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5일 목요일

창세기 48:1-22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한 축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한 축복
창세기 48:1-22

1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4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7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내가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8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9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12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요셉이 부친 임종시에 찾아감

창세기 47장 27-31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 사십 칠 세라. 이스라엘의 죽을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가서 십칠 년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임종시에 요셉에게 ‘내가 죽거든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땅에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가나안땅에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데, 거기서 장사하기를 여기서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이것을 맹세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 후에 야곱이 병이 들었습니
다. 세상 떠날 때가 다 된 것입니다.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로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병이 나서 기력이 없지만 요셉이 왔다고 하니까 요셉을 장자로 세우려고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침상에 앉았습니다. 

2. 이스라엘이 축복해 준 근거

약속을 확실히 믿고 그 약속대로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신앙 본문 3-4절에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루스’라는 곳은 벧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에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맹세한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루스라고 합니다. 

창세기 28장 11-19절에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에서 돌 베개하고 잠 잘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이 땅에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하며 너 누운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루스에서 누워서 잠자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여 동서남북에 편만해진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때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피난을 갈 때인데,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야곱의 나이가 많아져서 147세가 되었습니다. 근 100년 전, 야곱이 젊었을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분명히 믿고 언제든지 그 약속대로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고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에
가서 야곱이 죽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가나안 땅에 가서 살 것, 번성하게 될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확실히 믿는 그 신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늘 사모하는 신앙

본문 4절에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분명히 성경말씀대로 될 것이고 또 가나안 땅에 분명히 들
어가게 해 줄 것이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간절히 사모한 것입니다. “반드시 간다, 나를 애굽에서 장사지내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장례 하여라, 너희도 앞으로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이다, 우리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 할 것이다”하며 야곱은 하나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요셉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자기의 세상 고향을 사모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세상나라, 세상고향을 귀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고향을 사모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고향을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 가나안 땅을 늘 바라보고 사모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늘나라를 늘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도 세상에서는 죽으면 자기 고향 선영에다가 장례 하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선영에 장례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꼭 자기 고향 선영에다가 시체를 묻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영에다 묻어도 썩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장례를 고향으로 가느라고 많은
비용을 쓰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니 손해가 많습니다. 장례는 언제나 간단하게 하는게 좋고 먼 고향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세상 고향을 사모할 필요가 없고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세상 고향을 사모한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고향, 하늘나라를 늘 사모 했습니다. 어디서나 살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야곱이 나이 많아서 늙을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된다. 허락한 가나안땅에 반드시 간다. 또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번성한다. 많은 백성이 된다. 영영이 가나안땅에 거한다. 가나안땅이 우리 기업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 지면은 모든 생각이 희미해져서 다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이가 많아서도 확실한 신앙을 갖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었으며, 명백하게 그 자손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참여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사모하는 신앙

본문 5-6절에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들을 내 아들로 삼아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다’고 하며 아들 둘을 야곱이 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이 열둘인데 둘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있는 아들만 해도 열둘인데 아들 많아서 무엇을 하겠다고 둘을 더 가지겠다고 합니다. 또 요셉은 아들이 몇입니까? 아들 몇을 낳았다고 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아들이 둘밖에 없는데 두 아들을 다 주고 다음에 낳은 아들을 아들로 하라는 것입니까? 왜 그랬겠습니까? 아들 둘을 내 아들로 해야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요셉에게 복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요셉에게 복 주려고 내 아들로 삼아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복을 준 것이 나타납니다. 본문 6절에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참여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함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내려감

역대상 5장 1-2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4대 족장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요셉이 됩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나가면 더 주심

