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 남자 아이를하수에 던지라고 함
출애굽기 1:1-22
1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6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7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9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 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1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13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14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15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16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18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19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21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22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1-22
1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6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7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9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 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1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13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14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15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16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18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19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21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22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1. 이스라엘 자손이 창성함
출애굽기를 기록한 사람은 모세이며, 기록한 연대는 주전 1440년경, 기록한 장소는 시내 산 광야입니다.
본문 1-5절에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인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칠십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 14절에는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칠십인은 略述(약술)이고, 칠십 오인은 詳述(상술)입니다.
즉 칠십인은 대략적인 숫자로 약술이고, 칠십 오인은 자세한 숫자로 상술입니다.
본문 6-7절에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죽었고,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몇 백년 사는
동안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여 심히 강대해졌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이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하고, 애굽 땅에서 나갈까 하여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이렇게 번성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창성의 이유
1)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임
민수기 1장 46절에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이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점점 창성해집니다.
요한계시록 6장 1-2절의 백말을 타고 나가는 사람은 이기고 또 이긴다는 말과 같습니다. 백말은 복음운동으로 복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이기고 또 이깁니다. 이와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은 점점 창성해집니다. 기독교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면 왜 창성해집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이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계속 창성합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복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가 이기고 창성해집니다. 복음은 가는 곳마다 이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이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계속 창성합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복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가 이기고 창성해집니다. 복음은 가는 곳마다 이깁니다.
2) 소망으로 살았기 때문임
또 이스라엘 백성이 창성해진 것은 소망으로 산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날을 고대하며 살았습니다(창 50장 24-25).
또 이스라엘 백성이 창성해진 것은 소망으로 산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날을 고대하며 살았습니다(창 50장 24-25).
3)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임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또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창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영육간에 창성해집니다.
2. 바로가 두려워 함
본문 8-10절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점점 많아지고 강하여지니까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와 합하여 애굽나라를 대적하고 애굽 땅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또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으로 이용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성해지므로 나중에는 자기들이 압도당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3. 바로의 이스라엘 백성 쇠멸 정책
고역을 시킴
본문 11-14절에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성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쇠멸하게 하려고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 첫째가 감독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고, 또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창성해져 갔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창성해져갔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심한 고역을 치르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이 약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혹독한 고역을 시켜서 기운을 다 빠지게 만들고 가다가 쓰러지게 만들어서 다 멸망시키려고 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더 창성해져갔습니다.
바로는 마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괴롭게 만들고 약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쓰러져서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 번식하지도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날도 마귀가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합니다. 즉 여러 가지
고난, 여러 가지 무거운 짐, 여러 가지 근심 등으로 고통을 주어서 쇠멸시키려고 합니다. 그 때에 성도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만을 힘입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 돈 버는 맛에 주일에도 나가서 일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올 새도 없고 또 몸이 피곤하고 고달프게 됩니다. 이와같이 마귀는 성도를 점점 곤비시켜서 쇠멸시키려고 합니다.
고역을 시킴
본문 11-14절에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성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쇠멸하게 하려고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 첫째가 감독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고, 또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창성해져 갔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창성해져갔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심한 고역을 치르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이 약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혹독한 고역을 시켜서 기운을 다 빠지게 만들고 가다가 쓰러지게 만들어서 다 멸망시키려고 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더 창성해져갔습니다.
