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일 토요일

베드로전서 3:8-22 고난 승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고난 승리
베드로전서 3:8-22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3:8 마지막으로, 너희는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해져라. 

3:9 악을 악으로, 또는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여라. 이는 너희가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못하게 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추구하여 이것을 이루어라. 

3:12 이는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기울이시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3:13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면 누가 너희를 해치겠느냐? 

3:14 그러나 너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들이니,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흔들리지도 마라.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3:16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너희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자들이 너희를 비방하는 그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3:17 선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보다 낫다. 

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인하여 고난을 당하시므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3:19 주께서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셔서 선포하셨다. 

3:20 그들은 전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날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했던 자들이다.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던 사람이 적으니 여덟 명뿐이다. 

3:21 물은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 곧 세례이니,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다. 

3:22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권능들이 그분께 복종한다.



1. 일반에게 주신 교훈

형제를 체휼하며 원수에게 복을 빌어줄 것

본문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했습니다. ‘체휼하라’는 말은 동정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사정이 딱할까’하고 자기가 당하는 것처럼 동정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한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는 말입니다. “네가 욕했으니까 나도 욕한다. 보복한다. 네가 내게 악행을 했으니까 나도 악행 한다. 악으로 대한다. 네가 나를 때렸으니까 나도 때린다”, 이렇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주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욕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십시오. 내게 악행 하는 사람의 복을 빌어 주라는 말입니다.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라고 그랬습니다. 원수 갚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원수 갚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잘 되기 위해서 축복해 주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저 사람이 내게 악을 행했다 해도 나는 악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도리어 복을 빌어주고 사랑으로 하십시오. 사랑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저 사람이 나를 욕을 했다고 해도 같이 욕하지 말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사랑으로 그걸 이겨야 되겠다’ 하며 그 사람이 자기를 욕했어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위해주면 그 사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욕을 욕으로 갚으면 영원히 원수가 됩니다. 원수가 되면 그 사람 건져낼 수 있습니까? 악을 선으로 갚고, 욕하지 말고 축복해 주면 언젠가는 그 사람을 건져낼 날이 옵니다. 그 사람 건져내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원수지고 가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내게 악한 일을 해도 악으로 갚지 말고 사랑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욕을 해도 같이 욕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자기가 망합니다. 자기 믿음이 떨어지고, 그 사람하고 영영 원수가 되고, 그 사람 건져낼 수가 없고, 자기가 전도해도 다 여기서 막혔으니까 하나님 역사가 떠나고 비참한 자가 됩니다. 절대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말조심하고 남을 축복하며 화평할 것

본문 10-12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다 생명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생명 안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첫째 ‘혀를 금하라’ 그것입니다. 혀가 죽이는 독입니다. 말조심하라는 말입니다. 하지 않을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욕하지 마십시오. 욕으로 욕을 갚지 말라고 했는데 혀를 금해서 악한 말을 하지 말고, 남을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욕하면, 그 욕을 그 사람이 안 받으면 제게로 돌아옵니다. 그 사람을 축복해 주면 그 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남을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저주하면 자기가 저주 받습니다. 그러나 남을 축복하면 그 사람이 받든 안 받든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무조건 축복해 주고 욕하지 마십시오.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고, 그 입에 궤사를 말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진실하라는 말입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악은 멀리 떠나고,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선을 행하여 화평을 구하여 쫓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할 수있는 대로 화평하십시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려고 하십시오.
악에서 떠나서 선을 쫓아가고, 욕으로 욕을 갚지 말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평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화목하십시오. 화목하는 자는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불목하는 자는 마귀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화목하십시오. 화목 하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라고 하였는데, 주님은 의인을 향하시고 귀는 의인의 간구하는 데 기울이셔서 잘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를 향하시느니라’는 것은 악행하는 자는 주님이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주의 얼굴은 의인을 향하시고,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는 주님이십니다.


2. 의를 위하여 고난 받는데 대한 교훈

열심히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할 것

본문 13-15절에,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했는데,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는 말입니다.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고 욕하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고, 또 내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고, 그렇게 열심히 선을 행하면 그 사람들이 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라고 했는데,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를 행하다 고난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악을 행하다 고난 받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의를 행하다 고난 받으면 하늘나라에 상급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의를 행하십시오. 악한 사람에게도 의를 행하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도 의를 행하고, 욕하는 사람에게도 의를 행하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으로 갚아준다는 것입니다.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고 소동치도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라고 했는데,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언제나 거룩한 길을 걸어 나가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선한 사람이 되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했다가 그 소망에 대해서 잘 대답하라는 말입니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항상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진실할 것

본문 16-17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또 소생해 올라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이 신임해줍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가다가 거꾸러지면 다른 사람이 도와서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양심 없이, 양심을 안 쓰고 거짓말 하고 속이는 사람이 쓰러지면, 그것은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속여 먹을 것이니까 거꾸러지더라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양심 안 쓰는 사람은 한 번 거꾸러지면 망하고 그만두게됩니다. 아주 망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고 그랬습니다. 의인은 양심을 쓰는 사람입니다. 양심을 쓰고 옳게 하겠다는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사람들도 도와줍니다.

