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될 것
야고보서 3:1-18
야고보서 3:1-18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3:1 나의 형제들아,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마라.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말에 실수가 없다면, 그는 온몸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자이다.
3:3 우리가 말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그 온몸을 끌고간다.
3:4 보아라, 그렇게 큰 배들이 강풍에 밀려가지만, 사공은 지극히 작은 키로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3:5 이처럼 혀도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한다. 보아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큰 나무를 태우는가.
3:6 그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계이다. 그혀는 우리 지체 안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바퀴를 불사르니, 지옥불에 의하여 불살라진다.
3:7 온갖 종류의 짐승과 새와 파충류와 해양 생물은 사람에게 길들여지며 또 길들여져 왔으나,
3:8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으니, 억제할 수 없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3:9 그것으로 우리가 주님과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하니,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 나의 형제들아, 이래서는 안 된다.
3:11 샘이 어찌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3:12 나의 형제들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다.
3:13 너희 가운데 지혜롭고 총명한 자가 누구냐? 그는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위를 보여라.
3:14 너희 마음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자랑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마라.
3:15 이런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악령과 같은 것이다.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다.
3: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으로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위선이 없다.
3:18 의의 열매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화평으로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이다.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말에 실수가 없다면, 그는 온몸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자이다.
3:3 우리가 말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그 온몸을 끌고간다.
3:4 보아라, 그렇게 큰 배들이 강풍에 밀려가지만, 사공은 지극히 작은 키로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3:5 이처럼 혀도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한다. 보아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큰 나무를 태우는가.
3:6 그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계이다. 그혀는 우리 지체 안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바퀴를 불사르니, 지옥불에 의하여 불살라진다.
3:7 온갖 종류의 짐승과 새와 파충류와 해양 생물은 사람에게 길들여지며 또 길들여져 왔으나,
3:8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으니, 억제할 수 없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3:9 그것으로 우리가 주님과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하니,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 나의 형제들아, 이래서는 안 된다.
3:11 샘이 어찌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3:12 나의 형제들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다.
3:13 너희 가운데 지혜롭고 총명한 자가 누구냐? 그는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위를 보여라.
3:14 너희 마음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자랑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마라.
3:15 이런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악령과 같은 것이다.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다.
3: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으로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위선이 없다.
3:18 의의 열매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화평으로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이다.
1. 가르치는 일은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함
본문 1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2:47-48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 하였고, 마가복음 9: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 된 사람이 잘못 가르쳐서 소자 하나라도 범죄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지도자가 잘못 가르치게 되면 그 책임이 그 지도자에게 있습니다. 바르게 가르쳐야 하나님께 상급이 있지, 잘못 가르치면 여러 사람이 다 잘못됩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잘못된 데 대한 심판은 잘못 가르친 사람이 다 받아야 합니다. 심판이 큽니다. “선생 된 우리는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씀처럼 확실한 것만 가르쳐야 합니다. 확실한 참된 진리만 가르쳐야 되고 참된 진리가 아닌 것을 가르치면 심판이 상당히 큰 줄 알아야 합니다. 잘못 된 말을 들은 사람이 그대로 하면 전부 잘못되기 때문에 그 잘못된 것에 대한 심판은 잘못 가르친 그 사람이 받습니다.
야고보서 1:19-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은 모든 것을 속히 배우라는 말입니다. 말하기를 더디하라는 것은 입으로 발설하는 것은 조금 있다가 하라는 것입니다. 한번 발설해 놓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한번 발설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듣는 것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괜찮지만 자기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확실한 것과 진리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라도 잘못 가르치면 그 심판을 전부 잘못 가르친 사람이 받게 됩니다.
2. 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될 것
본문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있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잠언 10:19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에 실수
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마음이 바로 되고 생각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속에 바른 지식을 못 가졌는데 어떻게 말에 실수가 없겠습니까?