바로는 마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괴롭게 만들고 약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쓰러져서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 번식하지도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날도 마귀가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합니다. 즉 여러 가지
고난, 여러 가지 무거운 짐, 여러 가지 근심 등으로 고통을 주어서 쇠멸시키려고 합니다. 그 때에 성도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만을 힘입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 돈 버는 맛에 주일에도 나가서 일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올 새도 없고 또 몸이 피곤하고 고달프게 됩니다. 이와같이 마귀는 성도를 점점 곤비시켜서 쇠멸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의 쇠멸정책에도 쇠멸하지 않고 더욱 창성해져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에 창성해져 간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고역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부르짖으며 기도를 몇 배나 더 많이 하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니까 하나님께서 힘을 더 주셨을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이사야 40장 30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아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서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으로 육신은 힘이 들지만 심령은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신의 고역과 피곤함을 이겨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남습니다. 애굽왕이 고역을 안 시킬 때보다 힘이 더 생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 4-10절에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 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이겨 나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무리 고역을 시켜도 육신은 피곤하지만 속에는 힘이 솟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기도를 많이 하고 서로 사랑 합니다. 고난을 많이 당함으로써 서로 단결하고 서로 협력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4-10절에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 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이겨 나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무리 고역을 시켜도 육신은 피곤하지만 속에는 힘이 솟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기도를 많이 하고 서로 사랑 합니다. 고난을 많이 당함으로써 서로 단결하고 서로 협력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남자를 낳으면 죽이라고 함
둘째 방법은 산파를 통해서 아이를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15-16절에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쇠멸시키려는 애굽 왕의 두 번째 계략입니다.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히브리 여자가 해산 할 때에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살려두라는 것입니다.
첫째 방법에 바로가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중노동을 시키고 괴롭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더욱더 번식하고 창성하니까, 둘째 방법으로 산파들을 보고 해산할 때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살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히브리 남자만 다 죽이면 되는 것입니다. 남자만 다 죽이면 여자는 많아도 애굽 사람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결국엔 그 여자가 애를 낳으면 애굽 사람을 낳는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을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자기들이 이용할 수가 있으니까 여자는 죽이지 말고 길러서 애굽 사람에게 시집오게 만들고, 남자는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자는 다 살리고, 남자는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술책입니다. ‘남자는 다 죽여라. 여자는 살려라’산파에게 아이 조산할 때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남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산하여 번성케 할 수 있는 자이므로 오늘날 신령한 성도를 가리키고, 여자는 애굽인에게 출가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생산치 못하고 애굽인을 생산할 자이므로 오늘날 육에 속한 신자입니다. 언제나 마귀는 생명력 있는 성도
를 잡아 삼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냥두면 하나님의 나라가 창성하고 번성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들이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본문 17절에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고 하였습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 아이를 살렸습니다. 산파들이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
님을 두려워 한 것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산파가 돈이나 받고 산파 노릇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있었고 또 애굽 왕의 명령보다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살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를 살렸습니다. 산파가 잘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를 죽였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인데, 남자를 안 죽이고 살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이 위태합니다. 왕이 히브리 남자를 낳으면 죽이라고 했는데 안 죽이면 왕이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 산파를 죽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이 산파들에 게 왜 남자를 살렸느냐고 물었습니다.
님을 두려워 한 것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산파가 돈이나 받고 산파 노릇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있었고 또 애굽 왕의 명령보다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살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를 살렸습니다. 산파가 잘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를 죽였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인데, 남자를 안 죽이고 살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이 위태합니다. 왕이 히브리 남자를 낳으면 죽이라고 했는데 안 죽이면 왕이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 산파를 죽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이 산파들에 게 왜 남자를 살렸느냐고 물었습니다.
본문 19절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산파들을 불러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살린 것에 대하여 책망하였습니다. 그 때에 산파가 히브리 여인
은 건장하여 산파가 이르기 전에 해산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여자가 건장한 것은 사실이고 또 산파가 이르기 전에 해산한 것도 사실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산파가 가기 전에 해산하도록 하였겠습니까? 산파가 안 가도 히브리 여자가 해산을 잘 할 수 있도록 강습을 시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여자들이 산파 강습을 받아 산파가 안가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산파가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살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상당히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셨고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습니다.
