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장자의 축복
창세기 48:14-22
14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
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창세기 48:14-22
14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
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함
장자의 축복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브라함의아들은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은 야곱과 에서입니다. 따라서 에서와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들입니다. 에서가 맏아들이고 야곱은 작은 아들인데 야곱은 작은 아들이면서도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사모 했습니다.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으려고 에서라고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고 요셉의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장자의 축복이 무엇인데 이렇게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야곱은 애를 썼습니까? 장자의 축복은 두 몫을 받는 것입니다. 신명기21장 17절에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
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장자에게는 가족 전통의 모든 중요한 복을 다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장자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그러면 야곱이 원하는 장자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몇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첫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장자의 축복 가운데 제일 첫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언제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또 자기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기가 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즉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한 분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에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벗이 되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벗이 되는 것 이상 더 큰 복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일 큰 복입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자의 축복 가운데 첫째입니다.
2)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걸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
둘째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즉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는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받으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걸어가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노선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 노선에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과 롯의 신앙 노선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면서 좋은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소돔, 고모라의 풍요로운 것과 잘되는 것을 보고 그곳을 택했습니다. 롯의 신앙은 오른손은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에는 세상을 붙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하였는데 롯도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의인이 소돔 고모라의 죄 짓는 사람들을 보고 날마다 심령이 상했다고 하였습니다. 롯의 믿음도 좋은 믿음이지만 롯이 잘못된 것은 한 손에 세상을 붙들고 하나님과 겸하여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입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은 오른손도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도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한 분만 섬기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고 먼저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에 롯이 가지 않는 가나안 헤브론 산골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헤브론 산골에서 어떻게 살라고 들어갔느냐?” 하고 물어보면 아브라함은 “나는 하나님으로 살려고 들어갑니다. 세상 것이 없어도 하나님 한 분이면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은 하나님 한분만 붙들고 살려는 것이고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또 하나님이 살려줄 것을 믿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같이 해 주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원하고 사모하는 장자의 축복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모든 언약과 약속을 받고자 하는 것
셋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해주신 모든 언약, 약속을 받고자 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물려받으려는 것이 야곱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전부 다 받기를 원하는 신앙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고 약속한 모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셋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해주신 모든 언약, 약속을 받고자 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물려받으려는 것이 야곱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전부 다 받기를 원하는 신앙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고 약속한 모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첫째는 장차 오실 메시아 즉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에 별 같이 많아지겠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
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주셨는데 그리스도를 받기 원하는 것이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주셨는데 그리스도를 받기 원하는 것이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준다고 하셨는데 가나안 땅 받기를 원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받는 것은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해 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해준 복을 야곱이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가나안 땅 하나를 값으로 말하면 얼마나 많습니까? 소돔 고모라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롯은 풍요해 보이는 소돔 고모라가 좋아서 한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에는 소돔 고모라를 붙들고 갔지만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 땅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 가나안 땅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구원의 세계, 믿음으로 얻는 모든 영적 축복, 하나님의 나라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모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하나님께 바치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독자 드리는 것, 성전 짓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에는 야곱이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28장 12-13절에 “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고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피난 가다가 벧엘에서 돌 베게 하고 잠잘 때입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장자의
명분, 장자의 축복 받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봤는데 그 사다리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네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아브라함에게 준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했고 성전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도망쳐서 벧엘에서 돌베개 베고 잠잘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다 나타내 보여주셨는데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고,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따라가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다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자의 축복은 첫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둘째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따라가고 셋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
한 모든 약속을 다 받으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에는 야곱이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28장 12-13절에 “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고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피난 가다가 벧엘에서 돌 베게 하고 잠잘 때입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장자의
명분, 장자의 축복 받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봤는데 그 사다리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네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아브라함에게 준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했고 성전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도망쳐서 벧엘에서 돌베개 베고 잠잘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다 나타내 보여주셨는데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고,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따라가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다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자의 축복은 첫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둘째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따라가고 셋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
한 모든 약속을 다 받으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음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사모하고 애를 쓰며 ‘어떻게 하면 장자의 축복을 받을까?’하고 전심전력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형에게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또 장자의 명분을 살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아버지 앞에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
니다. 축복 받을 때 어떻게 받았습니까? 제대로 받았습니까? 자기가 에서라고 아버지를 속이고 받았습니다.
