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함
신명기 33:1-29
1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3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한 때에로다 6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7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8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10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11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13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14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그는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18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20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22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23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24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26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 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명기 33:1-29
1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3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한 때에로다 6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7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8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10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11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13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14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그는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18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20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22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23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24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26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 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으로 율법을 주심
불 같은 하나님의 율법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면 멀리까지 그 빛이 비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불 같은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불 같은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뜨겁고 맹렬하여,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서 죄를 회개시켜 살려나가는 일을 하기도 하고, 또 불 같은 심판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율법 혹은 말씀에는 불 같은 하나님의 뜨거운 역사가 있어서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만드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씀대로 하지 아니하면 불 같은 맹렬한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이와 같이 뜨거운 능력 있고, 불 같은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무시하면 마지막에 불 같은 말씀이 나와서 심판하십니다. 무능력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8절에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
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라고 하였는데, 해라는 것은 말씀, 곧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키는데, 진리가 해와 같은 뜨거운 권세가 있어서 사람을 태워 죽인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가도 괜찮지만, 말세가 되면 그 말씀이 불 같이 뜨거워지고 해와 같이 뜨거워서 사람을 심판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언제나 권세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말씀 앞에 벌벌 떨고 그 말씀에 복종해야 됩니다.
항상 겸손히 주의 말씀을 받으라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히 낮아져서 주의 말씀을 받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그러면 성도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
의 손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발 아래에 앉아서 그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기시고 늘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수중에
다 붙드시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오른손에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켜주는 동시에,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즉시로 심판하십니다. 오른손에 새겨놓고 늘 쳐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나중에 심판하려고 가만히 두시지만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오른손에 있기 때문에 즉시 즉시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수중에 있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남보다 먼저 즉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성도는 그 발 아래에 앉아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늘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4-5절에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한 때에로다”라고 하였는데, 여수룬은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야곱, 곧 이스라엘의 총회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또 두령을 세워서 잘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2. 모세가 각 지파에 축복함
르우벤에 대한 축복
본문 6절에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인데, 맏아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겼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그 자손이 하나님께 바로 섰으므로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복 받기를 축복하였습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면, 과거에 실수한 것을 다 용서해 주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고 그 수가 적지 않도록 번성하는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는 과거에 잘못 행한 것을 회개 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서 믿음으로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과 번성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르우벤에 대한 축복
본문 6절에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인데, 맏아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겼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그 자손이 하나님께 바로 섰으므로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복 받기를 축복하였습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면, 과거에 실수한 것을 다 용서해 주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고 그 수가 적지 않도록 번성하는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는 과거에 잘못 행한 것을 회개 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서 믿음으로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과 번성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에 대한 축복
1) 그리스도가 나셔서 원수를 이기실 것임
본문 7절에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는 야곱의 넷째 아들인데, 두 번째로 축복하였습니다. 이렇게 넷째 지파를 두 번째로 나오게 한 이유는 유다 지파에서
장차 그리스도가 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지파가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 대한 축복은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셔서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 지파에서 장차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셔서 원수를 다 멸하고 원수를 소멸해 주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대적과 선한 싸움을 잘 싸울 때,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라고 하였는데, 유다의 음성을 하나님께서 들어달라는 것과 또 그 백성에게로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 10절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야곱이 유다에게 축복한 말씀과 본문에서 모세가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라고 축복한 말씀은 같은 것입니다. 장차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택한 백성들에게 보내어 천국 복음을 전하고 구속을 이루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다 지파에서 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승리해 주신 것을 믿고 원수 마귀를 정복해 주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늘 이기라는 것입니다. 이기면 왕권이 점점 커져서 능력 있는 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늘 이기고 왕권이 커져서 능력 있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 자기 손으로 싸우는 사람을 도우심
또한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자기 손으로 싸우는 사람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대적을 쳐서 이기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손으로 자기를 위해서 싸울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유다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대적을 쳐서 이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손으로 나가서 싸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믿는 사람이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대적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나가서 노력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자기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고, 자기가 전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인도할수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고 대적에게 패하고 맙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우리는 힘써 기도하고 전도하고, 또 자기 손으로 나가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대적과 싸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심하고 달라붙어서 기도하고 이기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만능이시므로 그 만능으로 우리가 이기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또 많은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셔서 택한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고, 또 나가서 마귀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다 이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유다 지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시고 다른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전도해서 인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 자기 손으로 나가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 곧 하나님의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반드시 승리하고 성공하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손으로 나가서 싸우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모든 것을 다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레위에 대한 축복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복