말에 실수가 있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못 됩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운 대로 말하니까 그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리를 배워서 말하니까 말에 실수가 있고 가다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고, 바른 교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어야 온전한 사람이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말이나 소를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온 몸을 끌고 갑니다. 소는 코를 꾀어 끌고 가고 말은 재갈을 물려서 끌고 가야만 말을 듣습니다. ‘온 몸도 굴레 씌운다’ 고 했는데, 말을 재갈을 물려서 끌고 가야 순종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려 입을 멋대로 놀리지 못하게 하고, 참된 진리대로만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에다 재갈 물리는
생활은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는 생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안 하는 것이 입에 재갈 물리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입에 재갈 물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자기 몸이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입에 재갈 물리지 못하면 그만 바른 길을 걸어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말 하는 대로 됩니다. 사람은 말 하는 대로 되고, 또 된 대로 말합니다. 허튼 말을 하면 무슨 사람이 됩니까? 허튼 사람이 되고 거짓말 하면 또 무슨 사람이 됩니까? 거짓된 사람이 됩니다. 또 방탕한 말을 하면 방탕한 사람이 되고 음란한 말을 하면 음란한 사람이 되는데, 이렇게 말 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되는 대로 말하는 사람, 허튼 소리만 하는 사람은 허튼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농담도 허튼 농담은 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허튼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것을 자꾸 얘기하면 거짓된 사람이 되고 그 말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고 필요한 말만 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서 자기 몸을 바른 데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4절에,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배를 보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큰 배가 있는데 그 배가 광풍에 밀려가는 것을, 사공이 지극히 작은 키로 그 배를 자기 뜻대로 운전한다고 했습니다. 사공이 지극히 작은 키로 그 배를 이리로 가려고 하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려면 하면 저리로 갈 수 있도록 자기 뜻대로 운전한다는 말입니다. 큰 배에 비하면 키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동
이면 동으로, 서쪽이면 서쪽으로 운전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혀도 우리 온 몸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지체지만 그 혀를 가지고 몸 전체를 운전해서 바르게 갈 수도 있고 또 잘 못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혀가 중요합니다. 구렁텅이로 빠져서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또 바르게 갈 수도 있도록 혀가 자기를 운전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앞길이 혀로서 잘 될 수도 있고 망칠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로 큰 것을 움직입니다. 말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말한대로 하나님 심판대 앞에 가서 판단 받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면 동으로, 서쪽이면 서쪽으로 운전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혀도 우리 온 몸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지체지만 그 혀를 가지고 몸 전체를 운전해서 바르게 갈 수도 있고 또 잘 못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혀가 중요합니다. 구렁텅이로 빠져서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또 바르게 갈 수도 있도록 혀가 자기를 운전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앞길이 혀로서 잘 될 수도 있고 망칠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로 큰 것을 움직입니다. 말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말한대로 하나님 심판대 앞에 가서 판단 받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했습니다. 혀가 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냥 한 개비가 많은 나무를 태울 수 있습니다. 성냥 한 개비의 불을 놓으면 많은 나무를 사르는 것과 같이 우리 혀가 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성냥 한 개비로 밥 짓는 나무에 불을 붙여놓으면 밥을 잘 지을 수 있습니다. 또 태우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수가 있습니다. 성냥 한 개비의 불이 작은 불이지만,
이것으로 많은 것을 다 태워 없앨 수 있고, 또 이것을 잘 사용하면 밥도 짓고, 떡도 하고, 또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금도 연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작은 것이라도 큰 것을 이루어놓는다는 말입니다. 망하게 할 수도 있고 잘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불과 같은 우리 혀를 가지고 잘 쓰면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불로 금을 연단하여 금 그릇도 만들 수 있고, 다른 여러 그릇도 만들 수 있습니다. 불로 사기그릇, 질그릇 같은 것도 만들 수 있
는가 하면, 집에 불을 놓아 집을 모두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혀를 잘 사용하면 귀한 것을 만들 수 있고, 혀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망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2:33-37절에,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말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말한 대로 됩니다. 그리고 된 대로 말합니다. 사람이 선한 말을 하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는 사람은 불평분자가 되고 맙니다. 선한 말을 하면 사람이 선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심판도 받지만 우리가 말한 대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남을 정죄하는 말, 깎아내리는 말,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와 목사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선한 말로 해주어야 합니다.