창세기 27장 1-4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고 맏아들에게 에서를 불러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맏아들 에서에게 사냥해 온 고기를 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7장 8-10절에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을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스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네가 에서라고 해서 장자 축복을 받아라.”라고 했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 축복을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에서가 사냥하러 간 후에 야곱을 불러 에서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11-19절에 야곱이 어머니에게 “에서 형은 털 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만져 보고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알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겠습니다.”라고 하니 야곱의 어머니가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까 너는 시키는 대로 순종을 해라.”하고 양을 잡아 가지고 별미를 만들어 주고 야곱의 손과 목에 염소 가죽을 감아서 털이 북슬북슬하게 해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버지께 들어가서 아버지를 보고 “사냥해 왔으니까 이것을 잡수시고 축복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네가 누구냐” 그러니까 야곱이 “에서입니다.”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이삭이 “그럼 만져보자.”하고 손을 만져보니까 털이 있어서 속았습니다. 이삭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지만 손은 에서 손이로구나. 가져 오너라.”하고 음식을 잘 먹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줬습니다. 즉 속여가지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됐습니까? 속여서 한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속이는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축복을 받기를 사모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사모한 것만은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아버지가 속아서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해줬습니다. 누가 잘못입니까? 자기가 에서라고 속인 야곱이 잘못입니까, 어머니가 시켜서 그렇게 했으니까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잘못입니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지만 손은 에서의 손이라고 하면서도 속아서 장자의 축복을 해준 이삭이 잘못입니까? 누가 잘못입니까? 셋 다 잘못했습니다. 아버지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 되었습니까? 창세기 25장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쌍둥인데 쌍둥이가 출생하기
전에 벌써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나기 전에 어린 야곱이가 장자가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삭도 정신 안 차리고 다 잊어 버렸고, 이삭의 아내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는 속고, 아들과 아내는 속였습니다.
안 속이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안 속였어도 됩니다. 야곱이 속이지 않아도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어떻게 받느냐 하면 야곱이 염소새끼 잡아가지고 가서 잡수시고 축복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너 누구냐”하고 물으면 “야곱입니다” 라고 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너 나가라. 큰 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고 한다.”고 해서 야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냥을 하는데 못 잡게 하시면 에서가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을 것입니다. 또 그 이튿날도 하나님께서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얼마나 배가 고프셨겠습니까? 아니면 에서가 또 사냥하러 다니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기다리다가 “이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아, 네가 무엇을 해가지고 왔다고 했으니까 네가 좀 오너라. 하나님께서 네게 장자 축복을 해주시는가 보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다 잘 될 뻔 했는데 서로 다 신앙에서 떠나 있으니까 셋 다 속이고 속은 것입니다.
그러나 속였지만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야곱에 준 다음에는 에서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줬는데 어떻게 에서에게 다시 주겠습니까?
에서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자기도 축복 해달라고 했지만 해줄 것이 없습니다. 해줄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창세기 27장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새 아들에게 이와 같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장자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27장 28-29절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인데 야곱에게 왔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신앙에서 떠나, 축복에서 타락됨
장자의 축복은 하나 밖에 없어서 그것을 누구에게 주느냐가 문제인데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별미를 만들어서 가져와서 울면서 장자의 축복을 해달라고 해도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다 줬기 때문에 줄 것이 없습니다.
에서가 왜 장자의 축복을 못 받았습니까? 실제로는 에서가 장자이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에서가 받아야 되는데 못 받은 이유는 장자의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신앙에서 떠나 타락된 사람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된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 다. 장자의 축복을 사모해서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작은 아들이라도 반드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위치에서 떠난 사람이 마지막에 받을 것은 창세기27장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는 이것 밖에 없습니다. 장자의 신앙에서 타락된 사람은 결국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된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타락된 사람을 우리가 가서 권면하여 다시 장자의 신앙으로 돌이켜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 각자가 다 장자의 신앙에 서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이것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사람이 받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하나 밖에 없어서 그것을 누구에게 주느냐가 문제인데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별미를 만들어서 가져와서 울면서 장자의 축복을 해달라고 해도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다 줬기 때문에 줄 것이 없습니다.
에서가 왜 장자의 축복을 못 받았습니까? 실제로는 에서가 장자이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에서가 받아야 되는데 못 받은 이유는 장자의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신앙에서 떠나 타락된 사람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된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 다. 장자의 축복을 사모해서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작은 아들이라도 반드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위치에서 떠난 사람이 마지막에 받을 것은 창세기27장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는 이것 밖에 없습니다. 장자의 신앙에서 타락된 사람은 결국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된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타락된 사람을 우리가 가서 권면하여 다시 장자의 신앙으로 돌이켜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 각자가 다 장자의 신앙에 서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이것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사람이 받습니다.
