 꾼 꿈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전도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그들에게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한 것은 요셉이 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능히 꿈의 해석도 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언제나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나갔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하나님으로 해결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또 요셉은 “꿈 해석은 하나님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그들에게 말하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준 것이며, 전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떠한 기회이든지 하나님과 결부시켜 하나님을 소개해주고 성경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분한테 성경에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한다”고 했더니, 그 분이 성경에 그런 말이 있냐?고 하십니다. 그래서 있다고 하였더니, 그 분이 성경책을 사야겠다고 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에 성경에 결부시켜서 성경대로 말해주면 그 사람이 성경에 있는 말씀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과 결부시켜서 성경에서 해결하여야 하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3일후에 전직이 회복될 것이라고 꿈을 해석함

본문 9-13절에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
에 드렸노라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3일 후에 전직이 회복될 것이라고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어떻게 해석 할 수 있었습니까? 관원장은 요셉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고, 지식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꿈을 해석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 해석하는 신령한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늘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믿음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는 명철과 지혜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다니엘 1:17). 요셉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꿈 해석하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잘 지키면 명철과 지혜로 모든 것을 바로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도 있고, 마귀가 주는 꿈도 있고, 자기 마음 속에서 나오는 꿈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꿈은 내일 어디로 여행가겠다고 하면 벌써 밤에 여행가는 꿈을 꿉니다. 차멀미 하는 사람은 내일 친정집에 가겠다고 하면 오늘 초저녁부터 멀미가 나고 어질어질하고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또 초저녁에 고기 먹다가 이 사이에 고기가 조금 끼게 되면, 자다가 그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꿈에 고기 한사발 먹는 꿈을 꿉니다. 이것은 다 생리적으로 오는 꿈이거나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꿈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꿈이 간혹
있는데, 그것도 성경에 맞아야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이 아닙니다. 또 꿈이 성경에 맞는다고 하여도 성경을 믿어야지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즉 꿈이 성경에 맞아도 꿈보다는 성경을 믿어야 됩니다.

여기에서 관원장들이 꾼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하나님이 관원장들로 꿈을 꾸게 하여 요셉으로 인해서 꿈을 해석하게 만드셨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꿈 잘 꾸는 사람이 요셉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에 대해 해석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꿈 해석하는 실력을 주셨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되고 하나님이 안 해주시면 못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됩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보수를 바라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해석해 주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선과 친절을 베풀며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비록 감옥에 갇혔을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선과 친절을 베풀며, 남을 도와주며,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결하려는 요셉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운 가운데 처해 있을지라도 ‘어떻게 해야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에게 선과 친절을 베풀며 유익을 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이 원망하며 그들을 미워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하며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본문 14-15절에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자신은 옥에 갇힐 일을 행치 아니하
였다고 하며, 옥에서 건져 주기를 부탁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쓴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면 ‘이 때가 좋은 때이다, 술 관원장이 나가면 바로 왕한테 내 사정을 낱낱이 말해서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한마디만 했습니다. 이것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구원만 바라보는 믿음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입니다(로마서12:21). “당신이 득의하거든”은 뜻이 이루어져 나가서 복직하게 되면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자기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도와주려는 정신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상대방을 도와주면 해결할 길도 생기고, 자기 문제를 부탁할 좋은 기회도 생깁니다. 심은대로 거둡니다.
선을 심어 놓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둡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3일후에 처형될 것이라고 꿈을 해석함

본문 16-19절에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술 관원장에게 해석하는 것을 보고 떡 굽는 관원장도 꿈을 해석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먹으리이다”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신령한 지혜를 주셔서 꿈 해석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도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석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새들이 먹지 않았더라면 떡 굽는 관원장도 전직이 회복될 뻔 했는데 그만 새가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새”는 “마귀”를 상징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보통으로 생각해 보아도 벌써 흉한 꿈입니다.

3. 요셉의 해석대로 됨

본문 20-23절에 “제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
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사흘 후는 바로의 생일인데, 바로의 생일에 그 두 관원들을 옥에서 나오게 하여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목을 잘라서 나무에 매달았
습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이 부탁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배은망덕한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효력이 올 날이 옵니다. 창세기 41장에서 술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해서 요셉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는데, 심어 놓으면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언젠가는 반드시 심은대로 나게 됩니다. 무조건 뿌려 놓으면 거둘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가 있는 대로 선을 행하여야겠습니다. 그러면 마침내 거둘 날이 오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또 이것이 장차 요셉이 총리가 될 기초 작업입니다. 요셉은 모르고 있으나 이 계단을 통과해야만 앞으로 총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도 앞으로 총리가 될 기초 작업이고, 감옥에서 꿈꾼 사람을 만난 것도 기초 작업이
고, 꿈을 해몽해 준 것도 기초 작업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시는데 그 계단이 여러 계단입니다. 그것을 하나 하나 믿음으로 통과하여야만 일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믿음으로 통과하여야만 앞으로 좋은
것이 옵니다. 요셉의 2년간의 옥중 생활은 더 좋은 일을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즉시 바로에게 고하여 석방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가 꿈 꿀 때까지 2년 동안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해 신하들이 번민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이 꿈 해석을 잘한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앞으로 요셉이 불려 갔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7년 흉년 때에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38:1-30 다말의 득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다말의 득남
창세기 38:1-30

1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2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3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7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12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깍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15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18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19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23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
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본장에서는 다말의 불륜의 행위에 대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좋은 것만 기록하고 좋지 않은 것은 기록하지 않은 책이 아니고, 좋은 것도 사실 그대로 기록하였고, 나쁜 것도 사실 그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다말이 불륜의 관계로 아이를 낳았으나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 했고, 기생 라합도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했고, 룻도 이방여자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에 참여하므로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했습니다.
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는데, 우리야의 아내도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한 여자가 넷인데, 다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좋지 않은 여자 네 사람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조상들도 육신의 혈통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으나, 그들이 회개하고 오실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누구든지 과거에 어떤
일을 했었더라도 회개 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구원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 유다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음

본문 1-5절에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넷째 아들입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취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가나안 족속의 딸을 취하여 아내를 삼지 말라고 하였는데(창 24:3), 유다가 이방인의 딸을 취해 아내로 삼은 것은 잘못입니다. 유다가 가나안 사람 수아에게서 첫째 아들 ‘엘’, 둘째 아들 ‘오난’, 셋째 아들 ‘셀라’를 낳았습니다.

2. 유다의 자부 다말과 세 아들의 관계

본문 6절에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큰 아들의 아내를 취했는데, 그 이름은 다말이었습니다.

본문 7절에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엘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본문 8절에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아들이 없이 죽었으므로, 유다가 그 동생 오난으로 하여금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형의 계대를 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맏아들이 장가들었다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둘째 아들이 형수를 취하게 하였고, 취한 형수에게서 첫째 아들을 낳으면 형의 아이로 호적을 올려 형의 아들로 삼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아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또 둘째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셋째가
그 형수를 취하여 계대를 잇게 하였고, 셋째도 아들이 없으면 넷째가 그 형수를 취하여 계대를 잇게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런 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법으로 요새 양자법과 비슷합니다.

본문 9-10절에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난이 형수에게 들어가서 동침할 때에 그 아들이 자기 아들이 되지 않고, 형의 아들이 되겠으므로 형의 후대를 끊으려고 땅에 설정을 했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 앞에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맏아들도 악한 일을 행하다 죽고, 오난도 형의 계대를 잇지를 않으려고 악한 일을 행하다가 하나님께 징벌 받아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난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은 형수를 취해서 아들을 낳아 맏아들을 형에게 주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수절하고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
다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유다가 다말에게 계대적인 남편으로 셋째 아들 주기를 원치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셋째 아들 셀라도 죽을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며,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죽은 것이 다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죽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 다말 때문이 아닙니다. 유다는 자기 아들들이 하나님께 범죄한 것 때문에 죽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유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계대 혼인법을 경히 여겼기 때문에 셀라가 장성하였어도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다말에게 본문 26절에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3.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잉태함

본문 12절에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양털을 깎을 때는 곡식 추수하는 때와 같이 제일 좋은 때입니다. 그 때는 돈 버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있어야지 목자들만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유다가 딤나로 올라갔습니다.

본문 13절에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친정에 가 있던 다말은 시부가 딤나에 올라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본문 14절에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말이 과부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에나임 문에 앉아서 시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과부의 의복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아도 과부인 것을 다 알았습니다. 다말이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시부를 기다린 이유는 유다가 약속을 어기고 계대적 남편인 셀라가 장성했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5-19절에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
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에 면박을 쓰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아 있는 다말을 창녀로 여긴 유다가, 염소 새끼를 주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이행할 약조물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주고, 다말과
동침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시부로 말미암아 잉태하였습니다.

다말이 이와 같이 유다와 동침한 것은, 음행하려고 시부와 동침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말이 출가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그 말씀과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혈통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혈통을 받아서 계대를 이르려고 시부와 동침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베레스를 낳았습니다.

룻기 3장 10절에는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하였는데, 룻도 젊은 남자를 얼마든지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거기에 참여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아스가 나이가 많았지만 나이 많은 보아스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말도 시부와 동침한 것은 유다의 지파를 통해서 장차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알고 거기에 참여하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그리스도의 혈통에 참여하려는 신앙은 귀한 것입니다. 다말은 유다 지파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겠는데, 어떻게 해야만 그 유다지파의 혈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의 혈통을 받으려면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부와 동침한 것입니다.

본문 20-25절에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석 달쯤 후에 다말이 음행하고 잉태했다는 소문이 유다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다말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이며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과부가 아이를 가졌으면 돌로 쳐
죽이거나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레 21:9, 신 22:23-24). 

본문 26절에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다말이 보인 물건들을 보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고 하며 며느리 다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유다도 잘못하였고 다말도 잘못하였습니다. 잘못하였어도 다말이 귀한 것은 그리스도의 혈통에 참여하고자 한 신앙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방법이 시부하고 동침하지 않았어도 그리스도가 자기 몸에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그리스도가 자기 몸에서 나옵니다. 셀라가 컸으니까 하나님께서 유다를 감동시키셔서 셀라를 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셀라를 주어서 자기가 셀라의 아내가 되었으면 그것은 정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유다도 셀라가 장성했는데 다말에게 주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또 유다가 잘못한 것은 창녀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썼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입니까? 한번 실수한 것으로 인하여 이
렇게 하나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경에 맞는 방법, 선한 방법으로 나아가야지, 인본주의를 써서 나가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4.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두 아들을 낳음

본문 27-30절에 “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 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말이 쌍둥이를 해산하였는데, 먼저 나온 아이를 ‘베레스’라고 하였고, 다음에 나온 아이를 ‘세라’라고 했습니다. ‘베레스’는 ‘터침’이라는 뜻입니다. 베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
고, 다말은 이 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마 1:3).