본문 8절에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에 대해서 모세가 많이 축복을 해 주었는데, 자기가 레위지파이기 때문에 이렇게 축복을 해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령 하시는 대로 축복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복
본문 8절에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에 대해서 모세가 많이 축복을 해 주었는데, 자기가 레위지파이기 때문에 이렇게 축복을 해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령 하시는 대로 축복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우림과 둠밈이 언제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물어보았는데, 예를 들어 “전쟁하러 가렵니까, 가지 말렵니까?”하고 물으면 거기에서 소리가 났던 것 같습니다. 소리가 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뜻이고, 소리가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판단했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는 기구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이 레위지파에게서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나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복이 레위 지파에게 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역사가 늘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잘 모르면, 일을 하다가 그만 실패하고 맙니다.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안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또는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안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또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전쟁을 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모를 때에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전쟁이다’, 또 어떤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있고,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는 그만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제사장이 늘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와서,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에 우림과 둠밈으로 가르쳐주면 순종하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 다투심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 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다투었다는 것입니다(출 17:1-7). ‘므리바’는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할 때 반석에서 물이 두 번 나왔는데, 르비딤에서 한 번 물이 나왔고(출 17:1-7), 그 다음에는 가데스에서 한 번 나왔습니다(민20:1-13). 그런데 둘다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하였고, 출애굽기 17장 5-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으로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게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맛사 또는 므리바에서 모세와 다투었고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이렇게 레위 지파인 모세와 아론을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므리바 물가에서 백성이 다툴 때에 모세가 하나님만 믿고 잘 순종을 하는지 시험을 해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험하실 때에는 낙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으나, 모세와 아론은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내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는 복
본문 9절에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언약을 준행하기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녀에게 얽매이지 않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의 말씀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힘 있게 달음박질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다가 부모나 형제나 자녀에게 얽매여서 안 나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낙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말씀만 따라가야 됩니다. 부모, 형제, 자녀를 다 뒤에 놓고 말씀 하나만 따라가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얽매여서 못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의 말씀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힘 있게 달음박질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다가 부모나 형제나 자녀에게 얽매여서 안 나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낙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말씀만 따라가야 됩니다. 부모, 형제, 자녀를 다 뒤에 놓고 말씀 하나만 따라가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얽매여서 못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부모, 자녀, 형제를 다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 큰 은혜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였는데, 다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는 은사, 곧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다 제사장의 위치에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제사장이고 선지자이고 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와 그 말씀만 따라가는 은사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백 배나 많은 것으로 주시고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4) 주의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드리는 복
본문 10절에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분향하고 번제하는 제사 드리는 은사를 레위 지파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큰 은혜입니다. 그리고 제사 드리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칠 때 몇 사람 모아다가 놓고 가르치면 좋겠습니까? 한 사람도 놓고 가르칠 수 있고, 또 두세 사람 놓고 가르칠 수도 있고, 열 사람이나 몇 십 명을 놓고도 가르칠 수 있고, 또 좀 더 많이 놓고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놓고 가르치는 것이 큰 열매가 없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북에서 김의용 목사님이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셨는데, 한 사람 놓고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기차 운전하던 청년이 혼자 김의용 목사님한테 성경 배우러 온 것입니다. 그러면 둥그런 밥상 하나 놓고 하루 종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그 이튿날 또 하고, 한 사람 놓고 아마 한 주간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해운대교회라는 큰 교회에서 시무했고 그 다음에 충무교회로 옮겼습니다. 김의용 목사님이 한 사람을 가르쳤는데, 그 사람이 몇 백 명 가르치고 몇 천 명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큰 것입니다. 또한 김현봉 목사님이 삼각산에서 사경회를 하셨는데, 그 삼각산 집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학인 목사님과 전칠홍 목사님이 서울 지방 교회를 순찰하는데 저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그 때 서른 서너 살 되었을 때였습니다.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이 계신 아현교회에 가보니, 목사님은 없고 누더기만 한 무더기 쌓여있었고 기둥만 열 개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낮에 갔는데 그 기둥에서 한 사람이 누더기를 쓰고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 때 처음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목사님이 어디 가셨는지 물으니 삼각산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삼각산에 뭐 하러 가셨는지 물으니 기도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삼각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데하고는 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갔던 두 목사님이 이 다음에 다시 찾아오자고 했습니다. 그 두 분 목사님들이 저보다 나이가 이십 세 이상 많으신 분들인데, 그분들과 함께 같이 또 가서 김 목사님을 한 번 만났습니다. 조그마한 영감님이 머리를 빡빡 깎고 앉아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아현 교회에서 시무한 지 몇 년 되셨는지 물으니까 그 때 이십 년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우기를 한 교회에서 한 삼 년쯤 있다가 그곳을 떠나야 된다고도 하고, 오래 있어야 된다고 하는 교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 목사님께 “전 삼 년 있다가 떠나야 된다고 배웠는데, 김 목사님은 한 교회에 왜 그렇게 오래 계십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삼 년 가르치고 떠나면 교인들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더니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한 주일 동안 사경회를 해야 다 가르치지, 몇 마디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경회를 해주겠냐고 했더니 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명만 모여도 되냐고 하니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됐다’ 하고는 사경회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 7회 동기 졸업생이 가운데 서울에서 목회하는 목사는 김순진 목사를 비롯해, 신당동에 황기종 목사, 그리고 저까지 세
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경회를 하자고 하니, 누가 가르치냐고 묻기에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모여서 사경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각산 제일기도원에 가서 방을 얻었습니다.
