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4:1-23 안식일 분쟁과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안식일 분쟁과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
로마서 14:1-23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14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1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그의 의심하는 것을 비판하지 마라. 

14:2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으나,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다. 

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달려 있다. 주께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있으니, 그가 세우심을 받을 것이다. 

14:5 어떤 이는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이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 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라.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때문이다. 먹지 않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않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4:7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다. 

14:10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너의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너의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니, 

14:11 기록되기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14:12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 것이다. 

14:13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서로 판단하지 말자. 걸림돌이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않기로 결심하여라. 

14:14 내가 주 예수님 안에서 알고 확신하건대,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속된 것이 없으나, 다만 어떤 것을 속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속된 것이다. 

14:15 만일 음식 때문에 너의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너는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 주신 그 사람을 너의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마라.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다. 

14:18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자. 

14:20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무너지게 하지 마라. 모든 것이 다 깨끗하나,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악하다. 

14:21 고기도 먹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며, 네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4:22 네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여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으로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14:23 의심하며 먹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으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다.


1. 성도의 주인인 하나님께 권능이 있음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본문 14: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지만 어떤 사람은 성경에 위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양심에 거리낍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가 잘 깨닫지 못하여 의심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에는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의 고기나 새김질하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같이 쪽발 갈라진 고기만 먹었습니다. 낙타나 사반이나 통발로 된 짐승의 고기는 먹지 않았습니다. 돼지는 쪽발이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구약시대에는 먹지 않았습니다. 또 비늘 없는 물고기를 구약시대에는 먹지 말라고 했으므로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것을 전부 해제시켜 주었습니다. 의문과 제도에서 해방시켜 놓았습니다. 십자가로 다 도말했습니다. 즉 구약의 진리는 우리가 그대로 지키지만 외부적인 의식은 신약시대에 와서는 다 해방되었습니다. 또 할례문제도 그렇습니다. 할례도 신약시대에는 안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의 의문과 의식은 다 해방시켜 놓았으니까 구약시대에 먹지 말라고 한 것들은 다 먹어도 된다고 하며 먹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에 내려오던 습관이 있어서 먹으려고 하니까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돼지고기는 늘 먹지 않았었는데 먹으려니까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또 십자가로 도말하여 다 해방시켰다는 것이 믿음이 어리므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안 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세우시는 권능의 하나님께 맡기라

본문 4절에,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주님의 하인인데 주님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고 되물으십니다.
넘어지는 것이나 섰는 것이나 다 그 주인에게 있다고 하면서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라고 했는데, 이는 그 종들을 세울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너는 네 믿음이나 잘 지키고 남을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세워주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2. 안식일 분쟁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진리를 확정하라

본문 5절에,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라고 했는데, 여기의 ‘이 날’이 어느 날입니까? ‘이 날’은 ‘주일날’을 말하고, ‘저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 때에 안식일 문제 때문에 약간의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갑자기 넘어오니까 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먹지 않던 음식을 신약시대에는 먹어도 되는데, 여전히 그것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켰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주일날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토요일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이 날이 낫다’, ‘저 날이 낫다’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 같다! 날은 다 같은 날인데 구별할 것이 뭐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 낫다고 했습니까? ‘이 날’이 낫습니다.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옳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고 하는 건, 주일날 지키는 것을 확정해놓아야 하는데, 안식일 지키는 사람은 안식일 지키고 주일날 지키는 사람은 주일날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있는데 그 옳은 진리를 찾아서 확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 문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음식 문제는 진리 문제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제한했던 음식은 먹어도 괜찮고 안 먹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 문제는 진리 문제입니다. ‘토요일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옳으냐?’, ‘주일날 지키는 것이 옳으냐?’, ‘아무 날이고 하루 정해서 지키는 것이 옳으냐?’에 관한 답에 대한 것은 진리 문제인데, 그런 것은 진리에 맞게 확정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이유