다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도덕적으로 큰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이며, 둘째, 다말과 같은 이방인도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아브라함의 신앙계통을 이어 받아 바른 진리운동으로 바른 교회와 바른 교단을 세워나가며, 바른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창세기 37:1-36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리움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리움
창세기 37:1-36

1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2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3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4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12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 떼를 칠 때에 13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15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17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22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23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24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27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31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그 채색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33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34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 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1. 형들이 요셉을 미워함

요셉이 형들에게 팔리워 애굽으로 갔습니다. 본문 1-2절에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약전(略傳)’이라는 것은 대략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약력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열일곱 살 났을 때에 된 일입니다.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이 잘못한 결점을 아버지에게 고했는데, 그 고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고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알지 못하여서 그 아들들을 바로 교훈할수 없습니다. 알아야 바른 교훈을 할 수 있습니다. 그 형들을 음해해
서 형들에게 손해주려고 고한 것이 아니고, 형들의 잘못이 너무 안타까워서 바로 세워주려고 고한 것입니다. 아버지께 말해주면 아버지가 자기 형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고 가르치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형들을 사랑하여 잘못된 것을 아버지가 고쳐주기를 바라고 가서 고한 것이므로 이것은 잘한 일입니다.

본문 3-4절에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고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조금 잘못한 것입니다.
요셉은 열한째 아들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야곱이 여러 아들보다 요셉을 깊이 사랑하여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형들보다 더 사랑하여 채색 옷을 입혔는데, 채색 옷은 요새로 말하면 색동저고리 같은 것입니다. 알록달록한 채색 옷을 입히고 특별히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들이 시기하고 불평이 나왔습니다. 여러 아들을 다 같이 사랑했어야 하는데, 노년에 얻은 아들이고 막내는 아니지만 막내와 비슷한 것으로 더 사랑했습니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속으로만 더 사랑하고 외부적으로는 더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면 안 됩니다. 또 의복도 같이 해 입혀야지 특별한 의복을 왜 해 입혔느냐는 것입니다. 의복도 다른 형제와 같이 입히고, 다른 아들들과 똑같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야 다른 아들들이 불평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을 더 사랑하여 채색 옷을 해 입혔기 때문에, 형제들이 언사에 불평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또 시기했다고 했습니다. 요셉만 더 사랑하여서 더 좋은 옷을 해 입히니까 시기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옷을 해 입히면 뭐 합니까? 다른 아들들이 시기하는 것이 좋습니까? 좋은 옷을 안 입히고 보통으로 같이 해 입혀서, 서로 시기하지 않고 화평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편애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2. 요셉이 꿈을 꿈

요셉의 꿈 이야기로 형제들이 더욱 미워함

본문 5절에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꿨습니다. 무슨 꿈을 꿨다고 했습니까?

본문 6-7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밭에 나가서 여러 형제들이 다 같이 곡식 단을 묶는데, 요셉의 곡식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곡식 단은 그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그 형들이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
었습니다. 요셉이 말하기를, 자기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자기 단을 보고 둘러서서 절했다고 하니까, 요셉이 그들의 왕이 되어 다스리겠느냐면서 그로 인해서 더욱 요셉을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셉이 또 꿈을 꿨습니다. 본문 9절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꿈에 열한 별이 요셉을 보고 절을 하고, 해와 달도 요셉을 보고 절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열한 별은 열한 형제를 가르치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열한 형제가 자기에게 절했다는 것입니다. 또 해와 달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들으면 척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알기 쉬운 꿈, 곧 누구나 알기 쉽도록 이런 꿈을 하나님께서 꾸게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요셉을 꾸짖어 말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부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꿈을 들으니까 벌써 척 알았다는 것입니다. 열한 별은 열한 형제를 가리키는 것이고, 해와 달은 부모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서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나와 네 어머니가 너한테 가서 절하겠느냐? 네 형제들이 참으로 땅에 엎드려서 네게 절하겠느냐?” 하며 꾸짖었습니다.

본문 11절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은 시기했으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형들은 왜 시기했습니까?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한다고 했는데, 열한 별은 자기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이 참
으로 동생인 요셉에게 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열한 째 아들인 요셉은 조그만 것이 겨우 열일곱 살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너를 보고 절하겠느냐?” 하며 시기했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하여 미워하던 차에 요셉의 꿈 때문에 그
를 더욱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계시하신 것

그러면 시기를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꿈꾸고도 말 안했어야 되겠습니까? 꿈꾸고 말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말해야 됩니다. 이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꾼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로 주신 꿈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사람은 꿈
이 있어야 된다’, ‘요셉은 꿈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도 꿈을 가져야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성경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스스로 열한 형제의 왕이 되어서 자기에게 와서 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꿈을 꾼 것은 아닙니다. 또 부모도 자기에게 와서 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꾼 것이 아닙니다. 도무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인데, 하나님께서 자기가 생각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으며 상상도 못했던 것을 영감으로 특별계시의 꿈을 요셉에게 꾸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요셉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 운동에 관계된 꿈입니다. 요셉을 높여주고 형제들로 절하게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하시게 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기 때문에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꿈은 장차 요셉을 통해
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특별계시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계시의 꿈이고,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주신 꿈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꿈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과 같은 것입
니다. 즉 말하자면 특별계시의 꿈은 성경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통 꿈 꾼 것은 다 이런 꿈이 아닙니다. 우리 보통 사람이 꾼 꿈은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제 꿈이나 개꿈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꿈꿔서 그걸 믿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꿈 꾸고 온 사람은 제 꿈 아니면 개꿈인 줄 알면 됩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특별계시의 꿈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성경 말씀에서 우리가 탈선되어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꿈으로 깨닫게 해서 다시 성경으로 돌아오게 만들려고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꿈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서 탈선되어 나갔기 때문에 성경 말씀으로 다시 돌이키려고 꾸게 하시는 것입니다. 꿈을 통해서 회개시키시고 바로 세우시려고 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맞아야 됩니다. 그러나 꿈이 성경에 맞더라도 꿈을 믿지 말고, 회개하고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 운동을 위해 핍박을 받은 것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들어서 장차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해나가시려고,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주신 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귀하게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고, 그것을 알게 해주신 꿈입니다. 그런데 형제는 알지도 못하고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또한 요셉은 왕이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왕 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신 것을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이것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것 때문에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시기와 미움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꿈을 받았지만, 꿈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요셉이 시기와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 이스라엘 구원 운동 때문에 시기와 미움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로 인해서, 앞으로 쓰실 일을 인해서, 요셉은 이렇게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말씀 안 지키는 사람들이 시기하고 비방하고 핍박합니다. 또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바로 하려면 사람들이 핍박하고 비방합니다.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바로 하려면, 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다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핍박도 받고 미움도 받고 시기도 당합니다. 그 사명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아, 저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 ‘저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신다’ 하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일을 잘 하려면 핍박을 받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지키려면 핍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고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바로 해나가려면, 이렇게 요셉과 같이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하고 미움을 받고 시기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비방에 대항하여 싸우지 아니함

그래도 요셉은 거기에 대항하지 아니하고 싸우지 아니하고 가만히 참았습니다. 한 마디도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거기서 싸웠다면 안 됩니다. 형들이 그럴 때, ‘꿈꿨으면 꿨지 어떻게 하란 말이냐, 꿈대로 될 것이다,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너희들이 다 절할 것이다’ 하고 형들에게 대항하고 싸우면 그 다음 어떻게 되겠습니까? 싸움이 더 커질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또 ‘죽이면 죽자’ 하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핍박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달게 받아야 됩니다. 욕을 해도 달게 받고, 미움 받는 것도 달게 받고, 핍박 받는 것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잘 참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비방에 대해 대꾸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상책이란 것은 이기는 방법입니다. 말하면 안 됩니다. 말해서 일이 다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될 건데, 공연히 말해서 일
이 다 틀어집니다. ‘꾼 꿈을 사실대로 말하는데 뭐가 잘못되었느냐?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꿈꿨다’ 하고 돌아가면 어떻게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형제들을 더 격동시켜서 싸움만 더 커지는 것입니다. 사실이라도 말 안 해야 할 때는 말 안 해야 됩니다. 말 안 했다고 누가 잡아먹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한 것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니까, 말씀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니까 그것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는 핍박은 가만히 받아야 됩니다.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잘 받아야 됩니다. 그것을 잘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이 다 틀어져 나갑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진리를 말한 것은 잘한 것이고, 진리이니까 말해야 됩니다.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핍박받을 때는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서 달게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달
게 받아 나가야 됩니다. 어떤 핍박이 와도 달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왜 핍박합니까? 왜 시기하고 욕합니까? 자기들보다 잘 되니까 욕하는 것입니다. 잘 되니까 핍박을 합니다. 자기들보다 위에 올라가니까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스스로 자기가 올라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올려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핍박을 하고, 욕하고,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을 당할 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 감사합니다. 그들보다 잘 되기 때문에 그들이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핍박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더 잘되게 해주신 줄 알고 잘 받으라는 것입니다. 또 불평하고 욕하고 또 시기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잘되게 해주시기 때문에 형제들이 나를 시기한다’라고 알고 잘 받으라는 것입니다. 시기한다고 같이 불평하고, 욕한다고 같이 욕하고, 같이 삐뚤어지고 같이 싸우고 다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 깨뜨려 내버리는 것입니다.
욕하고 비방하고 거짓말로 악평하고 핍박할 때는 기뻐해야 됩니다.
받을 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한 것을 주셨기 때문에 그만한 것이 온 것입니다. 높이 올려놓았기 때문에 시기하고 핍박하고 비방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핍박하겠냐는 것 입니다. 보배가 있기 때문에 비방하고 핍박하고 따라다니면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보배가 없으면 뭐하려고 핍박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도적이 와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리 나가 돌아다녀도 끄떡없습니다. 누가 와서 뭐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의복을 잘 입고, 몇 천만 원 짜리 입고, 자동차는 외제 자동차를 타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대 여섯 개나 끼고, 가방에다 돈도 몇 천만 원씩 넣고 돌아다니면 도적이 줄줄 따라다닙니다. 어디를 가도 줄줄 따라다닙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외딴 곳에 가면 끌고 갑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발을 쭉 펴고 잡니다. 또 어디를 가나 괜찮습니다. 그러나 무슨 보배가 하나라도 있으면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핍박 받을 때에, 그 보배 때문에 핍박 받는 줄 알고 달게 받고, 아무 답변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도리어 겸손하고 순종하면서 또 형제들과 화목하고 아버지를 잘 순종하면서 나갔습니다.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3.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충성되이 함

본문 12-15절에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
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불러서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는데 다녀오라는것입니다. 양치는 곳, 곧 형한테 갔다 오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순종을 잘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가라고 하면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또 형들이 자기를
미워해도 그저 아버지가 가라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세겜으로 갔습니다. 자기 형들이 양 치는 곳으로 아버지가 보냈기 때문에 갔다는 것입니다. 왜 보냈습니까? 보낸 목적은 무엇입니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형들과 양 떼가 잘 있나 궁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멀리 가서 양을 치는데, 잘 있는지, 평안한지, 무슨 일이 없는지, 아버지 마음에는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시켜서 잘 있는지 여부를 보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개인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나 찾아가기 힘들겠습니까? 가도 찾을지 모르고, 또 형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가서 형들한테 무슨 좋지 않은 일이나 당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개인 생각으로는 안 가는 것이 좋으나 아버지가 가라고 하니까 ‘예’ 하고 간 것입니다. 거기에 가보니까 자기 형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방을 다니며 찾으니까, 어떤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요셉에게 “네가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대답을 했습니다.