그런데 양심 안 쓰면 첫째, 하나님이 안 도와줍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도와주겠습니까? 양심 안 쓰는데 도와줘야 무슨 소용이 없습니다. 거짓말하고 돌아가니까 그 사람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절대 도와주지 마십시오. 도와주면 함정에 빠져서 둘 다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는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믿음직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양심을 쓰고 거짓말 하지 말고 진실하게 말하십시오. 매를 맞아도 진실하게 하고 맞으십시오. 부끄러움을 당해도 진실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십시오. 진실한 말을 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십시오. 그러면 살아나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 안 당하려고 거짓말 슬슬하고, 매 안 맞으려고 거짓말 하고, 양심 안 쓰면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내버리고, 사람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도와줘야 쓸 데 없기 때문입니다. 또 거짓말 하고 또 속일 건데, 100번 도와줘도 쓸 데 없습니다. 양심 안 쓰고 거짓말 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양심을 쓰라는 말입니다. 양심 쓰는 사람은 믿음직합니다. 신임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매를 맞아도 사실대로 하고 매를 맞으십시오. 돈을 많이 손해를 봐도 진실하게 하고 손해를 보라는 말입니다. 돈을 손해 보지 않으려고 거짓말 하면, 그 이상, 몇 백 몇 만배 더 손해를 봅니다. 자기가 불신임 받고나면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진실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양심 쓰고 언제나 진실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양심대로 하면 다른 사람이 욕해도 마지막에 다 드러나니까 그 사람이 부끄러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욕하던 사람이 부끄러워합니다. 양심대로 한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었어도, 고난을 받았어도, 손해를 봤어도, 양심대로 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그러나 욕하는 사람은 이제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나음

본문 17절에,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사람이 좋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습니다.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사람도 많은데,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고난을 안 받는 것보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이 큰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안 받는 것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다가 고난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이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얼마나 좋은지, 큰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을 행하지 않고 평안한 사람 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3. 고난승리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죄인을 위하여 고난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서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죽었는데,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입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육체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성령으로는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면 성령으로 다시 살려준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면 영으로 다시 살려주십니다. 성령으로 다시 살려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지만 의를 위해서 고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시 살려 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를 위해서 고난 받으면, 의를 위하여 다시 하나님이 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루터파에서는 본 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지옥에 갔던 일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신 것을 보아 예수님의 영이 육신을 떠나 즉시 낙원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별세하시어 영혼이 지옥 가서 전도했다고 주장하며 연옥설의 근거를 삼고 있으나 이것도 잘못된 해석입니다. 사람이 한번 지옥에 가면 다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 절에 대한 신임할 만한 해석으로는, (1) “영으로”를 예수님의 영으로 보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속을 완성하고 부활로 대 승리한 사실을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성령으로 전하여 알게 했다(믿게 한 것이 아님)는 것입니다. 또한, (2) 그리스도의 영이 노아에게 가서 노아를 통하여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있는 그 영들도 그들이 세상에 살았을 때에 복음 전파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전 절에 말한 옥에 있는 영들에 관한 설명입니다. 그들은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순종치 않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노아시대 사람만 가리킨 것이 아니고,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 전체를 다 말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믿는 자의 조상이요, 대표가 된 것처럼(롬4:16) 노아시대 사람들은 불순종한 자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식구 여덟 명 이외에는 전 세계가 다 불순종하였으니 노아시대 사람들은 불순종의 대표가 된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했는데, 노아 시대에 순종하여 방주에 들어가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는 겨우 여덟 명 뿐이었습니다. 구원 얻은 무리는 언제나 소수입니다(눈 12:32).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노아시대에 물로 심판한 것은, 그 때 노아시대 사람들을 표본으로 들어서 여러 시대에 불순종하는 자는 다 심판 받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는다는 것을 대표적인 일 하나를 예로 들어서 말한 것입니다. 노아시대에 사람이 지상에 가득했지만 순종해서 구원받는 사람은 몇 사람입니까? 여덟 명입니다. 몇 년 동안 노아가 전도했다고 봐야 되겠습니까? 방주 예비할 동안 전도했다고 보면 약 70년간에 노아가 전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 70년간에 구원 받는 사람 몇 사람입니까? 자기 아내, 아들 셋, 며느리 셋, 자기까지 8명입니다. 70년 동안 전도했다고 해도 자기 가정만 구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난 것 아닙니까? 70년간 전도해서 8명 구원 받았어도 대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천하보다 더 귀한 줄 알고 우리가 계속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여덟 명이 세계를 다 살려놓은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했는데, 여기서 ‘ 물’은 노아시대의 물입니다. 노아의 시대의 물과, 세례는 같은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물>은 순종하는 자는 구원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심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노아시대의 물은 불순종 심판, 순종자는 구원한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을 믿는 성도에게 죄 씻음을 받고 구원 얻은 표로서 인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 하반절에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는 영이 중생하였는데, 중생한 사람도 몸은 죄와 사망 하에 있습니다. 몸에 부패성이 있습니다. 우리 몸을 중생시킨게 아니고 영을 중생시켰습니다. 육체는 부패성은 정죄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 받은 영은 인정받아 새로 살아났습니다. 영이 이제 하나님 찾아가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이라는 것은 중생한 영을 쓰
는 양심인데, 중생한 영이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영이 양심이 있어서 찾아갑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계속 죄와 더불어 싸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8:10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어떻게 됩니까?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너의 몸은 죄와 사망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어떻게 됐습니까? 의로 인하여 살아났습니다.

본문 22절에,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심복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나갔습니다. 십자가에까지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습니다. 

너희도 예수님과 같이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신앙양심을 써서 중생한 영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전진하며 항상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시고 천사와 권세와 능력들이 복종하는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며 죄와 싸우면서 죽기까지 복종하면, 하나님이 살려가지고 이제 영광스런 가운데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죄와 싸우면서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선한 양심을 써서 계속 하나님을 찾아가면서 자라나는 사람, 달음박질 하고 자라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영광스럽게 된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 옆에 가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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