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일 토요일

베드로전서 3:21 말씀과 선한양심을 따라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말씀과 선한양심을 따라가라
베드로전서 3:21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1.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라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1:18-19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언이란 성경말씀을 가리키는데 특히 앞으로 행해야 될 말씀, 또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을 가리킵니다. 요즘 예언한다고 하여 점장이처럼 “당신이 어떻게 되겠다, 당신 속에는 죄가 있다, 이 집에 마귀가 있다”는 등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구약의 다니엘이나 신약의 요한계시록은 말세에 대한 예언이고, 또한 우리가 행해야 될 성경 말씀 모두가 예언입니다. 즉 이대로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성
경 말씀도 예언이고, 이대로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는 성경 말씀도 예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간다는 것도 예언이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도 예언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라고 했는데, 디모데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의 지도를 따라갔습니다. 즉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디모데가 잘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오늘날까지 성경 말씀이 지도해서 그 인도를 따라왔습니다. 지금도 말씀이 우리를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고 하며 지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도해 줄 때에 그 말씀을 따라가야겠는데, 어떻게 따라가야 합니까? 여러 면에서 우리를 지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일조를 드려라, 주일을 지켜라, 서로 사랑하라”는 등, 지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 부부 간에 사랑하고 순종하라”는 등, 지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에 멍에를 메고 충성 잘하라는 것이 지도하는 말씀입니다. 또 시험이 들어올 때에 그 시험을 이기라는 것도 지도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전에도 우리를 지도해 주셨지만, 지금도 우리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우리를 지도합니다. 그러므로 너를 지도한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2. 선한 양심을 따라가라

또 선한 양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21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1:19에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양심을 버리면 파선된 배와 같음

선한 양심을 버린 믿음은 파선된 믿음입니다. 배가 깨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버린 신자는 파선된 신자입니다. 항해하다가 배가 파선되면, 침몰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선한 양심을 버린 믿음은 배가 깨진 것처럼, 깨진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착한 양심을 버린 자의 믿음은 벼 알에서 쌀알을 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벼 알에서 쌀알을 빼내면 겨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버리면 그것은 껍데기 믿음이고, 죽은 믿음으로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양심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한 양심이 아닙니다. 로마서 2:15에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갈 때에 억울하다고 하면 “네가 아무 때에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하며, 양심이 나와서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그들이 옳게 살지 못한 것을 그들의 양심이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 양심은 선한 양심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은 예수 믿는 사람이 갖는 양심임

선한 양심은 착한 양심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갖는 양심입니다. 즉 선한 양심은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는 양심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에게는 선한 양심이 없습니다.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 받은 양심임

또 중생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받는 양심이어야만 선한 양심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양심대로 한다고 하면서 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비판받는 양심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받지 않은 양심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라든지,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이라든지,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 등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나갑니다. 그 양심은 선한 양심이 못됩니다. 왜 못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를 상고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 가야 선한 양심이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고, 그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선한 양심을 안 쓰면 옳은 것을 따라갈수 없습니다. 빛을 잃어버리고, 흑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 선한 양심을 쓰면 하나님의 뜻을 점점 찾아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선한 양심을 따라갈 때에 중생한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중생한 영이 자라나고, 하나님 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안 따라가면 점점 하나님이 멀어집니다. 그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는 것이 믿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부인이 어떤 교인이 교회도 잘나왔는데 귀신이 들렸다고 보고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왜 귀신이 들렸습니까? 그것은 양심을 안 썼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안 쓰면 마귀가 들어옵니다. 양심을 안 쓰면 진실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거짓은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양심을 쓰는 것이 진실인데, 진실한 사람에게는 마귀가 못 들어옵니다. 그러나 양심을 안 쓰면 각종 마귀가 다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안쓰면 앞으로 어떠한 마귀가 들어올지 모릅니다. 양심을 안 쓰면 마귀가 여러 가지 죄악 된 요소를 갖다가 집어넣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선한양심을 써야 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양심을 안 씁니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양말 한 켤레를 사는데, 장사꾼이 자기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며, 아주 싸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는 대로 값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똑같은 양말이 있어서 얼마냐고 물어 보니까 양말 가격이 더 쌉니다. 그러니까 “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속인 것입니다. 하여간 거짓말하고, 속이고, 양심 안 쓰며, 돈 몇푼 벌겠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를 팔아먹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믿음을 팔아먹으면서 어떻게 예수를 믿겠습니까? 양심을 버린 믿음은 파선된 믿음으로, 언제 마귀에게 끌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는 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양심을 안 쓰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헛수고 하는 것입니다. 헛되이 믿고, 다른 것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잘못된 것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냥 나가는 사람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안 쓴 사람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다 나타납니다. 그 때에 가서 후회해도 쓸 데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양심을 써서 믿는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바로 하는 게 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하여간 믿는 일을 하는지 믿는 일을 안 하는지를 보면 양심을 쓰는 것인지 안 쓰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은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양심