감정이 있으면 서로 감정을 풀고 좋은 관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감정이 있다고 싹 돌려놓고 자기와 친한 사람과만 상대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그 사람의 세계가 좁아진 것입니다. 자기의 세계가 넓어져야 되겠는데 말 안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 안하는 사람을 만들어 놓고 돌려놓으면 그만큼 점점 좁아져서 마지막에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넓혀 나가야 합니다. 자기 세계를 넓혀나가려면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과 좋아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넓어지고, 넓어져야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좁아지면 마지막에는 자기 설 자리도 없어집니다. 남에게 정죄하고 시원치 않다고 하고 다 돌려놓고 하면, 결국 자기가 왕따 당하고 사람들도 싫어하게 됩니다. 그렇게 남에게 시원치 않다고 하다가는 나중엔 자기가 시원치 않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부터 고쳐야 합니다.
말부터 선한 말을 하고 입에다가 재갈을 먹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해야 합니다. 키를 돌려서 바른대로 가게 해야 합니다. 키를 잘못 돌려놓으면 배가 딴대로 갑니다. 혀는 배의 키와 같고, 말의 재갈과 같고, 불과 같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혀를 잘못 놀리는 사람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말, 위로해주는 말, 도와주는 말, 용서해주는 말, 화목하는 말, 긍휼히 여기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하고 속에 있는 말을 톡톡 다 내 쏘아가지고 남을 정죄하면, 나중에는 자기가 정죄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좋지 않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사랑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혀를 잘못 사용하면 불의의 세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혀가 육신의 그 부패성에게 이용되면 몸을 더럽힌다는 말입니다. 또한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것입니다.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것은 자기 생명의 앞길을 다 망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난다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지옥불과 같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혀의 사용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혀를 부리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육신의 부패성인 욕심에 의해서 혀를 놀리면 지옥 불에서 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에 의해서 혀가 사용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혀를 욕심대로, 자기의 감정대로, 생각 없이 그저 움직이면 자기 생의 바퀴를 불사르고 다 망쳐놓고 지옥불과 같은 고통을 나중에는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못 놀리면 안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 있는데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 하고 저 사람 말을 이 사람에게 가서 하고, 이 집 얘기를 저 집에 가서 하고 또 저 집 얘기를 이 집에 가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리 저리 말 옮기고 다니는 것, 그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 안하는 게 낫습니다. 들었으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말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 하나 들었다싶으면 신이 나서 말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일로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몇 사람에게 옮겨가는 동안에 이상하게 변하여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말 안하는 사람이 되어야 믿음을 조금 지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잘 하는 것은 은이고, 말 안하는 것은 금이라고 합니다. 또한,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어머니에게 한 말은 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소는 말을 할 줄 모르므로 말이 나가지 않지만 어머니에게 말한 비밀도 일단 발설하면 말이 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황희 정승이 너무 말이 많이 돌아가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돌아가나 보자’하고 밤에 잘 때에 자기 부인에게 귀속말로 임금님 머리에서 금새가 나온다
고 조용히 말했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 임금님이 부르더랍니다. 금새가 어떻게 나오느냐고 임금님이 물어 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너무 빨리 돌아가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빨리 말이 돌아가나 시험하려고 자기 처에게 밤에 귓속에 대고 한 마디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까지도 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말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고 했답니다. 말을 한 번 말하면 그게 돌아가는 것이 정상 같고 오히려 안 돌아가는 것이 참 특별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서는 안 될 말은 아예 안 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 말하면 그게 또 다른 데로 간다는 말입니다. ‘당신에게만 말하는 것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라고 하면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야, 너에게만 말한다. 이거 말하지
마라’ 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재갈을 물려서 꼭 해야 될 말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것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잠언 26:20-23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쟁이가 어디서 한 마디 얻어 듣고, 좋은 소식이건, 나쁜 소식이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얘기하여 분쟁만 일으키는데, 그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쉰다는 말입니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고 했는데 말쟁이는 이 사람에게 가서 불붙여 놓고, 불붙는 나무 위에다 나무를 놓고 숯불 위에다가 숯 놓는 것처럼 자꾸 시비를 더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 가느니라’고 말씀했는데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말을 하면 별식 먹는 것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까지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또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고 했는데, 이러한 말쟁이, 그리고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본문 7~8절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 해물은 다 길들일 수 있지만 혀는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독한 말이 나오는데 누가 길들이겠습니까? 독한 말이 나오면 자기가 무슨 사람이 된 거라고 했습니까? 독한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꾸 망하는 말을 하면 자기가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망하게됩니다. 그러니까 독한 말 하지 말고 악한 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독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욕을 해도 듣는 사람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체 하고 있으면 누가 손해죠? 욕한 사람이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니까 얼마나 손해입니까? 선한 사람 입에서는 욕이 안 나옵니다. 별 소리 다 해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로 심판 하시는 하나님이 앞으로 다 심판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3:13-14절에는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는 했는데, 사람의 입이 이렇게 악하다는 말입니다.