겨울인데 아카시아 나무를 가져다가 방에 불을 때니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찼습니다. 김 목사님하고 우리 셋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배웠는데, 며칠쯤 되어서 김 목사님하고 저하고 싸움이 붙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안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두고 다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만 두기로 하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한 주간을 약속하고 왔는데, 왜 맞짱을 뜨느냐고 하면서 다른 목사님들이 저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사님을 다시 모시고 한 주간을 끝마쳤습니다. 그 바람에 거
기서 신학교 3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해마다 봄에 한번 하고 여름에 한번 해서, 일 년에 두 번씩 사경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하다가 차차 늘어서 오육십 명이 모이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관악산에도 가서 사경회를 했습니다. 점점 많이 모였습
니다. 이렇게 세 사람 가르친 것이 큰 것이었습니다. 교인들 세 사람 모아놓고 사경회를 할 수 있습니까? 김 목사님이 세 사람도 좋다고 하셔서 사경회를 했는데, 그것이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가서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커서 큰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몇 백 명, 몇 천 명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르쳐 보아야 성경이 자기 것이 됩니다. 그래야 많이 깨닫게 되
고 기억도 잘 됩니다. 한 번 가르친 것은 잊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는데 많이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5) 재산이 풍족하고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복
본문 11절에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바벨론 포로 때 잃어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지혜, 그리고 말씀을 따라갈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는 은혜, 그 다음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은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은혜를 받으면, 11절에서 재산을 풍족케 하신다고 하였고, 대적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기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므온 지파에 대한 축복
그 다음에 시므온 지파가 나와야 하는데 순서에서 빠졌습니다. 열두지파가 차례대로 나오다가 시므온 지파가 빠지고, 레위 지파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시므온 지파와 레위 지파는 언제나 함께 취급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창 34:25, 30). 시므온과 레위는 언제나 같이 다녔으
므로 레위 지파에게 한 축복은 시므온 지파에게 대한 축복도 될 수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대한 축복
1) 성전 곁에 있어 안전히 거하는 복
본문 12절에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막내지만 베냐민 지파가 왜 먼저 나왔느냐면, 베냐민 지파에는 예루살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기 때문에, 성전이 있는 지파를 먼저 기록하려고 먼저 나온 것 같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맏아들이니까 먼저 나왔고, 그리스도가 오실 유다 지파가 두 번째로 나왔고, 그 다음 레위 지파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베냐민 지파가 나온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라고하였는데, ‘그 곁에’라는 것은 성전 곁을 의미합니다. 성전이 있는 지파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전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안전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 곁에 있는 사람은 안전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 곁에, 성전 안에 거하여 성전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면, 심령이 안전하고 평강하고 하나님께서 안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성전 곁에 있는 사람을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이 베냐민 지파의 영내인 예루살렘에 있으므로 그곳은 모든 지파의 예배 중심지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있는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의 어깨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성전 생활하는 은혜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성전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지파이고, 성전 곁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전을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깨 사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위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힘써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축복
하나님께서 요셉에 대해서 풍성한 복을 모세를 통하여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1) 자연 만물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복
본문 13절에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라고 하신 것은 하늘의 이슬과 땅 아래 샘과 지하수가 풍부한 곳에서 살게 해달라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비가 잘 오고 지하수가 많은 땅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라고 하였는데, 낮에 태양빛이 잘 쪼이는 복을 주시고 밤에는 달로 인하여 모든 보물이 또 잘 자라는 혜택이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낮이나 밤이나 기후가 좋아서 모든 것이 잘 자라나게 하는 혜택이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늘의 이슬이 풍성히 내리고 비가 잘 오고 땅에 지하수가 많은 것은 큰 복입니다. 사막 지대에는 비가 안 오고 지하수도 없습니다. 또 해가 잘 나는 것도 복입니다. 어떤 지방은 해가 잘 안 나고 늘 흐리고 비가 오는 곳이 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 같은 곳과 미국 시애틀과 같은 곳은 겨울 내내 흐리고 비가 오고 눈이 옵니다. 비가 안 오는 날이 며칠 없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몇 주간씩 흐리기만 하고 해를 못 보는 때도 있다고 합니다. 유럽도 그런 나라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에게는 해를 보는 것이 상당히 귀한 것입니다. 햇빛만 나면 벌거벗고 마당에 나가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해가 나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해가 나면 벌거벗고 나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라고 하였는데, ‘옛 산의 상품물’이라는 것은 목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산에 목재가 옛날부터 가득히 차있는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몇 백 리를 가도록 나무가 가득히 들이 차서 그 나무를 찍어 팔면 몇 십 년 동안 농사 짓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또 “영원한 작은 산의 땅의 보물과”라고 하는 것은 산에 있는 과수원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작은 산에 과수원을 해서 실과나무가 많다는 것입니다. 작은 산에 과수원을 통해 많은 보물을 얻는 축복을 해 준 것 같습니다.