은 건장하여 산파가 이르기 전에 해산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여자가 건장한 것은 사실이고 또 산파가 이르기 전에 해산한 것도 사실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산파가 가기 전에 해산하도록 하였겠습니까? 산파가 안 가도 히브리 여자가 해산을 잘 할 수 있도록 강습을 시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여자들이 산파 강습을 받아 산파가 안가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산파가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살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상당히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셨고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요새는 산파가 누구입니까? 요새는 산파가 교역자들과 전도하는 사람들과 교인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남자를 살리는 산파 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남자는 생명 있는 성도입니다. 생명이 없는 성도는 세상에 속화된 자로
여자입니다. 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나갈 사람들은 여자도 남자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시원찮고 세상에 속화된 자들은 남자라도 여자입니다. 남자를 살리는 산파 즉 생명을 살리는 교역자, 생명을 살리는 교회, 생명을 살리는 심방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산파가 복을 받으려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생명을 살려 놓는 산파는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고, 그 집도 왕성케 하십니다. 남자를 죽이는 산파는 쇠퇴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살리는 산파가 되어야겠습니다.
여자입니다. 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나갈 사람들은 여자도 남자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시원찮고 세상에 속화된 자들은 남자라도 여자입니다. 남자를 살리는 산파 즉 생명을 살리는 교역자, 생명을 살리는 교회, 생명을 살리는 심방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산파가 복을 받으려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생명을 살려 놓는 산파는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고, 그 집도 왕성케 하십니다. 남자를 죽이는 산파는 쇠퇴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살리는 산파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0-21절에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를 살린 산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를 살린 산파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구원운동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순교적인 신앙을 가진 산파가 필요합니다.
1) 산 믿음이 있는 “남자”가 되라
문제는 이스라엘 남자입니다. ‘남자를 죽여라, 여자는 가만 두어라’ 그것이 마귀의 술책인데, 요새도 마귀는 남자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남자는 생산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낳을 수 있는 것이 남자입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남자입니다. ‘남자를 죽여라, 여자는 가만 두어라’ 그것이 마귀의 술책인데, 요새도 마귀는 남자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남자는 생산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낳을 수 있는 것이 남자입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남자에 속한 것은 생명의 역사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반면에 생명력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은 여자에게 속한다고 봐야 합니다. 생명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창성케 해나갈 수 있는 사람,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 생명의 역사가 있는 성도가 남자입니다. 여
자라도 남자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고, 산 믿음이 있고, 생명을 살려 나가고, 자기 생명도 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나가는 그런 성도는 남자인데, 여자라도 남자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 그것은 여자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도 못 살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못 살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이용 물 밖에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남자라도 여자이고, 여자들도 다 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력 있는 산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생명 운동을 해나가는 일을 마귀가 못하게 하는데, 참된 산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생명 운동을 해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라도 남자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고, 산 믿음이 있고, 생명을 살려 나가고, 자기 생명도 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나가는 그런 성도는 남자인데, 여자라도 남자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 그것은 여자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도 못 살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못 살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이용 물 밖에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남자라도 여자이고, 여자들도 다 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력 있는 산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생명 운동을 해나가는 일을 마귀가 못하게 하는데, 참된 산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생명 운동을 해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때 산파가 이 두 사람만이 아니고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 됐는데 산파 두 사람이서 어떻게 다 돌볼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안 나왔지만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표적인 두 사람만 나왔습니다. 많은 산파들 중에는 이스라엘 남자가 나오면 죽이는 산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해산하는데 가서 이스라엘 남자 나오면 죽이는 산파도 있지 않았겠는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여기 두 계급에 속한 이 산파는 살렸습니다. 남자를 살리는 산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생명의 역사가 있는 성도를 살려나가는 일입니다.
2) 죽은 성도와 같은 “여자”가 되지 말라
‘아이를 죽인다, 아이를 살린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도 아이라고 했습니다. 장년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아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아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죽인다, 아이를 살린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도 아이라고 했습니다. 장년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아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믿음이 연약하니까 죽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장성한 성도는 못 죽이고 아이를 죽이려고 합니다. 아이 가운데에도 남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여자는 살려 둡니다. 믿음이 죽은 성도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자기 이용물이니까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믿음이 살아 있는 성도, 말씀을 지키고, 생명력이 있고, 생명 길을 걸어가는 성도를 마귀가 죽이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두 산파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남자를 살려나가는 일, 생명 있는 성도를 살려나가는 일은 우리 자신이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명력 있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죽은 믿음은 안됩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행함이 없는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있는 성도는 사는 것입니다.