본문 16-17절에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을 찾기 위해 세겜에 가서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네가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요셉이 그의 형들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형들이 열 명이 양을 치는데, 아버지가 가서 만나보고 오라고 해서 왔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으니 그가 알면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 양 치는 사람들, 곧 열 형제가 여기서 있다가 도단으로 가자고 하면서 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들을 찾아 또 도단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4. 요셉을 구덩이에 던짐

본문 18-20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요셉이 형들을 찾아서 도단까지 갔는데, 그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형제들이, “아, 저기 요셉이 온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멀리서 알았겠습니까? 채색 옷을 입고 오는 것을 멀리서 봐도 알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저기 꿈꾸는 자가 오
는데, 자, 그를 죽여서 한 구덩이에 던지자 그리고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라고 했습니다. 예전의 그 꿈 때문에 지금 이 형제들이 상당히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꿈을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꿈꾸는 자가 온다. 죽여서 구렁텅이에 던지고 그 꿈이 어
떻게 되나, 꿈이 맞나 안 맞나 보자”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이 꿈 때문에, 곧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 아닙니까? 말씀 때문에, 사명 때문에, 이스라엘 구원 운동 때문에, 구원 사역 때문에 이렇게 핍박을 받게 됩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여서 구렁텅이에 던지자고 하니까, 맏아들 르우벤이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21-22절에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맏형이 그래도 좀 낫습니다. 다른 형들은 다 죽이자고 하는데, 맏형인 르우벤은 “그를 상하지 말고 손대지 말고 피를 흘리지 말라. 광야 구렁텅이에
던져서 내버려 두자. 그러면 저 혼자 죽을 게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목적은 구렁텅이에 던졌다가, 이제 다른 형제들이 다 저편에 가있을 때, 몰래 건져서 아버지께 보내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맏아들의 계획이었습니다. 맏아들이 제일 낫습니다.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 것입니다. 동생을 죽이면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또 동생의 피를 흘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말자’ 하면 또 동생들이 말을 안 들을 것 같으니까, 그의 말을 듣게 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 그저 죽이지 말자고 하면 다른 형제들이 말을 듣겠습니까? 죽이려고 작정하고 다 결의해놓고 있는데, 구렁텅이에 넣어서 저 혼자 죽게 두자는 것은 타협안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구렁텅이에 던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죄를 범하였으나(창 35:22), 여기에서는 선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죄를 범했다고 해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 23-24절에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채색 옷을 벗기고 그 다음에는 물이 없는 구렁텅이에 던져 놓았다는 것입니다. 깊은 구
렁텅이에 던진 것입니다. 거기서 지금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그렇게해서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시기는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나갑니다. 시기가 독한 것입니다. 처음 시기는 아무것도 아니고 약하지만, 시기하는 마음을 품고 점점 더 오래 가면, 마지막에는 사람을 죽입니다. 시기는 뼈를 썩인다고 하였습니다(잠 14:30). 시기가 이렇게 악합니다. 시기가 얼마나 악독한지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시기로 사람을 죽입니다. 시기하는 것은 빨리 풀어야 됩니다. 풀지 않고 나가면 사람을 죽입니다. 자기 형제도 모릅니다. 형제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물 없는 구렁텅이에 빠졌고, 채색 옷은 이들이 벗겨서 지금 자기 아버지한테 갖다가 죽었다고 그러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림

본문 25-27절에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서 멀리 보니까 장사꾼들이 한 패 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족속이 지금 장사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가는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장사하러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유다가 나섰습니다. 유다가 좀 낫습니다. 말도 제일 잘합니다. 유다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본문 26-27절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납니다. 요셉의 형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유다가 이스마엘 장사꾼이 길르앗에서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요셉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자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닉한들 무엇이
유익할까”라고 하며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자고 할 때에, 그 형제들이 그 의견에 다 동의를 했습니다.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을 잘해서 설득시켰습니다. 형제들이 말을 잘 안 들을 것 아닙니까? 지금 형제들이 전부 열명인데, 넷째인 유다가 지금 나섰습니다. 르우벤 다음에 넷째 유다가 다른 형제들보다는 그래도 좀 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고 말하니 형제들이 청종하였습니다. 유다의 말을 잘 들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유다의 말을 청종하였는데, 왜 잘 들었겠습니까? 그 유다의 말인 넷째 형의 말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이유에 맞고, 이치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말입니다. 또 왜 말 잘 들었겠습니까? 돈 버는 것입니다. 그때 종 하나를 팔면 돈을 상당히 법니다. 그 당시
에 종 하나 값이 은 삼십 냥이었습니다(출애굽기 21:32). 그런데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았습니다. 상인들은 이십에 사서 삼십에 팔면 이득인 것입니다. 형제들은 팔면 돈 벌고 돈 나눠 가지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넷째인 유다의 말에 다 청종한 것입니다. 형제들이 고집이 다 셌던 것 같습니다. 정당한 말로 자기에게 돈이 좀 들어와야 말 듣게되어 있지, 웬만해서는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그 맏형이 구렁텅이에 빠뜨려 죽이자고 했겠습니까? 그러지 않으면 때려죽일 뻔했습니다. 맏형이 가만히 있었으면 오자마자 아예 때려죽일 뻔했습니다. 그런데 맏형이 요셉을 구렁텅이에 빠뜨리자고 하니까, 그래도 구덩이에서 굶어 죽긴 하겠으니까, 자기들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므로 구렁텅이에 빠뜨렸고, 그 다음에는 유다가 요셉을 구덩이에서 건져서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자고 하자, 그 말이 정당하고 돈도 벌수 있기 때문에 다 청종하여 요셉을 팔았습니다. 

본문 28절에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을 은 이십 개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 사람 장사꾼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6. 요셉의 형들이 부친을 속임

형들이 요셉의 옷을 아버지에게 가져감

본문 29-30절에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라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이 잠깐 어디 간 동안에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구덩이에 가보니까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르우벤이 없는 동안에 팔아먹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이 아이가 없으니까 옷을 찢으면서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라고 하였습니다. 앞이 캄캄해졌다는 것입니다. 구렁텅이에 빠뜨렸다가 그 형제들 몰래 건져서 아버지한테 보내려고 했는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워했습니다. 르우벤이 맏아들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아버지 생각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또한 동생 생각도 제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본문 31-32절에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채색 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채색 옷을 벗겼습니다. 벗기고 숫염소를 죽여 그 피를 요셉의 옷에다가 발라서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잘 한 것입니까? 이것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남의 아버지 식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길에서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남의 아버지한테 하는 식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애통함

본문 33-34절에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그 옷을 알아보았는데, 자기 아들 요셉의 옷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들들한테 속은 것입니다. 야곱 자신이 예전에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또 장인을 속인 죄 값으로 이제 와서 당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를 속여서 자기를 에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는 야곱인데 에서라고 해서 축복 받지 않았습니까? 또 자기 장인한테는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양 나오면 자기 것 된다고 하고 수를 써서 속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속인 죄의 값으로 여기서 아들에게 속았습니다. 그리고 속아도 얼마나 큰 것을 속았습니까?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에 속았으니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애통을 오랫동안 했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으니까, 하나님을 믿었으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거짓말한 죄 값은 다 받는 것입니다. 대가를 다 받습니다. 잘못한 죄에 대해서 대가를 다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바로해야 됩니다. 속이지 말고 정직하고 신앙양심대로 해야 됩니다.

본문 35절에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녀들이 아무리 위로해도 아버지가 위로를 받지 않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참으로 야곱을 위로 하려면 참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러하실 줄은 모르고 우리가 죽이려고 구덩이에 빠뜨렸다가 애굽에 팔았습니다. 어디에 살아있을 것입니다”라고 회개하였으면 야곱에게 위로가 되었겠는데, 그것은 다
감추어 놓고 “위로 받으십시오” 하면 그것으로 위로가 되겠습니까?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는데, 어떻게 위로를 받겠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이 죽었다고 우는데 그 형제들도 상당히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괜히 우리가 죽였다’, ‘괜히 팔아먹었다’, ‘아버지가 이럴줄은 몰랐다’ 하고 아마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께서는 요셉이 정녕 죽었고, 짐승에게 찢겨 먹힌 줄 알고 우는데,
그 아들들이 가서 울지 말라고 해도 계속 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팔아먹은 사람인 아들들도 마음이 상당히 괴로웠을 것이고, 또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보니까 자기들도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형제를 팔아먹은 죄 값으로, 곧 요셉을 팔아먹은 죄 값으로 형제들도 여기서 지금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우는데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울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가 계속 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을 팔아먹은 것으로 인해서 형들이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또한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구덩이에 던지고 또 이스마엘 상인에게 판 죄 값으로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요셉을 팔 때에 누가 앞장서서 팔자고 주장하였습니까? 시므온입니다. 요셉이 그것을 알고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된 다음에 시므온을 옥에 가두었습니다(창세기
42:21-25). 시므온은 요셉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 다시 올 때까지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혀서 고생을 많이 하였을 것입니다. 르우벤은 창세기 42장 22절에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라고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즉 르우벤은 요셉에게 잘못한 죄 값으로 오늘날 자신들이 환난을 받는다고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강퍅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지 않아야 됩니다.

요셉이 애굽의 보디발에게 팔림

요셉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36절에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바로의 신하인 보디발에게 팔았고, 요셉은 그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인 줄 믿고, 거기서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키며 충성을 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요셉에게 함께 하셔서 모든 앞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형들에게 시기 받고 미움 받고 구렁텅이에 빠지고, 그 다음에 의복을 다 벗겨지고, 그 다음에는 은 이십 냥에 팔렸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신 것입니다. 사실 그 여러 가지 시험과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또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고난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흉년 때에 다 죽을 뻔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팔려 갔기 때문에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흉년에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신앙

그러면 요셉이 팔려 갈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갔겠습니까? 창세기42장 21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이 형들이 잡아 죽이려고 구덩이에 빠뜨릴 때에도 애걸했고,팔려갈 때에도 애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팔려서 갈 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갔습니다. 애굽에 가서 종살이 할 때에도 내내 편안한 마음으로 범사를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했고, 믿음으로 잘 참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줄로 믿고 범사를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처음에는 환란이 올 때에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벧전 1:6).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됩니다. 불행한 일이 닥칠 때에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으로 즐거워하며 힘써 주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것이 믿음
입니다. 죽는 시간까지 애걸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까지 애걸해 보다가 그 다음에 안 되면 단념해야 합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단념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풍랑을 인해서 나의 갈 길을 더 빨
리 가게 하시기 위해서 이런 시련을 주셨다 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갈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갔습니다. 애굽에 갔어도 형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서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을까?’ 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믿는 일을 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가는 곳마다 형통하였습니다.