본문 16절 상반절에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하자원을 많이 얻게 해 달라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어떤 나라에는 석유가 많고, 또 가스, 철, 석탄과 같은 지하자원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 같은 곳에 가면 산이 전부 철이라고 합니다. 산을 깎아 오
면 철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또 산이 전부 석탄인 나라도 있습니다. 만주에 있던 어떤 탄광은 그곳의 땅이 전부 석탄이라고 합니다. 구덩이를 파지도 않고 척척 가서 파기만 하면 전부 석탄입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때면 얼마나 잘 타는지 석탄이 마치 장작불이 붙는 것처
럼 붙습니다. 그렇게 석탄이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무연탄 같은 것은 거기에다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거저 성냥을 갖다 대면 소나무 광솔과 같은 종류인데 불이 얼른 일어나면서 조금만 때도 상당히 덥습니다. 그렇게 좋은 자원을 많이 얻게 해 달라는기도입
니다. 산에 가서 퍽퍽 퍼오면 됩니다. 구덩이를 파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령한 축복도 있습니다. 이렇게 신령한 생수의 은혜, 또 하늘에서 내리는 풍성한 은혜를 받는 일,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나는 일, 또 모든
큰 산, 작은 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 또 땅에 감추어 있는 보배를 찾아서 가지는 축복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본문 16절 하반절에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라고 하였는데,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환난 가운데에서 돌보아주신 하나님이
십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요셉의 족속을 특별히 환난 가운데서 건져서 구원해주시고 넘치는 복을 주시기를 구한 축복의 기도입니다.
2) 장자의 명분과 위엄의 축복
본문 17절에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라는 것은 권능이 있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왔다고 했는데,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도 있고 위엄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왔다는 것은 역대상 5장 1-2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
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라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르우벤이 한 번 실수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책에 기록되어 대대손손 영원히 그 실수한 것이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실수한 것이 이렇게 큰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르우벤이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 뻔 했습니까? 실수 안 했더라면 장자의 명분이 그냥 있었을 것이고 위엄이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수했기 때문에 역대기에 그것을 기록하고 몇 천 년이 내려가도록 그것을 후손이 읽게 되고,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명분만 돌아간 것이 아니고 장자에게는 위엄이 그만치 있는데, 첫 송아지 같이 큰 능력과 위엄이 있는 지파가 될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라고 하였는데, 뿔은 권세를 가리키므로 들소의 뿔과 같은 강한 권세가 있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이 작은 아들이지만 에
브라임을 앞세웠습니다. 므낫세는 맏아들인데 맏아들보다 작은 아들이 더 나아졌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도 크고 그만한 일을 감당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아지게 했다고 해서 교만하고 그것을 자기의 소욕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에브라임을 만만으로 해 놓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만큼 에브라임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쓰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크게 만들어 주신 사람은 책임이 크고 사명이 큽니다.
요셉 지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슬, 또 땅에서 올라오는 샘, 결실케 하는 태양과 자라게 하는 달의 혜택이 있게 해 달라는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태양의 복이라는 것은 태양빛이 잘 나서 열매가 잘 익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잘 오고 비도 잘 오고, 또 지하수가 풍성하고 햇빛도 잘 나고 밤에는 춥지 않고 열매가 잘 맺혀지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요셉 지파는 하늘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하늘의 이슬과 비, 땅 속에 지하수, 하늘의 햇빛, 달빛, 지하자원, 큰 산의 나무, 작은 산의 과수원, 또 지하 자원, 이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셉 지파는 하늘에 이슬과 비가 잘 오게 만들어 주고 땅에 지하수가 풍성하고 태양이 잘 쬐어서 열매가 잘 맺히고 달의 혜택으로 춥지 않고 곡식이 잘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이라고 하였는데, 옛날부터 있던 산의 좋은 재목들과 작은 산에 심은 과수나무가 열매를 맺혀 모든 것이 풍성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지하자원인 땅 속에 모든 보화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 지파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 수송아지와 같이 위엄이 있고 들소의 뿔과 같은 세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열방을 정복하여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
1) 나가고 거하며 열국 백성에게 복음을 전할 축복
