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신명기 31:14-29 모세의 교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의 교훈
신명기 31:14-29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렀더라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18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22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23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24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26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8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 29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1. 하나님께서 종을 세우심

본문 14-1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렀더라”고 하였습니다. 

후계자를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데리고 회막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구름기둥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후계자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종을 세우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계자 세우는 일을 힘을 썼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몇 가지를 알아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종을 세우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들어서 120세 되도
록 40년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역을 40년간 시킨 것입니다.

모세는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잘 지킨 채 하나님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할 일을 다 끝마치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각자가 다 자기의 할 일이 있습니다. 달려갈 길, 사명이 있다
는 것입니다.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것은 자기 사명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한 사명,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한 자기 사명을 다 하고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못 다 하고 가면 안 됩니다. 어제 창광교회 김극호 장로님이 연보를 가지고 왔는데 죽기 전에 기도원을 하나 잘 짓고 죽어야 되겠다고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 같습니다. 죽기 전에 기도원을 하나 잘 짓고 죽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자기의 사명이 다 있는데 그 사명을 다 마치고 가야 됩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이길 것을 다 이기고 가야 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안 주십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 아무리 여러가지 시험이 오고 핍박과 멸시와 발로 밟는 것과 죽이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대적이 아무리 강하고 사자와 같은 대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도 감당할 수 있는 능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믿음 잘 지키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다 이겨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 할 일을 다 끝마치고 가는 사람, 자기 사명을 다 하고 가는 사람, 믿음을 잘 지켜가지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과 사무엘과 같은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세운 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고 과거에 모세를 세우신 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종을 귀히 여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어제 어떤 목사 부인이 와서 나한테 얘기하기를, 자기 동생이 교역자 부인인데 동생에게 남편을 남편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인 줄로 알고 잘 받들라고 하였답니다. 그것 참 잘 말해준 것 같습니다. 교역자 부인이 남편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의 쓰시는 종인 줄로 알고 언제나 받드는 위치에 서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교역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인 줄로 알고 잘 받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그 교역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교역자 양성, 신학교를 세우고 신학교에서 참된 교역자를 길러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 즉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여 재앙 받을 것을 알게 함

본문 16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타락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이 되어서 우상을 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장차 이 백성이 타락될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될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본문 27절에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패역하고 목이 곧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살았어도 백성들이 이렇게 모세를 거역했는데 모세가 죽은 다음에는 얼마나 거역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본문 21절에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생각하는 바를 모세가 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바가 타락이니 꼭 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바로 믿으려고 하지 않고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이 좋은 제도를 좋게 여기지 않고 조상들의 좋은 전통을 살려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나는 나중에 그렇게 않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대 사람도 또, ‘나는 그대로 하지 않겠다.’라며 고쳐 놓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 세대 사람들도 ‘그대로 하지 않겠다.’라며 차차차차 고친다는 것입니다. 고치는데 괜찮게 고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세속화시키는 일, 인본주의로 하는 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로 점점 고쳐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교회는 타락되어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에 반드시 앞으로 타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초대 교회의 신앙에 비하면, 또 이전 세대보다는 많이 타락되었다고 보아야 됩니다. 또 다음 세대는
더 타락이 될 것입니다. 이 다음 세대가 또 문제입니다. 요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커서 장년이 된 다음 세대가 문제입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믿음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이 많고 성도의 가정에서도 교회에 안 나오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또 나와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부모가 나오니까 나오는 것이고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물론 있
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현대주의, 현실주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성경대로만 하면 케케묵고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다른 것을 거기다가 섞으라고 하고 성경대로만 하는 목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교할 때에 철학을 섞어야 되고 정치학을 섞어야 되고 정부를 공격해야 인기가 올라가고 해방신학을 해야 되고 이런 것을 해야 인기가 올라갑니다. 그것을 또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앞으로 너희가 분명히 타락해서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길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다는 것입니다. 이방신을 따라가는 것은 오늘날에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는 나오나 세상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많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많이 따라가고 세상 우상, 돈 우상, 자기 우상을 많이 따라가고 하나님을 점점 떠나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마음으로 또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이사야 29장 13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어기고 예수를 믿습니다. 4계명을 헌신짝과 같이 내버리고 돌아가고 부모 공경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양심을 쓰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만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시대가 된 증거인 것입니다. 자신을 다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지켰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가까이 하고 나가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진노하심

얼굴을 숨기심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첫째는 진노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17절에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셔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이사야 59장 1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이키고 얼굴을 숨기셨기 때문에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이 멀어졌습니다. 

