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일서 3:10-24 서로 사랑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서로 사랑하라
요한일서 3:10-24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20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 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1. 마귀에게 속한 자

마귀의 자녀는 의를 행치 아니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음

본문 10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 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는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예

본문 11-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했습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맏아들이 가인이고 작은 아들이 아벨인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 죽였다고 하였습니까? 그의 행위는 악하고, 불순종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을 잡아서 제사한 것이 아니라 제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곡식으로 드렸는데 그것은 불순종이고 악한 것입니다. 아벨은 양의 피와 기름으로 드렸는데, 이것이 순종한 것입니다. 가인이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에 시기가 나서 그 동생을 죽였습니다.

이 시기 마귀라는 것이 아주 악한 마귀입니다. 시기로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동생이 잘 되었는데 시기할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는 받고 자기의 제사는 안 받으셨는데, 동생의 제사를 받고 자기 제사를 안 받았으면 왜 안 받으셨는지 동생하고 의논을 좀 했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동생이 말해줬을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아담한테 “왜 제 제사는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고, 동생의 제사는 받으셨을까요?”라고 물으면, 아버지가 “너 무엇을 가지고 드렸느냐?” 했을 것이고, 가인이 “농사한 그 곡식을 가지고 드렸습니다.” 하면 “그래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네 동생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가서 제사를 했기 때문에 그것은 받은 것이다. 너도 이 다음에 그렇게 해라.”고 답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가인도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갔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뻔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는 악하고 동생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에 그것이 시기가 나서 잡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시기 마귀가 악독한 마귀입니다. 사촌이 전답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사촌이 전답을 사면 좋지, 왜 배가 아픕니까? 자기가 못 사는 것을 사촌이라도 사면 그래도 좀 낫지 않겠습니까? 시기 마귀가 악한 마귀입니다. 시기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고 다 좋은 것인데 그것을 기뻐해야지 시기가 나서 죽이면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본문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19에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겠지만, 너희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불러내서 내게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속한 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자기 것이니까 세상이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증거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라

본문 14절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치 않는 자는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사망에 거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면 생명에 거하는 자입니다. 사랑치 않는 자은 사망에 거하는 자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생명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로 모두 다 한 세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고, 빛과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마귀의 세계는 사랑이 없는 세계이고, 미워하는 세계이며, 시기하는 세계이고 죽이는 세계입니다. 어느 세계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사랑의 세계에서 살면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이 넘쳐 나올 것입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살면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미움 밖에 안 나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세계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사망의 세계입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서 사랑이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은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면 무슨 세계에서 사는 줄 알면 됩니까? 사망의 세계, 마귀의 세계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죄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사랑이 나옵니다. 몸뚱이는 마귀의 세계에 있는데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이 됩니까? 사랑의 세계에 자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들어가지 않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것은 자기 세계가 아니고 다른 세계의 것을 가져다 하는 것인데 되겠습니
까?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

본문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은 미워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살인이라고 알았는데, 예수님은 미워하는 데서부터 살인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살인이 미워하는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미워하다가 살인하게 되니까 살인의 뿌리가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것부터 살인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왼뺨을 돌려대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가지라고 하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 까지 가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워하지 않는 그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미움이 나올 만할 그 때에 믿음을 쓰면 미움이 안 나옵니다. 그것이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파리 100마리를 잡아먹었다고 해도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으면 됐지, 미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파리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속상해하지 말고, ‘난 안 잡아먹었다’ 한 마디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꾸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괜히 그것을 가지고 미워하고 속상해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속상해하는 것은 벌써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파리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속상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하나님이 그 안 잡아먹은 것을 나타내주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다 드러내주십니다. 안 잡아먹은 것은 안 잡아먹은 대로, 잡아먹은 것은 잡아먹은 대로 드러내주실 거니까 속상해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은 미워하다가 나오기 때문에, 살인의 뿌리는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채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선교하러 가고, 전도하다가 매 맞아 죽고, 이 복음을 들고 가다가 목숨을 버리고 나가다가 순교당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본문 17-18절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도와줄수 있는데 안 도와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도움 받는 사람은 도움을 안 받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립해서 자기가 자기 일 해먹는다는 생각으로 자기 할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도움 받을 생각은 절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자립을 하고, 자기가 일 해먹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하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애쓰다가 그 다음에 굶어서 쓰러졌다고 하면, 그 때는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들, 고아들, 무의탁 하는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좋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 해먹어야 됩니다.