요셉은 현재의 환경을 하나님께서 주신 줄 믿고 그 환경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갔습니다. ‘이 환경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내가 여기서 잘해 나가야겠다’ 하며 종살이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믿고 거기에서 주인을 존경하며 순종을 잘 하였습니다. 또 정직하고
진실하게 충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했습니다(창 39:4).

어떤 청년이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말해주었는가 하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주인을 존경하고 순종하며, 언제나 양심을 똑바로 쓰며 진실하게 그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앞길이 열립니다.

어떤 왕이 왕후를 뽑으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나무를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거꾸로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즉 잎사귀는 아래로 내려가고 뿌리가 위로 올라가게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은 뿌리가 땅 아래로 내려가고 잎사귀는
위로 올라오게 심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은 뿌리가 위로 가게 심고 잎사귀가 땅 아래로 내려가게 심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왕이 나와서 보고 뿌리가 위로 올라오게 심은 나무를 가리키며, “이것을 누가 심었느냐?”고 하며 그 사람을
왕후로 뽑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왕이 자기의 말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보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나무뿌리가 위로 올라가면 살지 못한다는 것을 왕이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을 쓰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이라고 한 마디 말 해놓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해 보고 안 되면 주인이 “내가 잘못 알았나 보다. 네 말이 옳다” 하며 콩으로 메주를 쑬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주인에게 순종하고 부지런히 충성하면 앞길이 열립니다. 요셉이 믿음을 쓰고, 주인에게 충성을 잘하고 주인을 존경하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그의 앞길이 형통했습니다.

2017년 1월 3일 화요일

창세기 30:1-43 야곱의 번성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야곱의 번성
창세기 30:1-43

1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그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빌하가 잉태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라헬이 기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10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11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레아가 가로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14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게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15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가로되 그러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 하리라 하니라 16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7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9레아가 다시 잉태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레아가 가로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21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22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 23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 25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26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28또 가로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라반이 가로되 내가 무엇으로 내게 주랴 야곱이 가로되 외삼촌께서 아무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33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라반이 가로되 내게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그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36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37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으로 라반의 양과 서로 대하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1. 라헬의 여종 빌하가 아들을 낳음

라헬이 레아를 투기하여 빌하를 야곱에게 줌

본문 1절에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내는 레아와 라헬인데, 레아는 아들 넷을 낳았습니다(29장). 그러나 동생 라헬은 아들을 한 명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라헬이 레아를 투기하며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라헬이 하나님께서 태를 열고 닫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한 말입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며 노를 발했습니다.

본문 3-5절에 “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잉태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이 자기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하여 자기 아이로 삼는 것은 그 당시의 풍속이었습니다. 라헬의 행위는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고 세상 풍속을 따라가는 인본주의 태도입니다.

빌하가 ‘단’과 ‘납달리’를 낳음

본문 6절에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빌하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라헬이 그 이름을 ‘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억울함을 푸심’이라는 뜻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니 억울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라헬이 잘못한 것입니다. 자기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준 것도 잘못한 것이고, 또 여종이 아이 낳은 다음에 억울함을 풀었다고 아이의 이름까지 ‘단’이라고 지은 것도 잘못한 것입니다. 여종이 아이 낳았으면 감사해야지, 왜 억울함을 풀었다고 합니까? 그것은 레아는 아들을 넷씩이나 낳았는데, 자기는 아들을 못 낳았으니까 레아를 향하여 질투하는 마음이 강하여 억울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빌하가 둘째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는데, ‘경쟁함’이라는 뜻입니다. 라
헬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원통히 여겼는데, 이제 형과 경쟁해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라헬이 믿음에서 멀리 떠난 증거입니다.

2.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아들을 낳음

본문 9-13절에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이 여종을 통하여 아이를 낳는 것을 보고 레아도 시기하여 그의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실바가 ‘갓’과 ‘아셀’을 낳음

실바가 낳은 첫 아들은 이름을 ‘갓’이라고 했습니다. 갓이란 ‘복되다’는 뜻입니다. 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셀’이라고 했습니다. 아셀의 뜻은 ‘기쁘다’는 뜻입니다. 레아가 바로 된 것입니다. 라헬은 ‘억울하다, 경쟁해서 이겼다’는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과 싸우며 나갔는
데, 레아는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레아는 아들을 낳았을 때, 그들의 이름을 첫째는 르우벤, 둘째는 시므온, 셋째는 레위, 넷째는 유다라고 지었습니다(창 29:31-35). ‘르우벤’의 뜻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뜻입니다. 레위는 ‘자기가 남편과 연합했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좋은 이름들입니까? 레아는 언제나 승자이므로, 또 형이므로 동생과 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질투심으로 나갔지만, 그것은 자기에게 손해입니다.


3. 합환채로 남편을 매매함

레아가 합환채로 남편을 삼

본문 14-15절에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가로되 그러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맥추 때에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자신의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때 라헬이 르우벤의 합환채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합환채는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들이 쓰던 약초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생산하지 못하던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라헬이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레아가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고 하니까, 라헬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그날 밤에 남편을 형에게 동침하라고 팔았습니다.

본문 16절에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고 하였는데, 야곱이 이 아내, 저 아내에게 팔려 다
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인격적으로 보면 변변치 못한 것 같습니다. 합환채 하나에 팔려 다니는 남편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야곱이 합환채 하나로 이 아내, 저 아내에게 팔려 다니는 것을 보면, 야곱이 믿음으로 나갔기 때문에 괜찮았지, 인격적으로 보면 아주 형편없습니다. 합환채 하나에 팔려 다니는 신세입니다. 또 첩은 몇이나 얻었습니까? 레아가 본처이므로 라헬도 사실은 첩입니다. 그리고 여종 둘도 얻었습니다.

레아가 ‘잇사갈’과 ‘스불론’과 딸 ‘디나’를 낳음

본문 17-18절에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레아가 야곱과 다시 동침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값’이라는 뜻입니다.

본문 19-20절에 “레아가 다시 잉태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째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스불론은 레아가 여섯 번째로 나은 아들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거함’입니다. 이것은 남편과 동거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후에 그가 딸을 낳았고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레아는 아들들을 낳은 후에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고 하였습니다. ‘디나’의 이름의 뜻은 ‘판단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판단으로 딸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레아는 모두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또 레아의 여종과 라헬의 여종이 아들을 둘씩 낳았으므로 야곱은 모두 열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라헬로 하여금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낳게 하셨습니다. 


4. 라헬이 아들을 낳음

라헬이 ‘요셉’을 낳음

본문 22-24절에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의 태를 열어 주셔서 노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더함’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라헬이 여종의 아들 둘을 자기 아들로 삼았는데, 하나님께서 거기다 아들 하나를 더해주셨다는 뜻입니다.
만약 라헬이 처음부터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라헬은 얼굴도 아름답고 남편도 라헬을 사랑했으므로 대단히 교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라헬의 교만을 낮추시려고 라헬의 태를 닫았다가 늦게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낮추십니다. 라헬이 낮아져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긍휼을 베풀어서 아들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아들을 모두 열한 명 낳았는데 이것이 정당한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는 일부일처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아브라함도 첩을 얻었고, 야곱도 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
는 하나님께서 일부다처를 용납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일부다처를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 남편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은 죄입니다. 마태복음 19장 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첩얻는 것을 용납하였으나 첩얻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 대가를 다 받았습니다. 얼마나 야곱의 가정에 첩으로 인해서 고통이 많았습니까? 서로 투기하고, 싸우고, 다툰 것을 보면 야곱의 가정에 고난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나라, 곧 이스라엘을 이루시려고,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이루시려고 그 가정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면이 있어도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믿음에 서면 모든 것을 다 용납해 주시고, 그것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인간의 부족한 면을 보아서는 다 멸망을 시켜야겠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잘못한 것을 회개시키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5. 야곱이 품삯을 정함

야곱이 돌아가겠다고 라반에게 청함

본문 25-26절에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
이 라반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본문 27-31절에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또 가로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반이 가로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가로되 외삼촌께서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외삼촌이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또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어디에 가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열매가 맺힙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복 주신 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심으로 야곱이 거하는 라반의 집에도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라반이 깨닫고 야곱을 떠나
지 않게 하려고 품삯을 정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품삯을 정했습니다.

야곱이 라반과 함께 있는 대신 품삯을 정함

본문 32-33절에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새로 낳는 양과 염소 중에서 점있는 것, 아롱진 것, 검은 것을 품삯으로 정하자고 외삼촌 라반에게 말하였으며, 앞으로 이런 것들이 아니고 다른 양이 있으면 외삼촌의 것을 도적질 한 것으로 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4-36절에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그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고 하였습니다. 라반이 자기 양떼 중에서 점 있고, 아롱진 것을 갈라내어 자기 아들들에게 맡기고 야곱에게 흰 양과 염소 떼만 맡겼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라반의 양떼와 야곱의 양떼가 서로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6. 야곱의 소유가 풍부하여짐

본문 37-43절에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
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으로 라반의 양과 서로 대하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얼룩무늬 있는 것, 검은 것,아롱진 것이면 야곱의 품삯이 되고, 흰 것이 나오면 외삼촌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흰 양을 낳느냐, 검은 양을 낳느냐가 문제인데, 검은 양과 흰 양 중에 어느 양이 많이 나오는가 하면 흰 양이 많이 나옵니다.
흰 양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외삼촌이 점 있고 아롱진 것을 야곱의 품삯으로 정한 것입니다. 외삼촌이 일생동안 양을 친 사람인데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보통은 검정 양도 흰 양을 낳고, 아롱진 양도 흰 양을 낳고, 검정 양과 아롱진 양은 이따금에 하나씩 낳습니다. 딸 하나 주고 7년 일을 시키고, 또 딸 하나주고 7년 동안 일 시키는 라반인데, 삯을 정하는데 있어서 허술하게 정했을 리가 없습니다.

야곱이 인본주의 수단을 사용함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양떼가 많아지게 하려고 수단을 썼습니다. 그것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가지를 취하여 껍질을 벗겨서 양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놓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양들이 그것을 보고 새끼를 배게 하여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하려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실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그 가지들을 개천에다가 세우고, 약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그 가지들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실한 양의 새끼가 자기 것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야곱의 양이 심히 많아 졌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러한 방법을 썼기 때문에 야곱의 소유가 많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재산을 많이 주시려고 얼룩무늬, 점있는 것이 많이 나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야곱이 아롱지고 점 있는 양을 많이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복주신 까닭입니다
(31:9-10). 사람이 수단 방법을 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수 없습니다. 야곱이 이와 같이 인본주의의 수단을 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많은 양을 주실 텐데, 야곱이 인본주의의 수단을 쓰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졌고, 자기 양심만 삐뚤어 진 것입니다.