본문 21-22절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가나안땅에 복 받을 때 한몫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 몫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두지파가 된 것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한 지파인데 요셉지파는 두지파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내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손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야곱의 아들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가서 분배 받을
때 한 몫을 더 받습니다. 더 주려고 ‘내 아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주는 방법을 이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아들로 삼아야 더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요셉에게는 두 몫을 주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더 주는 방법은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면 더 준다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더 줄 수가 없습니다. 온전히 하나님 것으로 바쳐 놓으면 더 준다고 하셨습니다. 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놓고 네 모든 자녀를 하나님께 바쳐놓고 또 네 몸까지 하나님께 바쳐 놓으면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더 준다는 것
을 우리에게 알려 준 것입니다. 이걸 안 바쳐 놓고 재산도 내 것, 아들도 내 것, 자기 몸도 내 것으로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더 주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끊어지고 말아버립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더 주는 복입니다. 바치는 것이 더 주는 복입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개척교회 하는 교역자들도 비슷합니다. 교회 하나 만들어 내거다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이건 내거다, 죽어도 내 놓지 못한다, 누가 만지지도 못한다, 교인들도 다 내거고, 예배당 재산도 다 내거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맘대로 하고 또 나 위해서
하고 자기 위해서 하면 교단에서 볼 때 우리 교단하고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 사람은 자기 교단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 것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여기하고는 상관이 없어집니다.
어떤 지방도시에 그런 교역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교역자가 개인이 개척을 하고 우리 교단에 와서 가입을 하겠다고 해서 가입을 시켜 줬는데 제 것으로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가입을 해서 이름은 우리 교단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왕국을 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제 맘대로 하고 이름만 갖다 걸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교단이다, 우리 교단이 아니다. 이름만 우리 교단이지 실제는 자기 교단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자기 교단 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따금 오고 싶으면 오고 안 오고 싶으면 관두고 하는데 오면 뭘 합니까? 자기 볼 장이나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역자는 또 반대로 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개척은 하지만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어느 교단의 것이다’하며 자기는 언제나 충성하다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또 다른데 가서 일하라고 하면 일합니다. 자기 것이라고 하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단 적으로 볼 때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도와 줄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자기 것이라 생각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하면 하나님의 운동이 잘 될 것 아닙니까? 또 진리운동이 잘 될거 아니겠습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하나님 운동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자기 볼 장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역자는 도와줘야 하나님 운동이 잘되지 않고 진리운동에 유익이 없습니다. 자기 것 하나 만들어 놓고 제가 하는 것입니다. 붙어 있겠다고 하면 붙어 있는거고 또 떨어지겠다고 하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네 아들이지만 내 놓아라’ 하면 내 놓아야 합니다. 내 놓으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욕심을 채우시려고, 혼자 빼앗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가 열 두 아들이 있는데 왜 둘을 더 빼앗아 가시겠습니까? 이것은 야곱이 요셉을 사랑해서 더주려고 한 것입니다. 두 몫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내 놓았다고 해서 자기 아들이, 자기 아들 안 되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바쳤다고 해도 요셉의 아들들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을 장자로 세웠기 때문에 두 몫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장자에게는 두 몫을 준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장자에게는 두 몫을 준다는 그 성경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원리로 장자에게 두 몫을 주려고 그 아들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1장 17절에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
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을 장자로 삼았으니까 장자에게 두 몫을 주려니까 네 아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면 두 몫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신 것이 큰 은혜인줄 알아야 됩니다. 바치라는 것은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연보를 바쳐라, 아들을 바쳐라, 몸을 바쳐라, 또 무엇을 바쳐라, 땅을 바쳐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쳐라, 또 밀가루를 바쳐라, 통에 있는 가루를 바쳐라, 기름을 바쳐라, 또 당나귀를 바쳐라, 다락방을 바쳐라’ 하시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다락방을 누가 바쳤습니까? 마가요한이 다락방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또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바쳐라, 사무엘을 바쳐라’ 하신 것은 더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받는 건 다 좋아 하지만 바치는 것은 싫어합니다. 바치라고 하면 쏙 들어갑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은 교회 나오다가 연보 바치라고 하면 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개척교회는 연보 내라는 소리를 못한다고 합니다. 연보 내라면 다 쏙 들어가니까 연보 내라는 것