본문 9절에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혀입니다. 혀로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에게 저주하면 안되겠습니다. 사람을 지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곧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12가지인데,
비공유적 속성으로
첫째는 영원자존성(독립성), 둘째는 불변성, 셋째는 무한성, 넷째는 단순성,
공유적 속성으로 지혜, 지식, 선, 의, 거룩, 사랑, 진실, 능력이 그것입니다. 열 두 가지 속성대로 사람을 지어서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닮아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 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 성품을 우리에게 줬다고 했으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성품이 있는 걸 믿어야 합니다. 안 준 것을 왜 줬다고 했겠습니까. 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는데 하나님의 형상 12가지 가운데 공유적 속성 8가지만 있고 나머지 비공유적 속성 4가지는 없기 때문에 삼분의 이는 닮아 갈 수 있고, 삼분의 일은 못 닮아 간다고 하는 것은 성경 전체에 안 맞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자인데 우리는 영원자존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데 우리는 우주에 충만한 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우리는 절대자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걸 닮아 갈 수 있는 성격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다고 하여 다 무시하면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 받습니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줘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억지로 진리를 왜곡 시키려고 하면 하나님께 가서 심판 받게 됩니다.
본문 10~11절에,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한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또 단물과 쓴물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누구 입에서? 우리 입에서 나옵니다. 찬송 부를 때는 신성한 단 물이 나오는데 집에 가서 “죽여라 죽여라”하고 싸울 때는 할 때는 쓴물이 나옵니다. 샘이 한군데서 쓴물이 나왔다 단물이 나왔다 한다는 것입니다. 단물이 나올 때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좋은 세상이 없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 하고 찬송만 하고 은혜로운 말만 하고 참 좋은데, 쓴물이 나올 때는 남을 죽이고 못 살게 하는 것입니다. 독사의 독이 나와서 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그 나무대로 열매 맺는 것처럼 속을 온전케 해야만 온전한 말을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온전해져야 온전한 말을 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선한 말을 하고 마음의 선을 쌓아야 그 속에서 선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6:43-45절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는데 마음속에 있는 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악을 쌓은 사람은 악한 말이 나오고 속에 선을 쌓은 사람은 선한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영에 속한 말을 하고 욕심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 중심의 말이 나옵니다. 악한 말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2:35-37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말한 대로 이제 심판하십니다. 한 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심판받을 만한 말,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말은 안해야 합니다.
유다서 1:15절에,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치 않은 행동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또 경건치 않은 일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건치 않은 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일, 경건치 않은 행동, 경건치 않은 말,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다음에 심판 받을 줄 알고 언제나 우리가 말에 허물이 없는 사람 되어야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교인들의 말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 돌리고, 저 사람 말을 이 사람에게 돌리고, 또 여전도사들이나 집사들도 심방 갔다 오면서 그 집의 말을 다른 곳에 하지 말아야합니다. 여전도사들이 심방 갔다 나오는 길에, “그 집 아들은 어떻고, 어디는 어떻고 하는 이야기 하는 것을 그 동네사람이 듣고 그 집에 가서 일러줍니다. 아까 교회에서 왔던 사람들이 나가면서 이 집이 어떻고, 이 집 아들이 어떻고 하더라고 하면 시험만 들게 하는 것입니다. 아예 말 안하는 게 좋습니다. 어느 집에 심방 가서도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도리어 손해 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방 가서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사
람 말은 안 해야 합니다. 왜 다른 사람에 대해 말을 합니까? 말을 해서 손해 주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또 더욱이 교역자에 대한 말은 안 해야 합니다. 교역자에 대해 말 하면 그 사람 은혜 못 받습니다.
람 말은 안 해야 합니다. 왜 다른 사람에 대해 말을 합니까? 말을 해서 손해 주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또 더욱이 교역자에 대한 말은 안 해야 합니다. 교역자에 대해 말 하면 그 사람 은혜 못 받습니다.