또 야곱이 인본주의 수단을 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많게 해주신 것이 가리워졌고, 양치는 일꾼들에 의해서 외삼촌에게 고발만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 몰래 도망쳤으며,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야곱을 죽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썼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졌고, 장인이 자기를 도와줄 사람인데, 이제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본주의를 쓰면 이와 같이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원리원칙대로 신앙양심을 써서 믿음으로 나가면 다 주십니다. 인본주의를 쓴 것은 전부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신앙 양심을 따라서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말씀대로만 나가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주십니다. 또 모든 사람이 다 평안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됩니다.

창세기 29:1-35 야곱이 아내를 얻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야곱이 아내를 얻음
창세기 29:1-35

1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3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 4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5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6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8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리라 9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10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11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13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14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15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16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19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21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26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31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32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1.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감

야곱이 에서가 죽이겠다고 하니까 자기 형의 낯을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창세기 28장 1-2절에는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부모의 보내심을 받아서 밧단아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밧단아람으로 가다가 해가 져서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28장 13절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
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
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밧단아람으로 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시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야곱이 벧엘에서 떠나서 계속 동방으로 갔습니다. 밧단아람은 동방에 있었습니다.

2. 야곱이 라헬을 만남

본문 1-3절에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의 한 우물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우물곁에 양 세 때가 누워 있는데 목자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물을 먹이는 곳입니다. 그 곳은 물이 귀한 곳이므로 아무나 와서 양떼들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도록 큰 돌
로 우물 아구를 덮어 두었다가, 여러 목자들이 올 때에 그 돌을 옮겨 놓고 다 같이 양 떼에게 물을 다 먹인 다음에는 다시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어 놓습니다.

본문 4-5절에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나홀의 아들은 브두엘이고, 나홀의 손자는 라반입니다. 

본문 6절에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외삼촌 라반이 평안하냐고 물어 볼 때에 그들이 평안하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침 잘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딸 라헬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양
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기라고 하였더니 목자들이 여러 목자가 다 모인 다음에 돌을 옮겨 놓고 우물 물을 먹여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9-10절에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을 몰고 왔습니다. 이것을 보면 라헬이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야곱이 우물 아구의 돌을 옮기고 라헬이 몰고 온 양에게 물을 먹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여러 명이 모여야만 옮겨 놓는 돌을 야곱이 혼자 옮
겨 놓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상당히 힘이 세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도 힘이 세었습니다. 모세가 힘이 세었던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 올 때에 십계명 돌판 둘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보면 상당히 힘이 센 것 같습니다.

본문 11-14에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을 만나게 해준 것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신분을 밝힌 후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임을 말했습니다. 야곱이 소리 내어 운 것은 하나님께서 험난한 길에서 자기를 보호하여 주시고 무사히 외삼촌의 딸을 만나게 해 주신데 대한 기쁨에서 나온 울음입니다. 라반이 딸 라헬을 통해서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 나와 야곱을 영접하여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처음에 집을 떠날 때에는 외삼촌의 집에 가라고 해서 가긴 가지만 처음으로 가는 길이므로 어떻게 찾아가야 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무조건 가는 것입니다. 무사히 먼 길을 잘 갈 수 있겠는지, 또 짐승이나 도적을 만나서 해를 받지 않겠는지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그저 하나님만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가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길을 잘 인도해 주셔서 형통한 길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고, 또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십니다.

라헬이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할 때에 야곱이 돌을 옮겨 준 것을 보면 야곱은 봉사 정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양떼에게 물을 먹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야곱이 스스로 돌을 옮기고 양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또 라헬은 지혜가 있습니다. 모르는 남자가 와서 “내가 너희 아버지의 생질이다”라고 할 때에 의심이 생길 수도 있었을 텐데, 라헬은 아버지한테 빨리 가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라반이 야곱에게 달려가서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였습니다.
외삼촌이 친절하게 야곱을 잘 영접해 준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친절하지 않은 외삼촌도 많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내게로 왔나? 내게 무슨 손해를 주러 오지 않았나?” 하며 친척이라도 오면 친절하게 영접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좋은 마음을 가지
고 친절하게 영접을 해 주면서 자기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이 나가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잘 인도해 주셨습니다. 목적지까지 잘 도달하도록 인도해 주셨고 또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3. 라헬을 위해 7년간 봉사함

본문 15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생질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어머니는 리브가인데, 리브가의 오라비가 라반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라반의 여동생의 아들로 생질입니다. 촌수가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거기에 있은지 한 달쯤 되었습니다. 한 달 후에 라반이 야곱에게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하며, 보수를 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8절에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칠 년을 외삼촌에게 무료로 봉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칠 년간 무료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칠 년간의 봉사를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요새 한 달 월급이 백만 원이라면 일 년에 천 이백 만원, 칠 년이면 팔천사백만 원인데,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팔천사백만 원이면 집 한 채 값도 못 됩니다. 옛날에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돈 받고 딸을 팔았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그냥 팔려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집도 딸을 오백 냥을 받고 팔았습니다. 돈 오백 냥이 없으면 장가도 못갑니다. 그때 오백 냥이면 상당히 많은 돈입니다. 그러나 딸을 돈 받고 파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튼 야곱은 자원해서 칠 년 동안 봉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원해서 봉사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딸을 낳아서 지금까지 길러 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길러준 공로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 하나를 기르려면 손이 오만 번 가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고, 노력이 많이 들어가서 길러 놓았는데, 그에 대한 보답을 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칠 년간 봉사하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본문 19-20절에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장인 장모도 부모이고, 시부모도 부모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대접하고, 부모를 위해서 쓰는 것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야곱이 칠 년을 수일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외삼촌에게 봉사 했습니다. 또 라헬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칠 년이 수일과 같이 지나갔습니다.

4.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아내로 줌

본문 21-25절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외삼촌과 약속한 칠 년이 지났으므로 야곱이 라헬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 아내가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습니다.칠년을 봉사하였는데 레아를 아내로 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속았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외삼촌에게 속은 것은 과거에 아버지와 형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그 속인 죄값을 지금 받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한테 가서 뭐라고 하며
속였습니까? 자기가 맏아들 에서라고 하며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남을 속이면 자기도 속게 되어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 더 일함

본문 26-27절에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라반이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으니 그 대가로 칠 년을 더 봉사하라고 라반이 야곱에게 제안했습니다.
또 칠 년 동안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또 칠 년을 일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1장 15절에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은 아버지가 딸을 외인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야곱이 자원해서 칠 년간 봉사하겠다는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다시 칠 년간 레아를 위해서 봉사하라는 것은 딸을 팔아먹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딸한테 아버지가 우리를 팔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본문 28-30절에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고하였습니다. 딸들을 야곱에게 다 주었는데 이것은 라반이 잘못한 것입니다. 한 남자에게 두 딸을 준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남일녀를 창조한 창조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
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내 둘 얻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다릅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내를 둘 얻는 것은 허락이 안 됩니다. 라반이 딸 둘을 야곱에게 주었으므로 야곱의 가정에 질투와 시기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고통이 계속 되었습니다.

6. 레아가 네 아들을 낳음

본문 31-32절에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레아가 맏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잉태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잉태를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을 ‘르우벤’이라 하였습니다. 르우벤이란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하는 뜻입니다. 각주에 보면 ‘보아라,
아들이로다. 괴로움을 권고하셔서 나에게 아들을 주었다’하여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잘 받지 못하였던 괴로움을 하나님께서 권고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들을 낳았으므로 남편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33절에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시므온’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시므온이란 뜻은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여호와께서 자기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들어 주셔서 감사한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레위’라 지었습니다. 자기 남편과 연합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레
위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아들은 ‘유다’입니다. 유다란 뜻은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
리스도가 나십니다. 그래서 장차 될 일을 인하여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지은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들을 낳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열두 아들을 주셔서 귀한 이스라엘을 건설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그것을 육신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맏아들에 대해서 ‘르우벤이라 보아라, 아들이라’고 하였고,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시므온이라, 하나님이 들으심을 들었다’고 하였으며, 셋째는 ‘레위라, 자기 남편과 연합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레위라는 뜻이 연합이란 뜻인데 이것은 신령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레위는 장차 제사장 지파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마 연합이란 뜻으로 짓게 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를 낳게 하시려고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으로 ‘유다’라고 짓게 하신 것입니다. 레아는 자신의 입장에서 육신중심으로생각해서 각각 이름을 지었지만,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건설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고, 그 각각의 이름의 뜻도 하나님께서 신령한 뜻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창세기 26:1-35 이삭의 창성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이삭의 창성
창세기 26:1-35

1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3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6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7그 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
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18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
로다 하였더라 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25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34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35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1.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에 거하면 복 받음

본문 1-2절에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에는 흉년이 자주 든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는데, 이번 이삭 때에 또 흉년이 들었습니다. 또 흉년이 들었을 때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 같으니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지시하는 땅, 즉 가나안 땅에 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합한 곳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곳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이
삭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번성케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합한 곳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곳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복을 주시고 또 번성케 해주십니다.

본문 4절에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에 합한 곳에 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말씀에 합한 곳을 떠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고난이 와서 먹을 것이 없고, 다 굶어 죽을 것 같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와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 그 말씀에 합한 곳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합한 곳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번성케 해주시고 또 자손과 천하 만민도 다 복을 받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5절에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복을 약속받았던 것처럼, 이삭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에 있으면 그 약속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 이삭이 아내를 누이라고 함

본문 6-7절에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그 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그랄
에 갔는데, 거기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왜 누이라고 했는가 하면,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리브가를 그의 아내라고 하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라고 했어도 안 죽습니다. 이것은 인본주의를
쓴 것입니다.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아내라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나 바로 해야만 되겠는데,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한 것은 이삭이 잘못한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오래 있는 동안에 이삭이 그 아내를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보았다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랄의 왕입니다. 이삭을 불러서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하고 이삭에 대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여서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10-11절에 “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내라고 했어도 안 죽을 뻔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말한 것을 보면, 그가 남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이 죄인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백성 중 하나가 동침했다면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벌 받을 줄을 아비멜렉은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멜렉이 “왜 이렇게 했느냐? 우리가 죄를 범할 뻔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라고 했어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본문 11절에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고 하는 엄격한 도덕을 지키는 아비멜렉이기 때문에 거기 가서 자기 아내라고해도 안 죽습니다. 처음부터 아내라고 했어도 아비멜렉이 이렇게 말했을 뻔 했는데, 괜히 누이라고 해서 양심만 안 쓰고 도리어 실수 한 것 입니다. 죽을 것 같아도 솔직하게 하면 안 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 살려주십니다.

3.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해짐

본문 12-14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그 해에 농사를 했습니다. 농사해서 백 배나 얻었습니다. 참 잘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양과 소떼가 심히 많고 노비가 심히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노비는 종을 가리킵니다.