산 성도가 남자이고 죽은 성도는 여자입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이 먼저 생명을 얻어야 됩니다. 생명 길을 걸어야 됩니다. 생명을 얻고 생명 길을 걸어가서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태산을 넘어가고 모든 환난을 다 이기는 성도가 됩니다. 죽은 성도가 되면 안 됩
니다. 세상에 빠져서 세상에 지면 안 됩니다. 세상에 빠진 것은 죽은 성도입니다.
요새 유년부 사경회 하는 때가 되어서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지금 유년부 아이들, 어떻게 하든지 살려야 되겠습니다. 마귀는 유년부 아이들을 빼앗아가려고 하고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왕은 죽이려고 하고, 우리는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살리는 산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은혜를 베풀어서 어떻게 한다고 하셨습니까? 산파들의 집을 왕성케 하고 강대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산파를 잘하면 복 받습니다. 산파 잘하는 것은 전도 잘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잘 하고, 아이들 잘 인도하는 것이 산파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전도 잘하고, 아이들을 잘 인도하고, 생명이 있는 신앙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 길을 자신이 걸어가고, 아이들도 생명 길을 걷도록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생명 길을 걸어가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영적 생명을 살려나가면 왕성케 해주시는 하나님
남자 성도가 무엇입니까? 생명력이 있고 생명 길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이 생명이 있는 성도입니다. 죽은 성도가 아닙니다. 세상과 마귀와 자신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못 이기고 지면 여자인데, 여자는 마귀의 이용물 밖에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용해 먹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용물 되는 성도가 되지 말고,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산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자녀를 살렸기 때문에, 생명 있는 성도를 살렸기
때문에 산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주셨습니다. 산파가 하나님을 경외해서 남자를 살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습니다. 영적 생명을 살려 나가면 왕성케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남자가 나거든 하수에 던지라고 함
그 다음 마귀의 셋째 방법은, ‘남자는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셋째 방법입니다.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남자가 나면 나일강
에 빠뜨려 죽이고, 여자가 나면 살려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남자가 문제입니다, 지금 생명 있는 성도가 문제이지, 죽은 성도는 가만히 두어도 자기네 이용물이 되니까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는 것이 셋째 방법입니다.
나일강에 남자를 다 죽이면 이스라엘이 망할 것 아닙니까? 남자를 낳을 때마다 죽이면, 한 10년 정도 죽이면 열 살 이하짜리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한 20년 빠뜨려 죽이면 이십 세 이하짜리는 하나도 없을 것이고, 전부 여자만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30년 할 것 같으면 삼
십 세 이하짜리 남자는 하나도 없고 여자만 있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디로 시집가야 되겠습니까? 애굽 사람한테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애굽 아이를 낳아주어야 합니다. 애굽 사람을 많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마지막 수단입니다. ‘남자는 나일강에 갖다가 빠뜨려 죽여라. 여자는 살리라’는 것입니다.
나일 강은 세상을 가리키는데 세상에 빠뜨려 죽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바로 왕과 같이 성도들을 세상에 빠뜨려 죽이려고 합니다. 생명 있는 성도는 세상에 빠뜨려 죽여라’ 그래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안 빠뜨리면 그 부모가 다 죽습니다. 안 빠
뜨리고 아이 살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과 벗되게 만들려고 하고, 세상에 침몰되게 만들려고 하고, 세상에 떠내려가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고, 세상의 방탕과 향락주의에 빠지는 것은 마귀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여기에 안 빠져야 됩니다. 빠지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있는 신앙으로 나일강과 같은 세상을 이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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