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5일 목요일

창세기 47:1-10 요셉이 자기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고 돌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요셉이 자기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고 돌봄
창세기 47:1-10

1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나의 아비와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형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5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7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9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을 바로에게 소개함

바로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지킴

본문 1-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나의 아비와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형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땅에 거하게 하소서 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 다섯 사람을 택해서 바로에게 인사하러 보냈습니다. 인사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칠십 인이 왔지만 칠십 인이 다 같이 바로 앞에 가지 않았습니다. 올 때에도 왕궁에 들르지 않았습니다. 그 도시 수도에 들르지 않고 고센 땅으로 바로 갔
습니다. 그리고 다섯 사람만 택해서 바로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칠십 명이 왔지만 다 왕궁 수도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사람만 택해서 인사하러 아버지와 같이 간 것은 정중한 예의 법을 지킨 것입니다.

바로에게 순리대로 허락을 맡음

고센 땅에 자기 형제들을 거하게 하려고 하는데 바로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합니다. 바로가 허락을 안 해도 물론 거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 다스리는 권세를 요셉에게 다 주었으니까 왜 거하느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에게 허락을 맡아야 순리대로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또 장래에 말이 없습니다. 현재는 요셉이 정권을 맡고 있으니까 고센땅에 거하게 할 수 있지만 요셉이 죽은 다음에 말썽이 생길 염려가 있습니다. ‘고센 땅에 너희가 왜 왔느냐’고 하면 바로가 허락해서 왔다
고 하면 되지만, 요셉이 허락해서 왔다고 하면 장래에 문제가 될 수있습니다. 애굽 족속하고 싸울 염려가 있습니다. 또 쫓겨 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에게 허락을 맡아서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앞에 보니까 인사하러 가기 전에 이렇게 말 하라고 다 가르
쳐 주었습니다. 

46장 마지막 절에 “가서 바로에게 네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목축을 한다.”고 하라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 때부터 목축을 하니 고센땅에 살게 해달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바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허락을 맡아서 모든 일을 하려고 힘을 썼습
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믿는다, 진리 운동한다’고 하면 그것은 말로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진리를 막는 일 밖에 안 됩니다. 교역자들이 믿음 지키면 좋은 도덕적인 품성이 나오게 되지만, 믿음 지키지 않으면 도적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도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함

1) 먼저 자신의 인격을 믿음으로 다듬어야 함
우리도 이 예의와 법도를 배워야 되겠습니다. 교역자가 되기 전에 먼저 신자가 되어야 되고, 신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바로 되어야 신자도 바로 되고 교역자도 바로 됩니다.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신자 구실도 못하고 교역자 구실도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가는데 마다 복음의 길을 막습니다. 입으로는 전도를 하지만 실제로는 길을 막습니다. 우리가 인사법, 예의 법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믿음은 무례히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요즘 교역자들이 예의가 없다고 합니다. 예의를 전혀 모른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를 가르쳐준 스승에게 아무리 잘 못 가르쳐 주고 부족하다고 해도 가끔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서로 왕래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가르쳐 준 사람과 왕래를
하는데 믿는 사람이 발을 딱 끊어버리고 한 번도 다니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잘 가르쳐주었든지 잘 못 가르쳐주었든지 스승인데 배운 사람이 너무 딱 끊어 버리는 것이 섭섭한 모양입니다. 사제지간에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그렇게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딱 끊고 상관없는 사람처럼 하면 예의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바가 있습니다. 사제지간이나 부모님이나 우리가 인사를 바로하고 모든 일을 바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형제간에 대해서도, 동역자간에 대해서도 인사를 바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를 모시는 것에 대해서 바로 했고, 형제들에 대해서도 바로 했습니다. 또 자기 친족에 대해서도 바로 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권속들을 책임을 지고 다 돌봐 주려고 장소를 제공하고 식량을 공급했습니다. 아버지를 모셔다가 가까이 두고 그 친족들에게 요셉이 바로 한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도무지 친족들과 부모님께 대해 잘 할 줄 모르고, 또 자기 가르쳐준 선생님에게도 잘 할 줄 모르며 예의가 없습니다. 또 형제간이나 동역자들에 대해서도 예의가 없다면 그것이 무슨 신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가복
음 12장 17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라고 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 대해서도 할 도리를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고르반 사상으로 나가는 바리세인과 서기관과 같이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가 바로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에게도 바로 할 줄 알고 또 선생님의 대해서 바로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단이 다르고 신앙이 달라서 같이 못나간다고 할지라도 예의범절은 지켜야 되겠습니다. 한 교단에 있어야만 부모와 선생님이 아닙니다. 한 교단에 있지 않다고 해도 신앙의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자기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신자가 되어야 하고, 신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덕을 빼면 목사라고 할 수 없고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의무를 잘 감당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한 예의를 바로 지킨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국가에 대한 예의를 바로 지키고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바로 지켜야 되겠습니다. 요셉이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바로에게 허락을 받아서 하려고 했던 것처럼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
켜야 하겠습니다.