농사해서 백 배 얻는다는 것은 한 가마니 심으면 백 가마니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료 값이 있겠습니까, 농약 값이 있겠습니까? 또 수리조합에 물 값 물어줄 것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비를 잘 오게 해주셔서 수리조합의 도움 없이도 농사가 잘 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한 가마니로 백 가마니 얻는 농사를 했습니다. 또 그 이듬 해에 백 가마니를 심어놓으면 만 가마니가 됩니다. 처음에는 열 가마니쯤 심었다고 합시다. 열 가마니면 천 가마니 얻었을 것입니다. 백 배나 얻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한 가마니에 17만원 정도 된다고 하면,
천 가마니에 1억 7천만 원입니다. 자 얼마나 굉장한 것입니까? 그리고 또 한 해만 더 심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 가마를 심어서 한 해에 백 배나 더 얻게 되면 십만 가마니입니다. 십만 가마니면 170억 원입니다. 170억원이면 요새도 부자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백 배나 주셨고이렇게 거부가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농사만 한 것이 아니라 양도 쳤습니다. 목축도 했다고 했는데, 양과 소가 또 심히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종들도 심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부가 되게 해주셨기 때문에 거부가 된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흉년이 들었지만 그 흉년을 이기고 참으며 어려운 난관을 잘 통과해 나가면서 하나님 말씀에 합한 그 땅을 떠나지 않고 흉년과 어려움, 궁핍이 올 때에 그것을 잘 이기고 통과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백 배나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잘되니 블레셋 사람이 시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이 잘 되면 시기합니다. 자기네보다 잘 되니까 시기가 일어났습니다.

본문 15-16절에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들이 있었는데 그 땅의 백성이 시기가 나서 그것을 다 막고
메웠습니다. 흙으로 메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하기를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자꾸 강해지니까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삭이 자꾸 강해지고 돈이 많아지고 세력이 세지니까 도리어 무서워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무서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떠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잡아 죽이지 않고 떠나가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곳을 떠나갔습니다. 떠나가라고 하면 떠나는 것입니다. 이 동네에서 핍박을 하면 저 동네로 가고, 저 동네에서 핍박을 하면 다른 동네로 가라고 하였습니다(마10:23).

4. 우물 양보와 하나님의 축복

본문 17-18절에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고 하였
습니다. 이제는 아비멜렉이 떠나라고 해서 이삭이 그랄 골짜기로 갔고 거기 장막을 치고 거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그것을 거기 사람들이 메워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우물이 중요합니다. 목축을 하는 데에는 물이 있어야 되는데 그 지방은 고원 지대라서 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물이 있어야 양을 먹일 수가 있고, 우물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블레셋 사람이 다 메웠었는데, 그 우물을 이제 다시 팠습니다. 팠던 것을 다시 파니까 좀 쉬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의 이름을 아브라함 때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본문 19-20절에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우물을 파서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물이 많이 난 모양입니다.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말하기를 그 물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파기는 이삭의 종들이 팠는데, 자기네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고 했습니다. 에섹은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이 우물은 다툼의 우물인 것입니다. 그 우물을 팠는데 그 사람들이 와서 자기 것이라고 다투자고 하니까 그것을 양보하고또 다른 것을 팠습니다.

본문 21절에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다른 우물을 또 팠는데, 그곳의 사람들이 또 와서 이것도 자기네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그 우물을 ‘싯나’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싯나라는 것은 성경 각주에 보면 ‘대적함’이라는 뜻입니다. 첫 우물은 다투기 때문에 다투는 우물이라고 하여 양보하였고, 다른 곳을 파니까 또 와서 자기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제 대적이라 하는 의미의 싯나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것도 양보했습니다. 두 번째 양보했습니다. 양보하고 거기서 또 옮겨서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본문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다른 우물을 팠는데, 더이상 다투지 않
았습니다. 이번에는 다투러 안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이름하고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세번째 우물은 다투지 않기 때문에 르호봇이라 하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르호봇은 장소가 넓음을 뜻합니다. 이제는 다투지 아니하고 여기서 번성하게 되었으니까 장소가 넓다는 의미입니다. 넓은 곳에 가서 판 모양입니다.
우물을 파기는 이삭의 종들이 팠는데 그것을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와서 다투고 하니까, 이삭은 ‘우물을 가지고 난 다투고 싸우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사는 사람이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양보한다’라 고 하면서 양보하고 또 다른 것을 팠던 것입니다. 우물을 하나 파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리고 다른 것을 팠는데 또 와서 그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적을 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이 우물도 이삭의 것이지만 그들이 와서 그들의 것이라고 대적을 하니까 양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니까 하나님께서 앞으로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고,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따라간다는 신앙을 가지고 우물을 양보했습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우물을 또 팠습니다. 세 번째 우물을 팠는데, 거기에는 다투러 오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자기네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여기서 번성하라고 이 좋은 우물을 주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장막을 치고 번성을 하게 되었고, 그 이름을 장소가 넓다는 의미의 르호봇이라 이름을 붙이고 거기서 거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자기의 것을 두 번 양보 했습니다. 싸우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키면 양보해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싸우고 다투느라고 믿음을 다 팔아먹는데, 믿음이 떨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물이 아무리 많아도 망합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양보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믿음 잘 지키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또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물도 주시고 장막 칠 곳도 주시고 양 먹일 것도 주시고, 모두 다 주십니다. 믿음 지키면 다 주십니다.

본문 23-25절에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했습니다. 그 밤에 우물을 또 팠습니다. 두번 양보하고 세 번째 우물을 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블레셋 사람들이 너희들을 핍박을 하고 내쫓으려 하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해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장막을 쳤고, 그 종들은 거기서 우물을 또 하나 팠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주셨습니다. 두 개를 양보했더니 두 개를 주신 것 아닙니까? 더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처음의 두 개를 가지고 싸웠다면 양쪽 모두 서로
망할 뻔했는데, 안 싸우고 두 번 양보하고 떠났더니 더 좋은 것 두 개를 또 주신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싸우자 그래도 내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한두 번 싸우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내내 다니면서 싸우자고 할 리가 없습니다. 싸울 건수가 있어야 싸우자고 하지, 아무런 건수가 없는데 왜 싸우자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자기 것이라고 하고 둘째 번도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무슨 건수를 붙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늘 이 길로 다니면서 양을 먹여서 우리가 우물을 파려고 했는데 너희가 먼저 팠다’든지 또는 ‘우리가 먼저 우물가 자리를 잡아놨는데 너희가 먼저 팠다’든지, ‘우리가 늘 이곳으로 다니면서 양을 먹였다’든지 하는 등의 무슨 건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우물 둘을 양보하고 저쪽 넓은 곳에 가니까 건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넓은 곳에 무슨 건수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브엘세바로 올라가는데 거기에서 우물을 또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 사람들이 왔어도 건수를 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양보하면서 잘 되는 방법입니다. 양보하면서 믿음 지키면 잘 됩니다. 믿음 지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믿음 안 지키며 양보하는 것은 안 됩니다. 양보하면서 믿음 지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바로 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으로 살고 충성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5. 아비멜렉이 이삭과 맹약함

본문 26-29절에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
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흉년이 들어서 거할 곳이 없이 되어서 그랄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피난을 간 것입니다. 말하자면 흉년이 들어서 블레셋 나라로 피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블레셋 나라에 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백배
나 더 주셨습니다. 양과 소들도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의 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너는 우리보다 강성한즉 여기서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곳을 떠나서 이제는 골짜기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옛날에 양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물을 파고 양을 먹이려고 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우물은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 우물을 양보하고 또 다른 곳을 팠습니다. 다른 곳에 갔을 때에도 그곳에 그들이 와서 또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했는데, 또 양보했습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서 살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가지고 살 것이지 이런 우물 하나 가지고 싸워서 살고 못 사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사는 것이 우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다’고 하면서 양보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는 것이 우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만 순종해서 믿음 지키면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넓은 곳에 좋은 우물을 하나 주셨고, 그 다음에 브엘세바에서 또 우물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점점 세력이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점점 많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나라의 왕이 그 친구하고 군대 장관을 데리고 그 골짜기로 찾아왔습니다. 이삭을 찾아 왔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피난민을 찾아온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말하였습니다. 자 이것 보십시오. 안 믿는 사람이 봐도 여호와께서 이삭과 같이 하시는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왕이 이삭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맹약을 세워서 서로 맹약을 맺고 서로 해하지 않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삭을 해하지 않은 것처럼 이삭도 그들을 해하지 않도록 맹세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전에 이삭에게 선한 일만 했고 평안히 이삭을 가게 했는데, 이제 이삭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왕이 와서 서로 해하지 않는 맹약을 하자는 것을 보면 이삭이 왕의 세력과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혹은 왕의 세력보다 어떤 면에서는 좀 더 번성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 왕이 “우리가 너희는 해하지 않지 않았느냐?”고 하며 “우리가 서로 해하지 않도록 하자”고 하였습니다.
남을 해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삭이 처음에 피난 갔을때, 블레셋 왕이 그를 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처음에 조금 번성했을 때에도 이삭을 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삭에게 ‘이것이 어디라고 우리나라에 와서 양을 먹여서 이렇게 부자가 되었느냐? 우리 풀이다. 우리
풀 가지고 양 먹였으니까,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없애 치워라’ 하면 다 죽일 수가 있습니다. 왕이 죽이려고 하면 그것 하나 못 죽이겠습니까?
그런데도 블레셋 나라 왕이 이삭을 죽이지 않고 평안히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죽일 만한 세력이 있어도, 안 죽이고 선을 행해야 됩니다. 해할 만한 세력이 있고 기회가 있어도 해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평안히 대접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멜렉도 여기서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평안히 너를 선대하지 않았느냐? 고로 맹약하자.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 시는 것을 분명히 우리가 보았다. 고로 맹약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에 이삭이 “나를 이전에 내쫓은 사람들이 왜 왔느냐? 우물을 둘 다 빼앗은 자들이 왜 왔느냐?” 하면서 보복을 했다면 이삭이 여기서 망합니다. 또 전에 거기서 쫓겨난 것 아닙니까? 그 다음 우물을 둘 다 빼앗긴 것 아닙니까? 이제 이삭이 세력이 세지니까 찾아온 것 아닙니까? 이삭이 여기서 보복했다면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30-31절에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고 했습니다. 자 이것 보십시오. 이삭이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상대는 전에 자
신을 쫓아낸 사람들입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자기의 원수입니다. 자기를 쫓아낸 자기 원수라는 것입니다. 우물을 다 빼앗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재물을 빼앗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어 잘 대접을 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서 선대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였는데, 이것이 믿음입니다.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라고 하였습니다. 미운 사람에게 잔치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미운 사람 있으면 떡 하나 더 주십시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먹지 말고 떡 하나를 내게 가져오십시오. 자, 이것 보십시오. 원수가 왔는데, 자기를 쫓아낸 사람인데, 우물이 재산인 때 자기 재산을 다 빼앗은 그런 사람이 왔는데, 그들을 위해서 잔치하고 잘 대접을 했다는 것입니다. 선이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 반드시 그 보응을 받게 되고,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선에 대한 보응을 또 받게 됩니다.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화목하십시오.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원수를 위해서 잔치를 베푸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고 기뻐하십니다.