본문 18절에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을 같이 축복했습니다. 이 둘은 다 레아의 아들로서 가나안 땅의 기업을 받을 때도 서로 이웃하여 받았습니다. 어머니도 한 어머니, 기업도 이웃하여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라고 하였는데, 나가서 상업을 하여 번성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라고 한 것은 농업을 할 것을 가리킵니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장막에서 있을 사람은 장막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다릅니다. 마리아는 성격이 온순하고 얌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당차게 생겼을 것 같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나가서 일해야 하고, 마리아처럼 집에서 일할 사람은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나가서 할 사람은 나가서 하고, 본 교회에서 할 사람은 본 교회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활동적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될 사람은 활동적으로 나가서 도와야 되고, 집에 앉아서 도울 사람은 집에 앉아서 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활동적인 사람은 나가서 일하고, 또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할 사람은 고요하게 앉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을 전도하는 사람이 있고, 또 네 집 근처에 다니면서 전도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집 근처 다니면서 전도할 사람은 장막에 거하는 사람이고, 멀리 가서 나가서 전도할 사람은 나갈 사람입니다. 사명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허영심으로 안 나갈 사람
이 나가겠다고 하면 안 되고, 집에 있을 사람이 나가겠다고 해도 안 됩니다. 또 나가야 하는 사람이 게을러서 집에 있어도 안 됩니다.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집에 있을 사람은 집에 있어야 되고, 나가야 할 사람은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벌써 척 보면 이 사람이 나가야 할 사람인지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은 집에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에 있어야 되고, 내보내야 할 자는 나가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실 때에 그렇게 다 따로 내셨습니다. 집오리와 야생오리가 다르고, 돼지도 집돼지와 멧돼지가 다릅니다. 벌써 다릅니다. 집돼지하고 멧돼지하고 둘 다 같은 돼지인데, 집돼지는 산에 가면 얼마 못 살고 죽습니다. 또 멧돼지는 가만히 가둬놓으면 안타까워합니다. 멧돼지는 내보내야 합니다. 멧돼지 보았습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보통 돼지는 입이 좀 짧은데, 멧돼지는 입이 가늘면서 깁니다. 그래서 보면 압니다. 그와 같이 나가야 할 사람을 보면 알고, 또 집에 있어야 할 사람도 보면 압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둘 다 필요합니다. 다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누가 집을 보고, 다 집에 앉아 있으면 누가 왔다 갔다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 필요해서 내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내신 대로 써야 됩니다. 괜히 허영심을 가지고 집돼지가 멧돼지 노릇 하겠다고 산에 갔다가는 죽습니다. 집돼지가 산에 가면 며칠 못 갑니다. 다른 동물들이 잡아먹습니다. 자기 먹을 것도 못 먹습니다. 집돼지는 주인이 줘야 먹을 수 있게 되어있고, 주둥이가 짧습니다. 나가야 할 자는 나가고 집에 있어야 할 자는 집에 있어야 합니다. 활동적으로 할 사람은 활동적으로 하고 사무 볼 사람은 사무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나가서 열국 백성을 불러 모아서 의로운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한다는 것으로 전도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열국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해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여 의로운 제사를 드리게 하는 복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다음에는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창세기 49장 13절에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다의 풍부한 것’은 해변에 거하며 어업과 무역으로 번성하게 될 것
을 가리킵니다. ‘모래에 감추인 보배’라는 것은 모래의 사금과 여러 가지 광물을 가리키고 그런 것을 많이 거두어 풍족하게 되기를 축복해 준 기도입니다.
스불론에 대하여는 나가는 은혜, 잇사갈은 장막에 거하는 은혜가 있는데, 나가는 자와 장막에 있는 자가 합해서 전도해서 열국 백성을 불러 모아 하나님께 의로운 제사를 드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바다의 풍성함과 모래에 감추인 보화가 풍성하기를 축복해 준 것
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이 세상에서도 보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는 자는 많은 보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영적 보화, 신령한 보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가고 장막에 거하고 또 모아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게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은 보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갓에 대한 축복
1) 광대하여 원수를 정복하는 축복
본문 20절에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갓을 광대케 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대케 해주셔야 광대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대케 해주시지 않으면 광대해 질 수 없습니다. 자기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또 하나님께서 광대케 해주실 때에 광대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암사자 같이 엎드렸다는 것은 강한 힘을 가졌다는 것으로 강한 세력을 가지고 원수의 팔과 정수리를 찢게 된 것입니다. 가만히 엎드렸다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원수를 정복하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 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라는 것은 갓 지
파가 요단 강 동쪽에 기업을 먼저 택한 것을 가리킵니다.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법 세운 자의 분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이라고 봐야겠습니다.