중생한 영에게 사용되는 양심이 선한 양심이며, 그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의 인도를 받아 선한 양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며, 성령께서 그 선한 양심과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버리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양심을 써야 됩니다. 양심을 어기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를 팔아먹고, 예수를 팔아먹고, 믿음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따라가는 것이 사는 길이고, 영이 자라나는 길입니다. 또 의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의를 이룬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습니다. 양심을 따라가고, 양심을 안 따라 간 사람과의 차이는 많습니다.

마태복음 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란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믿음을 지킨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해와 같이 빛납니다. 이 세상에서 말씀을 지킨 것만큼, 선한 양심을 쓴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면 그 빛이 큽니다.
어떤 사람은 별과 같이, 어떤 사람은 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달과 같이 빛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훈련장소입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면 완전히 다 나타납니다. “너는 양심을 따라갔구나, 너는 영이 자라났구나” 등 다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예수를 믿지 말고, 말씀을 지키며, 선한 양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지킬 때에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보통 다 지키는 말씀이 있지만, 특별히 개별적으로 그 사람에게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에게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동침하자고 할 때에 “제 7계명을 지키라”는 것이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때에 요셉이 제 7계명을 지켜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제 7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것을 다 잘해도 쓸 데 없습니다. 마귀에게 걸려 들고 맙니다. 가룟유다에게 있어서는 “물질에 대한 시험을 이기라”는 것이 개별적으로 주신 명령입니다. 그런데 가룟유다가 그 말씀을 지켰습니까? 그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망했습니다. 롯과 아브
라함에게 있어서는 “싸우지 말고, 서로 양보하라”는 것이 개별적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 고모라에 욕심을 가지고 갔다가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양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대케 해주셨습니다. 일제시대 말기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제 2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안 지키고 신사참배하면 다른 것을 다 잘했어도 불합격입니다. 또 해방 이후에는 제 4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즉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것을 다 지켜도 주일을 안 지키면 하나님께 낙제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고,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은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여야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하여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있는데, 그것을 지켜야 됩니다. 자기가 지키기 힘든 말씀,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또 선한 양심을 따라가려면 손해가 많아도 따라 가야합니다. 쫓겨나도 따라가야 합니다. 선한 양심 따라가다가 쫓겨나는 때도 있고, 많은 재물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선한 양심을 따라가는 것이 생명입니다.
다 잃어 버렸어도 선한 양심을 따라 갔으면 그것이 생명이고, 대성공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해와 같이 빛납니다. 그러므로 그저 “믿는다”고 하지 말고, 말씀을 따라 가고, 양심을 따라 가야 합니다. 즉 말씀에 비판 받는 양심을 따라 가면 살고, 또 하나님 앞에 갈 때에는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이것을 못하면 다 낭패입니다. 일생동안 예수 믿었어도 헛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녁 다섯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처럼, 양심을 써서 믿는 일을 제대로 하여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누리게 될 영광과 상급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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