2. 야곱이 손을 어긋맞아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명분을 줌
야곱이 나이 많아서 늙었습니다. 야곱이 일백 사십 칠 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는데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웠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축복을 받으려고 아버지께로 왔습니다. 그때 야곱도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왔다고 하니까 야곱이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고 했습니다.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아버지 앞에 경배하고 그 다음에 축복 해달라고 맏아들 므낫세는 아버지 오른손을 갖다 얹게 했고 작은 아들 에브라임은 왼손에 갖다 얹게 했습니다. 맏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어긋맞고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놓고 왼손은 맏아들 므낫세에게 얹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아닙니다.” 하면서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가 맏아들이고 이 아이가 작은 아들입니다” 하고 오른손을 맏아들 위에다 얹으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야곱이 나도 알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다고 하면서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고 축복해주었습니다.
3. 장자의 축복이 요셉에게 돌아간 이유
장자의 축복이 왜 요셉에게 돌아갔습니까? 역대상 5장 1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
니니라”고 했습니다. 르우벤이 장자인데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장자의 축복이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삭에게서 야곱에게로, 이제 야곱에게서 요셉에게로 갔는데 요셉의 두 아들 가운데 맏아들 므낫세에게로 가느냐,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로 가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야곱이 손을 어긋맞고 장자의 명분을 작은 아들에게 해주어 에브라임이 장자의 명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대표입니다. 대표 지파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라고 해도 되고 에브라임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둘 다 같은 것이니까 에브라임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 대명사이고 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축복해주었습니까? 본문 15절에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건 삼위일체입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섬기던 하
나님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6절에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본문 17-19절에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아비가 허락지 아니
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손을 바꾸어 어긋 맡겨서 요셉이 도로 바꾸려고 하니까 야곱이 “나도 안다. 그도 한 민족이
되고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고 하며 장자의 축복을 에브라임에게 했습니다.
왜 장자의 축복을 맏아들에게 안 해주고 에브라임에게 해주었는가 하면 평소에 그 두 아들의 믿음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의 믿음도 오랫동안 나타났고 또 므낫세의 믿음도 오랫동안 나타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알았습니다. 요셉도 알았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
도 알았습니다. ‘에브라임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아서 장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을 평소 믿음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서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평소에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는 것,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 또 그 길로 걸어간 것,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걸어간 것을 봐서 장자의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육체적으로 장자라서 장자가 아닙니다. 호주라고 해서 호주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가 호주이고 장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것 다 받으려고 애쓰는 신앙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신앙입니다.
4.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예언함
본문 20-22절에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보다 므낫세가 맏아들이지만 에브라임이 장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모든 복과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모든 것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장자의 축복이 요셉의 맏아들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몇 가지라고 그랬습니까?
첫째는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믿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처음에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한 땅이었는데 믿음으로 정복을 했습니다. 십일조 바치고, 성전 짓고, 독자 바치고, 바치는 생활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받는 것만 장자의 축복 아니고 하나님께 바칠 줄 아는 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누구나 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많다고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저금통장에 2억 몇 천 만원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도 못 쓰고 누가 먹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떠난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하나님께 좀 바치고 떠났으면 천당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남아 있겠는데 하나도 못 바치고 누가 가졌는지도 모르
고 자기 딸도 못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큰 은혜인 줄 알아야 됩니다. 어떤 분은 몇 백억 되는 재산이 있었는데 별로 바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연보 한다면 그저 10만원, 3만원 이렇게 냈습니다. 30억을 바쳐도 시원치 않겠는데 3만원 냈습니다. 하나도 못 바치고 떠났는데 어떤 여자인지 알지도 못하는 후처가 와서 다 가졌습니다. 참 안 됐습니다. 사실은 바치는 것도 은혜인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요새 주차장 하는데 주차장 연보 바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도 장자의 축복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연보 바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쳐서 하라고 빨리 모든 것이 안 되게 만들어 놓으시고 자꾸 지연되는데 명년에 가서 연보해서 하라고 그러
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에서와 같이 장자의 축복에서 떠난 사람은 하늘 이슬과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칼을 믿고 생활하고 멍에 매다가 벗으면 겨우 떨쳐 버린다고 했습니다. 장자의 신앙을 걷다가 타락된 사람은 그와 같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자의 신앙을 걷다가 타락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려고 애써야 되겠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에게, 이삭에서 야곱에게로, 야곱에서 요셉으로 갔다가, 요셉의 아들 둘 가운데서 에브라임으로 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장자의 축복을 받은 요셉, 에브라임, 야곱의 신앙을 가지고 장자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장자의 노선, 장자의 길을 걷는 교회, 장자의 길을 걷는 교단,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을 걷는 교단이어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 따라가야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장자의 길이 아닙니다. 교회도 장자의 교회, 자기 신앙도 장자의 신앙, 교단도 장자의 길을 걷는 교단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장자의 축복이 거기에 임합니다. 우리는 장자의 축복을 받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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