2) 돈에 대해서도 양심을 바로 써야 함
‘성복 가구사’는 강대상과 의자를 만드는 한국에서 제일 큰 가구상인데, 그곳에서 우리도 강대상을 많이 사왔습니다. 그 곳에서 만든 것이 제일 좋습니다. 대구에 공장이 있고 종로 5가에 기독교 빌딩 2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의자도 거기서 만드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58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6.25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게 세를 못 내서 문 닫는다고 홍 장로님한테 맡아서 하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교회 목사들 상대해서 장사 못한다고 그러더랍니다. 가구 값을 언제 준다고 약속하고 가지고 가면 도무지 주지 않는답니다. 그런 교회가 많으니까 가구사가 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창광교회의 집사 한 분이 있는데 여 집사입니다. 집을 팔아서 500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옆에 다른 교회 나가는 집사가 좀 꿔달라고 했답니다. 예배당 짖는데 건축연보 작정 한 것이 있으니까 잠깐 빌려주면 갚아 준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목사가 왔더랍니다. 교회가 가까우니까 어느 정도 아는 모양입니다. 목사님이 와서 잠깐만 좀 빌려달라고, 우리가 꼭 준다고 당장 급하다고 했답니다. 그 집사님이 마음이 좋습니다. 목사가 또 와서 그러니까 그것을 믿고 집 팔아서 다른 것 사려던 것을 빌려 줬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할 것은 다 하면서 그 돈을 안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준다고 하다가 요즘에는 딱 잡아뗀다고 합니다. 지금은 돈 달라고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희망 없습니다. 내가 볼 땐 100% 못 받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 양심을 써야 합니다. 첫째, 돈에 대해서 양심 안 쓰면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역자들이 돈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옛날에 한문 하는 사람들도 ‘財産(재산) 分明(분명) 大丈夫(대장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하는 것이 대장부라는
것입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하지 못 한 것은 대장부가 못 됩니다. 그러니까 줄 것은 주고, 꾸지 말고 자기 책임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시커먼 마음을 가지고 남의 돈 줄 것 주지 않고, 자기 할 것 다하고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남의 것은 주지 않고 자기 할 것 다
하면 그건 악한 것입니다.

2. 요셉이 자기 가족 칠십 인을 돌봄

자기 백성에게는 땅과 먹을 것을 제공함으로 자기 책임을 다 함

요셉이 형제와 그의 가족들 칠십 인에게 식량을 공급했습니다. 자기 책임을 다했습니다. 권속이 살 땅을 노력을 해서 마련을 해 줬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식량을 돈 주고 사서 먹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짐승을 가져다가 바꿔 먹었습니다. 짐승도 다 바꿔먹은 다음에는 또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밭이나 논과 자기 몸까지 다 바치고 바꿔먹었습니다. 땅 다 바치고 바꿔 먹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거저 받았고 또 양식도 거저 줬습니다. 요셉이 땅도 거저주고 양식도 거저 줬습니다. 외딴곳에 갔다 줬으니까 다른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모른 것 같습니다. 거저 줬는지 바꿔 먹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외딴곳에 갔다 둔 것이 좋습
니다. 고센 땅에 둔 것이 숫자가 얼마 안 되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 했습니다. 애굽 사람에 대해서는 거저 준 것이 아니고 팔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기 가속에 대해서는 거저 공급을 해 경제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약한 자를 믿음으로 도와주어야 함

우리도 다른 형제들에게 대해서 경제 부담을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합니다. 우리도 전도비 내는 것, 상납금 내는 것, 학교에서 등록금 내는 것, 또 개척교회 분담금 내는 것은 반드시 해야 됩니다. 어제 저녁에 다시 다 정했습니다. 교역자들 십일조 절반을 개척교회 보조금으로 다 내기로 정했습니다. 참여 하지 않은 교회가 있으면 참여해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사례금 받는 것 중에서 본인이 십일조 내지 않겠습니까? 그 십일조에 대한 절반은 여기 총회 전도부에 내야 합니다. 전도부에 내서 지방 여러 교회들을 보조해 줘야 합니다. 지금 열다섯 교회를 보조 해 줍니다. 지방 교회 보조 안 해주면 다 굶습니다.