마귀에게 삼킴을 당함

그 결과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삼킴을 당하는 것입니다.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라고 하였는데 마음을 마귀가 빼앗아 가고 마음이 마귀에게 삼켜진바 되어 자기의 마음대로 못 합니다. 매사를 비뚤게 생각하고 바로 하지 못합
니다. 그래서 정당하게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쓴 것을 달다, 단 것을 쓰다 하여 매사를 비뚜로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20절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
고 하였는데 그것이 비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 29장 9-10절에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고 하신바와 같게 된 것입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매사를 잘 생각하지 못하고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고 또 죽을 길을 산다고 하고 살 길을 죽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광명은 흑암으로 알고 흑암은 광명으로 안다고 하였는데 전부 거꾸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상을 다 잠들게 하셨고 마귀에게 삼켜지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마귀에게 삼켜서 바로 생각을 못합니다. 의식화된 학생들이 바르게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은 독재이고 이북의 김일성은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40년 독재를 했어도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고 대한민국은 무엇도 잘못하고 무엇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북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느냐고 그 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학생이 한참 있다가 잘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대한민국은 전부 다 잘못 되었는데 이북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흰 것을 붉다, 붉은 것을 희다, 흑암을 광명이다, 광명을 흑암이다, 하도록 사상을 하나님께서 비뚜로 되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죽을 것을 산다, 죽는 행동을 하면서도 대한민국이 그렇게 해야 산다고 합니다. 또 사는 길로 가는 사람을 죽는 길로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망하게 생긴 것입니다. 

망할 운동만 하면서도 그것이 사는 길이라고 하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이제 다 망하는 것입니다. 점점 그런 사람이 많아집니다.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래도 많지만 이제 얼마 안 가면 비뚜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입니다. 또 우리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이 떨어지면 생각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원리원칙대로 판단을 해야 되겠는데 진리대로 하지 않고 자기중심, 욕심 중심, 이기주의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판단을 못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를 삐뚜로 생각해서, 매사 잘 못 나가 마귀에게 삼켜지게 되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벌입니다.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라고 하였는데 허다한 환난과 재앙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점점 하나님을 떠나 믿음이 타락된 백성들을 환난과 재앙으로 그들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환난이 임하는 것을 자기 죄 때문인 줄은 모르고 하나님이 자기 가운데 안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 원망하는데 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정치가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환난이 임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를 못 합니다. 벌써 마귀에게 얽혀 들었기 때문에 점점 더 악화되어 나가고 점점 더 하나님을 떠나고 점점 더 비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심

본문 18절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노래로 써서 가르치라 함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타락된 다음에라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써서 노래로 그 자손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옛날에 배운 노래가 생각이 날 것이니 그 노래가 귀에 쟁쟁하게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노래를 가르쳐서 귀에 아예 못이 박히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고 또 하고 자꾸 가르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놓으면 나중에 타락된 다음에 옛날에 부르던 노래가 생각이 날 거고, 옛날에 이런 노래를 불렀는데 참으로 그 노래가 옳다, 그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회개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만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가르침 세 가지
김현봉 목사님이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놓은 것이 있는데 
첫째 “양심을 똑바로 써라”, 
둘째 “삼가 조심하라”, 
셋째 “일심정력하라”입니다.
양심 똑바로 쓰고 매사에 삼가고 조심하고 일심정력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라는 아주 좋은 가르침입니다. 조심하지 않을 때에 마귀가 들어옵니다. 우리도 많이 배웠는데 이제 후대에게 양심 쓰는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노래가 되도록 가르쳐주어 나중에 재앙과 환난 받을 때 양심 쓰지 않아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날 것입니다. 마귀에게 걸려들어서 넘어간 다음에도 생각이 날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벌을 받았을까 삼가 조심하지 않다가 마귀에게 걸려들었구나, 내가 참 잘못했구나.’ 그리하여, 일심정력을 기울이려고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노래로 써서 가르쳐주어 내가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나게끔 하라는 것입니다. 사치하지 말고, 순종하길 못이 박히도록 배웠는데 말 안 듣고 방탕하다가 환난과 재앙을 만나면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에서 떠날 때 옛날 들은 것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고 사치하고 나가다가 내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에 못이 박힐 만큼 가르치고 노래가 되게끔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년부 아이들도 성경만 가르쳐야 됩니다. 동화하지 말고 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릴 때 배운 것은 속에 들어가 있어 커서도 생각이 남