화요일 날만 되면 우리 교회 사무실에 아침부터 돈 구걸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섭니다. 두 사람, 세 사람 떼를 지어 가지고 오고, 또 오고하는데, 아마 하루 몇 십 명이 화요일 날짜를 정해놓고 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얼마씩 줍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멀쩡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왜 젊은 사람이 왔느냐? 일 해 먹으라”고 하고는 그냥 보냈습니다. 노인들은 당연히 우리가 얼마씩 도와줘야겠지만, 젊은 사람이 노인들 가운데 끼어서 얻어먹으려고 하다니 무슨 짓입니까? 그러
니까 도와줄만한 사람은 도와주고, 나가서 일 해먹어야 될 사람은 일해 먹어야 됩니다. 자립정신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아예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도움 받겠다는 사람들은 도와줘도 희망이 없습니다.

일본에 우에노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김주봉 목사가 도시락을 한 40개씩 매일 만들어서 그 공원에 거지들을 모아놓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매일 나누어주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 일 할 만한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까 김주봉 목사가 취직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취직을 시켜주면 사흘을 못 가서 또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왔느냐?” 물으니, “거지 노릇 사흘만 하면 그 이상 더 좋은 팔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 생활이 얼마나 좋았는지, 거지 노릇 사흘만 해놓으면 부끄러운 것은 다 없어지고, 그저 얻어먹으니까 먹을 것 염려 없고, 화재 날 염려 없다는 것입니다. 집들 다 불붙어도 자기 집은 불 안 붙는다고 했답니다. 어쨋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대로 도와주는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3. 사랑하는 자가 주께 받을 복

주 앞에서 굳세게 됨

본문 19절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행하면 마음이 주 앞에서 굳세게 됩니다. 즉 사랑을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힘이 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음

본문 20절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가책 받을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 가책 받을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라고 했는데,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있습니까? 많이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지내놓고 보면, 마음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잘 못해 놓고서도 마음의 가책을 받지 못하는 것은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보통은 무엇을 하나 잘못하면 “내가 잘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가책을 받지 않고 뻔뻔하게 나가는 것은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이고, 양심이 마비가 된 사람입니다. 언제나 마음은 온유 하여야 하고, 신앙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합니다. 가책을 못 받는 사람은, 완악한 사람이고, 강퍅한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책 받을 것이 많겠습니까? 자기 마음에 가책 받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표준이 아닙니다. 나는 잘한다고 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잘못한 것이 많은가 하며 항상 겸손해야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에 잘했다고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누구의 마음에 맞아야 됩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하시도록까지 해야 됩니다.

본문 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음

본문 22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양심에 가책이 없이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에게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하였는데, 무엇이나 구하는 바를 주께 받는 방법의 첫째는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됩니다.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려면 회개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마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구하여도 못 받습니다. 둘째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원수까지 사랑하여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면서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구해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바를 다 받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원수 맺힌 것은 다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시편 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야 됩니다.


4.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모든 것을 받음

본문 23절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계명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의 대강령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만 모든 것을 다 받습니다. 왜 못받습니까? 사랑하지 못하므로 못받습니다. 미워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마귀의 세계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또 다른 사람과 막힌 것이 있으면 못 받습니다.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 막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막히지 않아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막히지 않아야 합니다. 보일러 파이프에 더운물이 돌아야 방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파이프가 한 군데 막히면 다 막히게 됩니다. 첫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히고, 둘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히고, 셋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힙니다. 이와 같이 사람 앞에 막히면 하나님 앞에도 막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용납하고 풀어야 합니다. 오른 뺨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왼 뺨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취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왼뺨을 돌려대면서라도, 속옷까지 주면서라도, 십리를 동행하면서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안 막히면 몇 만 배 더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과 막히지 않으려고 왼 뺨까지 돌려대면 하나님께서는 더 높여주십니다. 
즉 그 사람의 인격을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인격을 무시한다고 해서 사람과 막히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멸시와 무시를 당하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24절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참된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닌, 산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산 믿음을 가진 자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성령께서 알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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