지방에 어떤 교회는 사례금 8만 원 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8만 원 가지고 어떻게 한 달을 살겠습니까? 아이들도 한 두 명 있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2만 5천원 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10만 원 받는 교회도 있고, 3~4만원 받는 교회도 있어서 보조
안 해주면 살기 어렵습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것 보조해 주자는데 안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들이나 동역자가 보조 안 해주면 굶주리는데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양심 안 쓰는 것입니다. 옆에 동역자가 와서 굶주리고 있는데 자기 혼자 다 먹겠다는 것과 마찬가
지입니다. 그것이 믿음인가 양심인가 생각을 해 보십시오. 보조 안 해주면 살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옆에서 굶고 있는데 안내고 앉아가지고 ‘주여, 주여’ 하면 무엇이 주여 인가 생각 해 보십시오. 자기가 밥 한 끼 안 먹고라도 같이 나눠먹을 생각까지 해야지 양심을 쓰
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안 내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서로 약한 사람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16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
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먹을 것이 없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안준다는 것입니다. 돈은 내지 않으면서 만나면 ‘안녕하
셨습니까’ 인사하고 헤어 질 때도 ‘안녕히 가십시오. 평안히 가십시오’하고 인사 할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평안히 가겠습니까? 집에 가면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한쪽에서는 굶주리고 있는데 보조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세상나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나라도 에티오피아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도와주려고 전 세계가 들썩하지 않습니까?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 나라인데도 굶주리게 되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보조해줍니다. 캐나다에 가보니까 학생들이 쌀 모아가지고 에티오피아 원조 해 주려고 합니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정부가 원조 해 주지만 개인적으로나 국민적으로 많이 합니다. 캐나다는 개인적으로 에테오피아를 돕는다고 하면 개인이 돕는 만큼 나라에서 원조해줍니다. 예를 들어 국민이 1,000불 원조 하겠다고 하면 나라에서도 1,000불을 보태서 에티오피아로 보냅니다. 캐나다가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공산당 에티오피아 정부 당국자들이 영국과 소련에서 자동차와 비행기로 술을 사다가 마신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공산당 간부들은 술을 자동차와 비행기로 사다가 먹으면 도와 줄 필요 없다는 말이 나 올 수 있습니다. 백성이 굶
주리고 있는데 어떻게 돕지 않겠느냐고 해서 에티오피아 대사를 불러다가 지부에서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원조해 준 것이 정말 백성들에게 가느냐? 너희들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먹느냐?’ 물었더니 대사는 정말로 백성에게 가니까 에티오피아 정부를 믿으라고 했답니다. ‘간부들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어떻게 믿고 보내겠느냐? 무기 사다가 전쟁하려고 하지 않느냐?’ 의심을 하면서도 보내줍니다. 우리가 직접 가서 굶주리는 사람에게 전달하게 해 달라는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당국에서는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못하면 너희들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이것 가져다가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까 ‘그렇지 않다’고 빌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도 한편에서 굶주리고 있으면 도와주는데 교역자들이 지방에 약한 교역자 있는 교회 도와주자는데 참여 하지 않으면, 양심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합니다. 염치가 너무 없습니다. 자원해서라도 도와야 되는데 공동으로 하자고 결의를 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일이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아직도 참여 못한 사람 있으면 빨리 해서 약한 교회 교역자들, 약한 형제 도와주는데 지장이 없도록 합시다. 제 때 가져와서 도와주어야 차질이 없습니다.

재정에 대해서 양심을 바로 써야 함

우리는 재정에 대해서 양심 쓰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언제든지 배워야 합니다. 약한 교회 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재정에 대해서 양심을 써야 합니다. 마땅히 도와 줘야 할 것을 도와주지 않으면 죄입니다. 남에게 빼앗은 것만 죄가 아닙니다. 복음도 내가 전해야 될 것을 전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쓰라고 줬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않으면 죄 아닙니까? 그것이 불의한 재물이 됩니다. 성도들도, 자기가 돈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써야 될 때 쓰지 않으면 그것이 불의한 재물입니다. 부모형제, 동역 자, 선
배, 가르쳐준 스승에 대해서 자기의 의무를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인 하나님입니다.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과 거룩 등이 다 ‘도덕’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다음에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이 다 도덕입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을 배워서 우리가 다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모든 면을 배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배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신자 자격이 없습니다.
또 교역자는 더욱더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 노릇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요셉이 윗사람에 대해서 바로 했습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있지만 바로에게 허락을 받아서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형제들과 아버지가 갈 때 미리 말 할 것을 가르쳐 주고, 고센 땅을 바로에게 허락 맡
으려고 애 쓴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후대가 약 300년 내려가기까지 아무 지장이 없이 내려갔습니다. 400년대에 가서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왔을 때에 그때부터 핍박이 나온 것입니다.

3. 야곱이 바로를 축복함

그 다음에는 요셉의 아버지가 바로에게 가서 인사를 했는데 축복을 두 번 해줬습니다. 본문 7절에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만나서 축복을 해 줬습니다. 또 떠날 때도 축복 해 줬습니다. 본문 10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두 번이나 축복을 해 준 것입니다. 요셉이나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입니다. 또 교역자도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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