옳은 진리를 바로 찾아서 확정하는 것이 옳은데, 왜 그걸 방황하고 변론하느냔 말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신약시대에는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성경에 다른 날을 정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4절에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라고 했고, 히브리서 4장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대해서 논하다가 7절에서는 ‘한 날’, 다시 다른 날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 18절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른 날을 하나 정해서 이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구약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달리 정해주신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습니다.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이유는 주일날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또한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보면 주일날에 성부께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하신 오순절이 주일날입니다. 오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49일 째 되는 날입니다. 유월절에서부터 50일이 되는 날이 오순절인데, 예수님은 유월절 다음날 살아나셨습니다. 유월절 전날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유월절 다음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성자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합동해서 은혜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또한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주일날을 지켰습니다. 바울이 안식후 첫 날, 떡을 떼며 밤새도록 강론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20장 7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주일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일날 밤새도록 예배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들이 주일날을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안식일을 토요일 날 지킬 것이 아니고, 주일날에 지키는 것이 성경에 옳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키는 것이 옳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날이 옳다는 사람, 토요일이 옳다는 사람, 어떤 사람은 아무 날이나 하루 지키면 된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자기 마음에 확정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것을 확정해야 합니다.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바른 진리를 찾아서 확정해야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의심하면 안 됩니다. 옳은 진리를 찾아서 확정하고 나가면서 그 진리를 세워나가야 됩니다. 그 진리를 따라가야 됩니다. 진리를 반대하는 세력과 싸워야 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나아가야 됩니다. 확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옳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확정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아니하면 무슨 확정이 되겠습니까? 옳은 진리면 옳다는 걸 확실히 깨달아 확정하고, 그 말씀대로 힘써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3.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

본문 6, 7절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주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죽지 말고 주를 위하여 죽고, 자기 것으로 삼아 놓지 말고 주님의 것으로 삼아 놓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자기 것을 다 내 놓으라

그러려면 내 놓아야 합니다. 제 것을 다 내놓아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내놓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내놓아야 그리스도의 것을 갖다 입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어 놓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려면 내놓아야 합니다. 예수의 옷을 입으려면 내놓아야 입지, 내놓지 않으면 입지 못합니다. 

다 내놓았습니까? 목숨 다 내놓아야 합니다.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하여 죽어도 좋습니다.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고, 언제나 주를 위해서 끌려가 죽어도 좋습니다. 주의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 아닙니다. 내 목숨은 내 목숨이 아니고 주의 목숨이니까, 주를 위해야 합니다. 살려주시면 살고 죽이면 죽고, 고통당하게 되면 고통당하고, 끌려가면 끌려가고, 고생 당하면 고생 당할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평안히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내어 놓아야 합니다.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 믿는 것이고 내놓는 것이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입니다. 내놓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합니다. 내놓고 주를 위하여 고난 받으려면 고난 받고, 주님이 살리시면 살고, 죽이시면 죽고, 재산도 다 내놓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내놓으라면 다 아낌없이 내놓을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으로 다 내놓고 살아야 하고 언제든지 내놓으라면 “예”하고 내놓아야 바른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것이 아닙니다. 자녀도 자기 자녀가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목숨도 다 하나님 것입니다. 모두 내놓으십시오. 내놓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안 내놓으면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조금 내놓으면 신앙이 조금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멀었고, 예수의 옷을 조금 밖에 못 입습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환란이 들어오면 통과 못합니다. 지금 못 내놓으면 환난 때도 못 내놓는다는 말입니다. 지금 마음으로 내놓지 못하면 이다음에 내놓아야 될 때가 되어서도 내놓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실패입니다. 내놓지 못하는 건 기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빈 병만 가지고 다니는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습니다.
내놓아야만 기름 준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놓아야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자기가 계획하는 것, ‘내가 하겠다’는 생각도 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내가 하겠다는 것’을 다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자기가 계획하는 것 다 내놓고 자기가 애쓰던 것 다 내놓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고, 몸 다 내놓고 생명도 다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놓았다가 도로 찾아갔다가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내놓아야 합니다. 물론 교역자는 모두 내놓아야 합니다. 내놓은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라면 지고, 주님이 살라면 살고, 저 시골 농촌 산간벽지에 가서 개척교회 하라면 하고, 어두운 데 가라면 가고, 도시에 가라면 가고, 농촌에 가라면 가고, 가서 고생 당하라면 고생 당하고, 죽으라면 죽고, 굶으라면 굶으면서 다 내놓아야 합니다. 