지방에 어떤 목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의 집사가 자기에게 시험거리 노릇을 한 모양입니다. 목사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가 음식을 차려놓고 다른 집사들을 몇 명을 초청하고 그 목사도 초청을 했습니다. 과거에 시험이 좀 있었지만 이제
는 잘 풀고 지내려고 목사를 초청하고 또 집사 몇 명도 초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잘 차렸다고 합니다. 그 날은 목사가 가서 그저 먹기만 했으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해주고 먹기만 했어도 화목이 되는 것인데, 가서는 말하기를 집사가 잘못했으니 자복을 하면 이것을 먹고 자복하지 않으면 안 먹겠다고 했답니다. 잘 했습니까? 자복을 받아야 음식을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가 자복을 했겠습니까, 안했겠습니까? 그 목사는 자복을 받고 이것을 먹어서 그 집사를 꼼짝 못하게 만들게 할 생각을 가지고 했는데, 집사는 자복을 안 했습니다. 자복 안 했으니 목사가 음식을 안 먹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음식 차려놓은 것을 다른 집사들이 다 나눠먹고 목사는 가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집사는 다른 교회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쫓겨났습니다. 그 집사가 쫓아낸 것이 아니라, 다른 집사가 보니까 이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 음식을 먹었으면 되지않습니까? 집사가 음식을 차렸는데, 목사가 잘 안 먹는 것으로 차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가 안 먹는 음식이라도 차려주면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으면 됩니다. 사람이 먹는 것은 다 먹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목사를 위해서 음식을 잘 차리고 모신 것은 그 집사가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가 악독하여 그것도 하나 용납 못하고 집사에게 자복을 받고 먹겠다고 하다가 일이 다 틀어진 것입니다. 자기도 다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집사는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삭이 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원수가 된 사람도 잔치하고 대접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가 다 없어집니다. 원수를 없애야 좋은 세상이 되지, ‘저 사람이 내게 원수이므로 나도 원수다’ 하면 내내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다 떠나고,
그 다음에는 피차 물고 찢어지면서 둘 다 망합니다. 원수가 있으면 없애십시오. 화평 하라는 것입니다. 잔치하라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맹약하자고 하니까 이삭이 맹약 해준 것입니다. 하자는 대로 해주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평안히 돌아갔습니다.

본문 32-33절에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고 했습니다. 아비멜렉과 이삭이 맹약한 그 날에 우물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을 ‘세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라고 했습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세바’는 맹세라는 뜻이고, ‘브엘’은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삭이 아비멜렉과 맹세했으니까 맹세의 우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이것은 잘 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찾아온 것은 참 잘 한 것이고, 이삭이 잔치를 베풀고 대접한 것도 참 잘 한 것이며, 맹세해달라고 하니까 맹세해준 것 또한 참 잘 한 것입니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해달라는 대로 해줘서 화목하는 것이 좋지, 조건을 대서 ‘네가 화목을 하면 내가 맹세해주겠다. 우물 판 것 두 개를 네가 빼앗았으니
까, 그것 둘을 다 내놓으면 내가 맹세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못 한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그저 무조건 사랑하고 화목 하는 것입니다. 두 개를 안 빼앗기려고 블레셋 나라하고 싸웠다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그 다음의 우물들을 발견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안 주실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싸우다가 둘 다 망할 것이 아닙니까? 양보하고 믿음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많은 복을 주셔서 잘 되고, 계속 잘 되어 나가니까 왕이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니 이제는 서로 해하지 않기로 맹약하자”고 한 것이 아닙니까?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복입니까? 상대가 화목하자고 할 때는 조건부로 하면 안 됩니다. 무조건 영접해서 대접하고, 맹약해달라면 해주고, 사랑하고 잘 대접해서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6. 에서가 아내를 취함
본문 34-35절에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했는데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방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헷 족속은 이방 나라이므로 그 부모에게 근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서는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에게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1:1-21 이삭과 이스마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이삭과 이스마엘
창세기 21:1-21

1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11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13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15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16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 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17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0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21:2 사라가 임신하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때가 되자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21:3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고, 

21: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의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째 되는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21:5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에 나이가 백 세였다. 

21:6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로 웃는 자가 되게 하시니, 듣는 모든 사람이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하고 

21:7 또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겠는가? 그러나 내가 아브라함의 노년에 아들을 낳았다." 라고 말하였다. 

21:8 그 아이가 자라서 젖을 떼었는데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21:9 사라가 보니, 이집트 여자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이삭을 조롱하였다. 

21:10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십시오.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21: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에 관련된 일로 인하여 근심이 가득하였다. 

21:12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와 네 여종의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사라가 네게 말한 대로 다 들어라. 이삭을 통해서 태어나야 네 자손이라 일컫게 될 것이다.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자손이기 때문에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하셨다.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고 그 아이와 함께 내보내자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를 방황하였다. 

21:15 하갈이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아이를 한 덤불 아래로 보내어놓고 

21:16 그 여자는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반대편으로 가서 마주앉아 말하기를 "내가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구나." 하고 소리 높여 우니, 

21:17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말하기를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니, 

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그를 붙잡아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라고 하며, 

21:19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갈이 물이 있는 샘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다. 

21:20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셨고, 그 아이는 자라 광야에 살면서 활 쏘는 사람이 되었다. 

21:21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이집트 땅 여자를 데려와 아내로 삼게 하였다. 


1. 이삭을 낳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시고 행하심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 위하여 사라가 잉태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신다고 하였는데, 사람이 계속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계속해서 힘을 쓰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되는 것입니다. 금년에 안 되면 명년을 기다리고, 명년을 기다렸다가 안 되면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집니다. 온전히 행해집니다. 당장 안 된다고 할지라도, 몇 년 있어도 안 되더라도, 좀 더 있으면 온전히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계속해서만사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실 것을 끝까지 믿고 자꾸 힘써서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사라가 잉태하였는데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권고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실 때, 사람도 계속해서 자꾸 힘써 노력해야 잉태하는 것입니다. 여러 번, 여러 날, 오랫동안 노력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어서 그의 집에서 길리운 다메섹 엘리에셀이 그의 상속자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종을 첩으로 얻어서 아이를 하나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사라가 잉태하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나이 들어 희망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잉태하기를 힘써서 계속할 때, 여러 날 후에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만사가 이와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인데, 우리가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행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를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가 안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있는 힘을 다 기울이고, 그 다음에는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끝까지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
나님께서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법,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는 자기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을 위해 재정과 환경 모두 다 바쳐서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안 된다고 그만두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열 번, 스무 번, 100번이라도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먼저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즉시 순종해야 됩니다. 말씀부터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권고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거나 하
라고 하십니다. 또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나님의 권고가 임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하지 말고 순종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힘이 없다’, ‘자격이 없다’, ‘돈이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다 바쳐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하고 얻어 갈 생각을 하고, 얻어먹을 생각만 하는 것은 거지 근성입니다. 그런 생각은 못 씁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쳐서 희생해야 합니다.
개척 교회할 때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어야 합니다. 누가 해주겠거니 하지 말고, 먼저 자기 것을 다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 될 때 다른 사람이 보조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기울여서 계속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루어지게 만드
시는 것입니다.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쓰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격 없는 사람을 들어서 쓰십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자격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희망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고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의 권고함에 따라서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을 쓰니까 마침내는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2.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

말씀대로 이삭이라고 이름함

본문 2-4절에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
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 바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삭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7:19절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태어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길러야 됩니다. 말씀대로 이름을 짓고 말씀대로 길러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한 것도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그 즉시부터 모든 것을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삭을 낳음으로 기뻐하여 웃음

본문 5-7절에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라가 웃은 것은 좋은 웃음이고, 의심하는 웃음이 아닙니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 무슨 의심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사라가 웃은 것은 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겠다고 천사가 말해주었을 때 불신앙으로 웃은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89세 난 사
라에게 아들이 있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웃은 것이지만, 지금은 이삭을 출생한 것이 사람의 능력과 지각을 초월하여 신적 역사(神的役事)로 출생한 것이니 놀랍고 기뻐서 사라가 웃은 것입니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90세 할머니인 사라가 해산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뻐하며 웃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면서 웃는 것이고, 될 수 없는 상상 밖의 일이 이루어졌으니까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라가 자녀를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셨으므로 사라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송한 것입니다.


3.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

이삭이 젖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배설함

본문 8절에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돌잔치가 아닙니다. 젖을 떼는 날에 대연을 배설하였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으로 젖 뗀 것이 좋아서 대연을 베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하
나님의 구원운동을 이루실 터인데, 이삭이 젖을 뗀 것만큼 구원 운동이 성장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제는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만큼 성장했으므로 그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큰 잔치를 배설한 것입니다. 구원 운동이 성취돼 나아가는 것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신의 젖을 뗀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젖이나 먹다가 단단한 식물을 먹을 만큼 지금 이렇게 자라났으니까 그야말로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는 말입니다.
자기 혼자서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다 모아 놓고 구원운동이 잘 되는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이므로 대연을 베풀고 먹었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가 봄

본문 9-10절에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17:24-25절에 이스마엘이 13세 때에 할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13세 때, 아브라함이 99세였고,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삭을 낳았으니 이스마엘과 이삭은 14살 차이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3살에 젖을 뗐다고 하면, 그때는 이스마엘이 16세나 17세 쯤 되었을 것입니다. 동생 이삭이 서너 살일 때, 형 이스마엘이 희롱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희롱했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고 깎아 내린 것 같습니다. 또한 본문 20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이스마엘이 장성하여 화살 쏘는 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이스마엘이 여러가지로 이삭을 괴롭게 하고, 활 쏘는 연습하면서 위협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또 핍박하고 깎아내려 낮추고 압제하여 자꾸 이삭을 희롱한 모양입니다.
사라가 보니까 이삭이 참 안되었습니다. 큰일 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삭이 자라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또 죽이지는 않더라도 너무 괴롭게 하고 너무 희롱 하니까, 이삭이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4.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음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함

본문 10절에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남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남편 아브라함에게 심한 걱정이 생겼습니다.