성경만 배운 어떤 아이가 집에 갔는데 안 믿는 아버지가 주일날 뭘 사왔더랍니다. 그래서 아이가 안 먹는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왜 안 먹느냐고 하니까 성경에 주일날 뭘 사먹으면 죄라고 했기 때문에 주일날 사와서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므로 그것을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자고 하더랍니다. 또 자기 외갓집에 데리고 갔는데 추도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 제물을 먹으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안 먹는다고 했답니다. 왜 안 먹느냐고 했더니 성경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는다고 하더랍니다. 그 아이들이 특별히 가르쳐 준 것은 아닌데 자꾸 가르쳐주니까 배운 것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속에 있는 것이 쑥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에 있는 것이 나오게 자꾸 가르쳐주어야 그 아이들이 커서 타락이 되도 이전에 배운 것이 생각이 납니다. 주일날 뭘 사면 안 된다고 하지 않
았는가 하고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안 나오면서도 주일날 뭘 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한 번 하나님의 매를 맞고 “아이쿠 그 때 내가 뭘 배운 것이 있지 않느냐”하고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배부르고 살찌면 타락함

여기 어떻게 하면 타락이 된다고 했습니까? 본문 20절에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땅으로 인
도해서 좋은 환경을 주고 먹어서 배부르게 되면 백성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주시고 먹어서 배부르게 해 주시면 감사해서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될 것이 아닙니까? 이전에는 먹을 것도 없고 생활이 곤란하고 집도 한 간 없이 박토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환경을 주시고 좋은 집도 주시고 먹어서 배부르게 해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불만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이 땅보다 더 두텁다고 합니다. 땅보다 두텁기 때문에 무엇을 주면 점점 욕심이 더 커집니다. 또 좀 더 주면 욕심이 더 커져가지고 점점 더 모자라고 만족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는 평안이 없고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배가 불러서 그렇습니다. 배가 불러서 살이 찌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납니다. 세상으로 나가 다른 신, 세상의 신을 섬깁니다. 옛날에는 친구가 없었는데 배가 부르고 살이 찌면 오라는 사람
도 많고 갈 데도 많고 친구도 많아집니다. “주식형제는 천개유로되, 급난지붕은 일개무니라”(酒食 兄弟 千個有 急難之朋 一個無 ; 술마시고 밥 먹을때의 형제는 천사람이나 있더니만 위급할때는 벗이 하나도 없구나.)하고 어려울 때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어갈 때는 친구가 슬슬 다 달아납니다. 그러나 술을 먹고 다닐 때에는 친구가 천 사람이나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다 옵니다. 옛날에 한번 만났던 사람,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 고향 사람, 같은 성씨, 별의별 사람이 다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 오라고 해서 한번 가면 아주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점점 많아지고 청첩장이 점점 많아지고 갈 데가 점점 많아져서 매일 가도 모자라게 됩니다. 그 바람에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깁니다. 또 하나님을 점점 떠납니다. 그것이 참 문제입니다. 

요새도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6.25 사변 때에 큰 환난 가운데서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하면서 피난 다닐 때는 있을 곳도 없고 집도 없고 의복도 없고 그저 가다가 아무 데나 누워 자고 아무것이나 하나 생기면 먹었습니다. 그 때 뭐 모자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불만이
있었습니까? 불만 없습니다. 그저 하루 살면 하루 감사했습니다. 또 아무 것이나 나가서 먹을 것을 벌어왔으면 감사했습니다. 피난민들이 부산에 많이 내려갔는데 피난민들을 부산 성경 학교 기숙사에 갖다 빽빽이 몰아넣었습니다. 그 때 내가 가보니까 가정 식구대로 몰아넣었는데 식구가 많아도 한 가정에 베니어 판 한 장이나 두어 장 크기만큼 조그마하게 내주었는데 막을 것이 없어 보따리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만치는 우리 집이다. 또 요만치는 너희 집이다.’ 하고 그 식구들이 빽빽하게 살을 대고 누우리만치 가득하게 해놓았습니다. 그렇게 기숙사에 많은 피난민들 여러 세대가 몰려와 있었습니다. 밥은 나가서 해 먹고 잘 때는 빽빽이 잤는데 그래도 그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때 진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사람들이 서울을 수복하고 집도 하나씩 장만하고 직장도 장만하고 뭘 하고 하니까 이제 배가 불러 가지고 그 때 신앙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안 나옵니다. 그 때는 새벽기도 안 나갔겠습니까? 다 나가는데 안 나가기는 어떻게 안 나갑니까? 나가서 간절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남편도 기도하고 부인도 기도하고 아이도 기도하고 다 기도했습니다. 서울에 와서도 처음에는 기도 좀 했습니다. 헌데 조금 나아지니까 기도는 안 하고 예배당에 한 시간만 갔다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먹어서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평안하면 타락합니다. 너무 안일주의에 빠지면 타락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 자기를 쳐서 복종을 시키고 올라가려고 힘을 쓰고 계속 자기를 고난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고난에 넘겨주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가 없으면 만들어서 지고 계속 환난 가운데서 주님을 영접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만들어서 지라고 했는데 어떻게 만듭니까? 