2) 전쟁에 앞장 서 나가는 약속을 지켜 복을 받음
또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하였는데, 갓 지파가 앞장 서 가나안 전쟁에 나가서 정복해 나갈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자기 가족은 요단 강 동쪽에 두고 앞서 가서 가나안 전쟁에 가서 싸우겠다고 약속을 한 것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가나안 땅보다 먼저 받았지만, 먼저 받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전쟁에 앞장 서서 요단 강을 건너가서 그 약속을 다 지킴으로 인하여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기업을 받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기업을 받은 지파는 앞장 서 나가서 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앞장 서서 잘싸워야 먼저 받은 기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업을 가지고 그냥 좋다 하고 앉아있으면 안 됩니다. 기업을 받은 다음에는 남보다 앞장 서 나가면서 하나님의 일에 힘을 쓰고 바칠 것은 바치고 싸울 것은 싸우고 노력할 것은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먼저 받은 것이 유지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풍성히 하나님께서
해 주신 그것을 가지고 자기 혼자서 잘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언제나 앞장 서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먼저 받은 축복을 내내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갓 지파는 광대케 되는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암사자와 같이 엎드렸다가 원수를 물어 찢는다고 하였는데, 갓 지파는 광대한 곳에서 암사자와 같이 가만히 엎드렸다가 원수를 물어 찢는 것입니다. 그런 강한 지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을 먼저 받은 지파로 하나님 앞에서 앞장 서서 나가서 책임을 다해서 가나안 전쟁을 하겠다는 그 약속을 그대로 실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장구히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단에 대한 축복
본문 22절에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단 지파에게 축복한 것인데, 창세기 49장 17-18에서는 야곱이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
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바산’은 동북쪽 지방에 있는 고원지대로 수풀이 우거져 있고 험악한 산으로 사나운 사자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단은 거기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라고 하였습니다. 사자와 같이 용맹하고 사나운 성격을 가지고 나와서 모든 것을 다 정복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후에단 지파에서 삼손이 나왔는데, 삼손이 사자와 같이 강해서 블레셋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이렇게 뱀과 독사와 같은 성격이 있는 지파라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그것이 도리어 선용되어서 사자와 같이 강하게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독사와 같은 성격이 있는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그 성격을 믿음에 써서 믿음에 바로 서면 그것이 도리어 믿음이 선용되어서 강한 사자와 같이 믿는 일을 더 용맹하게 잘 해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집도 믿는 일과 진리를 파수하는데 쓰면, 진리를 굳건히 파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에 이용해서 모든 것이 선용되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납달리에 대한 축복
본문 23절에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납달리는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다고 하였는데, 창세기 49장 21절에는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나오는 소리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영적인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신령한 소리, 영적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영적으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그 자리에 있는 납달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또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라고 하였는데, 서방은 성경 각주에 바다편이라고 하였습니다. 남방은 갈릴리 바다와 그 남쪽을 가리킵니다. 납달리 지파는 요단강 부근의 땅을 얻었는데, 요단강 맨 북쪽 갈릴리 바다 서북쪽에 가버나움이 있습니다. 그 서북쪽
의 땅을 얻었습니다. 남쪽에는 갈릴리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방을 얻을지로다’라는 것은 갈릴리 바다에서 풍성한 것을 얻을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 서북편에 있는 가버나움은 후에 예수님께서 이사 가신 곳입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그 다음에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모신 곳은 은혜가 풍성하고 복이 가득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은혜가 항상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가버나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가 족하고 하나님의 주신 복이 언제나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아셀에 대한 축복
본문 24-25절에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9장 20절에는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
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름진 곡식이 아셀에게서 나게 해서 기름진 식물로 왕에게 먼저 공궤를 하는 지파가 된다는 것입니다. 왕을 잘 섬기는 지파가 될 것을 가리킵니다.
1)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복
먼저는 다자한 복을 받았는데, 다자(多子)하다는 것은 아들이 많다는 것, 즉 많이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라고 하였는데, 자손이 많이 번성하고, 그 다음에는 형제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사회는 여러 사람과 같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과 사귀고 같이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회는 두 사람 이상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단지 길거리에 두 사람이 오고 가기만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닙니다.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사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서로 다 관련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가정에도 다 관련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관련이 있기에 가정도 한 사회인 것입니다. 교회도 한 사회입니다. 교회도 다 모여서 한 형제가 되고 교역자가 인도하고 성도들이 인도를 받는 사회인 것입니다. 이세상도 국가를 이루고 국가를 받들고 국가의 지시를 받고 세금을 내야 하는 관리가 있는 사회입니다. 이웃 사람과 사는 것도 다 사회입니다. 이웃과 서로 친하게 살고 서로 사귀며 사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살면서 다른 사람과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도록 하는 것이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지파가 아셀 지파인데, 이런 지파가 복 있는 지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을 좋게 해주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형제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고, 도와주고,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
이 좋습니다. 다른 형제에게 손해 주지 않으며 폐를 끼치지 않고 섭섭히 행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유익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접 받을 때에 정 나쁘지 않으면 먹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난 커피를 잘 안 먹는데, 어디 가면 자꾸 커피를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잔 먹어줍니다. 조금만 가져오라고 해서 조금 먹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가니까 또 커피를 먹으라는 겁니다. 안 먹을까 했지만, 그러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다른 차는 없고 커피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져오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대접하는 사람이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먹어 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안 먹어야 되겠는데, 안 먹으면 섭섭할 것 같습니다. 또 먹어주면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을 좋게 해 주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접받을 때 정 나쁜 것은 안 먹어야 하겠지만,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셀 지파가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은 어디서나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생활을 늘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에게 손해 주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나면 섭섭하고 또 마음이 상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집은 사돈끼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자꾸 합니다. 사돈의 마음을 상할 것 같으면 그 말을 안해야 되겠는데, 그냥 속에 있는 대로 다 해치우는 겁니다. 그것은 매너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안해야 합니다. 아무리 말할 것이 있어도 서로 마음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아셀 지파는 다른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 하지 않는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섭섭한 것이 있으면 다 풀고 다른 사람을 좋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있으