은혜 못 받으면 그 사람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말도 기도하자, 우리가 믿는 일 잘해야겠다, 또는 봉사하자 라는 말,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은 좋지만 교회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회에 대해서 좋지 않은 얘기를 돌리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벌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또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모함하면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2:37절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에 재갈 물리고 말 안하는 사람이 되고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 없는 말은 안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말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 속 사람을 잘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서 살아갈 것
본문 13-15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쓴물이 나올 때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요 정욕적인 신앙입니다. 독한 시기가 나오고 다툼이 나오고 한입에서 자랑하는 말이 나오고 거짓말이 나옵니다. 예수 믿는 신자 중에도 이처럼 마귀 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자랑 하는 것도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자기자랑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뭘 했다고 해도 하나님 은혜로 한 것이고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지, 자기가 뭘 잘했다고 자랑을 하겠습니까? 어떤 목사는 척 나서면 자기자랑 한다고 합니다. 자기자랑 자꾸 하면 남이 잘 알아 줄 것 같지만, 듣는 사람들이 “저건 벌써 틀렸다”고 하고, ‘예수만 자랑하라고 했는데 네 자랑하고 돌아다니느냐?’고 하나님께서도 틀렸다고 하시니까 절대 자기 자랑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기와 다툼으로 예수 믿는 사람, 자기자랑으로 예수 믿는 목사, 진리를
거스르고 거짓말 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임에도 단물과 쓴물을 내고 찬송과 저주를 하고 또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성도와 목사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귀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사탄의 회가 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탄의 회가 있습니다. 믿음에 설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되고, 믿음을 떠날 때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으로 사탄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됩니다. 확실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성령이 하는 것입니까?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는 것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교회입니다. 시기하고 다투고 자랑하고 진리를 거스르고 거짓말하는 것이 사탄의 회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단물이 나왔다가 쓴물이 나왔다가 선한 게 나왔다가 악한 게 나왔다가 무화과나무 열매 나왔다가 가시나무 열매 나왔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령은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닙니다.
본문 16-17절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아래로부터 난 지혜는 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입니다. 남을 깎아 내리고 제가 이기려고 하고 올라가려고 하고 자기만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모두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단물도 냈다가 쓴물도 내고 또 찬송도 하다가 저주도 하고 그러는 것 모두 위에서부터 난 지혜가 아닙니다. 다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참된 성도는 위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부터, 성령으로부터, 위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무엇입니까? 성결입니다. 싸우고 다투지 않습니다. 화평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마음이 평안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관용해 나갑니다. 양순합니다. 긍휼과 선한열매가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본문 13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했는데, 위로부터 온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싸우고 다투지 않으며,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행하면 얼마나 평안합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고 관용하게 됩니다. 양순합니다. 온유합니다. 즉, 온순하다는 것입니다. 또 긍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선한열매가 가득하고 편벽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면 시원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행하니까 시원합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와 총명을 받으니까 시원합니다. 성결하니까 마음이 시원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남하고 싸우고 다투지 않습니다. 다투자고 해도 안 다투는 것입니다. 그저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만 받아서 말씀대로 순종만 하는 것이지 다툴 생각은 없습니다. ‘해먹으려면 해먹어라 나는 말씀을 지킨다’ 하며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되게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고향사람 끼리끼리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국은 고향사람 끼리끼리 돌아가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도 악한 열매입니다. 선한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룩해진 사람이 다 화평해야지 자기 고향사람끼리 소곤소곤 하고 돌아가는 게 악한열매 아닙니까? 쓴물 아닙니까? 편벽이 없어야 됩니다. 헬라 사람이나 유다사람이나 야만이나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민족이 없습니다. 예수의 피로 중생한 사람은 하나입니다.
본문 18절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화평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마음이 성결하고 사욕이 없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았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거룩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마음만 가져도 벌써 하늘나라의 시온산 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화평합니다. 시기분쟁이 없습니다. 그저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 받아서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나가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룹니다.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일만 가득하고 편벽이 없습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교회, 화평이 많은 가정, 언제나 화평이 넘치는 심령들은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서 살아 간 결과입니다. 거룩하고 화평한 심령 얼마나 좋습니까? 얼굴도 화평하고 마음도 화평하고 다 화평합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다 화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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