을 못 가르쳐 줍니다. 또 사경회를 해도 연보 내라는 소리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사람들 보고 그럽니다. “그것은 잘 못 생각한 것입니다. 바쳐야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열매가 맺는 것이고, 바쳐야만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연보 안 가르쳐 주면 그 교인들 다 버린 것이고, 교인들 복을 받지 못 하게 한 것 아니냐”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제가 사경회 인도할 때는 반드시 연보하라고 말해줍니다. “교인들이 또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하지 말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또 안 나오면 그것이 잘 못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하시면 나와야지 연보 바치라고 안 나오겠습니까?
성경에 바치라고 했으니까 바치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보는 반드시 시켜야 합니다. 시켜야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또 예배당 지으라고 하는 것도 우리에게 큰 짐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주려고 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예배당 안 짓는다고 해서 뭐 특별히 잘 살줄 아십니까? 앞으로 예배당 안지어서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지어야 사실은 잘 됩니다. 다른 것이 다 잘 됩니다. 하나님이 더 주시려고 그런 것인데 예배당 지으라고 하면 ‘뭘 가지고 짓겠나? 또 받을 것이 있어야 바치지 않겠나?’ 이렇게 혹시 마귀가 와서 참소 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할 때 지으면 하나님이 더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당 지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더 주십니다. 우리 다 경험 해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북한에서도 목회할 때 예배당 짓고 다 잘 됐습니다. 또 지금 예배당 지을 때 마다 다 잘 됩니다. 우리 창광교회도 예배당을 1965~66년도에 지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더 잘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십년 전에 심방 다닐 때 보면 한심 했습니다. 게딱지만한 판자 집에 오글오글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집이 얼마 없습니다. 다 잘 됐습니다. 교회 증축할 때도 십년이나 되었는데 또 다 잘됐습니다. 그때보다 잘 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오늘 다른 교회에 있는 집사가 한분이 찾아 왔는데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야겠다고 합니다. 대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더 좋은데 가려고 지금 학원에 다니는데 가만히 생각 해 보니까 대학을 다녀가지고는 아들이 세상으로 나갈 것 같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보내야겠
다, 하나님께 바쳐야겠다’고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학교에서 받아주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학교 졸업하고 신학교 오라고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대학교 졸업 맞고 세상으로 나가면 일이 다 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맞고 오면 좋겠지만 그러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치겠으니까 하여간 미리 몰아넣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면 받아 줄 거니까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뭘 준비해야겠습니까? 맞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보고 강해서도 좀 읽어봐야 합니다. 하여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지 세상 지식으로 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아들 바칠 것을 작정하고, 바치는 그 아들은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바치는 것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몸 바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몸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 주십니다. 반드시 잘 되고, 복 주고, 더 잘 되게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치라고 할 때 독자를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손해를 봤습니까? 몇 백 배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가 아들과 한 끼 해 먹을 가루와 기름이 통과 병에 조금 밖에 없었는데 이걸 바치라고 할 때 바쳤단 말입니다. 바치니까 3년 6개월 동안 그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않았습니다. 내내 가루와 기름이 계속 나왔습니다. 바치면
더 많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은혜입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바치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많은 것을 주십니다.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목회를 해도 자기 것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또 교단에다 바쳐야 합니다. ‘나는 그저 임시로 가서 시중드는 종이다. 청지기로서 임시로 있다가 하나님이 어디든지 가라 하시면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최권능 목사는 75개 교회를
세웠는데 조금 있다 다른데 가서 또 하고, 또 딴 데 가서 개척교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최권능 목사가 상급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자기 것으로 하나 만들겠다는 정신은 하나님의 복을 다 잘라버리고 하나님과의 담을 만들어 놓고 흑암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것을 빼앗아서 자기의 것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절도요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을 힐 때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언제나 써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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