면 좋은 것이 돌아옵니다. 처음에 섭섭한 것을 참고 잘 해주면 조금 후에 좋은 것이 돌아옵니다.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속에 있는 섭섭한 것을 다 털어놓고 매일 불평하면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집에서 밥을 질게 해주면 질게 해서 소화가 잘
되겠다고 하며 먹고, 또 되게 해주면 고소하고 맛있다고 하며 먹었다고 합니다. 밥이 좀 되서 안 되었으면 밥을 며느리가 했든 부인이 했든지 하여튼 고소해서 맛있다고 그래야 합니다. 질어졌으면 진 것은 소화가 잘 되니까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 좋게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되게 했다고 큰소리치고, 또 질게 했다고 매일큰소리치면, 무엇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손님으로 갔을 때, 작은 이불을 주면 발을 구부리고 자면 되고, 얇은 것을 주면 위에다가 의복을 하나 벗어서 올려놓고 자면 됩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부리고 기도하다 자면 이불 반개로도 됩니다. 이불 큰 것이 필요 없습니다. 긴 이불 주는 곳에 가면 다리 좀 피고 잡니다. 사경회를 다니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곳에 가면 봄철에 큰 이불을 줘서 땀이 뻘뻘 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그런 곳에 가서 봄철 이불 가져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하면 이불 한 귀퉁이로 배만 덮고 발은 내놓고 자는 겁니다. 하여튼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을 좋게 해주고, 자기는 좀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또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복이 늘 넘치게 되는 축복
그 다음에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셀 지파의 발이 기름에 잠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머리에서 발까지 내려가 복된 가운데 걸어가고 복된 가운데 살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된 가운데로 걸어가고, 복된 가운데서 또 다리를 옮겨놓고, 복된 자리에서 사는 생활이 기름에 잠기는 것입니다. 축복이 머리에서부터 발에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다가 기름을 부었는데, 그것이 발에까지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발에 잠겼다는 것은 바로 축복이 발에까지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발걸음 가는 데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아셀 지파에게 이러한 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견고하게 해주시고 평생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축복
본문 25절에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견고해서 원수가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집을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철과 놋이 되게 만들어서 원수가 침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평생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셔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지 않고, 그 능력으로 모든 원수를 물리치고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늘 같이 하니까, 어떠한 원수가와도 그 능력으로 물리칠 수가 있고, 무슨 일을 당해도 그 능력으로 감당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전(全)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
하나님과 같은 신이 없음
본문 26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에게 한 모세의 최후의 말입니다. “여수룬이여”라고 하였는데, 여수룬은 ‘옳은 자’ 혹은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으
로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수룬이여’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여’,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이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믿는 사람이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수룬이여’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신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여러 민족에게 신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신이 다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같은신은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소나 곰과 같은 동물에게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이 단군이라고 하는데 곰이 낳았다고 하고, 신라를 세운 박씨의 조상인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자기 조상들이 이렇게 곰 또는 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허튼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지, 왜 알에서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고, 부, 양 삼신이 땅 구멍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곳이 삼성혈인데, 거기에서 요즘도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땅 구멍에서 나온 것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땅을 만드신 하나님이 크시지, 땅 구멍에서 나온 것이 큽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태양을 신이라고 하여 섬깁니다. 태양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태양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 외에도 또 무슨 신이다 하면서 세상에는 신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 지어낸 것이고 또 마귀인 것입니다. 참된 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잡신을 섬기고 단군을 섬겼습니다. 여러 신을 많이 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 집어치우고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참 신이시기 때문에 그 전에 섬기던 신은 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신은 다 마귀이고 사람이 지어낸 것이지 참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권적으로 지배하시고 주장하시며,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하늘나라로 데려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같은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기 위해서 하늘에서부터 갑자기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위엄과 능력으로 갑자기나타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소가 되셔서 보호하시고 대적을 쫓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본문 27절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소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우리의 안식처이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또 사자와 표범과 악한 짐승들이 따라와도,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 곧 피난처 안에 있는 사람은 손도 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피난처와 성소가 되어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안식처가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안식을 누리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안식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행복한 자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입니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팔로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팔로 우리를 붙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가시면서 우리의 대적을 다 물리쳐 주시고 멸망시켜 주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 샘과 이슬을 주심
본문 28절에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처소가 되시기 때문에 안전히 거하고, 또 능력의 팔로 우리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히 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안전히 거한다는 것입니다. 왜 안전히 거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시고, 늘 능력의 팔로 원수를 다 물리쳐 주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안전히 거하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안전히 거할 뿐 아니라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하였는데, 홀로 있다는 것입니다. 홀로 있고 누구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방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홀로 나가는 야곱과 이스라엘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이 세상 나라를 의지하면 안 됩니다. 또 세상나라를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독립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샘이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늘의 이슬이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샘이 흘러서 곡식과 새 포도주에 샘물이 공급되니까 곡식이 잘 되고 포도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이슬이 잘 내려서 이슬이 풍성하기 때문에 곡식과 포도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샘과 이슬을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준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오늘날 믿는 사람에게도 샘을 주시고 또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곡식이 잘되고, 포도가 잘되고 포도주가 잘되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라는 것은 생수가 강같이 흘러내려가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생수가 강같이 흘러 내려가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