십자가를 만들어 지라는 것의 뜻

이제는 모든 것이 넉넉하고 배가 부르고 먹을 것이 많고 가족이 잘해 주고 남편이 사랑해줍니다. 그리고는 ‘이제 뒤로 좀 자빠져도 되겠다’하며 침대도 좋은 침대 사다 놓고 덜덜 구르는 것입니다. 상아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송아지를 잡아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믿음이 다 떨어졌습니다. 믿음이 다 떨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아모스6장 3-7절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를 못 다 말했습니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잡아먹으며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 거리며”라고 하였는데 앰프 사다가 놓고 스피커는 두 개를 놓고, 오디오를 사다 놓아야 되고 그것을 틀어놓고 따라서 지절거리면서 그 노래를 하고 조금 있다가 포도주를 대접으로 마시는데 국산은 맛이 없으니까 불란서 포도주를 마셔야 됩니다. 포도주를 수입하면 잘 팔릴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야 망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생각을 안 하고 그저 조금이라도 더 좋은 포도주를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담배는 양담배를 피우고 몸에는 귀한 기름을 바르는데 한 달에 화장품 값이 10만원 이상씩 든다고 합니다. 10만원이면 한 달 생활비가 되는데 한 달 생활비를 갖다가 몸에다가 바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욕하고는 우유를 바르고 오이를 바르고 계란을 바른답니다. 요새는 또 금가루를 바른다는데 그렇게 하면 번쩍번쩍합니까? 참 망할 때가 되긴 되었습니다. 금가루 바른 다음에 한 번 목욕하면 다 씻겨 지는데 며칠 가겠다고 금가루를 바릅니까? 그 값이 얼마이고 돈이 얼마입니까? 망할 때가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암만 돈이 많아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한 달에 몇 백 만원을 주어도 그 사람에게는 모자랍니다. 금 한번만 발라도 돈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이 세대가 부요할수록 점점 망하게 됩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계란을 몸에 바릅니까? 또 우유가 없어서 못 먹는데 우유는 왜 바릅니까? 정신이 나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고 우유나 계란 하나를 제대로 먹지 못해서 영양부족에 걸린 사람이 많은데 한쪽에서는 몸에 쩔쩔 바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아버지의 심정으로 보면 어떤 아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변변히 먹지를 못하고 비실비실하고 돌아가는데 다른 이들은 몸뚱이에다가 우유를 바르고, 계란을 얼굴에다 바르고 다니면서 안 줍니다. 그러니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발소에 가면 계란을 얼굴에 발라 준다고 합니다. 난 안 바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왜 안 바르냐고 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도 없는데 바르긴 뭘 바르냐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가면 자기들끼리 이 손님은 계란 안 바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희끼리 왜 안 바르냐고 물어보고 먹을 것도 없는데 뭘 바르냐고 대답해 줍니다. 한번 안 바른다고 했더니 그렇게 합니다. 이제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배가 부를수록 점점 타락이 됩니다.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는 자로다”라고 하였는데 믿음을 지키다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당하는 환난이 요셉의 환난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환난을 아예 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환
난을 만든 것입니다. 또 모세도 믿음을 지키다가 환난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환난을 안 당합니다. 공주의 아들이고 애굽의 재산이 다 제 것이지만 그래도 믿음을 지키느라고 다 집어치우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데로 나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안일주의에
빠지지 말고 부요할수록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기도 많이 하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더욱 십자가를 지려고 힘을쓰고 발 벗고 나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만들어 지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경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안 오는 사람보다는 십자가를 만든 것입니다. 여기 참예하신 분들은 십자가를 조금 만들었습니다. 또 새벽기도 하려고 힘쓴 사람은 그만큼 십자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하려고 힘을 쓰는 것도 십자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드는
것 아닙니까? 봉사하느라고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전도하느라고 힘쓰고 심방하느라고 힘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느라고 힘을 쓰는 것이 십자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나아지면 또 전도도 안 하고 가르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점점 벗어놓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배가 불러서 이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살이 쪄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다 어기고 세상을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가서는 이 노래가 생각이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그걸로 하나님께 벌을 받는데 이때 전에 환난 중에 노래로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서 회개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 근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잘 되게 해주었는데 십자가를 만들어 지라는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 세움