본문 11절에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내어 쫓겠나? 그도 아들인데’라고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가 ‘내어 쫓아주십시오’ 하지 않고 ‘내어 쫓으라’고 하였는데, 사라가 화가 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이요, 또 자기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인데, 약속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고 자꾸 못살게 하고 기를 못 피게 하니까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남편 보고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명령식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근심치 말고 내어 쫓으라고 하심

본문 12-1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근심하면서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계속 근심이 들어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길 때는 특별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내쫓으라고 하는데,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그래도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맏아들 아닙니까?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겠습니까? 사람을 내어 쫓으라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심히 근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말씀 하시기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종의 아들을 아브라함이 쫓아도 죽지 아니하고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내쫓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내어 쫓음

본문 14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과 여종을 내쫓으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작정을 했습니다. 언제 내쫓았느냐 하면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내쫓았습니다. 조금 더 애착심을 가지고 ‘조금 더 있다 가라. 조금 더 있다 가라’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에는 즉시로 순종하여 실행했습니다. 시간을 지체하면 마귀 시험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에는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즉시 순종입니다. 즉시로 해야 하지, 그저 우물쭈물하여 한 번 더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아들쳐다보고 하다가는 애착심이 생겨 마음이 그만 해이해집니다. 결심이 해이해집니다. 그리고 마귀가 틈탑니다. 그 아들을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볼 것도 없습니다. 다 내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예” 하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해야 합니다. 얼굴을 내내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스마엘아, 나가라” 하고, 하나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로 순종해야 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순종을 해야지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귀 시험이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의 용기가 대단합니다. 아무리 자기 아내 사라가 내쫓으라고 해도 자기 맏아들을 내쫓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번에 결심하여 단념을 하고 아침에 딱 내쫓았으니 얼마나 그 신앙이 존귀합니까? 이것이 힘 있는 신앙입니다. 아들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기는 신앙입니
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는 신앙이고, 또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쫓으라는 그 말씀을 귀히 여기는 신앙입니다.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신앙은 위대한 신앙입니다. 인정선을 넘은 신앙입니다. 인정에 얽매여서 끌려 다니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인정선을 넘어서 끊을 것을 딱 끊어버리고 내어 쫓을 것을 쫓아야만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쫓으라고 하셨는데, 분가해 줄 수도 있겠지만, 분가는 내쫓는 것이 아닙니다. 무자비하게 아예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에 대해서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아라”고 말한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육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어 쫓아야 함

이스마엘은 육에 속한 자이고 이삭은 영에 속한 자입니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언제든지 핍박을 할 터인데, 육에 속한 자를 내쫓아야만 영에 속한 자가 자유롭게 자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인정, 인본주의 신앙과 인본주의 생각을 언제든지 쫓아내야 됩니다. 우리 속에 육신의 생각을 그대로 둬 두면 영의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둘 다 잘 될 것 같습니까? 육신도 잘 되고 영도 잘 돼서, 둘 다잘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둘 다 좋으려면 사고가 납니다. 자꾸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희롱을 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사람들이 영의
사람들을 자꾸 핍박을 하고 희롱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육신의 생각을 내쫓고, 날마다 인정을 내쫓고, 딱 끊어버리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인정과 욕심을 끊어버리고, 인간의 것을 다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됩니다. 육에 속한 신자의 의견을 내쫓아야 합니다. 육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고 못살게 하고 압제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데, 육의 속한 신자의 그 의견을 내쫓아야 합니다. 들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의 의견과 그들의 일 처리 하는 방법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신자에게는 직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장로로 세우면 안 됩니다. 육신에 속한 신자를 장로로 세워 놓으면 사사건건 육신중심으로 하자고 합니다. 인본주의로 하자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신자에게는 손해되는 방법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의 의견은 육신 중심이므로 영에 속한 신자에게 희롱이 되는 것이고 핍박이 되는 것이고 손해를 주는 것이고 압박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의견을 내쫓아야 영에 속한 신자가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같은 장로를 하나 세워 놓으면 그 교회의 일은 다 틀어 집니다. 이스마엘 장로를 하나 세워 놓으면, 목사가 영에 속한 일을 하려고 할 때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라고 열심히 가르치면, 그 장로는 주일날을 안 지키기 때문에 목사님에게 왜 자꾸 그런 설교만 하느냐고 합니다. 또 교인들이 주일을 지키려고 해도 장로가먼저 주일을 안 지키는데 일반 성도가 무슨 주일을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로가 하자는 것이 다 육신 중심입니다. ‘노라리 합시다’, ‘주일날 산책할 겸 야외예배 갑시다’, 또 ‘술 먹는 사람도 집사로 세웁시다’ 등 사사건건을 육신 중심으로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장로에게 맞습니다. 맞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신자는 그렇게 하면 자꾸 치이고 손해를 보고 압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을 겸해 나갈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 이 둘을 겸해 나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마엘과 이삭에게 둘 다 기업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이삭을 길러 나가고 이스마엘은 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이스마엘의 의견을 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의견을 들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견을 안 세워주면 그 다음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도망쳐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안 됐지만 영을 기르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적은 영의 사람인 이삭을 기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길러 나가는 것이 목적이지,
아들을 많이 가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도 영적인 사람을 길러 나가는 것입니다. 교인을 많이 모으고 예배당을 잘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을 길러 나가는 데에 표준을 두고, 거기에 손해되는 것은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방법에 있어서도
영적 손해가 되는 것은 다 내쫓고 인본주의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인본주의 장로를 세우지 말고, 인본주의를 들여와서 의견 제출하는 것을 내쫓고, 성경대로 영의 사람을 길러 나가는 데에 언제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의 사람을 길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인본주의 장로가 있는 곳에서는 영의 사람을 길러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 됩니다. 사사건건 인본주의로 하자고 하기 때문입니다. 행정은 장로가 하고 목사는 강단만 맡는다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가만히 계시고 성경 말씀만 가르쳐 주십시오. 행정은 우리 장로가 다 할 것입니다”, 또 “돈은 제직회에서 다 관할할 테니 목사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라고 하면서 목사님은 설교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성경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그렇게 되면 강단은 생명 없는 강단이 됩니다. 목사가 가르치는데 왜 생명이 없느냐면, 목사는 ‘동으로 가야 합니다’라고 가르쳐 놓아도 행정하는 장로들이 ‘서로 갑시다’ 하고는 서쪽으로 가게 됩니다. 행정이라는 것도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목사가 강단에서 기껏 목이 쉬도록 동으로 가야 한다고 땀을 흘리며 가르쳤는데, 장로가 ‘우리는 서로 갑시다’ 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가르쳐 놓았으니 이제 가만히 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서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 다음 돈을 관리하는 제직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개척 교회를 세우려고 힘써 모았는데, 집사들이 ‘교회 돈으로 뭐 사먹고 씁시다’, 또 ‘청년들에게도 천만 원씩 줍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사님은 구원 운동을 위해서 교회 개척하고 약한 자들 도와주고 선교 사업에 쓰려고 했는데, 집사들은 그저 먹자주의와 놀자주의를 위해서 쓰겠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가르친 것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인본주의 장로와 인본주의 집사를 세워 놓으면 목사는 이 빠진 사자와 같이 됩니다. ‘앙앙’ 하기만 했지 물지는 못합니다. ‘앙앙’ 하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속만 상하지 하나도 효력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일 교회에서 목사의 말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 목사가 성경을 아무리 잘 가르쳐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이 실현이 되지 않으면, ‘앙앙’ 울다가 그만 두는 사자와 같은 것입니다. 장로들은 목사가 가르친 대로 행정 해나가고, 집사들도 목사의 가르침대로 재정 관리해야 합니다. 목사가 잘 인도할 때, 목사의 인도가 서 나가도록 잘 받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독재를 하면 되겠습니까? 독재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로 하지 않는 믿음 좋은 사람을 장로로 세워야 합니다. 좋은 장로가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장로가 있으면 독재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장로가 잘 도와주면 목사의 어깨가 가벼워지고 화살에 맞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게 되어 좋습니다. 장로는 믿음이 좋은 사람을 세워야 하는데, 참으로 인본주의를 안 쓰고 신앙적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장로는 세우면 안됩니다. 그리고 제직회도 하나님의 옳은 뜻에 집사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믿음 있는 사람을 세워서 재정처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가 혼자서 돈을 쓰면 안 됩니다. 반드시 회계하는 사람을 세우고 제직회를 구성하고 재정회계장부도 기록해야 있어야 합니다.
결산보고를 일 년에 한 번씩 반드시 공표해야만 재정으로 인한 시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목사가 제 마음대로 하면 교인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제직회가 처리하도록 하되 목사가 정당하게 하도록 인도하면 교인들이 다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내쫓으라’는 것은 요새로 말하면 인본주의의 의견을 내쫓으라는 것이고, 그것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욕심을 내쫓으라는 것이고, 육신의 생각을 내좇고 용납하지 말며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또 교단적으로 말하면, 인본주의 교단과는 결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신학을 주장하는 잘못된 교단하고는 같이 합동해서 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이스마엘은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함께 있을 수 없으니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의 희롱을 통하여 육신에 속한 것을 쫓아 버리게 하시고 약속의 아들을 보호하여 영적 운동이 잘되어 나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5.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서 방황함

아브라함이 내어 쫓을 때에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나가게 했습니다. 하갈이 나가서 갈 곳이 없어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습니다.

본문 15-16절에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물 한 가죽부대 지고 나간 것을 다 먹었습니다. 나긴지 며칠 된 것 같습니다. 물을 다 먹었고 떡도 다 먹었는데, 다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갈이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가서 마주 앉아 아이를 쳐다보면서 방성대곡했습니다. 아이도 울었습니다. 아이는 자기 엄마를 쳐다보면서 울고, 또 하갈은 아이를 쳐다보면서 울었습니다. 하갈은 아이가 굶어 죽는 것도 볼 수 없고,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는 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슬퍼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약속을 주심

본문 17-18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하갈에게 아이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본문 19절에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릴 자에게는 눈을 밝혀서 샘물을 보이게 하셔서 그 샘물을 먹고 살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릴 자의 눈을 밝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갈의 눈을 밝게 해서 샘물을 발견하게 하여 그 아
들에게 마시우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려고 하시면, 눈을 밝게 해서 좋은 것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살 길을 발견하게 만드십니다.
살 길을 보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면 살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못할 자는 눈이 어두워서 살 길을 보지 못합니다. 샘물 곁에서도 샘물을 보지 못하고 목말라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릴만한 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
는 자에게 이렇게 눈을 밝혀서 갈 길과 샘물과 먹을 것과 살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로 인도하셔서 살리십니다.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아내로 삼음

본문 20-21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장성했습니다. 강건해졌습니다.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힘을 세지고 세력이 강하여 졌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애굽 땅 여인을 취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아내는 애굽 여자를 취했습니다. 세상과 짝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므로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세상과 짝했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주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욱 힘이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용기가 있고 건강하고 사냥도 잘하고 더 일이 잘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더 잘 되어 나갑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살려 나가는 데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영적으로 나가는 데에 생명이 있지, 이스마엘처럼 세상과 짝하여 나가는 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교회가 아무리 힘이 세고 숫자가 많고 잘 나가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기업이 없습니다. 거기는 그러다가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 하셨고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라가 아들을 낳았는데, 젖 뗄 때에 큰 잔치를 배설 했습니다. 그런데 여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사라가 낳은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라가 낳은 아들 밖에는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먼저 낳은 아들을 내쫓아야만 됩니다. 안 쫓으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이삭이 이삭의 것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마엘을 내어 쫓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어 쫓고 영적 생명 운동이 자라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