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곧 생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셔서 언제든지 생명의 강이 속에서 흘러내리게 하고, 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수를 늘 마시고 자기 속에서 생수가 흘러나오고 생수가 넘쳐서 이 모든 믿는 일이 잘 되나가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잘 되고 곡식이 잘 익고 포도가 잘 익는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역사로 인해서 곡식이 잘 자라나고 잘 익습니다. 또 하늘의 이슬이 내려온다는 것은 신령한 은혜가 밤마다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가 하늘에서 밤마다 그리고 날마다 내려오고, 속에서 생수는 강같이 솟아 나와서 언제나 고갈함이 없게 계속 흘러나오도록 하신 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이런 것을 주었습니다. 생수를 주시고 늘 이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외에 이 세상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은 행복자로다
본문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는 사람이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이스라엘 백성되는 믿는 사람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행복자라는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자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왜 행복자입니까?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자가 아닙니까?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나는 행복자로다”라고 해야 합니다. 다 같이 합시다. “나는 행복자로다. 나는 행복자로다.” 우리는 행복자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왜 행복자입니까? 첫째는 ‘너 같이 구원 받은 백성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너 같이 구원해준 백성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 망하게 된 것을 건져 주셨습니다.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안 건져 주셨으면 벌써 다 망했습니다. 6.25 사변 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몇 백 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 ‘너도 같이 죽을 것인데, 너를 건져 주었으니,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또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마귀를 섬기다가 전부 마귀에게 종 되어서 망할 것인데,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고 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종, 죄의 종으로 죄의 종살이를 하다가 다 멸망 받을
자인데, 하나님께서 건져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렇게 구원해 주었으니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봐도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없고, 또 국가적으로 봐도 일본시대 때 다 망했던 자이고, 6.25 사변 때 다 망했던 자인데 하나님이 능력으로 건져주지 않았습니까?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 이런 큰 구원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영적으로 봐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이 도리를 가르쳐 주시고 생명길을 걷게 해 주셨으니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자라는 말입니다. 거지요 고아였던 자를 데려다 왕의 아들로 삼아놨다고 하면 행복자가 아닙니까? 고아이고 거지고 다 죽을 구렁텅이에 빠지고 각종 병이 들어서 살 가망이 없고 때가 덕지덕지하고 머리도 못 감아서 독수리 털 같이 되었고 의복도 남루하고형편없는 자를 데려다가 왕의 아들로 삼아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우리는 왕의 아들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에 데려다 앉혀 놓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이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자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왜 행복자입니까? 하나님은 ‘너를 돕는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도와서 원수를 막아주시는 방패, 또 너의 영광의 칼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는데,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의 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원수가 오는 것을 막아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는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으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겨나가고 정복하고 모든 마귀의 세력을 말씀으로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마귀시험을 말씀으로 이겨 나갑니다. 마귀의 종들을 말씀으로 이겨 나갑니다. 그래서 점점 우리로 하여금 말씀으로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게 만들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나가는 말씀의 칼을 주어서 그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만들고 말씀대로 무장하고 말씀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서 점점 영광스럽게 해 나가도록 하십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께서 원수가 오는 것을 막아주시고 그 다음에는 영광의 칼을 주어서 그 말씀의 칼로 마귀를 다 이기고 마귀의 땅을 정복하고 또 그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서 점점 영광스럽게 만들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습니까? 영광스럽게 해주시니까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의 검을 써야 됩니다. 쓰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용천검이라도 그것을 쓰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녹이 슬어서 그 다음에는 못 쓰게 됩니다. 써야 됩니다. 기계도 늘 써야 됩니다. 기계도 가만히 놔두면 녹이 슬어서 못 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나갔다 오느라고 자동차를 1년 내내 세워 두었는데, 그 자동차가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끔씩 사용 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시동을 켜서 사용을 해야 그 자동차가 새 자동차로 있지, 가만히 놔두면 버리게 됩니다. 써야 합니다. 세
탁기도 써야 됩니다. 기도원에 세탁기 헌 것을 몇 개 가져다 놨는데, 작년에 안 쓰고 1년간 놔두었더니 녹이 다 슬어서 금년에 쓰려고 하니까 여러 개 중에 한 두 개 정도만 돌아가고 다 못 쓰게 되었습니다. 사용 안하고 안 쓰면 나중에 못 쓰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의 칼이 되고 그 칼을 주었습니다. 칼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써야 합니다. 말씀으로 행하고 말씀대로 가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말씀만 있으면 삽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점점 자신을 만들어 나가면 영광스럽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정복하게 만들고 땅을 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정복하니까 넓어지는 것 아닙니까? 기업을 크게 만들고 또 자기를 말씀대로 자라나게 만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그 다음에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라고 하였는데, 대적이 마지막에는 복종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자가 아닙니까? 아무리 대적이 많고 또 강하지만 그 대적이 완전히 복종하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대적이 강합니다. 아낙사람 등 아주 강한 대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키가 크고 장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앞에 갖다 대면 메뚜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대적을 다 정복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어떻게 나가면 정복이 되겠습니까? 말씀대로만 나가면 정복이 됩니다. 말씀대로만 나가면 되고, 말씀 양보하면 안 됩니다. 말씀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만 나가면 반드시 대적을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복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복종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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