본문 22-23절에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가르쳤더라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였는데 강하고 담대해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들어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6. 모세가 이스라엘이 장차 타락하여 재앙을 받을 것을 예고함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놓으라

본문 24-26절에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였는데 언약궤 곁에다가 이 율법책을 언제나 보관하여 늘 거기에 가서 율법책을 볼 수 있게 하고 율법책을 베껴다가 가르칠 수 있게 하고 이 율법책을 중심해서 생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바른 교훈을 가르치라

본문 27절에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살았을 때에 아이들을 잘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죽은 다음에도 그 부모가 가르친 말씀이 아이들에게 기억이 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은 다음에는 아이들이 누구의 책망도 받을 것이 없으므로 전에 자기의 아버지가 권면해 준 것, 자기의 어머니가 책망해 준 것이 생각이 납니다. 교역자도 교인들에게 바른 말씀을 계속 힘 있게 가르치되 기회만 있으면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야 그 교역자가 죽은 다음에도 배운 말이 늘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야, 이전에 우리 목사님한테 이렇게 배웠으니까 이젠 이대로 하자!”하며 그 배운 말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었지만 그 교훈은 그냥 남아서 그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교훈을 어떻게 하든지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하여서 죽은 다음에도 마음에 남아있도록 하여야 됩니다. 또 부모들은 자기들이 죽은 다음에도 자녀들의 마음속에 일생 동안 바른 교훈이 남아있도록 잘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늘 생각나게 하고 그 교훈을 순종하게 해서 복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바로 배운 것이 아이들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어떤 부모가 아마 안 믿은 것 같은데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네가 시집을 가면 남편을 하늘과 같이 받들어라.’ 그것을 늘 가르쳤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이제 시집을 갔고 부모는 세상을 다 떠났습니다. 시집을 갔는데 그 남편이 말할 수 없는 핍박을 했답니다. 술 먹고
와서는 못 살게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을 그만 둘까, 도망치고 살지 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왔는데 늘 부모가 가르친 말이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형편없이 돌아가고 아주 멸시할 정도로 돌아가는데도 부모가 하늘과 같이 남편을 받들라고 했기 때문에 남편을
내내 하늘과 같이 받들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남편도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고 좋은 남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교훈이 그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을 막았고 그 남편도 건져내었고 그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되었고 자녀도 좋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습니까? 만일 그것을 안 가르쳐 주었더라면 다 결단이 났을 것입니다. 결단이 나도 벌써 다 깨뜨리고 망하고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교훈이라는 것이 그와 같이 크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교훈, 교역자들의 교훈, 백성의 지도자들의 바른 교훈을 책에 써서 늘 곁에 두고 계속해서 이 말씀을 읽고 배우고 그 말씀을 표준으로 하여 살도록 노래로 가르쳐서 마음에 있게 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면 이 다음 후대에 그 교훈이 내내 서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백성이 타락하여 재앙을 당할 것을 예언함

본문 28-29절에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지도자가 떠나면 타락이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지도자가 있을 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치하고 싶었는데 사치를 못했고 인본주의로 조금 하고 싶
었는데 인본주의로 다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니까 되었다 이제는 해보자 그래가지고는 속에 있던 것이 다 나와서 타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인도를 받을 때에는 책망을 받을까봐 무서워서 못했는데 죽었으니까 책망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떠난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 손으로 하는 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므로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말세라고 한 것은 세상의 말세도 되지만 그 모세가 죽은 얼마 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세상 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끝에도 점점 교회들이 타락이 되어서 마지막에는 말세에 큰 환난을 만나고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말세 교회는 분명히 타락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7교회가 있는데 말세 교회가 꼭 그렇게 됩니다. 사랑이 식고 환난이 들어오니까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고 발람이 나오고 이세벨이 나오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고 니골라 당이 나오고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뜨뜻미지근하고 이렇게 교회들이 말세에 가
서는 다 타락이 됩니다. 또 교회 안에서 새끼 양 같은 두 뿔 달린 짐승이 나와 가지고 이 세상 나라와 합하게 합니다. 말세 교회에서는 이 적기독 세력이 교회 밖에도 나오고 교회 안에서도 나옵니다. 교회 밖의 적기독 세력은 요한계시록 13장 1절에서부터 바다에서 나오는 짐
승이고, 교회 안에서 나오는 적기독 세력은 요한계시록 13장 11절에 새끼 양 같이 두 뿔 가진 짐승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 세상 적기독 국가하고 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새 기독교 안에서 적기독 세력이 움직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해방신학, 민
중신학, 기독교 사회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가 사실은 적기독 세력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내용은 공산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다 타도하고 공산주의를 만들어놓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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