목사는 ‘자’자를 3개 가지고 나가는데, ‘자’자 3개가 무엇입니까?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욕할 때 ‘왜 욕하나?’하지 말고 욕하면 먹고 때리면 맞자 하고 죽이면 죽자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자 3개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 내 놓고 순종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라 다 내놓고 순종하고 따라가야 하겠는데, 그러나 우리가 아직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내놓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야 ‘내놓는 것’입니다. 내놓은 다음에야 말씀을 따라간 것입니다. 

내놓지 않고 아무리 따라간다고 해도 못 따라갑니다. 주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 : 25)”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육신의 목숨을 살리고자 하면 영적 목숨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주를 위해서 육신의 목숨을 내놓으면 영적 목숨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하라

자, 이제 내놓으십시오. 내놓지 않으면 신앙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를 위해서 살자’고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까? ‘주를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사업하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돈 버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학교 다니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세상 일하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는 등 결과가 직접 하나님께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교회의 교역자들은 다 내놓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보따리 싸놓아야 합니다. 보따리 다 싸놓고 있다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이리 가라 하시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좋은 것만 하겠다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이기주의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다가 주님께서 죽으라고 하실 때는 죽어야 합니다. 그때에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순교 당할 때가 왔는데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즐거워하면 그것이 죽는 것 보다 못합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은 죽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아예 목숨을 다 내놓고, 이제는 사는 것도 자기 위해 살지 말고, 사업도 자기 사업을 다 내놓고 주님의 사업으로 만들고, 주를 위해서 살다가 주를 위해서 바치고, 주님의 일에 봉사하다가 주님이 죽어라 하면 죽는 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생 동안 예수 믿다가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좋은 것인데, 이제부터 결심을 합시다.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하겠는데, 왜 자기가 오랫동안 예수 믿어도 예수의 옷을 입지 못하는가, 생각해보십시오. 내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지 못했으니 예수의 옷을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내놓고 ‘주를 위해서 살자’, ‘주를 위해서 죽자’, ‘주를 위해서 바치자’, ‘주를 위해서 희생하자’ 하고 끌려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 자기를 위해 죽는 사람은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사람입니다. 다 내놓고 주님만 따라가는 신앙, 죽기까지 따라가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4. 형제의 구원에 손해주지 말라

이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직고합니다. 우리 행한 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직고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네 형제를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은 형제에게 손해 주지 말고 상처 주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피 흘려 죽은 형제에게 조금이라도 손해 주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살린 그 형제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도와줘야지,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안됩니다. 

본문 17, 18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나라가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사람의 상태입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고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나라가 칭찬해주는 것이 믿음의 상급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이 칭찬해주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 앞에 욕먹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 19, 20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상의 제물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8절과 고린도전서 10장 28절에 그것은 별도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우상의 제물이 아닌 다른 음식인데, ‘다른 건 다 정하지만 사람이 거리끼게 먹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5.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라

본문 22절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깨달은 진리를 그대로 가지고 지키면서 그 가운데서 살라는 것입니다. 네가 옳다고 깨달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가 양보해서 네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 죄 짓는 일입니다.

본문 23절에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입니다. 자기 양심을 쓰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하는데,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말씀 순종인데, 모든 것을 성경 말씀 그대로 좇아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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